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지도층 비리 수사처 1 >
이른 아침 부터 수행원들을 대동한 채 상암동을 방문했다.
상암동은 히말라야 투자그룹 타운으로 급속도로 변모 중이었다.
히말라야 투자그룹은 상암동에 130층 높이의 초고층 빌딩과 히말라야전자 본사 빌딩, 칼컴과 ARM의 R&D 센터, 이튼 국제학교 등을 건설하고 있었다.
초고층 빌딩 공사 현장을 시찰할 무렵 김명우가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현장을 둘러본 뒤 히말라야전자 본사 빌딩이 들어서는 3블럭 뒤편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상암동 건설 현장을 두루 살핀 뒤 명우를 대동한 채 인근의 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고즈넉한 공원을 거닐며 명우에게 지시를 내렸다.
"경제인 단체 연합회의 회장을 맡아라."
녀석이 얼굴 가득 싫어하는 기색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늙다리만 참가하는 경단련에서 내가 할 일이 없잖아? 노인네들은 말귀가 안통한다고."
"그러니까 듣게 만들어야지."
"나한테 원하는 게 뭔데?"
"경단련의 노물들에게 국내 투자를 독촉해. 내수 경제를 살리려면 재벌 기업의 국내 투자가 시급하다고."
"대기업의 해외공장 이전 금지 공약을 법안으로 만들어서 국회에 제출하면 되잖아?"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대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안하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그렇지."
녀석에게 질책하는 눈빛을 내비치자 뜨끔한 얼굴로 내 시선을 피했다.
"조만간 경단련 회장단을 청와대로 호출해서 기합을 단단히 줄 생각이니까, 별다른 걱정을 하지마라."
명우가 앓는 듯한 얼굴로 하소연했다.
"경단련 회장단 중에는 죽은 아버지와 호형호제하던 노친네들이 많다고."
녀석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그렇지만 명우 만한 적임자가 없는 것 역시 현실이었다.
녀석의 불만스런 목소리가 재차 울려퍼졌다.
"아버지의 지인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게 내키지 않는다고."
"그래도 경단련 회장직을 맡아."
"히말라야전자의 채종열 대표 이사한테 맡기지 그래?"
"남한테 떠넘기지 말고, 형이 시키는 대로 해!"
목소리를 높이자 그제서야 명우가 체념한 얼굴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공원 한켠에 조성된 메타세콰이어 숲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녀석이 넌지시 말했다.
"메릴린치 증권의 오닐 회장을 어제 저녁에 만났거든."
"계속 말해봐."
명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보고를 이어갔다.
"ARM과 칼컴, 얄리바바를 뉴욕 증시에 한꺼번에 상장하자고 제안하더라."
"각각 2천억 달러 이상의 시가총액을 기록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던데?"
별로 내키지 않는 제안이었다.
"뉴욕 증시 상장을 내년으로 미루자고 전해."
녀석이 의아한 얼굴로 반문했다.
"한방에 거액을 챙길수 있는데, 왜 그러는거야?"
"시기가 좋지 않아. 미국 대통령이 나한테 등을 돌리는 분위기야."
"그러니까 뉴욕 증시 상장을 내년이나 내후년으로 미루자고 말해."
"정말 그 정도로 상황이 안좋은거야?"
"핵무장 문제로 여러차례 충돌해서 그래. 서로간에 앙금이 쌓였지."
그리 답하며 아름드리 소나무 앞에 그림처럼 펼쳐진 정자로 올라갔다.
정자의 툇마루에 엉덩이를 걸친 채 입가에 담배를 물었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나직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애플의 동정을 보고해 봐."
그러자 명우가 걱정스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애플이 유니버스 스마트폰에 대해서 대대적인 소송전을 펼칠 계획이라고 하더라."
어느 정도 예상하던 일이었다.
"유니버스의 둥근 모서리 디자인과 멀티터치를 걸고 넘어질거 같은데..."
녀석이 말끝을 흐리며 나를 쳐다봤다.
걸어오는 싸움은 맞받아치는 게 상책이었다.
"아이폰 3와 아이패드에 채용된 4G 통신 모뎀에 대해서 특허소송을 제기할 생각이다."
"맞불작전을 놓을 생각이야?"
"칼컴의 코헨 회장을 만나서 대책을 논의해 봐."
***
삼송전자 서초동 사옥 회의실.
김민용과 임원들이 고심이 역력한 얼굴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민용의 입에서 거친 억양이 쏟아져 나왔다.
"중국에서 갑자기 디스플레이 공장 운영을 중단시킨 이유가 뭡니까?"
그의 물음에 임원들이 차례로 보고를 올렸다.
"대림동에서 발생한 조선족 폭동을 한국군이 유혈진압한 후폭풍 같습니다."
"중국 정부에서 이태수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항의서한을 발송했다고 하더군요."
"중국이 작정하고 한국 기업에 대해서 경제제재 조치를 시행하는 거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LC전자의 디스플레이 공장도 가동이 중단됐다고 하더군요."
"이태수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최선입니다. 다른 수가 없습니다. 회장님."
민용은 임원들의 요구대로 이태수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마음먹었다.
***
청와대.
집무실을 서성이며 사법부를 완벽히 장악하는 방안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사법부를 한손에 틀어쥐기 위해서는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을 무너뜨리는 게 최선책이었다.
심중에 박찬우 대법원장의 노회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재벌과 대형 로펌 등에서 수천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허나, 사법부의 수장인 탓에 누구하나 그를 건드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전임 대통령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법부의 수장은 법 위에 군림하는 초법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이제 많은 것이 달라질 예정이었다.
사법부의 수장을 얼마든지 단죄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일신한 구비한 탓이었다.
나는 대통령이자 사회지도층 비리 수사처장이었다.
헌법 위에 존재하는 최고 법관이었다.
대법원장 역시 내 발밑에 존재했다.
육중한 마호가니 책상에 좌정한 뒤 주한수에게 콜을 넣었다.
-김용대를 호출해.
-네. 대통령 각하.
30분 후, 김용대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영전한 상태였다.
그를 통해 방송과 신문을 장악하기 위함이었다.
"신문과 방송, 포털 뉴스를 총동원해서 판검사의 비리와 재벌을 비롯한 상류층들의 범법행위를 날마다 대서특필해."
용대가 곤혹스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신문사 사주들과 방송사 대표들이 말을 안듣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네. 대통령 각하."
방법은 하나 밖에 없었다.
놈들이 말귀를 알아먹도록 가혹한 채찍질이 필요했다.
"신문사 오너들과 방송사 대표들에게 이번주 금요일에, 청와대 오찬 회동에 참가하라는 공문서를 발송해."
"말씀대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
오찬 회동이 열리는 청와대 춘추관으로 들어서자 신문사 오너들과 방송사 대표들이 떨떠름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교환한 뒤 오찬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정갈한 한식으로 배를 채우며 이런저런 잡담을 길게 늘어놓았다.
"법조계 비리가 아주 심각해요.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재벌기업과 대형로펌에 수천억의 뒷돈을 받아먹었다는 소문이 시중에 파다하더군요."
그러자 신문사 오너와 방송사 대표들이 저마다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대법원장이 부패한 인물이라 그런지 일선에서 근무하는 판사들 대다수가 재력가와 로펌, 변호사들에게 수십, 수백억의 뒷돈을 챙긴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돈을 챙긴 덕분에 판사들이, 재벌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거에요."
"검사들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좌중의 얼굴이 점점 심각해졌다.
"그래서 제가 사회지도층 비리 수사처를 설립한 겁니다. 법조계에 암약하는 바퀴벌레들을 무자비하게 밟아죽이기 위함이죠."
"더불어 그들에게 뒷돈을 건넨 사회지도층 인사들 역시 결코 좌시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언론사 오너들의 얼굴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그런데 여기 계신 분들 태반이 판검사와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비리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보고를 받았어요."
그리 말하며 좌중을 둘러보자 분분히 내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들의 비루먹은 행색을 매의 눈으로 살핀 뒤 날 선 어조를 내뱉었다.
"김용대 문체부장관에게 비협조적인 자세로 일관하신다면 여러분들은 물론이고, 직계 존비속들의 비리를 검경과 국세청을 동원해서 끝까지 파헤쳐볼 생각입니다."
순간 좌중의 얼굴에 짙은 공포심이 적나라하게 떠올랐다.
"그러니 좋을 말로 할때, 알아서 기어다니세요. 패가망신 하고 싶지 않으시면."
그리 말한 뒤 입가에 담배를 물었다.
담배 연기를 자욱하게 말아올리며 가이드라인을 차분히 제시했다.
"박찬우 대법원장부터 저격합시다."
"그가 재벌 그룹과 대형 로펌에서 거액의 뇌물을 받은 뒤에, 담당 판사들에게 재벌가 인물과 상류층 인사들에게 솜방망이 처분을 내리라고 압력을 행사한 사건들을, 중점적으로 대서특필하세요."
그러자 좌중이 기합이 잔뜩 들어간 얼굴로 일사불란하게 복명했다.
"넵. 대통령 각하!"
***
중소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서민재는 전직 판사였다.
그는 원래 전도유망한 법관이었다.
허나, 박찬우 대법원장의 부당한 압력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법복을 벗었다.
무고한 시민을 잔인하게 린치하고 강간을 일삼은 재벌가 자제에게 솜방망이 판결을 내리라는 압력을 받은 탓이었다.
그런 서민재의 눈과 귀에 놀란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뉴스 앵커의 얼굴과 목소리에 이목을 집중했다.
-박찬우 대법원장이 삼아그룹 이동걸 회장의 막내아들인 이진수의 폭행 강간 혐의를 무마해주는 댓가로 수백억원에 달하는 금품을 수수했다는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그럼 담당 취재 기자와 심층 대화를 나눠보겠습니다.
화면이 취재 기자의 얼굴로 넘어갔다.
곧바로 심층 취재 내용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당시 삼아그룹의 사내이사로 근무했던 김익호씨의 제보 내용에 따르면, 삼아그룹의 이동걸 회장이 비상장 계열사인 삼아보험의 지분 10% 가량을 박찬우 대법원장에게 헐값에 양도했다는 겁니다.
-지금 현재 삼아보험은 시총 6000억원 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600억원 상당의 뇌물을 수수한 셈이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강남 대형 병원장의 아들이 마약을 복용하고 유통한 혐의로 중형이 유력해지자 부친인 병원장이 박찬우 대법원장에게 300억원 대의 무기명 양도성 예금증서를 뇌물로 건넸다는 첩보가 검찰에 접수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외에도 다수의 뇌물수수 제보가 검찰과 언론사 등에 접수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박찬우 대법원장의 솔직한 해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중략...
서민재는 뉴스를 끈 뒤, 사무실을 거닐며 사악한 탐욕에 사로잡힌 박찬우의 얼굴을 뇌리에 떠올렸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건가? 자신들의 권력만 믿고 부정부패를 밥먹듯이 저지른 법죄자들의 최후가!'
그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길게 내걸렸다.
***
성북동 대저택.
박찬우 대법원장은 측근 판사들과 향후 대책을 면밀히 논의하고 있었다.
"사회지도층 비리 수사처에서 원장님을 소환할 예정이라고 언론에 밝혔습니다."
"사수처의 최고 판관은 현직 대통령입니다. 이태수가 마음 먹기에 따라서 판결이 이루어질 겁니다."
"더구나 사수처장은 사형마저 자유롭게 집행할 수 있는 초헌법적인 권력을 부여받았습니다."
"다른 수가 없습니다. 이태수와 거래를 하셔야 합니다. 그가 원하는 걸 들어줘야 이 위기에서 벗어나실 수 있습니다. 원장님."
박찬우가 침통한 얼굴로 무거운 입을 열었다.
"이태수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해봐."
"예. 원장님."
***
청와대 집무실.
일간 신문의 1면과 2,3면은 박찬우 대법원장의 빌어먹을 얼굴로 도배된 상태였다.
<박찬우 대법원장 2천억원에 육박하는 금품수수 혐의!>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거액의 금품수수 의혹에 휩싸이다!>
<박찬우 대법원장 재벌과 상류층 인사들의 범죄 혐의를 무마해주는 댓가로 3천억대 금품 수수 정황 포착!>
방송 뉴스 역시 박찬우의 뇌물수수 의혹을 메인 뉴스로 방영하고 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사수처를 발동할 차례였다.
사수처의 부처장은 현직 법무부장관인 우명석이었다.
주한수에게 콜을 넣었다.
-우명석 법무부장관을 호출해.
-네. 각하.
20분 뒤, 우명석이 내 앞에 나타났다.
"검찰에서 자료 조사가 끝나는 즉시 사수처를 발동해."
"정말 박찬우 대법원장을 내치실 생각입니까?"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넌지시 말했다.
"몇년 형이 좋을까?"
그러자 명석이 뭔가를 골똘히 생각한 뒤 차분한 얼굴로 답했다.
"금품 액수가 상당하니 8년형 정도가 적합한거 같습니다."
"너무 적은 형량 같은데? 국민의 법감정도 생각해야지."
"그래도 현직 대법원장인데, 너무 많은 형량을 판결하면 사법부 판사들이 들고일어날 우려가 있습니다."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당신은 신경쓰지마라."
"알겠습니다. 각하."
"사수처 소속 검사들에게 박찬우 대법원장과 이동걸 삼아그룹 회장, 그의 아들인 이진수를 기소하라고 전달해."
"구형량도 말씀해 주십시오."
"세명 모두 무기징역!"
순간 우명석의 얼굴에 경악한 표정이 짙게 드리워졌다.
"뭘 그리 놀라. 이만 나가봐."
그제서야 명석이 자신의 실태를 깨달았는지 공손히 허리를 숙인 뒤 집무실에서 조심스럽게 사라졌다.
***
청와대 춘추관.
만찬장에 들어서자 20대 대기업의 회장들이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그들 중에는 삼송그룹의 김민용 회장과 LC그룹의 고영수 회장, 럿데그룹의 차민혁 회장 등도 포함되었다.
만찬을 시작하자마자 김민용과 고영수, 차수혁이 앓는 듯한 얼굴로 차례로 읍소를 해왔다.
"삼송전자의 중국 산동 디스플레이 공장과 핸드폰 생산 공장이 운영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LC 전자의 중경 디스플레이 공장도 운영이 정지된 상탭니다."
"저희 럿데마트의 할인점과 백화점 등도 폐쇄처분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제발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 주십시오."
그들의 얼굴을 냉정한 시선으로 일별한 뒤 내 의중을 밝혔다.
"중국에 쓸데없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당신들의 잘못입니다."
"중국 공산당 놈들은 날강도와 다름 없는데, 그런 개자식들을 왜 믿으신 겁니까?"
"그러니 이번 기회에 중국에서 손 털고 나오세요. 아시겠습니까?"
순간 장내에 매서운 칼바람이 휘몰아쳤다.
물론 내 알 바 아니었다.
< 사회지도층 비리 수사처 1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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