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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어드벤처–당신의 아기를 낳고 싶어-184화 (184/235)

00181 「18-10 : 종언의 카운트다운 (11)」 =========================

카인과 함께 있으면 의식이 녹아들어가듯이 없어지며, 자기의 의사와 관계없는 언행을 취하게 된다. 이건 내 아내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포함되는 이야기였다.

카인과 함께 있음으로써 딸인 이루이한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을 담은 이루이의 어머니. 그 말을 들은 이루이는 그걸 떠올리는 것만으로 울음을 터뜨렸었다.

그녀가 우는 것이 너무나 딱하기도 했지만……그녀 또한 카인에 의해 소중한 사람을 빼앗긴 피해자였기에 일종의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카인으로 인해 소중한 사람이나 삶의 터전 등을 빼앗긴 최고의 피해자지만 나 외에 피해자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안즈를 봐라. 자기를 포함해 100명밖에 없는 야만족 중 99명이 몰살당했다. 함께 살던 동족들을 다 잃은 것도 모자라 삶의 터전이었던 ‘야만족의 숲’까지 괴물한테 빼앗겼지. 나와 결혼했기에 프레그넌트의 난민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거지, 아니면 왕궁에 가지도 못했다.

이루이는 어찌 보면 안즈보다 더 처참했다. 함께 지내던 어머니나 친구들이 죽은 것도 모자라 흉측한 괴물로 변해 마을을 파괴당했으니까.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한테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도 모자라 그들이 괴물로 변해버리다니!

친한 사람들로부터의 폭언. 그들의 죽음이라니. 그 자체만으로도 슬프기 그지없는데……더 이상 대화도, 사과도 나눌 수 없게 된 그들이 괴물로 변해 마을을 부쉈을 뿐만 아니라 자기 목숨까지 위협했는데 이런 미친 사태를 어떻게 담담히 받아들이겠는가?

원해서 겪은 것은 절대 아니다만……납치나 전투부터 시작해 NTR이나 말도 안 되는 사건 등을 너무 겪은 나도 ‘아, 일어날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겪으니 존나 힘드네’라며 투덜거렸는데……아직 아기조차 낳지 않은 이루이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루이의 육체와 정신은 매우 피폐한 상태였다. 내가 오기 전부터 건물의 틈에 몸을 숨긴 채 최소한의 식량과 수분으로 연명(延命)을 했었으니까. 도망치며 살 길을 찾았던 나와 달리 이루이는 그럴 힘이 없었기에 숨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결국 과거의 이야기를 하며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우는 그녀한테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그녀를 보니 아이나나 아이라가 생각났다. 자주 눈물을 흘렸기에 내가 코 풀라고 휴지를 주면 ‘크응~!’거리며 코를 풀었었지. 그럴 때마다 ‘아, 내가 왜 다른 세상에 와서 우는 여자 코를 풀어줘야 할까?’라며 생각했었지. 불쌍한 내 인생.

생각나는 건 그 두 사람만 있는 게 아니었다. 메이랑 니나도 보고 싶었다. 내 아내이기도 했지만 딸이기도 했던 메이나 니나는 자주 울음을 터뜨리곤 했었지. 아테나는 별로 울지 않았다. 헬레나와 함께 나를 가지고 놀곤 했었지. 망할 년들. 지금에 와서는 다 추억이다만…….

우는 게 딱하기도 했고 코를 풀어주는 게 버릇이 되기도 했기에 그녀의 코를 풀어주게 됐다만……의도치 않게 이루이를 웃기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나처럼 코 풀라고 휴지까지 대주는 사람은 처음이라나? 난 내 아내들이 울 때마다 이 짓을 한다고 대답하니 조금 전보다 더 성대한 웃음을 터뜨렸다.

나름 참으려고 ‘부흡!’이라 웃었지만 이내 배를 잡고 웃는 그녀를 보니……별로 기분은 안 나빴다. 내 인생은 원래 이랬으니까. 오히려 내 바보짓 덕분에 그녀가 조금이나마 웃음을 되찾았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사람은 역시 웃으면서 지내야 하는 거다. 슬픈 일이 있다고 계속 슬퍼하면 더 시궁창에 가라앉게 된다.

……나처럼 말이다.

여하튼……나름 웃음을 되찾게 된 이루이는 그 후에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이야기해줬다. 당연하지만 웃으면서 말할 내용은 아니었기에 다시 이루이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듣고 있는 나 또한 그걸 들으며 ‘아직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는 이 어린 애가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카인과 몸을 섞기 시작한 그녀들은 마치 걸신들린 사람처럼 카인의 물건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입으로 빨고, 음문(陰門)으로 그걸 받아들이던 그녀들은 그저 황홀해하며 점점 더 육체적인 쾌락을 요구했다.

경비를 서고 있던 여자들은 무기와 비키니 아머를 벗어던진 채 카인한테 매달려 정액을 요구했고, 함께 많은 추억을 만들던 친구들은 아직 겪어보지 못한 육체적 쾌감에 지배되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 고깃덩어리로 전락해버렸다.

어른이라고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남자와의 성관계가 아닌 ‘생명의 씨앗’을 통해 아기를 낳은 것이었기에 그녀들 또한 내성(耐性)이 있을 리는 없었다. 어린 아이처럼 카인의 물건을 빨아대는 그 모습에 이루이는 당장에라도 정신을 잃고 싶어 했다.

저주나 다름없는 폭언을 퍼붓는 엄마. 이성을 잃어 눈이 뒤집어진 채 신음만 뱉어내는 친구들. 근엄했던 촌장님이나 모두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던 경비대원들. 너나 할 것 없이 카인의 몸에 연결된 채 애액과 오줌을 뿜어내는 그 모습은 틀림없는 암캐들의 모습이었다.

그런 여자들을 카인은 마치 장난감을 다루듯 대했다. 뒤통수를 잡은 채 무리하게 입 끝까지 자지를 넣은 탓에 헛구역질. 혹은 토사물을 뱉어내자 카인은 침을 뱉으며 여자를 발로 찼다. 자기 멋대로 여자를 다뤄서 일어난 결과였음에도 불구하고 사과나 반성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 때로는 이루이의 엄마가 말했던 것과 비슷한 폭언을 던지기도 했다.

임금님인 카인의 태도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더욱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여자들의 반응이었다. 그녀들은 심한 대우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인을 어르고 달래며 힘차게 자지를 빨아댔다. 입이 홀쭉해질 정도로 빨아대는 마을 여자들의 눈은 어딜 봐도 정상이 아니었으며, 토사물로 범벅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의치 않았다.

좆물이라는 것을 선물하러 온 사람의 태도도 이상했지만 그런 모욕이나 폭언, 심한 대우를 받고도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모습이라니!

이루이는 그녀들을 말렸지만 헛수고였다. 엄마와 비슷한 폭언을 하며 이루이를 밀쳤고 땅에 쓰러진 그녀는 마을 사람들과 카인의 섹스를 보며 더욱 더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더 이상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미쳐버린 마을과 마을 사람들. 이루이는 어떻게든 집으로 도망쳤다. 이건 모두 꿈이며 잠을 자면 틀림없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갈 거라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현실도피나 다름없는 짓이었지만 아직 괴물과 싸운 적도 없고 이런 현실을 겪어본 적도 없는 아이한테는 그게 최선이었을 것이다.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카인의 이름을 불러대며 더 강렬한 쾌감, 강력한 쾌락을 원하는 암캐들의 목소리가 마을을 채웠고……아직 어린애나 다름없는 이루이는 그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헛된 발버둥을 쳐야만 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남자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마을 전체가 미친 것만 같았다. 본분(本分)에 충실하던 사람들은 모든 것을 던져버린 채 카인과 몸을 섞고 있었고, 순수했던 가족이나 친구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었던 얼굴. 암캐의 표정으로 그를 원했다.

갑작스러운 변모(變貌). 지금까지 받아본 적 없었던 악의(惡意)와 저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힘이나 방법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기에 결국 이루이는 ‘잠을 자면 모든 게 해결되어 있을 거야. 이건 나쁜 꿈이야’라며 잠을 청했다.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처음에는 왜 혼자 자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어젯밤을 떠올렸고……몸을 부르르 떨며 밖에 나가길 꺼려했다. 더 이상 운우지락(雲雨之樂)을 나누는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혹시 자신의 소망이 이루어진 걸까? 모든 게 꿈이었던 게 아닐까?

부질없는 소망이었지만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 암캐들의 신음과 목소리에 이루이는 기뻐하며 집에서 나갔다. 철부지 같았지만 그 소망 자체는 엄마나 마을 사람들이 원래대로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었고, 그런 순수한 이루이가 밖에서 제일 처음 본 것은…….

찢어진 배 사이로 나온 붉은색 촉수. 내장과 같은 촉수를 흔들어대며 마을의 건물을 부수는 괴물들의 모습이었다.

이루이는 자기가 뭘 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안녕, 이루이. 잘 잤니?’라며 인사를 하는 현실을 바랐건만……그곳에는 인사를 하는 사람도, 자기한테 웃음을 지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부서지는 건물의 파편이 자기 발밑까지 또그르르 굴러오자 이루이가 맨 먼저 생각한 것은…….

“……괴, 괴물……!? 왜 괴물이……마을 안에……!?”

어째서!? 괴물에 대해서는 수도 없이 들었고 실제로 몇 번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저건……저건 대체 뭐지? 온몸에 피를 바른 것 같이 빨간 촉수괴물이라니……? 저런 건 경비대원 언니들이나 엄마, 엄마 친구들한테 전혀 들은 바가 없었다! 아니, 그보다……!

“어, 어떻게 마을 안에 들어온 거야……? 겨, 경비대원 언니들은?”

이루이는 뒷걸음질 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괴물이 마을 안에 들어와서 저렇게 활개치다니!? 경비대원 언니들이 절대 저런 걸 용납할 리가 없는데 대체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루인은 겨우 200명 정도밖에 살지 않는 곳이었다. 인구가 적긴 했지만 그만큼 사람들과의 관계는 밀접했으며,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곳이었다. 경비대원들은 그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늘 최선을 다했다.

서로가 의지하며 살아가는 곳인 만큼 결속력이 대단했으며 그런 엄마와 경비대원 언니들을 보며 자기 또한 모두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비록 사람은 적지만 함께 웃음과 행복을 공유하며 살아갈 수 있는……작지만 정말 소중한 마을이었다.

그런 마을이 저런 더러운 괴물한테 파괴당하고 있다니……? 경비대원들이 그걸 용납할 리도 없었지만, 설령 괴물이 들어왔다 하더라도 엄마나 엄마 친구들이 그걸 가만히 놔둘 리는 없었다. 마법을 써서 괴물을 물리칠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었으니 바로 대응을 했을 텐데, 왜 아무도 없는 거지?

“……어?”

이루이의 입에서는 너무나 상황에 맞지 않는 것이 튀어나왔다. 괴물이 마을을 부수는데 ‘어?’라니. 당장 도망쳐도 모자랄 판에 이상한 소리를 한 것이 웃겼지만 차마 웃을 수는 없었다. 그녀의 눈은 ‘봐서는 안 될 것’을 목격해버리고 말았으니까.

경비대원이나 엄마의 친구들은 어디 있는지부터 시작해 모두 무사할까,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하며 여러 생각을 하던 이루이의 시선은 괴물의 얼굴 쪽에 박힌 채 움직이지 않게 됐다. 걱정을 하며 괴물의 행동을 살피던 그녀는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게 됐다. 봐서는 안 될 것을 봐버렸으니까.

찢겨진 배 사이에서 나와 능숙하게 건물을 부수는 촉수. 생김새나 색깔은 달랐지만 그 촉수의 힘이나 파괴적인 모습은 가끔 보던 괴물의 모습이었다. 이전에 봤던 괴물은 등에 촉수를 달고 있었지만 저 괴물은 끔찍하게도 찢어진 배 사이에 촉수를 달고 있었다. 그러나 촉수의 위치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욱 큰 문제는……얼굴이었다.

배에서 촉수가 나온다. 이 말은 다르게 말하자면 두 발과 팔을 괴상한 각도로 구부린 채 땅을 짚어야만 한다는 소리였다. 잠에서 깰 때 바닥을 짚고 일어나기 위해서는 팔이나 발을 땅에 댄 채 일어나는 게 일반적이었다. 저 괴물은 잠에서 일어나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손과 발로 땅을 밟는다는 점에서는 그러한 인상을 줬다.

등이 하늘을 향하도록 엎드린 촉수 괴물과는 정반대의 자세였기에 혹시나 팔이나 발이 뒤틀렸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얼굴마저 눈이 밑에 있고 입이 위에 있었기에 자세 자체가 완전히 반대구나 하는 걸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그러한 것들은 ‘봐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었다. 봐서는 안 되는 것의 축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것들. 정말로 중요한 것. 봐서는 안 됐지만 마을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 기특한 마음과 영민함이 ‘보게 만들고 말았던 것’을 조심스럽게 쳐다보았다.

눈이 밑에 있고 입이 위에 있는……사람의 얼굴을 거꾸로 본다는 것은 매우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 표정과 생김새는 너무나 낯이 익었다.

건물을 파괴하는 촉수나 괴물의 움직임보다 얼굴 생김새에 훨씬 눈이 간 것이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진 이루이는 조심스럽게 접근하며 그 얼굴을 관찰했다.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괴물의 생김새나 얼굴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으며, 지금 이루이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모두는 어디에 있는가’, ‘어째서 괴물이 마을 안에 있는가’, ‘경비대원들이나 다른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는가’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생각을 모조리 접은 채 다가가고 있었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그 얼굴은……건물을 부수고 있는 괴물의 얼굴은…….

“……엄마?”

……이상하다? 엄마가 왜 하늘을 향한 채 이상한 포즈로 걷고 있는 거지? 왜 집에서 함께 잤어야 할 엄마가 저렇게 피투성이가 된 거지? 어제 있었던 일은 꿈이 아니었던 거야? 나한테 죽어버리라고 했던 그 저주 같았던 말은 진심이었던 거야? 엄마……?

“……엄마?”

두 번째 부름. 처음에는 ‘엄마인가?’하는 의미였지만 지금 뱉은 말은 틀림없이 엄마를 부르는 말이었다. 자기 딸의 목소리를 인식한 건지……아니면 살아있는 인간의 부름에 응답한 건지. 지금 와서는 그 누구도 모르고 알 필요도 없는 것이었지만, 이루이의 엄마는 이루이를 확실하게 쳐다봤다.

피투성이가 된 몸. 밑에 있어 보기 어려운 그 눈을 부릅뜨며……살의(殺意)를 가진 채 말이다.

“어, 엄마……왜 그래? 그, 그건……뭐야? 아, 앗!?”

이루이는 넘어졌다. 엄마한테 가다가 넘어진 게 아니다. 뒷걸음질을 치다가 넘어진 것이었다. 걱정스러운 마음과는 반대로 몸과 뇌는 이루이한테 ‘여기서 도망쳐라’라고 명령했다. 마음과 몸이 상반되니 뒤로 걷는다는 간단한 명령조차 이행하지 못했고 그 결과는 보시다시피……넘어진 채 몸을 덜덜 떨고 있는 이루이가 보였다.

“아, 아앗……!!”

[흐윽? 흐, 흐윽……!! 케륵……!!]

저 소리! 모를 리가 없었다. 성벽에서 보기도 했지만 성벽 밖을 나가면 저 멀리에서 들려오곤 했던 소리! 멀리서 들었지만 들릴 때마다 침을 삼키게 했던 괴물의 울음소리가 왜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거지? 왜 엄마가 저런 자세로……괴물이나 가지고 있을 법한 촉수를 휘두르는 거지? 이래서야 마치…….

“……엄마가, 괴물……?”

그 순간, 결과가 기록됐다. 과정, 원인, 공정 등의 모든 수순(手順)을 초월하여 결과. 이루이의 엄마가 괴물이 되었다는……오직 하나의 결론이자 결과만이 이루이의 입을 통해 뇌로 인식됐다.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지만 그딴 것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미 괴물이나 다름없게 변해버린 엄마를 보며 저렇게 된 원인을 찾는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떤 쓸모가 있을까? 원인을 찾는다고 치자. 고칠 수 있을까? 저렇게 변해버린 엄마를 원래대로?

“아, 아앗! 오지 마앗! 흐, 읏!”

입에서 나온 것은 간절한 부탁이자 해답이었다. 불가능(不可能). 못 한다. 원인이나 이유에 관계없이 뇌가, 정신이. 지금까지 함께 해온 육체가 그러한 답을 도출해냈다. 눈앞에 있는 것은 ‘한때 엄마였던’ 육체를 가진 괴물. 더 이상 원래대로 되돌아갈 수 없는 괴물이었다.

이루이는 달렸다. 더 이상 그곳에는 있을 수도 없었고 있어서도 안 됐다. 만약 그곳에 남았더라면……자신은 세린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조차 없게 됐을 테니까. 엄마의 모습을 가진 괴물한테 죽는다는 것도, 목숨을 잃는다는 것도. 하룻밤 사이에 변해버린 모든 것에 이루이는 공포를 느꼈다.

자신을 낳아준 엄마한테 살해당한다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벗어난 것은 좋았지만……어디까지나 그 장소에서 벗어났을 뿐. 그녀가 맞이한 최악의 상황에서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기가 도망친 곳과 마찬가지로 마을은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찢어진 배 사이로 나온 촉수가 건물을 갈길 때마다 파편이나 쪼가리가 되어 사라졌다. 떨리는 몸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자세히 봤다. 결과를 말할 필요가 있을까? 한때 마을에서 정답게 인사를 나누곤 했던 사람들. 엄마의 친구들이나 자신의 친구들이 엄마처럼 변한 채 마을을 부수는 광경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고 했다.

살아있는 사람이 자기뿐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신음을 뱉으며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하렘 어드벤처’에서 남자는 나와 카인. 두 명을 제외하면 없었기에 사고를 당한 사람도, 죽은 사람도. 괴물이 된 사람들도 모조리 여자였다.

붉은색 촉수괴물이 된 그녀들은 움직임은 느렸지만 절대 약하지는 않았다. 초록색 촉수 괴물과 달리 인간이었을 때의 지능이나 기억을 포함하고 있는 것 같았기에 인해전술을 쓰기도 했었다. 내가 그거 때문에 뒤질 뻔했는데 이곳 사람들이 지능이나 기억이 없을 거라는 장담 따위는 절대 할 수가 없었다.

아마 이루이가 집에서 나가자마자 엄마를 만나게 된 것도 ‘집으로 돌아오려는 마음’. 동물들을 언급할 때 흔히 말하는 귀소본능(歸巢本能)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식지나 둥지 등에서 멀리 떨어졌을 때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그렇게 적용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비록 인간이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소중한 딸, 이루이를 위해 집 주변까지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들었다. 너무 낭만적으로 해석한 거 같아 ‘이건 아니겠지’라며 고개를 흔들었다만……그러한 어머니로서의 마음. 모정(母情)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러나 지능이나 지식, 습관, 기억이 항상 좋게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괴물이 되긴 했지만 그들은 원래 마을의 주민들. 마을의 길이나 도주로(逃走路) 등을 훤히 꿰고 있는 그들이 괴물이 됐다는 것은……‘마을에서 그들을 따돌리는 행위’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려주기도 했다.

살려달라며 도망을 치는 사람은 당연히 마을 사람이었다. 촉수에 맞았는지 건물 파편에 맞았는지는 모르지만, 심하게 찢겨 피가 나는 팔을 부여잡은 채 살려달라며 도망치는 마을 사람을 보자 이루이는 반가움과 걱정, 공포를 동시에 느껴야만 했다.

살아남은 사람. 정확히는 ‘괴물로 변하지 않은 사람’이 자기만 있는 게 아니라는 반가움과 기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건 내가 안즈나 이루이한테 느끼는 동질감. 소중한 사람이나 터전을 카인한테 빼앗겼다는 공통점에서 동정이나 연민을 느끼는 것과 진배없는 감정이었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니! 이루이는 당장 뛰쳐나가 그녀를 돕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자기가 가진 마법은 얼마 없으며 위력 또한 약하다. 도망조차 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도와준다고? 어떻게? 마법도 약하고 검술 같은 건 할 줄도 모르는데?

피를 흘리며 도망치던 그녀는 결국 힘에 부쳤는지 숨을 몰아쉬며 건물에 기댔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동안 그녀를 추격하던 괴물들은 이미 그녀를 에워싼 지 오래였다.

“그, 그만해요! 이런 건……흐컥!?”

아름다운 여성의 입에서는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비명과 단말마가 튀어나왔다. 등을 얻어맞은 그녀는 단숨에 자세가 무너진 채 콜록거렸다. 다시 한 번 움직인 촉수는 고통에 힘겨워하는 그녀의 배를 강타(强打)했다.

“아, 허억! 아, 안 돼엣! 내 아기가……소중한 아기가, 죽어버렷……!! 흐윽!”

배에 강렬한 충격이 전해지자 자신의 몸보다는 언제 태어날지 모르는 아기를 걱정하며 그녀는 몸을 웅크렸다. 건물을 부술 정도로 강력한 촉수가 등을 때릴 때마다 살점이 찢겨져 나갔지만 그녀는 아기를 걱정하며 고통을 참아냈다.

“아, 앗……안, 돼! 이제 겨우……겨우 아기를 가지, 컥!”

입에서 피가 나왔다. 내장기관이 손상을 입음과 동시에 심상치 않은 부상까지 얻게 된 그녀는 당장이라도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를 둘러싼 채 때리고 있는 것은 한 때 이웃사촌이었던 마을주민들. 그 마을주민들은 괴물이 된 채 사정없이 그녀와 배에 있는 아기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그녀보다 약한 이루이가 나간다고 한들 잘 해봤자 미끼. 잘 안 되면 둘 다 사망이라는 끔찍한 결과밖에 보이지 않았고, 이루이는 몸을 벌벌 떨며 그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걱정하는 마음에 거짓은 없었지만……자신의 몸을 지킬 방법이 없는 이루이로서는 도저히 뛰쳐나갈 수가 없었다.

모두 다 아는 사람인데……함께 마을에서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 중 대부분이 괴물로 변해버렸다. 이유도, 영문도 알 수 없는 그녀들의 변화. 남은 마을 사람들은 변해버린 마을 사람들한테 사냥당하고, 살해당하고 있다는……이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이루이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혹시나 말다툼이 일어나기만 해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는데……그런 마을 사람들이 함께 지냈던 사람들을 죽인다고? 괴물로 변한 채?

도대체 어쩌다 이런 악몽 같은 현실을 맞게 됐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모든 게 악몽이고 당장이라도 그 악몽에서 깨어나기를 바랐지만…….

촉수에 맞아 죽어버린 마을 주민의 신음은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알리려는 양 이루이의 귀로 들어온다. 자기 눈앞에서 마을 사람들이 힘없는 여자를 쳐죽였다는 말도 안 되는 광경이 일어났는데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받아들일 수나 있을까? 이런 악몽 같은 일을?

그녀가 살아있는 걸 발견했지만 끝끝내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절망과 무력함에 이루이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당장 뛰쳐나가 괜찮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것 또한 허락되지 않았다. 나간 순간 자신은 죽은 여자와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자기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다. 힘없는 사람을 죽인 마을 사람들. 그걸 내버려 둔 자신. 모든 것이 미쳐버린 것 같아 이루이는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지만……현실은 지금이야말로 쇼타임이라는 양 이루이가 정신을 잃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마치 진정한 절망은 지금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이런 이벤트를 만든 것 같았다.

“아, 윽! 으, 어엇……!!”

죽은 줄 알았던 여자가 신음하자 이루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 살아 있는 건가? 저 무서운 촉수에 맞고 무사하다니?

그녀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감과 기쁨이 가슴을 잠시 메웠지만 동시에 의문도 들었다.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방어 마법으로 어떻게 할 수준의 공격이 아니었는데……?

“으, 아, 아아아아아앗!”

찌직. 쯔저적……!!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였지만 너무나 이상하고 끔찍한 소리였기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방금 그 소리는……뭐지? 어, 어째서 아줌마가 비명을 지른 거야? 주, 죽은 거 아니었어?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아, 아앗! 안 돼에엣! 아기가! 내 아기가 이상해! 아, 아가야! 안 돼! 엄마의 배가! 배가, 찢어져……웅컥! 아, 아아아악────!!”

찌, 쯔저적……촤악!!

아기를 불러대던 그녀의 배는 살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완전히 찢겨버렸다. 억지로 제왕절개(帝王切開)를 한 것 마냥 찢겨진 배에서는 피로 물든 촉수가 튀어나왔다. 축 늘어졌던 손과 발은 마치 별개의 무언가가 몸을 지배하는 것처럼 능숙하게 땅을 짚었고, 그렇게 다시금 일어난 그녀의 모습은……자신을 쳐죽인 괴물들과 완전히 똑같은 모습이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람이 되살아나 괴물이 되다니. 그 순간……이루이는 또 하나 ‘알고 싶지 않지만 이해하게 된 것’을 깨달아야만 했다. 왜 경비대원들이나 엄마, 엄마의 친구들이 지키는 마을 안에 괴물들이 이렇게 많은 걸까 생각했었다.

외부에서 성벽을 부술 정도로 강한 괴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모두가 즐겁고 평화롭게 지내던 마을에 저런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걸까 하고 생각했었다.

아는 사람들이 괴물처럼 변한 걸 봤을 때부터 ‘그럴 리가 없다’며 계속 부정해왔지만……눈앞에서 일어난 괴물로의 변모(變貌)는 냉정한 현실과 사실만을 그녀한테 전했다.

모두 어딘가로 가버린 게 아니었다.

이유 없이 괴물처럼 변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죽었다.

죽어서 조금 전의 여자처럼 변했다. 즉…….

“……다, 죽었어……?”

나지막하게 입에서 나온 정답.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이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가운데……이루이는 정답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괴물처럼 변해버린 모든 사람들은……이미 죽어버렸다는 정답을 말이다.

혼자 찾아낸 정답이었지만 칭찬해주는 이는 그 누구도 없었다. 애초에 칭찬받을 만한 성질의 것도 아니었다. 자기 외에 몇 명이나 살아남았는지조차 모르는 상황. 늘 웃으며 지내던 마을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 도망쳐야 하는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 작품 후기 ============================

아는 사람이 괴물로 변하는 걸 눈앞에서 목격하다니. 이게 크툴루 TRPG였다면 얄짤 없이 SAN체크겠죠. 현실이라면 아마 움직일 수 없거나 비명을 지를 겁니다.

저요? 아마 비명을 지르지 않을까요. 남자가 비명 지른다니까 '쫄보 새끼 ㅋㅋㅋ'라며 웃으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그건 큰 착각입니다. 사람이 엄청난 공포 상태에 빠져버리면 누구나 비명을 지릅니다. 남녀노소 관계없이 말입니다.

늙은 사람이든 건강한 사람이든 간에 PTSD에 걸리듯, 병이나 원초적 감정은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극심한 공포 상태에 빠져버리면 무기력증에 빠지거나 다변증(말을 많이 하게 되는 증세)으로 변하듯이 말입니다.

이러한 상태는 나약한 정신상태 등에서 오는 게 아니라 정신을 지키기 위한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되는 겁니다. 왜 있잖습니까. 권투 선수가 기절하는 건 극심한 충격 때문이 아니라 몸을 지키기 위한 뇌의 판단이라는 학설.

아무리 심신을 단련하더라도 미지의 공포, 알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이루이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고 이루이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은 절대 평범하다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전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초현실적인 현상이나 존재에 맞서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소설에 대한 후기는 이쯤 적고, 드디어 9월이네요. 길었던 2017년도 4개월 남았습니다. 소설도 슬슬 막바지로 접어드니 새로운 작품도 준비해야겠네요.

계약직으로 일하고는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더 탄탄한 직업도 가지고 싶고, 소설을 쓸 시간도 확보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원하시는 일 많이 이루시며 한 해를 잘 정리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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