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2 「11-1 : 중장(中章)의 시작 (1)」 =========================
“우와! 왕궁은 인구수도 그렇지만 침대도 아주 죽이는구만!”
정말 끝내줬다. 경비대에 있는 침대도 썩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이건 아주 푹신푹신하다 못해 말랑한 게……이대로 여기 누우면 10분 이내로 잠들 거 같았다. 역시 돈이 최고구만. 속물적인 생각을 하며 천장을 바라봤다. 정말 엄청나군.
“그렇게 누웠다가 잠들면 어떻게 하려고? 이제 곧 점심일 텐데.”
원래라면 혜린이가 이런 말을 해야 했지만 지금 나한테 걱정의 말을 건네준 건 은채였다.
“너도 여기 누워볼래? 진짜 짱이야. 야, 역시 부자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어휴, 겨우 침대 가지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면 어떻게 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 보지 마렴. 난 가난해서 이런 침대는 꿈도 못 꿨으니까. 은채는 내가 누운 침대에 살짝 걸터앉았다. 침대가 얼마나 좋은지 느껴보려는 거겠지.
후후, 느껴라! 침대의 마력을!
사람을 잠들게 만드는 침대의 위력을!
돈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이, 이게 아닌데!?
내가 지금 무슨 말을 지껄인 거지? 난 침대 하나만으로 사람이 이렇게 미쳐 날뛸 수 있구나 싶었다. 남자가 너무 흉한 거 아니냐고? 너희도 호텔 VIP룸이나 그런 곳의 침대에 누우면 이렇게 반응할걸?
나와 아내들은 지금 현재 수도에 있는 상태였다. 캡슐의 제작 및 분배도 끝났고 마음도 어느 정도 추슬렀기에 이 세상의 수도이자 서울인 ‘레이프’에 온 것이었다. 도시의 이름이 강간(Rape)이라니. 카미유도 그렇거니와 미친 네이밍 센스를 너무 많이 겪어서 이젠 웃음도 안 나왔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마리아와 아테나가 직접 마중까지 나와 모두가 놀랐었다. 모두에는 나와 아내들뿐만 아니라 주변의 경비대원들까지 포함됐다.
황금색 비키니 아머를 입은 두 명의 미인 모녀가 날 맞이해주다니. 기분 짱이었다. 얘들 놔두고 내가 어떻게 죽겠냐?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지.
레이프가 아이라가 있던 도시, 어보션의 두 배 정도의 규모라는 걸 들은 적은 있었다. 그때는 ‘아, 크겠구나’ 싶었지. 텔레포트로 오기 전까지도 ‘좀 과장된 거겠지. 설마 그 넓디넓은 어보션보다 두 배는 크겠어?’라고 생각했다.
소위 ‘흥, 그건 사실이 아냐. 좀 과장된 것뿐이라고!’와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사람은 두 부류다.
첫째. 사실을 잘 파악한 것이다. 과장이란 말 그대로 본래의 것보다 살이 좀 더 붙은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했다는 소식이 입에서 입을 타고 와전(訛傳)되다 보니 과장된 소문이 된 것처럼 말이다.
과장이 너무 심해지면 소문의 주인 또한 ‘아, 그거 사실 아닌데……어떤 새끼가 그딴 식으로 소문 퍼트리는 거임? 고소 처맞고 싶음? 고소각? 받아라, 고소미의 힘! 과자 고소미 선전 아님!’이라며 곤란한 처지를 맛보게 된다.
과장된 소문을 너무 퍼뜨리지 말자. 진실은 언제나 자기가 직접 확인해야 가치가 있는 거니까. 과대광고도 그렇잖냐.
……과장된 소문이나 과대광고라고 생각하니 열 받네. 뭐가 제일 열 받냐고? 과자와 홈쇼핑이다. 그래, 한국 과자. 가격은 더럽게 비싸면서 안에 있는 과자의 내용물은 조금. 그리고 질소는 엄청 많았기에 ‘질소과자’라는 영광스러운 명칭까지 받은 과자다.
비싼 돈 주고 샀는데 과자는 얼마 없고 질소만 가득 찬 상황. 비싼 돈을 주고 샀단 말이다. 근데 과자는 씨발 아주 좆만하게 들어 있으면 그걸 보고 ‘어머……과자를 보호하기 위해 질소를 많이 넣었네? 감동스러워……’라고 말할 거 같냐, 시발놈들아? 소비자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도 작작 해라!
과자 부서지는 걸 막기 위해 넣었다고? 아니, 안 넣어도 돼! 과자는 입 안에 들어가면 부서지거든? 오리하르콘이나 다이아몬드로 만든 광물체(鑛物體)가 아니거든? 돈 올리고 과자 줄이는 좆같은 짓 하지 말고 정직하게! 가격에 맞는 내용물을 팔란 말이다!
질소가 없는 대신 상자는 더럽게 크게 만들고 안에 플라스틱 같은 걸 넣어 과자를 줄인 예도 있었다. 박스로 된 과자. 흔히 말하는 ‘곽(槨)과자’지.
봉지에 든 걸 ‘봉지 과자’라고 하고. 질소가 많이 들어간 것은 봉지 과자다. 그렇기에 그걸 피하기 위해 곽(박스) 과자를 샀지.
결과는?
창렬 과자는 박스든 봉지든 상관 없었습니다 오 ^0^/
안 그래도 양이 봉지 과자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그걸 플라스틱 쪼가리 같은 걸로 막으니 더욱 더 양은 줄어든 상태였다.
아름답고 안전한 포장을 위해 플라스틱 등을 넣었다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과자 기업들을 박살내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인 줄 아냐?
완충제(緩衝劑). 충격을 흡수하고 상품을 보호하기 위한 것을 넣는 건 좋다. 하지만 안 그래도 적은 양의 과자를 개별 포장지에 넣는 것도 모자라 완충제(플라스틱)를 크게 만들어 사람들의 눈을 속이다니. 병신 짓도 정도껏 해야지, 이런다고 과자가 맛있어지냐?
과자는 어린 아이들부터 시작해 어른들까지 모두 먹는 것이다. 모두가 먹는 것의 가격을 너나 할 것 없이 담합하여 올린 것도 모자라 소비자를 우롱하다니. 만 번 죽어 마땅하지 않은가? 이 병신 짓거리를 더욱 짜증나게 만드는 요소는 두 가지 더 있다.
첫째. 국내 소비자와 해외 소비자의 차별이었다. 국내 소비자는 그야말로 봉, 병신, 호구였다. 미친 듯이 가격을 올리며 양까지 줄여버려도 부모님들은 그걸 아이한테 사줄 수밖에 없었다. 왜냐고? 자기 귀여운 자식한테 과자 하나 못 먹여주는 부모가 되고 싶겠는가? 지갑을 열 수밖에 없다!
이 씨발 국내 과자 기업들은 그런 부모님들의 안타깝고 애절한 마음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
양은 창렬, 가격은 부르주아급.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소중한 자식들을 위해 지갑을 열 수밖에 없는 부모님들을 비웃으며 오직 이익과 돈만을 위해 자기 멋대로 행동했지. 실로 때려 죽여도 할 말이 없지 않겠는가?
그런 짓 자체도 용서할 수 없지만 더욱 용서할 수 없는 건 국내와 해외의 사정이 완전 다르다는 것이었다. 국내에서는 양은 좆대가리만큼도 없으면서 더럽게 비싼 과자. 하지만 외국에 나가면 반대가 됐다. 무슨 뜻이냐고?
미국 같이 해외에서 판매되는 국내과자는 가격도 싸고 양도 더 많다, 이 소리다. 그야말로 최고의 병신 호구 인증이지 않은가? 과자를 개발하는 국내, 대한민국에서는 온갖 폭리를 취하며 양 줄이기, 가격 상승, 완충제 장난질 등을 쳤는데 외국에 있는 사람들한테는 싼 가격에 푸짐한 양을 주다니? 이런 때려죽일 놈들을 보았나?
이런 역차별은 과자뿐만 아니라 자동차에서도 보였지만……그래. 그건 넘어가자. 난 자동차에 대해 해박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냐고?
물론 있지! 과자의 가격이나 양뿐만 아니라 품질까지 다르다는 것이었다! 품질이 다르다는 의미에 대해 아주 쉽게 이야기하자면……한국의 과자는 존나 안 좋은 재질로 만든다. 하지만 외국 과자는 좋은 재료 써서 값 싸고 양 많게 만든다. 설명 끝!
장난이냐고?
농담이냐고?
진담(眞談)이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유명한 예시로는 일본 아몬드 초코볼이 있지. 일본의 아몬드 초코볼은 20개가 넘어갈 정도로 많이 채워주지만 한국 아몬드 초코볼은 개별 포장. 덕분에 쓸데없는 완충제나 포장지, 과자 박스 크기의 상승으로 인해 가격이 더 비싸진다.
하지만 초콜릿 성분으로 유명한 카카오 버터를 수출용에만 쓰고, 정작 한국 초코볼에는 초콜릿용 식물성 유지를 쓴다는 사실이다.
왜 그딴 짓을 하냐고 물었더니 국내 소비자는 식물성 유지. 싸구려가 더 입에 맞는다. 이딴 소리나 지껄이고 앉아 있는 실상이었다.
외국보다 더 비싼 값에 양 적은 과자를 먹는 것도 안타까운데 그 품질마저 최악급. 이러니 누가 국산 과자를 사먹고 싶겠는가? 외국 과자를 사먹지. 외국 과자를 먹으니 국내에서는 위험하다, 발암물질이다 등 온갖 언론 플레이를 했지만……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시발, 몸 좋아지려고 과자 먹냐? 맛있는 거 먹고 싶어서 먹지. 국내 소비자들이 외국 과자 사먹는 건 다 니들 탓이고, 그게 싫으면 있을 때 잘 했어야지! 군대 있을 때도 [잘 해줄 때 잘 해라]라는 말 들었잖아? 니들 필요할 때는 호구로 써먹고 위험하니 언론 플레이로 사람들 또 호구로 만들려고? 꺼져 병신들아!’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국내 소비자를 호구로 만들면서 외국에는 온갖 아양을 떠는 국내 과자 기업의 태도를 볼 때마다 역겨웠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짜증인데 더 짜증나는 요소가 있냐고? 있다. 바로 「절대 자기들의 잘못을 인정 안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사람들을 교묘히 속이며 폭리를 취한 주제에 그걸 지적하면 ‘그건 옳지 않습니다’라고 한다. 옳지 않기는 시발. 원자재의 가격이 줄든 늘든 간에 가격은 무조건 올리는 놈들이 ‘그건 옳지 않다’라니.
가격이 그대로인 경우에는 잘 봐라. 양이 줄어있을 것이다. 플라스틱으로 된 완충제가 좀 더 커지거나, 과자 자체의 양이 줄어들거나. 절대 양심적으로 팔지 않는 것이 과자다. 알아 놔라.
국내에서는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일반인들이 동영상을 만들어 퍼트렸고 방송국에서도 이에 대한 취재를 했었다. 저런 장난질에 대해 정부 수준에서 제재를 가하려 했지만 그래도 자기 자식 같은 국내 기업이라 제도 개선 정도에 그쳤지. 4~5년이 지난 지금에도 장난짓 치며 지랄하는 걸 보니 그냥 병신짓, 헛수고였다고 생각한다.
왜 이렇게 국내 소비자를 호구로 취급하고 외국 소비자한테만 좋은 일을 하냐고 물으니 했던 말이 가관이었다.
‘과자 업체 : 플라스틱 완충제를 안 쓸 수가 없어요. 깨진 거 나오면 좋겠어요? 과대포장이라고만 몰아가면 개발 의욕이 떨어져요. 데헷♪’
데헷♪? 이 시발놈이!? 깨져도 좋다 시발놈아. 과자는 도자기처럼 소중하게 모시는 게 아니라 처먹는 거다. 와삭거리며 입 안에서 부서지는 거라고, 시발!
왜 잘못했냐, 이딴 식으로 하냐고 물으니 하는 말이 저 따위다. 개발 의욕이 퍽이나 우수해서 이 따위로 하고 앉아있냐…….
제품의 품질이 안 좋으면 양이라도 많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으니 ‘과자는 배고파서 먹는 게 아니라 간식! 맛을 보려고 먹는 거잖아? 일종의 오락 활동이라규!? 양은 중요하지 않아!’ 따위의 헛소리나 지껄이고 앉아 있었다.
하하, 미친놈들. 이렇게 자국민을 등쳐먹고 외국인한테 아양 떠는 놈들과 같은 민족이라니. 구토가 올라올 거 같았다.
내가 뭐하다 이런 말까지 하게 됐지? 아, 그래! 과대광고나 과장된 소문! 과장된 소문이나 과대광고로 여기까지 분통을 터뜨릴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용하다고 생각한다만, 그 정도로 분노의 골이 깊었다고도 이해해주면 좋겠다.
사람은 반성하며 살아가는 생물이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실수를 저지르며, 그 실수로부터 여러 가지를 배워 가며 성장하는 동물이지.
근데 자기들이 저지른 짓에 대해서는 반성도 안 하는 놈들이 뭐? 개발 의욕이 떨어진다고? 시발, 주둥아리에 그 잘난 초콜릿 식물성 유지를 한 박스 처부어도 모자랄 놈들 같으니라고.
“갑자기 표정이 왜 그래? 뭐 안 좋은 일이라도 떠올랐냐?”
아, 그랬지 참. 소문대로 어보션보다 훨씬 더 큰 레이프를 보며 큰 감명을 받은 것부터 시작해 온갖 걸 다 생각했구나. 내가 생각해도 진짜 삼천포로 잘 빠진다 생각한다. 난 왜 이럴까? 감수성이 예민하다고 해두자. 잡생각이 많다는 표현보다야 낫잖아.
“그냥,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그나저나 침대 느낌은 어때?”
“우리 집에서 쓰던 거랑 비슷한데? 꽤 좋은 거 같네.”
……여기 또 한 명의 금수저 집안 처자가 계십니다. 빌어먹을. 내가 잊고 있었다. 얘는 우리 중 집안이 가장 부유한 인물 중 하나였지. 자수성가한 혜린이도 얘한테는 아마 안 될 텐데.
금수저 집안의 딸로 태어난 박은채. 그녀는 어린 나이에 정계(政界)에 나갈 정도로 경제력이 있었다. 그런 은채가 집에서 싸구려 침대나 물건을 쓸 리가 없다는 걸 좀 더 빨리 깨달아야 했나……. 고작 침대로 이렇게까지 들뜬 모습을 보이니 좀 부끄럽네.
하지만 자기 집에 있는 고급 침대랑 비슷한 정도라고 하니 확실히 이 침대가 좋긴 좋은 모양이다. 오오, 푹신한 거. 좋다. 정말 좋다. 얼굴을 부벼대니 은채가 웃었다.
“그게 그렇게 부드러워?”
“응.”
솔직하게 대답하자. 괜히 허세 부려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고, 실제로 이런 좋은 침대는 써본 적이 별로 없으니까. 내가 얼굴을 비벼대며 ‘웃효오──ㅅ!’란 괴성을 질러대니 킥킥 웃어댔다. 그래, 실컷 비웃으렴.
“침대 가지고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
“현실에서는 이런 거에 누워본 적이 거의 없었거든. 내가 자던 침대는 그냥 어디에서 얻어온 침대였고, 그렇게 넓지도. 푹신푹신하지도 않았어.”
과거 회상은 이제 안 하고 싶은데 요즘 들어 자주 하게 되네. 눈을 감은 채 생각한다. 원래 세상에서 겪었던 일들을.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 어렸구나 싶네. 뒤통수를 쓰다듬는 따스한 손은 은채의 것이겠지?
“그래도 다행이야. 기운 차려서.”
“……니가 보기에도 내가 좀 이상해 보였냐?”
얼굴을 들고 말하면 더 비웃을 거 같았기에 침대에 얼굴을 파묻은 상태였다.
“그럼! 아침부터 ‘우리 은채의 아기 보금자리에 좆물을 끼얹고 싶어……’라며 침대로 끌고 가는 미친 짓을 했는데, 걱정이 안 되겠어?”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로 가고 싶다. 원래 세상에 있었을 때 말고, 방금 저 말 지껄였던 때로. 돌아가서 나 자신을 흠씬 두들겨 패고 싶었다. 미친 새끼. 그 미친 새끼가 바로 나라는 것 또한 죽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희진이 언니한테는 자지 박은 채로 노래까지 부르게 했다며? 우리 사랑스런 희진이의 노래를 듣고 싶다고 했을 때 드디어 니가 미친 건가 싶었다니까? 아, 그 전에도 미쳤었지만 더 본격적으로 미친 건가 싶었어.”
당장 창문 열고 밖으로 다이빙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진짜 죽음을 각오하고 온갖 미친 짓을 다 저질렀구나 싶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딴 짓 안 해야겠다……떠올린 것만으로도 이렇게 쪽팔리다니. 으으……!!
“아스카까지 걱정했다니까? 남편 상태 이상하다고. 그런 주제에 무슨 고민이 있는지, 문제가 뭔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몸만 탐하니까……다들 걱정했어. 지금은 괜찮아져서 다행이지만.”
“……미안하다.”
“미안하면 앞으로 그런 짓 하지 마. 나도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어휴……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진짜 마음고생만 시킨다니까?”
원래라면 ‘그렇지 않다능! 난 아내들을 사랑하는 착한 남편이라능!’ 같은 등신 머저리 소리를 지껄여야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내 상태가 씹창이었다니. 그 빌어먹을 백발(白髮) 여자 때문에 마음고생 진짜 심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니 고민이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우리를 좀 믿어봐. 힘들고 곤란한 일이 있을 때 서로 의지해야 부부 아냐?”
“……그렇긴 한데. 그, 나 때문에 괜히 불안하게 만들면 좀 미안해서.”
“말 안 해도 불안하고 힘드니까 말한 후에 힘들어 해도 괜찮아.”
“……너 진짜 시원시원하게 산다.”
현실이었다면 이렇게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거다. 이 세상에 와서 이렇게 변한 거지. ‘하렘 어드벤처’에 와서 여자들을 범하거나 하는 성범죄를 저지르긴 했다만……달라진 건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도 달라진 거 같네. 그럼, 이왕 달라진 거. 미친 말이나 지껄여볼까?
“있잖아. 이 침대……생각해보니까 그 감촉이랑 닮았어.”
“무슨 감촉?”
“우리 귀여운 은채 가슴. 탄력 있으면서도 말랑말랑한데?”
그러자 은채의 표정이 달라졌다. 경멸……은 아니군. 웃으면서 한숨을 쉬다니. 무례한 행동이지만 내가 한 말도 무례하기 짝이 없었기에 뭐라 할 말이 없군.
“그래, 그런 식으로 농담하는 게 차라리 이전보다 나아.”
“……아니, 그. 화내도 되는데?”
혹시나 마음에 더 담아뒀다가 빡칠 바에야 그냥 화내는 게 낫잖아? 원인 제공은 나다만.
“니가 이런 짓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다른 아내들이 아니라 내 가슴이랑 비교해준 것도 기뻤고. 히히♡”
예전과 비교했을 때 완전히 달라져버린 은채를 보니 좀 찡하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니 죄책감을 가져야 할까, 정신 개조를 잘 했다고 뿌듯함을 느껴야 할까.
후자(後者)를 선택하면 인간 쓰레기다만, 전자(前者)를 선택해도 이미 훌륭한 인간 쓰레기였기에 뭘 고르든 내가 손해였다. 굉장해. 뭘 고르든 쓰레기라니. 궁극의 양자택일이잖아.
내가 쓰레기인 건 둘째 치자. 원래 이랬으니까. 본격적으로 쓰레기가 된 건 여기 와서부터지만, 변해버린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모두 다 변했다고 해야겠지.
혜린이를 비롯해 현실에서 온 사람들은 더 이상 현실에 큰 미련을 두지 않는 거 같았다. 다들 대단하네. 나야 섹스를 실컷 즐길 수 있으니 좋다지만……얘들은 아니잖아.
“은채야.”
“응?”
내 옆에 누워 가슴을 밀착하던 은채는 웃고 있었다.
“그, 내가 할 말은 아닌데. 이 세상에 온 거……후회되지 않아?”
“후회해.”
엄청 쿨하군. 얘가 이런 애였던가? 독재당 대표로 나왔을 때는 조금씩 어버버 거리던 애였는데. 왜 이렇게 쿨하게 변했을까. 아니면 원래부터 쿨했는데 정치 활동에는 맞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여기에는 스마트폰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우리 집은 고사하고 부모님도 없어졌으니까. 솔직히 아쉬워. 안 그럴 리가 없잖아?”
그건 맞는 말이다. 나도 컴퓨터로 게임하고 싶고 스마트폰으로 웹서핑도 해보고 싶었다. 음악도 듣고……여기 와서 섹스의 쾌락에 젖어든 지금에 와서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만……. 그래도 문명의 이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했다.
“갑자기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판타지 세상에 날아와서 너 같은 놈한테 강간당했는데, 그게 좋을 리는 없잖아?”
“……미안하다.”
음. 멋진 요약이다. 진심으로. 내가 여자라도 싫겠다. 죽는 것도 싫지만 나한테 강간당하다니. 내가 얼마나 쓰레기인지 알고 있으니 나도 이해가 간다. 근데 왜 나는 날 디스하는 말에 이토록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걸까. 좀 슬프네.
“그치만……이상해. 여기 와서 너랑 몸을 나눈 후로는……이제 다른 건 아무래도 좋게 된 느낌이 들었거든.”
천장을 향해 드러누운 은채는 푹신하다며 몸을 가볍게 흔들고 있었다. 얘도 오랜만에 좋은 침대에 누우니 살짝 흥분한 거 같네.
“현실에서 돈이나 권력으로 하던 짓도 좋았고 독재당에 입당한 것도 좋았는데. 솔직히 의문도 들었었어. 정말 이걸 해도 괜찮을까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걸까 하고.”
생각지도 못한 걸 들었군. 금수저 아가씨가 흔히 말하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인가? 금수저 아가씨한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 방황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꽤 부유한 사람의 고민이다. 배불러서 등 따뜻한 곳에 누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좀처럼 하기 힘든 고민이지.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서민, 빈민, 흙수저는 그런 걸 고민할 틈이 없었다. 그저 입에 풀칠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을 주는 곳에 들어가야 했다. 그게 아르바이트든, 비정규직이든, 인턴이든, 계약직이든 간에.
정사원? 공무원? 대기업? 그건 아무 노력 없이 되는 줄 아냐? 그런 건 학연, 지연, 혈연도 중요하지만 실력과 시간도 필요했다.
내가 앞서 말한 3연. 빽에 대해서 증오감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모든 사람들이 빽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런 거 없이 노력해서 들어간 사람들한테는 존경심을 가지기도 했다.
난 그런 재능도 없었고 노력할 시간 등도 없었지. 변명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노력해서 갚아야 하는 것이 부모의 빚이라면 노력하고 싶은 의욕이 싹 사라질 거다.
난 그랬다. 내가 쓰지도 않은 돈을 갚아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었지. 너네 같으면 공부하고 싶겠니? 돈 벌어서 모조리 빚에 꼴아박아도 모자란데?
“여기 와서 겪은 일이 아주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만족해. 생각지도 못한 남편을 얻은 것도 좋고. 너무 변태라는 점만 제외하면 딱일 텐데.”
“그런 말하면서 자지에 얼굴 비비지 마……읏.”
바지 위로 얼굴을 비벼대던 은채는 툭 튀어나온 바지 끝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아픔을 느끼면서도 더욱 더 앞으로 나가려는 남근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고생을 하네. 너무 변태라서 문제라는 점에 대해 뭐라 변명도 못 하겠군. 나도 내가 변태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에 안 드는 점은 많지만 까놓고 말해 니가 잘못한 것도 아니잖아? 이 세상에 온 걸 나름 즐기고도 있고. 이런 야한 옷, 현실에서는 못 입고 다니니까…….”
데드 오어 얼라이브(통칭 DOA) 시리즈의 주인공, 카스미의 옷은 확실히 입고 다니긴 그렇지. 코스프레를 해도 살이 너무 많이 보여서 좀 껄끄러우니까.
“여자들은 이런 야한 옷, 별로 안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럴 거면 선물은 왜 했어?”
당연한 걸 왜 묻니?
“그야 입은 거 보고 싶었으니까.”
“여자들도 입고 싶어 하는 사람은 입고 싶어 하겠지. 나야 원래 별 생각이 없었지만……아빠랑 엄마가 내가 이런 옷 입은 거 알면 엄청 놀랄걸? 아기까지 가졌다고 하면 진짜 기절할 거야.”
애 지우라는 소리도 하겠지. 그 소리는 안 했다. 괜히 뭐라고 할 거 같았으니까. 아무리 생각이라지만 그런 말은 안 하고 싶다고.
“처음에는 이 세상도 싫었고 너도 죽을 만큼 미웠는데. 그, 단체 섹스 파티에서……다른 여자들이랑 하는 거 보니까 열 받더라고. 내 남편이 무슨 섹스 파트너 업체에 등록한 놈팽이도 아닌데 왜 저기서 다른 여자 보지에 박아대고 있나 싶더라?”
“이해해라. 그 사람들도 여자니까 남편이 필요하잖냐. 남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육체적으로 쾌락이나 만족감도 필요했고.”
“그 변명이 사실이라는 점도 싫었어. 더 이상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으면 차라리 이 세상에 적응해보자는 생각도 들었었거든. 희진이 언니가 나 때문에 상처 입은 것도 돌봐주고 싶었고.”
서로 섹스를 할 때 욕을 하고는 했지만 역시 희진이와 은채는 제일 친한 거 같았다. 다행이야. 마음을 기댈 곳이 있으면 그만큼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길 테니까.
“언니는 나나 혜린이보다 고생 많이 했으니까……잘 돌봐줘.”
은근슬쩍 혜린이를 ‘언니’가 아니라 이름으로 부르는 건가. 내 첫 아내라는 점도 있었지만, 그녀들을 강간할 때 간접적으로 도와준 것에 대해 원한을 가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좆물에 보지가 흠뻑 젖으면 그런 것도 잊고 서로 키스를 해대며 사랑을 나눌 테니 큰 의미는 없겠지만…….
“물론이지. 너도 잘 돌볼 거야. 누구 아내인데?”
“……나쁜 새끼.”
그 말을 끝내자마자 난 은채의 입에 내 입을 맞췄다. 푹신한 침대에서 키스를 해서 그런 걸까? 바로 그녀와 몸을 나누고 싶었다만……이제 곧 점심시간이었기에 참아야만 했다. 밥을 먹은 다음으로 기약해야겠군.
왕궁에서 먹는 점심은 어떤 음식일까 생각하며 아내들과 나는 식사를 하는 곳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웃우우우우────웃!
플로듀서! 중장(中章)이에요, 중장!
서장에서 중장으로 돌입했으니 막장도가 훨씬 더 증가할 거예요!
공공장소에서 강간 + 결혼 선언도 모자라 임산부 배빵 & 낙태 마법 난사!
마을 단위로 난교를 펼치는 것만 해도 막장이었는데 그 이상으로 막장으로 가다니!
딱 봐도 이 소설, 나중에 경고크리 처먹을 거예요! 웃우우우우────웃!
엑에에에에에────엑!
플로듀서! 과대포장이에요, 과대포장!
과자가 많다고 광고하면서 실제로는 빈 공간과 질소를 존나 많이 처넣은 과대포장 광고에요!
완충제 역할도 못 하는 거나 처넣으면서 과자를 지키려고 하다니! 언어도단!
과대포장으로 과자 만드는 새끼들은 과자 한 봉지 뜯어서 좆이나 똥구멍에 처넣어봐야 정신을 차릴 거예요!
햣하하하하하하하────핫!
플로듀서! 헛소리에요, 헛소리!
작가도 헛소리랑 미친짓을 많이 하지만 과자회사는 더 미친짓을 많이 해요!
과대포장이다, 질소과자라고 욕하니 자기 잘못은 인정 안 하면서 이딴 말이나 해요!!
과자회사 : 플라스틱 완충제를 안 쓸 수가 없어요. 깨진 거 나오면 좋겠어요? 과대포장이라고만 몰아가면 개발 의욕이 떨어져요. 데헷♪
다 좆 잡고 반성해도 모자랄 판이에요! 여자라면 보지에 딜도 처넣고 반성해도 모자랄 발언이에요!
언젠가 과대포장하는 과자회사 사장들이 심장마비로 뒈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건 안 비밀이에요!
웃우우우웃────!!
……예, 안녕하세요. 시작부터 강려크한 약을 빨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작가, 메리사(신세린)입니다. 처음 뵌 분들은 '뭐야, 이 작가……미친 거 아님?'이라 경악하실 테고 오랜만에 보신 분들은 '아, 이 작가 또 약 빨았네 ㅋㅋㅋ'하며 웃으시겠죠.
네? 말도 안 될 정도로 미쳐서 살짝 정색하셨다고요?
어허, 이 사람들이!?
적응합시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입니다!
5월부터 다시금 연재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집안 사정은 어떻게든 해결됐습니다. 그나마 그건 다행이네요. 취업 부분은……영 이상한 곳의 계약직. 이런 곳만 발견하는 걸 보니 저도 참 능력자긴 능력자인 거 같습니다. 그 능력이 안 좋은 방향의 능력이라 아쉬울 따름이죠. 회사에서 돌아온 후나 휴일의 짬을 이용해 계속 적을 생각입니다.
집안일과 취업(일시적)이 모두 해결되니 정말 기쁘네요. 앞으로도 이 기쁨을 만끽할 수 있도록 열심히 약을 빨 생각입니다. 약을 빨아서 '헤, 헤헤……약물중독 아헤가오 더블피스! 남자놈의 더블피스다, 이놈들아!'라며 열심히 미친 짓을 해보겠습니다.
네? 남자놈의 아헤가오 더블피스 따위는 필요 없다고요?
저도 필요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입니다.
연재는 이전처럼 평일 연재(주5일)이며 코멘트에 대한 답변도 최대한 성실히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P.S - 본문 중 『소위 ‘흥, 그건 사실이 아냐. 좀 과장된 것뿐이라고!’와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사람은 두 부류다.』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만, 다시 보니 두 부류 중 하나만 설명했네요. 나머지 하나가 무엇인지는 적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생각나면 적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