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바다에서 (39/241)

바다에서

"장난하는 겁니까? 샤크라이 킹이라니! 그딴 게 어디 있습니까?"

입을 다물지 못하고 얼을 타던 사람들 중 콜린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맞습니다. 들어본 적도 없어요!"

"샤크라이를 100마리 넘게 잡았다는 것도 안 믿기는데 샤크라이 킹이 말이 되는 소립니까!" 

콜린만이 아니라, 우리 진형을 제외한 모두가 필로의 말을 믿지 못 하고 있었다. 나도 직접 보지 못했다면 믿기 힘들었을 테니, 그들의 반응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꺼낼까요?" 

"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필로는 품에서 마법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쿵!

필로는 주머니에서 일반 샤크라이의 머리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샤크라이 킹의 머리를 꺼냈다.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도 전혀 부패가 되어 있지 않았다. 

"세상에..."

"샤크라이의 세 배는 되겠는데!"

"저, 정말 샤크라이 킹이라는 게 존재했어?"

이미 샤크라이 킹을 봤던 우리 진형의 병사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기겁을 하며 놀라고 있었다. 

"하나 더 있습니다."

쿵!

이번에 나온 것은 트롤의 척추를 뽑은 것 같은 뼈칼이었다. 대체 무슨 생물의 뼈로 만든 건지 알 수 없는 무기다.

"아..."

"저건 무슨 뼈지?"

"지, 진짜인가?"

샤크라이보다 최소 두 배는 큰 머리통, 인간은 사용 할 수 없을 거 같은 거대한 무기, 이 두 개를 본 사람들은 이제야 샤크라이 킹에 대해서 믿기 시작했다. 

"후작 각하께서는 알고 계실 겁니다. 3m는 되어 보이는 신장에 전신에 있는 문신, 그리고 이 뼈칼까지, 문헌에 적혀있던 그대로의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나도 기억하고 있네."

"혹시나 연구가치가 있을지 몰라 몸통은 후작가로 보냈습니다.  그 몸통을 보시면 확실하게 믿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까지 안 해도 자네의 말은 당연히 믿고 있네. 우리가 1, 2년 된 사이도 아니고,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말게나."

후작은 씩 웃으며 필로의 어깨를 두드렸다. 필로는 정중하게 후작에게 고개를 숙였다.

"샤크라이 킹은 단순히 도약한 것만으로 성벽을 무너뜨렸습니다. 대공자께서 놈을 처리하지 않았다면, 저희는 도망치지도 못하고 전멸했을 겁니다."

도약만으로 성벽이 부서졌다는 말에 충격을 먹었는지 병사들이 뜨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이후엔 육지로 올라온 샤크라이 떼와 샤크라이 킹에 의해서 저희 영지가 쑥대밭이 되었겠죠. 뒤늦게 지원이 와도 이미 수백의 사람이 죽은 뒤 일겁니다."

"그, 그럼 그놈을 어떻게 잡은 겁니까?"

"좀 전에 말씀 드렸듯이 대공자님이 혼자 잡으셨습니다. 저희 진영의 모든 병사들이 그 증인입니다."

"허어?"

"어, 어떻게..."

콜린은 넋을 잃은 표정으로 말조차 하지 못했고, 내가 혼자 샤크라이 킹을 잡았다는 말에 사람들도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예전에 보여준 그 능력을 사용 한 것이냐?"

"맞습니다."

"정말 엄청난 능력을 얻었구나."

후작은 나를 완벽하게 믿고 있는 건지, 더 이상은 묻지 않고 내 등을 두 번 두드려 주었다. 

"네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구나."

"아닙니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허어..."

사회인의 겸손이 담긴 대답에 후작이 탄성을 내었다. 후작의 호감도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콜린."

앞으로 가서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콜린을 불렀다. 

"으, 왜, 왜 그러시오."

"쓰읍..."

마음에 들지 않는 대답에 가만히 그를 노려보자, 콜린이 눈동자를 돌리기 시작했다. 내가 화가 난 것처럼 이를 드러내자, 콜린이 화들짝 놀라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위, 위대하신 형님..."

"응?"

콜린의 말에 후작이 황당한 듯 니들 뭐하냐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피식 웃으면서 한 걸음 더 앞으로 움직였다. 

"솔직히 샤크라이 킹에게 1만점 준 거 과하다고 생각하지?"

"무슨 소리를 하려고..."

"1점으로 하자."

단상위에서 콜린과 똑같은 비틀어진 웃음을 지으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샤크라이 킹 말이야. 볼라크를 잡을 때처럼 쉽게 잡았거든. 그니까 1점으로 해줄게. 그래서 나는 8231점, 너는 7354점. 이래도 내가 이기네. 형으로써 좀 져주고 싶었는데, 져줄 수가 없다."

"크으윽!"

"첫 번째 시험은 내가 너무 쉽게 이겼으니까, 두 번째 시험에서는 좀 비등비등해서 재밌었으면 좋겠는데. 분발해라."

"으으..."

콜린은 분해죽겠는데 할 말은 없는지, 핏대를 올리며 끙끙대고 있었다. 

"하하하!"

콜린의 얼굴이 점점 벌겋게 변하는 모습을 보자, 속이 시원해졌다.

"얄밉게 말했지만 유렌의 말이 맞다. 이번 출정은 첫 번째 시험일뿐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시험보다도 너희들에게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 말씀은..."

후작이 무슨 뜻으로 경험이라는 말을 꺼냈는지 알거 같았다.

"록스의 주인은 매년 끝없이 몰려드는 몬스터들과 전쟁을 치러야 하고, 많은 병사들이 다치고 죽는 모습을 봐야 한다. 너희 생각만큼 편하고 행복하기만 한 자리가 아니다. 록스의 이름은 그 찬란한 명예만큼이나 무겁다." 

후작은 내가 훗날 가주가 되었을 때 당황하지 않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미리 경험을 시켜준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허흠, 시험 이야기는 돌아가서 계속하기로 하고, 늦기 전에  뒤에 있는 배에 가서 타거라."

바다 위에 작은 범선이 하나 떠 있었다. 해적 영화에서 본 유럽의 범선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갑판이 생각보다 넓어 보였다.

"저 함선은 은신 마법이 걸려있어서 해양몬스터들에게 들키지 않고 근처를 항해 할 수 있지. 인근 해안을 돌며 주변에 이상한 일이 없는지 확인하는 게 이곳에서의 마지막 임무다."

"알겠습니다."

"이 일 역시 너희가 후작이 된다면, 매 년 해야 하는 일이다."

"네."

"알겠습니다."

우리는 후작을 따라서 선박에 올랐다. 마법이 걸린 배라고 하더니, 돛이나 돛대 부분이 여러 가지 빛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대공자님. 저기 마법사들도 있어요."

"마법을 사용하는 배니까, 당연히 있겠지."

갑판을 돌아다니는 2명의 마법사를 보고 페루가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여기 탄 인간들은 죄다 날 싫어하는 인간들이네."

무거운 갑옷 대신 경갑을 입은 수룡기사단의 기사들이 배에 타고 있었는데 창조주의 눈으로 살펴보니, 여전히 나를 싫어하는 상태였다.

"그나마 요새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줘서 저 정도겠지."

예전에 봤던 –90이 넘는 수치에 비하면 상당히 낮아졌지만, 여전히 상당한 마이너스 호감도였다. 

"하아..."

그들을 보고 있으니, 답답해져서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다 구경이라, 나쁘지는 않지만..."

출정에 나와서도 열심히 수련한 덕분에 지금 만독자전신기는 4성의 끝자락에 도달해 있었다. 바다구경 보다는 빨리 돌아가서 독을 먹고 5성을 달성하고 싶었다. 

"출항한다. 닻을 올려라!"

후작의 외침에 닻이 올라가고 배가 부드럽게 나아갔다. 마법 때문인지 현대의 대형선박을 타고 있는 것처럼 흔들림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멀미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유렌, 콜린, 라온 이쪽으로 오거라."

배의 가장 앞부분인 선수에서 후작이 손짓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듯 그의 얼굴에서 들뜬 감정이 느껴지고 있었다. 

"설명을 해주마. 저기 동쪽에 있는 강아지 형태의 산이 있는 곳이 폴리안 섬이다. 만타르가 많이 살고 있는 섬이지. 그리고 저긴..."

후작은 우리들에게 이곳의 지형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섬에서 무엇이 나오는지, 어떤 섬인지를 설명해주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아들과 여행을 나온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잘 기억해두어라. 나중에 다 쓸 일이 있을 테니."

"네."

"감사합니다."

"바다가 조용하니 평화로워 보이지?"

"네. 잔잔한 게 기분이 좋습니다."

"후후."

후작이 너그러워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나와 콜린, 라온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이 깨끗하고 조용한 바다를 너희가 만든 거다."

"네?"

"너희들이 몬스터들을 막아내지 않았다면 이곳은 이렇게 평화롭지 않아. 지금도 몬스터들로 바글바글 거리고 있었겠지. 너희 덕에 이렇게 깨끗한 바다가 된 거다."

후작은 그 이후로도 이것저것을 설명하고 알려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무슨 말씀을 듣고 오셨습니까?"

"그냥 이곳저곳에 대한 설명을 듣고 왔어."

후작과 이야기를 마치고 일행이 있는 왼쪽 갑판으로 가니, 페루가 궁금한 듯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후계자 수업인가요?"

"뭐, 그렇지."

물결치는 바다를 보고 있으니, 얼마 전에 보았던 깨진 방들이 생각났다. 여러 가지를 생각해봐도 그 방의 정체를 알 수가 없다. 

"하아..."

"괜찮으십니까?"

내 한숨을 들었는지, 오늘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아린이 말을 걸었다. 요새 느끼는 거지만 아린은 나와 둘이 있을 때는 말을 해도, 다른 사람들이 많으면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괜찮지. 너는 어때? 배 처음 타는 건데 괜찮아?"

"네. 멀미는 하지 않는 거 같습니다."

"다행이네."

"신기하네요."

아린이 먼 바다를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신기하다고?"

"몇 달 전만 해도 대공자님과 이곳에 같이 오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렇지. 그때는..."

내가 아니었다는 말을 입속에서 삼켰다. 

"기사가 되게 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요새 정말 행복하다는 게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린은 작지만 진심에서 나오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니야."

민망함이 느껴져서 김빠진 웃음을 짓고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쿠웅!

"윽!"

"무, 뭐야!"

"헉!"

무언가와 부딪쳤는지 배가 크게 요동쳤다.

"모두 침착해! 자리를 이탈하지 말고, 근처에 고정 된 것을 꽉 잡아라!"

"네!"

"항해사!"

후작은 모두를 안심시키고, 곧바로 조타수와 항해사를 찾았다.

"후, 후작각하."

"무슨 일이냐!"

"이곳은 암초가 없는 바다입니다. 무엇과 충돌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음..."

후작은 불안한 눈으로 일렁이는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촤아아악!

나도 고개를 돌려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뒤에서 무언가가 파도를 헤치고 바다 위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아..."

"으어..."

뒤들 돌아보기도 전에 사람들의 신음 소리가 먼저 들렸다.

배에 탄 사람 대부분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들이다. 그런 자들을 말조차 하지 못하게 만든 존재가 내 뒤에 있다는 것에 소름이 돋았다. 

"아..."

놈은 강철같은 비늘에 감싸여 있었고, 등에는 칼날 같은 지느러미가 세워져 있었으며, 머리에는 인간의 몸통만한 두 개의 뿔이 달려있었다. 

인간을 내려다보는 사안(蛇眼)에는 흉악(凶惡) 그자체가 담겨있었다. 

"씨 서펜트..."

[창조주의 눈이 발동됩니다.]

[씨 서펜트]

바다의 정령 혹은 바다의 악령이라 불리는 해양몬스터. 정령이라 불리는 이유는 마주치기 힘들기 때문이고, 악령이라 불리는 이유는 마주친 사람을 살려두지 않는 흉폭성 때문이다. 씨 서펜트는 개체마다 다른 독을 지니고 있으며, 독에 고통 받는 사냥감들을 죽을 때까지 지켜보는 지독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기술: 포이즌 오브(특수), 드래고니어(물리), 탐지(보조)

"모두 전투 준..."

파악!

후작조차 당황하여 멈칫거렸을 때 먼저 움직인 것은 씨 서펜트였다. 놈의 입에서 초록빛을 띄고 있는 거대한 구슬이 튀어나왔다.

"모두 피해!"

소리를 내지르고 씨 서펜트의 앞으로 달려 나갔다. 무슨 독인지는 모르겠지만, 심상치가 않았다.

파파파파팡!

커다란 녹색의 구슬이 빠르게 회전을 하며 수백 개의 작은 구슬이 되어 갑판위에 우박처럼 쏟아졌다. 

"으아악!"

"아악!"

"마, 맞았어!"

"젠장!"

독 구슬의 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갑판위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독을 맞았다. 그들은 절망에 빠진 눈빛으로 독을 맞은 부위를 보고 있었다.

나 역시 서펜트의 독을 맞았다. 하지만...

내 반응은 그들과 달랐다.

[독(씨 서펜트-사혼)에 중독 되셨습니다.]

[특성 백독불침(百毒不侵)이 독(씨 서펜트-사혼)의 고통과 증상을 제거합니다.]

[만독자전신기(萬毒磁電神氣)가 독(씨 서펜트-사혼)을 흡수합니다.]

[만독자전신기의 성취도가 올랐습니다.]

[만독자전신기가 5성에 도달했습니다.]

[진화골산(眞化骨散)이 개방됩니다.]

[상대의 독을 흡수 할 수 있는 흡독지력(吸毒之力)이 개방됩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