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사천리 >
라스베가스 아리아호텔로 향하는 차 안에서 명우에게 내 본심을 밝혔다.
"금년 여름에 신당을 창당할 생각이다."
그러자 녀석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럴듯한 정당을 하루빨리 창당하는게 좋을거 같아."
"정말 마음을 단단히 먹었구나."
명우가 감탄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러기를 문득 정색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여당이랑 야당이 가만히 있지 않을거다. 너를 미친듯이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고."
"그리고 청와대도 마찬가지고."
"구데기 무서워서 장을 못담군다면 사내대장부가 아니지."
"그건 그렇고, 당명은 생각해 둔거야?"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명우가 재차 물었다.
"당명이 뭔데?"
"신화창조당(新化創造黨)이 마음에 드는데, 어때?"
"당명이 조금 그런거 같은데."
"그냥 다른 당처럼 '민주, 공화'라는 단어를 당명에 삽입하는 게 어때?"
"나는 신화창조당이 마음에 든다니까. 말그대로 신화를 창조하는 당, 좋잖아."
"그래. 너 잘났다. 니 멋대로 해라. 에휴..."
명우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아리아호텔 펜트하우스에 들어서자 80명에 달하는 여야 국회의원들이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그들과 차례로 악수를 교환한 뒤 동서양의 산해진미가 차려진 연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장내에 운집한 국회의원들에게 내 의중을 밝혔다.
"저는 2012년에 신화창조당 후보로 대선에 뛰어들 생각입니다."
순간 그들이 하나같이 경악한 얼굴로 나를 멀뚱히 쳐다봤다.
"그런 이유로 여러분들을 이곳 라스베가스로 초대한 것입니다."
"저는 이곳에 계시는 여러 국회의원님들과 함께 부강한 대한민국을 건설하고 싶습니다."
그리 말하자 좌장격인 한국당의 박한상 의원이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정말 2012 대선에 출마하실 계획입니까?"
"그렇습니다. 박의원님."
"회장님의 말씀은 잘 알겠지만, 정치라는 게 만만한게 아닙니다. 리스크가 보통이 아니라고요."
그러자 좌중이 웅성거리며 동요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들에게 확신을 심어줘야 할거 같았다.
역시 돈이 최고였다.
뒷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주한수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품에서 USB 메모리 20여개를 꺼낸 뒤 국회의원들에게 다가갔다.
한수는 그들에게 USB 메모리를 차례로 배분한 뒤 내 옆에 공손히 시립했다.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국회의원들에게 나직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여러분들이 건네받은 USB 메모리 안에는 은행의 계좌번호와 클라이언트 코드가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계좌 안에는 각각 2천만불에 달하는 돈이 예치되어 있습니다."
순간 그들의 얼굴에 끈적한 탐욕이 파도처럼 물결쳤다.
"저를 믿고 따라와 주신다면, 한화로 240억에 상당하는 그 돈을 모두 드리겠습니다."
그때, 야당의 중진의원인 심경수가 입을 열었다.
"회장님이 창당하시는 신화창조당에 입당하는 조건입니까?"
"그렇습니다. 의원님."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의원들의 시선이 내 입에 모아졌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시면서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그럼 이만."
펜트하우스를 벗어나자마자 라스베가스 국제공항으로 직행했다.
뉴욕에서 메릴린치 증권의 오닐 회장과 만남이 예정 된 탓이었다.
***
일본 동경 수상 관저.
야베 총리대신의 면전에 하세가와 외무상이 나타났다.
"한국의 이명복 대통령이 다음주 월요일에 일본에 방일하기로 확정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한국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자고."
"일한 정상회담에 후쿠시마 근해에서 잡은 생선과 인근의 농토에서 생산한 과일, 채소를 저녁 만찬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야베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내걸렸다.
일주일 후.
일본 수상 관저에 이명복 대통령 일행이 나타났다.
이명복은 야베 총리와 친근한 포옹을 나눈 뒤 유창한 일본어로 안부를 물었다.
그들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뒤 만찬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 이명복은 후쿠시마산 생선과 쌀, 과일, 채소 등을 원없이 만끽했다.
***
뉴욕 월가에서 메릴린치 증권사의 오닐 회장과 만남을 가졌다.
우리는 오찬을 함께하며 서로의 의중을 허심탄회하게 교환했다.
먼저 내가 선제공격을 날렸다.
"시가총액 2조 달러가 마지노선입니다. 그 이하로는 히말라야전자를 공개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건 너무 과도한 요구십니다. 회장님."
"다음달에 유니버스2와 유니버스 노트1이 북미지역과 유럽, 한국, 일본, 동남아 등지에 동시다발적으로 출시될 예정입니다."
"당연히 예상 판매대수도 최소 4천만대 이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으음..."
오닐의 입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우리 히말라야전자는 모바일 D램과 낸드플래쉬 시장에서도 시장지배자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히말라야 투자그룹 산하에는 칼컴과 ARM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 히말라야전자는 전 세계 최고 최대의 반도체 회사임과 동시에 스마트폰 제조 생산 업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닐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마존과 애플, MS, 구글의 시가총액을 2배 이상 능가하는 가격으로는, 기업 공개자체가 불가능 하십니다. 회장님."
"그건 섣부른 판단이에요."
"솔직한 말로 시가총액 2조 달러에 기업공개가 가능한 회사는 사우디의 국영 석유기업인 아람코 정도 밖에 없습니다."
"그들처럼 1천억 달러가 넘는 순이익을 기록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최소 5년 이상 1천억 달러가 넘는 순이익을 꾸준히 기록하셔야 합니다."
"그럼 우리 히말라야전자의 적정 시총을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내 물음에 오닐이 즉답했다.
"1조 2천억 내외가 적정 시가총액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유니버스2, 유니버스 노트1의 성적이 아무리 좋더라도 제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오닐은 그리 말하며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름 최후의 담판을 제시한 모양새였다.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그리 말하자 오닐이 짤막하게 대꾸했다.
"한달 안에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좋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라스베가스 아리아호텔로 들어서자 명우가 나를 반겼다.
우리는 호텔 지하에 있는 라운지 바에서 칵테일을 음미하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녀석에게 은근히 물었다.
"의원들의 분위기가 어때?"
"말도 마라. 3박4일 동안 자기들끼리 난상토론을 벌이더라."
"무슨 말을 했는데?"
"국회의원직과 니 돈을 놓고 심각한 태도로 저울질을 하더라."
"신당에 입당하면 국회의원직을 날릴거라고 생각하는거야?"
"당연하지. 니가 대선에서 패배하면 저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거라고."
명우는 칵테일을 한모금 들이킨 뒤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걱정하지마라. 오늘 새벽에 너와 함께하기로 결론이 났으니까."
"좋아. 그럼 저들에게 서약서를 받아둬."
"그 다음에는?"
"나머지 의원들을 차례로 불러야지."
"그들에게도 미화로 2천만 달러를 줄 생각이야?"
고개를 끄덕이며 장내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수를 손짓했다.
"김의원에게 가방을 줘."
그리 명하자 한수가 007가방을 명우에게 건넸다.
녀석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이게 뭔데?"
"그 안에 USB 메모리가 60개 정도 들어있거든. 그걸 이용해서 의원들을 회유해. 형은 다른 곳에서 볼일이 있으니까, 니가 나 대신 일을 처리해."
"알았다.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여기 일은 신경쓰지마라."
"그럼 너만 믿는다."
"당연히 나만 믿어야지. 하하..."
명우는 환한 웃음을 내비친 뒤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신당이 창당되면 나한테 당대표 자리를 줄거지?"
"당대표가 그리 하고 싶어?"
"당연하지. 회사의 오너급인데."
"그래. 니가 하고싶은 대로 다해라."
그리 말하며 달달한 칵테일을 목젖 깊숙이 넘겼다.
***
LA에 도착하자마자 다운타운에 위치한 유니버셜 힐튼호텔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16층에 위치한 스위트룸에 들어서자 이해소 박사가 나를 맞이했다.
그에게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기술자와 장비를 알아보셨습니까?"
이 박사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기술자를 섭외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라늄 채굴 장비도 미국 정부의 감시품목이라 구입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럼 우라늄 채굴을 포기하라는 말씀입니까?"
"솔직히 그렇습니다. 회장님."
이 박사는 그리 답한 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그의 입에서 쓸만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차라리 연구목적용 우라늄을 소량 구입한 뒤, 소규모로 핵융합 연구를 진행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어차피 핵무기 개발 연구는 거대한 사이즈가 필요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예전에는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해서, 방사능 누출과 폭발시험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거대한 시설물이 필요했지만, 요즘 시대에는 그런 것이 불필요합니다."
"언뜻 이해가 안가는군요. 북한의 경우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해서 거대한 규모의 시설물을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건 북한의 핵기술력이 일천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이 박사의 명쾌한 답변이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미국과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은 300평 규모의 연구실에서 수소폭탄과 중성자탄의 개발을 순조롭게 끝마쳤습니다."
"그들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가상의 수소폭탄과 중성자탄을 만든 뒤, 실제 파괴력의 1백만분의 1규모로 핵무기를 제조한 후, 실험실에서 개발의 성공유무를 확인했습니다."
그제서야 이 박사의 말이 모두 이해됐다.
"실제 폭발력의 백만분의 1 사이즈로 핵무기를 개발한 후 성공유무를 확인하면 된다는 말씀인가요?"
"맞습니다. 회장님."
"그래도 한가지 의문이 남는군요. 우라늄을 어떻게 구하실 생각입니까?"
이번에도 이 박사는 막힘없이 대답했다.
"미국 정부는 공신력있는 대학교와 학계에서 핵융합 연구를 목적으로 구입하는 우라늄에 한해, 반입허가를 내주고 있습니다."
"물론 극소량에 한합니다."
이 박사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미국 정부와 원자력 사찰기구인 IAEA의 주기적인 사찰을 받아야 합니다."
"연구실에 그들이 찾아오는 겁니까?"
이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들의 눈을 피해서 어떤식으로 핵무기 개발을 진행하실 생각입니까?"
"그 전에 한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회장님."
이 박사는 그리 말하며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직시했다.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나요?"
"그렇습니다."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성실히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박사는 그리 말한 뒤 창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창 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어느 정도 예상하던 질문이라 곧바로 즉답했다.
"저는 한국을 억압하는 북한과 중국, 일본을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위권 차원의 핵개발을 가로막는 미국의 내정간섭을 절대 허용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회장님은 민간인 신분입니다."
"지금은 민간인에 불과하지만 수년 내에 한국의 국정을 책임지는 자리에 임하게 될 겁니다."
이 박사는 내 말의 진의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의 입에서 진솔한 어조가 흘러나았다.
"저 역시 오래전부터 한국의 핵무장을 염원해 왔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미국에 굴종하고 북한과 중국, 일본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핵개발에 미온적인 반응으로 일관했습니다."
"한국의 국권을 회복하려는 마음 자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박사가 감격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회장님이 원하시는 대로 핵무기 개발에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박사님."
그날, 우리는 한민족의 백년대계를 위해 핵무기 개발에 뜻을 같이하기로 굳게 다짐했다.
***
나는 여전히 미국에 체류하고 있었다.
미국에 온김에 이방카 트램프와 안젤리나를 차례로 만난 탓이다.
그녀들과 오붓한 시간을 만끽한 뒤 뉴욕의 브로드웨이로 밤마실을 나갔다.
주한수와 경호원 등을 대동한 채 오페라의 유령이 공연되는 극장에 들어설 찰나, 이효상 국정원장이 내 앞에 나타났다.
이효상이 긴장한 얼굴로 보고를 올렸다.
"회장님에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하시죠."
그러자 이효상이 완강히 고개를 저으며 귓속말을 해왔다.
"VIP와 관련된 극비 사항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눕시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극장 앞에 대기한 방탄 리무진으로 걸어가자 주한수가 뒷문을 열어주었다.
이효상과 함께 뒷자리에 몸을 싣자 조수석에 앉아있던 한수가 경호원에게 명령을 내렸다.
"주변을 한바퀴 돌아."
"네. 실장님."
그제서야 이효상의 입이 열렸다.
"이명복 대통령께서 방사능에 피폭되셨습니다."
뜬금없는 희소식이었다.
"그 말이 정말입니까?"
"사실입니다."
"지금 이 대통령이 어디에 있죠?"
"서울대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어떤 경로로 방사능에 피폭을 당하신 겁니까?"
"일본 수상이 접대한 후쿠시마산 생선과 과일, 채소, 쌀 등이 원인으로 밝혀졌습니다."
< 일사천리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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