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135화 (60/200)

< 시장 방문 >

주한수는 광활한 태평양 상공을 가르는 전용기 안에서 칼컴의 코헨 CEO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을 모시는 주한수 비서실장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용무로 전화를 주셨는지요?

-7시간 뒤에 회장님이 샌디에고 국제공항에 도착하실 예정입니다.

-그래서요?

-다름이 아니라, 공항에 시간 맞춰서 무장 경호원들을 보내 주십시오.

-한국에서 경호원을 데리고 오지 않으신 겁니까?

-네. 그러니 10명 내외의 무장 경호원을 공항으로 보내십시오.

-알겠습니다. 시간 맞춰 공항 쪽으로 무장 요원들을 보내겠습니다.

***

공항 출구로 나가자 양복 차림의 건장한 남자들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일행의 인솔자인 백인 남자가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칼컴 본사에서 파견된 보안팀장 마커스입니다. 앞으로 회장님을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주 실장이 칼컴 측에 연락을 취한 모양이었다.

"그럼 수고해 주세요."

"예. 회장님."

마커스 보안팀장은 나를 커다란 벤 차량으로 안내했다.

"방탄 차량이니 안심하십시오."

아닌게 아니라, 벤은 일반적인 차와 두께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그 정도로 두꺼운 강판을 과시했다.

방탄 기능이 있어서 그런거 같았다.

벤 뒷좌석에 자리를 잡자 주한수가 내 곁에 재빨리 동승했다.

샌디에고 모어하우스 인근의 칼컴 본사로 들어서자 코헨 회장이 나를 반겼다.

코헨은 나를 지하에 위치한 연구실로 안내했다.

그는 모바일 CPU와 통신칩을 일원화한 통합 원칩 시제품을 내 손에 건넸다.

통합 원칩은 500원짜리 동전만한 크기였다.

저 안에 모바일 CPU와 그래픽코어, 모뎀이 통째로 들어가 있었다.

"어느 정도의 성능이죠?"

"인터넷 서핑은 데스크탑 CPU의 90% 정도 수준이고, 게임은 인텔 팬티엄 3 레벨입니다."

내 예상치를 상회하는 결과물이었다.

칼컴의 기술력에 내심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언제쯤이면 양산이 가능할까요?"

"오류 개선 작업과 모바일 운영체제에 적합하게 작업 스케쥴러를 구성하려면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작업 스케쥴러가 무슨 뜻이죠?"

내 물음에 코헨이 시원하게 즉답했다.

"작업 스케쥴러는 각각의 운영체제에 걸맞게 명령어를 하드웨어 차원에서 삽입하는 겁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완벽한 결합을 추구한다는 말씀입니까?"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회장님."

이제 본론으로 넘어갈 차례였다.

"애플의 아이폰 시연 동영상을 보셨습니까?"

코헨이 고개를 끄덕이며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예상 외로 훌륭한 IT 기기를 완성했더군요. 솔직히 많이 놀랐습니다. 특히 멀티터치 기능과 게임 구동 능력이 발군이었습니다."

문득 애플의 그래픽 코어가 궁금해졌다.

"애플이 사용하는 그래픽이 뭔가요?"

"그들은 자체 생산한 A1 칩 기반의 그래픽 코어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모바일 CPU와 짝을 이뤄 구동되는 방식이죠."

"칼컴의 그래픽코어와 많이 다른가요?"

"저희는 야드레노라는 그래픽 코어를 모바일 CPU 다이 외부에 삽입하는 방식입니다."

"애플처럼 모바일 CPU와 그래픽 칩셋을 다이 안에 통합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러자 코헨이 난색을 표명했다.

"서로 일장일단이 있는 방식이라, 무엇이 더 좋다고 딱 부러지게 답변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왜 그런거죠?"

"애플의 경우 모바일 CPU와 그래픽칩셋을 한 다이 안에 집어 넣은 결과 게임 구동 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습니다. CPU와 그래픽 코어의 내부 통신이 원활해진 탓이죠."

"단점도 말씀해 주십시오."

코헨이 고개를 끄덕이며 즉답했다.

"바로 그점 때문에 아이폰은 배터리 소모가 심해지는 부작용을 낳게 될 겁니다. 반면 저희는 그래픽코어를 CPU 외부 다이에 삽입한 결과 배터리 소모율을 애플보다 20%로 이상 절약할 수 있습니다."

그는 목이 타는지 손에 들고 있던 생수를 한모금 들이킨 뒤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 이유로 게임 구동 능력은 아이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실사용에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허나, 나는 그점이 불만이었다.

데스크탑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스마트폰도 게임 구동 능력이 성패를 좌우 할 것이 불보듯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야드레노 그래픽 코어를 아이폰처럼 CPU 다이 안에 집어넣을 수는 없는 겁니까?"

"가능은 하지만 설계를 변경하려면 시간을 다소 잡아먹을 겁니다."

"개발이 지체되더라도 아이폰에 필적할 만한 게임 구동 능력을 반드시 구현해야 합니다."

"배터리 소모보다 게임 구동 능력에 초점을 맞추시는 건가요?"

코헨이 곤혹스런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배터리 소모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사안이지만, 그래픽코어를 cpu 다이 안에 집어넣는 건 설계 자체의 문제라 한번 뒤쳐지면 바로잡기가 힘들어요."

"그러니 내 말대로 CPU 다이 안에 그래픽코어를 통합하는 쪽으로 개발 방향을 수정해 주십시오."

그제서야 코헨이 수긍하는 얼굴로 순순히 화답했다.

"말씀대로 시피유 다이 속에 그래픽코어를 통합하는 쪽으로 개발 방향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겠습니다."

칼컴 본사를 나설 찰나 마커스 보안팀장 일행이 내 앞에 나타났다.

"미국에서 일정을 끝마칠 때까지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리 화답하자 마커스가 방탄 벤 차량으로 나를 안내했다.

3시간 뒤.

실리콘벨리 인근의 얀드로이사로 들어서자 앤디 루반 사장이 나를 반겼다.

우리는 사무실에서 커피를 음미하며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이폰의 시연 동영상을 보셨습니까?"

루반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봤습니다. 회장님."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

"다른건 별로 놀랍지 않은데, 멀티터치 기능에 눈길이 가더군요."

그 역시 나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원활하게 구동하기 위해서는 멀티터치 기능이 필수적입니다. 잡스는 그걸 실현해 냈더군요."

"멀티터치 기능의 이점이 뭐지요?"

"폰화면의 확대와 축소가 자유로운 멀티터치 기능를 활용한다면 인터넷과 게임, 동영상 감상 등을 이용자들이 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정답이었다.

더 이상의 질문은 불필요했다.

"저희 개발진들도 멀티터치 구현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아직 완성을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폰의 IOS는 모바일 기기에 최적화된 운영체제였다.

"그래도 반드시 IOS에 필적하는 모바일 운영체제를 완성하셔야 합니다. 그러라고 당신에게 거액의 연봉을 지급하는 거에요."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루반이 긴장한 얼굴로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1년 이내에 멀티터치 구현이 가능한 운영체제를 만드세요. 아시겠습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회장님."

"최선 갖고는 부족합니다. 반드시 1년 안에 모든 개발계획을 완료하세요."

루반이 곤혹스런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결심한 얼굴로 화답했다.

"말씀대로 1년 안에 멀티터치 구현이 가능한 모바일 운영체제를 완성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당신만 믿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사무실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

영국 런던 히드로 국제공항.

공항 출구로 나오자 ARM에서 파견 나온 무장 보안요원들이 나를 맞이했다.

이번에도 주한수가 미리 언질을 한 모양이었다.

그들의 안내를 받으며 ARM 본사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제이콥스 CEO가 1층 로비 현관에서 나를 반겼다.

그와 악수를 교환한 뒤 28층에 위치한 대표실로 들어갔다.

비서가 내온 다과를 음미하며 제이콥스에게 넌지시 운을 뗐다.

"애플과 모바일 CPU 아키텍처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맞습니다. 회장님."

"계약 규모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죠."

"ARM의 CPU 아키텍처를 제공하는 댓가로 개당 1달러, 총 6천만개에 달하는 아키텍쳐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총액 6천만 달러군요."

"그렇습니다."

"아키텍쳐 라이센스료를 너무 저렴하게 책정한거 아닌가요?"

그러자 제이콥스가 고개를 완강히 저었다.

"다른 회사들도 1달러 내외의 라이센스료를 징수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애플은 초우량 고객입니다."

"내 말은 라이센스료를 인상하면 좋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제이콥스는 완고한 태도로 반대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지금은 시장의 파이를 키워야하는 시점입니다.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해 라이센스료를 인상한다면 모바일 아키텍쳐를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들불처럼 번져나갈 겁니다."

"모바일 CPU의 아키텍쳐를 개발하는 게 그리 쉬운 일입니까?"

"그건 아니지만 애플처럼 자체 기술력이 막강한 회사가 모바일 CPU 아키텍쳐 개발에 나선다면, 우리 회사 입장에서는 좋을 것이 없습니다."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모바일 아키텍쳐를 제공하는 것이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경쟁업체가 나타날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이콥스 대표는 이쪽 방면의 전문가답게 시장을 보는 안목이 탁월했다.

결국 그의 뜻대로 모바일 아키텍쳐 라이센스료를 상당 기간 동결하기로 합의를 본 뒤 런던 시내의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날.

호텔에서 늦은 아침 식사를 해결한 뒤 욕실로 들어갔다.

전신거울을 들여다보자 훤칠한 키와 온몸을 뒤덮은 묵직한 근육이 매우 인상적인 상남자가, 나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얼굴은 미중년 스타일이었지만 내 신체 나이는 20대 초반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20년 동안 헬스와 복싱 훈련에 꾸준히 매진한 덕분이었다.

솔직히 이 정도면 길거리 헌팅이 얼마든지 가능한 수준이었다.

나란 남자는 어디에 내놔도 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었다.

그렇게 내가 자아도취에 흠뻑 취할 즈음 욕실 밖에서 주한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회장님."

"누군데?"

"사모님입니다."

주한수가 사모님이라고 호칭하는 여자는 김소민이 유일했다.

"소민이가 뭐하러 전화를 한거야?"

"잘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전화한다고 전해."

"알겠습니다. 회장님."

샤워를 끝낸 뒤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왠지 캐쥬얼한 복장을 걸치고 싶었다.

그동안 너무 양복만 입은 탓에 가죽 점퍼와 청바지가 미치도록 땡겼다.

청바지와 가죽 점퍼로 패션을 완성한 뒤 주한수를 대동한 채 런던의 길거리로 나섰다.

우리는 발길 가는 대로 아무렇게나 걸었다.

그러기를 얼마 후, 런던의 명소인 트라팔카 광장의 계단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전면으로 시선을 모으자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햄버거와 샌드위치를 파는 노점상이 보였다.

"햄버거랑 샌드위치, 콜라를 사와."

주한수가 고개를 저었다.

"길거리 불량식품을 뭐 하러 드시려고 하십니까?"

"그냥. 오늘 따라 싸구려 패스트푸드가 많이 땡겨서 그래."

"저런 비위생적인 패스트푸드는 드시지 마십시오."

한수는 나 보다, 내 건강을 더 걱정하는 친구였다.

그래서 골치가 아팠다.

과잉 충성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오늘만 먹을테니까 어서 가서 사갖고 와라."

"안됩니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 내가 직접 노점상 쪽으로 몸소 행차했다.

그제서야 한수가 체념한 얼굴로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한수는 햄버거 하나만 달랑 사서 내 손에 전달했다.

"콜라는?"

"이걸 드십시오."

녀석은 그리 답하며 손에 들고 있는 생수를 내 눈앞으로 들어올렸다.

"햄버거엔 콜라를 먹어야지."

"탄산음료는 건강에 매우 해롭습니다. 회장님."

결국 맛대가리 없는 생수로 목을 축이며 햄버거를 입안으로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햄버거로 배를 채울 무렵, 내 예리한 레이더망에 팔등신 금발미녀가 포착됐다.

그녀는 타이트한 블랙 스키니진과 푸른 색의 가죽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늘씬한 몸매라 그런지 무척 아름다워보였다.

곧바로 한수에게 명을 내렸다.

"저 여자를 호텔에 데리고 와."

그러자 녀석이 별일 아니라는 얼굴로 냉큼 답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날 밤.

한수가 픽업한 금발미녀와 오붓한 시간을 즐긴 뒤 한국에 있는 소민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퇴근도 미룬 채 밤 9시 뉴스에 이목을 집중했다.

노무연 대통령은 시장을 시찰한 뒤 상인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노무연의 입에서 의례적인 질문이 흘러나왔다.

"장사는 좀 잘되십니까?"

그러자 노회하게 생긴 시장 상인이 기다렸다는 듯 냉큼 답변했다.

"건국 이래 최악의 불경깁니다. 살다살다 이렇게 장사가 안된 적은 처음인거 같습니다."

시장 상인의 말도 안되는 궤변에 무연의 입가에 쓴웃음이 그려졌다.

그때, 다른 시장 상인이 말을 덧붙였다.

"맨날 정치 싸움만 하느라 경기가 이렇게 안좋은 겁니다. 그러니 대통령께서 우리 시장 상인들에게 대대적인 지원책을 마련해 주십시오."

시장 상인들의 상투적인 개소리였다.

그들은 툭하면 장사가 안된다고 죽는 소리를 입버릇처럼 하는 족속이었다.

30년 전에도 그랬고, 20년 전에도 그랬다.

그리고 1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매한가지다.

시장 상인들은 날이면 날마다 장사가 안되서 죽을 지경이라고 엄살을 떨었다.

허나, 그들은 대다수 중산층 이상의 삶을 누리고 있었다.

시장에서 점포를 운영한다는 건 수억대의 자본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솔직히 노무연의 시장 방문은 백해무익한 행위였다.

진정으로 국내 경기를 알고 싶다면 중소기업에서 힘들게 일하는 근로자들과 인터뷰를 했어야 한다.

돈푼깨나 있는 시장 상인들의 궤변이 방송을 통해 방영된다는 사실 자체가 노무연의 지지도에 악영향을 끼치는 탓이었다.

< 시장 방문 > 끝

ⓒ 방탄리무진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