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2 >
청와대 경내를 차분히 거닐 무렵, 이효상 외교부장관이 면전에 나타났다.
"미국 하원에서 5월 16일에 로이드 청문회를 개최하기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 3시경에, 김태섭이 청문위원들을 대상으로 증언을 할 모양입니다."
"10일 정도의 시간이 남은 건가?"
이효상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절로 분개심이 치솟았다.
미국 하원은 자기나라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를 목표로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로이드가 나를 목표로 삼은 이유가 뭐지?"
"각하의 맹우(盟友)인 트램프 대통령에게 타격을 가하기 위해서 그러는 거 같습니다."
"로이드의 지지율이 어느 정도지?"
"트램프와 막상막하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자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각하."
트램프가 실각한다면 일본을 도모하는 과업이 중단될 우려가 있었다.
그가 권좌에서 내려오기 전에 하루 빨리 일본을 정복해야 했다.
허나, 지금은 김태섭 처리가 우선이었다.
놈이 미국 하원에서 증언하기 전에, 한국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 급선무였다.
트램프는 로이드가 보호하는 김태섭을 함부로 손대지 못하는 처지였다.
재선이 6개월 후에 열리는 탓이었다.
집무실로 들어설 찰나, 주한수가 내 앞에 나타났다.
"미국에서 핫라인을 요청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주한수가 내 손에 전화기를 넘겼다.
수화기에서 트램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태섭이 하원에서 각하의 비리를 폭로한다면, 저의 재선가도에 심대한 타격이 발생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 문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놈이 증언하기 전에 제가 처리할테니.
-방금 전에 뉴저지 린든파크 지역에서 김태섭 일가를 목격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그러니 그쪽으로 한국측 요원들을 급파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연락을 드리죠.
핫라인을 종료한 뒤 화상 회의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화상 회의실에 들어서자 스크린에 강태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에게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뉴저지 린든파크 주변의 주택가로 단원들을 급파해.
-놈의 소재지가 확인되는 즉시 작전에 돌입해.
-지금 즉시 요원들을 현장으로 급파하겠습니다.
***
뉴저지 린든파크 인근의 주택가에 냉혈단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국토안보부 요원들이 전달한 정보를 바탕으로 김태섭 일가가 은신 중인 주택을 매의 시선으로 염탐했다.
그러기를 얼마 후, 그들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차례로 그려졌다.
조기상이 날려보낸 모기 드론 10마리가 주택의 창문 틈 속으로 날렵하게 파고들었다.
모기 드론은 목표물을 확인하자마자 마취액을 그들의 피부 속으로 신속하게 주입했다.
태섭은 목덜미에 따끔한 느낌이 듬과 동시에 잠이 비오듯 쏟아졌다.
10분 후.
냉혈단원들은 쇼파와 거실 바닥, 침실 등에서 죽은 듯이 널브러진 태섭의 일가족과 경호원들을 무표정한 시선으로 일별한 뒤, 태섭을 커다란 가죽 베낭에 재빨리 집어넣었다.
30분 후.
뉴저지 인근의 미공군 비행장에 냉혈단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기상은 미공군 수송기에 태섭이 든 가죽 베낭을 밀어넣은 뒤 조종석에 앉아 있는 강태호에게 보고를 올렸다.
"경호원과 가족들의 몸에는 명령대로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수고했다. 모두 수송기에 올라타."
"네. 단장님."
14시간 후.
성남 공군 기지 활주로에 미공군 수송기가 나타났다.
강태호는 이동식 베드에 죽은 듯이 누워있는 태섭을 비릿한 조소를 머금은 채 쓰윽 훑은 뒤 응급 이송차량에 그를 힘차게 밀어넣었다.
***
청와대 지하 사격장으로 내려가자 애처로운 목소리가 장내에 요란하게 메아리쳤다.
"제발 저를 살려주십시오! 각하!"
"제발! 저를 죽이지 말아주십시오! 각하!"
비명의 근원지는 김태섭의 입이었다.
녀석은 30미터 전방의 표적지에 몸통과 손목과 발목을 결박당한 채 허수아비처럼 매달려 있었다.
강태호에게 지시를 내렸다.
"놈의 입을 테이프로 막아."
"네. 각하."
태호의 눈짓을 받은 냉혈단원들이 30미터 전방의 표적지로 부리나케 내달렸다.
그들은 김태섭의 입에 청테이프를 신속하게 둘러쳤다.
그제서야 놈의 개소리가 잠잠해졌다.
라이플의 갸늠자로 시선을 가져가자 김태섭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온몸을 부들거리는 광경이 보였다.
삶에 대한 의지가 보통이 아니었다.
허나, 놈은 나를 배신했다.
배신의 댓가는 죽음이었다.
입가에 비릿한 조소를 말아올린 채 놈의 빌어먹을 얼굴을 목표로 라이플의 방아쇠를 무자비하게 잡아당겼다.
탕탕탕탕탕탕!
귓청을 찢을 듯한 총성과 동시에 놈의 얼굴과 몸통이 천참만륙으로 오체분시됐다.
더불어 선홍빛 핏물이 사방에 번져갔다.
그런 탓인지 역한 피비린내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
백악관 집무실에 로이드 하원의장이 나타났다.
그는 분노한 얼굴로 트램프에게 고성을 토해냈다.
"청문회 증인을 대체 어디로 빼돌리신 겁니까!"
그러자 트램프가 태연한 신색으로 놀리듯 입을 열었다.
"그걸 왜 나에게 물으시는지 모르겠군요. 후후..."
트램프는 양어깨를 으쓱이며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반문했다.
그러자 로이드의 입에서 성난 고성이 연거푸 터져나왔다.
"법을 수호해야 하는 미국 대통령이, 이런 부도덕한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자행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니까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왜, 엄한 사람한테 화풀이를 하시는 겁니까!"
로이드가 질렸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집무실의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트램프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어렸다.
강력한 라이벌인 로이드에게 한방 제대로 먹였다는 만족감이 그의 전신에 팽배해진 탓이었다.
잠시 후, 그는 핫라인을 이용해 이태수에게 감사인사를 전달했다.
***
청와대 집무실.
면전에 검찰총장과 경찰총장이 나타났다.
그들에게 지엄한 명을 하달했다.
"김태섭 대법원장이 심근경색과 고혈압, 당뇨병 등의 지병으로 자택에서 돌연사한 것으로 언론에 발표하세요."
내 명이 떨어지자 그들이 일사불란하게 복명했다.
"넵. 각하!"
그날 밤.
청와대 관저의 책상에 좌정한 채 밤 9시 뉴스에 이목을 집중했다.
-김태섭 대법원장이 자택에서 돌연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과 검찰은 김 대법원장의 사인을 심근경색과 고혈압, 당뇨병 등의 지병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김 대법원장의 사망에 심심한 애도를 표명하는 한편, 대법원을 시급히 정상화 할 수 있도록 신임 대법원장 선정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중략...
TV를 끈 뒤, 민용철 비서관을 면전에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각하."
"우명석 법무부장관을 관저로 호출해."
"네. 각하."
30분 뒤, 우명석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에게 내 의중을 밝혔다.
"김태섭의 재산을 모두 국가에 환수하세요. 그리고 그놈의 가족들이 한국땅에 들어올수 없도록 입국불허 조치를 시행하십시오."
우명석이 흠칫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뭘 그리 놀라십니까? 김태섭이 검찰 후배라고 마음에 두시는 겁니까?"
날 선 언사를 내뱉자 그가 기겁한 얼굴로 고개를 미친듯이 저었다.
"절대 아닙니다. 각하. 믿어주십시오!"
명석은 그리 말하며 나를 향해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김태섭은 반역자에요. 그런 놈을 조금이라도 감싸는 기미가 보인다면 당신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명심하세요."
그가 전신을 바르르 떨며 복명했다.
"각하의 귀한 말씀을 마음 속 깊숙이 새기겠습니다."
"좋아요. 그리고 김태섭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놈을 화장하세요. 개같은 반역자는 무덤에 묻힐 자격도 없으니까."
명석이 군기가 바짝 든 얼굴로 화답했다.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각하!"
***
10월 초순경, 트램프가 불시에 한국을 방문했다.
우리는 청와대 경내를 거닐며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로이드의 지지율이 저를 앞서나가고 있습니다."
트램프가 앓는 듯한 얼굴로 하소연을 해왔다.
"재선에 실패한다면 일본을 도모하려는 각하의 염원이 수포로 돌아갈 겁니다."
"으음..."
내 입에서 절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트램프는 나에게 뭔가를 갈구하는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긴말 안하겠습니다. 저 대신 로이드를 상대해 주십시오."
"정말 로이드에게 승리할 가망성이 없는 겁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답변했다.
"벌써 10%이상 지지율 격차가 벌어진 상황이에요. 게다가 대선은 채 한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고."
그의 말대로 승부의 추는 이미 오래전에 기울었다.
트램프가 작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각하께서 로이드를 대선투표 직전에 처리해 주십시오. 제가 원하는 건 바로 그겁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일본에 제공하기로 했던, 스텔스 미사일 탐지 레이더망의 인도를 내년 이후로 연기하겠습니다."
일본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트램프의 존재가 절대적이었다.
로이드는 방해꾼에 지나지 않았다.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죠."
그말을 끝으로 비밀회담을 종료했다.
다음날.
히말라야전자 용인 공장을 비밀리에 방문했다.
이곳에는 히말라야전자의 드론 생산 공장이 있었다.
히말라야전자는 민간용 드론과 군수용 드론을 은밀히 생산하고 있었다.
군수용 드론은 20mm 벌컨포를 장착한 중화기용 드론과 모기 드론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히말라야전자가 비밀리에 생산 중인 모기 드론은 전 세계 최고의 성능을 자랑했다.
히말라야전자의 모기드론은 300km에 달하는 무선 조종 거리와 요인 암살, 도감청 작전을 완벽하게 수행 할 수 있었다.
미국이 보유 중인 모기 드론보다 최소 5년 이상 앞선 성능이었다.
히말라야전자의 모기드론은 척살임무에 최적화된 녀석이었다.
저 녀석만 있으면 민주당의 로이드 대선 후보를 암살하는 건 누워서 식은죽 먹기나 매한가지였다.
드론 공장을 두루 시찰한 뒤 국방과학 연구소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국방과학 연구소는 대전시 인근의 비밀 지하 기지에서 연구소를 운용하고 있었다.
국방연 책임자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명령했다.
"모기 드론 3대에 폴로늄 1ml를 주입하십시오."
그러자 책임자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어디에 사용하실 생각이신지요?"
"그건 당신이 알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 내 명령대로 모기드론에 플로늄을 주입하십시오!"
엄하게 명령하자 책임자가 기합이 잔뜩 들어간 얼굴로 복명했다.
"하명하신 대로, 지금 당장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각하."
그날 밤.
청와대 집무실로 강태호를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각하."
그에게 007가방을 건네며 명을 내렸다.
"가방 안에 있는 모기 드론을 이용해 민주당의 로이드 대선후보를 작업해."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태호는 내 명령에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이 녀석을 좋아한다.
"대선 10일 전에, 로이드의 체내에 모기 드론이 부착된 폴로늄을 반드시 주입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내일 아침 비행기 편으로 미국으로 떠나."
"네. 각하."
폴로늄은 구소련의 KGB가 개발한 방사성 맹독의 일종이었다.
폴로늄은 체내에 잠복한지 3일 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한다.
그리고 9일 이내에 급성 폐렴으로 목표물을 사망에 이르게 한다.
사망자의 시신을 해부해도 아무런 증거물이 검출되지 않는다.
폴로늄은 목표물을 자연사로 가장해 감쪽같이 암살할 수 있는 독극물이었다.
국방연은 러시아에서 은밀히 반입한 폴로늄을 100ml 가량 보유하고 있었다.
***
10월 22일 무렵, 펜실베니아주의 필라델피아에 조기상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열리는 집회장소로 부산하게 발걸음을 놀렸다.
조기상의 시선은 연단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트램프를 공격하는 로이드 대선후보에게 무아졌다.
그는 대회장에 입장하기 위해 선거 후원금 명목으로 500불을 기부한 상황이었다.
그런 탓일까? 그의 입가에 씁쓸한 고소가 길게 내걸렸다.
'목표물을 죽이기 위해, 정치후원금을 내는 꼴이라니... 쯧쯧..."
조기상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차며 로이드 주변에 진을 친 경호원들을 은밀히 살폈다.
'오늘이 22일이니까 더 이상 시간을 미뤄선 안되겠구나. 오늘 밤에 끝을 보자.'
그는 단단히 마음을 먹은 뒤 장내에서 유유히 빠져나왔다.
그날 밤.
조기상 일행은 벤 차량에 탑승한 채, 필라델피아 다운타운에 위치한 고층 호텔을 매의 시선으로 관찰했다.
기상은 007 가방에서 모기 드론 10대를 꺼낸 후, 리모컨의 주파수를 모기 드론에 합일시켰다.
모든 준비 작업을 끝마친 조기상이 수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펜트하우스로 모기 드론을 날려보내."
"네. 부장님."
잠시 뒤, 벤 차량에서 모습을 드러낸 모기 드론이 호텔의 펜트하우스를 향해 쾌속하게 날아올랐다.
모기드론은 펜트하우스 창가의 미세한 빈틈을 이용해 실내로 순조롭게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기상은 디스플레이에 드러난 펜트하우스 실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모기드론을 로이드 주변으로 슬며시 접근시켰다.
로이드는 측근들과 대화를 나누며 포도주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 기상이 모기드론을 로이드의 발목 쪽으로 이동시켰다.
촉수를 드러낸 모기드론 세마리가 로이드의 양발목에 폴로늄을 벼락같이 주입했다.
<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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