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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재등장 (44/241)

재등장 (수정)

"대공자님."

후작에게서 돌아온 후 가져갈 물건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 문 밖에서 아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수련을 하다가 찾아왔는지, 아린은 얼굴과 머리카락에 약간의 흙이 묻어있었다.

"대공자님과 같이 갈 기사단이 정해졌습니다."

"은수리 기사단이겠지."

"알고 계셨습니까?"

놀랐는지, 아린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뻔하잖아. 수룡기사단은 출정에 나갔다왔고, 백상 기사단은 가문을 지키는 기사단이니까, 은수리 밖에 없지."

"그렇군요."

은수리 기사단의 단장인 카록스는 후작 부인인 카이나의 오빠다. 

카록스는 내게 독을 푸는 음험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후작에게 만큼은 충성심 강한 기사를 연기하고 있기 때문에 후작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이번 일에 그를 선택했을 거다.

내가 경고를 했기 때문인지 지금은 잠잠하지만 나는 카이나와 카록스가 이대로 가만히 있을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미 그들에게 경고를 했기 때문에 다시 나를 건드린다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기사단이 결정된 걸 말해주려고 온 거야?"

"네? 네."

정보를 알아내서 바로 알려주려고 왔다니, 예전의 아린과는 사람 자체가 달라 진 것 같았다.

"고마워."

"아닙니다. 출발은 모레 아침입니다. 마탑에서 워프 지원이 나올 겁니다."

"그래."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린은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창밖을 보니, 다시 연무장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나도 그렇지만, 아린도 정말 많이 변했군."

**

다음 날 기라녹스를 찾아갔다. 

"수리 부탁한 건 다 됐어?"

"물론입니다."

기라녹스는 비도 10자루가 들어있는 새까만 허리띠를 가져다주었다. 

"사실 수리 할 것도 없었습니다. 깔끔하게 사용하신 모양이에요."

"수리 맡길 때도 말했잖아. 샤크라이 킹을 잡을 때만 사용했다고."

"하하! 그러셨죠."

십이비도의 수리를 맡길 당시에 기라녹스는 자신이 만든 무기에 샤크라이 킹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했었다. 

"뭐 불편하거나 건드는 사람은 없어?"

"아무도 없어요. 너무 잘해주셔서 부담 될 정도입니다."

"그럼 다행이고. 지금은 좀 바빠서 나중에 다시 들릴게."

"아, 잠시 만요!"

출발 준비를 아직 마치지 못 했기 때문에 바로 방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기라녹스가 급하게 나를 말렸다.

"주문하신 거 완성됐어요!" 

"벌써?"

"만들다 보니 재밌었거든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새면서 만들었죠."

기라녹스는 그 말을 하며 붉은 색 천으로 감싸진 물건을 가져다주었다.

"음..."

붉은 천안에는 작은 낫이 두 자루 있었다. 손잡이에는 구멍이 있고, 날은 톱날처럼 날카롭게 갈라져 있었다. 

"어때요?"

기라녹스가 먹이를 기다리는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괜찮다 정도가 아니야. 최고로군."

"하하하!"

이 작은 낫은 내가 기라녹스에게 부탁한 암기였는데, 그는 5일도 걸리지 않아서 내가 원한 물건 이상의 것을 만들어 냈다.

"대공자님이 위험한 곳에 가신다고 들어서, 어제 밤새며 만들었는데, 겨우 시간에 맞췄네요."

그의 마음씀씀이가 보이는 것 같아서 가슴이 따뜻해졌다. 

"고맙다. 잘 쓸게."

"네. 그거면 됩니다."

**

다음날 새벽, 워프 장소로 가자.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페루."

"네."

"어제 보고된 인원 그대로 왔는지 확인해봐."

"알겠습니다."

페루에게 인원확인을 시킨 뒤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후작에게 다가갔다.

"준비는 잘했느냐?"

"확실하게 준비했습니다."

"이번 지원의 책임자는 너다. 카록스 단장에게도 말해놨으니, 엘리온 공작가에 록스의 힘을 보여 주고 오너라."

"알겠습니다."

"대공자. 잘 부탁드리겠소."

후작의 옆에 있던 카록스가 웃으면서 내게 손을 뻗어왔다.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내게 독을 먹이라고 지시한 인간과 웃으며 손을 맞잡고 있는 광경은 한 편의 희극 같았다.

"기사단장님 제 ‘보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크흠..."

카록스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악수하는 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크윽."

하지만 내 신체는 천무지체다. 내공도 쓰지 않고 손에 힘만 주어도 카록스의 얼굴이 구겨지고 있었다. 

"큭."

피식 웃고 손을 풀어주자, 카록스는 얼굴을 붉히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유렌, 네가 책임져야하는 사람들이니, 한 마디 하고 출발 하거라."

"후작님께서는..."

"나는 네가 오기 전에 이미 끝냈다."

후작의 말을 듣고 기사단을 쳐다보고 있을 때 생각지도 못한 사람과 눈을 마주쳤다. 

"콜린, 네가 왜 여기 있지?"

"가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

"내가 허락했다."

후작을 쳐다보자, 그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위험한 곳을 찾아가는 거지?"

"강해지고 싶습니다."

콜린은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빛을 보이고 있었다.

출정을 다녀 온 후 콜린은 나를 만나면 인사를 했고, 말을 높이기 시작했다. 출정이후 그의 심경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콜린을 잘 챙겨 주거라."

"너무 많이 떠넘기시는 데요."

"하하하! 너를 믿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부탁하마."

후작이 믿겠다는 듯, 내 어깨를 무겁게 두드렸다. 

"페루. 인원 확인했어?"

"네. 콜린 공자님을 추가하면 딱 맞습니다."

"수고했다."

무리에서 빠져나가 모두를 볼 수 있게 단상위로 올라갔다. 

"모두 듣도록."

목소리에 내공을 실었기 때문에 크게 말하지 않아도 모두의 귓속에 내 목소리가 그대로 박힐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굉장히 위험한 전장으로 간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은 위험한 곳 이다."

"크윽."

"헉."

말을 하며 모두를 내리누르는 기세를 피워 올리자, 내 기세에 눌리는 기사들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전장에서 한 명의 잘못은 모두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워프를 하는 순간부터 내 명령을 어기는 자는 그 누구라도 즉결참으로 다스릴 것이다."

내 말이 끝나자, 모두가 숨을 죽였다. 

"불만이 있는 자는 지금 앞으로 나오도록."

당연히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출정에서의 내 활약을 귀로만 들었던 은수리 기사단은 내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 하고 있었고, 카록스만 부들거리며 어금니를 꽉 물고 있을 뿐이었다.

"없군. 그럼 출발한다."

"끝나셨습니까?"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오시죠."

마법사들의 대표로 보이는 자를 따라가자, 커다란 마법진이 있었고, 그 주위를 16명의 마법사가 둘러싸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셔서 잠시 기다려주세요."

우리가 마법진 안에 들어가자, 마법사들이 빠르게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준비되셨습니까?"

"네."

"그럼 무운을 빕니다."

빛이 번쩍이며 순식간에 세상이 바뀌었다. 마탑에서의 이동과는 달리 꽤나 흔들렸지만, 제대로 도착했는지, 주변에 본 적 없는 기사와 병사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오셨군요."

내 앞으로 은발의 미남이 걸어왔다. 나도 작은 키는 아니지만, 그는 내가 올려봐야 될 정도로 큰 키를 가지고 있었다. 

"저는 카일 엘리온이라고 합니다."

카일 엘리온, 엘리온 가의 대공자, 내가 발라버린 카릭 엘리온의 형이다.

"유렌 록스라고 합니다."

"정말 와주셨군요. 요새 굉장한 활약을 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저희에게도 그 힘을 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엘리온 공작님께선 어디에 계시죠? 먼저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카일을 따라서 성의 가장 위를 향했다. 문도 없이 사방이 뚫려 있는 최상부의 방에 들어가자, 은빛 머리를 짧게 자른 중년인이 기다렸다는 듯 일어나서 다가왔다.

"자네가 유렌 록스인가? 자네 아버지와 정말 많이 닮았군.  록스 후작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아."

"록스가의 장자 유렌 록스가 로페르 엘리온 공작 각하께 인사드립니다."

"그렇게 무겁게 할 필요 없네."

공작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살짝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러 와줘서 정말 고맙네. 자네와 은수리 기사단은 정말 큰 힘이 될 거야."

"아닙니다. 당연히 와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후후, 옛날 소문은 정말 믿을 게 못되는군. 요즘에 들리는 슬레이어란 소문이 자네를 정확히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아."

"아닙니다."

"이번에는 어떤 활약을 해줄 건가?"

공작은 내가 최근에 잡은 샤크라이 킹이나, 씨 서펜트에 대한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저 북벽을 다시 찾는데 최선을 다 할 뿐입니다."

"정말 고맙네."

"공작 각하, 현재 적은 모두 언데드입니까?"

"맞네. 처음엔 원래 우리가 상대하던 대형몬스터들도 있었지만, 모두 언데드들에게 먹히고 지금은 언데드들만 남아있네."

원래 소설에선 대형 몬스터들과 언데드들이 모두 나오는데, 지금은 이미 그 시기가 지나갔기 때문에 언데드만 남은 모양이다. 

"반격은 언제 하실 생각이십니까?"

"내일 해가 뜨는 순간 시작 할 걸세. 자네들뿐 아니라, 다른 가문에서도 지원을 와주었기 때문에 능히 북벽을 되찾을 수 있을 걸세."

"그럴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내가 혼자 들어가도 다 쓸어버릴 수 있을 거 같았다.

"내일 작전이 시작 되면, 자네들은 서쪽 문으로 나가서 위로 올라가주게."

"서쪽 말고 동쪽으로 가면 안 되겠습니까?"

"동쪽? 무슨 일이 있나?"

"아닙니다. 그냥 동쪽을 좋아해서요."

동문으로 가야, 이번 싸움의 전리품을 빠르게 챙길 수 있다.

"아니, 뭐 상관없네. 어딜 가든 썩은 시체 놈들을 상대해야 하니까. 동쪽이면 레븐 백작가와 같이 가게 될 걸세."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보지."

"네. 내일 뵙겠습니다."

공작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나와서 카록스와 기사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에게 작전시간과 장소, 주의사항을 모두 설명해주었다. 

다음날 새벽.

언데드들은 결국 제 2 방어벽 앞까지 몰려와 있었고, 우리는 그 모습을 성벽위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진짜, 많네요. 근데 대부분 좀비 아닌가요? 가끔 구울이 있고, 이러면 쉽겠는데요."

"강한 놈들은 멀리서 지켜보고 있어. 놈들은 이 살덩이들과는 달리 지능이 있거든."

크라이드에게 설명을 해주며 이번 일의 흑막에 대해 생각했다. 놈은 지금 숨어 있는 동굴에서 신나게 웃으며 수정 구슬을 보고 있을 거다.

"그 웃음을 울음으로 만들어주지."

"잠깐만!"

곧 해가 뜰 시간이라, 작전 준비를 하려 할 때 상황을 지켜보던 공작이 나를 불렀다. 

"저 밑을 보게."

"음..."

살점이 녹아 있는 좀비와 구울 속에 검게 칠해진 갑주를 입고 말을 타고 있는 기사가 보였다. 하지만 그 기사는 특이하게도 왼손에 자신의 머리를 들고 있었다. 

"크르르."

놈은 오른손에 들고 있는 도끼를 흔들며 성문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상위 언데드인 듀라한이네. 일단 기사들을 모아서 저놈을 먼저 처리..."

"괜찮습니다."

아그네스를 투척용 비도로 만든 다음 독 바르기를 사용했다. 

슈아앙!

비도는 공기를 가르며 듀라한에게 날아가서 그의 머리에 박혔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듀라한을 보면 그의 머리가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론 듀라한의 가장 단단한 부분이 머리다. 지금도 놈은 전혀 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 머리로 비도를 막았다.

"하지만 그게 네 목숨을 가져가겠지."

"쿠어어..."

속으로 4.5초를 셌을 때 듀라한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상위 언데드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듀라한을 제거하는데 4.5초와 단검하나면 충분했다. 

"어어?"

"뭐, 뭐야!"

"세상에..."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듀라한을 보고, 사람들이 혼비백산하고 있었다. 

"대체, 이게..."

"그럼 계획대로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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