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신룡굴 (2) (27/241)

신룡굴 (2)

"저, 저기 대공자님. 여긴 대체 뭡니까?"

"뭐긴 뭐야. 동굴이지. 빨리 들어가."

"아! 네."

기라녹스는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나는 다시 한 번 주변을 확인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쿠구구궁

무슨 센서라도 있는 건지, 우리 두 명이 다 들어가니까 문은 알아서 닫혔다. 

탁탁탁탁

좀 전까지 어두웠던 동굴은 문이 닫히자마자 형광등 켜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천장에서 주르륵 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와, 이런 건 처음 봐요. 대공자님..."

"네가 촌놈이라 그래. 이런 건 흔하지."

"그, 그렇군요..."

[흔하기는 개뿔. 너 진짜 뭐하는 놈이야!]

‘뭐가.’

아그네스가 오랜만에 말을 걸어왔다. 그녀의 목소리엔 숨길 수 없는 놀라움이 담겨 있었다. 

[이런 곳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대예언자가 말해줬는데’

[웃기고 있네. 대 예언자가 호구냐. 너한테만 다 알려주게? 그들은 지위, 계급, 돈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아. 네가 후작 아들이 아니라 후작이라도 이정도의 정보는 못 얻는다고]

‘진짠데?’

[이익 너!]

아그네스가 생각보다 눈치가 좀 있네. 

[야 이 주인자식아 말해!]

"흐흐흥."

나는 아그네스의 질문을 콧노래로 넘기면서 계속 길을 따라갔다. 

"기라녹스."

"네."

둥글고 커다란 벽이 튀어나와 있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기라녹스를 불렀다.

"여기가 어딘 줄 알아?"

"글쎄요?"

"너희들이 신룡굴이라고 부르는 곳이 바로 이 옆이야."

옆에 둥글게 튀어난 온 벽을 치면서 말했다. 

"네?"

"벽이 좀 많이 두껍긴 한데 여길 넘어가면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 절을 하는 곳이라고."

"그, 그럼..."

"그들은 지금 너하고 나한테 빌고 있는 거지."

"에엑!"

내공의 감각 덕에 벽 뒤에 있는 사람들이 절하는 게 그대로 느껴져서 뭔가 웃음이 나왔다. 

"세간의 전설 같은 것들은 실제로 보면 대부분은 별거 없지."

소설을 쓰면서 여러 가지를 엉키게 만들다 보니, 전설은 정말 별게 아니고, 동네에서 흔히 볼만한 가벼운 게 무겁게 되기도 했다. 

"그런데 제가 듣기로는 이런 곳엔 함정이 있다고 하던데..."

"이제 나와."

이곳의 함정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함정의 목적은 침입자 격퇴라기보다는 확인의 용도이기 때문에 딱히 별건 없을 거다. 

"거기 밟지 마. 딱 보이지?"

"아, 네!"

기라녹스는 내 말을 듣고 너무도 노골적으로 튀어나온 돌을 간신히 피했다. 

"이거 밟았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여기 전체가 불지옥이 될 걸."

"헤엑?"

함정이 간단하다는 거지, 함정을 밟고 나선 정말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를 집중해서 걸었다. 

"도착이군."

길의 끝에 도착하니, 문도 없는 빈공간이 나타났다. 

"어, 어라?"

"흠..."

방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빈 동굴 같은 모습이었다. 

"별게 없네요."

"하하! 그럴까?"

기라녹스와는 달리 안심했다. 스토리가 바뀌어서 여기도 누가 다녀갔을지 몰랐는데, 다행히 아무도 오지 않았다. 

동굴의 정 가운데에는 이 동굴에 들어 올 때 잡아당겨 열었던 구멍과 비슷한 모양의 구멍이 있었다.

덜컹.

구멍 안에 손을 넣자, 당길 수 있는 손잡이가 느껴져서 그것을 바로 당겼다. 

쿠구구...

"오오!"

손잡이를 당기자마자, 땅이 갈라지고 돌로 된 낮은 탁자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탁자 위에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황금색의 주머니와 금은방에서 반지를 넣어주는 작은 상자 같은 게 있었다. 

달칵.

탁자로 가서 작은 상자를 열자 화악하고 청량한 향기가 방안을 채웠다. 그 안에는 황금색의 구슬이 들어있었다. 

"맞군."

[이, 이건...]

"호오, 너 이걸 알아?"

[옛날 내 주인이 이걸 먹은 적 있어. 전사의 옥이잖아!]

아그네스의 옛 주인 따위는 제대로 설정한 적 없기 때문에 그가 이 구슬을 먹었다는 게 새로웠다. 

이름만 봐도 할 수 있듯이 전사의옥은 전투와 관계있는 물건이었다. 

예전에 사천당가 특성이 끝까지 개방되지 않는다면 이것을 찾아서 먹고 검을 익히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전사의옥은 어떤 쓰레기 몸이라도 전투에 가장 적합한 신체로 바꾸어주는 물건이다. 신체의 근력과 유연성, 민첩성 등이 더 이상 상승하지 않을 정도로 한 번에 상승한다. 

단순히 말해서 극한의 피지컬을 만들어 준다. 

"좋아. 좋아."

전사의옥을 주머니에 넣고 이번엔 옆에 있던 황금 주머니를 들어보았다. 

"어디..."

주머니의 안을 들여다보니, 황금빛바다가 보이고 있었다. 내가 평생 써도 다 못 쓸 만큼의 엄청난 금화가 물결치고 있었다. 

"심봤다!"

"대공자님 안에 뭐가 들었습니까?"

촤라락!

기라녹스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주머니 속에서 금화를 쥐고 꽃가루처럼 허공에 뿌렸다. 

"우와!"

마법주머니는 등급마다 그 안에 들어가는 용량이 다른데, 가장 높은 등급인 황금색 주머니는 컨테이너박스 두 개 분량을 넣을 수 있다. 

이 주머니엔 못 해도 컨테이너 박스 하나 분량의 금화가 담겨 있었다. 나는 히죽이면서 몇 번 더 금화를 허공에 뿌렸다. 

어라, 갑자기 등골이...

갑자기 등골이 오싹한 게 소름끼치는 감각이 느껴졌다. 

이런 느낌 처음인데, 빨리 나가야겠어.

"야 빨리 금화 주워."

"엑! 주우라고 하실 거 왜 뿌리셨습니까?"

"인마, 금화를 주웠으면 뿌려보는 게 인지상정이지!"

"그, 그런가요..."

기라녹스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별말 하지 않고 금화를 주웠다. 

"그건 너 가지고 있어. 혹시 필요할지 모르니까."

"헉, 너, 너무 많은데요."

기라녹스가 주운 금화는 내가 그의 가게를 정리할 때 줬던 것의 몇 배는 넘었다. 

"됐고 가져가."

"정말 감사합니다."

"볼일 다 봤으니, 이제 나가자."

"네."

이곳은 고대부터 존재했던 한 단체의 거점 중 하나이다. 그들이 힘을 잃었을 때를 대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인데 소설 상에선 우연히 이곳을 찾은 약초꾼이 이 힘을 얻게 된다. 

약초꾼이든, 그 악마 같은 놈들이든 마주치기 싫었기 때문에 빨리 나가는 게 좋을 거 같았다. 

나와 기라녹스는 곧바로 동굴을 나간 후 산을 내려갔다. 아직도 산은 올라가고 내려가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산 아래로 내려오니, 기념품 가게와 여러 주점 들이 널려있어서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대공자님 너무 복잡하니까, 일단 다른 곳으로 움직이시는 게 어떨까요?"

"그렇게 하자."

어?

기라녹스의 말대로 복잡한 곳을 빠져나가려고 할 때였다. 

자연스럽게 내 모든 감각이 한 명의 여자에게 쏠렸다. 시각, 청각, 후각 모든 것이 당연한 듯 그녀를 향했다.

그녀는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을 들러리로 만들 정도의 압도적인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일리아가 청초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 여자에게선 세상을 끌어당기는 매혹의 향기가 풍기고 있었다. 

왜지, 왜 아무도 모르는 거야!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모를 수가 없건만 누구도 이 절대적인 미모의 여성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녀는 세상에 홀로 존재 하듯 도발적인 걸음걸이로 산을 향하고 있었다. 

저 여자 설마!

이 기이한 현상을 보고 나니 그녀가 누구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빠직!

재빠르게 시선을 돌리려고 했지만, 아주 잠시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 순간 영혼이 빠져나갈 것 같은 아찔함이 찾아왔다.  

모른 척, 모른 척해야 해. 

이빨을 부서질 정도로 세게 깨물며 정신을 다잡았다. 

"야, 안주가 맛있는 술집 어디 없냐?"

"아까 산 쪽에서 들으니까, 용왕의 휴식이 괜찮다고 하던데요."

"그러면 거기서 한잔 할까?"

"정말요?"

아무 것도 모르는 척하며 기라녹스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 거기서 한잔 하자."

말을 하며 다시 스치듯 고개를 돌릴 때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나를 보고 있었다. 

아니야, 아직 들키진 않았어.

"오, 전 좋습니다."

멈춰있는 그녀를 자연스럽게 스쳐지나갔다. 돌아보고 싶었지만, 등에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고 있어서 돌 수가 없었다. 입술을 깨물면서 계속 앞으로 걸었다. 

"아까 저희 앞에 가던 관광객이 술은 꼭 용왕흑맥주를 시켜야 한 대요."

"그래? 그럼 그거 시키고 안주는..."

기라녹스와 잡담을 주고받으며 관광지를 빠져나가 마을로 들어갔다. 

"하아, 하아..."

"대공자님?"

식은땀으로 전신이 도배가 되어있었다. 

왜 저 괴물이 여기 있는 거지? 설마 신룡굴에 가려 했던 건가!

이곳에 그녀가 볼일은 신룡굴 밖에 없었다. 그녀는 확실히 신룡굴을 알고 있지만 내 소설 속에서 그녀가 신룡굴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또 무언가 변했어...

"기라녹스."

"넵!"

"술 약속은 취소다."

"엑?"

최대한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일단은 아스성으로 돌아간다."

워프를 이용하는 부자들은 한 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워프를 사용했다간 그 괴물에게 들킬지도 모른다. 

"알겠습니다."

기라녹스는 잠시 당황했지만, 내 표정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대공자님!"

"어."

정신을 다른 곳에 두고 걷다가 기라녹스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더 이상가도 여관은 보이지 않을 텐데, 오늘은 여기서 쉬었다 가요."

기라녹스의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해는 이미 져서 어두워져 있었고, 주변에는 몇 개의 여관과 일반 가정집밖에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서 쉬자."

"넵!"

가볍게 식사를 마친 후, 방으로 올라가서 곧바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하아, 벌써부터 마주치다니 완전 예상외인데..."

아까 만난 여자는 주인공조차도 중후반에 가서야 얼굴을 보는 인물이다. 벌써부터 마주치다니, 절대 좋은 일이 아니다.

"어쩔 수 없군."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다. 

나는 황금 주머니에서 오늘 얻었던 전사의옥을 꺼냈다. 

덜컥.

"그래 아낄 때가 아니야. 아끼다 똥 된다."

상자 안에 있는 황금색 구슬을 꺼내서 그대로 입에 넣었다. 

스르르

구슬은 입에 들어가자마자, 물처럼 변해서 스스로 목구멍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크흑!"

액체로 변한 전사의 옥이 온 몸으로 퍼지는 것을 느끼자, 눈앞에 메시지들이 나타났다. 

[전사의옥을 복용하셨습니다.]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진행합니다.]

[만독자전신기가 환골탈태 과정을 돕습니다.]

[두 힘의 융화로 더 강한 신체로 변화합니다.]

[천무지체(天武肢體)로 신체를 각성합니다.]

[특성 천무지체(天武肢體)를 습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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