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160화 (85/200)

< 국가 기본 소득제 >

김태섭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 기관에 회장님을 포함한 차기 대선 여론조사를 의뢰한 결과, 박선미와 야당 대표에 큰 격차로 뒤지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핵무장과 지방자치제 폐지, 외국인 노동자 추방 등의 과격한 공약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래야 대선에서 승부를 걸 수 있습니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그러자 태섭이 허탈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국민들은 최고 재벌인 회장님께서 정치권력마저 손에 쥐는 걸 경계하고 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가 그 증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핵무장과 지방자치제 폐지, 외국인 노동자 추방 등의 극우적인 공약을 대선 슬로건으로 내건다면, 대선은 해보나마나 필패라고 생각합니다."

"알았으니까 이만 나가봐."

"회장님. 제발 다시 한번 재고해 주십시오!"

녀석이 내 앞에서 감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목소리 낮춰. 내가 만만해 보여!"

그제서야 태섭이 자신의 실태를 깨달았는지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당신은 법조인들을 일심회에 끌어들이는 일에 전력해.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한다."

그리 말하며 녀석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

서울 모처.

국정원 2차장인 강동혁과 김청오 의원이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VIP의 생명이 위독합니다."

김청오가 경악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 말이 정말입니까?"

"의료진의 말로는 3달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하더군요."

"건강하던 양반이 갑자기 왜, 그런거죠?"

"도쿄에서 개최된 한일 정상회담 당시 일본놈들이 만찬장에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을 잔뜩 올려놓았습니다."

"설마...? 그 양반이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을 드신 겁니까?"

강동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전신에 방사능이 퍼진 탓에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이라고 하더군요."

"의식도 없는 겁니까?"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연명치료만 하는 중입니다."

김청오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일본의 야베 수상은 멀쩡한데, 왜 이 대통령만 그런거죠?"

강동혁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수행원들의 말을 청취한 결과, 한일 정상회담 당시 일본측 인사들은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에 손도 대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럼 이 대통령만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을 거리낌 없이 섭취하신 겁니까?"

"그런거 같습니다."

그날밤.

강남 인근의 고급 주택에 김청오가 나타났다.

그는 저택의 접견실에서 박선미 대표에게 자초지종을 소상히 설명했다.

김청오의 말을 경청한 박선미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그려졌다.

"이명복의 숨통이 끊어지자마자 대선 레이스가 시작될 겁니다."

박선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야당의 대표보다 이태수가 더 마음에 걸려요."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이태수가 대선에 뛰어든다면 보수 지지층의 표가 분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선은 그자의 대선출마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겁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일단 그자를 제가 만나보겠습니다."

"만나서 어쩌시려구요?"

"엄중히 경고할 생각입니다."

"그 인간이 말을 들을까요?"

"사전에 엄히 경고를 해놔야 뒷탈이 없습니다."

"좋아요. 그 문제는 김 의원님이 알아서 처리해 주세요."

"그리고 조중동 사주들도 만나봐요. 그들을 반드시 우리편으로 끌어들여야 해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

조선호텔 스위트룸에서 메릴린치의 오닐 회장과 최후의 담판을 시작했다.

"1조 3천억 달러 수준으로 기업 공개를 해주십시오."

"제가 거절하면 어찌 되는 겁니까?"

"JP 모건에게 기업공개를 일임할 생각입니다."

순간 오닐의 이맛살이 잔뜩 찌푸려졌다.

JP 모건은 메릴린치 증권의 라이벌이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회장님."

"24시간을 드리죠. 그 안에 가부를 결정해 주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스위트룸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주한수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효상 국정원장에게 내 집에 오라고 전해."

"예. 회장님."

그날 밤, 타워필리스 펜트하우스.

내 집에 나타난 이효상에게 넌지시 운을 띄웠다.

"솜씨좋은 특수 공작원이 있을까요?"

그러자 그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국정원에는 쓸 만한 특작요원이 씨가 말랐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정보기관인 국정원에, 특수작전 요원이 정말 그렇게 없는 겁니까?"

"송구하지만 사실입니다. 회장님."

"이유가 뭐죠?"

"역대 대통령들이 국정원을 사익을 위해 활용한 탓입니다."

한심해서 말이 안나올 지경이었다.

소문대로 국정원은 빈 깡통에 지나지 않았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하수용 이사를 면전에 불러들였다.

"조선호텔에 체류 중인 메릴린치 증권사의 오닐 회장과 세부사항을 논의해."

"가이드라인을 말씀해 주십시오."

"뉴욕 증시에 풀리는 주식을 70% 정도로 산정하고, 내가 보유한 주식에 대해서 200%에 달하는 차등의결권 조항을 요구해."

"알겠습니다. 회장님."

하수용을 내보낸 뒤 결재서류에 분주하게 회장 직인을 날인할 무렵, 주한수가 내 앞에 나타났다.

"한국당의 김청오 의원이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김청오가 누구지?"

"박선미 대표의 지지세력인 친박계의 좌장이라고 하더군요."

"그자가 왜 나를 찾아온거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 인간을 사무실로 데리고 와. 어떤 개소리를 하는지 들어나 보자."

"네. 회장님."

잠시 뒤, 노회한 생김새의 중늙은이가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놈은 나를 향해 목례를 취한 후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직후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회장님에게 한가지 여쭤보고 싶은 사안이 있어서 실례를 무릎쓰고 찾아뵈었습니다."

"하실 말씀이 뭐죠?"

"요즘 시중에 회장님이 차기 대선에 출마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더군요."

"그래서요?"

김청오가 두눈을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정말 시중의 소문대로 대선에 출마하실 생각입니까?"

"내가 당신에게 답변할 의무가 있는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경제권력을 한손에 쥐고 계신 회장님이, 정치권력마저 탐을 내실까 우려되는 게 사실인지라..."

녀석이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결국 놈에게 솔직히 답했다.

"시중의 소문대로 저는 차기 대선에 반드시 출마할 생각입니다. 이제 됐습니까?"

순간 김청오의 눈썹이 꿈틀하며 성난 고성이 쏟아져 나왔다.

"만약 차기 대선에 회장님이 출마하신다면, 지금껏 힘들게 쌓아올린 찬란한 금자탑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두눈으로 직접 보시게 될 겁니다!"

"후후... 지금 나를 협박하시는 겁니까?"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그럼 이만."

김청오는 그 말을 끝으로 내 사무실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박선미가 싸움을 걸어오고 있었다.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었다.

***

여의도 모처.

김청오는 면전에 마주앉은 조중동 사주들에게 고급 정보를 발설했다.

"이명복 대통령이 사경을 헤메고 있습니다."

그러자 조중동 사주들이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그런 정보를 들었습니다."

"어차피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정보를 뭐하러 말씀하시는 겁니까?"

조중동 사주들의 심드렁한 반응에 김청오의 입가에 쓴웃음이 내걸렸다.

"벌써 다 알고 계셨군요. 후후..."

김청오는 씁쓸한 웃음소리를 흘려보낸 뒤 정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조만간에 펼쳐질 차기 대선에서 우리 박선미 대표님을 적극 도와주십시오."

"저희도 그러고 싶지만, 이태수 회장님이 계신지라..."

조중동 사주가 그리 답하자 김청오가 두눈을 번뜩이며 재차 말을 이었다.

"우리 대표님을 도와주신다면 여러분들이 원하시는 대로 종편 허가를 내드리겠습니다."

"그거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 될 일이고, 좀 더 화끈한 댓가를 말씀해 주십시오."

김청오는 조중동 사주들의 거대한 탐욕에 할 말을 잃을 지경이었다.

허나, 그는 조중동의 도움이 절실했다.

"원하시는 바를 소상히 말씀해 보시죠."

그러자 조중동 사주들이 차례로 입을 열었다.

"종편 방송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연간 3천억대의 추가 광고비가 필수적입니다."

"맞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면 박대표님을 성심을 다해 지원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니 종편 방송국에 대대적인 광고물량을 집행해 주십시오."

김청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의 의중을 대표님에게 전달하겠습니다."

그날밤, 강남 인근의 고급 주택.

박선미와 김청오는 머리를 맞댄 채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조중동 3사가 연간 3천억대의 추가 광고물량을 요청했습니다."

"총 9천억에 달하는 광고물량을 달라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도둑놈이 따로 없군요."

"그렇지만 조중동을 반드시 우군으로 끌어들이셔야 합니다."

"으음..."

그녀의 입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잠시 뒤, 박선미가 김청오에게 넌지시 물었다.

"9천억에 달하는 광고물량을 어떤 식으로 해결할 생각이시죠?"

"정부의 공익 광고와 30대 재벌들의 광고물량을 조중동에 집중적으로 할당하시면 될 겁니다."

그녀가 결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조중동 사주에게 종편 방송국의 광고물량을 책임진다는 각서를 전달하세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이태수를 공격하는 기사와 사설을 신문에 실어달라고 전하세요."

"넵. 대표님."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책상 위에 놓여진 조중동이 내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특히 논설위원들의 사설이 심히 거슬렸다.

<한국의 경제권력을 한 손에 틀어쥔 이태수 회장의 대선 출마설에 관한 소고!>

<경제인은 경제에 전심전력하는 것이 옳다!>

<전 세계 최고 재벌인 이태수 회장의 대선 출마설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히말라야 투자그룹의 광고물량을 수천억이나 받아쳐먹은 놈들이 감히 나를 엿먹이는 기사와 논설을 신문에 버젓이 실었다.

나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 양상이었다.

나는 걸어오는 싸움은 절대 피하지 않는 성미였다.

곧바로 장준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중동 사주들을 만나봐.

-그 개자식들을 만나서 최후통첩을 전달해.

-나를 찬양하고 박선미를 비난하는 기사와 사설을 실으라고 전해.

-내 명령를 거부하면 히말라야 투자그룹의 광고를 단 한건도 집행하지 못할거라는 말도 전달하고.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회장님.

***

서울 모처.

조중동 사주들은 머리를 맞댄 채 뭔가를 모의하고 있었다.

"이태수 회장은 대선에서 승리할 확률이 희박해요."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박선미가 보수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그녀와 지지층이 겹치는 이태수 회장이 출마한다는 건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것과 진배가 없어요."

"옳으신 말씀입니다. 이태수는 한국당에 입당한 후, 차차기를 노려야 해요. 그 길이 최선입니다."

조중동 사주들은 항상 승리하는 쪽에 배팅했다.

그런 탓인지 이태수 보다는 박선미에게 마음이 기울었다.

"이태수의 광고물량이 아깝지만 지금은 비상시국이에요."

"그렇죠. 박선미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90% 이상인데, 이런 상황에서 이태수를 지원한다면 박선미의 눈 밖에 날 겁니다."

그들은 의견을 조율한 뒤 각자의 갈길로 뿔뿔이 흩어졌다.

***

조선호텔 스위트룸.

룸에 들어서자 오닐 회장 일행이 보였다.

메릴린치 증권사의 고문 변호사가 테이블에 기업공개 계약서류를 펼쳤다.

계약서류를 살핀 뒤 맨 밑 하단에 내 자필서명을 기입했다.

우리는 총 3부의 계약서류를 교환한 뒤 룸 서비스가 내온 만찬을 즐기기 시작했다.

스테이크와 포도주로 배를 채운 뒤 오닐에게 넌지시 말했다.

"칼컴과 ARM, 중국의 전자상거래 업체인 얄리바바를 순차적으로 뉴욕 증시에 상장할 계획입니다."

그러자 오닐이 경악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중국의 얄리바바도 회장님이 보유하신 겁니까?"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얄리바바의 지분 90%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얄리바바의 기업공개를 차분히 준비해 주십시오."

그리 말하며 오닐에게 건배를 제의했다.

우리는 달달한 포도주로 목을 축인 뒤 각자의 갈길로 발길을 돌렸다.

그날 밤, 타워필리스 펜트하우스.

장준기가 내 앞에 나타났다.

녀석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조중동 사주들이 딴 마음을 먹은거 같습니다."

"회장님의 대선 출마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더군요."

"박선미랑 붙어먹은 건가?"

"그런거 같습니다."

"할수 없군. 내일 부터 광고를 모조리 끊어."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회장님."

장준기를 내보낸 뒤 창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남의 고층 빌딩숲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선에서 승리할 방안을 면밀히 강구했다.

그러기를 문득 칼라일 투자그룹의 체이스 회장이 뇌리를 스쳤다.

아는거 많은 그에게 조언을 듣는 게 급선무였다.

곧바로 미국에 있는 체이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

뉴저지 인근의 대저택으로 들어서자 연미복 차림의 노집사가 나를 맞이했다.

"회장님은 정원에서 골프를 즐기고 계십니다. 그 곳으로 안내해 드리죠."

고개를 끄덕이자 노 집사가 뒷편에 위치한 광활한 정원으로 나를 안내했다.

체이스 회장의 저택은 50만평에 달하는 대지를 점유하고 있었다.

그런 탓인지 정원에 18홀 규모의 개인 골프장을 구비한 상태였다.

좁아터진 한국에서는 감히 상상조차 못할 초호화 저택이었다.

체이스는 아름다운 캐디의 시중을 받으며 14번 홀에서 여유로이 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14번 홀로 들어서자 체이스가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골프채를 캐디에게 건넸다.

우리는 친근한 포옹을 나눈 뒤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잠시 후.

체이스에게 심중의 고민을 솔직히 토로했다.

"이명복 대통령이 사경을 헤메고 있습니다."

"저도 그런 소문을 얼마전에 들었습니다.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을 다량으로 섭치한 후유증이라고 하더군요."

그는 모르는 게 없었다.

미국 정재계의 초거물 다웠다.

"그래서 제가 조만간에 펼쳐질 차기 대선에 뛰어들 생각입니다."

"벌써 마음을 정하신 겁니까?"

"솔직히 그렇습니다."

그리 답하자 체이스가 진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대선에서 승리할 확률이 그리 높지 않을 겁니다."

"그 문제로 회장님을 찾아뵌 겁니다."

"차기 대권이 유력한 박선미에게 승리할 묘책을 알려 주십시오."

"흐음..."

체이스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한 뒤 나직한 어조를 내뱉었다.

"박선미와 회장님은 지지층이 겹칩니다. 더구나 박선미는 충성스런 지지자들을 다수 확보한 상태에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체이스가 말을 계속 이었다.

"회장님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은 경쟁자를 삭제하는 겁니다."

"박선미를 제거하라는 말씀입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강렬한 안광을 내비쳤다.

"원하신다면 이런 일에 경험이 많은 베테랑을 소개해 드리죠."

내 앞길을 가로막는 존재는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조리 제거할 생각이었다.

박선미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는 대권가도에 심각한 장애물이었다.

마음을 정한 뒤 체이스에게 넌지시 답했다.

"믿을 만한 사람으로 부탁드립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입이 무겁기로 정평이 자자한 인물이니까."

***

뉴욕 센트럴파크.

고즈넉한 벤치로 다가가자 중년의 백인 남성이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옆자리에 몸을 실은 채 은근한 어조를 흘려보냈다.

"체이스 회장님이 보내신 분인가요?"

그러자 그의 입에서 짤막한 답변이 들려왔다.

"맞습니다."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목표물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 생각입니까?"

"리신 독극물을 이용할 계획입니다."

"리신이 뭐죠?"

"구소련의 KGB가 개발한 독극물이죠. 증거가 안남는 지상최강의 독약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리신이 체내에 삽입되면 어떤 증상을 일으키는 거죠?"

"체내에 투입된지 12시간이 지난 후부터 고열의 발열과 두통, 기침 등이 시작됩니다. 전형적인 독감류의 증상이죠."

"그리고 24시간이 지나면 급성 폐렴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부검을 해도 증거가 전무하죠."

남자는 그리 답하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중요한건 실행 장소와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문제는 제가 적극 협조해 드리죠."

"타겟이 자주 마시는 생수와 차 등에 리신을 살포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목표물 곁으로 반드시 접근해야 합니다."

"원하시는 바를 말씀해 주십시오."

"타겟의 최측근이 누구인지 알아봐 주십시오."

"최측근이 생수와 차를 관리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마 그럴겁니다. 거물급 정치인들은 식음료를 함부로 마시지 않습니다. 분명 생수와 차 등을 전담하는 수행원이 따로 있을 겁니다."

"그리고 실행 시기도 제때 알려 주십시오."

이제 내 요구사항을 전달할 차례였다.

"그 전에 한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한국어에 능통한 재미교포를 보내주십시오."

"원하시는 인물로 파견해 드리죠."

남자는 그리 화답하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에게 메모지를 건넸다.

남자는 메모지를 살핀 뒤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선수금을 확인하는 즉시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좋을대로 하십시오."

***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대포폰을 이용해 강태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선미의 생수와 차를 전담하는 수행원이 누군지 알아봐.

-넵. 회장님.

통화를 끊은 뒤 방탄 리무진에 몸을 실었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주한수에게 명을 내렸다.

"라디오를 틀어봐."

"예. 회장님."

때마침, 라디오에서 긴급 속보가 흘러나왔다.

-방금전 들어온 속봅니다. 청와대 대변인은 이명복 대통령이 오후 3시 20분 경에 지병인 심근경색이 악화되어 병사했다고 밝혔습니다. 중략...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이명복이 사망했다.

주한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청와대에 애도를 표하고, 장례식장에 조문객을 보내."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김명우와 김태섭에게 집으로 오라고 전해."

"네. 회장님."

그날 밤.

내 집에 명우와 태섭이 나타났다.

우리는 칵테일을 음미하며 밀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명우에게 지시를 내렸다.

"다음주 금요일에 신당의 발기인 대회를 개최해. 그리고 한달 안에 신화창조당을 창당해라."

"너무 급하게 움직이는거 아닐까?"

"이명복도 죽은 마당에 더 이상 시간 낭비할 틈이 없어. 그러니 내말대로 해."

명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서약서에 이름을 올린 의원들에게 연판장을 돌릴게."

"너는 이만 가봐."

"알았다. 그럼 내일 보자."

명우를 내보낸 뒤 태섭에게 명을 내렸다.

"신당의 창당 발기인 명단에 법조계 인사들을 대거 끌어들여."

"알겠습니다. 회장님."

진토닉을 입안에 한모금 들이킨 뒤 창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 밖에 드리워진 고층 빌딩의 화려한 조명 빛에 시선을 고정한 채 태섭에게 넌지시 말했다.

"판검사와 정치인, 고위 공직자,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비리를 전담할 초법적인 기구를 창설하면 어떨까?"

"공직자 비리 수사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거 보다 훨씬 강력한 초법적인 기구를 말하는거야."

"초법적인 기구라 하시면, 일반적인 사법절차를 초월하는 기구를 뜻하시는 건가요?"

"그래. 대통령을 수장으로 하는 초법적인 헌법기관."

그러자 태섭이 경악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판사와 검사들은 보조자로 참여하고, 최후 판결은 대통령이 하는 기구를 만들 생각이야."

"물론 대통령에 당선되야 실현이 가능한 조직이지."

"회장님. 한국은 삼권이 분립된 국가 조직입니다. 그런 초헌법적인 기관은 설립이 불가능합니다."

"그거야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에 달린거고. 그놈들을 돈으로 회유하면 얼마든지 가능해."

"그러니 당신은 대통령을 최종 재판관으로 하는, 사회지도층 비리 수사처를 공약집에 삽입하라고."

그 말을 끝으로 태섭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보냈다.

다음날.

경제석학인 장수길 박사를 내 집에 불러들였다.

우리는 커피를 음미하며 한국 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진지한 논의를 시작했다.

"자본주의 경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시민들의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경제정책이 수정되야 합니다."

"좀 더 알기 쉽게 말씀해 주십시오."

"정부가 각 각구당 연간 1천만원 내외의 최저 생계비를 직접적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국민 혈세를 좀먹는 지방자치제를 페지하면 충분히 재원조달이 가능합니다."

"그래도 매년 각 가구당 천만원에 달하는 생계비를 지원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을 겁니다."

"물론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겠죠. 특히 재계와 상류층 등이 격렬하게 저항할 겁니다."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서민과 중산층들이 호의호식 한다는 현실을, 그들은 결코 용납할 수 없을 겁니다."

장 박사가 두눈을 빛내며 나를 쳐다봤다.

"그래서 회장님같은 억만장자들이 대통령이 되셔야 합니다. 국민들을 위해서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의미심장한 발언이었다.

"히말라야전자가 뉴욕증시에 상장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사실입니다. 박사님."

장수길의 말이 이어졌다.

"히말라야전자가 뉴욕증시에 상장된다면 회장님의 부는 순식간에 1천조원을 돌파하시게 될 겁니다."

"유사이래 최고 부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실 겁니다."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회장님이 한국의 대통령이 되셨으면 합니다. 회장님의 부를 국민들에게 널리 베풀어 주십사하는 차원에서."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장 박사는 열망에 그득한 눈빛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회장님의 경이적인 재산을 바탕으로 레드락 같은 자산운용사를 설립하시면 연간 최소 40조원 이상의 투자수익을 달성하실 겁니다."

"그 돈을 바탕으로 국가기본 소득 펀드를 만드신다면,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커다란 행복이 될 거라고 개인적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정부 예산을 사용치 않고, 내 개인적인 부를 이용해 국가 기본소득제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회장님."

솔깃한 제안이었다.

국가 기본소득제를 대선 공약으로 내건다면 서민과 중산층의 지지를 손쉽게 획득할 수 있을거 같았다.

물론 고소득 가구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그날 밤.

한강변을 거닐며 장수길 박사의 국가기본 소득제에 관해서 나름 심사숙고했다.

장 박사는 서민과 중산층을 대상으로 각 가구당 연간 1천만원 정도의 지원금을 지급한다면 내수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물론 내 사유재산을 활용하는 것이 전제조건이었다.

국가기본 소득제는 뿌리치기 힘든 달콤한 유혹이었다.

어마어마한 폭발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사유재산을 바탕으로한 국가기본 소득제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 경우, 서민과 중산층의 표심을 쌍끌이로 끌어모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마음을 어느 정도 정리 한 뒤, 김태섭에게 전화를 걸었다.

***

김명우와 김태섭은 내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80명에 달하는 여야 국회의원들과 100명에 육박하는 법조계 인사들을 신당의 창당발기인 명부에 합류시켰다.

그 무렵, 메릴린치의 오닐 회장이 나를 뉴욕으로 초빙했다.

히말라야전자의 뉴욕 증시 상장을 기념하기 위함이었다.

***

뉴욕 증시에 들어서자 메릴린치의 오닐 회장과 뉴욕증시 관계자들이 나를 영접했다.

그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온몸으로 만끽한 뒤 뉴욕증시를 상징하는 축하봉을 힘차게 두들겼다.

직후 히말라야전자의 사명이 뉴욕증시 전광판 최상단에 출현했다.

히말라야전자가 뉴욕증시에 상장되자마자 월가의 중개인들이 히말라야전자의 주식을 매입하기 위해 총성없는 전쟁을 펼치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닐 회장은 나를 인근의 고급 레스토랑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점심 오찬을 함께하며 친근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회장님의 계좌에 입금된 천문학적인 자금을 어디에 사용하실 생각입니까?"

그의 말대로 내 계좌에는 9100억 달러가 입금된 상태였다.

한화로 거의 1100조원에 육박하는 경이적인 액수였다.

히말라야전자의 주식을 뉴욕증시에 공개한 댓가였다.

그 덕분에 내 지분은 30% 수준으로 격감했다.

허나, 차등의결권 조항 덕택에 여전히 60%에 달하는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절대 지배주주의 조건을 영구히 항유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오닐에게 솔직히 답했다.

"한국 대선에서, 저의 재산을 아낌없이 사용할 계획입니다."

그가 호기심 넘치는 눈빛을 내비치며 은근히 물었다.

"회장님의 막대한 부를 대선에 어떤 식으로 쏟아부을 생각이신지요?"

"국가소득 보장제도를 공약할 예정입니다."

"가구당 연간 1만 달러 정도의 최저생계비 펀드를 제 사유재산으로 설립한 뒤 국민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제공할 계획입니다."

그러자 오닐이 경탄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당연한 결과였다.

***

여의도 신화창조당 당사에 수천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들은 신당의 창당을 축하하는 한편 연단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대표직을 수락하는 김명우의 일신에 이목을 집중했다.

"우리 신화창조당은 여당과 야당을 물리친 뒤 수권정당이 될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여러분!"

"조만간 대한민국에서 가장 능력 많고, 인품 역시 최고로 뛰어난 분을 대선 후보로 영입토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성심을 다해 신화창조당의 성공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합시다!"

대표수락 연설이 끝나자 우렁찬 함성과 뜨거운 박수 소리가 장내에 요란하게 메아리쳤다.

-우와와와...!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그 시각, 여의도 한국당 당사 최고의원실은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토록 우려하던 일이 현실화 됐기 때문이다.

상석에 앉아 있던 박선미 대표가 좌중을 둘러본 뒤 성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이태수의 약점을 잡으세요. 그 인간이 출마 자체를 못하도록 만들라고요!"

그녀가 뾰족한 목소리를 토하자 최측근인 김청오 의원이 좌중을 대표해 입을 열었다.

"여론조사결과 이태수는 2등도 아닌 3위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대표님."

"그렇지만 그 작자가 대선에 출마한다면 보수표를 갉아먹을 거라고요. 나는 그 점을 용납치 못하는 거에요!"

박선미는 그리 말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루빨리 이태수의 약점을 잡아서 대선에 출마 자체를 못하도록 만드세요!"

그녀의 진노한 목소리가 장내에 길게 울려퍼졌다.

***

가평 사격장에서 하늘 높이 솟구친 원반을 목표로 라이플의 방아쇠를 미친듯이 잡아당겼다.

탕탕탕탕탕탕! 탕탕탕탕탕탕! 탕탕탕탕탕탕!

귓청을 찢을 듯한 총성이 장내에 쉴틈없이 메아리쳤다.

그 무렵, 강태호가 내 앞에 나타났다.

녀석은 나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인 뒤 보고를 올렸다.

"김강석이란 인물이 박선미의 식음료를 전담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자에 대해서 말해봐."

"박선미의 수행비섭니다."

"동선도 파악했나?"

"예. 회장님."

"그것도 보고해 봐."

"거의 하루종일 박선미 곁에 붙어있더군요."

"집에도 안가는 건가?"

"박선미의 자택에서 상주하며 수발을 들고 있습니다. 집에는 일주일에 한번꼴로 가는 거 같았습니다."

"그놈에 대해서 좀 더 알아봐."

"넵. 회장님."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박선미에 대해서 심사숙고했다.

대선이 가망성이 없을 것으로 판단되는 즉시 그녀를 죽일 생각이었다.

내 앞길을 가로막은 댓가였다.

집에 도착하자 조수민이 나를 반겼다.

그녀와 오붓한 시간을 즐긴 뒤 거실 창가로 다가갔다.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검은색 벤차량 근처에서 서성이는 양복차림의 남자들이 보였다.

곧바로 경호팀장을 면전에 불러들였다.

창 밖을 손짓하며 입을 열었다.

"수상한 놈들이 밖에 있는거 같은데...?"

경호팀장이 창 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무전기를 입가에 가져갔다.

"벤 차량 부근에 있는 남자들이 누군지 파악해."

녀석은 무전을 친 뒤 나에게 입을 열었다.

"놈들의 신상을 파악한 뒤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뒤 거실 홈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30분 후.

경호팀장이 내 앞에 나타났다.

녀석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보고를 올렸다.

"기관 쪽에서 근무하는 놈들이 회장님을 살피는 거 같습니다."

"국정원인가?"

"그런거 같습니다."

경호팀장을 내보낸 뒤 이효상 국정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국정원 친구들이 나를 감시하더군요.

-죄송합니다. 회장님.

-국정원에서 나를 감시하는 이유가 뭐죠?

-박선미와 연줄이 닿는 고위 간부들이 충성경쟁을 펼치는거 같습니다.

-알아서 기어 다닌다는 말씀인가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회장님.

-원장님은 자기 아랫사람도 단속을 못하시는 겁니까?

-송구하지만 국정원은 매우 복잡한 조직입니다. 실무를 집행하는 차장들이 실권자라고 할수 있죠.

-더구나 대통령이 유고상황이라 저의 명령이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봅시다.

통화를 끊은 뒤 경호팀장을 면전에 불러들였다.

"내 주위에서 얼쩡대는 기관원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그러자 녀석이 기겁한 얼굴로 되물었다.

"일이 커질 우려가 있습니다. 회장님."

"신경쓰지말고, 모조리 잡아서 혹독하게 후드려 패. 그래야 정신을 차릴 놈들이니까."

1억원 짜리 수표 석장을 팀장에게 건넸다.

"수고비니까 일처리를 제대로 하도록."

그제서야 녀석이 말귀를 알아먹은 얼굴로 순순히 복명했다.

"명하신대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 국가 기본 소득제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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