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마진 1 >
타워필리스 펜트하우스.
자택의 거실을 서성이며 히말라야 투자그룹의 산하 계열사에 대해서 심사숙고했다.
나는 그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탓에 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런 탓인지 회삿돈을 뒷구멍으로 챙기는 도둑놈들이 최근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하고 있었다.
드림박스는 물론이고 드림 케이블, 히말라야전자, 히말라야 프러덕션, 대박 엔터를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감찰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다음날,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하수용 이사를 면전에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수용은 그리 말하며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그에게 본론을 꺼냈다.
"회사에 도둑놈이 너무 많아요."
그가 수긍하는 얼굴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드림 케이블, 드림박스, 히말라야 프러덕션 등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내사(內査)를 시행하세요."
"그리고 이번 기회에 히말라야전자도 특별 감찰을 진행하십시오."
수용이 흠칫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직후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난색을 표명했다.
"히말라야전자를 감찰하려면 대규모 인원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희 감사실 직원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조직입니다."
그의 말대로 히말라야전자는 임직원 숫자만 해도 13만여 명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히말라야전자를 제대로 감찰하려면 최소 30명 이상의 인원 확충이 절실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조사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조직의 슬림화를 추구하는 정책에 매우 반하는 의견이었다.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10명 정도를 보충하는 선에서 감사실 인원 문제를 매듭지으세요. 그 이상의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도 회장님, 10명 정도의 확충으로는 히말라야전자를 제대로 감찰 할 수 없습니다."
하수용은 그답지않게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개진하고 있었다.
허나, 그는 내 아랫사람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대규모 인원 확충은 없습니다. 그러니 10명 정도의 인원 확충 방안을 마련해서 보고서로 올리세요."
그제서야 녀석이 체념한 얼굴로 순순히 복명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회장님."
***
주말을 맞이해 모든 스케쥴을 오프했다.
그냥 편하게 휴식을 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집구석에서 TV 프로와 인터넷 서핑을 번갈아가며 만끽한 탓인지 좀이 쑤셔서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민용철 수행비서와 경호원 등을 대동한 채 한강변으로 마실을 나갔다.
선선한 봄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오늘 따라 한강의 정취가 특히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런 탓인지 시원한 캔맥주와 감칠맛나는 안주가 먹고 싶었다.
지근거리에서 나를 수행하는 민용철을 손짓했다.
녀석이 내 앞으로 급히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지갑에서 센트리온 블랙카드를 꺼내서 녀석에게 내밀었다.
"캔맥주랑 안주 좀 사와."
"네. 회장님."
용철은 그리 복명한 뒤 주변의 편의점으로 쏜살같이 뛰어갔다.
편의점 파라솔에서 한강의 그림같은 봄풍경을 만끽하며 캔맥주를 들이키자 시원한 청량감이 목젖을 강타했다.
진미 오징어를 길게 찢어서 입안으로 집어넣자 참으로 꿀맛이었다.
나 홀로 캔맥과 진미 오징어를 한참 동안 즐긴 뒤 장내에 우두커니 서 있는 용철을 손짓하자 녀석이 긴장한 얼굴로 내 앞에 나타났다.
"너도 마셔라."
그러자 용철이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회장님."
"한잔 해. 사양하지말고."
"정말 괜찮습니다. 회장님."
녀석은 단호한 태도로 내 요구를 거부했다.
주한수에게 정신교육을 단단히 받은 모양새였다.
"근무 중에는 술을 할 수 없는건가?"
"그렇습니다. 비서실의 제1일 수칙입니다. 회장님."
아쉬웠지만 할 수 없었다.
결국 나 혼자 캔맥과 진미 오징어를 즐길수 밖에 없었다.
다음날.
사무실로 들어서자 주한수가 심각한 얼굴로 내 앞에 나타났다.
"아메리카 익스프레스 사에서 문의전화가 왔습니다."
"왜?"
"회장님에게 발급한 센트리온 블랙카드의 도난 여부를 묻더군요."
"갑자기 왜 그런거야?"
"한강 공원에 소재한 편의점에서 소액결제가 됐다고, 매우 의아해 하더군요."
"혹시 한강 편의점에서 소액 결제를 하셨는지요?"
"어제 입이 출출해서 캔맥이랑 안주거리를 사먹었는데, 그게 문제가 되는건가?"
한수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센트리온 블랙은 최소 1만 달러 이상의 결제 서비스를 지원하는 카듭니다. 함부로 소액을 결제하시면 거래중지가 되십니다. 회장님."
센트리온 블랙은 한도가 무제한이라 그런지 소액결제에 매우 인색했다.
"그러니 가급적 소액 결제를 지양해 주십시오. 회장님."
"알았으니까 이만 나가봐."
"예. 회장님."
주한수가 사무실에서 나가자마자 하수용 이사가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십여장 내외의 이력서가 들려있었다.
"전직 광수대 출신 형사들을 중심으로 신규인원을 선발했습니다."
수용은 그리 말하며 이력서를 내 손에 건넸다.
이력서를 살피자 그의 말대로 대다수 전직 광수대 출신이었다.
"검사 출신도 선발하지 그래?"
그러자 녀석이 고개를 저으며 단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감사업무는 검사 출신 보다는 광수대 형사 출신들이 더 낫습니다."
"이유가 뭐지?"
"검사들은 형사들이 잡아온 피의자들의 구속영장을 주로 취급하는 반면, 광수대 출신들은 자신들이 직접 수사를 해서 범인을 잡는게 주 업무인 탓이죠."
"수사능력에 차이가 크다는 말인가?"
"감찰 업무는 직접 발로 뛰어서 비리를 잡아내야 합니다."
"검사 보다는 현장에서 경험이 많은 형사들이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거죠."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 이사가 알아서 선발해."
"감사합니다. 회장님."
"인원을 보충하는 즉시 히말라야전자를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감찰 업무에 돌입하라고."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
서울 모처.
한국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이명복과 국내 최고의 여론조사기관인 걀럽의 채종훈 회장이 머리를 맞댄 채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이명복은 대학교 후배인 채종훈에게 넌지시 운을 뗐다.
"당내 경선에서 승리할 묘책이 없을까?"
"지금 이 상태로 당내 경선을 치룬다면 선배님이 100% 패배할 겁니다."
명복이 수긍하는 얼굴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박선미 대표는 한국당의 최대주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 덕분에 금배지를 단 의원들이 대다수인 탓이죠."
그러자 명복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씹어뱉듯이 말을 내뱉었다.
"그래서 내가 골치가 아파 죽겠다고. 당내경선에서 그년을 이길 방법이 없어서."
"그렇지만 선배님은 여론조사에서 박선미를 능가하는 지지도를 유지하고 계십니다."
"그래봤자 당내 경선은 박선미가 승리할 확률이 100%잖아!"
명복이 목소리를 높이자 채종훈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쓸데없이 왜 웃는거야. 뭔가 묘안이라도 있는거야?"
명복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채종훈이 환한 얼굴로 즉답했다.
"한가지 비책이 있습니다. 선배님."
"그게 뭔데?"
"경선 선거인단 수를 20만명 수준으로 대폭 상향조정 하는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의원들을 다수 포섭한 박선미의 영향력을 급속도로 상쇄할 수 있을 겁니다."
"말은 쉽지만 그게 가능할까?"
"국민참여 경선제도를 명분으로 삼으면 될 겁니다. 노무연이 그 방법으로 경선에서 승리한 거 아닙니까?"
"언론의 도움이 필요하겠군."
"제가 조중동에 딜을 넣어보겠습니다."
"선거인단과 언론을 내편으로 만들려면 거액의 선거자금이 필요한데, 그건 무슨 수로 해결할 생각이지?"
"삼송그룹을 필두로 재계 인사들과 두루 접촉할 생각입니다."
채종훈은 그리 답하며 은근한 시선으로 이명복을 쳐다봤다.
"재벌들한테 돈을 타먹으려면 그에 합당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즉시 법인세를 대폭 인하하겠다고 확약하면, 재계에서 선배님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겁니다."
명복의 두눈에 끈적한 탐욕이 스쳤다.
"회장님들과 자리를 만들어 봐."
"넵. 선배님."
***
수원 인근에 소재한 반도체 장비 업체인 태강산업에 김동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진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명목상 회장으로 등재된 이훈철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감사 업무가 시작될 예정이니까 내 흔적을 철저히 지워!"
"그 말씀이 정말입니까? 형님."
"그렇다니까. 감사실 애들이 반도체 장비 업체들을 중심으로 납품비리를 감찰하는 중이라고."
그러자 이훈철이 걱정이 그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만약 형님이 실제 사주로 밝혀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 자식아!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냐! 아침부터 재수없게."
"제가 형님의 이종사촌 동생이라는 게 밝혀지면..."
훈철은 말끝을 흐리며 동진의 눈치를 살폈다.
"그럴 일은 절대 없으니까, 감사팀이 와도 태연하게 행동해."
동진은 그 말을 끝으로 사무실을 박차고 나왔다.
그는 서울로 향하는 차 안에서 하수용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감사실의 동정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수화기에 입을 댄 채 하수용에게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반도체 장비 업체들을 대상으로 감사에 돌입한다는 소문이 사실인가요?
-어디에서 그런 얘기를 들으신거죠?
-임원들이 그런 말을 하더군요.
-임원분들이라 그런지 정보력이 대단하시군요.
하수용의 말이 동진에게는 비아냥으로 들려왔다.
허나, 그는 속내를 일체 내색하지 않은 채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납품비리에 초점을 맞추시는 겁니까?
-상당 기간 납품과 관련된 내사 작업에 돌입할 예정입니다.
-회장님의 엄명인가요?
-그렇습니다. 대표님.
동진의 얼굴이 무참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통화를 끊은 뒤 침중한 얼굴로 뭔가를 심사숙고했다.
'내가 차명으로 회사를 설립한걸 이 회장이 알아낸다면, 그날부로 죽음 목숨이겠지?'
동진의 얼굴이 사색으로 짙게 물들었다.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는 반도체 장비 업체인 태강산업을 이종사촌 동생 명의로 설립한 뒤, 히말라야전자에 역마진 방식으로 반도체 장비를 대량으로 납품했다.
그 결과 동진은 수천억대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그는 다소 침착함을 되찾은 얼굴로 두눈을 번뜩였다.
'훈철이 자식이 입만 조심하면 내 정체가 들통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말자. 서류상으로 내 이름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동진은 마음을 담대하게 먹기로 작심했다.
'일이 잘못되면, 해외로 도망가면 그만이라고!'
***
히말라야전자 평택 공장에 박용범 기술이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최근에 태강산업에서 납품받은 반도체 장비를 검사하고 있었다.
박용범은 납품 담당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개당 얼마에 납품 받은건가?"
"574만원입니다."
순간 용범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미국이나 일본의 반도체 장비보다 30%이상 비싼 가격 아닌가?"
"그렇지만 국산 반도체 장비를 육성한다는 명목으로, 김 대표님이 그 가격에 납품을 받으라는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용범의 두눈에 짙은 의혹이 스쳤다.
그러기를 얼마 후, 결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최근 3년 동안 태강산업에서 납품받은 반도체 장비 리스트를 뽑아서, 내일 아침까지 내 책상 위에 올려놔."
"알겠습니다. 이사님."
다음날.
박용범은 태강산업이 납품한 반도체장비 일람표와 가격 등을 세밀히 살핀 뒤 어딘가로 급히 전화를 걸었다.
***
이른 아침 부터 주한수를 대동한 채 용인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대규모로 건설 중인 히말라야전자의 신규 공장 부지에 들어서자 김동진 대표가 나를 맞이했다.
30만평에 달하는 너른 대지 위에 모바일 D램과 낸드플래쉬 생산 라인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공장이 완공되면 20나노대 미세공정 제품을 전 세계 최초로 양산할 수 있을 겁니다."
김동진의 자신만만한 확언이었다.
"완공시점이 언제죠?"
"2010년 7월경에 완공할 예정입니다."
"완공에 차질이 없게 틈나는대로 건설 현장을 점검하세요."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2008년 1월을 기점으로 스마트폰을 론칭할 생각이니까 터치패널의 수급 문제도 확실히 해결하세요."
동진이 환한 얼굴로 즉답했다.
"LC전자와 터치패널 납품계약을 조만간 체결할 계획입니다. 그러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동진은 그리 화답하며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옆자리에 동승한 주한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칼컴과 얀드로이드사를 차례로 방문할 생각이니까 전용기와 조종사, 승무원을 섭외해."
"이번에 선발한 경호원들도 데리고 가시죠."
"그럴 필요가 있을까?"
"현지에서 무장 보안요원들을 조달받는 것 보다는 우리가 직접 선발한 경호원들을 대동하는 게 회장님의 위신에 걸맞다고 생각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한가지 걸리는 문제가 있었다.
"미국에서 경호를 하려면 총기사용이 필수잖아."
"그렇지만 꼭, 총기를 사용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건 당신이 미국애들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야. 미국놈들은 성질나면 공공장소에서 미친듯이 총기난사를 퍼붓는 족속이라고."
한수의 얼굴에 곤혹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반면 한국 경호원들은 미국에서 총기를 사용하지 못해. 외국인은 총기사용 자체가 불법이거든."
"한마디로 한국 경호원들은 허수아비 신세라는 말이지."
녀석이 체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알면 됐다."
그날 밤.
회사 업무를 종료한 뒤 명우와 룸살롱에서 술자리를 즐길 무렵, 주한수가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수용 이사가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무슨 일인데?"
"아주 급한 일이라고 하더군요."
오늘 술자리는 다한 모양이었다.
결국 명우에게 미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술은 나중에 다시 하자."
그러자 녀석이 섭섭한 얼굴로 볼멘 목소리를 토해냈다.
"끝까지 같이 가야지. 회사일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잖아."
"요즘 회사에 도둑놈이 많아서 그러니까 니가 이해해라. 그럼 나중에 보자."
그 말을 끝으로 룸살롱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하수용을 대동한 채 고즈넉한 강변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변의 벤치에 자리를 잡자 그제서야 수용이 속옛말을 꺼냈다.
"반도체 장비를 납품하는 태강산업을 조사한 결과 최근 3년간 역마진 거래로 2천억 대의 시세차익을 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두푼도 아니고 무려 2천억이었다.
"배후가 누구지?"
"지금 조사 중에 있습니다."
"그래도 짚이는 인물이 있을거 아닌가?"
그러자 수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김동진 대표가 태강산업의 반도체 장비 납품을 주도했다고 하더군요."
"김동진이 배후라는 말인가?"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회장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격이었다.
나는 김동진을 철석같이 믿었다.
동문 선배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직 확실한건 아닙니다."
"감사실의 모든 인력을 총동원해서 김동진을 철저히 조사해!"
"넵. 회장님."
< 역마진 1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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