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은 만인에게 공평하다 >
청와대.
집무실의 고풍스런 마호가니 책상에 좌정한 채 컴퓨터 모니터에 이목을 집중했다.
내 시선은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보복운전 폭행 동영상에 절로 모아졌다.
값비싼 외제 스포츠카를 운전하던 젊은 남성 두명이 시내버스 운전사와 승객들을 야구배트를 이용해 무참하게 폭행하는 영상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난폭운전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버스기사와 승객들에게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
허나, 나를 더욱 분노하게 만든 건, 관할 경찰서에서 사건을 이첩받은 검찰이 그들에게 불구속 처분을 내렸다는 사실이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곧바로 우명석 법무부장관을 청와대로 호출했다.
우명석은 정중히 인사한 뒤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나를 은근히 쳐다봤다.
내 안색이 심상치않음을 본능적으로 간파한 눈치였다.
그에게 모니터 속에 드리워진 폭행 동영상을 손짓했다.
우명석은 잔인한 폭행 동영상을 묵묵히 감상한 뒤 넌지시 입을 열었다.
"담당 검사와 지검장에게 불구속 사유에 대해 보고를 올리라고 명령하겠습니다."
"그 정도로는 부족해요. 내가 원하는 건 놈들의 배후에요."
"지검장과 담당 검사를 구속하라는 말씀입니까?"
"당연한 걸 뭐하러 물으세요. 그리고 놈들의 집안도 조사하십시오."
"말씀하신 대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24시간 안에 자초지종을 완벽하게 파악하세요."
"넵. 각하."
다음날.
우명석이 청와대 집무실에 나타났다.
그의 입에서 보복운전 폭행사건의 전말이 소상히 흘러나왔다.
"검사장과 담당 검사를 강도높게 추궁한 결과 피의자의 부친에게서 수십억원 대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놈들의 배경을 말해보세요."
"두놈 모두 20대 재벌가의 식솔이었습니다."
"피의자와 검사와 검사장에게 뇌물을 건넨 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이세요."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각하."
***
동명그룹 성경호 회장의 성북동 자택에 사수처 수사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저택을 경비하는 동명그룹 직원들을 향해 총기를 꺼내들었다.
"사수처 수사관의 공무집행을 방해한다면, 이 자리에서 국법에 의거해 즉결사형에 처하겠다!"
동명그룹의 경호인력들은 사수처 수사관들의 날 선 목소리에 간담이 절로 오그라들었다.
사수처는 헌법 위에 군림하는 국가 최고 사법기관이었다.
그런 탓으로 사수처 수사관에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누구라도 체포 할 수 있는 무소불위한 권한이 부여되었다.
그런 사실을 뉴스를 통해서 숱하게 접한 동명그룹의 경호원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사수처 수사관들에게 순순히 길을 터주었다.
사수처 수사관들은 저택에서 망중한을 즐기던 성경호 회장과 그의 막내 아들인 성만철의 얼굴에 콜트 48구경의 총구를 거칠게 들이댔다.
"사수처의 법집행을 거부한다면 당신들의 관자놀이에 총알을 박아줄테다!"
성경호와 성만철 부자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하며 미친듯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같은 시각.
평창동 고급 저택에 총기로 무장한 사수처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그들 역시 대조그룹의 김형민 회장과 그의 둘째아들인 김우곤을 총기를 이용해 제압한 뒤 남산 서빙고동 대공 보안실로 신속하게 이송했다.
***
청와대 집무실.
트램프와 핫라인을 이용해 의사를 교환했다.
-신강과 티벳, 운난성의 독립 세력들에게 미화 45억불과 전투헬기, 대전차와 대공 미사일, AK47 소총 1천만정, 탄약 100억개 등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걸림돌이 있습니다.
-이번 작전은 CIA 비밀 예산으로 지원하는 관계로 돈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한국 정부에서 현금으로 25억불 정도를 지원해 주십시오.
별로 큰 부담은 아니었다.
중국을 분열시킬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한 자금도 지원할 용의가 있었다.
-국정원의 비밀 계좌에서 25억불을 빼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각하.
-아닙니다. 우리 한국이 의당 해야하는 일이니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그리고 한국측의 비밀 공작원들도 이번 작전에 참가할 생각이니, 귀국 정부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그 문제는 CIA 국장과 협의 후에 알려드리죠.
-알겠습니다. 그럼 협의가 끝나는 즉시 저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핫라인을 종료할 찰나, 집무실에 우명석 법무부장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나에게 공손히 인사한 뒤 긴급현안을 보고했다.
"보복운전 폭행 피의자와 검사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건넨 범법자들을 모두 체포했습니다."
"그자들이 지금 어디에 있죠?"
"남산 대공 보안분실 유치장에 있습니다."
"재판을 하기 전에 혹독하게 손을 봐주세요."
우명석이 넌지시 물었다.
"재판일정을 알려주십시오."
"72시간 뒤에 사수처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하세요. 그리고 모두 무기징역형에 처하십시오."
"명심하겠습니다. 각하."
***
사수처 재판정.
오늘의 주심 재판관은 우명석이었다.
그는 사회지도층 비리 수사처의 부처장(副處長)신분으로서, 이태수 사수처장을 대리해 보복폭행 사건의 주요 피의자들에 대해 최후 판결을 내리고 있었다.
-피고인들은 개선의 정이 전혀 없다고 판단되는바 사수처 준법정 최고형인 무기징역형에 처한다.
-또한 피고인들의 보유재산은 지금 이시간 이후 전액 국고로 환수조치됨을 고하는 바이다!
땅땅땅!
판결이 끝나자마자 사수처 법원 경찰들이 공포에 휩싸인 죄수들의 얼굴에 검은 모포를 둘러씌운 뒤, 긴급 이송버스에 그들을 신속하게 밀어넣었다.
***
청송교도소에 일단의 신입 죄수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동명그룹의 성경호와 성만철 부자, 대조그룹 김형민 회장과 그의 둘째아들인 김우곤이었다.
또한 그들에게 뇌물을 수수한 전직 검사장과 검사들이 처량한 모습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 교도관을 뒤따르고 있었다.
교도관은 성경호와 성만철, 김형민과 김우곤 등을 1024번 방으로 안내했다.
그들은 1024번 방에 들어서자마자 사방에서 날아오는 매서운 주먹과 발길질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
감방장을 필두로 기존의 죄수들은 성경호, 성만철, 김형민, 김우곤 등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근잘근 짓밟았다.
그런 탓인지 감방 안에는 모골이 송연한 비명이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크아아악...! 으아아악...! 쿠아아악...! 아아아악...!
허나, 그들이 아무리 애절한 비명을 내질러도 교도관은 그림자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같은 시각.
성북동과 평창동의 고급 저택에 사수처 수사관들과 조달청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동명그룹 성회장 일가와 대조그룹 김형민 일가의 재산에 정부귀속 조치 딱지를 붙인 뒤 장내에서 일사불란하게 물러났다.
동명그룹과 대조그룹 본사에 사수처 수사관들과 조달청 공무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성회장과 김회장의 부동산과 유가증권 등에 정부귀속 조치 딱지를 붙인 뒤 장내에서 썰물 빠지듯 사라졌다.
그날 밤.
서울역 대합실에 시민들이 삼삼오오 둘러선 채 밤 9시 뉴스에 이목을 집중했다.
-보복폭행 운전으로 버스기사와 시민들을 잔인하게 폭행한 동명그룹과 대조그룹 일가의 재산이 전액 국고에 환수조치 됐습니다.
-또한 그들의 범법행위를 눈감아준 담당 검사와 지검장, 그리고 그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전달한 성경호 회장과 김형민 회장 등에게 사수처 준법정 최고형인 무기징역형이 선고되었습니다.
-더불어 사건의 주범과 검사들에게 뇌물을 건넨 성경만, 김우곤 등에게도 무기징역형이 선고됐습니다. 중략...
대화면 TV 앞에 벌떼처럼 몰려들었던 시민들이 너나할거 없이 기쁨의 환성을 내지르는 한편, 이태수 대통령을 연호하며 뜨거운 박수갈채를 쏟아냈다.
-이태수 대통령 만세!
-이태수 대통령 각하 만만세!
-이태수 대통령 각하야 말로 구국의 영웅이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시민들은 법의 엄정함을 올바로 세운 이태수를 대한민국의 최고 영도자로 열렬히 떠받들었다.
당연한 귀결이었다.
***
청송 교도소.
집안을 풍비박산낸 김우곤과 성경만은 교도소 목공서에서 강제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툰 손놀림으로 대패질과 망치질을 하는 한편, 선배 죄수들에게 거친 욕설과 무차별적인 구타를 당하고 있었다.
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
"이 개같은 놈들아! 망치질을 왜 이리 못하는거야!"
"이 호로자식들아! 세살먹은 어린애들도 너희들보단 대패질을 잘하겠다!"
김우곤과 성경만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목구멍 밖으로 토해지려는 비명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대패질과 망치질에 혼신의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들은 하루일과를 끝마친 뒤, 목공소의 뒤편에서 원산폭격을 시행했다.
정신교육의 일종이었다.
경만과 우곤은 원산폭격을 실시하는 와중, 자신들의 지난 날을 처절하게 반추했다.
그들은 마음 속으로 부모들을 격렬하게 원망했다.
자신들을 세상 모르는 철부지 개망나니로 키운 탓이었다.
성회장과 김회장은 경만과 우곤에게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된다'라는 마인드를 어린 시절부터 심어줬다.
그런 탓으로 그들은 세상 무서운줄 모르고 미친 망아지처럼 함부로 날뛰었다.
그리고 오늘날 죽어서야 나갈 수 있는 청송교도소의 신입 죄수로 전락했다.
그런 현실이 심중에 떠오르자 그들의 두눈에서 비감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
한남동.
재계서열 7위권인 창성그룹의 오현일 회장은 동명그룹과 대조그룹이 하루아침에 풍비박산나는 장면을 TV 뉴스로 접했다.
그는 자녀들을 모두 미국과 영국으로 떠나보내기로 작심했다.
자녀들이 사고를 칠 경우, 그 화가 자신은 물론 집안 전체로 번질수 있음을 경계한 탓이었다.
오현일은 마음을 정리한 뒤 슬하의 3남 2녀를 서재로 불어들였다.
그는 면전에 마주 앉은 다섯명의 자녀들에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너희들도 봤다시피 동명그룹과 대조그룹이 하루아침에 망한 이유는 자식들이 사고를 쳤기 때문이야."
"그래서 이 아비는 너희들을 모두 미국과 영국으로 떠나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큰아들이 격렬히 반발했다.
"저는 해외로 나갈 생각이 전혀 없다고요. 아버지."
그는 그룹에서 대권수업을 받고 있었다.
"니가 그룹의 후계자에 미련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지금은 해외로 나가는 게 좋아보이는구나."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오 회장이 속내를 밝혔다.
"이태수 대통령은 재벌그룹을 전문 경영인 체제로 만들고 싶어해."
"재벌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그가 목소리를 높이자 장내에 운집한 자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명했다.
그런 모습에 큰아들 역시 체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해외로 나가 있어야 하죠?"
"최소 5년 이상은 나가 있는 게 좋아보이는구나. 이태수가 권좌에서 내려올 때까지."
결국 오 회장의 자녀들은 5년 동안 해외로 몸을 피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런 현상이 재벌가를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이태수의 철권통치에 겁을 잔뜩 집어먹은 탓이었다.
***
벌써 11월 하순이었다.
이제 국회에 개헌안을 상정할 싯점이었다.
청와대 경내를 거닐며 김명철 신화창조당 원내대표에게 지엄한 명을 하달했다.
"이번주 금요일 새벽 04시를 기해, 국회에 종신 통령 개헌안을 상정하도록."
"야당의원들이 국회의사당을 보이콧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문제는 군부대를 동원하면 해결될 사안이니까, 너는 소속 의원 단속에나 신경써."
"알겠습니다. 형님."
"이번 투표는 종이투표로 실시해. 그리고 투표용지에 자기 이름을 적어넣으라고 의원들한테 전해."
"기권을 방지하려는 겁니까?"
"그것도 그렇고, 종신 통령 개헌안에 반대표를 던지는 반란분자를 색출하기 위함이지."
명철이 두눈을 번뜩이며 화답했다.
"말씀대로 종이투표를 진행하겠습니다."
녀석을 내보낸 뒤, 수방사령관을 면전에 호출했다.
"이번주 수요일 오전 7시를 기점으로 국회의사당을 장악해."
그가 시원하게 즉답했다.
"탱크와 부대원들을 이끌고 국회의사당으로 진격하겠습니다."
"야당의원들과 언론인,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 국회의사당에 얼씬도 못하게 조치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각하!"
***
파키스탄과 신강성의 국경 지대에 조기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사전에 약속한 대로, 위구르족의 비밀결사체인 '투루크의 별' 조직에서 파견나온 중년 남성과 파키스탄쪽 국경도시에서 은밀한 접선을 하고 있었다.
조기상의 입에서 능숙한 중국어가 흘러나왔다.
"신강성 안으로 무기와 자금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신강 국경지대를 방비하는 서안군구의 핵심 관계자를 포섭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회유할 만한 인물을 아십니까?"
그러자 위구르족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신강성을 관할하는 서안군구 총사령관인 맹덕술은 돈만 주면 자기 애미도 팔아치울 정도로 부패한 족속이라고 하더군요."
조기상이 두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맹덕술과 자리를 만들어 주십시오."
위구르 남성이 흔쾌히 화답했다.
"좋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자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 법은 만인에게 공평하다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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