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침없이 달린다 1 >
회사로 향하는 차 안에서 주한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경호팀장이 어디 있지?"
"인천 항만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에 있습니다."
"팀장에게 전화를 넣어."
"예. 회장님."
한수가 핸드폰을 내 손에 건넸다.
수화기에서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후를 파악했습니다.
-누구지?
-강동혁 국정원 2차장입니다.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회장님.
통화를 끊은 뒤 강태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국정원 2차장인 강동혁을 내 앞으로 끌고와.
-알겠습니다. 회장님.
태호는 내 명령이라면 끓는 물속이라도 서슴없이 들어갈 정도였다.
그래서 녀석이 마음에 든다.
***
인천 항만 컨테이너 야적장으로 들어서자 태호가 내 앞에 나타났다.
"강동혁은?"
"죽지 않을 정도로 손을 봐줬습니다."
"국정원 요원들이 나타날지 모르니까 주변을 철저히 경계해."
"넵. 회장님."
태호는 그리 복명한 뒤 구석진 자리에 놓여진 컨테이너 박스로 나를 안내했다.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자 피칠갑을 둘러쓴 강동혁이 맨바닥을 엉금엉금 기어다니고 있었다.
곧바로 녀석의 얼굴을 목표로 강력한 사커킥을 날렸다.
퍼억...! 크아아아아악...!
놈의 입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길게 울려퍼졌다.
저 멀리 나가떨어진 강동혁의 곁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녀석의 얼굴을 구둣발로 짓이기며 나직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주제 모르고 기어오르더군. 내가 만만해 보이나? 후후..."
놈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온몸을 벌벌 떨었다.
"사람 목숨은 별게 아니야. 내가 그 증거를 보여주지."
그리 말한 뒤 태호에게 목덜미를 긋는 시늉을 해보였다.
직후, 녀석이 아무런 망설임없이 강동혁의 모가지에 대검을 날렵하게 박아넣었다.
푸욱...!
파아아...!
강동혁의 목덜미에서 선홍빛 핏물이 폭포수처럼 치솟았다.
태호는 내 명령을 완수하자마자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현장을 수습해."
"넵. 형님."
***
국정원 남산 본부.
국정원은 총비상이 걸린 상태였다.
강동혁 2차장이 괴한들에게 납치를 당한 탓이었다.
이효상 국정원장과 고위 간부들이 회의실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뜨거운 갑론을박을 펼친 결과 히말라야 투자그룹의 이태수 회장을 주요 용의자로 점찍었다.
허나, 국정원은 이태수를 범인으로 특정할 수 없는 처지였다.
"검찰에 이태수 회장을 정식으로 고발해야 합니다."
"그건 안될 말입니다. 검찰에는 이태수 회장의 장학생들이 너무 많아요."
"검찰에 고발해봤자 수사를 하는 시늉만 하다가 미제사건으로 덮을 겁니다."
"우리 국정원 자체적으로 이태수 회장을 수사해야 합니다."
"국정원에는 국내 수사 권한이 없어요. 더군다나 이태수 회장은 상상을 불허하는 초거물입니다."
"미국 대통령마저 이태수 말이라면 껌벅죽는게 현실이에요."
이효상 국정원장은 좌중의 열변을 무거운 얼굴로 지켜본 뒤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조만간 차기 대선일자가 확정될 겁니다. 그러니 이번 건은 차기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본격적으로 재논의를 하는 것이 순리에요."
"게다가 이태수 회장은 차기 대선 출마가 유력한 인사에요. 그런 인물에게 범죄 혐의를 함부로 씌운다면 후폭풍이 엄청날 겁니다."
"그러니 당분간 강동혁 차장의 문제는 내사 수준으로 조사를 하면서, 사태의 추이를 예의주시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읍시다."
이효상이 그리 결론짓자 장내에 배석한 고위 간부들이 체념한 얼굴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효상은 회의를 끝마친 뒤 원장실로 올라갔다.
직후 대포폰을 이용해 이태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에게 한가지 묻고 싶은 사안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강동혁 차장이 행방불명됐습니다. 혹시 회장님 작품입니까?
-하룻강아지가 주제파악을 못하는 거 같아서 저승으로 속 시원히 보내드렸습니다.
순간 효상의 전신이 태풍에 휘말린듯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는 통화를 끊은 뒤 창가를 서성이며 이태수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효상의 얼굴에 본능적인 두려움이 떠올랐다.
'이 회장은 무자비한 소시오패스다. 그자의 눈 밖에 나는 순간, 나 역시 목숨이 위태로워지겠지.'
그의 뒷등에 오싹한 한기가 돋아났다.
효상은 온몸을 진저리치며 고개를 미친듯이 저었다.
'정신 바짝 차리자. 이효상."
그는 자신이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때, 이효상의 대포폰이 요란한 울음을 토했다.
수화기를 들자 태수의 묵직한 목소리가 그의 귓전을 강타했다.
-국정원 고위 간부들을 내 집으로 데리고 오세요. 드릴 선물이 있으니까.
***
타워필리스 펜트하우스.
내 집에 이효상 국정원장과 고위 간부들이 나타났다.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교환한 뒤 본론을 꺼냈다.
"강동혁 차장님이 너무 설치더군요. 그래서 제가 편안하게 저승으로 보내드렸습니다."
장내가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허나, 나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박선미의 개가 되시면 강동혁 차장처럼 아주 뜨거운 맛을 보시게 될 겁니다."
"반면 내 강아지가 되시면 당신들에게 부귀영화를 약속하죠."
그리 말한 뒤 주한수에게 넌지시 고개를 끄덕였다.
직후 녀석이 12개에 달하는 USB 메모리를 이효상과 국정원 고위 간부들에게 차례로 돌렸다.
좌중이 공포와 호기심이 깃든 복잡미묘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곧바로 그들이 원하는 바를 간략히 알려주었다.
"USB 메모리 안에는 미화로 1천만불에 달하는 비자금의 계좌 번호와 클라이언트 코드가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내 강아지가 되십시오. 그리고 강동혁에 대해서는 모든 걸 잊으세요."
그리 말하자 좌중이 체념한 얼굴로 USB 메모리를 품 안에 소중히 챙겨넣었다.
"박선미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해서 나에게 매일 일일보고를 올리세요. 그럼 이만 해산."
그리 말하며 나가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고위간부들이 모두 사라지자 이효상이 은근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박선미가 회장님의 약점을 잡으려고 혈안입니다. 대책이 있으십니까?"
"별 볼 일없는 여편네 따위를 두려워했다면, 대선에 출마할 생각자체를 안했을 겁니다. 그러니 신경쓰지 말고 이만 나가보세요."
"죄송합니다. 회장님."
이효상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해보인 뒤 거실 소파에 온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대화면 TV에 이목을 집중하자 뉴스 앵커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히말라야전자가 기업공개를 한지 한달 만에 시가총액 1조 9천억불을 달성했습니다.
-월가의 전문가들은 히말라야전자의 성장 모멘텀이 확고하다며, 2조불에 달하는 시가총액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중략...
밥을 안먹어도 배가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내 재산이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하는 탓이었다.
히말라야전자의 시총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덕분에 내 재산은 1조불을 넘어선 상태였다.
단 한달만에 200조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인 것이다.
허나, 나는 여전히 배가 많이 고팠다.
특히 권력이라는 탐스러운 과실이 내 구미를 미치도록 자극했다.
***
청와대 춘추관에 국무총리와 여야의 영수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오찬을 즐기며 차기 대선 일정에 관해서 심도깊은 논의를 가졌다.
그 결과 2010년 2월 16일에 대통령 선거를 개최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
총 20조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쏟아부은 히말라야전자의 용인 공장이 드디어 완공됐다.
나는 완공기념으로 히말라야전자의 임직원들을 용인 공장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박용범 대표이사가 히말라야전자의 2009년 경영실적을 우렁찬 목소리로 발표했다.
"우리 히말라야전자는 스마트폰과 D램, 낸드플래쉬의 폭발적인 판매 덕분에 총매출 512조원, 영업이익 204조원, 순이익 147조원을 달성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단일 기업으로 가장 많은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을 기록한 것입니다.
-더구나 순이익 면에서도 아람코를 능가하는 기념비적인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장내에 배석한 임원들이 뜨거운 박수갈채를 쏟아부었다.
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박수소리가 가라앉자 박용범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엄청난 경영실적을 달성한 덕분에 사내유보금 역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우리 히말라야전자가 보유한 사내유보금이 드디어 200조원을 돌파한 것입니다.
다시 한번 격렬한 박수 소리가 장내에 메아리쳤다.
회의를 끝마친 뒤 박용범과 인근의 밥집으로 넘어갔다.
우리는 얼큰한 육개장으로 배를 채우는 한편 사내유보금에 대해서 심도깊은 논의를 가졌다.
용범이 은근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외국인 대주주들이 사내유보금을 주식배당금으로 전용해 달라는 요구를 해왔습니다."
"얼마나 원하는데?"
"한화로 20조원 가량입니다."
"미쳤구만. 투자할 곳이 산더미같은데 유보금 중에서 거의 10% 정도를 배당금으로 전용하라니. 쯧쯧..."
혀를 끌끌 차자 용범이 우려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렇지만 외국인 대주주들의 요구를 거부하시면, 임시주총을 개최할 것이 불보듯 훤합니다. 그 자리에서 회장님을 저격한다면 회사 경영에 무리가 따를 겁니다."
이게 바로 주식회사의 맹점이었다.
주식배당금이 적다며, 대주주들이 날마다 문제를 제기한다.
그렇다고, 그들의 요구를 마냥 외면했다간, 현 경영진에 대해서 동네방네에 비난성명을 발표하며 사람을 못살게 군다.
어느 정도 타협이 필요했다.
"10조원 정도로 딜을 넣어봐."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사내유보금 중에서 150조원 가량을 10나노대 반도체 투자금으로 돌려놔."
그러자 박용범이 경악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20나노대를 건너뛰라는 말씀입니까?"
"앞으로 대세는 10나노 미세공정이야. 그런 사실을 빤히 아는데, 뭐하러 20나노에 투자를 하나? 그러니 내 말대로 10나노대 미세공정 투자를 준비하라고."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10나노대 미세공정이 가능한 설비를 제공하는 회사들이 전무한 형편입니다."
"미국과 네덜란드, 독일 업체들과 협업체제를 구축해."
"일본 업체는 배제하라는 말씀입니까?"
"일본년놈들은 히말라야전자의 스마트폰을 거의 안사는 인간말종이라고. 한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판국에 내가 미쳤어. 일본애들 좋아하는 일을 하게. 그러니 이번 기회에 반도체 부품 수급선을 미국과 유럽 쪽으로 전량 돌리라고!"
"그래도 일본의 지리적인 잇점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회장님."
"한국과 가깝다고 일본 놈들에게 계속 호구노릇을 하라는 건가?"
"그건 아니지만..."
용범은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일본년놈들은 하나같이 되먹지않은 족속이야."
"날마다 혐한시위를 펼치고, 일본을 관광하는 한국인 여행객들에게 폭력과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반인륜적인 욕설을 거침없이 내뱉는 파렴치한 족속이라고!"
"그러니 내 말대로 부품 수급선을 미국과 유럽 쪽으로 전량 돌려!"
그제서야 용범이 체념한 얼굴로 복명했다.
"말씀하신 대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
여의도 모처.
박선미가 초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강동혁 차장의 행방을 아직도 찾지 못한 건가요?"
그러자 김청오가 송구한 얼굴로 답했다.
"아직도 오리무중입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강 차장이 행방불명된지 벌써 4달이나 지났다구요! 좁은 한국 땅에서 그를 찾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될 법한 애기냐구요!"
그녀가 목소리를 높이자 김청오가 정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태수 회장의 해결사들이 강동혁 차장을 납치 살해한거 같습니다."
"증거가 있나요?"
"증거는 없지만 정황상 이 회장이 강 차장에게 손을 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럼 검찰이나 국정원에 신고를 하세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확실한 물증 없이 이태수를 고발했다간 거대한 역풍에 휩싸일 우려가 있습니다. 대표님."
"게다가 검찰과 국정원은 이 회장과 한통속입니다. 아무리 신고를 한다해도 접수조차 안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정말 그 정도란 말인가요?"
박선미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이 회장이 검찰과 국정원에 뿌린 돈이 수천억에 달한다고 하더군요."
"아주 돈으로 권력을 사기로 작심했군요."
"그래도 여론조사 결과 이 회장은 여전히 3위권 수준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 인간이 대선에 출마하면 보수표가 분산될까봐 그러는 거잖아요. 그러니 저번에 말한대로 그자의 약점이나 파악하세요."
박선미는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모습을 감췄다.
***
타워필리스 펜트하우스.
내 집에 김태섭이 나타났다.
녀석의 손에는 100대 공약집이 들려있었다.
태섭이 작성한 공약집에 시선을 고정했다.
내 눈길은 첫장에 나온 5대 핵심공약에 절로 모아졌다.
<한국의 핵무장!>
<지방자치제 폐지!>
<사회지도층 비리 수사처 설립!>
<서민과 중산층 가구에 연간 1200만원 기본소득 지급!>
<20대 대기업 해외공장 이전 절대 금지!>
공약집을 살핀 뒤 태섭에게 넌지시 말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말해봐."
"송구하게도 아직 3위권 수준입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아직 내 대선공약이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탓이겠지?"
그러자 녀석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강연회 일정을 잡아. 그 자리에서 내 핵심공약을 발표할 생각이니까."
태섭이 걱정이 그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의 대선공약을 공식화 한다면 여당과 야당에서 미친 듯이 물어뜯을 겁니다."
"그 정도는 오래전에 각오한거야. 그러니 내 말대로 해."
그 말을 끝으로 태섭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다음날,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장년의 백인 남자가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전세계 최고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레드락의 알프레도 만치니 회장이었다.
레드락의 수탁고는 한화로 3600조원 수준이었다.
내 재산을 맡기기에 더할나위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에게 본론을 꺼냈다.
"1조불에 달하는 저의 재산을 레드락에 맡기고 싶습니다."
만치니 회장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저희 회사에 회장님의 귀한 자산을 맡겨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운용해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연간 어느 정도의 수익률을 보장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만치니가 결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최소 연리 3% 이상의 수익률을 회장님에게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 거침없이 달린다 1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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