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4 「8-3 : 육성(育成)(2)」 =========================
“허억……!”
건방졌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다시 패닉에 빠진 건가. 당연한 결과다. 자기를 죽이려 했던 괴물이 다시 나타났는데 쌍수들고 환영하는 미친놈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그런 놈이 있다면 괴물을 죽이는 걸 좋아하거나, 괴물한테 죽는 걸 좋아하거나. 어느 쪽이든 정상은 아니다.
은채는 정상의 범주에 속했고 이는 희진이도 마찬가지였다. 희진이 또한 거의 40에 가까운 나이면서 다리를 덜덜 떨었다. 내 좆으로 박아주면 좋다고 부르르 떨겠지만 그건 나중에 할 수 있다.
“정신 차려! 잘 봐! 놈의 촉수는 많지만 사정거리는 제한되어 있어! 거리를 벌려!”
내 말에 따르려고 하기보다는 두려움에 거리를 벌리는 것 같았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내 주변으로 뒷걸음질 치며 다가온 두 명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잘 들어. 저놈이 계속 가까이 오려 하지? 이유가 뭐일 거 같아?”
“주, 죽이려고……!?”
평소 욕을 지껄이던 은채의 입은 두려움에 파르르 떨며 겨우 그 말을 했다.
“반은 정답이야. 내가 너희를 도와 저놈 잡기 쉽게 해줄 테니 내 말에 무조건 따라라.”
“우, 우리를 지켜주는 거지? 세린?”
아무리 희진이라도 이 상황은 무섭나 보군.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계속했다.
“저놈의 촉수는 길어봤자 2m 조금이야. 힘도 세고 컨트롤도 세밀하지. 하지만 그건 사정거리 내의 적한테 통하는 이야기. 희진이랑 은채는 각자 반대 방향으로 벌어지며 저놈한테 접근해. 저놈의 촉수가 닿지 않으면서도 안전한 거리를 너희가 몸으로 터득(攄得)해야 해.”
더 이상 군소리는 없다. 희진이는 왼쪽. 은채는 오른쪽으로 간다. 괴물은 두 여자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찢어지자 움직임을 멈췄다.
몸은 하나고 촉수는 여러 개. 하지만 어느 쪽으로 가버리면 다른 쪽으로 뻗어지는 촉수의 길이 또한 짧아진다. 그렇다면…….
[케륵!]
“병신 새끼가……뒤지고 싶냐!”
M16A1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놈의 왼쪽 팔─손과 발을 개처럼 쓰고 있으므로 팔이 더 맞히기 쉽다─에서 검은 피가 콸콸 나왔고 밸런스를 잃은 채 깽깽 거린다. 그러게 뭐 하러 나한테 오니? 이 중에 내가 제일 센데.
“앗, 피야! 피 흘리고 있어!”
희진이가 팔을 가리키며 외쳤고 은채는 손으로 입은 막은 채 표정을 찡그린다. 나라도 이놈 피 흘리는 건 보기 싫다. 여자야 오죽할까?
“지금이야, 희진아! 은채야! 검 끝으로 잘 조준해서 쏴!”
“어, 어떻게 쏘는지 안 가르쳐줬잖아! 이 바보야!”
아차! 이런 빌어먹을! 총을 주면서 총 쏘는 방법을 안 가르쳐 주다니!
“아까 내가 쏜 거 봤지? 그걸 쏘고 싶다고 강하게 생각하는 거야! 그럼 나가! 뭣하면 아까 내가 말했던 것처럼 ‘발사’라고 해도 돼! 여하튼 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중요해!”
“완전 엉터리야!”
그렇게 말하면서 두 손으로 쥔 단검을 괴물한테 향한다. 희진이와 은채가 둘 다 괴물을 노리고 있었고 곧 그녀들의 단검 앞에 둥근 마나 덩어리가 형성된다.
“가! 빨리!”
“피하지 마!”
호전적인 은채와 적한테 ‘피하지 마’라며 쏘는 희진이. 과정이야 어찌 됐든 두 명의 단검에서는 마나 블릿(Mana Bullet)이 발사됐고, 안 그래도 팔을 관통당한 괴물은 양 측면에서 마력 덩어리의 파괴력을 온 몸으로 체감하며 죽어야만 했다. 피가 주변에 흩뿌려졌고 희진이와 은채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으로 괴물과 나를 본다.
“……이긴 거야?”
“그래. 잘 했어. 하니까 잘 하네.”
“……우, 우리. 살아남은 거야 세린? 정말?”
희진이도 믿겨지지 않는다는 식으로 물었다. 정신 이상 상태가 풀린 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조심스럽게 물어오네. 혹시 저러다가 괴물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습격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함도 있겠지.
“걱정 마. 확실하게 죽었어. 우리 아내들, 멋진 콤비인데?”
“……하, 하하.”
은채가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며 자리에 주저앉았고 희진이는 나한테 달려와 힘껏 나를 껴안았다. 이런 적극적인 스킨십, 아주 좋아. 희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 거지만 그녀 또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떨 리가 없지.
두 명을 겨우 일으켜 세운 후 이번에는 접근전을 벌이기로 했다. 마력이 10밖에 없는 탓에 마나 블릿은 한 방 쏘면 땡이다. 내가 공격한 후 쓰러진 괴물한테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것이 그나마 경험치를 빨리 얻을 수 있는 방법이지. 희진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은채는 다른 방법은 없냐고 물었다.
“이봐. 너무하잖아? 이 작전은 바로 은채, 너를 위해서라고. 희진이도 있지만 희진이는 너보다 세 배 정도 많은 마력을 지니고 있어. 미리 말해두지만 내 아내들 중 레벨이 가장 낮은 것도. 성장폭이 좁은 것도. 전투 참여에 제일 어려운 것도 바로 너야.”
“그, 그건……내가 좋아서 그렇게 된 건 아니잖아!”
“그래. 니 말은 옳지. 문제는 괴물이 그런 거 감안하며 덤벼올 거 같냐?”
은채는 결국 입을 다문 채 바닥을 볼 수밖에 없었다. 희진이도 마나 블릿을 써서 덤빌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이건 진심이다. 마나 블릿과 총알. 두 개 맞았는데 멀쩡한 괴물은 없다. 오히려 안 죽도록 잘 조준을 해야 하니 내가 더 어렵다.
이번에는 두 마리가 나타났다. 희진이는 칼을 조준한 뒤 힘껏 외쳤다.
“항문선녀의 힘, 보여주겠어!”
순식간에 만들어진 마나 블릿이 괴물한테 날아갔고 다른 한 마리는 희진이를 경계하며 은채 쪽으로 다가간다. 내가 쏜 탄알에 촉수를 맞자 남은 촉수가 마구 요동쳤고 한 발 더 맞은 후에야 껄떡거리며 쓰러졌다.
“희진아! 남은 마나 블릿 한 발 더 쏴! 은채 너는 가서 단검을 힘껏 박아 넣어! 알겠지? 쓸데없는 생각 말고 그저 무조건 박아 넣어!”
희진이는 이번에는 요상한 포즈를 잡으며 마나 블릿을 발사했다. 괴물이 사망하자 아주 약간의 경험치가 들어왔고 이건 괴물의 죽음을 의미한다. 조심스럽게 다가간 은채는 살인범이 칼로 사람을 죽이듯 머리 위로 힘껏 치켜들었다.
“죽어!”
푸욱! 원래라면 멋진 말을 하며 칼을 박아 넣는 게 일반적이다만, 은채는 정말 살의(殺意)를 가지고 단검을 휘둘렀다. 검은 피가 뿜어져 나오며 은채의 얼굴과 몸에 묻었지만 은채는 아랑곳 않고 다시 한 번 힘껏 단검을 박아넣었다.
“죽으라고! 너 같은 새끼! 죽어! 죽엇!”
“은채야! 이제 됐어! 죽었어!”
내가 소리치자 다시 한 번 박아 넣으려는 단검이 공중에서 멈춘다. 와우. 검은 피 투성이가 된 은채를 보니 진짜 사람 하나 잡을 거 같네. 그 사람이 내가 아니길 빈다.
“하아……하아……!”
“은채야. 잘 했어. 진정해.”
자기 손에 쥔 단검을 본 은채는 고개를 떨군 채 숨을 쉬었다.
“처음 치고는 잘 했어. 희진이도. 근데 아까 그 포즈는 뭐야?”
“헤헤……나, 마법소녀 같은 거 좋아했거든. EBS나 어린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언니’ 역할을 하고 싶었다?”
아, 아이들 돌보는 보모(保姆) 포지션의 여자 말이군. 그런 방송에 나가서 오래 있으면 나름 인기도 얻게 되고 이름도 알리게 된다.
하지만 마법 소녀라……. 마법 소녀처럼 마법을 난사하기 위해서는 마법의 종류도 많아야 하지만 마력도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희진이 옷은 마법소녀 계열 옷으로 한 번 알아보자.
“……세린.”
지금까지 시발놈 개새끼로 부르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니 내가 더 놀랐다! 은채를 보니 피곤해보였다.
“……미안한데. 조금만 쉬면 안 될까?”
“아, 응. 그래. 수고했어. 조금만 더 하면 레벨 업 할 거고, 그럼 마나 블릿을 두 발까지는 쏠 수 있으니까. 쉬어.”
지친 기색으로 수풀에 주저앉았다. 희진이는 내 옆에 와 앉았고. 둘 다 나한테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괴물이 나타나도 바로 대응이 가능했다. 은채도 혼자 있기는 뭐 했는지 내 곁으로 다가와……내 어깨에 기대왔다.
“우리 은채도 세린을 좋아하게 됐나 보네?”
“아, 아냐 언니! 누가 이런 새끼를……!!”
지금 너님께서는 그 못난 ‘새끼’의 어깨에 기대고 계십니다. 비꼬아 주고 싶었지만 관뒀다. 현실 세상에서 사람이 싸우는 일은 거의 없다. 있어도 주먹다짐이지, 이런 살육은 절대 경험하지 않는다.
며칠 전만 해도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괴물과 싸워야 한다니. 기절초풍할 일이겠지. 그래도 둘 다 성과를 보여줬다. 그게 기특했기에 두 손으로 희진이와 은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세린, 나 예뻤지? 응? 여전사 같았지?”
“으음……여전사도 좋지만. 우리 희진이는 마법소녀 컨셉이 예쁠 거 같은데? 늙어서 주책이라지만 우리 희진이라면 틀림없이 매력적인 중년 여성처럼 보일 거야.”
“아잉~♡ 세린도 참. 그렇게 말하면서 마법소녀 코스튬으로 섹스하고 싶은 거지?”
“잘 아네. 역시 내 아내야.”
가볍게 키스를 나눈 후 옆을 보니 은채가 질리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다.
“표정이 왜 그렇게 띠겁냐?”
“……너 말이야. 원래 세상에서 여자 몇 명 사귀었었냐?”
“나? 여자 친구 없었는데.”
그러자 띠겁다는 표정에서 ‘말도 안 돼’라는 표정으로 변해간다. 내 얼굴도 표정을 다 드러내는 면상이다만, 은채야. 니가 사돈 남말 할 처지는 아니었던 거 같다. 그런 식으로 보면 나라도 니 감정 알아내거든?
“넌 여친도 없었으면서 그런 닭살 돋는 소리를 막 해? 와……쩐다.”
“그래, 나도 내가 쩔어주는 거 아니까 그만 좀 해라. 여자 친구 없으면 말도 못 하냐? 게다가 난 여친은 없어도 아내는 많으니까.”
“하아……노답 새끼.”
투덜거리지만 이전보다는 감정이 덜 실린 거 같아 다행이구만. 언제까지고 투닥댈 수도 없었으니까.
“마력은 어떻게 회복해?”
“쉬어야지. 넌 절대량 자체가 낮으니까 회복 속도가 빠를 거야.”
실제로 은채의 마력은 7을 가리키고 있다. 단순한 기계는 비싸지는 않지만 자기 역할은 충실하게 잘 한다. 레벨도 낮고 마력도 낮지만 그걸 배려해서 그런 것인지 회복 속도는 빠르다.
“넌……매일 이렇게 싸우면서 지낸 거야?”
“매일은 아니지만 필요하면 싸웠지. 얘들은 쉬운 편이야. 온몸을 던져 공격하지는 않으니까.”
그 시퍼런 놈들은 육탄전에 능했으니 나랑은 꽤 상성이 안 맞았다. 오죽하면 그 당시 파티 멤버들이 마법 난사로 전투 방법을 바꿨을까.
“우리 남편, 멋있네! 꼭 만화에 나오는 전사 같아!”
“전사보다는 군인에 가깝겠지. 만화나 RPG에 나오는 전사는 총 같은 거 안 들잖아.”
희진이의 칭찬은 고맙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난 내가 전사 타입이라는 생각은 안 했다. 오히려 총 쏘는 마법사라고 해야 하나……. 레벨 30인데도 내가 가진 원거리 공격용 무기나 마법은 오직 이 총 두 정뿐이다. 그 외에는 대부분 섹스에 관련된 것이다.
“……그럼, 그. 이혜린이나 다른 사람들이랑 싸워도 이겨?”
이혜린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부른 게 날 자극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 원래 세상에서 그렇게 불린 것이기에 입에 담은 거겠지. 난 자신있게 말했다.
“내가 쳐발리지.”
“풋!”
지금까지 은채랑 나눈 대화 중에 제일 잘 한 거 같네. 빵하고 터졌다. 희진이도 ‘그게 뭐야? 존나 깬다!’라며 낄낄댔다. 별로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사실이니까.
“아, 아하하! 너 존나 웃겨! 존나 자신만만한 얼굴로 쳐발린다니! 으, 끄흐흑!”
“아니, 사실이니까……. 진짜 나 처발릴걸?”
총으로 쏘는 게 피곤하기도 하니 이 휴식이 끝나면 총 대신 지금 내가 입은 옷의 투영마술을 쓸 생각이었지만……그건 까놓고 말해 ‘내 힘’이 아니잖아. 옷의 힘이지. 순수한 힘으로 말하자면 아마 내가 이길 수 있는 상대는 별로 없을 거다. 슬픈 현실이군.
“근데 아까 남편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지키려 한 거야? 완전 깬다…….”
“니가 어떻게 생각하든 난 내가 희진이랑 니 남편이라고 생각해. 아내가 죽는 걸 좌시하는 놈이 어디 있냐?”
그녀들을 강제로 범한 거나 다름없다만, 책임을 질 생각이었으니 여기까지 함께 온 거다. 안 그러면 분신 보내고 지금쯤 아내들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겠지. 책임감을 느낄 필요도 없고.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원.
“그럼 이 단검보다 좋은 건 없었어? 좀 더 긴 칼이라든가…….”
“아. 세린. 그럼 다음에는 마법소녀 요술봉 같은 거 사주라? 응?”
“야 임마. 단검도 제대로 못 쓰면서 더 긴 칼 쓰다가 베이면 어쩌려고?”
말은 이렇게 했지만 단검을 준 이유는 ‘안전’ 외에도 따로 있었다. 마법이 들어있는 단검 및 무기류는 초보자한테는 유용할지 몰라도 마법사나 레벨이 꽤 되는 사람한테는 쓰레기 아이템 취급을 받는다고 했다. 마법을 수련 없이 쓸 수 있으니 좋은 거 아니냐고 물으니까…….
‘아, 그건 안 쓰는 게 좋아 아빠. 마법을 배우면 배울수록 더 강하고 쓸 만한 마법이 많은데, 무기에 있는 마법에만 의존하면 다른 마법을 배우거나 쓰기가 힘들어지거든. 처음에는 좋을지 몰라도 나중에는 별로야. 게다가 마법이 있는 무기는 대부분 단검이나 방패 같은 거거든. 차라리 마력을 올려주거나 하는 효과를 지닌 게 더 낫지’
알기 쉽게 정리하자면……. 처음에는 유용할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초보자 무기 세트 같이 계륵(鷄肋)이 되고 그러니 다른 거 써라 이거다.
그 말을 듣고 ‘그럼 내가 준 옷도 별로야?’라고 물어봤다. 페이트 테스타로사의 배리어 재킷은 속성 마법이 가득 들어있었고 접근전을 유리하게 만드는 소닉 무브 마법도 있었기에 오히려 너무 좋았다고 해서 다행이었지.
딸한테 ‘아빠!! 어떻게 이런 쓸모없는 옷을 줘? 실망이야!’라는 소리를 들었다면……으으, 끔찍하다! 아빠를 생각하는 기특한 마음! 후후, 내 딸이다. 내 아내고. 아무한테도 안 준다.
“강해지면……그럼 그 후에는 어떻게 해?”
메이를 생각하던 나는 그 말에 바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강해진 후에는? 그냥 지내는 거지. 경비대 일 도와주고, 괴물 토벌하고. 강해져서 나쁠 건 없잖아.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겠지만……굳이 정리하자면 이렇겠지.
“가족들이랑 즐겁게 사는 거지.”
희진이와 은채는 두 명 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날 본다. 내가 뭐 잘못 말했나?
“……너, 완전히 여기 사람이 됐구나.”
“응. 현실 세상이 너무 좆같고 쓰레기 같았거든. 넌 어떨지 몰라도 난 이 세상 아주 좋아해. 진짜. 현실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도 난 안 갈 거거든.”
두 번 다시 갈 생각은 없다. 당장 은채를 봐라. 은채 같은 사람들이 몇 십, 몇 백. 아니, 몇 억 명 이상 있는 곳이 바로 현실 세상이다. 거기로 또 가라고? 또 그 좆같은 곳에 가서 원하지도 않는 일에 휘말리며 살아가라니. 니가 가라 헬조선. 난 안 간다.
“여긴 재미있는 것도 없잖아.”
“그건 맞아. 스마트폰도 없고, 게임도 없고. 아직 안 가본 마을도 있지만……그래도 난 여기가 좋다. 넌 어떨지 몰라도 원래 있던 세상은 나 같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은 너무 살기 어려운 곳이거든. 니가 있는 독재당이 맨날 뭐라 했는지 아냐?”
“……사람들이 가난하고 못 사는 것은 전부 ‘노오오오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어, 우리 은채도 그거 아네? 은채는 독재당의 노예가 된 거 아니었어?”
희진이가 짓궂은 말을 하자 은채는 눈을 돌렸다.
“아니라니까……. 그치만, 지금 와서 보니 참 엿 같네. 니가 싫어할 만도 해.”
은채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곳에는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맑은 바람만이 존재했다.
“만약 그 ‘노오오오오력’이란 걸로 모든 게 해결됐더라면……이미 원래 세상으로 돌아갔을 테니까.”
세상에는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은채가 말한 ‘현실 세상으로 돌아간다’라는 행동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나야 할 수 있어도 안 하겠지만.
“……이제 슬슬 일어날까. 점심은 여기서 먹을 거지?”
“그래. 전투는 하지만 무리하게 싸우지는 않는 게 훈련의 기본이니까.”
허벅지에 묻은 흙과 나뭇잎을 털며 우리는 일어섰다. 저렇게 본인이 스스로 의욕을 나타내는데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잖아. 스스로 노력하려는 진취적인 자세는 언제 봐도 기특하고 아름답다.
“나랑 희진이 언니……잘 지켜줘야 한다?”
“물론이지. 레이디 은채. 남편으로서 아내인 널 지켜줄게.”
“……말은 진짜 잘해요.”
이번에는 욕은 안 들었다.
† † † † † † † † † †
“후우……시원한데?”
따스한 욕조에 몸을 담그니 피로가 확 날아간다. 전투는 성공적으로 마쳤다. 둘 다 레벨이 3이 됐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먼저 3까지 레벨 업을 마친 사람은 은채였다. 단검의 위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가까이 가서 마나 블릿을 날리거나, 단검 투척을 시도하려는 등, 결과는 둘째 쳐도 노력하는 자세를 보니 내가 더 뿌듯했다.
희진이는 마나 블릿에 의지하며 접근전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겠지. 무리한 접근전보다야 익숙한 마법 난사가 결과를 더 내기 쉬우니까. 저 두 명은 후방 지원을 담당시키자.
“……들어간다?”
“오, 어서와.”
욕실의 문을 열며 들어온 건 희진이와 은채였다. 함께 씻자며 농담 삼아 말했는데 정말 들어와 주다니. 관계가 진전됐다고 해도 괜찮겠지?
욕조에서 나온 나는 욕실의 바닥에 앉았다. 은채는 쭈뼛거렸지만 희진이는 이미 몸에 비누를 바르고 있었다.
“세린, 오늘 수고 많았어. 수고 많이 한 남편한테 해주는……‘온몸으로 씻겨주기’ 서비스!”
비누를 많이 묻힌 가슴이나 배, 팔로 내 몸을 만진다. 희진이가 내 몸을 만질 때마다 그녀의 살결을 느낌과 동시에 비누가 퍼졌고 먼지 등이 씻겨 나갔다.
“언니……그러면 오히려 더럽히는 거 아니에요?”
“우리 은채도 참……. 사랑하는 남편님한테 이런 서비스를 해야지 좆물을 듬뿍 받을 수 있다는 거 몰라?”
앞으로 가능하면 ‘정신 이상’마법은 쓰지 말자……. 효과가 너무 세다. 서비스를 받고 있는 내가 무안할 지경이다. 은채는 다가와 입을 맞췄다. 평범한 키스지만 그녀가 나한테 했다는 것이 이토록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푸하……. 수, 수고했어. 오늘……우리 지켜주면서 싸워줘서 고마워.”
“사랑스러운 아내를 지키는 건데 뭘. 우리 은채, 기특한걸? 가능하면 이곳에도……해줄래?”
미인 두 명이 들어와 알몸으로 서비스하는데 발기 안 하는 게 미친놈이잖아? 우뚝 선 물건에 희진이는 좋아했고 은채는 ‘……으, 알겠어’라며 마지못해하며 승낙했다.
“걱정 마. 한 번 뽑기만 하면 돼. 지금은 피곤하거든. 나중에 밥 먹고 할 테니까 한 발 뽑아주기만 하면 OK. 어때?”
“어때고 자시고 간에……거부권이나 있어?”
총명하군. 자세를 낮춘 채 희진이와 은채의 입이 번갈아가며 내 귀두(龜頭)에 닿았다.
“은채와 함께 서방님의 좆대가리에 키스하는 거……정말 좋아. 응? 세린? 짜릿하지?”
“하아, 으응. 나이 40살에 가까운 마법소녀의 키스라니……최고인데? 아니, 이름은 마법걸레로 바꿔야 하나…….”
“쯉……쪽! 하, 흐읏……사랑……하는 아내의 키스를 받고 있는데 다른 여자 이름 꺼내다니. 최악이야……쪼옥♥”
최악이라면서 온 마음을 담아 키스하다니. 츤데레는 이래서 좋아 ♬ 은채가 들으면 경을 칠 말을 생각하며 두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키스와 입 장난은 더욱 거세졌다.
“쪽! 마법걸레 항희진의 키스 공격에 못 견디겠지? 응? 세린? 뽀옵~♡”
“빠, 빨리 싸버리라구……! 고귀한 내 입에 닿은 거니까 그 정도 성의는 보이라구……!”
현실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었던……사정 재촉의 말에 더욱 짜릿함을 느낀다. 그래, 바로 이거다! 이 절대적인 쾌락과 스릴! 이것이야말로 그 어떤 오락에 비교하더라도 지지 않는 궁극의 즐거움이다……!
“사랑스런 아내들한테 바치는 자지 크림……맛있게 먹으라구……웃!”
싸버린 액체는 그녀들의 어깨나 입 주변에 묻었지만 약간은 바닥에 흘러버렸다. 희진이는 ‘아앗……아까워. 오늘 하루의 피로를 풀어줄 최고의 음식이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은채는 먹은 걸 삼키지 않은 채 혀를 굴리고 있다. 저건……?
“하, 읍……끄릅. 쯀떡. 웨엑……하아, 어례(어때)? 어?”
기특하다고밖에 말이 안 나왔다. 삼키기 힘든 그 좆물을 입 안에서 굴려가며 나한테 보여주다니……!! 서비스 정신으로 가득한 그 광경에 희진이는 너무 예쁘다며 은채를 칭찬했고 은채는 윙크를 한 후 그걸 꿀꺽 삼켰다.
“하, 하아……! 남편님한테 처음으로 한 서비스……마음에 들었어?”
“……응. 정말 사랑스러웠어. 우리 은채……오늘 밤에 기쁘게 해줄게?”
“마, 마음대로 하라고……그치만, 이렇게까지 서비스했는데 빈약하면……가만히 안 둘 거야?”
기대하라며 그녀의 가슴에 키스하자 ‘하읏! 으, 변태……’라며 토라졌다. 오늘 밤도 즐겁겠군. 남은 3~4일 정도는 그녀들의 육성에 집중하자. 아마 휴가가 끝나면 촉수 괴물의 여왕을 소탕하기 위한 마지막 대토벌이 시작될 거 같았다. 멤버도 이 정도면 충분하고.
지금까지 여러 가지를 경험했지만 저 숲은 역시 위험하다. 이번 기회에 괴물의 뿌리를 뽑는 것뿐만 아니라 여왕을 죽이는 걸로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마무리 짓자. 그렇게 다짐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걸 보는 건 이제 싫다. 싸우는 힘을 얻은 이후로 프레그넌트의 사망률은 매우 낮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매우 낮아지는 정도’로는 안 된다. 다른 마을과의 교류가 활발할 수 있도록. 숲의 출입 또한 누구나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확실한 조치가 필요했으며, 여왕을 포함한 괴물 토벌이 바로 그 ‘확실한 조치’였다.
예전에는 멤버가 모자랐지만 이번에는 멤버가 빵빵할 뿐만 아니라 시간도 많다. 더 이상 여행에 얽매일 필요가 없으니 단숨에 없애주마.
각오해라……. 지금까지 너희가 죽인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 뼈저리게……. 지옥에 가서도 잊을 수 없도록 확실하게 새겨줄 테니 기다리고 있어라.
오늘 밤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늘 마음 한 구석을 찜찜하게 만들었던 촉수 괴물들의 최후 또한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 작품 후기 ============================
어린이 방송은 우습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꽤 힘이 드는 프로그램입니다. 말을 잘 안 듣는 아이들을 한데 모아 교육시키는 것부터 시작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율동이나 놀이를 준비해야 하거든요. 그뿐입니까? 성질 죽여가며 일해야 한다지만 어린이 방송은 특히 더 그렇죠. 찡그리고 있는 표정을 방송으로 내보낼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어린이 방송의 '언니'나 '누나'로 칭해지는 여성분은 굉장한 위치에 서있는 사람입니다.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전국의 어린아이들 + 부모님이 자기를 보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방송에 오래 나가면 그만큼 인지도도 올라가고 사람들한테도 인정을 받게 됩니다. 우습게 보이겠지만 절대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되는 위치. 그게 바로 레귤러라고 생각합니다.
희진이가 어린이 방송의 레귤러가 되다니. 여러 모로 힘든 일이겠죠. 저희가 사는 실제 세상으로 치자면 무속인+별창녀 속성을 지닌 여자가 어린이 방송 레귤러를 맡고 싶다고 말하는 거랑 동격입니다. 케이블이나 듣보잡 방송국이라면 모를까, 공중파 방송에 나가는 건 그야말로 불가능하죠.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요. 그런 여성이 어린이 방송 레귤러를 맡았다간 바로 문의나 레귤러 교체 요구가 쇄도할 겁니다.
마법소녀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죠. 마법소녀가 단순히 어린애. 특히 여아만을 노리는 시대는 옛날에 지나갔습니다.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나 프리큐어 시리즈 등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단순히 여아뿐만 아니라 성인 남성이나 남자아이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애니가 나오게 됐죠. 살짝 겉늙은 여성이 마법소녀 코스프레를 한 채 애교를 부리다니? 최고다, 와그쨩!
WUG(웨이크 업 걸즈)를 본 적은 없지만, 여하튼 이건 넘어갑시다. 정신상태가 맛이 간 희진과 욕데레 은채의 매력을 마음껏 묘사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이제 슬슬 전투를 메인으로 삼는 에피소드가 등장하겠네요.
부족한 전투씬을 19금으로 커버치자니 묘사가 부족하고, 19금씬만 내놓자니 스토리 진행이 안 되고. 참 막장이긴 막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멘트에 대한 답변입니다.
돌핀임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듣는 말이지만 엄청 예리한 말이네요. 여성은 아니지만 그 말을 듣고 왜 여고에서 싸움이 일어나는지 단숨에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여자라고 해서 다 친한 건 아니니까요. 게다가 세린을 두고 경쟁하는 구도가 생기기도 했기에 매우 적합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그렇다고 해서 세린이 착하다는 건 아니구요. 인간 쓰레기 같은 면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流江님, 댓글 보고 뿜었습니다. 희망없는 루트와 매력이 떨어지는 히로인이라는 말을 보고 'HUH!? 내, 내 소설 말인가?'하고 생각했는데……밑의 미카즈키 부분을 보고 철혈이라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리긴 했지만 희망없는 루트와 매력이 떨어지는 히로인이라는 지적이 제 글에도 적용된다는 점에 또 놀랐습니다. 그걸 보고 생각한 게
[데!? 서, 설마 철혈과 와타시의 소설을 동시에 까는 데스카!? 저, 절묘한 디스 데스! 애니와 소설을 동시에 까다니!?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데슥!]
이었습니다. 부디 제 글까지 노려 말씀하신 게 아니기를 바랄 수밖에 없네요.
……그런 거 아니죠?
점차 적어지는 댓글과 조회수. 이걸 타파하기 위해서는……서평이 필요하겠죠?
네? 연참 업로드를 하라구요? 아, 안 되는 데슥!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서평이 필요한 데스!
따, 딱히 오해하지 말라구! 서평을 원해서 이런 츤데레틱한 말투를 쓰는 게 아니니까!
……죄송합니다. 서평 적어주실 분은 적어주세요. 이왕이면 '작품, 작가, 스토리 진행. 전부 다 미쳤다. 맛이 갔다. 약 한 사발 거하게 빨고 후기를 미친놈처럼 적는다'라고 적어주시면 좋겠네요. 틀림없이 사람들이 웃으며 제 글을 봐줄 거 같습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실제로 미쳐날뛴다는 점에서 좀 우울해지네요. 앞으로 미쳐날뛰는 정도를 좀 줄여야 할 거 같습니다.
봄이 점점 다가오네요. 얼른 제 취직도 다가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