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8 「9-7 : 여왕과 공주 (7)」 =========================
“저기, 마리아……님.”
“어머, 세린도 참……. 존댓말이나 격식 차릴 필요 없다니까요?”
한숨이 나온다. 어지간하면 사람 앞에서는 한숨을 안 쉬려 했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 난 내 옆에 있는 아테나를 봤다.
“아테나……그, 좀. 떨어져주면 안 될까?”
“세, 세린……내가 싫어진 거야? 그런 거야?”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거 같았기에 ‘시, 싫어지긴! 그냥 밥 먹을 때는 좀 떨어지자는 거지!’라고 얼른 대답했다. 그러자 ‘헤헤……그렇지? 역시 날 싫어할 리가 없지? 세린도 참……자, 내가 먹여줄게!’라며 숟가락을 나한테 들이댄다.
미치겠다. 정말 미치겠다. 내 주변을 둘러보니 아내들은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날 보고 있었다. 마리아와 아테나가 내 옆에 딱 붙어 음식을 먹여주거나 아양을 떠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본다면 나도 저러겠지.
인격을 변화시킨 것도 아닌데 섹스 파티 이후 마리아와 아테나는 매우 적극적으로 나한테 애정을 표현했다. 뭐가 잘못됐나 싶어서 스테이터스를 확인한 결과 그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거라고 해야 할까…….
여왕이었던 마리아와 그녀의 딸. 공주 아테나는 ‘생명의 씨앗’을 만드는 것으로 모든 사람들한테 행복을 주며 그들의 본분을 다하고 있었다.
생명의 씨앗으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기쁨. 그리고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이 이끌고 나갈 이 세상과 사회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생명의 씨앗을 만들 수 없게 됐다. 그건 아마 백발(白髮) 여자 짓이겠지. 뭐? 왜 나쁜 건 다 그 여자 탓이냐고? 내 탓이 아니니까! 그 여자가 수상하니까! 그뿐이다. 책임전가는 나쁜 것이지만 책임전가 당하기 싫으면 수상한 짓을 하지 말아야지.
생명의 씨앗을 만들 수 없게 된 그녀들은 각지에서 출몰하는 괴물들한테 목숨을 잃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씨앗을 만들 수 없게 된 것도 안타깝지만 인력이 우선시 되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란 매우 중요한 존재다. 그걸 보충할 수 없게 된다는 건 치명적인 것이다.
신하나 주민들을 보며 그들은 더욱 더 자격지심을 느꼈다. 물론 인덕이 후했고 품성이 좋은 그들한테 욕을 하지도 않았고, 모든 것을 그들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도 없었다. 씨앗을 만들 수 없게 된 건 자기들이 원해서 그런 게 아니니까.
그치만 남들이 괜찮다고 해서 자기도 괜찮은 건 아니었다. 자기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건 바로 자기 자신이 아니겠는가? 가장 높은 자리에 있기에 책임을 느끼는 마음 또한 강했고 이는 생명의 씨앗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만들었다.
생명의 씨앗은 오직 자기들만이 만들 수 있는 것. 여왕과 공주. 두 명의 힘을 빌려 만드는 생명의 씨앗을 대신 만들 수 있는 사람도 없었거니와, 만드는 방법조차 몰랐다. 그렇기에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해 포기하려는 찰나 들은 소문이……나와 아이라에 관한 것이었다.
아이라와 같은 고위급 마법사가 왜 나갔는지 의문으로 여기게 된 마리아와 아테나에 의해 자세한 조사를 하게 됐고 그 결과 ‘생명의 씨앗을 대체할 수 있는 걸 만들 수 있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됐다. 바로 나다. 망할.
나한테 생명의 씨앗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것도 중요했지만 나에 대해 조사하던 중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여자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남자의 생식기는 어떻게 만들 수도 없잖아. 게다가 이 세상에는 남근을 조사할 수 있는 남성조차 없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두 명은 오기 전부터 자기들이 할 일에 대해 확실히 정해놓은 거 같았다. 나한테 방법을 묻는 건 둘째 치고 협력을 구한다. 협력을 구할 경우 수도부터 시작해 온갖 마을을 돌아다니며 그 씨앗을 뿌린다……라는 형식으로.
즉, 수도로 가는 건 1차적인 거고 내 마을 순례 및 탐방기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해져 있었다는 소리다.
“자, 앙~♡ 후후, 스프는 맛있나요?”
섹스 후에는 반말과 거친 말투로 날 놀라게 했지만 이젠 안정된 건지 다시 존댓말을 한다. 마리아의 푸짐한 가슴이 흔들릴 때마다 침이 절로 삼켜진다. 지, 진짜 끝내준다. 수박만한 가슴을 가진 여자가 날 위해 음식을 떠주다니……! 현실에서는 있을 수조차 없는 체형이다.
“세린도 참……입 헤벌쭉 하다가 먹은 스프 다 흐르겠어요.”
로라의 한 마디가 가슴을 푹 찌르며 들어온다. 으윽, 로라. 제발. 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아니, 웃으면서 제발 그렇게 웃지 마요. 무서워요……!
왕가(王家)의 사람만이 입을 수 있는 황금색 비키니 아머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여성, 마리아. 그녀의 분위기는 로라와 매우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로라의 경우 진심으로 누군가를 걱정하고 배려한다면, 마리아는 여왕다운 기품으로 그 걱정과 배려를 행한다고 해야 하나…….
진심과 의무는 다르긴 하지만, 마리아는 어떠한 사람이든 그 뛰어난 인격과 기품으로 대했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괜찮은 여자구나……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실제로 온후한 성격이기도 했고. 섹스 때 과격해지는 것만 제외한다면 굉장히 대하기 편한 사람이기도 했다.
“세린이여. 여자 바라보며 헤벌쭉 거릴 것인지, 음식을 입으로 처먹을 건지. 둘 중 하나를 결정하거라. 추하구나.”
아스카가 맨 처음 만났을 때처럼 엄청나게……아, 아니다. 아스카는 여전히 가끔씩 나한테 비꼬는 듯한 말투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저걸 보니 좀 화난 거 같다. 이번에는 아테나가 나한테 먹어보라며 음식을 입에 대준다. 어, 맛있네.
아테나는 처음에는 고압적인 말투 등이 아스카를 닮았었다. 지금도 닮긴 했다만……. 하지만 섹스 이후에는 존댓말을 쓰다가 다시 반말을 쓰게 됐다. 아마 마리아와 마찬가지로 욕망이 해결되니 다시 본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봐야겠지.
어머니이자 여왕인 마리아의 고심은 아스카 또한 맛보고 있었다. 생명의 씨앗은 둘이서 함께 만드는 것. 어머니를 원망하는 마음이 일절 없었던 아스카는 그게 자기 탓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몸에는 이상이 없었기에 그 외에 무슨 문제가 있나를 생각했지만 문제는 발견할 수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걸 해결할 수 있겠지만 해결방법은커녕 뭐가 문제인지조차 몰랐기에 그 사실은 아테나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죄송함과 안타까움.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도울 수 없는 한심한 자신.
이 이상 상황이 나빠져서는 안 된다는 의무와 마음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신경이 날카롭게 됐다.
하지만 어찌 됐든 두 명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높은 자리에 있다 치더라도 당연히 감정을 가지게 됐고 이 주된 감정은 ‘스트레스’였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계속 생각하다보면 방법을 찾을 수 없는데다 자기가 이런 문제 하나 해결 못 할 정도로 무력한 인간이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글 읽는 사람은 알겠지만……스트레스라는 건 정말 무서운 것이다. 사람이 자신감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1~2개월 만에 그 자신감은 박살날 수 있다. 아주 흔적도 없이. 산산조각으로. 인간의 정신(멘탈)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로 튼튼하지 않다. 그렇기에 정신 치료(멘탈 케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한 가지 질문을 하고자 한다. 몸이 아프면 어디로 가야 할까? 당연히 병원에 가야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문제는 ‘몸의 어디가 아프냐’에 따라 가야 하는 곳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가 아프면 치과에 가야하고, 눈이나 귀가 아프면 이비인후과에 가야 한다. 자기가 아픈 곳에 따라 그걸 치료할 수 있는 병원에 가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럼 정신이 아프면 어딜 가야 할까? 바로 정신과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해 동양권에서는 정신과 간다고 하면 바로 정신병자로 여기는 나쁜 습성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아프면 치료해야지. 아프면 청춘이냐? 환자라고 시발. 아픈 걸 치료해야지 훈장으로 여기면 안 된다고 병신들아!
정신과에 다니는 사람을 정신병자라고 여기지만 막상 그렇게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 또한 크든 작든 정신병을 지니고 있다. 강박증부터 시작해 자기도 모르는 정신병을 지니게 된다.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러한 병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가 없다. 사회가 사람을 병들게 만드니까 말이지.
마리아나 아테나가 갑자기 정신줄을 놓은 채 쾌락에 젖게 된 것도 바로 그런 거겠지. 스트레스의 배출구를 찾을 수 없던 중 강렬한 신체적 쾌감에 의해 그녀들은 자기가 가졌던 모든 고민을 던질 수 있었다. 자기를 옭아매던 많은 굴레로부터 벗어나 진실된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겠지. 문제는……너무 진실되어서 탈이라는 것이다만.
아테나 또한 마리아와 함께 내 곁에 있다. 아침부터 내 좆을 빨던 그녀들이지만 이렇게 보니 정말 매력적인데……. 친근감 있으면서도 매력적인 타입이라니. 어……뭐라고 해야 하지?
[혜린이의 성격 + 아이나의 극진한 태도 + 아스카의 중2병틱한 태도]라…….
“……완전체잖아.”
쩌, 쩐다. 이렇게 생각하니 정말 쩔어줬다. 와……마리아도 마리아지만 그 딸인 아테나도 쩔어준다. 스펙이 이렇게 쩔어주다니. 사람들이 괜히 공주나 여왕을 빠는 게 아니었어! 쩔어주잖아! 지금까지 만난 내 아내들의 좋은 부분을 마구 때려 박은 느낌이다. 세상에……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건가?
“세린, 어때? 맛있어?”
“어? 어, 응. 맛있는데…….”
“후후……내 남편인데 몸 잘 챙겨야지. 그래야 앞으로 날 만족시킬 수 있잖아?”
그런 말을 듣자 한편으로는 기뻤지만……주변을 보니 모두 벌레 씹은 표정이다.
“……그냥 다 식당에서 나가줄까? 식탁 위에서 섹스하는 것도 볼만하겠네.”
은채가 틱틱대지만 솔직히 내가 미안함을 느낄 정도다. 아니, 이거 내가 원해서 그러는 거 아니라니까? 제발 좀 봐주라, 응?
“어, 있잖아. 마리아, 아테나. 이렇게 잘 해주니까 고마운데……그. 정말 괜찮은데. 떨어져주면 안 될까……?”
혹시나 또 싫어하는 거냐 하며 울까봐 조심스럽게. 그녀들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아테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마리아는 웃으며 반격한다.
“어머? 그런 부담 느낄 필요 없다니까요? 여왕인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괜찮지 않나요? 누가 피해보는 사람도 없고.”
아니, 난 있거든요? 나랑 내 아내들이 실시간 리얼타임으로 피해를 보고 있거든요? 내 경우에서는 마음고생까지 받고 있다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여왕과 공주가 이렇게까지 극진하게 서비스를 해주는 건 좋지만……다른 아내들이 없는 곳에서라면 모를까. 모두가 함께 있는 식사시간에! 그것도 앞으로 계속 이러면 힘들다고!
“그, 그래도 다른 사람들도 있고, 보는 눈도 있으니까……응? 이거 먹고 또 이야기 할 것도 있잖아?”
마을의 섹스 파티는 저녁을 먹을 때쯤에 해산한다. 이건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내 체력도 생각을 해야 하니까.
저녁을 먹은 후에는 휴식 시간이 되어야 하지만 그들이 말했던 시나리오를 모두한테도 말해야만 했다. 마을 순례탐방(巡禮探訪)도 아니고 강간탐방(强姦探訪)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미친 짓이라고!
저녁을 다 먹은 후 모인 곳은 아이나의 집무실이었다. 아스카까지 모이니 장관이군. 여기 와서도 두 명은 내 옆자리를 차지했고 모두 ‘……야, 그렇게까지 걔들이랑 같이 있고 싶냐?’라는 눈빛으로 날 본다. 아니라니까 시발! 내 말 좀 들으라고! 필요할 땐 남편이지만 필요 없을 때는 좆물 제조기냐? 응?
“음, 얘들아. 우선 이야기를 하기 전에……마리아랑 아테나가 내 옆에 있는 건 아마 예전의 너희랑 비슷한 거라 생각해. 고민이나 스트레스가 폭발해버린 후에는 같이 있으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섹스도 하고 그랬잖아?”
“나는 그런 적 없느니라!”
아스카가 크게 외쳤다. 그녀를 바라보니 얼굴이 조금씩 빨개지기 시작했다.
“오, 오해 말거라! 어제까지 헛간에 갇혀 있느라 그런 것이다! 결단코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적어서 삐진 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거라!”
예, 좋은 츤데레 감사합니다. 난 결국 외쳤다.
“아스카땅 카와이이!”
“……지랄을 해라.”
또 은채가 투덜거렸다. 음, 이럴 때 해줘야 하는 말은 바로 이거겠지.
“우리 은채……오늘 밤에 만족시켜줄 테니까 너무 토라지지 말고.”
“미, 미쳤냐! 누가 만족 못 해서 그런 건 줄 알아? 아내로 삼아놓고 왜 소홀하게 대하는 거야, 놈팽이 자식…….”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아와 아테나는 그 커다란 가슴에 내 양쪽 팔을 끌어당기고 있었기에 당장이라도 의식을 잃어버릴 거 같았지만……참자. 참아야 하느니라!
“그건 내 탓이 아닌데……. 마리아와 아테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리고 혹시나 싶어 말해두지만 마리아와 아테나가 내 곁에 있다고 해서 너희를 사랑하는 내 마음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안심하라구.”
닭살 돋는다 시발! 아니 차인표나 이병헌 같이 잘 생긴 사람이 말하면 모를까 나 같은 병신이 말하니까 그야말로 실시간 병신 인증이잖아? 진짜 저 멀리 강물이라도 있으면 힘차게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는구나! 누가 물 준 것도 아닌데 잡초 같이 자라는 걸 보니 생명력도 뛰어나겠고! 하하, 좋구나 좋아!
내가 정신병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모두는 그 말에 안심한 거 같았다. 이런 말에 안심하다니. 나도 참 놈팽이군.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늘 아침에 이야기를 해봤는데 말이야. 어, 나 아무래도 큰일 난 거 같은데 있……잖아 아니 근데 왜? 왜들 다 표정이 그래?”
모두 다 눈을 크게 뜬 채 날 보고 있었다. 보통 눈을 크게 뜰 때는 놀라거나 화가 날 때지만……왜 갑자기 저러지?
“세, 세린. 어디 아파? 혹시 우리랑 너무 섹스해대서 아픈 거야? 응?”
혜린이 너무나도 진지하게 물었다. 갑자기 뭔 소리야 이 여자?
“아,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럼 큰일이라는 게 뭔데? 아픈 게 아니라면……혹시 우리한테 질린 거야? 응!?”
은채가 벌떡 일어나 내 어깨를 잡았다.
“어, 아니. 그런 거 아니라니까……아, 야! 아프다! 어깨 세게 잡지 마! 아니, 좀 놓으라고!?”
“그럼 대체 그 큰일이 뭐냐고! 엉!? 설마 임신시켜놓고 죽는다, 그딴 말 하려는 거 아니지!?”
“아, 아니라니까!”
내가 크게 소리를 지르자 어깨를 잡던 손에서 힘이 점차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은채의 눈시울이 붉은 걸 보니 엄청 흥분한 거 같은데.
“그, 다치거나 아픈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아냐. 하물며 니들 버리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일단 진정하자. 응?”
모두가 바라보는 가운데 너무나 흥분했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던 걸까. 은채는 눈시울을 닦은 후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힘들다. 사건은 마리아랑 아테나가 벌일 생각인데 왜 고생을 해야 하는 건 나일까? 필시 이것도 ‘원하지 않는 일에 휘말리는 인생’ 때문일 거라 생각하며 입을 연다.
“마리아랑 아테나가 여기 온 이유는 다들 알지? 생명의 씨앗을 만들 수 없게 됐기에 날 찾아온 거. 그게……해결할 방법이 생기긴 생겼거든.”
“수도로 갈 생각은 아니지, 아빠? 응?”
니나가 날 ‘아빠’라고 부르다니. 드문 일이지만 그만큼 걱정이 앞선다는 거겠지. 그치만 뭐라고 말을 해야 수습을 잘 했다고 소문이 날까? 나도 모르겠다. 모르니까 이 지랄을 하는 거겠지. 알면 내가 은채나 다른 아내들을 흥분시켰겠냐?
“내가 너희 버리고 갈 거 같냐? 문제는 어. 수도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모두 고개를 갸웃거린다. 혜린이나 아이라마저 저럴 정도니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이자 마리아와 아테나가 제시한 문제 해결 방법이 얼마나 미친 것인지 새삼 이해가 간다.
“그……수도부터 시작해서 말이야. 모든 마을을 돌아다니며 좆물을 주입해줘야 할 거 같은데…….”
모두 다 얼어붙었다. 유일하게 움직이는 사람은 내 팔을 더욱 가슴팍에 넣으려 하며 ‘어때? 기분 좋아? 응?’이라며 묻는 두 사람이었다. 예. 기분 너무 좋습니다. 죽을 거 같은데 죽을 수 없습니다. 하하하.
“……있잖아, 세린.”
사신이 강림한 거 같다. 정말 도망치고 싶었다! 목숨이 위협받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도망칠 수 없다니!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이란 말인가? 난 나 자신의 처지를 저주하며 나지막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아이나한테 대답했다.
“……예, 아이나 님.”
원래라면 ‘우쒸,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하며 귀여운 아이나땅 펀치를 먹이겠지만……지금은 도저히 그럴 때가 아니었다. 오죽하면 저절로 존댓말과 ‘님’이라는 말이 나올까?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만화 등에서 하렘에 들어간 남자는 참으로 행복해 한다. 어, 그래. 나도 물론 행복하다. 목숨을 위협받는 위기만 없으면 말이지. 그리고 그 ‘목숨을 위협받는 위기’가 현재진행형으로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당장 칼이 날아올 거 같다.
“드디어 미친 거야? 응? 뭣하면 우리가 그 머리를 칼로 가른 다음 이물질 제거해줘? 응?”
분위기가 싸해진다. 진짜 살인이라도 일어날 거 같은 분위기다만……지금 막 아이나가 말한 것으로 인해 난 이미 한 번 죽었다. 뇌가 갈라져서. 원하지도 않는데 이미 가사(假死)체험을 하다니. 내 인생도 참 불쌍하다.
“세린.”
“넵.”
이번엔 로라다. 웃고 있지만 살기가 가득하다.
“다른 곳에 가서 그 자지를 수많은 여자들한테 박아댈 걸 생각하니 기분 좋죠?”
“아닙니다!”
힘차게 대답했다. 농담이라도 ‘예!’라고 대답했다간 당장 소드 스킬이 날아올 거 같았으니까.
“미카는 어떻게 생각해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거기 가서 눈 다친 여자 있으면 눈에 좆 비벼대며 사랑 고백하지 않을까.”
으아아아아! 진짜 미치겠다! 당장이라도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도망칠 수도 없고 도망친다고 한들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내가 지금까지 한 짓이 날 까는데 사용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아, 했구나. 생각해보니 하긴 했다.
흠, 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내 아내들이 내 행적을 바탕으로 날 극딜하고 있다! 신명나게 까고 있다고! 난 고통을 즐기는 변태가 아니라고 몇 번 말해야 알아듣겠냐!?
“미, 미카! 그건 오해야! 내가 눈 두덩이에 자지를 비벼대는 건 오직 너뿐이라고!”
최악의 고백이다. 그치만 미카는 ‘……그, 그런다고 누가 화 풀 거 같아?’라며 토라졌다. 미카땅, 카와이이! 아, 시발……근데 지금 이딴 생각할 때가 아니잖아? 귀엽긴 귀엽다만!
“아직 가는 게 확정된 건 아냐! 그, 마리아랑 아테나의 말도 들어봐야지! 응? 어디까지나 갈 수도 있다는 거잖아? 난 너희를 버릴 생각 절대로 없어! 그러니까 그렇게 화내지……마세요. 아니, 진짜 무섭다고……!”
내가 쫄면서도 겨우 할 말을 다 하자 모두 한숨을 쉰다.
아니, 나거든요? 이 와중에 한숨 쉬며 신세 한탄 하고 싶은 사람은 바로 나거든! 내가 제일 울며 이런 상황을 만든 백발 여자를 때려눕히고 싶은데 왜 너희가 한숨을 쉬니? 응?
“남편이란 작자가 수도랑 마을을 돌며 온갖 여자들을 강간하겠다는데 그걸 찬성하는 미친년이 어디 있어…….”
희진이의 촌철살인에 난 변명할 수조차 없었다. 좋아서 하는 건 아니라지만 내가 하겠다는 행동은 바로 그거니까. 마을을 돌아다니며 아기 씨앗을 주입한다니. 예전에 그냥 생각만 해본 것이지만 그걸 생각해봤다는 거 자체가 이미 인간으로서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었다는 증거 아닐까?
반대로 생각해보자. 내 아내가 ‘나, 이제부터 다른 남자들 좆 좀 빨고 올 거니까 그렇게 알아. 보지랑 똥구멍이 좆물로 흥건해진 채 돌아오겠지만……이해해줄 거지?’라고 말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시발 어떤 느낌이긴 어떤 느낌이야!? 좆 같은 느낌이지! 아, 씨발! 생각만 해도 열 받는다!
뭐어? 내 아내의 소중한 아기의 보금자리, 그리고 괄약근을 니놈들의 더러운 좆물로 흥건하게 해준다고?
이런 좆같은!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당장 다 죽여 버려도 속이 시원찮을 거 같다!
생각만 해도 열 받는데 더 열 받는 건……내가 바로 그런 병신 같은 말을 했다는 거다! 내 아내들이 다 모인 곳에서! 너무나도 멍청하게! 나 병신 아냐? 아, 아니다. 병신 맞다! 병신이 맞으니까 그딴 말을 지껄인 거겠지!
빌어먹을! 난 어째서 이토록 멍청한 걸까? 내가 나 자신한테 묻고 싶었다! 아니, 묻고 있다! 근데 대답을 못 하겠다! 왜냐고?
사람이 물과 공기, 음식이 없으면 죽는 이유? 못 먹으면 죽으니까!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요소니까! 그렇게 당연한 것에 질문을 할 필요가 없듯이, 나 자신한테 물어도 답은 ‘니가 병신이라서 그래’라는 답밖에 안 나왔다! 진짜 심플해서 좋다 시펄!
“……미안하다. 생각 없이 병신 같은 소리 지껄여 대서…….”
난 진심으로 사과했다. 내 팔을 잡고 있던 마리아와 아테나의 팔로부터 벗어나 일어서서.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당장 얘들이 날 때려도 난 맞아야 한다. 거부할 권리가 어디 있을까? 대놓고 바람 피우러 간다는 나 같은 미친놈은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하아. 화가 난 것도 화가 난 거지만……. 그, 방법이 그거밖에 없어? 진짜?”
혜린이가 모두를 대표해 묻는다. 다시 몸을 세웠다.
“……다른 방법이 딱 하나 있는데. 아직 마리아랑 아테나한테는 말을 못했어.”
“지금 하면 되겠네.”
반성과 변명의 기회를 준다는 뜻이다. 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우선은 이 문제부터 어떻게든 해결하자. 당장 눈앞에 봉착한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남자가 어찌 나중을 기약하겠는가?
“마리아, 아테나. 어, 너희는 그……여왕이랑 공주지?”
“예. 왕궁의 어느 곳이든 세린이랑 섹스를 할 수 있으니 걱정 마셔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어, 있잖아.”
아마 이게 내 마지막 히든카드가 될 거 같다. 한숨을 쉰다. 내가 생각한 이 방법은 ‘아기 씨앗을 대체할 수 있지만 굳이 갈 필요가 없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방법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마리아나 아테나가 가진 ‘힘’이 필요했다.
마법이 아니라 권력이나 돈 같은 ‘힘’이. 날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아내들을 위해, 그리고 내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마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도구나 무기. 혹시 가지고 있어?”
============================ 작품 후기 ============================
하렘물을 볼 때마다 주인공이 둔감한 걸 보고 '저 병신 새끼는 왜 저렇게 눈치가 없냐? 눈치 좀 까라고, 병신아! 너한테 여자애들이 대준다잖아! 다리를 벌려준다는데 왜 그렇게 말을 못 알아처먹니? 병신이냐?'라고 생각했습니다.
헌데 실제로 하렘물을 쓰자니 힘들더군요. 둔감한 주인공을 쓰는 것도 힘들지만 둔감하지 않은 주인공을 묘사하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눈치가 없으면 눈치가 없다고 욕 먹고, 눈치가 있으면 우유부단하게 있지 말고 히로인 빨리 정하라며 욕 듣고. 뭘 선택하든 주인공한테는 비난과 비판이 날아갑니다. 사실 그럴 수밖에요.
다른 사람들은 한 명만 있어도 행복한 히로인들을 몇 명이고 데리고 있는 게 되니까요. 이걸 보고 훈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짜증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죠. 아, 전 우유부단한 주인공의 태도와 작위적인 하렘 건설에 짜증을 느끼는 편입니다. 예? 못 믿겠다고요?
흐, 흥! 착각하지 마! 딱히 주인공이 부러워서 그런 건 아니라구!
……이제 아셨죠? 제 말을 믿으세요. 제 말을 믿지 않으시면 또 나이 30에 가까운 남자놈이 '흐, 흥! 딱히 너 때문에 OO한 건 아니라구!'라며 토라지는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아니, 까놓고 말해서……여자가 한다면 모를까, '로리, 다이스키이잇!'이라며 외치는 제 츤데레를 보고 싶으십니까? 저도 보기 싫은데 독자분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죠. 제가 츤데레 흉내를 낼 때마다 '아, 씨발……이 소설 존나 보기 싫어진다'라며 한숨 쉬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여하튼, 작위적인 전개와 둔감한 주인공의 병신짓을 볼 때마다 짜증을 냈는데……실제로 하렘을 만들자니 그것도 참 못 해먹을 짓이더군요. 특히 이번 편에서는 아예 대놓고 다른 마을을 돌아다니는 섹스투어를 해야겠다고 말합니다. 이거 뭐 미친 것도 아니고……진짜 가끔씩 '나도 참 미친놈이구나'하고 웃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생각도 못 할 것을 마구 소설로 쓰니 말입니다.
네? 가끔씩 그렇게 생각하냐고요? 또 제가 츤데레하는 거 보고 싶으십니까? 그냥 그러려니 합시다. 츤데레를 보느니 그래 작가 니놈 말 한 번 믿어주마. 알면서도 속아주마 하며 넘어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9챕터도 끝이네요. 10챕터의 끝까지 쓰면 100편. 100편을 달성하면 예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잠시 재정비의 시간을 가지겠네요. 일주일 다섯 편. 주5일 연속으로 올리는 것도 꽤나 힘들었습니다. 소설을 쓰는 것도 힘들지만 후기를 체크하며 답변하는 것도요. 독자분들이 만족할 만한 답변을 드리는 건 역시 힘든 거 같습니다.
약 빨고 쓰는 후기도 여러 번 하다 보면 약빨이 떨어져서 하기 어렵더군요. 제가 미친놈이긴 하지만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늘상 미쳐있는 건 아니거든요. 이렇게 보니 나도 그나마 정상적인 놈이긴 하구나 싶네요. 독자분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미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 마츠다아아아! 누굴 쏘는 거야!? 죽고 시퍼어어어!?
소녀시대를 믿습니다!
축구시대를 믿습니다!
리버스 카드 오픈! 에네미 컨트롤러! 라이프를 1000 지불하는 것으로 야가미 라이토의 컨트롤을 얻는다!
위, 아래, 왼쪽, 오른쪽, A! 후자케루나아아아────앗!
그래, 마츠다! 그렇게 정직한 인간이 송해를 보는 거야!
넌 그런 세상이 좋아?
알아들었으면 그놈들을 쏴!
다 쏴죽이라고!
……송해를 봐……?
송해?
띵……똥……땡……똥……!!
전구우우우욱!
노래자라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