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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임상 실험 (12/241)

임상 실험

휴식을 취하던 기사들 뿐 아니라, 연무장에 있던 모든 기사들의 시선이 내 움직임을 따라갔다. 나는 그 시선을 즐기면서 중간쯤에 비어있던 자리에 앉았다.

"모두 대공자님만 쳐다보는 군요."

"그러게."

[창조주의 눈이 발동됩니다.]

[호감도: -90 (혐오) ]

[호감도: -92 (살해 충동) ]

[호감도: -91 (상해 충동) ]

[호감도: -87 (혐오) ]

하인들과는 다르게 기사들의 호감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 아니 모든 기사들은 나를 지독히도 싫어하고 있었다. 

아무리 유렌이 개망나니라고 해도 이 모든 기사들을 건드리지는 않았을 텐데, 모두 나를 싫어하는 건 좀 이상한일이다. 

"아린." 

"네." 

"여기 있는 기사들 전부 나 싫어하는 거 같은데?"

"왜 그런지는 대공자께서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잘 알지. 그런데 모든 기사들을 다 건드리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그렇죠."

아린은 살포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기사들은 동료애가 강합니다. 동료가 당했다면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복수를 하려하죠. 신의(信義)는 기사들을 위해 존재하는 단어입니다."

아린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단박에 알아들었다.

"대공자님께 당한 기사들 때문에 다른 기사들까지 대공자님을 싫어하는 겁니다. 거기다 아무런 능력도 노력도 하지 않고 그저 타고난 지위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대공자님은 기사들에겐 상대하기 싫은 인간 말종일겁니다."

"윽..."

내가 한 일은 아니지만, 저런 소리를 들으니 가슴에 돌덩이가 올라간 것처럼 답답해졌다.

망나니 유렌의 그림자는 언제쯤이나 사라질지 모르겠다.

"뭐, 과거형일 뿐입니다. 지금의 대공자님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셨으니. 다른 사람들도 조금씩 알아줄 거라 생각합니다."

아린의 목소리에는 평소와는 달리 약간의 걱정과 배려가 담겨있었다. 

"그러면 좋겠네." 

나도 사람인데 혐오어린 눈빛과 악의만 받다가는 오래 못 산다. 

"그런데 수련은 안 하십니까?"

"네가 검술을 배우는 거 생각해 보라고 했잖아. 그래서 기사들이 어떻게 수련하나 구경하려고 온 거야."

"아! 그렇군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내가 기사에 흥미를 가진 것이 기쁜 건지, 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지만, 기사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오늘은 몇 가지 능력을 시험해보기 위해서 온 거다.

연무장을 둘러보았다. 기사들은 자신들의 수련을 하면서도 시선은 나를 보고 있는 거 같았다. 

딱히 다가오지는 않네. 

내가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기사들은 아까처럼 수다를 떨지 않았다. 내게 다가오지도 않고 그냥 눈치만 보면서 수련을 하고 있었다. 

내가 언제 시비를 걸지 몰라서 불안해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저게 기본형입니다."

"기본형?"

아린은 구석에서 허공에 칼질을 하고 있는 기사를 가리켰다. 

"네. 록스가의 기초 검술입니다. 아무래도 수련기사인 거 같군요." 

"수련기사라."

그러고 보니 유렌놈은 기사들은 건드리기 힘드니, 수련기사만 골라서 건드렸다고 했었다. 정말 강약약강에 투철한 인간이었다.

"기초를 확실하게 배운 자로군요. 형(形)이 거의 완벽한 검로(劍路)입니다. 웬만한 기사보다 나아보입니다. 힘이 과한 것을 빼면 말이죠."

아린의 말에 기본 검술을 하고 잇다는 수련기사를 쳐다보았다. 집중해서 쳐다보자 그의 움직임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이고 있었다. 

슬로우 모션으로 보이는 것도 내공의 힘인가 보다.

"저 사람은 조만간 기사가 되겠네요." 

"그래?"

"네. 이미 실력은 충분합니다."

아린의 칭찬에 그를 한 번 살펴보기로 했다. 

[창조주의 눈이 발동됩니다.]

[이름: 크라이드]

[특성: 버서커, 괴력lv1]

[호감도: -30 (비호감) ]

"억!"

내 눈이 잘 못됐다고 생각해서 눈을 계속 비볐다. 하지만 내 눈이 잘못 된 게 아니었다. 

[특성: 버서커]가 계속 내 눈에 보이고 있었으니까. 

얘가 왜 여기에 있는 건지 모르겠다. 

크라이드, 저 녀석은 내 소설에서 나오는 중요인물이다. 나는 그가 주인공과 만나기 이전을 설정하지 않았는데 이런 곳에 있었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흐음..."

지금이라도 당장 크라이드에게 말을 걸고 싶었지만, 그는 내게 비호감을 가진 상태다. 섣불리 다가가면 경계심만 커질 것이기에 일단 참았다. 

오늘은 저 녀석을 만나러 이곳에 온 것도 아니고, 록스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저 녀석이 떠나기 전에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럼 나한테 살덩이라고 했던 놈부터 시작해 볼까. 

놈이 누구인지는 이미 기억해 두었다. 중간쯤에서 눈치를 보며 몸을 풀고 있는 키가 190cm는 되어 보이는 덩치였다. 

[캐밀로]

[특성: 오러 감지lv1, 인내lv1]

[호감도: -87 (혐오) ]

특성 두 개라, 나쁘지 않은 재능이다. 거기다 인내라니, 내 실험에 어울려주기 딱 좋은 특성이었다.

연장독의 타켓팅 화살표를 캐밀로에게 설정하자, 단전에서 빠져나간 내공이 그에게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캐밀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여전히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독을 사용하고 나서 언제 발동하는 지는 이번 실험에 꼭 알아야 하는 중요한 정보다. 

1, 2, 3, ... 60초를 세었을 때 평온해 보이던 캐밀로의 표정이 변하고 있었다. 그는 똥마려운 것을 참는 듯 배를 움켜잡고 썩어가는 얼굴이 되어갔다. 

"어이 캐밀로 왜 그래? 똥마렵냐? 하하."

"아,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니긴, 가서 싸고 와."

배를 움켜잡고 있는 캐밀로에게 다른 기사가 다가갔다. 

"야, 참으면 변비 생긴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 크윽..." 

연장독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장기에 전파되어 고통이 증가되는 독이다. 인내라는 특성 덕인지, 기사라는 자존심 때문인지 캐밀로는 버티고 있었지만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 할 것이다. 

캐밀로의 참을성은 꽤 괜찮았는지, 벌써 10분이 지났건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버티고 있었다. 

"크으윽!" 

"어이 캐밀로. 왜 그래."

"캐밀로?"

"이봐!"

연장독이 발동 된지 15분정도 지나자, 캐밀로는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는 붉어진 얼굴로 피나도록 배를 쥐어뜯고 있었다. 

"크아아악!"

"어이!"

"왜 그러는 거야!"

"배가 아팠는데 지금은 온 몸이... 아아악! 시발!"

"갑옷을 벗겨!"

하급기사를 무력화 시키는데 20분 정도가 걸리는 것 같다.

딱!

손가락을 튕겨서 캐밀로에게 걸려있던 연장독을 해독했다. 

"일단 업고 신관님께 데려가자!"

"내가 업을게!" 

기사들이 캐밀로를 업고 뛰려고 할 때 갑자기 캐밀로가 자신을 업고 있던 기사를 밀쳤다. 

"뭐야, 왜 그래."

"자, 잠깐 아픈 게 없어졌어."

"뭐?"

"무슨 소리야!"

"새끼가 이따위 장난을 쳐!"

"아니야!"

캐밀로는 못 믿겠다는 듯 자신의 온몸을 만져보았다. 

"깜짝 놀라게 하고 있어!"

"그런 장난은 하는 게 아니다. 캐밀로."

퍽!

"큭! 아니라니까!"

캐밀로가 장난을 쳤다고 생각했는지 옆에 있던 기사가 그의 뒤통수를 후렸다.

"그러게 제때에 화장실 좀 가라니까"

"그런 게 아니라고! 진짜 아팠다고!"

하지만 기사들은 여전히 그의 말을 믿지 않고 가볍게 한 대 씩 쥐어박고 웃고 있었다.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지금이 딱 좋을 것 같다.

지금 연무장의 가운데에는 대략 10명 정도의 기사가 모여 있었다. 거기다 캐밀로에게 달려오느라 모두 무기도 없는 상태라 그것을 실험하기에 이 이상의 상황은 없었다. 

살혼연은 범위를 지정하는 독, 나는 기사들이 있는 곳을 범위로 설정해서 살혼연을 발동했다. 

단전에서 내력이 빠져나감과 동시에 기사들이 모여 있는 곳에 엷은 연기가 생성됐다. 연막탄처럼 아예 안 보이는 연기가 아니라, 사람을 구별할 정도의 시야는 확보되는 연기였다. 

"이게 뭐야!"

"몰라!" 

"느낌이 안 좋아. 나가자."

"캐밀로 괜찮나? 움직일 수 있어?"

"아아, 괜찮아." 

연기에 당황한 상태에서도 기사들은 혼자 나가지 않고 캐밀로를 데리고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뭐, 뭐야!" 

"너 누구야!" 

"으아악! 거미가 거미가!"

"제기랄 왜 여기에 블랙악스가!" 

"이런 개새끼들이!" 

연기가 생겨나고 30초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연기를 마신 기사들이 헛것을 본 듯 다른 기사들에게 욕을 하며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 괴물새끼들!"

"죽여 버리겠어!"

"죽어!"

기사들은 다행히 무기를 찾기보다 맨몸으로 치고 박기를 시작했다. 

"무, 무슨 일이야! 너희들!" 

"그만두지 못해!" 

"모두 멈춰!"

살혼연에 중독된 기사들보다 상급의 기사들이 그들을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살혼연에 중독된 그들에겐 모두가 괴물로 보일 뿐이었다. 

"으아악!"

"블라인저! 블라인저를 죽여!"

"이, 이게 뭐냐고!

말리려고 다가간 기사들까지 살혼연에 중독되어서 아주 난리가 났다. 무기만 있었다면 이미 몇 명은 죽었을 것이다. 

다른 기사들이 더 들어가는 것을 보고 먼저 살혼연을 해제 했다. 

살혼연의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한 시간 정도군.

내 눈에는 누가 중독되었는지, 지속시간이 얼마인지 보였기 때문에 살혼연에 중독된 사람들까지 모두 해독 시켰다. 

"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나는 네가 블라인저로 보였어."

"너는 블랙아크였는데" 

"그 연기는 뭐였지?"

그들은 살혼연의 중독현상에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했군요."

"그러네. 대체 무슨 일이래?"

아린은 내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알아 챈 건가, 아니, 솔직히 바보가 아닌 이상 내가 뭔가를 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겠지. 

요새 여러 가지 수상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아린에게는 날을 잡고 제대로 이야기를 해줘야 할 거 같다. 

"이거 대공자가 장난 친 거 아니야?"

"대공자가? 무슨 능력으로 이런 장난을 쳐."

"그렇지 않고 서야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질 일이 있어? 갑자기 찾아 온 것도 수상하고."

정신을 차린 기사들은 나를 의심하는 눈빛을 노골적으로 뿌리고 있었다. 

"아닐 겁니다."

"뭐?"

"대공자가 온 이후에 옆에서 그를 지켜봤는데 딱히 뭔가를 뿌리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옆에 있는 집사와 대화하면서 구경만 하더군요."

"저도 옆에 있었는데 그는 구경하러 온 것 같았습니다."

뒤쪽과 옆에 앉아서 눈치를 보던 기사들이 고맙게도 내편을 들어주고 있었다. 

"음..."

"하긴 저 자가 그런 능력이 있을 리가 없지."

"그럼 대체 누가 이따위 짓을 벌인 거지?"

"일단 보고를 드리자. 얘들 부상이 심하지는 않지만 치료도 받아야 할 거 같고."

"그래."

몇몇은 부상자를 데리고 연무장을 떠났고 제일 계급이 높은 기사는 후작에게 보고를 하려고 움직였다. 

"여기는 수련하기에 좋은 곳이 아니네. 아린, 가던 데로 가자."

"네. 그러는 게 낫겠네요."

임상실험으로 알아봐야 할 것도 다 알아 보았고, 기사들의 독도 모두 해독해 주었으니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아직도 떠들고 있는 기사들을 내버려 두고 제 3 연무장을 나와서 제 4 연무장으로 향했다. 

역시나 제 4 연무장에는 아무도 없었고 가자마자, 신법수련을 하며 암기의 투척을 시작했다.

"내공이 엄청 늘었어. 이대로라면 하루 종일 암기를 던지고 신법 수련을 해도 안 지치겠는데."

한창 땀을 흘리며 기분 좋게 수련을 하고 있을 때 제 4 연무장에 누군가가 달려왔다. 

어, 쟤는 분명...

수련을 하러온 기사가 아니라, 저택의 1층에서 인형처럼 서있던 여자 하녀였다. 

"쟤가 왜 왔지?" 

"미타가 왔다는 것은 손님이 왔다는 겁니다."

"손님?"

미타는 나를 발견하고 곧바로 내 쪽으로 달려왔다. 

"헉, 헉! 대공자님."

"일단 진정해."

"헉, 네."

"천천히 숨도 고르고."

"아! 죄, 죄송합니다! 제가 인사를 깜빡하고."

그녀는 내게 인사를 하지 않았던 게 생각났는지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부들부들 떨었다. 

호감도가 올라갔다고 해도, 그녀는 여전히 나를 겁내고 있었다.

"괜찮아. 무슨 일인지나 말해봐." 

내 평온한 목소리에 그녀는 마음이 진정됐는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리아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내가 빙의 되기 전의 유렌을 패버린, 주먹 좀 쓰는 약혼녀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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