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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어드벤처–당신의 아기를 낳고 싶어-138화 (138/235)

00136 「14-5 : 왜 내 인생은 늘 이러냐……? (11)」 =========================

언제 괴물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숲이지만 지금만큼은 그런 숲이 반가웠다. 아기 씨앗이 잠자고 있는 배와 자궁을 부드럽게 쓰다듬은 안즈는 다시금 뒤를 살짝 돌아보았다. 총합 95명에 달하는 야만족 동료들. 그 동료들을 보니 벌써부터 전의(戰意)가 솟아오른다.

겨우 100명 남짓 남은 동족들. 그 동족들과 함께 다시금 이렇게 대군을 형성해서 괴물 토벌을 나가게 될 줄이야. 이것도 모두 그 바보 같은 남자 덕분이다. 안즈는 기쁨과 함께 떠오르는 남자, 세린을 생각했다.

출진(出陣) 전에 잠시 상태를 볼까 들렀던 곳에서 그는 여러 가지를 물었다. 배가 능력을 도중에 쓸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하냐는 등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지는 그를 보니 우스웠다. 마력봉인수갑에 묶인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그런 질문이 무슨 득이 된다고 한 것인지 원.

어제부로 모두 아기의 씨앗을 가지게 됐지만 찾아간 때는 저녁쯤이었기에 아직 임신을 마치지 않은 야만족이 있었다. 저항이나 반항? 어차피 죽기 싫은 이상 허리를 흔들어 대야 했기에 그의 반항이나 저항 따위는 일말의 생각할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모두와 함께 그 빌어먹을 청록색의 촉수 괴물을 토벌할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기뻤다. 며칠 전부터 몇 번이나 마음속에서 그려왔던 풍경일까? 소중한 야만족 동족들과 터전을 빼앗아간 괴물놈들을 처단하기 위해 몇 백 번 이상 그리고 그렸던 풍경이다. 그리고 그 풍경은 오늘에서야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풍경이 곧 다가올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제는 기쁨에 가득 차 있었다. 그 바보 같은 남자가 던진 질문에 일일이 답해준 것도 그 반동이겠지.

가르쳐줘도 상관없지만 대답을 할 의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답을 했다는 건 자기 자신도 약간 풀어진 감이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죽어간 동족들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괴물한테 당한 상처가 깊어 마을에서 죽은 또래 아이. 그 아이의 시체를 부여잡은 채 울던 동족. 지금 와서는 모두 죽은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잃지 않기 위해서는……싸울 수밖에 없었다.

족장 같은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시궁창 같은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인물은 자신과 키리 정도였다. 성격도 다르고 평소 아주 친했던 것도 아니지만 어찌할 줄 몰라 하는 동족들을 내버려둘 수는 없었기에 힘을 합치기로 했다. 물론 그 후에도 의견 충돌은 빈번했었지.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괴물이었다. 저 괴물이 있는 한 야만족한테 미래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지역에만 서식하는 괴물놈들은 우리를 끝까지 쥐어짤 생각 같았다.

아니지? 저 괴물 새끼들한테 ‘생각한다’라는 개념이 있기는 한 걸까? 있기는 있겠지. 우리를 죽이려 하는 부분에서는 누구보다 대가리가 잘 돌아갈 테니까.

이놈들은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부분에서는 정말 교묘하기 짝이 없는 개새끼들이었다. 등에 난 무수한 촉수와 다리 사이에 있는 날카로운 촉수. 접근전, 중거리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머릿수와 리치를 살린 포진(布陣)을 볼 때마다 절망만이 느껴졌다.

가까이 오면 촉수뿐만 아니라 그 육중한 몸을 사용해 접근전을 시작했다. 눈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사각에서의 공격에 등이나 배후를 찔려 죽은 동족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설령 두 명 이상이 동시에 접근전을 벌인다 해도 놈들은 당황해하지 않았다.

사람을 관통하고도 남을 촉수를 이용해 점프하거나 우리를 향해 돌격한 후 다리 사이의 촉수로 동족을 난자(亂刺)한 적도 있었다. 난자당하는 동료를 구하고 싶었지만 어찌할 줄 몰라 하다 기습을 받고 죽은 사람도 부지기수였고.

야만족은 원래 별 무기를 쓰지 않는다. 배가 능력과 함께 태어날 때부터 얻은 강인한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싸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접근전은 늘 불리한 상황의 연속이었기에 칼 같은 무기를 쓰는 동족들도 있었다.

그러나 놈들의 촉수는 상상 이상으로 위험한 것이었다. 칼은 닿지 않지만 놈들의 촉수는 닿을 수 있었으니까. 상상 이상으로 늘어나는 촉수에 의해 몸이 꿰뚫려 죽은 동족들 또한 꽤 많았고, 오늘 나온 동족들이 들고 있는 검은 그들의 검이기도 했다.

야만족은 원래부터가 마력이 약한 종족이다. 신체능력과 배가 능력을 발휘하여 싸우는 우리한테 마력은 그다지 필요 없다고 신이 판단한 걸까. 만약 그런 거라면 적절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마력이 많아도 놈들한테는 마법이 잘 통하지 않았으니까.

놈들은 마법에 대한 내성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그걸 마법내성(魔法耐性)이라고 불렀다. 마법에 대해 매우 강한 내성을 지닌 그들은 안 그래도 마력이 적은 우리의 마법에 아랑곳 않고 돌진해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놈들 꼴리는 대로 싸웠다는 소리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놈들은 가죽마저 두꺼웠다. 두꺼운 가죽 때문에 마법부터 시작해 타격 또한 제대로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았다. 가끔은 우리가 이들한테 살해당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한 생각도 해본 적이 있었다.

재수 없어서 아무한테도 말한 적은 없지만……아마 나 외에도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은 있었을 것이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이러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우리 야만족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능력 중 하나. 「힘의 배가(倍加)」를 쓰는 길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 능력을 통해 많은 괴물들을 쓰러뜨렸다. 쓰러뜨리고도 남은 괴물들이 많다는 게 또 문제긴 했다만.

길이 있으면 길을 방해하는 장애물도 있는 법. 그게 내가 세상을 살며 깨달은 것 중 하나였다. 배가 능력을 써서 싸우면 승률은 비교도 안 되게 올라가지만……배가 능력을 쓰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힘이 필요했다. 그건 바로 ‘생명 에너지’였다.

괴물과 대등하게 싸우고도 남을 능력이지만 그런 능력을 마음껏, 아무런 대가도 없이 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아기를 가질 수 있는 ‘생명의 씨앗’이 있을 때는 그걸 바탕으로 해 많은 괴물들을 죽였다. 나 또한 단 한 번이지만 생명의 씨앗을 쓴 적이 있었다. 결국 소멸해버린 아기한테 미안함을 느끼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살아남아야 아기를 낳을 수 있었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괴물부터 모조리 쳐죽여야 했다.

잃어버린 아기한테 미안함을 느낄 때마다 종종 생각하곤 한다. 괴물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괴물을 모조리 죽여 평온한 숲을 찾을 수 있었다면……지금쯤은 아기와 함께 이 숲을 거닐며 과거를 이야기했을 텐데. 그런 미래도 존재할 수 있었을 텐데.

아주 잠시지만 한숨을 쉬고는 다시 앞을 봤다. 이런 정신 상태가 계속 되면 싸움에서는 이길 수 없다. 이런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이런 슬픔을 더 이상 누군가가 맛보지 않아도 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게 아니던가?

누구나 안심하며 웃을 수 있는 미래. 모두가 웃으며 거닐 수 있는 야만족의 숲을 만들기 위해서는 배가 능력을 전제로 한 괴물 토벌은 필수였다. 그걸 위해서는 생명의 씨앗이 많이 필요했다. 이 계획은 분명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6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6개월 전부터 ‘생명의 씨앗’을 구하는 게 너무나 어려워졌다. 수도부터 시작해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대규모 도시, 어보션에서조차 그걸 구할 수 없다는 소식에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물건의 판매가 활발한 어보션에서도 생명의 씨앗을 구할 수 없다는 건 품귀(品貴) 현상을 뛰어넘었다는 뜻이었으니까.

배가 능력을 쓰지 않으면 아기는 점점 성장하게 된다. 이 와중에 새로운 아기를 임신하게 된다는 건 전투에 참여할 수 없다는 뜻이었고, 노련한 경험을 지닌 야만족이 쉬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전투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생명의 씨앗을 구할 수도 없고, 남은 씨앗만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살아남기가 어려웠다. 밖으로 나가는 것부터 시작해 괴물과의 전투를 최소화시키며 생명의 씨앗이 다시금 만들어지는 것을 기다렸지만……우리가 원하는 소식은 날아오지 않았다.

이대로 절망과 전멸만을 맞이해야 하나 싶었던 찰나 우리한테 들어온 소식은……생명의 씨앗이 다시 만들어졌다는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내용이었다. 바로 ‘생명의 씨앗을 대체할 수 있는 아기 씨앗’을 만들 수 있다는 자의 소식이었다.

그 사람은 ‘남자’라고 불리었으며 다리 사이에 ‘자지(좆)’이라는 생식기를 지녔다고 했다. 그가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현재는 프레그넌트에 거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아니. 그건 희망이었다. 우리의 숲을 구하기 위해 하늘이 주신 희망!

키리와 나는 그 건에 대해 토론을 하게 됐다. 소문은 아기 씨앗뿐만이 아니었다. 먹기만 해도 임신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좆물 캡슐’에 대해 들었을 때는 정말 뛸 듯이 기뻤다! 먹기만 하면 된다니! 생명의 씨앗은 보지에 넣기만 하면 됐지만 이건 그냥 먹기만 하면 됐으니까!

임신 기간이 생명의 씨앗보다 3배 이상 긴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우리한테는 선택지가 없었다. 늘 우리 입맛에 딱 맞는 선택지가 눈앞에 나타나지는 않으니까. 캡슐의 소문을 들었을 때 매우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캡슐이라는 걸 생명의 씨앗처럼 다 써버리면……그때는 어떻게 하지?’

캡슐이 아무리 편한 물건이라지만 그건 소비(消費)였다. 당장 생명의 씨앗만 하더라도 다 써버린 상태다. 캡슐을 아무리 많이 준비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사달이 나지 말라는 법은 없었고 그 점에서 나는 점점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키리와 나는 많은 캡슐을 가져오는 부분에서 꽤 논쟁을 벌였다. 그녀는 캡슐을 가져오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라 말했지만……난 그녀의 의견을 반박하며 막무가내식으로 몰아붙였다. 내 우악스러운 성격 덕분인 것도 있었다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내 의견을 쓰고 싶었으니까.

캡슐이 많으면 뭐하냐? 지금 우리 꼴을 보라고 했었지. 당장 그 많았던 생명의 씨앗조차 없어서 허덕이며 이 지랄을 하고 있는데 캡슐이라니. 언제 또 보충 캡슐이 올지조차 모르는데 그럴 바에야 캡슐부터 시작해 아기 씨앗을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는 놈을 납치하자고 했다.

원래부터 외부인과 접촉을 별로 하지 않았던 것도 있었지만 그 외부인을 아예 우리 숲으로 끌어들여 싸움을 위한 도구(노예)로 삼자는 말에 키리는 격하게 반대했다.

그러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모두 다 죽는 것이거니와 애초에 이 싸움에 외부인을 끌여 들였다간 후환(後患)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엄청 반대했었지.

그러나 난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굽힐 수가 없었다. 당장 데리고 올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이 지긋지긋한 괴물과의 싸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열쇠라면 당연히 데려와야 하지 않겠는가?

반은 협박, 반은 애원. 그리고 우악스런 내 성격과 어거지식 발언에 키리는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아기 씨앗을 주입받을 때는 나나 그녀나 현실을 잊을 정도로 황홀했지만 데려온 것 자체에는 여전히 반감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았다.

괴물과 싸울 때도 마찬가지지만 도망을 칠 때도 배가 능력은 매우 유용했다. 전속력으로 도망가면 놈들은 곧 우리를 포기했으니까. 납치 및 관찰을 위한 인원은 나 하나만으로 충분했기에 최대한 빨리 숲을 나가 프레그넌트로 향했다. 지체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몇 번 정도 들렀던 프레그넌트였지만 다시 들렀을 때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여기가 프레그넌트라고? 400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있었던 곳 치고는 너무나 활발하게 변했기에 내가 혹시 마을을 잘못 들른 건가 싶었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이 부근에 있는 가장 가까운 마을은 프레그넌트였으니까. 예전과 달리 활기가 넘치는 프레그넌트를 보니 너무나 궁금했다. 뭐가 이렇게 이 마을을 바꾼 거지? 대체 무엇 때문에 그녀들이 이토록 생기 넘치는 여성들로 바뀌게 된 걸까?

내가 프레그넌트에 온 건 마침 딱 저녁 시간이었기에 적당히 식사를 하며 사람들한테 물어보았다. 프레그넌트가 왜 이렇게 생기 있는 마을로 변했냐고. 그런 질문을 하면서 금방 알게 된 것은……. 그녀들 모두가 임신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듣자하니 ‘신세린’이라는 인물은 분신술 등의 마법을 적절하게 사용해 이 마을의 여자들과 모두 관계를 가진 듯했다. 이 이야기를 하던 여자들은 모두 황홀해하는 표정으로 그 당시를 상기했으며, 조금씩 부풀어 오른 배를 마치 보물마냥 쓰다듬었다.

마을 사람들을 모두 돌보는 것부터 시작해 마법의 적절한 사용까지 하다니. 놀랍기도 했고 대단하다고 생각도 했지만……그 이야기를 들으니 분노가 느껴졌다. 이 분노가 ‘시기’와 ‘질투’라는 이름의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왜? 왜 그 신세린이란 새끼는 이곳에만 들렀던 거지? 왜 모든 사람들을 위해 ‘좆물캡슐’이란 것까지 만들었으면서 우리 야만족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알아주려고도 하지 않았던 거냔 말이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분노를 느끼는 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숲의 괴물들을 퇴치하여 마을 사람들을 안전하게 만들었다는 것부터 시작해 모두와 함께 질펀한 난교 파티를 열었다는 것 등.

이 사람들한테는 기쁜 일이었겠지만 그러던 와중에도 우리 야만족은 죽어가고 있었다! 어째서……왜 그 신세린이란 새끼는 우리를 신경 써주지 않았던 거냐!?

당연한 소리지만……이건 내 억지였다. 괴물을 토벌한 것부터 시작해 캡슐 분배 등을 하게 된 것도 최근의 이야기다. 우리가 괴물과 싸우는 동안 이들도 괴물과 싸우고 있었다. 그 괴물의 종류나 강함에 차이가 있긴 했지만, 서로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라는 점에서는 같았다.

야만족은 원래부터 외부인과의 단절을 선호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래왔듯이 저들도 우리한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우리가 싸우며 죽었던 것에 대해 그들은 아무런 책임도 없었다. 그렇지만……그들만이 아기 씨앗을 주입 받아 새로운 생명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누리지 못했던 미래. 아기와 함께 새로운 미래를 살아가야 했던 우리한테는 시궁창 같은 현재와 거지 같은 괴물만을 부여한 세상. 그런 와중에 모두를 임신시켰던 ‘신세린’이라는 자가 점점 미워지기 시작했다. 당장에라도 그를 두들겨 패고 싶었다.

하지만 이러한 소망은 이루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의 주변에는 많은 아내가 있었으며 그 중에는 여왕이나 공주도 있다고 했다. 아무리 야만족의 배가 능력이 강하다지만 왕가(王家)의 여자들을 상대로 싸울 자신은 없었다. 그녀들이 이 프레그넌트에 없다는 사실에 감사해야만 했지.

내일 손님으로 찾아갈 생각이었지만 이미 그를 납치할 계획은 훨씬 더 과격하게 변하고 있는 중이었다.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설령 괴물이나 죽어간 야만족과 아무런 관계도, 책임도 없다지만……이 증오와 시기, 질투심을 어떻게든 그한테 표출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여자들의 말을 들으니 그와 관계를 가질 때 사용되는 마법은 분신술, 회복 마법. 그 외에는 거의 없다고 했다. 신체능력이 생각보다 약하다는 것 또한 좋은 정보였기에 내 머릿속에서는 납치 계획이 점점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용서할 수가 없다.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고……!! 어쩌면 여기 있는 여자들의 모습은 우리의 미래였을지도 모르는데……!! 혜성 같이 나타나 괴물을 쓰러뜨려 평화를 이룩했을 뿐만 아니라, 모두한테 아기 씨앗을 주입한 그가 야만족의 숲에 먼저 나타났더라면……!! 우리의 미래도 지금보다는 나아졌을지도 모른단 말이다……!!

질투와 시기, 분노와 증오. 번지수가 달랐고 아직 만나지도 못한 그를 원망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였지만……이런 증오를 발산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원래 아기의 씨앗을 야만족 모두한테 주입시킬 생각이었지만 그의 대우는 노예나 도구로 격하(格下)된 것도 이때 확실히 정했었지.

다음날 아침부터 손님으로 찾아가자 촌장인 ‘아이나’가 나를 맞이해줬다. 세린의 손님으로 찾아온 것도 있었지만 야만족이 이곳에 와서 손님을 찾은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기에 그런 거 같았다.

찾아온 그는 이곳의 경비대장으로 보이는 여자와 함께 있었고, 주변의 여자들을 보니 모두 다 세린의 아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배가 조금 부풀어 오른 마을 여자들과 달리 척 보기에도 아기가 성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배가 불러 있었으니까.

그의 모습은 딱 잘라 말해 ‘그리 미덥지 않은 남자’였다. 날 보며 그의 다리 사이에 있는 자지가 부풀어 오르는 걸 보니 한심해보였다. 이딴 놈이 숲의 괴물을 토벌하고 평화를 이룩했다고? 하긴……. 그 약해빠진 괴물들을 토벌하느라 이렇게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면 약해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생명의 씨앗을 구하기 위해 어보션 혹은 수도인 레이프까지 가며 다양한 괴물을 만나봤다. 초록색의 촉수 괴물과 파란색 촉수 괴물. 이들은 우리가 상대하는 청록색 촉수 괴물의 일부분만을 본따 만들어진……일종의 ‘실패작’ 비슷한 느낌이 드는 괴물들이었다.

초록색 촉수괴물은 등에 달린 많은 촉수로 공격을 해왔지만 스피드나 파워는 우리가 사는 숲에 있는 청록색 촉수 괴물에 비해 영 아니었다. 접근전에 들어가면 제대로 된 대응을 못 하는 멍청한 괴물이었기에 스트레스 해소 삼아 패고는 했었지.

파란색 촉수괴물은 초록색보다 더 비참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접근전밖에 없었기에 그 둔한 움직임을 이용해 카운터를 먹이거나 샌드백으로 삼고는 했었지. 그놈들을 패며 ‘우리 주변에 있는 괴물들도 이렇게 약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몇 번이나 생각했었기에 기억이 난다.

그런 놈들을 섬멸시키고 평화를 이룩했다며 좋아하는 꼬락서니라니. 마음속으로 그를 마음껏 비웃었다. 그 토벌에는 아내들도 참가했다고 하니 그의 육체적인 능력은 안 봐도 평범한 사람 급이겠지. 납치에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기에 오히려 기뻤다. 놈의 무능함이 설마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야만족을 임신시켜달라는 이야기를 하자 그는 매우 곤란해 하는 태도를 취했다. 뭐어……입은 웃고 있고 하반신이 불끈 거리는 걸 보니 태도는 곤란하지만 내심 나를 원하는 느낌이었기에 나쁘진 않았다. 신기한 기분이었지……. 그를 싫어하면서도 나한테 관심을 보이는 것에 대해 기쁘다고 느끼다니.

신세린의 아내들은 그 점에 대해 매우 노골적으로 비꼬아댔다. 저 태도를 보니 하반신을 줏대 없고 지조 없고 절조 없이 아무데나 박아대는 짐승 같은 놈이구나 싶었지. 나야 좋았다. 그 짐승 같은 행동력과 정력으로 야만족 모두를 임신시켜줘야 할 테니까.

저녁을 먹고 대답해주겠다고 했지만 나한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직접 간다고 하면 좋겠지만 그의 아내들을 보건대 절대 가는 걸 좋아하지 않겠지. 비록 임신 상태이긴 했지만 경비대장부터 시작해 어보션의 마법사 양성소 출신 마법사까지 아내로 뒀다는 점에서 볼 때, 세린의 아내들은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

배가 능력은 괴물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전투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지만, 그 능력으로 사람들을 다치게 만들었다가는 우리가 사는 숲에 해코지를 할 수도 있었으니까. 세린을 납치하는 것도 그런 위험성을 내포하고는 있었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래. 이건 속죄(贖罪)야. 신세린은 우리한테 속죄를 해야 해. 납치당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누군가 듣는다면 그게 말이나 되냐고 할 법한 것을 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지금도 내가 돌아올 것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야만족을 생각하면 이들의 행복은 너무나 과분한 것이었다.

‘그래. 너희의 행복은 원래 우리가 받아야 하는 거였어……. 그럼 그 행복을 우리가 가져가서 쓰더라도 별 문제는 없겠지? 너희는 이미 충분히 행복하잖아……?’

그렇게 마음을 먹자 조금은 기분이 홀가분해졌다. 그래. 이건 벌이다. 지금까지 우리를 놔두고 행복해진 신세린과 그 아내들. 신세린으로 인해 행복해진 모든 사람들한테 내리는 벌. 우리가 받아야 하는……지극히 정당한 권리이자 자격을 행사하는 것뿐이야.

저녁을 먹고 들어온 그의 모습은 여전히 한심해보였다. 이 대답을 듣기 전까지 다시금 마을을 돌아보았지. 여자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배를 문지르고 있었다. 그때마다 난 주먹을 쥔 채 부르르 떨어야만 했다.

임신을 한 동족들이 서로의 소중한 아기를 비벼대며 아름답고 소중한 숲을 걷는 풍경. 한 점의 그림과도 같은 미래를 그토록 바랐었는데……어째서 우리한테는 그러한 미래가 주어지지 않았을까? 어째서 신세린은 우리 쪽에 와 그 힘을 발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만이 머리를 좀먹는다.

“……흥. 이제 곧 그는 우리 것이 될 거야.”

그래. 오늘밤 이후로 말이지. 듣자 하니 최근에는 오전에 체술, 오후에 검술 연습을 하고 있다고 했었지. 그의 업적과 행동, 체격 등을 볼 때 신세린은 전형적인 마법사 타입이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마력봉인수갑을 가져오길 잘 했지. 마력을 못 쓰는 마법사는 그냥 바보니까.

아니나 다를까 대답은 ‘가지 않는다’였다. 훨씬 더 좋았다. 데리고 간다면 절망스러워할 아내들의 얼굴이 보였으니까. 쾌활하게 웃으며 아기 씨앗을 주입해달라고 요구했고 그는 승낙했다. 함께 잠자리를 가질 때는 그 누구도 없는 둘만의 공간을 가지게 되겠지. 그를 제압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를 납치한지 오늘로 5일째.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주입된 아기 씨앗을 보니 마음이 든든했다. 이제 곧 괴물과 싸우게 되겠지. 이 정도 인원이라면 전투뿐만 아니라 퇴각할 때도 빠르게 물러갈 수 있을 테니 어느 쪽이든 간에 손해 볼 일은 없다.

“……있다.”

내 말에 키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주변이 조금 웅성거린다. 점점 그놈들의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정면뿐만 아니라 측면에서도 기어 나오는 걸 보니 아주 기뻐보이는군. 이해가 간다. 사냥감이 제 발로 이렇게 많이 왔을 거라 생각하니 흥분되지 않을 리가 없겠지. 하지만 너희는 아직 모르겠지……?

“오늘 ‘사냥당하는 쪽’은……우리가 아니라 너희야! 모두, 배가 능력을 발동시켜! 놈들을 한 놈도 살려 보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당한 만큼 확실하게 박살내!”

모두 내 말에 힘찬 고함과 함성을 터뜨리며 능력을 발동시킨다. 이긴다. 반드시 이기겠어……이겨서……!!

“우리의 평화와 미래를 되찾겠어! 얘들아, 가자!”

키리와 함께 최전선에 있던 동족들이 일제히 앞으로 튀어나갔다. 이 싸움이 승리로 이어지는 첫 걸음이 될 거라 믿으며…….

============================ 작품 후기 ============================

이번 주도 이걸로 마지막이네요. 이번 편은 ‘안즈의 시점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종합해보면 어떨까?’라는 컨셉입니다. 주인공인 세린이 아니라 세린을 납치한 안즈의 시점으로 적으니 꽤 독특한 글이 나왔습니다.

주된 내용과 감정은 ‘지금까지 괴물 때문에 힘들었는데 신세린이란 새끼는 왜 야만족의 숲이 아니라 이상한 곳에 떨어져서 우리를 죽게 내버려뒀나’라는 겁니다. 세린 시점에서는 말도 안 되는 분노겠죠. 원해서 하렘 어드벤처의 세상에 소환된 것도 아니거니와, 소환되는 장소를 고를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요.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빼앗아가며 정당화하는 부분은 꽤 즐겁게 적었습니다. 이런 속마음도 모르고 납치당한 세린. 명색이 주인공인데 뚜까 맞고 납치당하는 클라스 보소!

마지막에 ‘이 싸움이 승리로 이어지는 첫 걸음이 될 거라 믿으며……’라는 문장으로 끝납니다만, 아시는 분은 아실 겁니다. 이게 뭘 패러디한 건지.

소드마스터 야마토!

모든 것을 끝낼 때가 왔다!

야마토의 용기가 세상을 구할 거라 믿으며!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완결!

옙,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 소드마스터 야마토 편’입니다. 단 3페이지만으로 급전개 & 완결까지 지은 전설의 만화. 얼마나 임팩트가 강력했으면 온갖 패러디가 난무했을까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떡밥 회수와 적을 물리치는 것은 확실히 해내다니. 무서운 재능입니다.

독자분들도 사실 알 거라 믿습니다. 제 성격 더럽고 이 소설은 정상이 아닌데 ‘이 싸움이 승리로 이어지는 첫 걸음이 될 거라 믿으며……’ 같은 문장으로 끝을 내다니. 독자분들은 틀림없이 웃으며 ‘아, 시발ㅋㅋㅋ 이 미친 작가새끼 보소! 딱 봐도 전멸Feel이 나는구만!’하며 웃고 계실 겁니다. 전 이렇게 대답하고 싶네요.

‘어허, 이분들이! 전멸이라뇨! 전부 다 죽이지는 않을 거라구요!’

분명 금요일에 올린 내용인데 벌써 다음 주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가 보입니다. 예? 잘 모르겠다고요? 그럼 다음 주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겠습니다.

‘꿈과 희망을 안은 채 괴물과 싸우는 야만족들! 그들의 용기가 괴물을 쓰러뜨릴 거라 믿으며(이하 생략)’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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