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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후작과의 내기 (3) (16/241)

후작과의 내기 (3)

우우웅

크라이드의 몸에서 얼마든지 던져보라는 패기와 자신감이 느껴졌고 눈에선 붉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아직 개방되지는 않은 특성 버서커가 약간의 힘을 빌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좋군."

새로운 기술을 시험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상대다. 

마지막 남은 단검을 힘을 빼고 가볍게 던졌다.

슈욱!

세 번째 단검은 내공만 실어서 던졌던 단검보다도 느리고 힘없이 날아갔다. 

‘지금 장난 치냐!’

‘명예를 이야기 해놓고 이 비실거리는 검은 뭐냐’

‘제대로 하란 말이야!’

크라이드가 눈빛으로 내게 묻고 있었다. 

부아앙!

그는 괴력과 버서커에서 오는 파괴적인 힘으로 자신에게 날아오는 단검을 내리쳤다. 공기가 갈라지는 듯한 기세가 느껴졌다. 

슈앙

하지만 단검은 살아있는 것처럼 그의 검로를 벗어났다.

팔랑거리는 나비처럼,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단검은 잡힐 듯, 잡히지 않고 크라이드의 품을 파고 들어갔다. 

"무슨!"

크라이드는 황급하게 검을 횡으로 휘둘렀지만, 단검을 알고 있었다는 듯 그것조차 피해냈다. 

퍼억!

"커헉!"

단검은 미끄러지듯 움직여 손잡이 부분으로 크라이드의 가슴을 치고서 땅으로 떨어졌다. 

"크으으."

단검이 가슴을 가볍게 툭 친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크라이드는 상당히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땅에 주저앉아서 가슴을 움켜쥐고 숨도 쉬지 못 하는 거 같았다. 

조절은 했지만, 단검에 담겨있던 내공이 그의 내부에 강한 충격을 준 것 같았다.

"어이! 크라이드 뭐하는 거야!"

"도련님이라고 봐주는 거냐?"

"크라이드! 너 그따위로 할 거면 나가!"

멀리서 보고 있던 관객들은 크라이드가 나를 봐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엔 크라이드가 살랑거리는 단검을 일부러 안 맞춘 것처럼 보였을 테니.

"유렌, 너 대체 뭘 배워온 거냐." 

가까이서 보고 있었던 후작은 관객들과는 달리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오늘 계속 장난기가 보이던 얼굴에 진지함이 내려서 있었다. 

"이곳에서 간단히 말할 만한 것은 아닌 거 같습니다."

"그럼 언제 말할 것이냐?"

"내일 바로 찾아가겠습니다.

"그래. 내기는 네가 이겼다. 모두 내일 이야기 하자꾸나."

"네."

이번에도 질척거릴 줄 알았던 후작은 바로 인정하고 연무장을 나갔다. 

"끄응..."

아직도 고통스러워하는 크라이드에게 다가가서 그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내력을 흡수했다. 

"대공자님이 무언가 해주신 겁니까? 고통이 사라지고 무언가 따스한 기운이..."

나는 말없이 빙긋 웃었다. 

"감사합니다."

"아니야."

"저기..."

크라이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처음에 단검이 천천히 날아올 땐 대공자님이 절 무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건 제가 상상도하기 힘든 절묘한 신기(神技)였습니다." 

솔직하게 칭찬을 듣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그런 신기를 한 달 만에 익히셨을 리 없을 테니, 역시나 제 예상대로 지금까지 실력을 숨기시고 계셨던 거군요."

"응?"

이 놈 뭐라는 거지?

"무언가 비밀세력이 후작가를 노리는 겁니까? 그래서 지금까지 힘을 숨기신 겁니까?"

"으응?"

맞다. 얘, 음모론 같은 거 좋아했지.

"어쩐지, 록스 가의 자제분들은 모두 인중룡(人中龍)이신데 대공자님만 겉도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위대한 희생이셨군요!"

나는 가만히 있는데 혼자서 내 사연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세력을 상대 하실 만큼 강해져서 실력을 밝히신 거구요."

"하아..."

이 녀석의 말을 듣고 있으니 갑자기 피곤해졌다. 거기다 갑자기 이렇게 친한 척을 하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설마.

[창조주의 눈을 발동합니다.]

혹시나 해서 창조주의 눈을 다시 켜보았다. 

[이름: 크라이드]

[특성: 버서커, 괴력lv1]

[호감도: 26 (호감) ]

헐, 순식간에 호감도가 40이 넘게 올랐어. 누가 버서커 아니랄 까봐 단순한 거 보소.

한 번 겨루고, 아픈 것 좀 도와주고, 착각하고 있는 거 놔뒀더니 지 혼자 호감도가 수식 상승했다.  

"앞으로 비밀조직과 싸울 때 제가 필요하시다면 얼마든지 불러주십시오! 목숨을 바쳐서 싸우겠습니다."

당연히 비밀조직이 있긴 하지, 근데 지금은 상관없어.

어찌됐든 좋은 일이긴 했다. 나중에 혼자서 기사단을 쓸어버리는 버서커 크라이드와 친해졌으니.

놔두면 알아서 계속 호감도가 상승할 거 같아서 그가 착각하고 있는 거에 대해 아무 말하지 않았다. 

내가 저택으로 돌아갈 때까지 크라이드의 착각은 계속 되었다. 지금도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제가 다 소문내겠습니다! 대공자님은 망나니가 아니셨다고! 저만 믿으세요!"

**

"수고하셨습니다."

"아, 고마워."

아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내방에 들어오고 나서 입을 열었다. 

"마지막에 그것은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아, 그렇지 신기술이야. 어땠어?"

아린은 쉽게 대답하지 않고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했다. 

"그것을 보고 머릿속으로 가상의 대련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본적 없이 그것을 처음으로 상대한다면 죽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린은 표정 변화 없이 솔직하게 말했다.

"그렇군. 아린."

"네?"

"물어볼게 있어."

"네. 말씀해주세요."

[창조주의 눈이 발동합니다.]

[이름: 아린]

[특성: 쾌검lv2, 명경지수(明鏡止水)lv1, 오러적응lv1]

[호감도: 28 (호감) ]

호감도가 또 올랐어. 지금의 그녀는 어떻게 반응할까.

"너는 내 집사로 있는 것에 만족해?"

아린은 내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듯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너는 어렸을 때부터 기사교육을 받았지. 아마 그대로 계속 교육 받았다면 이미 기사가 됐을 거야."

"그렇겠지요. 후작님도 충분하다고 하셨으니."

"그런데 너 요즘에 수련 거의 못 하고 있잖아."

내가 수련을 시작하고 나서 아린이 나를 챙겨주다 보니, 그녀의 개인시간은 거의 없었다. 

"괜찮습니다. 제가 선택한 거니까요."

내가 안 괜찮다. 

솔직히 그녀의 특성 쾌검과 오러 적응은 나름 흔한 재능이다. 하지만 명경지수는 희귀하고 강력한 특성이다. 

한 번 본 기술을 파악해서 대응하는 무서운 특성이다. 그녀에게 같은 기술은 통하지 않는다.

좀 전에도 이미 곡사는 한 번 봤으니까. 막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뭐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실제로 곡사를 막지는 못하겠지만.

이대로 내 집사로만 놔두기엔 그녀는 너무 아까운 재능을 가지고 있다.  

"솔직하게 물어볼게. 기사가 되고 싶어?"

아린은 몇 번이나 입을 움찔거렸지만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내일 후작님께 찾아갈 거야. 그전까지 생각을 정리해서 내게 말해줘."

"그..."

그녀가 입을 열려고 할 때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물론, 네가 기사가 된다면 내 기사가 되는 거야."

"대공자님의 기사요?"

"그래. 넌 내 집사고 내 사람이니까. 기사도 내 기사가 되어야지."

너 같은 인재를 다른 놈한테 넘겨줄 수는 없지.

"그렇군요..."

그녀는 길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연신 흔들리던 눈빛이 평소처럼 안정되었다. 

"그럼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

후작이 이야기하자고 한 것을 지키기 위해 다음날 나는 후작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한참 기다린 후에나 들어오라는 허가가 떨어졌다.  

"들어가시지요."

집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집무실 문을 열었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전과는 달리 책과 종이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후작 각하를 뵙습니다."

내 뒤에 있던 아린이 무릎을 굽히고 의자에 앉아 있던 후작에게 정중한 인사를 했다. 

"넌 아비를 보고도 인사 안하냐?"

"안녕하세요."

"끄응. 네게 바란 내 잘못이지."

인사해달라고 해서 해줬더니, 후작은 얼굴이 붉게 변했다. 

"네가 어제 썼던 기술은 대체 뭐냐? 서적들을 뒤져 보아도 그런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약간 방향을 틀어서 투척하는 것은 흔하지만, 그렇게 교묘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본적도 없고 어느 책에도 나오지 않아."

후작은 어제 돌아간 이후 지금까지 책을 뒤지며 곡사에 대해 찾아보려고 했나 보다. 

"네가 수련을 시작한지 한 달 하고 조금, 아무리 불세출의 천재라고 해도 그사이에 그런 기술을 홀로 익히는 건 불가능하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천재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말장난 하지 말거라."

오늘은 장난 칠 생각이 없는지, 후작은 무게감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걱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나쁜 것에 홀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나는 미리 준비한 것을 머릿속으로 다시 한 번 정리했다. 

"후작님이 생각하셨던 것처럼 평범한 것은 아닙니다. 저도 물론 천재가 아닙니다. 저는 제 4 연무장에서 특별한 것을 얻었습니다."

"특별한 것?"

"네. 제 4 연무장에 있는 단검과 단도가 모여 있는 무기고 서랍 밑에서 한권의 책을 주웠습니다."

나는 예전부터 생각해 두었던 말을 꺼냈다. 

제 4 연무장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오지 않고 단검과 단도가 들어있는 서랍은 먼지가 끼다 못해 검게 때가 낄 정도다. 그곳에서 뭘 주웠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책이라고?"

"예. 책의 겉면은 별 문양과 알 수 없는 수식이 가득했습니다."

"으음..."

"별 생각 없이 책을 펴봤는데 머릿속으로 뭔가가 빨려 들어오더니, 책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마도서!"

내 말을 들은 후작은 놀랐는지 책상을 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도서요?"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모른척하고 되물었다. 

"그래. 책을 펼치자마자 사라졌다면 그건 마도서다. 혹은 기술서라고 하지."

"그렇군요."

물론 알고 있다. 내 설정인데 모를 수가 있나. 

뛰어난 마법사의 힘을 빌려 자신의 기술이나 마법을 책에 새겨서 전수하는 것이 바로 마도서다. 

"저는 그것을 읽고 나서, 단검을 어떻게 던져야 빠르고 강하게 던질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상대의 방어를 피해서 맞출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 마도서라면 그럴 수 있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다만..."

후작은 무언가 불안한 것 같았다. 

"누가 그곳에 책을 놔두었는지 모르겠구나. 마도서는 부르는 게 값이다. 아무리 투척에 관한 거라도 경매에 내놓으면 3대가 평생 놀고먹을 돈을 벌 수 있어. 그런 물건을 그곳에 놔둔 게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구나." 

"그렇죠. 그런데 생각해봐야 알 수 있는 것도 없잖아요. 그냥 땡잡았다고 편하게 생각하죠."

실제론 마도서도 없고, 주인이 나타 날 리도 없으니까.

"전혀 불안해하지 않는 구나. 통이 큰 건 그대로야."

"당연하죠."

후작은 내 얼굴을 보고 피식 웃었다. 

"어제 내기는 네가 이겼으니, 더 이상 검을 배우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다. 마도서의 기술을 익힐 수 있는 네겐 필요 없겠지."

"네."

"그렇지만 하나만 더 말해주마." 

"경청하겠습니다."

"세상엔 실력보다도 보이는 게 중요한 경우가 있다. 지금은 검이 지배하는 시대다. 너는 실력보다 못한 대우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다른 가문의 기사들은 너를 인정하지 않을 거다."

후작의 말은 타당한 부분이 있었다. 그는 여러모로 나를 생각해주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이 힘으로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실적을 쌓겠습니다. 저를 무시하는 놈들을 밟고 그 위에 서겠습니다."

"크하하하! 너는 정말로 변했구나. 그래, 록스라면 그 정도 마음가짐은 갖춰야지!"

후작은 내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입가의 미소가 내려가지 않았다. 

"그럼 이제 약속 차례군. 네가 바라는 것을 말해 보거라."

나는 내 뒤에 조용하게 서있는 아린을 살짝 본 후 입을 열었다.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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