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격의 히말라야전자 1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가죽 의자에 편한 자세로 앉은 채 주한수 비서실장의 오전 브리핑에 귀를 기울였다.
"국제 비지니스 트랜스퍼 마켓(international business transfer market)의 2008년도 조사결과에 의하면, 사우디의 국영 에너지기업인 아람코의 순이익이 가장 높은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순이익이 얼마길래 그러는거야?"
주한수가 즉답했다.
"한화로 130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나는 내심 히말라야전자의 순이익이 전 세계 기업중에서 가장 높을 것으로 확신했다.
허나, 그건 내 꿈에 불과했다.
히말라야전자를 한참이나 능가하는 불가일세의 에너지 기업이 존재한 탓이었다.
"아람코도 뉴욕증시에 상장한 기업인가?"
"그건 아닙니다. 회장님."
"그들 역시 우리 히말라야전자처럼 비상장 기업입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아람코처럼 막대한 순이익을 기록하는 대기업은 시가총액 2조 달러를 기본으로 깔고 가기 때문이다.
"그들이 뉴욕증시에 상장을 안하는 이유가 뭐지?"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좀 더 자세히 말해봐."
"아람코는 사우디 왕가 소유인 탓에 지분관계가 매우 복잡합니다."
"그래서?"
"현재 왕권을 잡고 있는 모하메드 일족이 정통성이 없는 탓에, 방계 혈족인 압둘라 일가가 왕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그들 두 일족이 아람코의 지분 문제로 다툼을 벌이는 건가?"
"그런 사유로 뉴욕 증시에 상장을 못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우리 히말라야전자의 순이익 순위를 말해봐."
"아쉽게도 애플사에 간발의 차로 밀린 탓에 3위를 기록했습니다."
"애플의 순이익이 얼마지?"
"한화로 59조원 가량입니다."
"우리 히말라야전자보다 대략 1조원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수의 말처럼 간발의 차로 2위 자리를 놓쳤다.
허나, 별다른 아쉬움은 없었다.
어차피 애플은 히말라야전자의 초우량 고객에 불과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모바일 D램과 낸드플래쉬의 대다수가 히말라야전자에서 납품한 탓이었다.
***
히말라야전자 수원공장 회의실에서 신년 시무식을 겸한 회의를 개최했다.
박용범과 임원들을 휘 둘러본 뒤 모두발언을 내뱉었다.
"사우디의 국영 에너지기업인 아람코의 2008년 순이익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그리 말하며 좌중을 둘러보자 임원들이 겁먹은 얼굴로 하나같이 내 시선을 피하는 데 급급했다.
한심한 모습이었다.
박용범에게 넌지시 물었다.
"박 대표는 아십니까?"
그러자 용범이 송구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회장님."
"비지니스를 한다는 분들이 왜 이리 국제 정세에 어두우신 겁니까? 국내 뉴스만 보지 말고 서구권에서 발행하는 경제 신문과 잡지를 탐독 하십시오!"
목소리를 높이자 용범과 임원들이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들의 힘없는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모두발언을 이어갔다.
"아람코는 2008년도에 무려 130조원에 달하는 경이적인 순이익을 달성했습니다. 불가일세의 글로벌 기업이라고 할수 있어요."
그러자 좌중이 하나같이 경악한 얼굴로 입을 떠억 벌렸다.
"내가 이런 말을 신년 초부터 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해요."
"우리 히말라야전자도 사우디의 아람코처럼 순이익 100조 달성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 뜻에서 이런 말을 당신들한테 하는 거에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100조원 이상의 순이익을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지금 이자리에서 논의하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회의실을 박차고 나왔다.
나머지는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면전에 박용범 대표이사가 나타났다.
그가 올린 보고서를 대충 훑은 뒤 넌지시 운을 뗐다.
"애플이 급격한 단가 인상을 수용할까?"
"그들은 우리 히말라야전자의 모바일 D램과 낸드플래쉬가 없으면 아이폰을 생산할 수 없습니다."
"마이크런이 있지 않은가?"
"어차피 마이크런의 경영권도 회장님이 갖고 계시지 않습니까?"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O2 아레나 주변에 장사진을 친 케이팝 팬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때, 용범의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순이익 100조원 목표를 달성하려면 대폭적인 단가 인상 외에는 다른 대안이 전무합니다. 회장님."
그의 말대로 모바일 D램과 낸드플래쉬의 대대적인 단가 인상이 최선이었다.
"당신이 하고싶은 대로 해봐."
"감사합니다. 회장님."
***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시에 위치한 애플 본사 회장실에서 스티브 잡스의 성난 고성이 울려퍼졌다.
"이 개자식들이 자기들 멋대로 폭리를 취하다니! 절대 묵과할수 없다고!"
플로렌스 부사장이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모바일 D램과 낸드플래쉬의 부품 수급선을 마이크런 반도체로 돌리시는 게 최선입니다. 회장님."
"흐으음..."
잡스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잠시 뒤.
"마이크런의 생산량이 어느 정도지?"
"히말라야전자보다 많이 부족하지만, 일정 수준의 물량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미세공정은?"
"45나노 수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순간 잡스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히말라야전자의 30나노대 모바일 D램과 낸드플래쉬보다 성능이 다소 뒤떨어지는 게 사실이지만, 일반 소비자들은 체감 못할 수준입니다."
잡스가 결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마이크런 관계자와 협상을 시작해."
"잘 생각하셨습니다. 회장님."
***
북해도 인근의 휴양지에서 온천과 스키를 만끽할 무렵, 마이크런 반도체의 채드 반스 신임 사장이 내 앞에 나타났다.
우리는 일식으로 배를 채우며 진지한 논의에 돌입했다.
반스 사장이 두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애플사에서 아이폰 2천만대에 해당하는 모바일 D램과 낸드플래쉬 물량을 6개월 안에 납품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내부 논의를 거친 후에 확답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잘 하셨어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정종을 입안에 한모금 들이킨 뒤 반스에게 넌지시 말했다.
"우리가 책정한 가격으로 협상을 진행하세요."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십시오."
고개를 끄덕이며 장내에 우두커니 서 있는 주한수를 손짓했다.
"수첩을 갖고와."
"예. 회장님."
한수가 건넨 수첩에 모바일 D램과 낸드플래쉬의 단가를 적은 뒤 반스에게 내밀었다.
반스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기존보다 200% 인상된 가격을 제시하라는 말씀입니까?"
"내가 책정한 가격을 애플에 통보하세요."
"애플이 격렬하게 반발할 겁니다."
"신경쓰지 마세요. 어차피 놈들은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까."
그리 말하며 반스의 빈잔에 정종을 한가득 따라주었다.
"마십시다."
"고맙습니다. 회장님."
반스는 그리 화답하며 내가 따라준 정종을 공손히 원샷했다.
***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시에 위치한 애플 본사 회장실.
잡스는 침통한 얼굴로 창 밖에 드리워진 둥근 만월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때, 플로렌스 부사장의 목소리가 그의 귓전에 울려퍼졌다.
"마이크런의 태도가 수상합니다. 사전에 히말라야전자와 뭔가 밀약이 있었던거 같습니다."
"정말 그놈들이 히말라야전자와 똑같은 단가를 제시한 건가?"
"그렇습니다. 회장님."
잡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모바일 기기에 필수적인 모바일 D램과 낸드플래쉬는 히말라야전자와 마이크런의 전유물이었다.
그중에서도 히말라야전자는 90%에 육박하는 시장쉐어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애플의 위치를 위협하는 히말라야전자를 오래전부터 경계해왔다.
메모리 반도체와 낸드플래쉬를 거의 독점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유니버스1이란 스마트폰마저 출시한 상태였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망설여지지만 다른 수가 없습니다. 히말라야전자와 가격협상을 통해 단가를 낮추시는 게 상책입니다."
"그리고 마이크런에는 30% 가량의 물량을 배정한다면 나름 히말라야전자를 견제하는 효과를 볼수 있을 겁니다. 회장님."
잡스가 결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히말라야전자에 단가 협상단을 파견해."
***
마이크런의 반스 사장과 북해도에서 유황온천을 즐기는 한편 그에게 내 의중을 전달했다.
"마이크런의 천안 공장을 하루에 8시간 정도만 운영하세요."
"생산량을 감축하라는 말씀인가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데스크탑과 모바일 D램, 낸드플래쉬의 생산량을 전 세계 시장 쉐어의 5% 수준으로 유지하세요."
"그리고 애플이 부품 수급을 요청한다면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세요."
반스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생산량을 감축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죠."
"그런데 왜, 애플의 부품 수급 요청을 거절하지 말라고 하시는 겁니까?"
"그들이 요청한 부품을 우리 히말라야전자에 돌리세요."
"히말라야전자에 OEM을 주문하라는 말씀인가요?"
"D램과 낸드플래쉬 표면에 마이크런의 네이밍 라벨을 기존대로 패키징 한다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겁니다."
반스가 납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러니 내 말대로 하세요."
"네. 회장님."
***
김태섭은 분주한 신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일심회 조직을 체계화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총동원했다.
태섭은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에 나름 만족한 눈빛을 내비쳤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로 향했다.
회장실에 들어서자 김태섭이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녀석의 손에는 얄팍한 서류철이 들려있었다.
태섭이 올린 보고서에 시선을 집중했다.
<일심회 조직도>
-정치분과
-경제분과
-국제분과
-문화예술분과
-사회분과
-법조분과
서류를 살핀 뒤 태섭에게 물었다.
"일심회의 규모를 키우자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회장님."
"대규모로 키우려는 이유가 뭐지?"
태섭이 은근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이 대한민국을 접수하는 그날을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녀석은 내 속내를 어느 정도 파악한 모양새였다.
"내가 원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나?"
태섭이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청와대 주인입니다."
"실망이군. 나를 고작 그런 수준으로 보다니."
그러자 녀석이 재차 말을 이었다.
"회장님은 대한민국의 종신 대통령이 되실 만한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계십니다."
태섭은 내 마음을 나름 잘 헤아렸다.
"종신 대통령은 현실적으로 가망이 없어."
녀석이 고개를 완강히 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회장님에겐 불가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말이라도 고맙군. 이만 나가봐."
그리 말하며 창가로 걸어갔다.
창 밖을 살피자 O2 아레나 주변에 벌떼처럼 몰려든 케이판 팬들이 보였다.
그들을 물끄러미 주시할 무렵, 태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200명에 달하는 국회의원을 회유하신다면 종신 대통령이 얼마든지 가능하십니다. 회장님."
"말은 쉽지만 국회의원들을 200명이나 회유할 방법이 없지 않나?"
"그들을 당근과 채찍으로 포섭하면 됩니다."
"세상사는 말처럼 그리 쉬운 게 아니야."
"저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회장님은 언제나 예외십니다."
"오늘따라 말이 많군. 이만 가봐."
그제서야 태섭이 장내에서 조심스럽게 물러갔다.
***
주한수를 비롯한 비서실 직원들은 신년부터 업무량이 대폭 늘어났다.
월가와 국내의 증권사 대표들이 신년 초부터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에 구름처럼 모여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히말라야전자의 상장 주관사가 되기 위해 불나방처럼 날아들었지만, 그건 허황된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 중의 단 한명도 이태수 회장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태수는 이미 메릴린치 증권사와 비밀리에 상장협약을 체결한 상황이었다.
그는 국내외 증권사의 러브콜을 매몰차게 거부했다.
만날 필요성이 전무한 탓이었다.
그런 덕분에 비서실 직원들만 죽어나갔다.
그들은 회사를 방문한 국내외 금융계 거물들을 접대하느라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결국 보다못한 주한수가 총대를 맸다.
그는 태수에게 비서실의 말 못할 고충을 토로하기로 굳게 다짐했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주한수가 앓는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국내외에서 몰려온 금융계 고위 인사들을 접대하느라 회사 업무를 돌볼 겨를이 없을 정돕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금융계 인사들에게 회사를 방문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십시오."
"메릴린치 증권사와 비밀리에 체결한 상장협약을 공개하라는 말인가?"
"네. 회장님."
"정말 회사업무를 못볼 지경이야?"
"사실입니다. 회장님."
"할수 없군. 알았으니까 이만 나가봐."
그날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옆자리에 동승한 한수에게 내 의중을 밝혔다.
"국내 언론과 월가쪽 언론사에 히말라야전자가 뉴욕증시에 상장될 예정이라는 사실을 공개해."
"그리고 메릴린치 증권사와 비밀리에 상장 협약식을 체결했다는 것도 알리고."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
청와대 집무실.
이명복과 정상호 경제수석이 심각한 얼굴로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뉴스가 사실인가?"
"주한수 비서실장에게 문의한 결과 히말라야전자의 뉴욕증시 상장이 거의 확정된 모양입니다."
순간 이명복의 입에서 격한 어조가 쏟아져나왔다.
"빌어먹을! 내 인생에 하등의 도움이 안되는 개같은 자식이구나!"
"히말라야전자가 국내 증시가 아니라, 뉴욕 증시에 상장된다면 대통령님의 지지도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합니다."
허나, 이명복에겐 이태수를 제어할 힘이 없었다.
그의 뒤에는 미국 대통령과 월가의 거물들이 잔뜩 도사린 탓이었다.
***
타워필리스 펜트하우스.
소파에 온몸을 깊숙이 파묻은 채 9시 뉴스에 이목을 고정했다.
뉴스 앵커의 낭랑한 목소리가 귓전에 파고들었다.
-히말라야전자가 뉴욕증시에 상장될 경우 심각한 국부유출의 우려가 있는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중략...
뉴스는 온통 비판적인 내용으로 가득찼다.
-그럼 시민들의 반응을 살펴보겠습니다.
뉴스 화면이 길거리 인터뷰로 전환됐다.
평범한 시민이 자신의 주장을 기자에게 밝혔다.
-한국 증시가 아닌 미국 증시에 히말라야전자가 상장된다고 해도 어차피 공장은 한국에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별로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소시민의 올바른 판단이었다.
내심 그에게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당황한 기자가 다른 시민에게 마이크를 들이댔다.
허나, 그 역시 긍정적인 언사로 일관했다.
-중요한건 증시가 아니라 공장이죠. 히말라야전자는 다른 대기업들과 달리 한국에서만 공장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자는 의도한 인터뷰를 도출하지 못했는지 다른 시민에게 급하게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그렇지만, 그 역시 매우 긍정적인 태도로 인터뷰에 응했다.
-저는 히말라야전자의 뉴욕증시 상장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한국 증시보다는 뉴욕 증시가 제값을 받을수 있기 때문이죠.
뉴스 앵커의 부정적인 멘트와는 전혀 딴판인 반응이었다.
역시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나름 수준이 높았다.
***
새벽녁, 타워필리스 펜트하우스.
이리저리 뒤척이다 두눈이 저절로 번쩍 뜨여졌다.
그때, 누군가 나를 향해 말을 건넸다.
"나를 보라. 그대여."
눈을 부비며 눈을 부릎뜨자 희미한 영체의 모습이 시야에 포착됐다.
그는 내 수호령인 도플갱어였다.
"오랜만입니다."
그리 말하자 도플갱어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대에게 한반도의 미래를 보여주겠노라."
그말과 동시에 장내의 풍경이 일변했다.
주변을 살피자 분주하 서울의 길거리가 보였다.
그때, 한줄기 섬광이 허공에서 폭발했다.
우르르르릉...!
콰콰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
천번지복의 굉음과 동시에 장엄한 버섯구름이 사위를 온통 뒤덮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감조차 잡지 못할 무렵, 시야가 밝아졌다.
그 즈음, 도플갱어의 목소리가 귓전을 강타했다.
"무엇이 보이는가?"
눈에 보이는 대로 솔직히 답했다.
"핵낙진에 휩싸인 서울이 보입니다. 그리고 한줌의 재로 전락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보이는군요."
"생존자가 보이는가?"
"단 한명도 없습니다. 모두 죽었습니다."
"대체 누가 핵무기를 발사한 겁니까?"
"북한."
도플갱어의 짤막한 답변이었다.
그 말과 동시에 장내의 풍경이 급변했다.
정신을 차리자 평온한 일상을 구가하는 평양의 시가지가 보였다.
"평양의 모습이 어떤가?"
"평상시와 다름이 없어 보입니다."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나?"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상하군요. 한미상호 방위조약에 의하면, 한국이 공격을 받을시 미군이 반격을 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북한은 멀쩡한거죠?"
도플갱어의 입가에 씁쓸한 고소가 내걸렸다.
"미국은 북한의 뒤에 도사린 중국과 러시아의 핵시위에 굴복했다. 그 결과 한국이 북한의 핵무기에 의해 패망하는 것을 수수방관했지."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격렬한 분노가 전신을 송두리째 장악했다.
"오늘은 2024년 7월 6일이다. 북한을 흡수통일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반드시 패망할 것이다!"
어금니를 피가 날 정도로 앙 다물었다.
"그대에겐 대한민국의 패망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대가 지닌 부와 인맥을 이용해 핵무기를 반드시 수중에 확보하라!"
"또한 그대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하루빨리 대한민국의 국정을 장악하라!"
도플갱어는 그 말을 끝으로 눈 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
도플갱어는 다음날 밤에도 내 앞에 나타났다.
도플갱어의 입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길게 울려퍼졌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사리사욕에 매몰된 채 서민들의 피폐한 삶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그들은 말로는 서민을 위하는 정치를 펼치겠다고 입에 발린 사탕발림을 나열하지만, 그들이 펼치는 모든 정치활동은 가진자를 위한 정치로 귀결된다."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시도지사 등을 막론하고 그들은 한결같이 똑같은 행태를 자행하고 있다."
"그들이 진정으로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치를 펼치겠다면, 지금 당장 외국인 노동자 전원을 국외로 추방해야 할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서민과 중산층의 일자리를 뺏는 주범으로서 그들을 국외로 추방하지 않는한 한국인들의 삶은 절대 개선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인 정치인들은 사악한 기업인들과 결탁한 채 외국인 노동자 제도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그 덕분에 한국의 서민과 중산층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태반이 실업자 신세인 것이 현실이다."
"물론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는 분야는 3D 업종으로서 한국인들이 경원시하는 일자리라고!"
"허나, 그건 면피용 발언에 불과하다. 3D업종이라 해도 월급을 적정수준으로 지급해 준다면 한국의 서민들과 중산층들도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플갱어의 귀한 말씀은 계속 이어졌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비핵화라는 말도 안되는 아젠다에 매몰된 채 북한과 중국에 질질 끌려다니는 무기력한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로 한국을 위협하는 것이 사실임에도 허황된 신기루 같은 비핵화 협상에 올인하고 있다."
"보수정권이 그랬고, 진보정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한국이 핵무장을 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선동하며, 한국의 핵무장을 금기시해왔다."
"미국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그럴 필요가 없다.
"한국이 핵무장을 하더라도 미국은 절대 한국을 대상으로 경제제재를 가하지 못할 것이다."
나 역시 그와 생각이 같았다.
"저 또한 그리 판단하고 있습니다."
"핵은 핵으로써만 억제할 수 있다. 미국과 구소련, 인도와 파키스탄이 산교훈이다."
"당연히 우리 한국도 핵무장을 해야만 북한의 핵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갑자기 도플갱어의 두눈에서 강렬한 안광이 치솟았다.
"허나, 미치광이 광신도 집단이 정권을 장악한 북한은 언제 어디서 핵무기를 발사할지 알수 없다."
"북한의 핵위협에서 영원히 벗어나는 방안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북한을 흡수통일 하는 것입니다."
"북한을 어떤 방법으로 흡수통일할 생각인가?"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이렇다할 해법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에게 솔직히 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 답하자 도플갱어의 입에서 뜻 밖의 언사가 쏟아졌다.
"북한을 흡수통일할 수 없다면."
도플갱어의 두눈에서 횃불같은 신광이 솟구쳤다.
"평양과 핵무기, 화학무기 저장고를 목표로 수소폭탄을 투하 하면 될 것이다."
도플갱어는 끔찍한 언사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있었다.
"수소폭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핵무기인 관계로 방사능 피폭의 후유증을 최소화 할수 있다. 당연히 핵낙진도 거의 존재치 않을 것이다."
"북한이라는 심복대환을 가질수 없다면, 존재 자체를 삭제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온몸이 저절로 덜덜 떨려왔다.
도플갱어는 수백, 수천만명을 내 손으로 직접 처단하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그대는 히틀러, 스탈린을 능가하는 희대의 학살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해야 한민족의 영원무궁한 번영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머리가 터질 듯이 아프고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 진격의 히말라야전자 1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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