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150화 (75/200)

< 일심회(一心會) 1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메릴린치 증권의 오닐 회장이 내 앞에 나타났다.

우리는 커피를 음미하며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오닐이 넌지시 운을 뗐다.

"히말라야전자를 뉴욕증시에 상장할 경우 최소 5200억달러 이상의 시가총액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지금 현재 애플의 시총은 얼마죠?"

오닐이 시원하게 즉답했다.

"7400억 달러 가량입니다."

"저희 회사보다 애플의 시장가치가 2200억 달러나 더 많군요."

"애플은 전 세계 중고가 핸드폰 시장을 장악한 탓에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압도적입니다."

"그래서 우리 히말라야전자가 애플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오닐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의미로 들으셨다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됐고, 내가 원하는 시가총액은 최소 1조 달럽니다. 그 이하로는 뉴욕 증시에 회사를 공개할 생각이 전혀없어요."

그러자 오닐이 놀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너무 높은 가격대를 요구하시는 겁니다."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판단하시는 근거를 말씀해 주십시오."

고개를 끄덕이며 심중의 소회를 솔직히 피력했다.

"금년 6월 경에 히말라야전자의 전략 스마트폰인 유니버스1이 북미지역과 유럽 등지에 출시될 예정입니다."

"우리 히말라야전자가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유니버스1은 아이폰에 필적하는 성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실례지만 유니버스1의 실물을 제가 직접 볼 수 있을까요?"

오닐의 얼굴에 격한 호기심이 떠올랐다.

"좋습니다."

그리 화답하며 책상 서랍에서 유니버스1의 시제품을 꺼내서 오닐에게 건넸다.

그는 유니버스1을 이용해 넷서핑과 간단한 게임 등을 구동한 후 감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의 말씀처럼 성능이 대단하군요. 놀랍습니다."

"그래서 제가 애플을 능가하는 시가총액을 호언장담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아직 유니버스1은 시장에 출시되지 않았습니다. 회장님."

오닐은 그리 말하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기를 얼마 후, 은근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년 1분기를 목표로 뉴욕증시에 히말라야전자를 상장하시는 게 어떨런지요?"

좋은 판단이었다.

"안그래도 제가 그런 제안을 회장님에게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이심전심이군요. 하하하..."

오닐은 기분 좋은 웃음을 내비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원하시는 대로 1조 달러에 육박하는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상장 준비에 은밀히 돌입하겠습니다."

"물론 유니버스1의 성공을 전제로 한 조건입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나중에 봅시다."

그리 말하며 오닐과 힘찬 악수를 교환했다.

***

청와대 집무실.

이명복은 화가 나서 미칠지경이었다.

만만히 생각했던 이태수의 숨은 힘이 가공할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태수는 미국 대통령을 뒷배로 삼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명복은 다른 방식으로 그를 압박하기로 굳게 다짐했다.

명복은 간계에 능한 지만철 의원을 면전에 호출했다.

"이태수의 뒤에 미국 대통령이 있거든. 그래서 내가 지금 그놈을 건드리는 게 쉽지 않아."

지만철은 얼굴 가득 간사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태수의 주변 지인들을 타겟으로 가지치기 작업을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가지치기를 하자는 말인가?"

"측근 인맥을 잘라낸다면 이태수가 대통령님에게 순순히 복종할 겁니다."

그러자 명복이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이태수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하는거야. 그놈은 피도 눈물도 없는 망나니같은 놈이라고!"

"아무리 개망나니라고 해도, 측근 지인들이 법적으로 처벌을 받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심적으로 흔들리게 될 겁니다."

"일단 그자의 마인드를 흔들어 놓는게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명복은 만철은 내보낸 뒤 오기춘 비서실장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대통령님."

"조중동 사주에게 종편에 대해서 언질을 넣었나?"

"며칠 전에 알렸습니다."

"그들에게 종편 허가를 내주는 조건으로 이태수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라고 전달해."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

서울시내 모처에 조중동 사주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머리를 맞댄 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명복이 종편 허가를 내주는 조건으로 이태수를 찍어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우리한테도 그런 제안을 해왔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집니다."

그들은 노회한 눈빛을 내비치며 말을 이었다.

"종편 허가를 받더라도 광고물량이 딸리면 말짱 도루묵이에요."

"맞는 말씀입니다. 지상파와 케이블이 난립한 상황에서 광고물량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종편은 빛좋은 개살구가 되는 겁니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차라리 이태수에게 붙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백번 생각해도 이태수 라인을 타는 게 옳은 선택이에요."

"우리한테 매년 수천억 대의 광고를 집행하는 이 회장을 건드리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에요."

"솔직한 말로 대통령은 5년만 지나면 별 볼 일 없는 뒷방 늙은이 신세에요. 종편 허가를 미끼로 이태수에게 총질을 하라고 명령하는 건 월권이라 이말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이명복은 약점이 많은 인간이라 우리에게 종편허가를 내줄 수 밖에 없어요."

"그럼 답은 나왔군요. 꿩도 먹고 알도 먹는 전략으로 가십시다. 종편을 꿀꺽하는 한편, 이태수 라인에 붙어서 광고물량이나 듬뿍 받아먹읍시다."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두눈 가득 끈적한 탐욕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

상암동 주변에서 주중 미니시리즈 촬영이 한창이었다.

드림 케이블의 드라마 채널에서 절찬리에 방영 중인 작품이었다.

촬영 현장을 시찰한 뒤, 눈 앞에 공손히 시립한 김용대 본부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내일 비행기로 뉴욕에 있는 NBC 방송국으로 들어가."

그러자 녀석이 반색하는 얼굴로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공짜로 뉴욕 출장을 간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놀러가는거 아니니까, 엘파머 감독과 유니버스1 광고를 제대로 만들 생각이나 해."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헤헤헤..."

용대는 실없는 웃음을 내비치며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그날 밤.

르네상스 빌딩 펜트하우스로 들어서자 을씨년스런 한기가 느껴졌다.

두달 이상 폐쇄된 탓인지 캐캐한 먼지가 장내에 가득 내려앉은 상태였다.

그 무렵, 명우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뭐 하러 이곳에서 만나자고 한거야?"

"조용한 곳에서 밀담을 나누려고."

"할 말이 뭔데?"

녀석은 그리 말하며 입가에 담배를 물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맞담배를 즐기며 담소를 이어나갔다.

"라스베가스로 언제 떠날 예정이지?"

"이번주 금요일 오후 3시."

"숫자는?"

"여야 의원을 포함해서 47명."

"이번 여행에 유력 언론인들도 동참시켜."

"언론인들까지 회유할 속셈이냐?"

고개를 끄덕인 뒤 장내에 우두커니 서 있는 주한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김태섭을 호출해."

"예. 회장님."

명우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김태섭을 뭐 하러 부르는거야?"

"할 말이 있으니까. 그러니 너는 이만 가봐라."

"내가 왜?"

녀석이 불만스런 눈빛을 내비쳤다.

"언론인들에게 딜을 넣어야지."

그제서야 명우가 체념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냥 술이나 마시고 싶었는데. 에휴..."

"정신 바짝 차려. 이명복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알았다. 그럼 나중에 보자."

명우는 그리 말하며 장내에서 재빨리 사라졌다.

잠시 뒤, 김태섭이 면전에 나타났다.

녀석에게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이번 주말에 라스베가스에 있는 아리아 호텔 펜트하우스를 방문해."

태섭이 의아한 얼굴로 반문했다.

"저 혼자 가라는 말씀입니까?"

"당연히 아니지. 판검사와 같이 가라고."

그러자 녀석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무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판검사를 몇명이나 섭외했지?"

"대략 30명 가량입니다."

"아가씨들과 화끈하게 놀게 만들라고. 그리고 카지노도 구경시켜주고."

"몰카를 촬영할까요?"

"그건 현지 매니저가 알아서 할거니까, 당신은 신경쓰지마라."

그리 말하며 창가로 걸어갔다.

그러자 태섭이 나를 조심스럽게 뒤따랐다.

창 밖에 펼쳐진 고층 빌딩 숲을 조망하며 나직한 어조를 내뱉었다.

"판검사와 유력 언론인, 국회의원 등을 중심으로 비밀조직을 만들 생각인데, 이름이 뭐가 좋을까?"

순간 태섭이 경악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이명복을 상대하려면 그럴 듯한 단체가 필요하잖아."

녀석이 수긍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직후 뭔가 생각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일심회(一心會)가 어떻겠습니까?"

"무슨 의미지?"

태섭이 즉답했다.

"한마음 한뜻으로 회장님을 모신다는 뜻입니다."

그럴듯한 단체명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좋아. 그럼 당신이 일심회의 기틀을 잡아봐."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는 허리를 깊숙이 숙인 뒤 장내에서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

청와대 집무실에 이효상 국정원장이 나타났다.

그는 이명복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보고를 올렸다.

"이태수의 최측근 인사는 모두 세명입니다."

"한국당의 김명우 의원과 중부지검장 김태섭, 그리고 히말라야전자 강태호 감사실장입니다."

명복의 두눈에 섬뜩한 눈빛이 스쳤다.

"저들 세명을 요주의 감시해."

"말씀대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대통령님."

며칠 후.

라스베가스 아리아호텔에 일단의 한국 남성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호텔 매니저의 안내를 받으며 펜트하우스로 올라갔다.

주차장에서 그같은 광경을 은밀히 주시하던 동양 남자가 어딘가로 급히 전화를 걸었다.

-김명우 의원이 여야 국회의원들과 함께 라스베가스에 소재한 아리아 호텔로 들어갔습니다.

-몇호실로 올라갔나?

-펜트하우스로 올라간거 같습니다.

-물주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호텔에 체류하면서 그들의 동선을 끝까지 파악해.

-넵. 원장님.

***

청와대 관저에 이효상 국정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명복은 이효상이 건넨 고화질 사진들을 매의 시선으로 살핀 뒤 씹어뱉듯이 말을 내뱉었다.

"개같은 놈들이 미국에서 살판이 났구나."

"예상대로 물주는 이태수 회장입니다."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로비를 하는 건가?"

"국회의원 뿐만 아니라 언론인, 판검사 등이 총망라 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흐으음..."

이명복의 입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태수의 영향력이 그의 예상을 한참이나 초월한 탓이었다.

"그자가 국내 유력인사들을 포섭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대통령님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그런 것 같습니다."

명복은 고개를 끄덕인 뒤 이효상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다음날.

명복은 청와대 집무실로 출근하자마자 김용민 국세청장을 불러들였다.

"히말라야 투자그룹 산하의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은밀히 세무조사를 진행해."

"명하신대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대통령님."

***

일요일이라 그런지 온몸이 나른했다.

이런 날에는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커피를 음미하며 주변을 오가는 아름다운 그녀들을 감상하는 게 최고다.

곧바로 민용철 수행비서를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신사동 가로수길로 갈거니까 경호원들을 준비해."

"넵. 회장님."

민용철과 경호원 등을 대동한 채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고즈넉한 카페를 찾았다.

카페 창가에서 마키아토 3잔을 연달아 들이킬 무렵, 아름다운 그녀를 사이에 두고 부잣집 도련님과 평범한 옷차림의 남자가 말다툼을 벌이는 광경이 시야에 포착됐다.

돈많은 청년이 으스대는 얼굴로 람보르기니를 가리키며 뚜벅이 청년을 조롱했다.

"돈도 없는 거지 주제에 감히 누구 여자를 넘보는거야!"

그러자 돈 없는 남자가 분한 얼굴로 외쳤다.

"돈이면 다냐! 개같은 자식아!"

그리 답하며 돈푼깨나 있는 람보르기니를 거칠게 노려봤다.

그러자 람보르기니가 입꼬리를 비릿하게 말아올리며 뚜벅이 청년의 얼굴에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힘차게 박아넣었다.

퍼억!

-커헉!

순간 장내에 여인네의 찢어질듯한 비명이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꺄악...!

동시에 불의의 습격을 받은 뚜벅이가 분노한 얼굴로 레프트 훅을 람보르기니의 턱에 매섭게 꽂아넣었다.

퍽!

-크헉!

또 다시 그녀의 뾰족한 비명이 길게 메아리쳤다.

꺄아악...!

연적간의 흥미진진한 일장박투였다.

그들의 애끓는 사랑싸움은 경찰이 나타나자마자 순식간에 종료됐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쓸만한 시나리오가 뇌리에 쉴새없이 떠올랐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거실 책상에 좌정한 채 한편의 시나리오를 신들린듯 써내려갔다.

-가제: 신사동에서 생긴 일.

-주요 등장인물: 재벌집 후계자, 아름다운 그녀, 잘생긴 서민 청년.

-주요 스토리: 재벌집 아들내미와 잘생긴 서민 청년 사이에서 방황하는 여자 주인공의 갈팡질팡하는 로맨스.

다음날,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김용대 본부장을 호출했다.

용대에게 내가 작성한 드라마 시나리오를 내밀었다.

녀석은 시나리오를 자세히 살핀 뒤 부정적인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동남아 휴양지에서 재벌 남주가 여주와 서민 남주를 총으로 살해한다는 내용이 너무 극단적인거 같습니다."

"요즘 드라마 시청자들은 엄청 자극적인 거만 찾는다고. 이 정도 쇼킹은 필수라니까."

용대의 입가에 쓴웃음이 내걸렸다.

"그 시나리오 대로 20편 분량의 대본을 만들어봐."

"정말 이 시나리오를 드라마로 제작하실 생각입니까?"

"그래서 당신에게 보여주는 거잖아."

녀석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잔말 하지말고 내 말대로 해. 알겠어?"

그러자 용대가 체념한 얼굴로 순순히 복명했다.

"네. 회장님."

***

강남 인근의 고급 일식당에 김용민 국세청장과 중아일보의 이면학 대기자가 차레로 나타났다.

김용민이 은근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vip가 히말라야 투자그룹에 대해서 전방위적인 세무조사를 명령했습니다."

"그 양반은 경제살리는 일이나 전념할 것이지, 왜 쓸데없이 판을 키우는 겁니까?"

"원래 성격이 꽁한 양반이라 그런거 같습니다."

"세무조사를 하는 척만 하세요. 그 양반이 시킨 일이라고 히말라야와 척을 지면 청장님도 좋을 게 없어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헤헤헤..."

그는 간사한 웃음을 내비치며 이면학의 술잔에 정종을 공손히 따라부었다.

< 일심회(一心會) 1 > 끝

ⓒ 방탄리무진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