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이들은 몰랐다. 아무리 9를 반복하더라도 10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999.99999 같은 숫자를 아무리 반복해서 쓰더라도 9는 10이 될 수 없고, 한 자리 수인 9가 두 자리 수인 10을 이길 수는 없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 때문에 본질을 알 수 없게 됐다고 말해야겠지. 초등학생들이 이런 것까지 알 리는 없겠다만…….
내가 생각한 것은 바로 9와 10 같은 개념이었다. 무적, 최강. 신의 위치에 있는 카인.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지만 결코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가 전지전능한 존재였다면 왜 나를 소환한 거지? 왜 나 외에 12명이나 되는 남자들을 소환한 걸까?
자주 ‘발상(發想)의 전환(轉換)이 필요하다’라고 하지만 실제로 발상을 전환해본 것은 몇 번 되지 않았기에 이와 같은 발견은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거꾸로 생각해보니 참으로 이상했다.
왜? 왜 그렇게 전지전능한 놈이 12명이나 되는 남자를 소환시킨 후 죽게 내버려둔 거지?
나로 13명 째지만 그렇게 위대하고 전지전능하다면 남자나 여자를 소환할 필요 자체가 없잖아. 그냥 자기가 만든 세상을 마음껏 즐기면 그만인 것을 왜 사람들을 소환한 거지?
계속해서 ‘왜 그런 거지?’라고 생각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 답이 안 나오는 건 당연하지. 내 기준에서, 내가 가진 정보로만 답을 찾으려 하니까 안 나오는 거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짱구를 굴려도 답이 안 나온다면……카인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만이다.
자, 난 신이다. 카인과 같이 전지전능에 가까운 능력을 지녔다고 치자.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세상을 만들 수도 있고 여자들을 얼마든지 안을 수 있다. 전설의 용사도 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은 얼마든지, 마음껏 할 수 있다. 이런 대단한 인물이 왜 사람들을 소환했을까?
“……바라는 게 있으니까?”
바라는 거? 그래, 좋다. 뭘 바라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답을 찾았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지. 바란다고 치자. 뭘 바랐을까?
“……날 보고 더 변해라고 했었어.”
변해? 변하는 것을 더 바란다고? 그것도 자기가 아니라 내가? 왜 내가 변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이야기를 해주지 않겠지. 변하라고 해서 쉽게 변하는 것도 아니니 그건 넘어가자. 자, 그럼 이제 마지막이다. 아주 중요한 질문이지.
왜 나한테서 그런 것들을 바라는 걸까?
모든 것을 빼앗겨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하는 나한테?
아내들을 빼앗기고도 아무런 반항도, 저항도 못 하는데?
대체 왜 그런 한심한 나한테 무언가를 바라는 걸까?
나 자신의 한심함이 너무나 잘 드러나는 질문이었지만……이제 와서 그런 걸로 주눅들 내가 아니다. 내가 한심한 병신놈이라는 건 현실 세상에서도 알고 있었다. 단지 여기 와서 더 잘 알게 된 것뿐이지.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한심하다는 것이 아니라 질문의 답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머리가 상쾌해지고 똑똑해지는 약’이라도 복용시킨 거 같았다.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내놓지 못했지만, 해답을 내놓을 정도로 근접할 수는 있었으니까. 이것도 카인이 한 짓일까? 아무렴 어떤가. 답은 이미 나왔는데. 이런 한심한 남자한테서 무언가를 바라는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자기가 할 수 없으니까.”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단순한 답이었지만 그 한 마디로 지금까지 궁금해 하던 것들의 대부분이 해결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간단했다. 자기가 못 하니까 남을 시키는 거다. 전지전능에 가깝지만 결코 전지전능은 되지 못하니까 다른 사람한테 무언가를 바라는 거지.
무얼 바라는지는 모르지만 스스로가 할 수 없는 이상 다른 사람한테 그걸 시키는 게 놈한테는 최선이었다는 소리다. 12명의 남자를 소환했지만 누구 하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지도 못한 채 죽었기에 나를 여기까지 성장시켰다는 소리가 되지.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 김전일』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이런 느낌이었을까? 전혀 알 수 없던 대답에 근접하면 근접할수록 가슴이 두근거린다. 지금까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것, 하찮다고 여기던 것들로부터 얻은 정보와 단서를 근거로 해답을 이끌어 내다니…….
나는 운이 좋아 해답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저런 작품(추리 계열)의 주인공들은 주로 높은 지능과 추리력을 바탕으로 해답을 발견한다. 운도 따라주기는 하지만……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거다.
비록 ‘완벽한 정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카인이 어째서 이런 번거로운 짓까지 하며 나를 괴롭힌 것인가, 그가 왜 나나 다른 사람들을 소환했는가에 대해서는 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주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정보를 얻는다면 진실에 도달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 진실에 도달하게 된다면……아내들을. 내가 지금까지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을 가지게 되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젠장……희망고문도 아니고 원. 이게 뭐하는 짓이람……. 불만도 많고 걱정도 많지만……할 수밖에 없다. 내 소중한 사람들과 자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이것밖에 방법이 없었으니까. 주먹을 꽉 진 나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낡고 더러운 천장 너머로 맑은 하늘이 보인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죄송합니다. 갑작스런 집안사정으로 인해 아침에 업로드를 하게 됐습니다. 덕분에 안 그래도 적은 수면시간을 더 깎게 됐네요. 코멘트에 대한 답변으로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로리콤MK님, 당분간은 카인보다 세린의 행동 및 심경을 자세히 묘사할 생각입니다. 아무리 카인이라지만 '최강의 카인이 울부짖었다. 크와아아아 - 모든 게 다 끝났다'라고 적기는 좀 =_=;; 인터넷 소설도 아니고 명색이 노블레스에서 돈 받으며 적는 소설인데 그건 좀 아니지 않나 싶어서요.
확실히 카인은 신의 위치에 있지만 이번 편을 통해 행동 등에 이상한 제한이 있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점차 진상에 다가서며 발버둥치는 세린의 모습이 계속 될 예정입니다.
노팅그라함님, 저도 NTR요소를 포함해 세린이 무능력한 병신이 되는 걸 즐기며 적은 건 아닙니다. 세린을 굴리겠다곤 했지만 적다 보니 생각 이상으로 좀 험하게 굴리는 경우도 있어 '음, NTR 요소를 넣은 건 실패 같은데'라고 생각도 했었습니다.
초반에 보여줬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원래 자기것을 찾기 위해 아둥바둥대는 모습이 좀 그렇긴 하지만, 원래부터 무능력했던 세린이 소중한 것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나름 정당성이나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가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뒷통수님, 초반에 보여줬던 세린의 활약 등은 사실상 완전히 막혀버린 상태입니다. 아내들은 카인 곁에 있고 '자지의 맹세'를 포함한 자동습득 마법들도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전투도, 활약도. 사실상 초반에 비하면 초라해보일 수밖에 없네요. 노팅그라함님과 마찬가지로 초반의 세린과 비교하면 굉장히 안타까운 상태입니다.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주인공은 원래 강해져야 하는데 실상은 모든 걸 잃고 빌빌대다니. 좀 딱하긴 합니다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신적 존재에 대항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서는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업로드 시간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가능하면 평소대로 자정 업로드를 노리도록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