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어드벤처–당신의 아기를 낳고 싶어-59화 (59/235)

00058 「6-7 : 아이라(6)」 =========================

“와아, 방이 참 넓네? 우리 아이라쨩, 이렇게 멋진 곳에서 살고 있었구나?”

나와 내 아내들은 ‘자지의 맹세’를 통해 ‘니 방으로 안내해라’라는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아이라를 따라 방에 들어갔다.

방에는 마법과 관련된 듯한 서적이 꽤 있었다. 그것 외에는 침구류나 몇 개의 옷가지가 전부. 판타지 영화에서 볼 법한 로브를 보니 확실히 마법사는 마법사구나 싶었다.

옷가지는 차이나 드레스 외에도 비키니 아머 비슷한 것이 있었다. 경비대원이 입는 것과 다른 점이라면 분홍색이라는 점 정도일까?

이 옷을 보니 예전에 우리를 돌려보낼 때 들어왔던 경비대원들이 생각난다. 그때는 멋도 모르고 그딴 짓을 했겠다……? 이자까지 쳐서 톡톡히 값을 치르게 해주마.

책상에 있는 서랍을 열어보니 꽤 많은 편지가 보였다. 설마 싶어 열어보니……아이나가 쓴 편지였다. 처음에는 조금 삐뚤삐뚤 했던 글씨가 조금씩 보기 좋게 변하는 걸 보니 시간이 흐른 게 느껴진다. 편지의 내용은 잘 지내냐, 부족한 것은 없냐, 마을은 변하고 있다 등이었다.

편지 중간에는 가끔씩 ‘미안해. 언니인 내가 마을의 모두를 위해 일하는 주제에 동생인 너한테는 신경을 쓰지 못하다니……못난 언니를 용서해줘’와 같은, 가슴 아픈 문구도 보인다. 답장을 보내지 않았던 건지 ‘답장이 없더라도 편지를 보내고 싶어. 식사 꼭 챙겨 먹고, 돌아오고 싶다면 언제든 돌아오렴……’이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편지를 읽으면 읽을수록 기분이 더럽다. 아이나가 이렇게 많은 양의 편지를 썼는데 단 한 통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는 건가? 빌어먹을. 명령 대기 상태로 멍하니 있는 아이라를 다시 깨웠다.

“안녕, 아이라쨩. 잠은 잘 잤어?”

“……그, 그거! 손대지 마!”

로라와 안나. 니나까지 가세했기에 허약하디 허약한 마법사 타입의 여성, 아이라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치만 내 아내들을 귀찮게 만드는 것도 좀 그렇군. 한때 혜린이의 몸이 내 말에 복종했듯이, 정신만 남겨둔 채 육체를 지배했다.

“괜찮아. 고마워요, 로라. 안나와 니나도. 주인님을 생각하는 갸륵한 마음씨, 좋은데?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아, 그래. 편지. 이건 좀 심하지 않냐? 5년이나 보냈는데 한 통도 답장을 안 보냈어?”

“움직여……움직이란 말야! 시발! 몸이 왜 말을 안 듣냐고! 손 떼! 그 더러운 손으로 편지 만지지 말라고!”

움직이지 않는 몸에 소리를 친들 그게 움직일 리는 없거든? 그야말로 헛된 발버둥이었지만 그런 것에 관계없이 편지에서는 손을 떼라고 한다.

“하하, 참. 야, 니가 말했잖아. 편지 보지도 않고 불태웠다고. 근데 그 소중하디 소중한 편지가……오잉? 소중한 편지가 요기 잉네? 야아~ 우리 아이라쨩, 말은 그렇게 하면서 사실 언니의 편지를 소중히 모으고 있었구나?”

“아냐! 그건……그건 그년한테서 온 편지가 아냐!”

“아니긴? 이름까지 다 적혔는데? 넌 시발 내 눈이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여기 적힌 글자도 못 알아볼 거 같애? 내가 뭐 문맹도 아니고.”

편지를 살랑거리며 도발하자 더욱 표정을 구기며 달려들려고 하지만……정신력으로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다. 이 경우 아이라가 하려는 일은 ‘정신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일’에 해당한다. 더 멋진 사실은 바로 저렇게 만든 게 나라는 거지.

내가 2016년에서 이 시대로 왔다만, 솔직히 지금 생각해도 정말 말도 안 된다. 노력? 정신력? 노오오오력을 안 하니까 한국이 그렇게 된 거라고? 참 웃긴다.

당장 지나가는 사람한테 ‘이봐 당신! 왜 그딴 식으로 살지? 니가 벤츠나 아우디 타고 사장님처럼 다닐 수 없는 것은 니 노오오오오오오오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야! 죽을 만큼 노력하라고!’ 라고 말했다간 어떻게 될까?

죽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일단 한 대 맞을 거라 난 생각한다. 한 대만 때리면 다행이지. 죽을 만큼 맞아도 전혀 불쌍하지가 않다. 왜냐고? 너무나 간단한데……노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까. 아무리 노력한들 사람의 능력과 노력으로는 이룰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노력하면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고, 유명한 벤처 기업 사장님처럼 떵떵 거리며 살 수 있는데 그걸 못하는 이유는 니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라고 꼰대들은 자주 말한다.

물론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꼰대가 아니라 내 또래일 수도 있고, 더 어린 아이일 수도 있다.

노력이라니. 그저 노력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의문이다. 그 노력 속에 ‘혈연, 지연, 학연’. 통칭 삼연(三緣)이라는 게 들어가 있다는 걸 과연 그 꼰대와 개새끼들은 알고 있을까?

피로 맺어진 자, 지역으로 맺어진 자, 학업으로 맺어진 자. 한국에서는 세 개 중 하나라도 있으면 성공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었다. 나? 물론 저딴 거랑 관련 없는 흙수저 라이프를 살았지.

혈연, 지연, 학연은 개인의 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대기업이나 재벌들의 끈끈한 관계 사이에는 들어갈 수 없다. TV드라마 같은 곳에서는 대기업 아들이나 딸이 아무 가진 것도 없는 집안 딸이나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만……그건 다 개구라다.

실제 상류층은 상류층과 결혼한다. 자기들이 이루어놓은 많은 재산과 네임 밸류를 ‘천한 것들’이 망치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층민들, 힘없고 돈없는 사람들이 아무리 노오오오오오오력을 해도 그들처럼 될 수 없고, 상류층이 노력하는 자들을 거부하는 이상 ‘노력’이라는 건 단순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부터 시작해 수많은 것들이 잘못 되었는데 어떻게 모든 걸 노력 탓으로 돌릴 수 있는지 참으로 의문이라니까. 그게 비단 한국인만 그런 건 아니지만, 멍청한 꼰대와 정부놈들은 잘 되면 자기들 덕. 못 되면 개인 탓, 노력 부족으로 돌리니까 문제라는 거지 시발.

잡설이 좀 길었다만, 여하튼 정신력으로는 풀 수 없는 상태. 육체의 봉인부터 시작해 마력 봉인까지 걸린 그녀를 보니 참 웃겼다. 나도 어쩌면 힘에 취해 나보다 약한 사람 괴롭히는 걸 즐기는 쓰레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쳐도 이 여자를 용서할 마음은 별로 없다만.

“우후후? 이거 봐라? 언니 편지 태워먹었다면서 큰소리 친 주제에 편지는 이렇게 사모하는 님 모시듯이 정리하고 있었다니. 우리 아이라쨩, 츤데레네?”

“시바아아알────! 풀어! 왜!? 왜 몸이 안 움직이는 거냐고!?”

아니, 그러니까……하아. 입 아프다. 안나와 니나는 그나마 자기들 팔자나 펴볼려고 그랬지만, 쟤는 진짜 왜 저러니?

안 움직인다. 마법 못 쓴다. 아무리 설명해도 일단 해보려고 하다니. 도전 정신이 강한 건 좋은데 가끔은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때도 있잖아.

“우리 아이라쨩. 나 다 알아보고 왔다? 수도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도 여기 남아있는 이유가 이거라며? 말은 그렇게 하면서 편지 오는 걸 누구보다 손꼽아 기다린 아이라쨔~응?”

“그, 그걸 어떻게……대체 누구한테……!?”

혼란스럽긴 혼란스러운가보다. 그 와플 아가씨한테 자기가 말했으면서 모르다니. 이 일이 끝나면 그 아가씨한테 또 와플 사먹으러 가야겠군.

“중요한 건 누구한테 들었냐는 게 아니라 왜 거짓말을 했냐는 거겠지. 언니 편지를 왜 모으고 있으면서 거짓말을 했어?”

“……아냐. 그건 언니 편지가 아니라고……크, 흐윽……!!”

앗, 운다. 몸도 안 움직이는데다 결정적인 증거까지 발견된 상태. 설령 몸이 움직인다 해도 마법을 쓸 수 없다는……마법사한테 있어서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벌을 받은 그녀는 더 이상 정신을 유지하기가 어려워보였다. 이렇게까지 불쌍한데 봐줄 거냐고?

당연히 No지, 시발.

내가 그렇게 착한 놈으로 보임?

“야, 울지 마. 운다고 현실이 바뀌면 얼마나 좋겠냐? 나도 울고 싶다. 어휴……됐고. 그렇게 언니 편지가 아니라니까 태워도 되겠네?”

“……아, 안 돼! 태우면 안 돼!”

무너질 것 같았던 정신이 단숨에 되살아나는군. 빌어먹을, 내가 말하는 거나 묻는 거에는 대답 안 하는 주제에, 자기한테 불리한 거나 필요한 건 꼬박꼬박 듣는 고성능 청각 보소 시발!

“안 되기는 뭐가 안 돼? 언니 편지 아니라며. 그럼 태워도 상관없지. 설령 아이나의 편지가 아니라 해도 기분 나쁘니까 태워야지~룰루랄라~♬ 메이야, 화염 마법 스탠바이!”

“네, 아빠!”

메이의 손에서 피어난 한줌의 불꽃. 오오, 뜨겁군. 좋아……편지 넣어볼까?

“하지 마! 제발 하지 마세요! 부탁드릴게요! 언니의……언니의 편지를 태우지 마세요……끄, 흐윽! 흑흑……!!”

눈물까지 흘리며 애원했다. 대놓고 ‘언니의 편지’라고 하다니. 다급하기는 다급했나보다. 난 메이한테 ‘이제 꺼도 괜찮아’라고 했고, 메이는 아무 말 않고 불을 껐다. 우리 메이만 귀찮게 만들다니. 명령한 건 나다만, 이런 명령을 하게 만든 게 바로 너라고. 왜 이렇게 사람 귀찮게 하니?

편지를 정리하고 그녀를 침대로 옮겼다. 나와 내 아내들은 함께 침대에 올라왔지만 아이라는 앞에 세워둔 채 묻고 싶은 걸 묻는다.

“왜 언니 편지를 모으고 있지? 아니, 물어볼 게 한두 개가 아니네. 일단 왜 거짓말을 했는가, 그런 주제에 왜 모으고 있는가. 답장은 왜 안 하는가. 많네. 질문 퍼레이드지만 대답은 다 해. 너한테 거부권이나 선택권이 없는 건 알고 있겠지?”

편지를 지킨 건 좋았지만 좋든 싫든 자기 비밀과 마음을 모두 털어놓아야 했다. 아이라는 입을 꼭 깨문 뒤 진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 언니 때문이야.”

“뭐가 언니 때문인지 주어와 서술어는 갖추렴. 문장도 못 만들어서야 언니 버리고 5년이나 공부한 보람이 있겠어?”

“……그걸 일일이 다 말해야 해? 언니……아니, 아이나 그년 때문에 난……나는……!!”

바닥을 향한 눈은 분노와 증오가 서려 있었고, 아무리 봐도 호의(好意)를 품고 있는 거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욕하면서 편지는 왜 모았냐?”

“…….”

말을 안 하네. ‘자지의 맹세’를 맺었기에 스테이터스를 보면 그만이다만, 그건 나중에 쓰기로 하자. 자기 입으로 진실을 말하는 것만큼 잔혹한 벌은 없을 테니까.

“언니는……엄마가 돌아가신 후 촌장이 되겠다고 했어. 엄마도 촌장이었으니 그 뜻을 이어 받고 싶었던 거겠지.”

그건 안다. 탈리아한테 들었지. 조금이나마 아이나한테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만 그녀의 딸인 레인과 함께 화해의 섹스를 즐겼으니 이젠 그런 건 없을 거다. 어, 없겠지? 없어야 한다.

“언니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어. 그 당시 그렇게 나이가 많았던 것도 아니었으면서……그래도 엄마가 지키려 했던 마을을 지키고 싶다고. 엄마한테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을 평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어.”

아아, 아이나! 똥만 싸는 똥싸개가 아니었구나! 미안해! 널 허당 똥싸개에서 ‘약간 허당끼가 있는, 하지만 착한 똥싸개’로 랭크 업(Rank-Up) 시켜줄게!

물론 니가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아니, 전 허당도 아니고 허당끼도 없다니까요!? 제 말 듣고 있어요? 네? 세린, 듣고 있냐구요!?’라며 울상을 짓는 아이나가 보인다만, 들을 리가 없겠죠?

“하지만……난 싫었어. 마을을 위해 일하는 거? 촌장이 되는 거? 좋았어. 상관없었어. 엄마의 뒤를 잇는 거니까. 근데……그게 그렇게 소중했어? 동생인 나를 남겨둔 채……유일한 혈육(血肉)인 날 내버려둔 채 몰두할 정도로 마을 일이 그렇게 소중했냐고!?”

화를 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이나가 말했던 건 적중했다. 너무나 멋지게 적중했기에 나도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늘 촌장의 일, 마을 일, 경비대에 괴물까지……소중한 거 알아! 안다고! 그럼……나는? 피를 이어 받은 나는 그냥 잡초처럼 쑥쑥 크는 뭐 그런 거였어? 어디에 누가 사는지, 몇 명이 사는지까지 파악하는 주제에 피가 이어진 동생이 뭘 바라는지는 왜 몰랐냐고!?”

“……그건 아이나도 반성하고 있어. 그러니까 날 보낸 거고.”

아이나는 반성하고 있다. 자기가 동생에 대해 신경 쓰지 못한 걸 너무나 후회하고 있었기에 ‘자신은 행복해질 자격이 없다’라고 생각했었다.

다른 사람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일에만 매달렸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마저 거부할 정도로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도 인간이었고 외로움을 이길 수는 없었다.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했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그리고 사실상 자기 때문에 떠난 동생과도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난 그녀를 사랑하게 됐고 이곳에 오게 됐다. 그녀의 소망을 이뤄주기 위해서.

“반성? 흥, 반성할 거 같았으면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지! 그 개 같은 년……내 생일 때도 밤늦게까지 일하고 있었어! 어머니가 없어도 누나나 여동생이 함께 있는 가족이 있었는데 난 늘 혼자였다고! 그런 주제에 마을 사람들한테는 늘 괜찮다! 걱정 마라! 모두의 행복이 자기 행복이라며 헛소리를 지껄였어! 하하! 존나 개 같은 년! 난 뭐야? 난 대체……!?”

그녀의 육체한테 다시 자유를 줬다. 무릎을 꿇은 채 우는 아이라한테서 전투 의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로라와 메이는 조금 고개를 숙인 채 그 울음을 들었고, 안나와 니나는 ‘……불쌍하네’라고 했다. 혜린이도 착잡한 표정이다.

“그래서 나왔어! 하하! 그 위대하다 못해 대단한 언니가 영원무궁 마을 사람들이랑 하하 호호 지낼 수 있도록! 관심은커녕 애정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시발년님께서 마을 업무에 완전히 열중할 수 있도록 나와 줬다고! 하하? 기분이 어땠는지 알아? 최고였어! 더 이상 꼴 보기 싫은 게 안 보였으니까! 날 버린 언니도! 그년이랑 웃으며 지내는 마을 사람들도! 모두 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안 됐다? 슬펐겠네? 어설픈 위로는 상처를 더해줄 뿐이었기에 그저 들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 와서는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 모두가 자는 시간까지 아끼며 공부했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누구도 감히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모두가 자기들 어머니나 자매랑 하하 호호 웃을 시간에 난 노력했다고!”

“뭘 위해서?”

내 말에 그녀의 눈은 희번뜩거렸다. 마치 이 질문을 기다렸다는 양.

“그 시발년한테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자, 봐라! 니가 신경 쓰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게 자라는 잡초 같은 년이 이렇게 잘 성장했다고! 그런데 니년은 대체 뭘 도와줬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할 마음도 없었던 너와 달리 난 누구도 쳐다볼 수 없는 마도의 경지에 올랐다고! 오직 나만의 힘으로……여기까지 왔,다고……흐, 흑……!!”

이런. 마력 봉인 괜히 썼나……‘자지의 맹세’를 통한 금제(禁制)만으로도 충분했을 거 같은데. 그래도 저렇게까지 속마음을 드러내는데 ‘테? 그거 나중에 풀 수 있는 테치!’라고 말했다간 또 이 좋은 흐름이 끊어질 거 같으니 그냥 입 닥치고 있자.

와플 판매 아가씨한테 들었을 때부터 조금 전까지. 정확히는 아이나한테서 온 편지를 보관하고 있다는 걸 확인한 후부터 난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왜 편지를 모았을까. 왜 아이나의 편지라는 걸 알면서도 거기에 답장은 안 하면서도 모으고 있었던 걸까.

생각해보면……내가 참 바보였다고 생각한다. 그런 걸 굳이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어렵게 생각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 질문일까? 답은 ‘아니다’다. 난 이미 답을 알고 있었고, 이 답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금방 생각할 수 있는 해답이었다.

“……하지만 외로웠겠지.”

땅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있던 아이라가 움찔거렸다. 맞으면 맞는 거고, 틀려도 상관없다.

“프레그넌트에서 여기 올 때까지. 그리고 오늘 이때까지. 니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공부에 전념해서 잊으려고 해도……사람의 마음이란 절대 속일 수 없는 거거든. 넌 지금도 외로워하고 있어.”

“아냐! 난 외롭지 않아! 누구나 우러러보는 경지에……!”

“경지에 이르렀다고? 그래서? 아오, 시발. 자매가 쌍으로 날 귀찮게 만드는구나. 그래, 이왕 입 연 거 확실하게 말해주마. 안 외롭다고? 장담하는데 절대 안 그렇거든? 사람은 누구나 혼자면 외로운 법이야.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이랑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거지! 니가 나간 것도 삐져서 그런 거잖아? 니 소중하디 소중한 언니가 널 안 봐주니까! 신경 안 써주니까!”

“아냐! 절대 그렇지 않아! 난……!!”

“야! 시발 너 아이나랑 짰냐? 진짜 자매가 쌍으로 날 빡치게 만드는구나! 아이나도 그렇게 부정했어! 자기가 행복해질 자격이 없다며 마을 사람들의 호의를 거절했다고!”

이 이야기는 틀림없이 처음 듣는 거 같군. 고장 난 인형처럼 움직임을 멈춘 아이라는 내가 한 말을 반복했다.

“……호의를 거절해?”

“그래! 소중한 동생이 밥은 잘 먹고 있는지, 감기는 안 걸렸는지! 계속 걱정했어! 마을을 뛰쳐나오고 싶었지만 그 잘난 촌장 역할 때문에 나오지도 못했지! 너한테 직접 용서를 빌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마을을 내팽개칠 수도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이나는 고민하고 노력했어! 자기가 했던 짓을 반성했다고!”

“……거짓말이야. 그럴 리가 없어. 그년이……?”

“사실이지 썅년아! 니가 태워먹은 그 구슬 만드느라 5년이 걸렸어! 그거 누구 주려고 만들었는지 아냐? 바로 니년이다, 개 같은 년아! 그 구슬 홀라당 태워먹은 네년을 위해서! 사죄는 하고 싶지만 버릴 수 없는 마을과 마을 사람들이 존재했기에 대신 내가 왔었다고! 근데 뭐가 거짓말이고 뭐가 그럴 리가 없다는 건데!?”

빡친 나는 침대에서 바로 내려와 책상으로 다가갔다. 책상 안에 있는 편지들을 한 움큼 집은 후 울고 있는 아이라한테 뿌렸다.

“왜 이걸 안 버렸는지 너도 궁금하겠지? 아니, 안 궁금해도 돼! 내가 다 지껄여줄 테니까! 넌 외로웠어! 언니한테서 벗어났고 마을로부터도 해방됐지! 하지만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어! 그러니까 가족을, 마을을, 사회를 만드는 거지!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모자라 언니까지 없는 그 상황에서 넌 가족을 원했어!”

“아, 냐. 난…….”

“구라 치지 마, 닭대가리 년아! 그럼, 이건? 이 편지는 뭐야? 아, 맞아. 내가 말한다고 했지? 귀지 파고 잘 들어! 외로웠지만 언니는 보고 싶었지! 하지만 갈 수는 없었을 거야! 너도 자존심이 있었을 테고, 다시 그 외로운 상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니까!

헌데 이게 웬 일이래? 보고 싶은 언니한테서 편지가 왔어! 속으로는 태우고 싶었겠지! 갈기갈기 찢어서 쓰레기통이나 똥통에 처넣고 싶은 기분도 들었을 거야! 하지만 태울 수 없었겠지! 왜냐고?”

모두가 날 보고 있었다. 아아, 빡치면 내 마음대로 지껄이는 이 버릇 진짜 고쳐야 하는데. 그래, 고치자. 일단 일은 저지른 후에.

“외로웠으니까! 기뻤으니까! 이 험한 세상, 아무도 없는 어보션에 와서 그나마 자기 사정을 알아주고 걱정해주는 소중한 사람이 보내준 편지였으니까! 그래도 꼴에 자존심 있다고 답장은 안 했겠지! 아니, 못 했겠지! 외롭다고 질질 짤며 편지 쓸 수 없으니까!

답장을 안 한 건 좋지만 이 어보션에서 벗어나면 그 편지는 아무도 받을 수 없게 됐겠지! 그러니까 이곳에 남았던 거야! 수도로 갈 수 있었지만 답장을 안 했으니 설령 수도로 가더라도 편지는 이 어보션에 올 테니까! 아무도 읽지 못한 채 쓰레기가 됐을 테니까!”

“……아냐.”

“아니긴 개뿔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이렇게까지 성장했으니 기분 좋았을 거야! 하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니 언니는 없었어! 기뻐해주는 사람이 없는데 아무리 높은 곳까지 오른들 뭐가 기쁘냐? 그 기쁨을 나눌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데!

그 빌어먹을 자존심 지키느라 양성소에는 사정 따위 설명도 못 했고, 기껏해야 저 밖에 있는 아가씨한테나 신세 한탄을 했겠지! 난 이렇게 불쌍한 여자고, 안타까운 사연을 가지고 있으니 가엾게 봐달라고! 돌봐주는 이 없는 병신이라고!”

“아냐! 난 외롭지 않아! 내 주변에는……아무……도……!!”

“하하, 봐라! 스스로 인정했구나 망할 계집애야! 그래,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을 거야! 이렇게 장성(長成)……아니, 대성(大成)했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언니 편지만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도 싫지만 이대로 편지조차 읽을 수 없게 되는 것도 싫었겠지! 그러니 아무 곳에도 가지 않는다는, 가장 겁쟁이 같은 길을 선택했겠지! 꼴에 그 편지를 소중히 여기며 말이지!”

“으, 읏……아아……!!”

부정하고 싶다는 마음은 편지를 모으는 행위에 의해 부서졌다. 두 손으로 주변에 흩뿌려진 편지를 모으는 그 모습은 너무나 처량했기에 이젠 동정(同情)을 넘어 연민(憐愍)을 느낀다.

“불쌍하다 불쌍해! 아이나는 모두를 위해 희생했지만 그래도 반성했어!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고 느껴질 정도로 철저했지! 헌데 넌 뭐야? 언니 싫다고 욕하고 생색내면서 쳐받을 건 다 처받고 있는 씨발년이었어! 싫으면 싫은 거지, 싫으면서 받을 건 다 받다니! 니년이 인간이냐? 아이나처럼 착한 여자랑 너 같은 인간 말종 쓰레기가 자매라고? 시발, 갖다 버려!”

내 발 앞에 있던 편지를 힘껏 밟자 아이라의 눈이 커졌다.

“아, 아아앗──! 하지 마아앗! 언니의 편지! 소중한 편지 밟지 마아아앗────!!”

“뭐가 언니의 소중한 편지냐, 이……썅년아!”

힘껏 발로 찼다. 낙법조차 펼치지 못한 채 넘어갔지만 희열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이딴 거 다 필요 없지? 싫어하는 언니의 혐오스런 편지잖아? 내가 다 찢어서 태워줄게! 괜찮지? 응? 괜찮지!?”

“아, 윽! 제발! 하지 마세요! 언니의 편지에요! 그것마저 없으면 나는……!!”

바짓가랑이에 매달린 채 ‘태워버렸다’고 한 편지를 없애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아이라한테서는, 예전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한 말이 맞는지 틀린지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언니……언니이이……! 난, 나는……사실 나는……그저……!”

내 눈에서는 맑은 뭔가가 흐르고 있다. 난 또 왜 울고 지랄일까. 내 로라와 메이는 입을 막은 채 울고 있었고, 안나와 니나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우릴 보고 있었다. 혜린이는 떨어진 편지를 하나씩 주우며 먼지를 털며 고개를 젓는다.

“나는 그저……행복해지고 싶었는데……언니한테 사랑받고 싶어서……도움이 되고 싶었단 말이야……흐, 흐윽……흐어어어엉……!!”

결정타였다.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난 울음보를 터뜨리며 아이라는 울기 시작했다. 바짓가랑이를 잡았던 두 손은 하늘을 향한 채 무력함을 나타냈고, 진심을 말한 입에서는 언니의 이름과 울음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내가 쳐다볼 수 없는 높은 경지까지 올라간 여자.

언니를 증오했지만, 결국 ‘가족’이라는 소중함을 버리지 못했던 그녀.

수도에 오는 걸 권유까지 받았던 대단한 마법사, 아이라의 진실된 모습은……증오하지만 동시에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한테서 사랑받기를 원하는……안타까운 여성일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진행이 가면 갈수록 막장 & 무리수로 변하는 게 보입니다! 작가인 제 눈에도 이런데 다른 분들은 오죽하시겠습니까? 분명 보면서 '작가 이 새끼, 제대로 플롯 하나 못 짜는구만! 그러니까 스토리가 이 따위지!'라며 욕을 하시겠죠. 전 거기에 대해 뭐라고 대답할 거냐고요?

'데, 데긱! 봐주시는 데슥! 처음 쓰는 소설이라 이 모양 요 꼬라지인 데슥! 자비를 베풀어주시는……데긱!'

힘껏 절 발로 차는 독자분들. 쓰러진 채 움찔거리는 저를 향해 독자분들은 말합니다.

'일어서라, 작가. 어째서 소설을 이 따위로 썼지?'

'시, 시간과 예산이 조금만 있었더라면……데극!? 데보오옷! 때리지 마시는 데슥!'

'어디서 감히 몬타나 존스에 나오는 니트로 박사 흉내를 내!?'

그 후, 작가는 극딜을 당했습니다.

짤막한 이야기 끝.

……안녕하세요, 메리사(신세린)입니다.

오늘도 서류합격 전화는 없었습니다. 오 ^0^/

알바도 꽤 구하기 어렵더군요. 여러분도 구직 사이트 보시면 알겠지만 D-36이나 D-60 같이 지원 기간이 긴 입사지원 공고는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공고 기간이 길다는 것은 오랫동안 사람들한테 '저희 구인하고 있어요~'라고 알려주려고 하는 거거든요. 그렇게 길게 구인 기간을 잡는 곳은 사원의 입사 및 퇴사가 빠르거나 인력이 늘 부족한 곳일 확률이 높습니다. 아니면 중소기업 주제에 바라는 게 존나 많은 곳이거나요.

아, 제가 갔던 곳은 세 곳 다 해당하는 곳이었습니다. 제 블로그에 불평불만을 올려놨으니 관심있으신 분은 한 번 정도 보시는 게 좋습니다. 가능하면 가지 마세요.

어찌 됐든 힘든 세상이네요. 코멘트에 대한 답변입니다.

열심히쓸게요님, 아이라의 경우 아이나와 마찬가지로 겉과 속의 이미지가 크게 다릅니다. 자매니까 그런 부분도 당연히 닮았겠지~라고 생각하시면 이해하시기 편할 겁니다. 창작물에서는 이렇지만 실제로 자매나 형제는 닮은 부분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성격이나 재능이 정반대인 경우도 흔하구요.

네아니에요님,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부지런히 연재하는 작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流江님, 어……주인공인 세린을 높게 평가해주셔서 감사스럽니다만, 먼치킨 부분에 대해서는 딱 잘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세린은 마법이나 도구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할 뿐이지, 실제로는 그냥 평범한 사람입니다. 게임으로 치자면 마을주민A~B 정도. 주인공의 위치에서 레벨업을 하며 성장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약하다고 봐야 합니다.

저도 글을 쓰면서 먼치킨이 다 깽판을 부리는 것보다는, 모자란 부분이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편이 훨씬 더 즐겁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글을 쓰면서도 생각했지만 세린은 마법이나 도구의 능력을 잘 끌어낼 뿐, 실제로 아주 대단하거나 강력한 먼치킨 캐릭터는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 후반부로 가면 마법이나 도구를 쓸 수 없어 당하기만 하는 세린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대통령감은 어……까놓고 말해 새누리당(자유한국당), 바른정당은 무조건 아웃. 이 새끼들은 용서가 안 되는 부역자 패거리들입니다. 이놈들을 뽑느니 기권표를 던지고 말 겁니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저놈들을 뽑을 표는 없다는 걸 알려주는 증거이기도 하구요.

아, 그렇다고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이 무조건 옳다는 것도 아니구요. 위의 두 병신들이 워낙 병크를 쳐대서 그렇지 야당이라고 해서 무조건 잘 했다며 칭찬해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 민심 못 읽고 '테? 우리가 드디어 여당인 테치까? 우리 마음대로 대한민국 가지고 놀아도 되는 테츄까!?' 이 지랄하면 극딜을 해줘야죠. 제2의 새누리당 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뽑을 후보야 요즘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이나 약간 평이 떨어진 이재명 정도겠죠. 그 사람들의 행동이나 사상이 100% 옳다는 건 아니지만……정치란 최고가 아니라 차악을 뽑는 거라고 말하잖습니까. 소방대원들에 대한 조치(소방인원 증가, 지방공무원에서 국가공무원으로의 변경, 순직한 소방대원에 대한 예우 등)는 아주 예전에 이뤄졌어야 하는데 그걸 지금에야 한다는 것도 우습지만……그걸 공약으로 걸었다고 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호응을 받을 정도라니. 대한민국이 얼마나 썩어빠졌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얼른 탄핵인용+부역자 처리로 끝나면 좋겠습니다. 제발 국민을 개돼지 노예 취급하는 시대가 가버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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