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162화 (87/200)

< 질풍노도 1 >

만치니 회장은 레드락에 1조 달러를 수탁할 경우 매년 300억불(36조원)에 달하는 수익을 보장했다.

내가 대선 공약으로 내세울 예정인 국민 기본 소득제(서민과 중산층 대상)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연간 30조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했다.

지금은 저금리 시대였다.

연간 3% 수익을 보장해주는 곳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레드락에 내 재산을 맡기는 것이 최선이었다.

만치니에게 악수를 청하며 입을 열었다.

"코플랜드 로펌 사무실에서 다음주 월요일에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합시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만치니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힘차게 마주잡았다.

***

이른 아침부터 히말라야전자 용인 공장을 찾았다.

공장을 시찰한 뒤 공장 사무실에 박용범 대표를 불러들였다.

"일본에 출시된 유니버스1.2 스마트폰과 유니버스 노트의 판매량이 얼마죠?"

박용범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보고를 올렸다.

"송구하게도 여전히 판매량이 매우 부진합니다."

"수치를 말해보세요."

"3천대도 안되는 수준입니다."

"아이폰의 판매량은 얼마죠?"

"대략 800만대를 일본에서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일본인들은 아이폰에 버금가는 성능과 저렴한 가격으로 중무장한 히말라야전자의 전략 스마트폰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었다.

한국산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본은 한국산 제품의 무덤입니다."

"현도자동차가 일본에서 철수한 이유도 한국산 제품에 대한 일본인들의 지독한 배타성 때문이었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용범이 말을 계속 이었다.

"겉으로는 안그런척 하지만 일본인들은 한국산 제품이라면 치를 떠는 이중인격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거죠."

"특히 한국산 전자제품과 자동차에 유난히 배타성이 강합니다."

"대일 무역적자가 어느 정도죠?"

"연간 860억 달러 수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화로 100조원에 상당하는 액수였다.

대한민국은 일본인들에게 철저히 호구노릇을 하고 있었다.

수출로 힘들게 번 달러를 일본에게 헌납하는 꼴이었다.

히말라야전자 역시 대일무역 적자에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연간 600억 달러에 육박하는 반도체 장비와 원료 등을 수입한 탓이다.

"반도체 장비와 원료의 수입선을 미국과 유럽으로 돌리세요."

용범이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반도체 장비는 미국과 유럽산으로 충분히 대체가 가능하지만,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고순도의 불화수소는 일본에서 수입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불화수소가 뭐죠?"

"반도체 웨이퍼의 세정과 식각 공정에 사용되는 최첨단 소잽니다."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업체가 일본 밖에 없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국내에도 불화수소 생산업체가 있습니다만."

"계속 말해 보세요."

"국내업체는 저순도의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수준입니다. 우리가 필요로하는 고순도의 불화수소를 공급할 능력이 없습니다."

"히말라야전자가 일본 업체에서 수입하는 불화수소의 총액이 얼마죠?"

"160억 달러 가량입니다."

골이 지끈지끈 아파왔다.

"일본은 고순도의 불화수소 시장을 거의 90% 이상 점유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한국에 불화수소 공급을 중단한다면 반도체 생산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지게 될 겁니다."

용범의 입에서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일본 부품 업체를 자극한다면 불화수소 공급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당분간 수입다변화 조치를 유예하시는 것이 최선책입니다."

"흐으음..."

내 입에서 절로 깊은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일본 반도체 부품 회사들의 저력이 상상외로 강력한 탓이었다.

"일본 업체가 보유한 불화수소 기술을 이전받을 방법이 없을까요?"

"워낙 핵심기술에 장벽을 치는 사람들이라 쉽지 않을 겁니다."

"불화수소 최고 기술자들을 돈으로 스카웃하는 게 어떨까요?"

용범이 두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배탱 액수를 말씀해 주십시오."

"최고 기술자들을 3명 정도 영입합시다. 인당 1천억원 수준으로."

"그후에 불화수소 생산업체를 자회사로 설립하는 거죠."

"말은 쉽지만 일본의 기술자들이 호락호락 넘어올까요?"

"그래서 한명당 천억에 육박하는 스카웃 비용을 쓰는거 아닙니까?"

그제서야 용범이 고개를 끄덕이며 진중한 얼굴로 화답했다.

"제가 직접 일본의 불화수소 기술자들과 연쇄적인 접촉을 해보겠습니다."

"돈을 더 달라고 하면 주저말고 준다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

2010년의 희망찬 새해가 밝아왔다.

그런 탓으로 신년 초부터 바삐 움직였다.

전국 대학가를 돌며 겨울학기를 수강 중인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5대 핵심공약을 널리 알린 것이다.

그런 탓인지 신문 지상에는 연일 나를 비난하는 기사와 논설이 봇물터지듯 쏟아졌다.

여당과 야당의 사주를 받은 모양이었다.

허나, 나는 마이웨이로 일관한 채 대선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 무렵, 삼송그룹의 김민용 회장이 내 집을 찾았다.

김민용이 걱정이 그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대선에 승리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 뭐하러 사서 고생을 하는거야?"

그의 얼굴에는 나를 당최 이해못하는 표정이 한가득 드리워졌다.

"내가 왜, 대선에서 패할거라고 생각하지?"

"여론조사를 보면 알잖아. 너는 만년 3위라고."

"그거야 본격적으로 대선이 시작되면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는거야."

"그건 너의 희망섞인 전망이고. 좀 냉정하게 생각해야지. 질게 뻔한 게임에 나가봤자, 너만 타격을 입는거라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대선 출마를 포기하는게 어때?"

"겨우 그따위 말이나 하려고 내 집에 온거야?"

"그 따위가 아니라, 친구로서 니가 걱정되서 하는 말이라구."

민용은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거 같았다.

"박선미가 그리 말하라고 오더를 넣은거냐?"

그러자 녀석이 흠칫한 얼굴로 고개를 완강히 저었다.

"절대 그런건 아니라고. 단지 니가 걱정되서 하는 말이라니까."

민용은 그리 말하며 어색한 얼굴로 내 눈치를 살폈다.

거짓말이 빤히 눈에 보였다.

"박선미의 사주를 받았구나."

그제서야 민용이 모든 사실을 낱낱이 이실직고했다.

"어제 밤에 친박계의 좌장인 김청오 의원이 내 집에 왔어."

"그 작자가 뭐라고 했는데?"

녀석이 허탈한 얼굴로 순순히 답했다.

"니가 대선에 출마하면 너는 물론이고, 측근과 지인들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고 길길이 날뛰더라."

"내 측근과 지인에 너도 포함이냐?"

민용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았으니까 이만 가봐라."

녀석을 내보낸 뒤 창가를 서성이며 박선미에 대해서 심사숙고했다.

그녀는 내 인생에 심각한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었다.

백번 생각해도 그녀를 죽여야 했다.

마음을 정한 뒤 김명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1시간 후.

명우가 내 앞에 나타났다.

"할 말이 뭔데?"

"일단 소파에 앉아라."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창가를 거닐며 명우에게 넌지시 말했다.

"대선 과정을 자세히 말해봐."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

"내 질문에 답변이나 해봐."

명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무덤덤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선거관리 위원회에 대선후보로 등록한 뒤 24일간의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지."

"그 후에는?"

"당연히 국민들에게 많은 득표를 받은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거지."

녀석에게 넌지시 물었다.

"박선미가 한국당의 대선 후보로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후 갑작스런 변고를 당할 경우, 한국당은 후보를 출마시킬수 없는거냐?"

"법적으로 그럴거다. 그런데 이런 말을 왜 하는건데?"

명우는 그리 말하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가타부타 말없이 창 밖에 드리워진 둥근 만월에 시선을 고정하자 녀석의 걱정 그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친구로서 부탁하는건데, 제발 사고 좀 치지마라. 일이 잘못되면 우리 모두 죽는거라고!"

"형이 다 알아서 할테니 너는 이만 가봐라."

그 말을 끝으로 2층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에 도착하자 일단의 무리들이 나를 비난하는 플랭카드를 머리 위로 드높인 채 내가 탄 방탄 리무진에 계란셰례를 퍼부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플랭카드는 하나같이 내가 발표한 대선공약을 공격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외국인 노동자 추방 공약을 내건 이태수는 한국을 떠나라!>

<인종차별주의자인 이태수를 국제 사법재판소에 고발해야 한다!>

<핵무장을 공약으로 내건 이태수는 한반도 평화의 암적인 존재다!>

<사회지도층 수사 비리처는 대통령의 절대권력을 공고히 하는 제도로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놀고먹는 인간들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려는 이태수는 공산주의자다!>

<민주주의의 꽃인 지방자치제를 폐지하려는 이태수는 민주주의의 대적이다!>

시민사회단체, 관변단체들이 한통속으로 나를 공격하는 모양새였다.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 나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었다.

옆자리에 동승한 주한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내 차에 계란을 던진 년놈들을 잡아들여. 그리고 모조리 교도소에 쳐넣어."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

상암 월드컵 3단지 맞은편에 도착하자 삼송건설 관계자가 나를 영접했다.

그의 안내를 받으며 초고층 빌딩 건설현장을 차분히 시찰했다.

현장 시찰을 끝마친 뒤 인근의 하늘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 공원 정상으로 올라가자 1만평의 대지 위에 대저택이 건설되고 있었다.

나를 수행하는 공사 관계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핵벙커 공사는 언제 시작되는 겁니까?"

"터 다지기 작업이 끝나는 즉시 사면을 티타늄으로 주조한 초합금으로 핵벙커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설계도에 나온대로 한치의 오차없이 건설해 주십시오."

"네. 회장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회사로 향하는 차 안에서, 차창을 스치는 바깥 풍경에 시선을 고정할 무렵, 주한수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포브스가 신년호 표지모델로 회장님의 전신 사진을 실었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한수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포브스는 회장님의 자산을 1조 달러 안팎으로 추정했습니다."

"포브스 얘기는 그만하고, 강태호를 회사로 호출해."

"예. 회장님."

회사에 도착한 뒤 옥상 휴게실로 올라갔다.

방송사 임직원들은 나를 보자마자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주한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임직원들을 모두 내보내."

"네. 회장님."

잠시 뒤, 옥상에서 흡연을 즐기던 임직원들이 장내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직후 강태호가 내 앞에 나타났다.

"박선미의 수행비서에 대해서 보고해 봐."

"지방대를 졸업한 후 지인의 소개로 박선미의 수행비서 일을 시작한거 같습니다."

"집안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많이 부족하겠군."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놈을 돈으로 회유해."

"그리고 오늘 저녁 6시 비행기로 미국에서 사람이 한명 올거다. 그 친구를 잘 케어해. 아주 큰 일을 할 사람이니까."

태호가 두눈을 번뜩이며 나를 쳐다봤다.

"그놈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들어줘."

"넵. 회장님."

***

박선미 대표의 수행비서인 김강석은 한달에 한번 있는 휴일을 헛되이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휴일을 이용해 종로 인근의 영어회화 학원에서 부족한 영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나름 열심히 노력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박선미의 저택을 빠져나오자마자 종로 영어회화 학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김강석이 영어학원에 들어서려는 찰나, 중년의 남자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김강석씨에게 제안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니 잠시 시간을 내주시죠."

강석이 경계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는 낯선 사람과 함부로 말을 섞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만 가주시죠."

그러자 강태호가 주머니에서 한장의 사진을 꺼내서 그에게 건넸다.

"연노한 부모님이 시골에서 힘겹게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더군요."

순간 강석이 흠칫한 얼굴로 물었다.

"당신의 정체가 뭡니까?"

"부모님의 안전이 걱정되시면 지금 당장 나를 따라오시죠."

태호는 그리 말하며 주변의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결국 강석 역시 그를 뒤따라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태호는 면전에 마주앉은 강석에게 USB 메모리를 내밀었다.

"USB 메모리 안에는 미화 1천만불에 달하는 비자금의 계좌번호와 클라이언트 코드가 은닉되어 있습니다."

"제 말만 잘 들으시면 그 돈은 모두 김강석씨의 소유가 될 겁니다."

강석이 의혹에 휩싸인 얼굴로 물었다.

"저에게 원하는 게 뭐죠?"

"1월 30일 무렵에 박선미 대표가 마시는 생수를 강남역 1407번 사물함에 넣어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시면 됩니다."

강석이 해연히 놀란 얼굴로 부르짖었다.

"설마...? 생수에...?"

그러자 태호가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차갑게 말했다.

"목소리를 낮추세요.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습니까!"

강석이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당신의 요구를 거부하면 어찌되는 겁니까?"

태호는 목덜미를 손으로 긋는 시늉을 해보이며 사진 속의 노부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강석이 온몸을 부들거리며 태호를 죽일 듯 노려봤다.

태호의 냉랭한 목소리가 그의 귓잔에 다시 한번 울려퍼졌다.

"1월 30일 오후 4시까지 반드시 지정된 사물함에 생수를 넣으십시오. 그리고 저녁 6시에 생수를 다시 찾아가십시오."

태호는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홀로 남은 강석은 참담한 얼굴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한 후 테이블 위에 덩그라니 놓여진 USB 메모리를 지갑 안에 급하게 챙겨넣었다.

< 질풍노도 1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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