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증시 상장 2 >
오기춘 비서실장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조중동을 우군으로 확보하지 못한다면 이태수 회장을 치는 일에 커다란 차질이 빚어질 겁니다."
"누가 그걸 몰라. 그러니까 쓸만한 대안이나 제시해 보라고."
이명복이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오기춘을 쳐다봤다.
그러자 기춘이 두눈을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조중동의 숙원사업인 종편진출을 허용하는 게 최선입니다."
명복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파였다.
직후 그의 입에서 걱정스런 언사가 흘러나왔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에서 난리를 칠거 아닌가?"
"조중동과 이태수가 한편으로 뭉치면 대통령님에게 커다란 우환이 발생할 겁니다."
"흐으음..."
명복의 입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결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조중동의 종편진출을 허용하는 방안을 마련해. 그리고 그런 사실을 조중동 사주들에게 넌지시 알려."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대통령님."
***
가평 사격장에서 클레이 사격을 즐기며 심신의 울화를 해소할 무렵, 히말라야전자의 박용범 대표가 눈 앞에 나타났다.
라이플을 주한수에게 건넨 뒤 박용범과 함께 휴게실로 자리를 옮겼다.
용범이 곤혹스런 얼굴로 보고를 올렸다.
"유니버스1 스마트폰의 출시가 최소 2달 이상 지체될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AT&T와 버라이즌에 연락해서 납품기한을 2달 정도 연장해 달라고 요청해."
"그리고 국내 이통사에도 납품기한을 미뤄달라고 전해."
"예. 회장님."
"D램과 낸드플래쉬 부문도 막대한 생산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돈으로 환산할 경우 거의 12조원에 육박하는 액숩니다."
이명복이란 개자식이 내 사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었다.
그놈을 생으로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북미지역에 배정한 유니버스1의 광고물량을 연기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건 안될 말이야. 이미 방송국과 신문사, 온라인 광고업체에 주문을 넣은 상황이라고."
히말라야전자는 유니버스1 스마트폰의 광고비용으로 북미지역에 17억 달러를 배정한 상황이었다.
한화로 2조원에 상당하는 액수였다.
"다음달 말에 슈퍼볼이 개최될 예정이야. 미국인들이 환장하는 쇼타임이지."
"슈퍼볼이 그렇게 대단한 겁니까?"
용범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는 미국 유학 경험이 없는 탓인지 미국 현지 사정에 매우 어두웠다.
"미국인들에게 슈퍼볼은 종교나 마찬가지야. 그래서 시청률이 80%나 나오는 거라고."
"그런 이유로 초당 광고단가가 한화로 2억이 넘는거야."
용범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내가 슈퍼볼 광고에 목을 매는 거라고. 유니버스1을 널리 알릴수 있는 기회거든."
용범이 사라지자마자 주한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청와대에 전화를 때려."
녀석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성질이 나서 참을수 없을 지경이야. 그러니 청와대에 전화를 넣어."
그러자 한수가 걱정이 그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명복과 전화통화를 나눠봤자 회장님에게 좋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만 화를 푸시죠."
"나도 그러고 싶은데 도저히 화가 나서 참을수 없다니까. 그러니 어여 청와대에 전화를 걸라고."
그제서야 녀석이 체념한 얼굴로 청와대에 전화를 연결했다.
폰을 들자 오기춘 비서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놈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명복 대통령과 통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대통령님은 재벌 회장님과 사사로이 통화를 나누시지 않습니다.
예상하던 답변이었다.
이 개자식들은 자기들이 필요할 때만 통화를 하는 족속이었다.
-그럼 내 말을 이 대통령에게 전달해 주십시오.
-하실 말씀이 뭡니까?
-설치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고 전해 주십시오. 그래야 만수무강 할 수 있습니다.
순간 수화기에서 오기춘의 분노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일국의 대통령님을 그런 식으로 모욕하다니!
-하여튼 내 말이나 제대로 전달해 주십시오.
통화를 끝마친 뒤 주한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김태섭을 호출해."
"예. 회장님."
탕탕탕탕탕탕!
라이플의 방아쇠를 미친듯이 잡아당길 즈음 태섭이 면전에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서류봉투가 들려있었다.
"말씀하신 자룝니다."
태섭은 그리 말하며 서류봉투를 공손히 내밀었다.
"이명박의 약점인가?"
"그렇습니다. 회장님."
봉투에서 꺼낸 서류를 훑자 이명복의 비위사건을 요약한 보고서가 일목요연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2002년과 2003년경에 개놈이 저지른 사기협잡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BBQ 사모펀드 사건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봐."
태섭이 즉답했다.
"이명복은 BBQ 사모펀드를 설립한 후, 한국과 재미교포들을 대상으로 투자사기를 벌였습니다."
"그 결과 수천억대의 눈먼 돈이 그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물론 사모펀드 대표로 바지사장을 내세운 탓에 법적인 처벌을 교묘하게 피해갔습니다."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소환조사가 가능하겠군."
그러자 태섭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대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그때, 이명복의 모가지에 튼튼한 개줄을 달 수 있는 묘안이 뇌리를 스쳤다.
그날밤, 타워필리스 펜트하우스.
백악관에 거주하는 안젤리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에서 그녀의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동안 왜, 연락을 안한거야?
-미안. 일이 바빴다.
-자기는 내가 부담스럽니?
-그건 아니고, 정말 일이 너무 많았어.
-그럼 이번 주말에 백악관으로 와줘. 그날 백악관에서 근사한 파티를 개최할 예정이거든.
-당연히 가야지. 그건 그렇고, 한가지 부탁할 일이 있는데...
말끝을 흐리자 폰에서 그녀의 걱정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무슨 일인데 그래? 자기한테 안좋은 일이야?
-비슷한 일인데... 실은 한국 대통령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난리를 치고 있거든.
-자세히 말해봐.
-정치자금을 주지 않았다고 자기 멋대로 권력을 휘두르고 있어. 그래서 말인데 아바마한테 내 사정을 좀 전해줄래?
수화기에서 안젤리나의 분한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런 못돼먹은 정치인은 내가 용납할 수 없어. 그러니 자기는 아무런 걱정을 하지마. 내가 다 알아서 해줄게.
-고맙다. 안젤리나. 내일 아침 비행기로 날아갈테니까 백악관에서 보자.
-그럼 나야 좋지. 호호호...
폰에서 그녀의 화사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통화를 끊은 뒤 주한수에게 명을 내렸다.
"내일 아침 비행기를 준비해놔."
"행선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백악관."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회장님."
***
백악관 중앙관저로 들어서자 아바마 대통령과 안젤리나가 나를 반겼다.
안젤라와 뜨거운 포옹을 나눈 뒤 아바마와 악수를 교환했다.
우리는 저녁 만찬을 즐긴 뒤 진지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바마가 걱정이 그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안젤라한테 말씀을 들었습니다."
내 의중을 밝힐 차례였다.
"이명복 대통령이 대선자금을 주지 않았다고 정치보복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해 주십시오."
곧바로 즉답했다.
"히말라야전자의 D램과 낸드플래쉬 생산량의 60& 이상을 담당하는 수원 공장에 34일간의 운영정지 처분을 내렸습니다."
"처분 사유가 뭐죠?"
"인근의 하천과 강에 유해물질을 배출했다는 혐의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우리 수원 반도체 공장은 최첨단 오폐수 처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아바마의 얼굴에 침중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때, 안젤라가 나를 거들고 나섰다.
"태수는 자기 선거자금으로 수억 달러를 기부했잖아. 그러니까 자기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면 안될까?"
안젤라는 그리 말하며 아바마를 애절한 얼굴로 그윽하게 쳐다봤다.
순간 아바마의 입가에 씁쓸한 고소가 그려졌다.
그러기를 얼마 후, 결심한 표정을 지으며 나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제가 힘 닿는데 까지 회장님을 도와드리죠."
"감사합니다. 대통령 각하."
그리 화답하며 아바마의 손을 정중히 마주잡았다.
***
청와대 집무실에 주한 미국대사인 에이브럼스가 나타났다.
그는 거만한 얼굴로 이명복과 악수를 교환한 뒤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에이브럼스 대사의 입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쏟아졌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뉴욕주에서 수년 전에 발생한 BBQ 사모펀드 투자사기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BBQ 사모펀드의 마틴 김 대표를 조사한 결과, 그의 입에서 이명복 대통령의 이름이 흘러나왔습니다."
순간 이명복의 얼굴에 똥씹은 표정이 드러났다.
에이브럼스 대사는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할 말에 오롯이 집중할 뿐이었다.
"FBI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공식적으로 조사할 방침이라고 하더군요."
명복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취임 초기부터 절체절명의 위기에 내몰린 탓이었다.
"FBI 연방 경찰국이 당신을 사기죄로 기소할 경우."
에이브럼스는 그리 말하며 명복을 비웃듯 쳐다봤다.
직후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의 정치생명은 그날부로 끝장날 겁니다. 물론 이 대통령이 우리 요구를 수용하신다면 결과는 많이 달라지겠죠."
에이브럼스의 폭탄발언이 떨어지자 명복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에게 원하시는 게 있으십니까?"
"당연히 있습니다."
"원하시는 바를 속 시원히 말씀해 주십시오."
"좋습니다."
에이브럼스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히말라야 투자그룹의 이태수 회장님에게 절대 정치보복을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히말라야전자 수원 반도체 공장의 운영정지 처분을 오늘 안으로 즉각 해제하십시오."
에이브럼스는 그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명복의 얼굴에 참담한 열패감이 짙게 드리워졌다.
이태수의 뒤에 도사린 미국의 힘을 절감한 탓이었다.
***
오늘도 백악관 중앙관저를 방문했다.
이곳은 미국 대통령 부부의 사저였다.
대통령 부부의 최측근 지인들만 출입이 가능한 곳이었다.
그런 곳을 마음껏 드나든다는 사실에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더구나 아바마는 유럽 순방길에 오른 상황이었다.
안젤라와 오붓한 시간을 즐기기에 더할나위없는 장소였다.
아름다운 그녀가 나를 격조높은 침실로 이끌었다.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만끽한 뒤 차후의 만남을 애타게 기약했다.
워싱턴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옆자리에 동승한 주한수가 은근한 얼굴로 물었다.
"아바마 대통령이 두분의 사이를 의심하지 않을까요?"
주한수는 쓸데없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한수야."
"네. 회장님."
"많이 알면 다친다. 그러니 입 다물어라."
그러자 녀석이 흠칫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3시간의 비행 끝에 뉴욕 케네디 공항에 도착했다.
곧바로 슈퍼볼 주관 방송사인 NBC로 직행했다.
NBC 방송국에 도착하자 탐 브롱카우 회장의 수행비서가 나를 반겼다.
그는 나를 탑층에 위치한 회장실로 안내했다.
브랑카우 회장과 악수를 교환하자마자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슈퍼볼 시간대에 30초 단위의 광고를 20차례 정도 계약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브랑카우 회장이 반색하는 얼굴로 화답했다.
"얼마든지 가능하십니다. 회장님."
그리 말하며 브랑카우에게 유니버스1의 시제품을 내밀었다.
그는 내가 건넨 유니버스1을 세심히 살핀 뒤 감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애플의 아이폰에 비견될 만한 제품이군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이걸 주시는 이유가 뭔가요?"
"솔직히 말씀드리죠. 저는 북미 시청자들에게 통할 만한 광고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자 브랑카우가 두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회장님이 원하신다면 감각적인 광고연출로 유명한 제작자를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그리 해주시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회장님."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하하..."
브랑카우는 사람 좋은 웃음을 내비치며 내 손을 힘차게 마주잡았다.
"세부 계약은 변호사에게 일임합시다."
"안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그날 밤.
맨해튼 인근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한편, LA에 있는 코플랜드 로펌의 마이어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입니다. 회장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하하...! 회장님의 배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덕담을 교환한 뒤 본론에 돌입했다.
-다름이 아니라 히말라야전자를 대신해서 NBC 방송국과 슈퍼볼 광고계약을 체결해 주십시오.
-원하시는 날짜를 말씀해 주십시오.
-내일 오후 4시까지 파트너 변호사를 뉴욕 현지에 있는 NBC 방송국으로 보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럼 저 대신 수고를 해주십시오.
통화를 끝마친 뒤 맞은편에서 저녁 식사를 즐기는 주한수에게 명령을 내렸다.
"오늘밤 비행기로 한국으로 들어갈 생각이니 조종사와 승무원을 섭외해."
"예. 회장님."
그때, 한수가 손에 든 핸드폰이 요란한 울음을 토했다.
"어서 받아."
"넵. 회장님."
한수는 통화를 끝마친 뒤 화색이 도는 얼굴로 보고를 올렸다.
"수원 반도체 공장의 운행정지가 해제됐다는 소식입니다."
예상하던 결과였다.
허나,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일주일 간의 운행 중단 덕분에 3조원에 육박하는 손실을 본 탓이었다.
***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청와대로 직행했다.
이명복은 내 면담 요청을 감히 거부하지 못했다.
내 뒤에 아바마 대통령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탓이었다.
청와대 집무실에 들어가자마자 푹신한 소파에 온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담배연기를 자욱이 내뿜으며 이명복에게 내 요구를 전달했다.
"당신 덕분에 수원 반도체 공장이 무려 1주일이나 가동중지 됐습니다. 돈으로 환산할 경우 3조원 대의 손실을 본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그러자 명복이 뜨악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나에게 할 말이 뭡니까?"
"히말라야전자가 손해본 액수를 당신이 메꿔주셔야 하겠습니다. 그말을 하려고 청와대를 방문한 겁니다."
그러자 명복이 분노한 얼굴로 외쳤다.
"감히 현직 대통령을 협박하시는 겁니까!"
"그건 내 알 바 없고, 암튼 우리 히말라야전자에 입힌 손실을 보전해 주십시오. 국민혈세를 투입해서라도, 반드시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요."
명복은 여전히 똥인지 된장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정당한 요구를 끝까지 거부하신다면, 그에 합당한 응분의 댓가를 반드시 치루시게 될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집무실을 박차고 나왔다.
< 뉴욕증시 상장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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