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성과 공성 >
상해 동방명주 호텔 인근의 비밀 핵벙커.
중국의 최고 통치자인 섭건평은 한중 휴전협정이 체결됐음에도 여전히 핵벙커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는 한미 연합군을 뼛속 깊이 두려워하고 있었다.
특히 중국의 대공 레이더망에 전혀 포착이 안되는 스텔스 미사일에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섭건평은 북경으로 되돌아갈 생각 자체를 눈꼽만큼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중국의 수도를 상해로 이전하기 위해 골몰했다.
요녕성과 지근거리에 위치한 북경은 수도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탓이었다.
요녕성 국경과 북경은 직선으로 채 450킬로가 안되는 매우 짧은 거리였다.
한미연합군이 마음만 먹으면 2시간 안에 함락이 가능할 정도였다.
섭건평은 핵벙커를 분주히 서성이며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자신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는 부총리에게 단호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중국의 수도를 상해로 이전합시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부총리가 공손히 복명했다.
"존명!"
***
냉혈단과 한국군은 반중복중의 기치를 내건 테러집단의 근거지를 탱크와 전투 헬기를 동원해 연일 초토화시켰다.
오늘도 그들은 자칭 '만주의 별'이라는 반한 테러단체의 근거지로 확인된 교외의 대저택을 목표로 코브라 전투 헬기와 탱크를 동원해 무자비한 토벌전에 돌입했다.
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
탕탕탕탕탕탕탕탕탕탕탕...!!
쑥대밭으로 전락한 저택에 전신 방탄슈트와 중화기로 무장한 한국군이 벌떼처럼 들이닥쳤다.
그들은 사망자들을 신속하게 한켠으로 모은 뒤, 생존자들을 수색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기를 얼마 후, 지하 밀실에서 한쌍의 남녀를 생포했다.
한국군은 그들을 냉혈단의 총본부가 있는 하얼빈 78사단으로 긴급 이송했다.
***
청와대.
관저에서 김소민, 조수민, 이민정 등과 오붓한 시간을 만끽한 뒤 집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무실에 들어서자 주한수 비서실장이 긴급 보고를 올렸다.
"강태호 냉혈단주가 화상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뒤 화상 회의실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화상 회의실에 들어서자 대화면 스크린 속의 강태호가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인사는 됐고, 할 말이 뭐야?"
태호가 즉답했다.
"반한 테러 집단의 수괴가 한명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 말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각하."
"자세히 보고해 봐."
"그놈은 만주의 별과 객가회, 흑룡방을 원거리에서 점조직으로 운영하는 한편,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기고 있습니다."
"그자에 관해 밝혀낸 사실이 있나?"
"나이는 40대 중반이고, 광동어를 자주 구사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광동어는 중국 남부 지방에서 주로 사용하는 언어였다.
표준어인 북경어가 만주어와 몽고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반면, 광동어는 이민족의 언어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중국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연유로 광동어권 지방에 사는 중국인들은 북경어를 오랑캐 언어라고 멸시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었다.
"광동어를 자주 구사하는 것으로 볼때, 중국 남부 지방에서 만주로 건너온 놈인가?"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인상착의는?"
"항상 가면을 쓰고 조직원 앞에 나타난 탓에, 그자의 얼굴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거 같습니다."
반한 테러조직의 총책은 광동성과 복건성 출신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때, 세계 4대 음식으로 명성이 자자한 광동요리가 뇌리를 스쳤다.
"만주에 광동 요리 전문점이 많나?"
"번화가마다 꼭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습니다."
"광동요리 전문점 위주로 수색을 강화해."
"그놈이 광동이나 복건성 출신이라면 광동요리를 매 끼니마다 찾아먹을 확률이 높으니까."
태호가 두눈을 번뜩이며 복명했다.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
청와대 국무회의실.
상석에 좌정한 후 국무위원들을 향해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국민들에게 북한과 만주 재건 사업을 위해, 국내외 기업과 사모펀드에 북한과 만주의 토지를 매각할 방침임을 널리 알리세요."
"이 문제는 장 부총리께서 대국민 담화형식으로 발표하시는 게 좋을거 같습니다."
장수길 부총리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화답했다.
"말씀대로 과천 종합청사 프레스룸에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공식적으로 발표하겠습니다."
"그리고 국내 기업들에게 북한과 만주의 토지를 매각하는 문제도 부총리께서 전담하십시오."
"가이드라인을 말씀해 주십시오. 각하."
"삼송그룹을 제외한 기업들에게 최대 10만평 정도의 토지를 매각하십시오."
"그리고 시세차익을 노리고 토지를 매입하려는 기업들은 최대한 배제하세요."
장수길이 재차 물었다.
"시세차익이 예상되는 지역의 토지를 매각불가 조치하라는 말씀입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변두리 지역의 토지를 중심으로 국내 기업들에게 매각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각하."
장수길이 자리에 앉자 박용범 산자부 장관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2012년도 긴급 지원 예산이 벌써 고갈 직전입니다."
"북한 지역의 도로와 전기, 항만 시설 복구와 북한 시민들의 보조금으로 투입된 예산이 3월 현재까지 거의 50조원 남짓입니다."
한국 정부의 2012년도 예산은 470조원 안팎이었다.
그 중에서 북한과 만주 지역에 할당된 긴급 지원 예산은 54조원 가량이었다.
추경예산 편성이 절실했다.
"국회에 50조원 내외의 긴급 추경예산 편성안을 제출하세요."
"하명하신 대로 조치하겠습니다."
박용범의 뒤를 이어 행정자치부 장관이 곤혹스런 얼굴로 입을 열었다.
"북한과 만주 지역의 노동자들이 38선으로 연일 남하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38선에 설치된 임시 수용소에, 무려 200만명에 육박하는 노동자들이 운집한 상탭니다."
"솔직히 말해서, 더 이상 그들의 남하를 막을 명분이 없습니다. 대통령 각하."
북한과 만주 시민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남한으로 일로 남하하고 있었다.
일자리를 찾기 위함이었다.
"하루빨리 북한과 만주의 재건사업이 본격화해야 이 문제가 풀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재건펀드에 돈이 쌓이는 즉시 본격적으로 재건사업에 돌입할 계획이니까, 수용소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그같은 사실을 자세히 전달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각하."
국무회의를 종료한 뒤 집무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무실에 들어서자 메릴린치 증권사의 관계자들이 나를 맞이했다.
그들과 악수를 교환한 뒤 곧바로 본론에 돌입했다.
"칼컴과 ARM, 얄리바바 등을 일사천리로 뉴욕증시에 상장해 주십시오."
그러자 증권사 관계자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의 시가총액을 원하십니까?"
곧바로 즉답했다.
"칼컴 3500억불, ARM 3000억불, 그리고 얄리바바는 2500억불 정도를 원합니다."
"각하의 요구조건을 기반으로 시총 산정 작업에 들어가겠습니다."
"시간이 급하니 최단 시일 안에 상장을 마무리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각하."
메릴린치 증권사 관계자들과 면담을 끝마친 뒤, 김기홍 국토건설부 장관을 집무실로 불러들였다.
면전에 나타난 김기홍에게 단도직입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내 사재를 털어서 북한과 만주 지역의 재건사업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그리 말하자 김기홍이 존경심 그득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러니 평양과 신의주, 개경, 심양, 하얼빈, 장춘 등의 부동산을 내가 지정하는 사모펀드에 평당 1천원에 매각하십시오."
"하명하신 대로 조치하겠습니다."
***
과천정부 종합청사 프레스룸.
장수길 부총리는 장내에 운집한 국내외 기자들을 대상으로 정부의 방침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발표하고 있었다.
"한국 정부는 북한과 만주의 재건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국내외 기업과 사모펀드에 북한과 만주 지역의 부동산을 매각할 방침입니다."
"그러니 북한과 만주의 부동산에 관심이 있으신 기업과 사모펀드 관계자 여러분들은, 한국 정부에 문의를 넣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장수길은 발표를 끝내자마자 기자들의 취재공세를 뒤로한 채 장내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
삼청동 안가 도감청 방지룸.
내 면전에 신화창조당의 김명철 원내대표가 나타났다.
그는 전국구로 국회에 진출한 상태였다.
"오랜만입니다. 형님."
녀석은 여전히 사석에서 나를 친근하게 '형님'으로 호칭하고 있었다.
면전에 마주앉은 그에게 발렌타인이 가득 들어찬 술잔을 넘겼다.
명철은 내가 건넨 술잔을 공손한 자세로 원샷한 뒤 테이블 위에 술잔을 슬며시 올려놓았다.
녀석에게 본론을 꺼냈다.
"종신 대통령 개헌 작업은 어때?"
그러자 녀석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김태섭 대법원장의 계파 의원들이 당최 말을 듣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가 뭐지?"
"종신 대통령보다는 중임제 개헌안을 원하는거 같더군요."
"배후에 김태섭이 있는건가?"
명철이 은근한 얼굴로 넌지시 답했다.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날 밤.
청와대 관저로 국정원장을 불러들였다.
눈 앞에 나타난 그에게 명령을 내렸다.
"김태섭 대법원장의 동정을 면밀히 주시하세요."
그러자 국정원장이 의아한 얼굴로 반문했다.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고개를 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태섭의 일거수 일투족을 1시간 단위로 체크하십시오. 그자가 무슨 말을 하고, 누굴 만나는지 파악하란 말씀입니다!"
그제서야 국정원장이 기합이 잔뜩 들어간 얼굴로 복명했다.
"넵. 각하!"
***
트램프 대통령이 한국을 1박 2일 일정으로 방문했다.
그는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후, 만주의 대경유전과 대련에 들어서는 미군 기지 등을 시찰할 예정이었다.
우리는 청와대 영춘관에서 오찬을 함께한 뒤 집무실에서 비밀회담에 돌입했다.
트램프의 입에서 노골적인 발언이 흘러나왔다.
"저에게 북해도를 주십시오. 그리고 오끼나와를 미국의 영토로 인정해 주십시오."
"북해도와 오끼나와를 원하십니까?"
트램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북해도는 그림같은 설경과 온천 등을 보유한 관계로 복합 리조트 사업에 최적화된 곳입니다."
"저는 그곳에 라스베가스를 능가하는 거대한 카지노 타운을 건설하고 싶습니다."
트램프는 돈독이 잔뜩 올랐다.
그는 북해도 전역의 리조트 사업권을 요구하고 있었다.
돈으로 환산할 경우 수백조원에 달하는 이권이었다.
"각하와 미국 정부에 북해도의 리조트 사업권과 오끼나와의 통치권을 넘긴다면 저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트램프의 입에서 통큰 언사가 흘러나왔다.
"한국이 일본을 도모할 경우, 수수방관하는 자세로 일관하겠습니다."
그의 발언은 계속 이어졌다.
"오끼나와에 주둔 중인 미군 역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일본이 비밀리에 보유한 생화학무기와 이지스함의 위치 정보를 한국 정부에 제공하겠습니다."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유혹이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시죠."
"12시간 안에 가부를 결단해 주십시오."
트램프는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청와대 경내를 거닐며 정종진 삼군 총사령관에게 내 의중을 밝혔다.
"조만간 일본을 도모할 생각입니다."
정종진이 경악한 얼굴로 외쳤다.
"미국이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대통령 각하."
그에게 솔직히 말했다.
"이미 미국과 밀약을 체결한 상황입니다."
그러자 그가 두눈을 부릅뜬 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씀이 정말입니까?"
"사실이에요. 그러니 일본이 자랑하는 이지스함과 비밀리에 은닉한 생화학무기 저장고 등을 대상으로 스텔스 미사일을 발사할 준비에 돌입하십시오."
정종진이 심각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일본은 전천후 작전이 가능한 이지스함을 무려 12척이나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지스함의 위치는 극비 사항입니다. 위치정보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 문제 역시 걱정하지 마십시오. 미국이 위치정보를 제공하기로 확약했으니까."
"그러니 동경과 오사카, 교토, 고베, 나고야, 북해도 등지의 핵심 지역을 12시간 안에 점령할 수 있는 상륙 작전 계획서를 지금 당장 작성하세요."
그제야 정종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진중한 자세로 복명했다.
"명령하신 대로 작전 계획서를 최단 시일 안에 수립하겠습니다."
***
청남대 사격장에서 클레이 사격에 집중할 무렵, 주한수가 면전에 나타났다.
"국정원장이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들어오라고 전해."
"네. 각하."
잠시 뒤, 국정원장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나를 향해 정중히 인사한 뒤 긴급 현안을 보고했다.
"김태섭 대법원장을 1주일 동안 도감청한 녹취록입니다."
국정원장은 그리 말한 뒤 녹취록을 내 손에 건넸다.
녹취록으로 시선을 돌리자 김태섭의 불만가득한 언사가 시야에 들어왔다.
녹취록에는 태섭이 측근들과 나눈 대화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는 대통령 중임제 개헌안을 예상한 탓에 나름 차차기를 노리고 있었다.
내가 10년 정도 대통령 직을 수행한 후, 권좌에서 물러날 것으로 자기 멋대로 지레짐작한 것이다.
그런 탓에 태섭은 측근들에게 나를 향해 격렬한 불만을 토로했다.
녹취록을 국정원장에게 되돌려준 뒤, 하늘 높이 떠오른 원반을 향해 라이플의 방아쇠를 힘차게 잡아당겼다.
탕탕탕탕탕탕!
< 수성과 공성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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