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이 좀 많네
“독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능력이라...”
지금까지 대부분의 독들을 주어진 형태대로만 사용해왔다.
독의 형태를 바꾸려면 바꿀 수 있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효율이 떨어져 그냥 사용한 것인데 제형독술의 설명을 보니 시간의 소모 없이 원 형태의 효율을 그대로 독의 형태를 변화시킬 수 있었다.
“시험해 볼까?”
부르르.
내 손에서 부글거리는 화골산이 솟아올랐다. 화골산은 순식간에 굳어져 흡사 양갱 같은 모습이 되어버렸다. 액체인 화골산을 조금 물렁한 고체로 만든 것이다.
푸우욱.
이번엔 고체 화골산을 녹여 가루 형태로 공중에 뿌렸다. 제형독술로 독의 형태를 전환하는데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쓸모가 많겠어.”
독은 다수와의 전투에 암기는 소수와의 전투에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형독술이 있다면 다수전소수전 가리지 않고 독의 효율성을 극대화 시킬 수 있다.
“특히나 언데드에 엄청난 효과를 낼 수 있겠어.”
언데드와 전투는 아직도 여러 번 남아 있다.
언데드 대군단이 몰려오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때 화골산을 기체로 만들어 놈들의 머리위에 뿌리면 수천의 언데드가 일시에 녹는 장관을 볼 수 있을 거다.
“한 공간 전체를 신경독으로 감싸는 지옥을 만들 수도 있고.”
나와 적만 있는 좁은 공간을 신경독 안개로 덮어버리면 그곳은 죽음의 대지가 될 것이다. 굉장히 유용한 능력을 얻었다.
제형독술에 만족하며 다음 정보를 보았다.
“하급 독과 암기의 효율이 1.5배? 미쳤는데!”
하급 암기와 독들의 숙련도가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이 최고 수준을 찍은 덕분인지, 암기와 독의 능력이 1.5배로 올라갔다.
이제 하급 독과 암기들의 수련은 할 필요 없고, 중급이상만 신경 쓰면 될 것 같다.
“당천위의 전투경험 전승이 22퍼... 이건 아직 멀었고.”
상당히 레벨 높은 놈들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전투경험이 22퍼센트밖에 전승되지 않았다. 이건 꾸준히 몬스터나 적들과 싸워서 경험을 쌓아야 할 것 같다.
“빽!”
상태를 쭉 점검한 뒤 주머니에서 마검들을 꺼내려고 할 때 빽빽이가 드러눕는 소리가 들렸다.
“야...”
“빽?”
“너 너무 많이 먹은 거 아니냐?”
겨울의 나뭇가지처럼 빼빼 말랐던 빽빽이가 순식간에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빽빽이가 일주일동안 굶었다는 소리에 숙소에 오자마자 녀석에게 과일을 챙겨줬는데 일주일 치를 한 번에 먹었는지 쌓여있던 과일의 씨도 남아있지 않았다.
“빽.”
“그래. 체하지만 말아라...”
“빽!”
빽빽이의 걱정 말라는 울음소리를 듣고 마검들을 꺼내보았다. 원래 두 마검의 특징은 가운데의 보석이 빛나는 것이었는데 악마들이 죽어서 그런 건지 지금은 그 빛을 잃었다.
“놈들은 마검의 힘보다 더 많은 것을 주고 갔으니 상관없지.”
두 악마가 죽어 마검이 힘을 잃었지만 별로 아쉬울 건 없었다. 놈들이 남겨준 힘 덕분에 몇 겹의 벽을 넘어 화경을 달성했으니까.
스릉.
그래도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눈을 켜서 마검들을 살펴보았다.
[이름 잃은 마검]
혹한의 악마 글레시아가 소멸해 그 힘을 잃어버린 마검이다. 천년동안 글레시아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한 가지 특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특수능력: 설빙(雪氷)
“이거 기대하지도 않았던 선물인데.”
그저 단단한 검이 두 자루 생겼다고 생각해서 멸락을 쓸 때 두 검을 이용하려 했는데 특수기 하나가 나타났다.
“그럼 하르바스도 있는 건가?”
[이름 잃은 마검]
겁화의 악마 하르바스가 소멸해 그 힘을 잃어버렸다. 천년동안 하르바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한 가지 특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특수능력: 화련(火連)
“나중에 시험 좀 해봐야겠어.”
어느 정도의 능력을 발휘할지 기대가 되었다. 예전만큼의 힘은 쓸 수는 없겠지만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멸락용으로 마법검이나 마검들만 모으는 것도 괜찮겠는데.”
포메라가 보스 몬스터들을 모아 컬렉션을 만들듯이 나도 멸락용으로 명검 50자루만 모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에서 마법과 명검들이 동시에 떨어지는 모습을 그려보니 생각 만해도 희열이 느껴진다.
“도전해보는 게 나쁘진 않겠지. 오늘은 밥이나 먹고 잠을...어?”
빽빽이와 내가 먹기 위해 과일 두 접시를 받아왔건만 둘 다 텅텅 비어있었다.
“너 언제 내 것까지 먹었냐?”
“빼...”
빽빽이는 내 과일까지 먹어치우고 배를 긁으며 기분 좋게 자고 있었다.
“하아, 오늘만 봐준다.”
**
다음날 아르시아에게 초대받아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역시나 엘프인지 대족장임에도 그녀의 집은 내 숙소보다 조금 큰 정도였다.
“유렌님. 들어오세요!”
노크를 하자 로디엔이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하이엘프가 되어서 그런지 날마다 예뻐지는 것 같았다.
“로디엔님도 계셨군요.”
“네. 저희 엄마 집이니까요.”
“십 년에 한 번 올까 말까하면서?”
“엄마!”
“후후...”
로디엔은 붉어진 얼굴을 감춘 채 날 안쪽으로 이끌었다. 그녀를 따라 들어가니 테이블 옆에 서있던 아르시아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세요. 유렌님.”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앉으세요.”
아르시아가 앉는 것을 보고 그녀의 반대편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웃음기 있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정말 감사드려요.”
“인사는 어제 충분히 받았습니다. 아르시아님.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 하셔도...”
“그런가요? 그럼 바로 보상 이야기로 갈까요?”
“네. 아니, 그런 말이 아닙니다! 저는...”
“후후, 장난이에요.”
당연히 보상을 바라고 있기는 한지만 대놓고 ‘보상주세요.’라고 할 수는 없으니,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래도 해야 할 것은 해야죠.”
“맞아요. 유렌님은 한 나라를 구하신거에요. 유렌님이 저희를 구하지 않았다면 엘루나가 멸망했을 수도 있고, 다른 나라에 소속될 수도 있었죠. 그렇게 되면 대륙의 역사가 변하는 거예요!”
로디엔이 흥분한 듯 테이블을 탁치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유렌님은 저희를 구하시면서 대륙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엄청난 일을 해내신 거에요. 저희 엄마, 아니, 대족장께서도 그 일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주실 거구요. 맞죠? 대족장님?”
“이래서 딸 키워도 소용없다는 소리가 나오는 거구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분이 좋은지 아르시아는 입가에 미소를 매달고 있었다.
“로디엔의 말이 맞아요. 유렌님이 하신 일은 이곳만이 아니라 대륙 전체에 영향을 미쳤어요. 보통 업적이 아니에요. 이 이야기가 퍼지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유명세를 겪으실 겁니다.”
아르시아가 진지한 눈빛으로 내가 했던 일을 되짚어 주었다. 세피로스를 막고 엘프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지만 이들의 말을 들으니 내가 한 일의 무게감이 실감났다.
“그것만이 아니라, 유렌님은 저희에게 잃어버린 지식도 가져다 주셨죠.”
“거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그 거울에는 세필리아의 정보와 지식, 경험이 들어있습니다. 그건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엘프에게 큰 도움이 될 거에요.”
아르시아가 세필리아의 거울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거울을 보던 그녀는 고개를 들어 가라앉은 눈으로 날 보았다.
“저희 엘루나는 유렌님의 국가인 크라시스 왕국에게 동맹을 제안하려 합니다.”
“동맹...”
엘루나와의 동맹은 대륙의 모든 국가가 원하는 일이다.
엘프의 숫자는 적지만 그들 하나하나가 뛰어난 기사이자, 백발백중의 궁수이며, 자연의 정령을 다루는 정령술사다.
엘루나의 전 국민이 최소 기사 이상의 무력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인간에게 없는 지식까지 갖추고 있으니 모든 국가가 엘루나와 좋은 관계를 맺길 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엘루나는 한 번도 다른 국가에 손을 내밀거나 손을 잡은 적이 없었는데 지금 그들이 처음으로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건 원작에도 나오는 내용이라 겉으로는 놀란 척을 했지만 속으로는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단순히 이름뿐인 동맹이 아니라, 진실로 믿을 수 있는 관계를 맺어 무역과 연구 같은 것들을 같이 진행하고 싶습니다.”
“네?”
이건 원작에 없던 내용이다. 원작에서는 가벼운 동맹을 맺고 끝났는데 지금 아르시아는 더 깊은 관계를 말하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저희들의 전사와 크라시스의 기사분들이 같이 훈련을 받고, 마법들을 연구하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를 맺고 싶어요. 어떠신가요?”
역시 아르시아는 단순한 동맹이 아니라, 좀 더 가까운 관계를 원하고 있었다.
“저는 작은 영지의 주인일 뿐이라, 뭐라 말씀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아신다면 절대 거부하지 않으실 겁니다. 분명 기뻐하실 겁니다.”
기뻐만하겠는가. 국왕은 요새 제국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긴장하고 있는 상태였으니, 단상에서 뛰어내려 춤이라도 출지 모른다.
“그럼 다행이네요. 이미 외교관을 보냈거든요.”
“네?”
“엘루나의 외부 일을 담당하는 데이라를 먼저 보냈어요. 유렌님이 돌아가시면 이미 소문들이 퍼진 상태일거에요.”
“어...”
이것도 예상 못했던 일이다.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직접 국왕에게 소식을 전하는데 먼저 데이라를 보내 소식을 전하다니 아르시아는 날 정말 좋게 보고 있는 모양이다.
“국가끼리의 관계는 저희와 크라시스 모두가 받는 것이 있을 테니, 이건 유렌님껜 별 도움이 안 되겠죠.”
“아닙니다. 제게도 정말 좋은 선물입니다.”
“후후...”
아르시아는 가볍게 웃으며 테이블 아래에 있던 바구니를 꺼냈다.
“이건...”
이 귀한 걸 이렇게 보관한다고?
“이것들은 제가 따로 유렌님께 드리는 것들입니다. 혹시 뭔지 아시나요?”
아르시아는 그 말을 하며 테이블에 열매 5개를 올려놓았다.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꽤나 많은 마나가 들어있다는 것은 알 것 같습니다,”
“역시 감이 좋으시네요. 맞아요. 이 열매들은 세계수가 저희에게 주는 선물이니까요. 세계수의 선물은 맛도 좋지만, 자연의 순수한 마나를 가득 담고 있어요. 유레님의 기사분들이 성장하시는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서 준비했어요.”
원작에서는 주인공만 열매 한 개를 받는데 다섯 개를 받다니, 정말 큰 보상을 받았다. 나 하나 먹고 나머지 넷에게 나눠주면 딱 일 것 같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른 녀석들도 진심으로 고마워 할 겁니다.”
아르시아에게 감사인사를 전할 때 그녀가 장난기어린 미소를 지었다.
“여기 유렌님 열매는 없는데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로디엔. 가져오렴.”
“알겠어.”
로디엔이 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오면서 열매를 가지고 나왔다. 테이블 위의 열매와 모양은 비슷했지만 크기가 2배 이상으로 컸다.
“이, 이건 뭐죠?”
“저희도 이렇게 큰 세계수의 선물은 처음 봤어요. 이건 유렌님께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준비했어요.”
“아...”
로디엔이 미소를 지으며 내 앞에 열매를 내려놓았다. 이 커다란 열매도 원작에 나오지 않는 보상이다. 마검 사건을 해결한 덕에 더 큰 보상을 받는 것 같다.
“이런 보물은 아르시아님이나 로디엔님이 드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세계수의 선물은 한 번밖에 복용할 수 없어요. 저와 로디엔은 이미 먹었답니다. 유렌님이 가져가신다면 세계수도 분명 기뻐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못이기는 척하며 열매들을 주머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넣다보니 한 개가 남는 것이 생각났다.
“아, 한 개는 빽빽이 주세요. 세계수의 선물을 먹는다면 정령수도 강해지니까요.”
내 생각을 눈치 챘는지 아르시아가 먼저 말을 해주었다.
“먹지 않는 한 부서지지 않으니, 파손 걱정도 하지 않으셔도 되요.”
“알겠습니다.”
그녀들의 친절한 배려에 가슴이 따뜻해진 것 같았다.
“고마운 건 저희죠.”
“맞아요. 유렌님.”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언제 떠나실 건가요?”
“데이라님이 왕궁으로 가셨다고 하셨으니 저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바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음, 제가 너무 급했나 봐요.”
“아닙니다.”
“로디엔.”
아르시아가 옆에서 큰 눈으로 멍하니 있는 로디엔을 불렀다.
“응?”
“이번 동맹 협정은 네가 대표로 가거라.”
“어엉?”
“네가 엘루나의 대표로 크라시스에 가라고.”
“뭐, 뭔 소리래? 거긴 데이라가 갔잖아.”
“그 아이는 예의상 소식을 전하러 간 거고, 넌 내 대리로 엘루나를 대표해 가라는 뜻이다.”
“나, 난 못해!”
로디엔이 고개를 거칠게 흔들며 완강히 거부했다.
“흐응.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뭔데! 또 뭐하려고!”
아르시아가 로디엔을 데리고 가서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로디엔은 계속 거부했지만 아르시아가 뭐라고 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일부러 제대로 듣지 않았는데 중간에 내 이름이 나오는 것 같았다.
“유렌님... 저하고 같이 왕궁으로 가시죠. 준비를 해야 하니 내일 출발해요.”
로디엔을 울기 직전의 얼굴을 한 채로 날 쳐다보았다.
“로디엔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지는 않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저 마녀...윽. 전 그럼 준비를 하러...”
“후후후!”
“웃지 마! 흐윽...”
로디엔은 땅이 꺼지는 한숨을 내쉬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고 아르시아는 그 모습을 보며 능청스럽게 웃고 있었다.
“저 아이도 하이엘프가 됐으니, 이런저런 일을 해봐야죠. 죄송한데 유렌님 좀 팔았어요. 효과 좋네요. 후후.”
“아, 네...”
로디엔이 엘루나의 대표로 왕궁에 가는 것은 원작에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나도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네. 푹 쉬세요.”
아르시아의 집을 나와 숙소로 돌아갔다.
“빼...”
오후가 됐는데도 빽빽이는 침을 흘리며 꿀잠을 자고 있었다. 녀석을 잠시 보다가 자리에 앉았다.
엘루나와 크라시스의 동맹은 알아서 잘 될 테니 걱정은 없지만, 세피로스가 활발히 움직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화경에 올랐으니, 나도 적극적으로 움직여도 되겠어.”
세피로스의 삼공이나 칠죄종을 제외하곤 누구와 붙어도 질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드디어 세피로스 놈들에게 선빵을 갈길 때가 찾아왔다.
“먼저 당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니까.”
원작 내용을 생각하며 앞으로 움직일 방향을 정했다.
“시작은 무법자들의 땅. 헤일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