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냉혈(冷血) 1 >
SBC 방송국으로 들어서자 방송사 대표와 간부들이 나를 맞이했다.
그들과 악수를 교환한 뒤 대선 토론회가 열리는 스튜디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스튜디오에 들어가자 방청객들과 야당 후보가 보였다.
방청객들과 야당 후보에게 목례를 취한 후 내 이름이 적힌 의자에 앉았다.
잠시 후, 제 2차 대선토론회가 시작됐다.
사회자가 엄숙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기로 예정됐던 한국당의 박선미 후보가 불의의 변고로 끝내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잠시 동안 묵념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3분간의 묵념이 이어졌다.
묵념이 끝난 뒤 사회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지금 부터 18대 대통령선거 2차 토론회를 진행하겠습니다."
사회자는 그리 말하며 야당 후보에게 발언권을 넘겼다.
곧바로 야덩 후보가 나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이태수 후보자의 핵심공약에 대해서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이 후보자께서는 한국의 핵무장과 외국인 노동자 추방, 국민 기본 소득제, 20대 대기업 해외공장 이전 불허, 지방자치체 폐지, 사회지도층 비리 수사처 설립을 줄기차게 주장하시더군요."
"그렇지만 이 후보자가 주장하는 핵심공약은 논란의 소지가 너무 많습니다."
"특히 한국의 핵무장과 외국인 노동자 추방, 지방자치제 폐지는 한반도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공약입니다."
야당 후보의 말을 묵묵히 경청하며 생수를 입안에 한모금 들이켰다.
"이런 말도 안되는 공약을 주장하시는 이유가 심히 궁금합니다. 그러니 이 후보자께서 한말씀 해주십시오."
야당 후보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북한이 한국을 핵무기로 위협하는 마당에 언제까지나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만 매달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 나름대로 북한의 핵무기를 억제하는 수단을 강구해야 합니다. 그런 연유로 저는 한국의 핵무장을 주장하는 겁니다."
"냉전시대 구소련과 미국은 핵무기를 이용해 공포의 평화를 완성했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 역시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한반도에도 공포의 핵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리 답하자 야당 후보가 지방자치제 폐지를 물고 늘어졌다.
"지방자치제는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지역으로 분산하는 차원에서 1993년에 여야 합의로 실시된 지역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후보자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요람인 지방자치제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반민주주의적인 행태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이제 내가 답할 차례였다.
"지방자치제는 한국의 실정과 전혀 맞지 않는 제도에 불과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지방자치제는 지방 정치인들과 지역 유지, 건설업자, 지역 향판, 향검, 지역 경찰들이 국민 혈세를 효과적으로 강탈하는 수단에 불과해요."
"그런 탓으로 매년 수십조원에 달하는 국민의 혈세가 지방에서 암약하는 부정부패한 인사들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자 야당 후보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외국인 노동자 추방 공약에 맹공을 퍼부었다.
"21세기 국제화 시대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이유를 불문하고 추방하겠다는 정책은 인종범죄에 가까운 만행입니다."
곧바로 그에게 내 진의를 밝혔다.
"한국에는 조선족을 필두로 대략 150만명에 육박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반면 일본에는 외국인 노동자 숫자가 겨우 14만명 내외에 불과합니다. 한국보다 인구가 무려 3배나 많은 일본보다, 한국에 외국인 노동자 숫자가 10배 이상 많은 겁니다."
"그런 연유로 한국의 중산층과 서민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채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에서 각종 강력범죄를 버젓이 자행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한국의 공권력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한국인들에게 백해무익한 외국인 노동자들을 전면적으로 추방할 겁니다."
그러자 야당후보가 뜨악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외국인 노동자들 덕분에 중소기업이 돌아가는 게 현실입니다. 만약 외국인 노동자들을 전원 추방한다면 수백 수천개에 달하는 중소기업이 연쇄 도산할 겁니다."
야당 후보의 일천한 식견에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곧바로 그에게 반박했다.
"국내 인력을 고용할 만한 돈이 없는 사업주는 아예 공장을 안돌리는 게 국가경제에 유익합니다."
"저임금으로 자기 배만 채우려는 업주들은 모조리 망해야 합니다."
그리 답하자 방청객들이 얼굴 가득 통쾌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향해 뜨거운 박수를 쳐주었다.
짝짝짝짝짝짝짝짝...!
야당 후보는 분위기가 내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자 곧바로 국민 기본 소득제로 화제를 전환했다.
"한국의 서민과 중산층 가구수가 대략 680만 가구 안팎인데, 그들 모두에게 연간 1200만원에 달하는 국민 기본소득을 지급하려면 최소 30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합니다."
"그 많은 예산을 대체 어디에서 끌어올 생각입니까?"
"제가 누누이 말했다시피 저의 사재를 털어서 해결할 계획입니다."
순간 야당 후보의 입에서 격앙된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돈으로 정치권력을 매수하려는 겁니까! 대한민국 국민들의 수준을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시민들은 이 후보자가 돈으로 매표하는 행위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야당 후보의 열변을 한귀로 흘리며 두눈을 지그시 내리감았다.
***
18대 대통령 선거일 하루전.
마지막 수도권 유세를 끝마친 뒤 힐튼호텔 펜트하우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펜트하우스에서 여유로이 휴식을 취할 무렵, 김태섭이 면전에 나타났다.
태섭이 환한 얼굴로 보고를 올렸다.
"여론조사 결과 회장님이 야당후보에게 27% 격차로 승리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하던 일이었다.
"박선미가 사망한 이후, 갈곳 잃은 보수표의 상당수가 회장님 쪽으로 이동한거 같습니다."
"그리고 국민 기본 소득제 공약이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뒤 태섭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보냈다.
잠이 비오듯 쏟아진 탓이었다.
***
삼청동 안가 도감청 방지룸.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조각 작업에 곧바로 착수했다.
18대 대선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구성할 수 없었다.
이명복의 유고(有故) 때문이었다.
당선과 동시에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1주일 후, 청와대에 입성할 예정이었다.
그 전에 국무총리와 장차관, 청와대직 인선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나는 국무총리에 드림박스 장준기 대표를 내정할 생각이었다.
내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충복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뒤가 구린 점이 별로 없었다.
청문회를 한다해도 충분히 통과할 만한 자격이 있었다.
부동산 투기 따위와 담을 쌓은 인물인 탓이었다.
장준기는 내가 주는 고액 연봉에 만족하는 위인이었다.
국무총리 옆의 공란에 장준기의 이름을 기입한 뒤, 기획재정부 장관 인선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 부처의 총사령탑이었다.
기획재정부 산하에는 국세청, 관세청, 통계청, 조달청 등의 굵직한 부처가 소속되어 있었다.
그런 연유로 기획재정부 장관은 부총리급 대우를 받고 있었다.
국무총리에 버금가는 위치였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에 관해 해박한 지식과 식견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경제석학인 장수길 박사는 최적임자였다.
그는 중산층과 서민을 대상으로한 국민 기본 소득제 공약의 입안자였다.
기획재정부 장관(경제부총리) 옆의 공란에 장수길의 이름을 적어넣었다.
곧바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인선으로 넘어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의 수출과 수입을 전담하는 부처였다.
나는 히말라야전자의 박용범 대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히말라야전자의 방패막이 역할에 최적임자였기 때문이다.
물론 청문회 통과도 자신하고 있었다.
박용범 역시 내가 안겨다주는 고액연봉에 충분히 만족한 탓에 부동기 투기 등을 일체 저지르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옆의 공란에 박용범의 이름을 기입했다.
그 뒤 법무부장관 인선으로 넘어갔다.
법무부장관은 우명석 의원이 적임자였다.
곧바로 공란에 우명석의 이름을 적어넣었다.
뒤이어 검찰총장에 이중석 검사장을 내정했다.
그는 김태섭의 직계 라인이었다.
검찰을 완벽히 장악하기 위함이었다.
외교부장관 인선에 대해 나름 고민했다.
나는 한국의 핵무장을 대통령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연히 미국과의 효율적인 외교전이 필수였다.
내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사가 필요했다.
김명우의 해맑은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허나, 녀석은 국회의원직을 사퇴한 뒤 히말라야 투자그룹의 회장으로 영전한 상태였다.
명우에게 히말라야 투자그룹 회장직을 사퇴하고, 외교부 장관직을 맡으라고 종용하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녀석의 입장도 생각해야 하는 탓이었다.
다른 대안을 찾아야 했다.
그때, 이효상 국정원장의 노회한 얼굴이 심중에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효상이 최적임자였다.
내 의중을 나름 잘 아는 인사였다.
외교부장관에 이효상을 내정한 뒤 교육부장관 인선으로 넘어갔다.
교육부장관은 학벌 좋은 히말라야전자 임원의 몫이었다.
나머지 장차관 자리에도 히말라야전자의 임원들을 다수 배치했다.
나는 학계와 시민사회단체, 고위 공직자, 정치인 출신들을 일체 배제할 생각이었다.
그들 대다수는 입만 번지르한 부정부패사범이었다.
부동산 투기와 자녀의 부정입학 등의 부정부패를 걸핏하면 자행하는 족속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히말라야전자의 임원들은 법 없이도 살 정도로 매우 깨끗한 인사들이었다.
하수용과 강태호가 그들을 쉴틈없이 단속한 탓이었다.
18부 5처 17청의 요직 인선을 끝마친 뒤 주한수를 면전으로 불러들였다.
녀석에게 내정자들의 명단을 건넨 뒤 넌지시 말했다.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당신을 기용할 생각인데, 마음이 있나?"
그러자 한수가 감격한 얼굴로 바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허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회장님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겠습니다."
"비서실 요원과 경호팀 친구들도 전원 청와대로 데려갈 생각이니까, 당신이 알아서 조치해."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내정된 인사들에게 지금 당장 전화를 돌려. 그리고 김태섭과 하수용, 강태호를 호출해."
"넵. 회장님."
1시간 후.
김태섭이 내 앞에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당신이 신화창조당의 당대표직을 맡아."
태섭이 격동에 찬 얼굴로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회장님에게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당신이 최우선적으로 할 일은 여야의 국회의원들을 신화창조당에 입당시키는거야."
그리 말하며 메모지 한장을 그에게 건넸다.
"비자금 계좌 안에 1조 2천억이 있으니까 그 돈으로 의원들을 회유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 갖고는 부족해. 무조건 120명 가량의 의원을 신화창조당에 입당시켜."
태섭이 결연한 얼굴로 복명했다.
"넵. 회장님."
녀석을 내보낸 뒤 하수용을 면전에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당신이 청와대 민정수석을 맡아."
수용의 얼굴 가득 벅찬 환희가 파도처럼 물결쳤다.
"당신도 알다시피 민정수석은 검찰, 경찰, 군부의 사정라인을 총괄 감독하는 자리야."
녀석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쳐다봤다.
"내가 그런 요직을 당신에게 맡긴 이유가 뭘까?"
수용이 즉답했다.
"회장님의 앞길에 방해가 되는 인물들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참하게 응징하겠습니다."
"말귀를 잘 알아듣는구만."
창 밖에 드리워진 풍만한 만월에 시선을 고정한 채 넌지시 말했다.
"이영훈 경찰청장에게 국회의원들의 비위자료를 건네 받아."
"이영훈을 경찰 총장에 내정하신 겁니까?"
"그자는 경찰청 정보과장 출신이니까 아는게 많을거야. 그러니 지금 당장 그자를 만나봐."
"넵. 회장님."
하수용이 사라지자마자 장내에 강태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면전에 공손히 시립한 태호에게 넌지시 운을 뗐다.
"국정원을 대체하는 비밀 조직을 만들 생각이다."
태호가 두눈을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염두에 두신 방안이 있으십니까?"
"인간백정들이 많이 필요해."
"가이드라인을 말씀해 주십시오."
"살인면허를 주마."
그리 말하며 태호에게 비자금의 계좌번호와 클라이언트 코드가 저장된 USB 메모리를 건넸다.
"그 안에 4천억이 있으니까 알아서 비밀 조직을 만들어봐."
"조직명을 말씀해 주십시오."
"차가운 피라는 의미를 지닌, 냉혈(冷血)이 어떨까?"
태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직 국정원 특작요원 출신들로 멤버를 추려봐."
"연봉은 50억 정도면 충분하겠지?"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첫번째 목표물을 말씀해 주십시오."
"박선미와 붙어먹은 보수 언론사의 사주와 편집장 논선위원들을 모조리 잡아죽여."
"명하신 대로 조치하겠습니다."
***
한강변의 고즈넉한 벤치에 이효상과 강태호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효상은 두툼한 서류 봉투를 강태호에게 건네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전직 특수요원들의 명단을 요구하신 이유가 뭡니까?"
"죄송하지만 모르시는 편이 좋으실 겁니다."
태호는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거부의 변을 노골적으로 내뱉었다.
그런 탓인지 효상의 입가에 씁쓸한 고소가 내걸렸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태호는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
서울 모처.
김태섭과 이영훈 경찰청장 내정자가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태섭이 두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여야 국회의원 중에서 약점이 많은 인사들로 명단을 추려 주십시오."
"전국구도 포함입니까?"
"지역구 의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 냉혈(冷血) 1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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