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고층 빌딩 1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칼컴의 코헨 CEO가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2007년도 경영성적이 일목요연하게 작성된 보고서를 내 손에 건넸다.
칼컴의 2007년 총매출은 78억 달러였고, 영업이익은 47억 달러, 순이익은 32억 달러였다.
50%가 넘는 영업이익률이었다.
칼컴은 엄밀히 말해 통신모뎀과 모바일 AP 설계 전문회사였다.
그들은 무선 통신모뎀과 모바일 AP를 설계한 뒤 파운드리 업체에 생산을 위탁하는 방식으로, 통신모뎀과 모바일 AP를 관련 회사에 판매하고 있었다.
또한 무선통신 특허료도 연간 10억 달러 이상 벌어들이고 있었다.
ARM에 버금가는 무선통신 특허 괴물이었다.
코헨이 007가방에서 서류철을 다시 꺼냈다.
"그게 뭐죠?"
"미국과 EU, 일본의 특허청이 발급한 4G 무선통신 특허 인증섭니다."
코헨은 그리 말하며 내손에 4G 무선통신 특허 인증서류를 내밀었다.
서류를 대충 훑은 뒤 코헨에게 물었다.
"4G 무선통신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아이폰과 유니버스1에 장착된 통신모뎀은 3G를 지원하는 무선 통신모뎀입니다. 초당 120MB의 전송속도가 가능하죠."
"반면 4G는 이론적으로 초당 1.5GB에 육박하는 전송속도 구현이 가능합니다."
"10배 이상의 속도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물론 통신사의 데이터망에 따라서 속도차이가 존재합니다."
칼컴의 무선통신 기술은 전 세계 최고였다.
"칼컴의 모바일 AP가 장착된 유니버스1이 정식으로 출시된다면 칼컴의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 등이 지금 보다 세배 이상 폭등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G 무선통신이 상용화 된다면, 지금 보다 다섯배 이상의 무선통신 특허 사용료를 징수할 수 있을 겁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코헨이 열망한 그득한 얼굴로 재차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칼컴의 뉴욕증시 상장에 대해서 전향적인 자세로 검토해 주십시오. 회장님."
코헨은 오래전부터 칼컴의 기업공개를 촉구하고 있었다.
거액의 스톡옵션을 챙길수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나는 칼컴을 뉴욕 증시에 상장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칼컴의 기업공개를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코헨이 불만스런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칼컴은 폭발적인 성장이 기대되는 초우량 IT 기업입니다. 그런 판국에 기업공개를 서두른다면 제값을 받을 수 없습니다."
"저도 그 말씀에는 동의하지만, 기업공개를 미루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스톡옵션 때문에 기업공개를 서두르시는 겁니까?"
코헨이 솔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회장님."
그는 거액의 스톡옵션을 하루빨리 챙기고 싶어했다.
"연간 1천만 달러에 육박하는 연봉이 작다고 느끼시는 겁니까?"
"연봉 때문에 그런게 아니고, 제가 개인적으로 추진 중인 사업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게 뭐죠?"
"마음 맞는 지인들과 댈러스 카우보이스를 인수할 계획입니다."
댈러스 카우보이스는 미국 최고의 프로 미식 축구단이었다.
"댈러스 구단주가 40억 달러를 요구하더군요."
"그래서 하루빨리 스톡옵션을 받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코헨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저는 미식축구단이나 운영하면서 여유롭게 은퇴생활을 즐기고 싶습니다."
그는 단단히 마음을 먹은 모양새였다.
"그러니 스톡옵션 문제를 하루속히 해결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주시면 회사에서 순순히 물러나겠습니다."
코헨은 그말을 끝으로 사무실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코헨의 스톡옵션 문제에 대해서 심사숙고했다.
내가 약속한 스톡옵션의 가치는 대략 7억 달러 내외였다.
한화로 8400억 가량이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금액이었다.
일반인들에겐 상상을 초월하는 거액이었지만, 나같은 초재벌에겐 용돈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코헨과 계속 같이가고 싶었다.
나름 신뢰할 만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칼컴을 경영하면서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정직하게 회사를 운영한 탓이었다.
허나, 코헨은 현직에서 은퇴하고 싶어했다.
그가 좋아하는 미식축구를 즐기며 인생 말년을 보낼 생각이었다.
평양감사도 제가 싫으면 할수 없는 법이다.
코헨이 원하는대로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재무실장을 면전에 불러들였다.
"시티은행에 예치된 자금 중에서 8400억을 인출해."
"인출한 후에 어디로 보낼까요?"
"코헨 회장의 계좌로 입금해."
"알겠습니다. 회장님."
재무실장을 내보낸 뒤 주한수를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코헨을 사무실로 데리고 와."
"네. 회장님."
1시간 후.
코헨이 내 앞에 나타났다.
"원하시는 대로 7억 달러에 상당하는 은퇴자금을 계좌로 이체해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코헨이 흡족한 얼굴로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후임 문제가 남았는데 추천할 만한 인사가 있습니까?"
"제럴드 기술 이사라면 회사를 공평무사하게 이끌수 있을 겁니다."
고개를 끄덕인 뒤 심중의 속내를 밝혔다.
"상암동에 칼컴의 R&D 센터를 설립할 계획입니다."
그러자 코헨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회사의 개발진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자녀들의 교육도 힘들고, 거처할 장소도 마땅치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복안이 있으신지요?"
"이튼스쿨을 상암동에 유치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직원들의 사택도 상암동에 건설할 예정이고."
그제서야 코헨의 입에서 긍정적인 언사가 흘러나왔다.
"그 정도라면 직원들을 한국으로 얼마든지 초빙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물론 연봉을 기존보다 더 챙겨주셔야 할 겁니다."
"칼컴의 직원수가 얼마죠?"
"영업직과 사무직을 포함할 경우 대략 580명 안팎입니다."
"그 중에서 개발인력은 몇명인가요?"
"400명 가량입니다. 유자녀를 포함할 경우 거의 1천명 수준이죠."
코헨을 내보낸 후 주한수를 불러들였다.
"상암동에 고층 빌딩을 지을수 있는 장소가 있나?"
한수가 즉답했다.
"상암 월드컵파크 3단지 맞은 편에 4천평 가량의 공지가 있습니다."
"그곳에 고층 빌딩을 건설할 수 있는지, 서울시에 문의를 넣어봐."
"네. 회장님."
***
서울시청 시장실에 김세현 도시개발 국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장재훈 서울시장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긴급현안을 보고했다.
"히말라야 투자그룹이 상암 월드컵파크 3단지 주변의 공지에 대해서 문의를 해왔습니다."
"문의 내용이 뭔가?"
"그곳에 초고층 빌딩을 건설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순간 장재훈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그려졌다.
서울시는 상암동에 초고층 빌딩을 추진 중에 있었다.
그런 판국에 자본력이 어마어마한 히말라야 투자그룹이 투자제안을 해온 것이다.
"히말라야 투자그룹 관계자를 서울시로 호출해."
"예. 시장님."
다음날.
서울시청에 주한수가 나타났다.
그는 관계자의 안내를 받으며 시장실로 올라갔다.
주한수는 장재훈 서울시장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본론을 꺼냈다.
"저희 회장님께서는 상암동에 초고층 빌딩을 건설하고 싶어하십니다."
"초고층 빌딩을 건설하려는 이유를 알수 있을까요?"
한수는 솔직히 즉답했다.
"히말라야 투자그룹의 자회사인 칼컴의 R&D센터를 상암동에 설립할 예정입니다."
"아시다시피 칼컴의 개발진들은 대다수 미국인입니다. 그들이 편하게 거처할 장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 이유로 상암동에 초고층 빌딩을 건설하려는 겁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이유가 타당하다고 생각되는군요. 그렇지만 상암동 초고층 빌딩은 서울시의 전략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장재훈 시장의 말을 경청했다.
"초고층 빌딩을 직원들의 사택으로 전용한다면 서울시가 추진하는 정책에 반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뭔지요?"
"고층부는 직원들의 사택으로 활용하고, 중층부와 저층부는 일반인들이 체류할 수 있는 호텔로 사용해 주십시오."
한수의 얼굴에 곤혹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직후 침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과 상의 후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결정이 되시면 즉시 연락을 주십시오."
장재훈은 그리 말하며 한수의 손을 힘차게 마주잡았다.
***
코헨을 대동한 채 용인에 건설 중인 반도체 공장을 시찰하고 있었다.
용인 공장은 최첨단 24나노대 모바일 AP와 D램, 낸드플래쉬, 파운드리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코헨은 파운드리 생산 시설을 두루 살핀 뒤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정도 규모라면 대만의 TSMC에 필적하는 생산량이 가능할 거 같습니다."
TSMC는 반도체 위탁가공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였다.
자체적인 설계능력은 없었지만, 반도체 위탁가공 생산 노하우가 대단한 업체였다.
"공장이 완공되면, TSMC에 주문한 칼컴의 통신모뎀과 모바일 AP를 전량 용인으로 돌릴 생각입니다."
코헨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용인 공장을 칼컴 전용 생산 시설로 활용할 계획입니까?"
"모바일 AP와 통신모뎀 생산을 대만 회사에 맡긴다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들이 칼컴의 기술을 중국에 유출할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리 답하자 코헨이 수긍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로 향하는 차 안에서 옆자리에 동승한 주한수가 보고를 올렸다.
"장재훈 서울시장은 상암동 고층 빌딩을 직원들의 사택으로 전용하는 걸, 불허하는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장 시장이 원하는 게 뭔데?"
"고층부에 한해서만 직원 사택으로 용인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중층부와 저층부는 반드시 호텔로 활용해야 한다고 그러더군요."
"호텔이라...?"
"네. 회장님."
"토지가격은 얼마지?"
"평당 8백만원을 제시했습니다. 주변 시세보다 50% 가까이 저렴한 가격에 제공할 의중을 밝혔습니다."
"서울시가 원하는 대로 토지개발 계획안을 만들어 봐."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
애플 본사 회의실에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애플의 CEO인 스티브 잡스는 전면에 펼쳐진 화이트 스크린을 손짓하며 성난 고성을 내뱉었다.
"히말라야전자는 우리 아이폰의 디자인과 멀티터치 기능을 모조리 카피했습니다. 절대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의 말이 떨어지자 장내에 배석한 임원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화이트 스크린에 이목을 집중했다.
그들은 아이폰과 흡사한 생김새의, 유니버스1의 슈퍼볼 광고 영상을 못박힌 듯 감상한 뒤 저마다 분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히말라야전자는 아이폰의 통알루미늄 방식을 고스란히 카피했어요."
"맞습니다. 그리고 둥그런 모서리도 아이폰과 너무 흡사해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아이폰의 전매특허인 멀티터치 기능도 도둑질 했어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미국 법원에 히말라야전자를 디자인 도용과 멀티터치 카피 혐의로 반드시 제소해야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회의를 종료한 뒤 회장실로 올라가자마자 법무실장을 면전에 호출했다.
"유니버스1이 북미지역에 출시되자마자 법원에 제소절차를 밟아."
그러자 법무실장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법원에 제소하려면 피해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야 합니다. 출시 초기부터 제소하는 건 하책에 불과합니다. 회장님."
"흐음..."
잡스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유니버스1이 출시된지 1년 정도가 경과한 뒤에 법원에 제소하는 게 상책입니다."
"피해규모가 늘어날 때까지 기다리자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회장님."
잡스가 결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년 6월을 기점으로 제소절차에 돌입해."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회장님."
***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재무실장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130층 높이의 초고층 빌딩을 건설할 경우 공사비가 어느 정도 필요하지?"
"건설업체에 문의를 해봐야 할거 같습니다."
"그럼 삼송건설에 문의를 해봐."
"예. 회장님."
재무실장을 내보낸 뒤 김민용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에서 민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사가 다망하신 분께서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전화를 다 하셨을까?
말에 뼈가 있었다.
-말투가 왜 그래? 나한테 화라도 난거야?
-내 말투가 원래 그렇잖아. 그러니 신경쓰지마라.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를 한거야?
-너한테 물어볼게 있어서.
-그게 뭔데?
-상암동에 130층 높이의 초고층 빌딩을 건설할 생각이거든.
그러자 폰에서 민용의 반색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말이 정말이냐?
-그래. 그러니까 오늘 밤에 보자. 물어볼게 많거든.
-진작 그리 말할 것이지. 하하...
-밤 9시에 한남동에 있는 단골 라운지바로 나와라.
-오케이. 그럼 있다 보자.
***
북경 중남해 집무실에 장치산 국가 부주석이 나타났다.
장치산은 섭건평 주석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인 뒤 면전에 공손히 시립했다.
섭건평의 입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한국에 언제 방문하지?"
"내일 아침 비행기로 서울에 입국할 예정입니다."
"한국 대통령과 만난 후에 이태수와 면담을 가져."
섭건평은 두눈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그자에게 내 말을 대신 전해."
"말씀하십시오."
"산동 지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면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할 뿐만 아니라, 법인세도 30년 동안 면세한다는 사실을 전하게."
"그리고 전기세도 3년 동안 면제한다는 방침을 전해."
"알겠습니다. 주석 각하."
***
수원공장에서 유니버스1 생산 현황을 면밀히 파악할 무렵, 주한수가 핸드폰을 든 채 내 앞에 나타났다.
"중국 대사관에서 연락을 해왔습니다."
팔을 뻗자 한수가 폰을 내손에 올려놓았다.
수화기에서 어눌한 영어가 들려왔다.
-한국을 국빈 방문하시는 장치산 부주석께서 회장님과 만남을 가지고 싶어하십니다.
-무슨 용무로 그러시는 겁니까?
-아주 중요한 용무로 알고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시간을 낼 틈이 없군요. 그럼 이만.
폰을 한수에게 돌려준 뒤 공장의 구내식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근로자들과 닭볶음탕으로 점심을 할 무렵, 맞은편에서 식사에 열중하던 한수의 휴대폰이 요란한 울음을 토했다.
한수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오기춘 비서실장의 연락입니다."
폰을 받자 오가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치산 중국 국가 부주석의 면담 요청을 거절하셨습니까?
-네. 만날 필요성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회장님. 장치산 부주석은 국빈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하신 분입니다. 그러니 제발 그와 만남을 가져주십시오.
-내키지 않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회장님.
-일이 바쁜 관계로 이만 전화를 끊겠습니다.
통화를 끊자마자 폰의 배터리를 탈착했다.
귀찮은 전화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 초고층 빌딩 1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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