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172화 (172/200)

< 패왕지로(覇王之路) 2 >

휴일을 이용해 대형 마트를 시찰했다.

시민들로 북적이는 식육 코너를 활보하며 고기와, 우유, 채소, 과일 등의 신선제품 가격을 매의 시선으로 두루 살폈다.

내 시선은 쇠고기 값을 능가하는 국산 삼겹살 가격에 절로 모아졌다.

국내산 냉장 삼겹살의 가격은 1KG당 평균 2만 8천원 안팎이었다.

1년전 가격의 두배 이상의 가격으로 시민들에게 판매되고 있었다.

우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1리터당 3천원이 넘는 가격을 기록했다.

한우와 과일, 생선, 채소 또한 마찬가지였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식음료 코너로 이동했다.

그곳에서도 내 눈을 의심케하는 가격표들이 음료수 매대에 나란히 붙어있었다.

과일주스와 탄산음료 등의 가격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미국과 유럽, 일본보다 최소 3배 이상의 가격이었다.

나는 그날, 한국의 육류와 식음료 가격이 미쳐 날뛰는 삶의 현장을 두눈으로 생생히 목도했다.

***

청와대의 너른 뜰을 거닐며 장수길 경제 부총리에게 넌지시 운을 띄웠다.

"한국의 육류와 식음료 가격이 미쳐 날뛰는 이유가 뭘까요?"

장수길이 즉답했다.

"유통업자와 생산업자들이 카르텔을 형성한 후 가격을 담합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공정거래 위반 사항에 해당하는 건가요?"

"법적으로 그렇습니다. 각하."

"그럼 유통업자와 생산업자를 공정위를 통해 단속한다면 물가가 잡힐까요?"

그러자 장수길이 부정적인 반응을 드러냈다.

"쉽지 않을 겁니다. 워낙 뿌리깊게 가격담합 행위를 해온 탓에 공정위 수사 정도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복안이 있으십니까?"

장수길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변했다.

"검경을 대대적으로 동원해서 엄벌에 처한다면, 유통업계와 판매 생산업계에 뿌리깊게 박힌 가격담합에 철퇴를 내릴 수 있을 겁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육류와 식음료 유통업체와 판매업체 등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조사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할 경우, 우유를 비롯한 유제품의 가격도 낮출수 있을까요?"

장수길이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유제품은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왜 그런거죠?"

"낙농업계는 정부의 묵인 하에 일정수준 이상의 가격으로 우유를 판매하는 권한을 수년전에 취득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우유가 남아도는 형편임에도 유제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입니다."

빌어먹을 노릇이었다.

"전임 정부에서 낙농업계에 그런 특혜를 준 이유가 뭐죠?"

"그 당시 낙농업계는 수익성 악화를 빌미로 대규모 시위 행위를 장기간 지속했습니다."

"그 결과 여론 악화를 우려한 전임 정부가 낙농업계에 이런 말도 안되는 특혜조치를 시행한 겁니다."

개략적인 사정을 파악한 뒤 장수길에게 명령을 내렸다.

"부총리께서 육류와 식음료 가격 안정화 대책을 강구해 주세요. 그리고 낙농업계와 체결한 유제품 특혜 조치를 이른 시일 안에 중단하십시오."

"특혜 조치를 중단한다면 낙농업계에서 예전처럼 대규모 시위를 감행할 겁니다."

"만약 그들이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여론과 법을 총동원해 시위 주동자들을 엄벌에 처할 생각입니다."

단호한 의중을 내비치자 장수길이 감탄한 얼굴로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

섭건평 주석은 반도체 굴기가 지지부진하자 중국 정부가 보유한 천문학적인 외환을 이용해 반도체 핵심 기술을 지닌 업체들을 인수하기로 굳게 다짐했다.

그런 섭건평의 이목에 모바일 CPU의 근원적인 아키텍쳐 특허를 보유한 ARM과 전 세계 최고의 무선통신 특허를 갖고 있는 칼컴이 포착됐다.

북경 중남해 주석 집무실.

섭건평의 면전에 심복인 묵청이 나타났다.

그는 섭 주석의 죽마고우였다.

허나, 그는 공사석을 막론하고 언제나 섭건평에게 예의를 잃치 않았다.

나름의 처세였다.

묵청이 은근한 얼굴로 보고를 올렸다.

"ARM과 칼컴의 실소유주가 한국의 이태수 대통령으로 밝혀졌습니다."

순간 건평의 얼굴에 불만스런 표정이 짙게 드리워졌다.

"불측한 고려봉자가 사사건건 내 앞길을 가로막는구나."

"이번 사안은 비지니스적인 관점으로 접근하셔야 합니다. 주석 각하."

건평은 고개를 끄덕이며 묵청에게 말을 계속 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시세보다 두배 이상의 가격을 제시한다면 이태수가 거래에 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ARM과 칼컴의 가치가 어느 정도지?"

"ARM의 시장 평가액은 대략 2000억 달러 내외고, 칼컴의 경우는 3천억불 가량입니다."

"모두 합해 5천억 달러 안팎이군."

"두 업체를 통째로 인수하는 댓가로 1조 달러를 이태수에게 제시하는 게 상책입니다."

"흐으음..."

건평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너무 부담되는 액수야."

"그렇지만 ARM과 칼컴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 배팅액수를 필히 제시하셔야 합니다."

"그 이하 가격으로는 이태수가 응하지 않을 거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주석 각하."

결국 건평은 결단을 내렸다.

"이태수에게 딜을 넣어봐."

"존명!"

며칠 후.

인천 국제공항에 묵청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곧장 중국 대사관으로 직행했다.

다음날.

힐튼호텔 스위트룸에 김명우 히말라야 투자그룹 회장과 묵청이 차례로 나타났다.

그들은 다과를 곁들이며 심도깊은 논의를 가졌다.

그러기를 얼마 후, 각자의 갈길로 뿔뿔이 흩어졌다.

***

휴일을 이용해 청남대를 방문했다.

청평호수의 깨끗한 물을 관조하며 낚시에 몰입할 찰나, 면전에 불청객이 나타났다.

"무슨 일인데, 이 곳까지 따라온거야?"

힐난조의 어투를 내뱉자 김명우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사안이 워낙에 중대해서..."

녀석은 말끝을 흐리며 미안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할 말이 뭔데?"

"어제 밤에 섭건평 주석의 특사를 힐튼호텔에서 만났거든."

"그래서?"

명우가 두눈을 빛내며 즉답했다.

"ARM과 칼컴을 총액 1조 달러에 인수할 의향이 있다고 하더라."

섭건평은 통큰 배팅을 해왔다.

내심 놀라운 심경이었다.

시세보다 두배 이상의 가격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ARM과 칼컴의 미래에는 무궁무진한 먹거리가 널려있었다.

사물 인터넷과 자율주행 자동차에 들어가는 모바일 CPU와 무선통신 기술을 보유한 탓이었다.

그런 미래를 감안할 경우 양사는 최소 3조 달러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었다.

당연히 내 대답은 노였다.

"관심없으니까, 섭건평의 측근에게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전해."

그 말을 끝으로 낚시에 모든 신경을 쏟아부었다.

***

청와대 관저에서 김소민, 이민정, 조수민 등과 오붓한 시간을 만끽한 뒤, 아침 일찍 집무실로 출근했다.

육중한 마호가니 책상 위에 널려있는 조간신문들을 매의 시선으로 살필 즈음, 주한수가 내 앞에 나타났다.

"다음주 초에 싱가포르에서 개최될 예정인 G20 정상회담에 반드시 참가하셔야 합니다."

"내가 왜?"

나는 해외순방을 극도로 혐오했다.

하라는 일은 안하고 해외로 놀러나가는 것과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기존의 한국 대통령들은 해외 순방을 명분으로 해외에서 유유자적하게 휴가를 즐기며 세월아 네월아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그런 탓으로 대통령에 취임한지 3달이 지나도록 단 한차례도 해외에 나가지 않았다.

"미국의 아바마 대통령, 중국의 섭건평 주석, 일본의 야베 총리, 유럽 각국의 지도자들이 각하에게 연일 정상회담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자들과 만나봤자 실속이 없어."

"그래도 이번 기회에 해외 정상들과 당당히 교류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셔야 합니다. 대통령 각하."

주한수의 간곡한 읍소였다.

결국 녀석의 소원대로 G20 정상회담에 참가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

청와대 집무실.

밤 9시 뉴스에 이목을 집중했다.

-서원시 시장과 국회의원, 지역 정치인, 건설업자, 향판, 향검, 지역 고위 경찰이 연루된 대규모 비리 카르텔이 사회지도층 비리 수사처의 조사 결과 밝혀졌습니다.

-그들은 시 예산을 지역개발에 투입한다는 명목으로 매년 1400억원 내외의 거액을 횡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안시에도 대규모 비리 카르텔이 존재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수성시의 건설 공무원인 함모씨는 사수처에 수성시장과 지역 정치인, 향판, 향검 등을 비리혐의로 고발했습니다. 중략...

-부성시 시장도 대규모 비리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략...

-대장시 시장 역시 수천억대의 시 예산을 전용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중략...

-중구시 시장 또한 거액의 시예산을 착복한 혐의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중략...

9시 뉴스는 40분 동안 지자체장들과 지역 정치인, 향판. 향검이 연루된 비리 카르텔 속보를 일목요연하게 방영했다.

내가 원하는 내용이었다.

지자체장이 수백 수천억 대의 시예산을 횡령하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지역 검사와 고위 경찰, 지역 판사 등을 회유해야 한다.

그들의 눈을 속일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지자체장의 비리에는 언제나 약방의 감초처럼 지역 검사, 경찰, 판사 등이 연루되는 것이다.

이제 읍참마속의 심경으로 지자체장들과 그들과 결탁한 범죄자들을 때려잡는 일만 남았다.

그 전에 문제의 소지가 많은 향판과 향검, 향경 제도를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뜯어 고치기로 굳게 다짐했다.

곧바로 주한수를 면전에 불러들였다.

"이중석 검찰총장과 이영훈 경찰총장을 호출해."

"네. 각하."

40분 뒤, 이중석과 이영훈이 내 앞에 나타났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검경의 향검, 향경 제도를 전면적으로 폐지할 생각입니다."

그리 말하자 중석과 영훈이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향검, 향경 제도는 너무 문제가 많아요. 지역 정치인, 유지 등과 결탁할 소지가 많다 이말입니다."

"오늘 뉴스와 신문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지자체장과 지역 정치인, 향판, 향검, 향경 등이 연루된 비리 카르텔이 전국에 광범위하게 퍼진 상황이에요."

녀석들이 납득한 얼굴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앞으로는 검사와 경찰을 막론하고 2년 순환근무제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도입하세요."

"2년 단위로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 순환배치 시키세요. 그리고 검찰과 경찰 내부적으로 검사와 고위 경찰 등을 주기적으로 내사하세요."

그러자 중석과 영훈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차례로 말문을 열었다.

"내사 시스템을 상시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인력과 재원의 확충이 필수적입니다."

"저희 경찰 역시 내사팀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기존보다 3배 이상의 예산이 절실합니다. 각하."

"예산문제는 내가 알아서 해결해 줄테니까, 내사 시스템 확충에 돌입하세요."

"알겠습니다. 각하."

그들은 내보낸 뒤, 주한수를 다시 불러들였다.

"공석으로 비어 있는 대법원장에 누구를 임명하면 좋을까?"

한수가 즉답했다.

"각하와 친분이 두터운 김앤박 로펌의 김성우 대표가 어떨런지요?"

"김성우 대표를 추천하는 건가?"

"예. 각하."

김성우는 재벌들과 너무 많이 유착된 인물이었다.

그들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할 가능성이 높았다.

사람은 괜찮았지만 재벌과의 유착이 마음에 걸렸다.

"재벌들과 너무 많이 엮인 남자라 대법원장에는 적합하지 않아."

"염두에 두신 인물이 있으신지요?"

고개를 저으며 한수에게 재차 물었다.

"김성우 말고 다른 사람을 추천해 봐."

녀석이 미간을 좁히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1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한수의 입에서 의외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김태섭 대표를 대법원장으로 임명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각하."

"태섭은 신화창조당의 당대표야. 그런 친구를 갑자기 대법원장에 앉히면 여론이 선뜻 납득하지 못할거야."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수장입니다. 법관들의 인사권을 손에 쥔 막강한 보직이죠."

"그래서?"

"그런 막중한 책무를 도맡은 대법원장에 일면식도 없는 판검사 출신을 기용한다면, 각하의 통치행위에 심각한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주한수를 내보낸 뒤 창가에 스며든 달빛에 시선을 고정한 채 김태섭을 대법원장으로 임명하는 문제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

대통령 전용기에 몸을 싣자 청와대 비서실 요원들과 경호원, 언론사 취재진들이 나를 뒤따라 차례로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싱가포르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취재진들과 다과를 즐기며 허심탄회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쁘장한 여기자인 김아라가 존경심이 그득한 얼굴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통령님께서는 결혼 할 생각이 없으신가요?"

그녀는 청와대 관저에 내 여자들이 3명이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저도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김아라 기자처럼 아름다운 여성이 당최 나타나지 않는군요."

순간 그녀의 양볼에 붉은 홍조가 화사하게 피어났다.

그러자 남기자들이 그녀를 놀리듯 은근한 시선으로 힐끔거렸다.

김아라의 질문을 시작으로 남기자들이 차례로 입을 열었다.

"미국의 아바마 대통령을 시작으로 중국과 일본, 러시아, 프랑스 등의 각국 정상들과 회담이 예정되어 있는데, 그들과 주로 어떤 주제로 협상을 하실 생각이신지요?"

"북한의 핵문제에 대해서 어떤 복안이 있으신지요?"

"미국의 통상압력이 가중되고 있는데, 그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있습니까?"

기자들의 질문에 나름 성의있게 답했다.

"당연히 북한의 핵문제가 주요 의제가 될 겁니다. 그리고 미국의 통상압력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할 계획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전용기 끝 쪽에 위치한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싱가포르 G20 정상회담장에 도착하자 사열단들이 20여발의 축포를 쏘아올렸다.

기념촬영이 진행 중인 곳으로 다가가자 회담장 관계자가 나를 뒷쪽 구석으로 안내했다.

맨 앞줄로 가고 싶었지만 그곳은 미.중.일.러와 유럽 정상들의 전용 구역이었다.

한국은 그 곳으로 갈 수 없는 처지였다.

그 정도로 국제사회에서 별 볼 일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다.

유쾌하지 못한 순간이었다.

사진촬영을 끝마친 뒤 정상회담장 안으로 들어갔다.

원탁 테이블 구석자리에 앉자 미국의 아바마 대통령이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북한의 핵위협이 날이 갈수록 극한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북한의 핵문제를 슬기롭게 처리하는 방안을 주요 의제로 채택합시다."

그의 모두발언이 끝나자 G20 정상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명했다.

단체 회의를 끝마치자 곧바로 개별 정상회담에 돌입했다.

한국 대통령에게 배정된 오피스에 들어서자 단촐한 사무용 가구와 소파가 덩그라니 놓여진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국력에 걸맞게 오피스를 배정한 모양이었다.

오피스에서 주한수를 비롯한 비서진들과 이런저런 잡담을 길게 늘어놓을 무렵, 갑자기 출입구가 부산해졌다.

섭건평 주석이 방문한 탓이었다.

그는 영어로 나에게 인사를 해왔다.

"오래전부터 이태수 대통령 각하를 뵙고 싶었습니다."

말은 정중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비웃는 표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나를 약소국의 힘 없는 지도자 정도로 취급하는 모양새였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뒤 그에게 정중히 답했다.

"저 역시 주석 각하를 예전부터 뵙고 싶었습니다."

나 또한 말은 번지르하게 했지만, 입가에는 비릿한 조소를 의도적으로 떠올렸다.

그런 탓일까? 섭건평이 분한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나 역시 그의 두눈을 정면으로 직시했다.

우리는 격렬한 기싸움을 펼친 뒤 커피를 음미하며 본론에 접어들었다.

섭건평의 입에서 의례적인 언사가 흘러나왔다.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4자회담이 절실해요. 중국과 북한, 미국, 한국 당사자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서 담판을 지어야 합니다."

그의 헛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며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섭건평이 쓴웃음을 지으며 나직한 어조를 흘려보냈다.

"비서들과 취재진을 내보냅시다."

"저에게 따로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섭건평이 은근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주한수에게 기자들과 비서들을 물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잠시 후.

기자들과 비서들이 사무실에서 사라지자마자 섭건평이 비밀스런 제안을 해왔다.

"칼컴과 ARM 두 업체를 1조 1천억 달러에 매입할 의향이 있습니다."

그가 나를 찾아온 진짜 이유였다.

그는 여전히 칼컴과 ARM에 미련이 많은 모양이었다.

허나, 나는 중국 정부에 ARM과 칼컴을 매각할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었다.

< 패왕지로(覇王之路)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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