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는 피로 갚는다! >
필리핀 마닐라 대통령궁.
두테르테 대통령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한국 정부가 자국민들의 필리핀행 비자를 중단할 경우, 우리 필리핀이 입는 경제적인 손실이 어느 정도지?"
경제부장관이 즉답했다.
"연간 40억 달러 가량입니다."
두테르테의 얼굴이 무참하게 일그러졌다.
필리핀은 관광 수입으로 먹고사는 동남아 최빈국 중의 하나였다.
더구나 한국인들은 필리핀 관광객 중에 57%를 점유할 정도로 수가 매우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자국민들의 안전 문제를 빌미로 필리핀을 여행, 유학 금지구역으로 선정하자, 필리핀 정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 상태로 시간이 지난다면 필리핀 경제가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겁니다. 그러니 한국 대통령과 긴급 정상회담을 개최하시는 게 최선입니다. 각하."
경제부장관의 읍소에 두테르테가 못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외교부장관에게 지시를 내렸다.
"한국 대통령과 정상회담 일정을 잡아봐."
외교부장관이 결연한 얼굴로 복명했다.
"예. 각하."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김명우는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수행비서를 면전에 호출했다.
"오늘 스케쥴을 말해 봐?"
수행비서가 보고를 올렸다.
"오전 10시경에 경단련 회장단 회의를 주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12시에는 각계 각층의 유력인사들과 오찬을 겸한 회동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오후 2시에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경기도지사, 인천시장 후보자들과 차례로 면담일정이 잡혀있습니다."
"저녁 6시에는 미국 대사 부부와 부부동반 만찬 회동이 있고, 밤 9시에는 김태섭 당대표와 만남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밤 11시에 삼청동 안가에서 대통령 각하와 독대를 하셔야 합니다."
명우는 골이 지끈지끈 아파왔다.
몸은 하난데 그를 원하는 인물들이 너무 많았던 탓이다.
그는 대한민국 경제를 진두지휘하는 히말라야 투자그룹의 최고 경영자였다.
항간에서는 그런 김명우를 일컬어 경제 대통령이라고 호칭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대한민국 전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가히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경단련 회장단 회의에 꼭 참석해야 하나?"
"대통령 각하의 엄명이시니, 반드시 참가하셔야 합니다."
"끄응..."
명우의 입에서 앓는 듯한 소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경단련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태수를 대신해 재벌 회장들을 철저히 단속하기 위함이었다.
"할수 없군. 아침 식사를 끝낸 후에 경단련으로 갈테니까 그리 알도록."
"네. 회장님."
오전 10시 무렵.
명우는 여의도 경단련 회장단 사무실에서, 원탁 테이블에 둘러앉은 나이 지긋한 재벌 회장들에게 정부의 지침을 하달했다.
"10대 대기업은 연간 5조원 이상, 20대 대기업은 연간 1조원 이상을 국내 시장에 투자하셔야 합니다."
"만약 이같은 정부 방침을 무시할 경우 응분의 댓가를 치루셔야 할 겁니다."
재벌 회장들의 얼굴에 못마땅한 표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현도그룹의 주성찬 회장이 불만그득한 언사를 토해냈다.
"인건비와 원재료 가격이 날이 갈수록 가파르게 치솟는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국내 투자는 기업의 부실로 이어질 겁니다."
"그러니 정부 측에 우리 입장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 주십시오."
그러자 장내에 배석한 회장들이 너나 할거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격한 동감을 표명했다.
명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연로한 회장들의 면면을 휘 둘러본 뒤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대통령 각하의 의중을 거스를 경우, 회장님들의 신상에 불이익이 발생할 겁니다."
"그러니 그분의 심기를 거스르는 언행을 삼가해 주십시오. 여러 회장님들을 생각해서 하는 말입니다."
순간 장강 그룹의 구영호 회장이 성난 얼굴로 명우를 향해 삿대질을 퍼부으며 격한 고성을 내질렀다.
"나이도 새파랗게 어린 놈이 감히 우리에게 협박을 하다니! 니놈은 애비애미도 없는 게냐!"
명우의 얼굴이 보기좋게 일그러졌다.
내심 그가 우려하던 일이 발생한 탓이었다.
이곳에 모인 회장들 대다수는 명우의 부친과 막역한 관계였다.
그런 탓인지 그는 별다른 말 없이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장내에 때아닌 깊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명우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담담한 어조를 흘려보냈다.
"저는 대통령 각하의 의중을 여러 회장님에게 알려드렸을 뿐입니다. 그러니 정부의 방침을 따라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만."
명우는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도망치듯 몸을 숨겼다.
오후 2시 무렵.
럿데호텔 소공동 본점 펜트하우스에 김명우가 나타났다.
그는 장내에 운집한 시도지사 후보자들과 악수를 교환한 뒤 그들과 심도깊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밤 9시 무렵, 롯데호텔 펜트하우스에 김태섭이 나타났다.
그는 푹신한 소파에 여유로이 앉아 있는 명우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그의 맞은 편에 자리를 잡았다.
명우가 본론을 꺼냈다.
"대법원장에 관심이 있나?"
순간 태섭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각하께서 김 대표를 대법원장에 앉히고 싶어하더군."
태섭이 감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말이 정말입니까?"
"그래서 김 대표와 보자고 한거야."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많이는 못 주니까, 일주일 안에 마음을 정하라고."
"알겠습니다. 선배님."
명우는 모든 일정을 끝마치자마자 곧바로 삼청동 안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
삼청동 안가 도감청 방지룸.
김명우가 면전에 나타났다.
녀석은 소파에 자리를 잡자마자 편한 얼굴로 보고를 올렸다.
"재벌 회장들이 말귀를 못알아 먹더라. 아무래도 따끔하게 손을 봐줘야 할거 같아."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다.
명우가 두눈을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국세청을 동원해서 고액의 세금을 추징하는 게 어때?"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국세청 정도로는 부족해. 한번 손을 봐주기로 마음먹었으면 확실하게 박살을 내야지."
그리 답한 뒤 메모지에 장강그룹을 적어내려갔다.
메모지를 건네자 명우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 장강그룹을 작살낼 생각이냐?"
"경단련에서 장강그룹 회장의 발언권이 제일 쎄다면서?"
"그야 그렇지만..."
명우는 그리 답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직후 어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장강그룹 구영호 회장과 조금 친분이 있거든. 그러니 내 얼굴을 봐서 살살 만져주면 안될까?"
"안돼. 장강그룹을 본보기로 삼을 생각이니 너는 신경쓰지마라."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명우에게 내 의중을 밝혔다.
"회장부터 시작해서 아들내미와 마누라 모두 탈탈 털어버릴 작정이니까, 너는 구경이나 하고 있으라고."
그리 말한 뒤, 녀석의 빈잔에 발렌타인을 넘치도록 따라부었다.
명우는 내가 따라준 발렌타인을 넙죽 받아마신 뒤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시도지사 후보자들을 만나봤는데, 모두 너에게 절대충성을 맹세하더라."
"한자리 해먹으려면 그 정도는 기본이지. 내가 원하는 건 그 중에서 옥석을 가리는 거야."
"원하는 인재상이 뭔데?"
"내가 신고 있는 구두를 맨입으로 핥을 정도로, 명예욕과 권력욕이 과도하게 넘쳐흐르는 인물."
"출세에 환장한 정치모리배를 원하는거야?"
"대충 맞다. 그러니 그런 놈들이 눈 앞에 나타나면 빼놓지 말고, 이름을 메모해 두라고."
"학벌이나 경력도 봐야 하지 않을까? 국민들도 보는 눈이 있잖아."
"당연히 그 정도는 기본이지. 그렇지만 아무리 학벌과 경력이 화려해도 부동산 투기질을 일삼은 인간들은 무조건 탈락이다."
"오케이. 접수."
명우는 그리 화답하며 발렌타인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우리는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명우가 은근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김태섭이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더라."
"당 대표직에 미련이 많은 건가?"
"좀, 그런 면이 있는거 같더라."
"그래서 뭐라고 말 했는데?"
"일주일 안에 확답을 달라고 했지."
"그 문제는 명우 니가 알아서 해."
명우의 빈잔에 술을 따르며 나직한 어조를 내뱉었다.
"상암동에 빈 건물이 있나?"
명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드림 케이블의 자회사가 사용하던 13층 높이의 빌딩이 있는데, 갑자기 그건 왜 묻는거야?"
"내가 은밀히 키우는 비밀 조직이 있거든. 그런데 애들이 마땅히 지낼 곳이 없어."
명우의 두눈에 진한 호기심이 드러났다.
"비밀 조직?"
"너는 몰라도 된다. 알아서 좋을 게 없어."
"그러니까 더 알고 싶은데?"
"신경 끊어."
그제서야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자회사 건물을 비워 둬. 그리고 지하에 사격장을 조성해."
"사격장 규모를 말해 봐."
"3백평 넓이면 될거다."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청와대 집무실.
마호가니 책상에 좌정한 채 지자체장 인선에 심혈을 기울일 무렵, 이효상 외교부 장관이 면전에 나타났다.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요청했습니다."
"이유가 뭐죠?"
"필리핀을 여행 금지구역으로 설정한 문제 때문에 그런거 같습니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뿌리는 돈이 많이 아쉬운 모양이군요."
"저 역시 그리 생각합니다. 각하."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거절 의사를 전달하세요."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이효상은 고개를 끄덕인 뒤 은근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각하에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 보세요."
"이번에 자국민의 안전을 도외시한 필리핀 대사와 서기관 등에게 제재 조치를 취할 계획입니다."
"제재 방안이 뭐죠?"
"그들에게 6개월 간의 감봉 조치를 시행할 예정입니다."
미흡한 조치였다.
"마음에 안드는군요. 저는 좀 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염두에 두신 복안이 있으신지요?"
"이번 기회에 해외 주재 외교관들을 전원 국내로 소환해서 석달 간의 극기훈련을 실시할 계획이에요."
이효상이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해병대 극기 캠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를테면 그런거죠. 실제 해병대에 맞먹는 지옥같은 극기훈련을 체험한다면 정신무장이 제대로 될 겁니다."
"각하. 외교관들은 대다수 신체가 허약합니다. 해병대 캠프를 버티지 못할 겁니다."
"그럼 할 수 없는 거죠. 외교관 지위를 박탈할 밖에."
"죄송하지만 외교관들은 법적으로 공무원 지위를 인정받은 존재들입니다. 정부에서 사사로이 해고할 수 없습니다."
"해병대 캠프도 외교 업무의 일환이에요. 그런 통상적인 외교 업무도 수행하지 못할 정도로 신체가 부실하다면 외교관 자격이 없는 거에요."
"정말 해병대 캠프를 밀어부치실 생각입니까?"
"그러니 해외 주재 외교관들을 순차적으로 국내에 불러들이세요. 그후에 백명 단위로 해병대 캠프를 실시하세요."
"물론 훈련 도중에 탈락한다면 외교관 자격을 박탈할 겁니다."
***
청와대 관저.
하루 일과를 마감 한 뒤, 밤 9시 뉴스에 이목을 집중했다.
뉴스 앵커가 분개한 얼굴로 일본에서 발생한 혐한 시위 소식을 전달했다.
-오사카 도톤보리 주변에서 대규모 혐한 시위가 펼쳐졌습니다.
-혐한 단체 인사들은 한국인들과 재일 교포들을 대상으로 입에 담지 못할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럼 혐한시위 장면을 화면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TV에 오사카 도톤보리 거리를 가득 메운 혐한 시위대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들은 커다란 플래카드를 저마다 손에 든 채 요란한 확성기를 이용해 저주스런 언사를 무차별적으로 쏟아냈다.
-한국인과 재일들을 모조리 때려 죽이자!
-한국인과 재일들이 눈에 보이는 족족 모조리 찢어죽이자!
-한국인과 재일 남성들은 일본도로 오체분시하고, 여자들은 강간살인 해야 한다!
한국을 무력으로 40년 동안 침탈한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도외시한 채 도리어 한국인과 재일교포들을 갈기갈기 찢어죽이자고 시민들을 선동하고 있었다.
도저히 참을수 없는 일본인들의 저열한 민낯이었다.
다음날.
청와대 집무실로 출근하자마자 주한수 비서실장을 면전에 불러들였다.
"주한 일본대사를 청와대로 호출해."
"예. 각하."
1시간 후.
야비한 면상의 일본 대사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놈에게 내 요구를 분명히 전달했다.
"일본에서 연일 대규모로 펼쳐지는 혐한 시위에 심각한 우려를 표합니다."
"그러니 일본 정부 당국은 혐한 시위의 주모자와 관련자들을 전원 사법처리해 주십시오!"
그러자 일본 대사가 냉랭한 표정을 지으며 영어로 입을 열었다.
"일본 국내 문제는 일본 정부가 알아서 하는 일입니다. 한국 정부의 소관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일본 국내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아 주십시오. 각하."
일본 대사는 내 화를 돋구고 있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당신들, 되먹지 않은 일본인들이 우리 한국인과 재일교포들에게 혐한 테러를 자행하는 마당에 나 더러 가만히 있으라는 말입니까!"
"그건 내 알 바 아닙니다. 그럼 이만 실례 하겠습니다."
일본 대사는 그 말을 끝으로 자기 멋대로 집무실을 박차고 나갔다.
나는 그날, 일본 열도를 핵무기로 쓸어버리기로 굳게 다짐했다.
< 피는 피로 갚는다!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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