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136화 (61/200)

< 하버드대학 >

청와대 집무실.

노무연은 면전에 나타난 김태동 경제수석에게 포브스지 신년 특집호를 슬쩍 내밀었다.

"포브스지를 보셨습니까?"

"봤습니다. 이태수 회장이 메인을 장식했더군요."

"포브스지의 기사가 정확하다면 이 회장은 전 세계 최고의 재벌이에요."

노무연이 그리 말하자 김태동이 수긍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연은 담배 연기를 자욱이 말아올리며 재차 입을 열었다.

"포브스지는 이 회장의 재산을 미화 1100억불로 추정하고 있어요. 한화로 거의 130조원에 해당하는 액수에요."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기사로 접하니 이 회장이 새삼 대단해 보이는거 같습니다. 대통령님."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에요. 그래서 말인데, 이번 기회에 경단련의 수장을 이 회장으로 교체하는 게 어떨까요?"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투자에 미온적인 경단련의 노회한 재벌 회장들 보다는 국내 투자에 적극적인 이 회장을 재계 파트너로 삼고 싶어요."

김태동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리 쉽지 않을 겁니다. 경단련 조직은 60대 이상의 회장단 위주로 돌아가는 탓에..."

"그래도 경단련에 내 요구를 전달해 보세요. 그들이 받아들이면 좋고, 거부하면 할수 없는 거죠."

"알겠습니다. 경단련에 대통령님의 요구를 은밀히 전달하겠습니다."

***

여의도 경단련 회관에 나이지긋한 재벌 회장님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얼마 후, 그들은 히말라야 투자그룹의 이태수를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민대머리가 인상적인 재벌 회장이 넌지시 운을 뗐다.

"포브스지의 신년 특집호를 보셨습니까?"

좌중이 너나 할거 없이 차례로 고개를 끄덕였다.

직후, 끝자리에 앉아 있던 금테안경이 물만난 고기처럼 썰을 풀었다.

"이태수의 보유재산 가치가 미화로 1100억달러가 넘는다고 하더군요. 한화로 거의 130조원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액수에요."

"히말라야전자와 드림 케이블, 드림박스, 칼컴, ARM, 얄리바바 등이 모두 그자의 소유라고 하더군요."

그러자 상석을 점유하고 있던 재벌 회장이 못마땅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건 모두 추정 가치에 불과해요. 솔직한 말로 그 친구 회사는 아직 주식시장에 상장조차 하지 않았어요."

"맞습니다. 포브스는 확실하지도 않은 추정가치로만 재산을 측정했어요. 이건 말이 안되는 겁니다!"

날카로운 인상의 재벌 회장이 맞장구를 치자 장내는 삽시간에 이태수의 재산을 부정하는 분위기로 급변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주식시장에 상장조차 안한 개인회사의 가치를 측정하는건 언어도단입니다. 물론 그 친구의 재산이 엄청나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전 세계 최고재벌은 절대 아닙니다."

"저 역시 그리 생각합니다. 솔직히 이태수의 재산은 너무 뻥티기 된 거에요. 그자의 재산은 20조원 정도가 적정 수준입니다!"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권오철 경단련 회장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포브스는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경제잡지에요. 그런 곳에서 이태수 회장을 전 세계 최고의 억만장자로 선정했다는 건 나름 공신력이 있는 겁니다."

경단련 회장의 따끔한 일침에 좌중이 하나같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창 밖으로 부랴부랴 시선을 돌렸다.

그때, 권오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장내에 재차 울려퍼졌다.

"우리가 오늘 이태수 회장을 주제로 대화를 하는 이유는 그를 경단련 회장단에 초빙하기 위함입니다. 그 점을 회장님들은 명심해 주십시오."

그제서야 장내의 분위기가 차분히 가라앉았다.

잠시 후, 그들은 이태수를 경단련에 초빙하는 방안을 심도깊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청와대 쪽에서 이태수를 경단련 회장으로 추대할 생각을 갖고 있어요."

권오철이 그리 말하자 좌중이 벌집을 들쑤신 듯 소란스러워졌다.

직후 민대머리 재벌 회장이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절대 안됩니다. 오십도 안된 새파란 애송이에게 고개를 숙이라는 말씀입니까! 나는 절대 받아들일수 없어요."

그가 말머리를 트자 장내에 운집한 회장님들이 차례로 반대의견을 표명했다.

"맞습니다. 제깟놈이 돈 좀 있다고 경단련 회장직을 넘보는거 같은데, 절대 받아들이시면 안됩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칠십줄을 바라보는 나이에 쉰살도 안된 애송이에게 절대 고개를 숙일 수는 없습니다!"

권오현의 얼굴에 쓴웃음이 그려졌다.

"여러 회장님들의 그같은 의중을 청와대에 가감없이 전달하겠습니다."

***

한남동.

밤 늦게 자택으로 귀가한 김민용의 얼굴에 불편한 심기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민용은 포브스지의 신년 특집 표지를 화려하게 장식한 이태수의 전신사진을 성난 얼굴로 노려봤다.

그는 신경질적인 손놀림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민용의 시선이 전 세계 억만장자 리스트에 못박힌 듯 고정됐다.

리스트 최상단에 등재된 이태수의 이름을 확인하자 씹어뱉듯이 말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그는 짜증이 잔뜩 묻어나는 혼잣말을 토해낸 뒤 리스트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민용은 60위권에 등재된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자 포스브지를 맨바닥에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제깟놈들이 뭘 안다고 내 재산을 측정한단 말인가!"

실제로 그의 재산은 겉으로 드러난 것 보다 최소 4배 이상 많은게 현실이었다.

허나, 그런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국세청의 징벌적인 세금추징을 당할 것이 불보듯 훤했다.

그런 탓으로 민용은 자신의 재산을 언제나 축소하는데 급급했다.

그 결과 포브스지는 민용을 수조원 대의 부를 지닌 그저그런 재벌 회장 정도로 취급했다.

바로 그점이 민용을 분노케 했다.

'이번 기회에 내 재산을 전부 오픈해 버릴까?'

허나, 그같은 마음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국세청의 서슬퍼런 칼날이 뇌리를 스친 탓이었다.

민용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미칠 듯한 화가 솟구쳤다.

날이 갈수록 이태수와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것이 확연해진 탓이었다.

그 무렵, 턱시도 차림의 노집사가 그의 면전에 나타났다.

"삼송전자의 김강석 부회장이 면담을 신청하셨습니다."

"들어오라고 전하세요."

"네. 회장님."

김강석 부회장은 김민용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인 뒤 긴급 현안을 보고했다.

"애플의 아이폰이 이번주 금요일에 북미 지역에 발매될 예정입니다."

"그래서요?"

"송구하게도 아이폰의 선예약 물량이 거의 7백만대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흐음..."

민용의 얼굴에 고민스런 표정이 그려졌다.

"아이폰이 성공할 경우 우리 삼송전자 핸드폰 판매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김강석은 그리 말한 뒤 은근한 얼굴로 재차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윈도우를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폰을 출시하는 게 어떨까요?"

민용은 김강석이 너무 앞서나간다고 생각했다.

"아직 시장에 출시도 안한 아이폰에, 벌써부터 겁을 내시는 겁니까?"

"그렇지만 저희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회장님."

"스마트폰은 아직 대중화 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러니 아이폰의 판매량을 본 뒤 판단합시다."

강석은 민용의 미온적인 반응에 내심 탄식을 금할수 없었다.

허나, 그는 삼송그룹의 절대자였다.

강석이 이래라 저래라 할수 없는 존재였다.

***

히말라야전자 북미 지사에서 근무하는 지창우 과장이 뉴욕의 애플 스토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장사진을 친 애플 매니아들 틈바구니 속에서 아이폰을 누구보다 빨리 손에 쥐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지창우는 147번째로 아이폰을 손에 넣는 행운을 누렸다.

그는 아이폰 박스를 품안에 소중히 갈무리 한 뒤 맨해튼 인근의 사무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

상암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책상 위에 놓여진 아이폰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북미지사 직원이 항공택배로 급배송한 물품이었다.

박스를 개봉하자 골드컬러의 아이폰이 보였다.

손에 쥐자 알류미늄 특유의 서늘한 촉감이 느껴졌다.

곧바로 와이파이 모드로 인터넷 서핑을 시작했다.

아이폰의 인터넷 속도는 내 상상을 한참이나 웃도는 수준이었다.

거의 데스크탑에 버금가는 속도였다.

넷서핑을 끝낸 뒤 애플 스토어에 접속했다.

검색창에 게임을 입력하자 유료 게임 어플리케이션이 화면에 주르륵 떠올랐다.

애플은 유료 어플리케이션을 판매하는 댓가로 개발사에게 40%에 육박하는 수수료를 받고 있었다.

다시 한번 잡스에게 감탄했다.

그는 뭐가 돈이 되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선견지명을 타고났다.

8달러 짜리 유료 레이싱 게임을 다운한 뒤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 조작 모드는 의외로 간단했다.

레이싱 게임이라 그런지 터치로 조작하는데 하등의 불편함이 없었다.

쓸만한 그래픽임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렉없이 원활하게 잘 돌아갔다.

그런 사실을 확인하자 새삼 애플의 기술력에 진정으로 감탄했다.

잡스는 손 안의 컴퓨터를 거의 완벽하게 구현했다.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배터리를 확인하자 45% 정도의 잔량이 남았다.

게임과 넷서핑을 2시간 가량 즐긴 덕분에 배터리 소모가 심했던 모양이다.

이제 통화품질을 확인할 차례였다.

허나, 한국에서 아이폰을 개통하려면 전파관리국의 승인이 떨어져야 한다.

일반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사용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물론 나는 예외였다.

곧바로 주한수를 면전에 불러들였다.

"아이폰을 개통해."

한수가 난색을 표명했다.

"승인을 받기가 까다롭습니다."

"SC 텔레콤에 협조공문을 발송해. 그럼 그쪽에서 알아서 해줄거다."

"SC 그룹 회장님과 친분이 있으신지요?"

"특별한 친분은 없지만 민용을 통해서 여러차례 인사를 나눈 사이니까 알아서 잘 해주겠지."

그리 말하자 주 실장이 한시름 덜었다는 얼굴로 아이폰을 소중히 받아챙겼다.

***

청와대 집무실.

노무연의 면전에 김태동 경제수석이 나타났다.

그는 곧바로 현안을 보고했다.

"경단련 측에서 이태수 회장을 조직의 수장으로 받아들이는 걸 거부했습니다."

노무연은 이미 예상한 일이었는지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

"이태수 회장에게 경단련 회장직을 수락할 의중이 있는지 물어보세요."

"경단련 회장직을 이 회장에게 넘기실 생각입니까?"

"그럴 계획입니다. 말 안통하는 작자들 보다는 이 회장이 재계 파트너로 적합해요."

"알겠습니다. 이 회장에게 대통령님의 말씀을 전달하겠습니다."

***

히말라야전자의 용인 반도체 공장 건설현장을 시찰한 후 김동진 대표와 인근의 밥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설렁탕으로 배를 채운 뒤 긴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이폰이 출시된지 한달 만에 북미시장에서 거의 1000만대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역대급 판매량입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김동진이 말을 이었다.

"그 덕분에 스마트폰용 모바일 D램과 낸드플래쉬의 판매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아이폰이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수익을 보는 구좁니다."

"그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뭔지요?"

김동진이 두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애플사에서 대화면 스마트폰의 일종인 태블릿 PC를 준비 중에 있다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하게 나돌고 있습니다."

"태블릿 PC가 뭐죠?"

"말그대로 스마트폰의 확대버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제서야 동진의 말이 이해됐다.

"10인치 사이즈 정도로 출시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태블릿 PC마저 시장에 안착한다면 모바일 D램과 낸드플래쉬의 수요가 지금 보다 더 많이 폭증할 겁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동진이 환한 얼굴로 재차 말을 이었다.

"애플 덕분에 우리 히말라야전자의 매출과 영업이익 등이 날개를 다는 형국입니다. 하하..."

"너무 좋아하지 말고 표정관리하세요. 안그래도 최근들어 각종 단체에서 기부금을 달라고 난리를 치고 있으니까."

내 따끔한 일침에 동진이 숙연해진 얼굴로 복명했다.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조만간 10조원 규모로 히말라야 복지재단을 출범할 생각이니까 사내유보금 확충에 만전을 다하십시오."

"넵. 회장님."

식사를 끝내고 밥집을 나설 찰나, 주한수가 내 앞을 막어섰다.

"김태동 경제수석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팔을 뻗자 주 실장이 내 손에 핸드폰을 올려놓았다.

폰을 귓가에 가져가자 김태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입니다. 회장님.

-그렇죠. 그런데 갑자기 왜 연락을 주셨는지요?

-다름이 아니라 경단련 문제로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러니 오늘 저녁에 시간을 내주십시오.

-저도 그러고 싶지만, 미국에서 외빈이 오시는 관계로 오늘 저녁에 시간을 내기가 힘들거 같군요.

-내일도 안되십니까?

-내일 오전에 미국으로 출장을 떠날 예정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할수 없군요. 전화상으로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속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회장님께서 경단련의 수장을 맡아주십시오.

생뚱맞은 제안이었다.

-미안하지만 저는 경단련에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저도 잘 알지만 대통령님이 회장님을 재계 파트너로 삼고 싶어하십니다.

-송구하지만 그런 말씀은 못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전혀 마음이 없으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수석님.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날 저녁.

약속장소인 조선호텔 프랑스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하버드 대학 총장인 로버츠 서머스 총장이 환한 얼굴로 나를 반겼다.

우리는 악수를 교환한 뒤 바짝 구워진 등심 스테이크와 고급 포도주를 음미하며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서머스 총장의 입에서 은근한 어조가 흘러나왔다.

"우리 하버드 대학은 저소득층 자녀들에게도 입학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대규모 장학금을 운용할 예정입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장학금이 태부족한 관계로 동문들의 기부금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아 들었습니다. 제가 미력하나마 도움을 드리고 싶군요."

서머스가 기대만발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5억 달러를 하버드 장학기금에 기탁하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약속드리죠."

그러자 서머스가 감격한 표정을 얼굴 가득 드리운 채 나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이 회장님."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이런 기회를 저에게 부여해 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한 심경입니다. 하하하...!"

마음에도 없는 가식적인 언사를 내뱉자 서머스가 격동한 얼굴로 나를 우러러 봤다.

낯간지러운 순간이었다.

< 하버드대학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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