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1 「22-10 : 부활하는 주인공 (10)」 =========================
맞으면 골로 가게 만들 거 같은 유린의 검붉은 칼은 확실히 대단했다. 내가 복제한 황금색 검과 두 번. 딱 두 번 부딪쳤는데 내 검이 부서졌으니까. 난 즉시 텔레포트로 왕궁을 빠져나왔다. 왕궁 주변으로 텔레포트를 하며 자연스럽게 비행 마법을 펼친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미친 새끼……왕궁의 주변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자기가 있던 곳마저 완전히 소멸시키다니. 왕궁 주변에 있던 집이나 괴물들, 시체들의 파편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하늘을 제외하면 온통 검게 변한 세상은 꿈에서 봤던 광경과 매우 비슷했다.
“으하핫! 어때? 깝싹댔던 게 후회되지? 응? 빨리 죽였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을 텐데, 안 그래? 어, 쿠욱! 쿨럭……하, 하핫! 기분 최고야! 정말 최고라고! 몸 안에서부터 벌레가 파먹어가는 이 느낌! 쩔어! 쩐다고! 뇌까지 벌레로 변할 거 같あ! オマエだけはカナラズコロしてやるよ……。u, ha! haHAHA! HahAHAHA!? Don't think you can run away from ME!!”
……어, 음. 상태가 확실히 미친 거 같았다. 멀쩡하게 생긴 주제에 일본어나 영어를 쓰며 날 죽이겠다며 선포하다니. 아무리 봐도 언어 능력이 맛이 간 거 같은데…….
내가 놈을 쓰러뜨리면 내 육체랑 영혼은 돌아온다고 했는데……설마 미친 상태 그대로 돌아오는 건 아니겠지?
걱정을 하며 마법을 쓴다. 왼손에서 만들어진 화염 구체. 오른손에서 만들어진 전기 구체. 염(炎)속성과 뇌(雷)속성. 다르면서도 서로 방해되거나 하지 않는 베스트 궁합의 공격을 유린을 향해 날렸다. 유린은 검붉은 검을 가로로 힘껏 휘둘러 화염 구체를 없애려 했지만……너 바보지?
“한 번 속지 두 번 속냐, 멍청아!”
난 놈의 검에 닿기 전 화염 구체를 폭발시켜버렸다. 닿든 말든 관계없이 폭발하도록 만든 것이었기에 유린이 바보가 아닌가 싶었다. 숲에서도 얼음 구체를 만들어 허를 찔렀는데 이번에도 똑같이 당하다니. 사고능력(思考能力)이 현저하게 떨어진 걸까?
그렇게 생각하던 것도 잠시였다. 화염 속에서 웃으며 달려 나오는 걸 보니 확실히 호러 영화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긴급히 회피를 한 나는 전기 구체를 날린 나는 놈이 어떻게 나오나 확인도 못한 채 텔레포트를 써야만 했다. 자기가 들고 있던 검을 가속시켜 내 쪽으로 날렸는데 이걸 어떻게 바로 막냐? 피해야지.
전기 구체가 흡수되든 말든 간에 검은 내가 있던 공간을 벤 채 앞으로 쭉 날아갔다. 저기 있었으면 몸이 분리될 뻔했다. 가로 말고, 세로로. 뇌와 장기가 후두둑 떨어지는 꼴만큼은 면했다며 한숨을 쉬는 것도 잠시. 날 향해 달려든 유린과의 격투전이 시작됐다.
이제 유린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거 같았다. 내 육체의 귀나 눈에서는 검붉은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고,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오른손(유린 기준. 몇 번이고 말하지만 난 왼쪽, 오른쪽을 본인 기준으로 쓴다)으로 내 가슴을 때릴 때마다 난 목숨의 위험을 느껴야만 했다.
젠장! 존나 세다! 장난이나 농담 아니다. 내 가슴을 때릴 때마다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기에 어떻게든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사이렌을 울려댔다. 내 오른손은 놈의 왼손에 잡혀 있지만 왼손은 프리(Free)였기에 유린을 향해 내밀었다.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을 일으킨 건 나였지만 말려든 것은 둘 다였다. 검은 세상에 검은 구름이라니. 참으로 웃기지도 않은 상황이었지만 어떻게든 놈의 손아귀에서 탈출할 수는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놈을 찾는다. 시발! 전부 다 검은색이라 잘 안 보이잖아!
내 옷은 둘째 치더라도 유린의 옷은 바닥을 뒹굴어서 그런지 꽤 검게 변한 상태였다. 놈이 바닥을 뒹굴거나 피를 토할 때는 기분 좋았지만, 설마 그 행동이 역(逆)으로 놈을 보호해주는 보호색(保護色)이 될 줄이야. 시발, 인생 진짜 왜 이러니? 명색이 보스 배틀인데 난이도가 존나 올라가는구만!!
아니지? 끝까지 그 새끼가 발악을 한다고 해야 옳은 표현이 되는 건가?
어찌 됐든 나한테는 좋은 일이었다. 독으로 죽으면 그건 그거대로 편했겠지만 그럼 나한테 부탁한 사람들한테는 계속해서 미안한 마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놈을 패달라고 했으니까. 독살(毒殺)당해 죽은 최종보스라니. 이건 좀……음, 그렇지?
유린의 상태는 절대 정상이 아니었다. 독에 중독된 것도 모자라 괴물이나 건물, 숲 등. 독에 오염된 무기물(無機物)까지 모조리 흡수한 상태였으니까.
각 지역에 주입한 독은 생물이든 물건이든 간에 모조리 중독 시켜 버리는 극악(極惡)한 독이었다. 육체가 없었을 뿐이지 그 사람들이 준 지식은 하나 같이 유린을 노리는 카운터 계열의 것이었으니까.
그런 맹독을 미친 듯이 흡수해 날뛰고 있는 상태다. 내버려둬도 자멸(自滅)하는 게 눈에 선히 보인다만……그 전에 때려눕혀서 놈한테 더한 절망감을 줘야겠지. 놈이 20년 들여 꾸민 계획, 앞으로 겪어야 했던 꿈은…….
“전부 다 병신 딸딸이 치는 소리나 다름없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날 향해 날아오던 유린을 향해 날카로운 얼음 조각을 무수히 날렸다. 숲에서 썼던 것이 시한폭탄 같은 것이었다면 이건 아예 대놓고 쓰는 것이었기에 살상력(殺傷力)이나 조준이 훨씬 더 정확했다.
유린은 더 이상 아픔도 느껴지지 않는 거 같았다. 놈의 눈부터 시작해 코, 관자놀이. 어깻죽지 부분에 내 공격이 확실히 명중했음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았으니까. 아, 이런. 저런 상태라면 자멸 이전에 내가 먼저 죽을 확률이 클 거 같은데…….
놈의 주변에서는 눈에 익은 검이나 철 덩어리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칼라드볼그 같은 것부터 시작해 내가 투영하곤 했던 철 찌꺼기까지 있는 걸 보니 화가 나기도 했고 웃기기도 했다. 저 빌어먹을 놈이 내가 썼던 무기까지 투영해서 쓰는 걸 보니 어지간히 궁지에 처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내가 만들었던 걸 니가 쓴다면……니가 썼던 걸 내가 써도 상관없겠지? (이미 한 번 썼던 거지만) 급히 분신을 만들었다. 투영을 모조리 막거나 피할 자신은 없었으니 분신을 일종의 방패로 삼을 생각도 있었지만…….
“분신과 동시에 투영을 하면 이쪽 화력이 더 세거든요, 병신아!?”
나도 동시에 투영을 개시한다. 이게 바로 【분신술】 + 【투영】 콤보다! 분신과 본체인 내가 동시에 투영을 함으로써 투영물의 수를 늘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TOT(Time On Target)를 통한 시간차 공격까지 가능하다 이 말씀!!
나까지 포함해 총 다섯 명. 철 찌꺼기와 아밍 소드 등, 일단 생각나는 대로 투영된 무기를 사출시키자 유린 또한 주변에 있던 투영물을 사출시켰다. 검과 검이 부딪치며 박살날 때마다 다시금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낸다. 죽기 전의 마지막 발악은 결코 얕보면 안 되는 거니까.
“으아아앗!!”
170cm 정도의 키보다 두 배 이상 큰 무식한 검을 본 순간, 나는 직감(直感)했다. 아, 저건 못 막겠다. 자기 키보다 두 배 이상 큰 검을 만들다니. 확실하다. 이걸로 판명 났어. 저 새끼는 미친 거야. 미치지 않고서야 저딴 걸 만들 수는 없지.
“으, 하하핫! 죽어어어엇! 죽어! 제발 죽어! 뒈졋! 꺼져라아앗!”
커다란 검을 마치 봉처럼 휘둘렀다. 난 긴급히 자리에서 벗어났지만 주변에 있던 네 명의 분신들은 그 무식한 검에 찢어발겨졌다. 내장이 나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내 분신이 당해서 사라지는 걸 보니 영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에, 헤헷……난 최강이야……무적이라고……!! 나, 한테……우, 우엑! 웨에엑!”
으윽, 시발! 이상한 헛소리를 지껄이던 유린은 다시금 검붉은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이번에는 피뿐만 아니라 안에 있던 이상한 덩어리까지 나와 버렸고, 그것들이 검은 바닥에 처덕이며 떨어지던 걸 리얼 타임으로 보던 나는 고개를 돌린 채 눈을 감아야만 했다. 시발, 저거 꿈에 나올 거야. 백빵, 틀림없이!
“나, 는……다른 시공차원, 계에……우, 욱……갈, 거야……헤, 헤헤……가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거야……히, 히힛♪”
미쳤군. 이미 옛날부터 미쳐 있었다만……이젠 현실과 꿈조차 제대로 분간할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내가 지금까지 유린한테 했던 말을 인식하고 정리한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현재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메시지를 금방 알아챌 수 있었을 텐데…….
“새로운 인생? 다른 시공차원계에 가? 너 병신이냐?”
20년 동안 세워둔 원대(遠大)한 꿈을 중얼거리던 유린은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분노와 살의(殺意)로 이글거리는 눈동자에는 동공이 없었고, 입이나 코 주변에는 토해버린 검붉은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 세상의 신에는 어울리지 않는 꼬라지였다만……다르게 생각한다면 이게 바로 유린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넌 이 세상에 만족하지도 않았고, 니 삶에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잖아. 자기 힘으로 어떻게 안 된다고 다른 사람 목숨과 인생을 장난감처럼 취급했던 니가……뭐? 새로운 삶? 새로운 삶을 살아서 뭐하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자격이나 권리가 너한테 있기는 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냐?”
유린의 입에서 침이 섞인 검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날 멍하게 보는 동공 없는 눈에서는 맑은 색의 눈물이 흘렀지만 난 동정하지 않았다. 연민(憐愍)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해야 하는 말, 모두가 전하고 싶은 것을 입에 담을 뿐.
“현재에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고, 다하지도 못한 채 도망만 치던 놈이……뭐? 새로운 삶? 다른 시공차원에 가서는 뉴 라이프(New Life)를 누릴 수 있을 거 같았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며 Happy Happy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냐고!? 하, 하핫! 야, 진짜 그렇게 생각한 거라면 넌 신이 아니라 개그맨으로 전향하는 게 나을 거 같아! 푸하하핫!!”
유린은 웃고 있었다. 나 같은 놈한테 비난과 모욕을 받는 것이 웃겨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이제 자기 꿈을 이룰 수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된 것에 허탈함을 느껴서일까?
어느 쪽이든 간에 중요하지는 않았다. 중요한 건 현재와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느냐는 것이었으니까.
“웃기는 소리 좀 하지 마라, 병신아. 니가 니 힘으로 이룬 게 결국 뭐 있는데? 내 육체랑 영혼? 그것도 엄밀히 말해 내가 바친 거잖아. 내가 안 줬으면 여전히 몸 가지고 싶다며 딸이나 치고 있을 새끼가 뭐가 잘났다고 신을 자처(自處)하고 그렇게 오만방자하게 행동하냐? 니가 신이면 응당 신답게 행동해야지, 남의 물건 빼앗아 지 거라고 동네방네 소문내는 게 신이냐? 그게 신이 할 짓이냐?”
유린은 대답 대신 검격(劍擊)을 날렸다. 멀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날아오는 검격은 검기(劍氣)의 성질을 띠고 있었기에 고도를 높여 피했다. 투영물을 사출하기만 했었는데 저렇게 손에 쥐고 휘두르는 걸 보니 나도 저런 식으로 싸워볼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옛날에는 그저 원거리 공격밖에 안 했었지. 지금도 근거리 전투는 최대한 피하고 있다만.
“헤, 헤헤……괜찮겠어? 응?”
검기를 몇 번 날리던 유린은 부들거리면서도 겨우 입을 열었다. 뭐가 괜찮냐고 되물었다.
“나를, 죽이면……히, 히힛! 이, 시공차원과 니 아내, 드으을은……키, 키킥! 다 죽을 텐데? 사라질, 텐……데? 쿠, 쿠훅! 후욱……!!”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저 말은 ‘나 죽으면 니 아내들도 다 죽음ㅋ 우왕ㅋ굳ㅋ’였다. 내 표정이 구겨지는 게 찬스라 생각했는지 유린은 침과 콧물을 줄줄 흘리면서 입을 놀려댄다.
“헤, 하핫……어때? 못 죽이겠지? 니 아내들이랑……이 세상은, 너 같은 놈한테는 과분한 거니까……후, 우웃……!! 이 세상과 아내들을 가지고 싶으면……빠, 빨리 치료를 해……이 빌어먹을 독을 없애라고……아, 허억! 커, 아앗!”
목과 심장 부분을 잡으며 발광하느라 쥐고 있던 검은 땅으로 떨어졌지만……나나 유린. 그 누구도 무기의 행방(行方)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지는 와중에도 유린은 날 노려보고 있었고, 난 그런 유린을 보다 한숨을 푹 쉬었다. 정확히는……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못 봐주겠군.”
“뭐, 어?”
한 글자 발음하는 데에도 상당한 힘을 들여야 했기에 말꼬리를 질질 끌게 됐지만……난 그런 것에 관계없이 하고 싶은 말을 뱉어낸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고 느끼면서.
“정말 못 봐주겠다고, 시발! 너랑 싸우면서도 난 생각했었어! 방법은 잘못됐지만 그 욕망이나 꿈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고! 근데 내가 병신이었지, 내가 병신이었어! 대체 넌 뭐 하는 새끼냐?”
멍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유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지.
“그 빌어먹을 꿈 하나 이루자고 다른 사람 죽이고 발악을 했다면 그나마 이해가 가는데……뭐? 이 세상이랑 내 아내들을 구하고 싶으면 널 치료하라고? 하! 야 이 시발놈아! 이젠 협박질이냐? 이 시공차원의 신이란 놈이 마지막의 마지막에 선택한 게 동네 양아치나 할 법한 협잡(挾雜)질이냐고, 이 머저리 같은 등신 새끼야!!”
유린은 눈을 크게 떴다. 자기가 저질렀던 짓이 무엇이었는지 이제야 눈치를 채다니. 자긍심이고 마음이고 뭐고 모조리 내던졌다는 건가? 정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지켜야 할 선(線)이 있었건만……놈은 그 선을 넘어가버렸다. 너무나 초췌하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변한 채…….
“이 와중에도 자기 꿈 이루자며 덤벼들었다면 차라리 동정이나 갔겠지! 연민을 느끼며 너한테 나름 경의(敬意)를 표했을 거야! 명색이 신이니까! 근데 니가 조금 전에 한 짓을 봐! 못 봐주겠다고 했지? 넌 니가 한 머저리 같은 협박질을 봐줄 수 있겠냐? 그 상황이면 누구나 협박을 하며 목숨을 건지려고 할 거라고 자신할 수 있냐고!!”
할 수 없다. 나와 유린의 생각이 일치하는 것은 영 마음에 들었지만……그 행동만큼은 아니었다.
“신이면 신답게 굴어야 하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니 위치에 맞게 행동했어야지! 근데 협박질? 목숨 걸고 싸워도 모자랄 판국에……전부 다 끝나려고 하는 이 와중에 뭐? 이 세상이랑 아내를 구하고 싶으면 치료를 하라고? 넌 대체 얼마나 썩어있는 거냐? 얼마나 치졸하고 더러우면 그딴 수를 써서 살아남으려 하는 거냐고, 이 가짜 신 새끼야!!”
“아, 아앗……아, 아아……!!”
유린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부들거린다. 신이라며 자기 자신을 높이며 자랑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협박질이라니. 예전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또 모를까, 이 세상의 존망과 자신의 목숨.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서 선택한 게……고작 협잡질이라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 세상? 소중해. 아내들? 존나 소중하지. 근데……너 치료해주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이 지랄하며 아내들한테 돌아가면……걔들이 나보고 잘 했다고 말할 거 같냐? 그게 최선이었다며 칭찬이라도 할 거 같냐고? 절대 아닐걸? 내가 내 아내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말은 못하지만, 그렇게 비굴한 방법까지 쓰며 목숨을 연명할 애들은 아니거든요?”
두 손을 비롯해 주변에 고화력 마법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분신들과 함께 만드는 마법은 속성부터 시작해 마법의 위력, 성질, 판정이 매우 다양했다. 손이 조금씩 떨린다.
“바보 같고 중요한 것을 숨기며 행동했던 나지만……남편이나 가장(家長)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바보지만……그래도 마지막 순간만큼은 내 사랑하는 여인들한테 어울리는 남자가 되고 싶거든. 치료해달라고 했지? 확실히 말할게. 후우……!!”
숨을 크게 마신 나는 힘껏 외쳤다. 이 이상 없을 정도로 힘껏.
“개소리하지 마라, 병신 새끼야! 치료? 안 해! 널 도와준다고!? 차라리 거세할 거다, 시발 새끼야! 너처럼 다른 사람 목숨을 장난감 취급하는 것도 모자라 위험하다 싶으니 협잡질이나 하는 머저리 병신 새끼는 신조차 아냐! 나 같은 놈한테 고전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넌 끝났다고! 넌 더 이상 신도 아니고 니 꿈은 이루지도 못할 쓰레기다! 너 같은 놈한테 굽신거리며 이 세상이랑 아내들을 받아갈 바에야……!!”
주변에 있던 마법은 놈을 향한 사출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크게 외치는 것으로 명령을 대신했다.
“내가 너한테 빼앗을 거다아──────────ㅅ!!”
마법이 날아간다. 괴물을 불태우던 화염은 놈의 몸부터 시작해 주변의 투영물을 집어삼킬 기세로 타들어갔다. 날카로운 얼음 조각은 놈의 몸 구석구석에 박히며 몸 안에 남아있던 피를 뿜게 만들었고, 여전히 몸에 박힌 채 남은 얼음 조각에 뇌격(雷擊)이 닿자 고통으로 점철된 비명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울려 퍼졌다.
공격을 맞고 있던 유린이 고개를 들자 숨이 막혀왔다. 시뻘겋게 변한 눈동자는 이제 꿈이 아니라 나를 쫓고 있었으며, 놈의 움직임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빨랐다. 어깻죽지에서 고통이 느껴지기도 전에 피가 솟구쳐 올라왔고, 놈은 어느새 검을 든 채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으, 아앗!”
검과 검이 부딪쳤다. 유린이 했던 것처럼 주변에 있던 투영물을 잡아 무기로 쓰길 잘 했다. 안 그랬으면 내 몸이 검에 베였을 테니까. ‘으흐흑, 이히히♪’ 같은 웃음소리를 내며 검을 마구 휘둘러대는 유린은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흔히 말하는 ‘정신줄 놓은 상태’로 표현해도 되겠지만……시뻘건 눈을 부릅뜬 채 본인이 가진 힘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며 날 몰아붙이는 유린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정신줄만 놓은 상태가 아니었다. 마치 남은 목숨과 정신을 모조리 전투력에 돌린 것 같았기에 위기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으윽!?”
검으로 막아대던 것도 잠시. 왼쪽 어깨 부분에 박힌 검에 비명을 지르며 급히 텔레포트를 썼다. 순식간에 거리가 멀어진 나는 다시 마법을 준비했지만……그건 실패로 끝났다. 언제 만들어뒀는지 모를 마법이 등을 가격했고, 극심한 충격을 느끼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추락해서 죽는 비참한 꼴은 면해야 했기에 간신히 비행 상태로 접어들었지만 유린은 내가 태세를 가다듬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공격해왔다. 움직일 때마다 왼손이 아파왔지만 원래 육체였다면 기절해도 이상할 게 없는 부상이다. 움직이는 데에는 별로 불편함이 없었기에 곧바로 응전(應戰)해야만 했다.
얼굴, 목, 어깨, 배. 어느 곳이든 간에 손에 닿는 곳이라면 미친놈처럼 주먹을 내지르는 유린을 보니 다시금 기분이 더러워졌다. 이성을 잃었다고 표현했지만 그건 꽤 격식 있게 표현한 편이었다. 이건 완전히 괴물이나 다름없군. 눈에 띄거나 들어오는 놈은 모조리 박살내는 미친놈이나 다름없잖아.
나도 놈의 주먹에 주먹으로 답해줬다. 원래 육체였다면 생각도 못 했을 반응과 위력. 주먹과 주먹이 교차할 때마다 서로의 몸에는 상처가 늘어났다.
내 주먹이나 발차기의 위력이 결코 약한 것은 아니었지만 목숨과 이성까지 날려가며 공격하는 유린의 힘은……까놓고 말해 나보다 강했다. 내 육체로 용케 저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구나 하는 감탄마저 들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이건 이 세상의 존망(存亡)을 건 싸움. 감탄하다 죽을 수는 없었고 놈한테 진다는 선택지 자체를 인정할 수도 없었다. 얼굴이 부어 피가 줄줄 흐르는 상태에서 다른 수를 쓴 건 내 쪽이었다. 마력으로 날카롭게 만든 주먹을 유린의 어깻죽지에 박아 넣었다.
유린이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나도 놈의 왼쪽 어깨를 공격했고, 날카로운 마력에 의해 왼팔은 푹 하는 소리와 함께 잘려나갔다. 으윽, 괴물이라면 또 모를까 내 육체를 가진 인간의 신체 일부를 베어 내다니. 이건 정말 사람이 못 할 짓이군!!
팔이 잘려나갔는데도 유린은 계속해서 러쉬(Rush)를 가해온다. 통증 같은 건 옛날 옛적에 느끼지 않게 됐지만 신체 일부가 잘려나간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반응을 안 하다니. 원래부터 인간이 아니었다만 만약 인간이었다 치더라도 사람이 가져야만 하는 것 중 일부를 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유린의 몸이었다면 몸을 바로 재생시켰겠지만……현재는 내 육체를 가진 상태였기에 재생 같은 터무니없는 짓은 함부로 행할 수가 없었다. 완전히 미쳐버린 상태라 재생을 할 생각이 없는 것도 포함된다만. 놈이 발차기를 하는 것에 맞춰 나도 발차기를 한다. 당연하지만 마력으로 발을 감싼 상태다.
내 발과 놈의 발이 교차(Cross)한다. 결과는 볼 필요도 없었다. 투두둑 거리는 소리와 함께 살점과 근육이 찢겨져 나갔고, 인체해부의 신비가 눈으로 들어온다. 으윽!! 내 발이 잘려나간 모습을 내 눈으로 확인하게 될 줄이야! 이, 이건 존나 그로테스크잖아!? 이딴 건 안 보고 싶었다고! 아앗!? 내 살점 안이 저렇게 핑크색이라니! 이거 100% 트라우마 될 거야! 우욱!
텔레포트로 놈의 맹공(猛攻)에서 벗어났다. 왼손과 오른발을 잃은 유린은 숨을 몰아쉬면서도 웃음을 띠고 있었다. 마약이라도 빨았나 싶었지만 사람이 흥분할 경우 엔돌핀이나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는 걸 떠올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젠 저건 신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었다. 괴물이라도 부르기에도 흉측한 것. 그냥……‘거기 있는 것’일 뿐.
더 이상의 격투가 불가능하다고 여긴 걸까? 유린은 남은 오른팔을 들어 올린다. 손바닥 위에는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로 살의(殺意)가 넘치는 마력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난 그게 최후의 한 방이라는 걸 바로 눈치 챌 수 있었다. 접근전이나 격투는 더 이상 할 수 없고 승패도 뻔했으니까. 즉……저건 흔히 말하는 ‘최후의 일격(一擊)’이었다.
원만하게 일을 해결하고 싶었다만 이 상황만큼은 피해갈 수가 없었다. 맞아줄 생각도 없지만 피하거나 막기에는 너무 거대한 마력 덩어리였다. 어쩔 수 없지. 나 또한 마력을 모으기 시작한다. 저 일격(一擊)에 뒤지지 않을 최강·최후의 일격을 날리기 위해…….
우리가 모으고 있는 마력덩어리는 엄밀히 말해 마법(魔法)이라 부를 수 없었다. 마력을 통해 어떤 성질이나 판정, 속성을 지니게 된 것을 마법이라 부르지만……우리는 그저 파괴만을 위해 마력을 모으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이런 것은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마력 덩어리일 뿐. 이름도, 명확한 모습도 갖추지 못한……실패작 마법이나 진배없었다.
그치만……그걸로 충분했다. 더 이상 멋진 이름도, 눈부신 연출도 필요 없었다. 내가 이 세상에 떨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오락 매체에 나오는 용사나 주인공처럼 늘 멋졌던 것도 아니었거니와,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적도 별로 없었다. 나는 그저 나였다. 그러니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혜린, 로라, 메이, 아이나, 미카, 안나, 니나, 아이라, 항희진, 박은채, 아스카, 마리아, 아테나, 헬레나, 안즈, 이루이. 지금까지 만났던 모두 덕분에 나는 이렇게 변할 수 있었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저 현실을 원망하며 도망치기만 했던 신세린은 더 이상 없다.
지금 여기서 이렇게 마력을 모으며 놈과 대치하고 있는 나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주인공도, 용사도, 최강의 힘을 지닌 자도 아니었다. 그런 사람은 될 수 없었다고 생각했었지만……지금은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은 될 수 없었지만, 안 돼도 상관없었다.
내 주변에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그들과 사랑을 나누며 평화와 행복을 누렸다. 그거면 충분했다. 더 이상 바랄 것도, 원하는 것도 없었다. 멋진 주인공이 될 필요도, 위대한 용사가 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면……그 이상 바라는 것은 없었다.
피와 눈물, 침을 질질 흘리며 웃고 있는 유린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쟤도 어떤 의미로는 나랑 똑같았겠지. 부모가 만들어놓은 빚을 정리하느라 원하지 않는 짓을 해야 했던 것처럼, 자기가 원하는 것만큼은 손에 넣을 수 없었기에 온갖 발버둥을 쳐야 했을 것이다.
사람의 목숨을 자기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만약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면 그걸 선택하고 싶었겠지.
자기한테 주어진 선택지가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로 인해 벌어진 참상(慘狀)과 슬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한 자기 자신을 보며 과연 그는 만족했을까? 정말 단 한 점의 후회도 없이 그저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했던 걸까?
사람의 마음과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확정된 미래가 없으니 자기가 안심할 수 있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모두 노력하는 거겠지. 그 노력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이 세상이 끝날 것인가, 놈이 끝날 것인가. 그 대답은……이 한 방으로 결정 난다!!
유린은 미친놈처럼 웃어대며 마력 덩어리를 내 쪽으로 던졌다. 땅에 가까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유린보다는 낮은 고도(高度)에 있었기에 놈의 마력 덩어리가 나를 향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고, 나는 거기에 맞서 위로 마력 덩어리를 던졌다.
이게 보통 상황이었다면 위치와 중력을 고려한 위치 에너지의 계산식으로 변했겠지만……이건 보통 상황이 아니었을 뿐더러 이 세상에는 내가 살던 세상의 물리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수두룩했기에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판타지. 환상. 그렇게 이해하는 걸로 족했다.
깎여나간다. 이 세상과 똑같은 검은색 마력 덩어리는 내 마력 덩어리를 조금씩이지만 깎아내며 날 향해 오고 있었다. 마치 팝콘처럼 이리저리 튀며 깎여나가는 마력 덩어리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이 와중에 팝콘이라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 그런 게 연상될까?
웃은 게 팝콘 생각이 나서만은 아니었다. 이 와중에도 나는 승리를 예감하고 있었다. 그들이 준 지식과 힘 때문에? 음, 그것도 맞겠지. 당신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되살아날 수조차 없었을 테니까. 이렇게 막상막하로 싸울 수 있는 능력은 전적으로 그들의 도움이었다. 그러나 내가 느끼고 있는 ‘승리’는 힘만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다.
나와 유린의 힘은 비슷했다. 유린과 동급(同級) 혹은 그 이상의 힘을 지니게 된 나는 유린과 싸우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다 뱉어냈다. 욕도 하고 싶었지만 욕 이상으로 전하고 싶었던 것……. 그가 현실에서 눈을 돌린 채 도망만 치고 있었다는 걸 전했기에 나는 승리를 느낄 수 있었다.
순탄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계획. 다른 시공차원을 향한 모험이 사실은 근간(根幹)부터 잘못되어 있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자기가 있던 현실에서도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그가 다른 시공차원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니. 너무나도 어리석고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내 마력 덩어리를 깎아나가던 검은색의 마력 덩어리는 조금씩 줄어든다. 몸 안에 들어간 독에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어서 저렇게 된 걸까? 아니면 ‘아무리 노력해도 꿈은 더 이상 이룰 수 없게 됐다’라는 절망에 패배해서 마력 덩어리가 작아진 걸까? 어느 쪽이든……유린의 패배는 그 순간 확정됐다.
내 마력 덩어리는 검은색 마력 덩어리를 소멸시키며 앞으로 날아갔다. 눈물과 침, 콧물과 피로 범벅이 된 유린은 멍한 눈빛으로 마력 덩어리를 보다 거기에 삼켜졌고, 엄청난 빛이 주변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하늘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새카맸던 세상은 저 먼 곳마저 보일 정도로 밝아졌으며, 빛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양 더욱 더 강한 빛을 주변에 뿜어낸다. 더 이상 암흑은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밝은 빛에 휩싸였고 나는 그걸 보며 잔잔한 웃음을 지었다. 굳이 말을 꺼낼 필요도 없었다. 이겼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고 있었고 이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으니까.
“축하한다. 그리고 고맙다.”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몸 안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는 반가우면서도 이질적이었다. 음, 몸 안에 다른 사람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 이런 느낌이군. 반갑긴 하지만 그 느낌이 썩 좋은 것은 아니었다. 뭐 어때? 중요한 건 이겼다는 사실이지.
“다 여러분 덕분이죠. 제가 고맙다고 인사드려야죠. 정말 감사했어요. 여러분 덕분에 이겼어요.”
그들은 고맙다고 했다. 원래라면 ‘그렇지 않다’라고 하는 빈말을 해야겠지만……나나 그들이나 유린 때문에 엿 먹은 게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까. 빈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
“놈이 없어진 덕분에 우리는 이 공간에 머무를 필요가 없어졌다. 아마 너의 육체와 영혼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어, 그럼……제가 지금 쓰고 있는 이 몸은요?”
육체가 두 개나 있는데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몸이 두 개면 좀 그렇잖아.
“지금 쓰고 있는 육체는 우리가 너한테 준 지식이나 힘처럼 하나의 ‘힘’이 될 거다. 기본적으로는 너의 원래 육체를 쓰겠지만 원하면 전투에 적합한 상태로 변하겠지. 우리가 만든 것은 어디까지나 놈과 싸우기 위해 만든 것이었지, 너의 원래 육체를 대신할 것은 아니었으니까.”
아, 맞다. 유린도 카인으로 활동할 때 쓰던 몸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었지. 정리하자면……몸은 원래 내 몸을 찾게 되겠지만 원한다면 현재처럼 전투에 적합한 힘을 가지게 된다는 거겠지.
“여러분은 이제 가시는 건가요?”
“그렇다. 이곳에 남아 있을 필요는 더 이상 없다. 다시금 감사를 표한다. 정말 고맙다, 신세린. 우리는 니 덕분에 이 저주받을 공간에서 벗어나게 됐다. 몇 번이고 감사를 표해도 모자라다.”
정말 기쁘긴 기쁜가 보다. 처음 만났을 때는 무뚝뚝했고 유린을 향한 복수를 부탁할 때는 섬뜩하기까지 했다만……지금은 기쁨에 겨워하는 평범한 사람들로밖에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들이 편안한 안식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만큼 기쁜 일은 없겠지.
내가 축하한다고 하자 고맙다고 다시 말했다.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하긴, 나도 고맙다고 했으니까.
“이게 마지막 대화가 되겠군. 마지막으로 무언가 할 말이 있나?”
난 고개를 끄덕이고 내가 묻고 싶은 것을 물었다. 내 질문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그들의 목소리가 흐려졌다.
“우리는 죽었으니 굳이 산 사람의 일에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그렇게까지 해야 할 정도의 가치가 있는 일인가? 이해할 수가 없다.”
내 질문에 대답은 했지만 썩 좋은 판단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나 보다. 나는 웃으며 답했다.
“다른 사람한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일지 몰라도……저한테는 소중한 사람들과 세상이니까요. 저한테 그보다 중요한 건 없어요. 사람마다 소중한 것의 가치는 서로 다르니까요.”
그들은 조용했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를 리가 없겠지. 소중한 것은 사람마다 제각각이지만 그 가치는 함부로 상상하거나 단정 지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한테는 아무런 쓸모도 없어 보이는 것이 어떤 사람한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알겠다. 우리가 준 지식과 힘은 니가 원하는 대로 써라. 이미 너한테 준 것인데다 안식을 되찾을 우리한테는 하등 쓸모없는 것들이니까. 니가 하는 일이 잘 되기를 빌겠다.”
내가 하려는 일이 바보 같다는 걸 알면서도 행운을 빌어주는 그들이 참으로 고마웠다.
“저도 여러분이 편안한 안식을 맞이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저한테 살아날 기회부터 시작해 많은 것을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언제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만난다면 그때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평온한 여행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정말 고맙다. 잘 있어라. 13번째 용사……아니, 이 시공차원계의 모두를 구한 영웅, 신세린. 우리는 절대 너의 이름을 잊지 않겠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리마. 니가 만들려고 하는 미래에 축복과 희망이 있기를…….”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말이었다. 더 이상 내 안에서 그들을 찾을 수는 없었고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정말 가버렸군. 그들이 진심으로 평온한 안식을 맞이하기를 바라며 웃었다.
“자, 그럼……시작해볼까.”
빛으로 가득한 세상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미 가버렸지만……그들의 말은 옳았다.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일은 굳이 말한다면 그리 가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내가 가진 대부분의 것을 잃게 될 테니까. 그들로부터 얻은 힘이나 지식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치만…….
“난 이 세상을 사랑했으니까.”
그 이유 하나면 충분했다. 난 이 세상을 사랑했다. 이 세상에 있는 아내들도, 내가 여기서 겪은 일들도. 모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자 경험이었다. 과거에 연연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겠지만 미친 신 한 놈 때문에 목숨이나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들을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얘들아……지금까지 정말 미안했다. 그리고……진심으로 사랑한다.”
그게 내 마지막 말이었다. 내 몸에서 나온 빛은 주변에 깔린 빛과 조금씩 어우러졌다. 이윽고 하나가 된 빛은 이 세상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갔고, 그 빛이 사라질 무렵 펼쳐진 것은……‘이 세상이 원래 갖추어야 할 모습’이었다.
============================ 작품 후기 ============================
마침내……정말 길고 긴 싸움이 끝을 맞이했습니다. 16-1부터 사실상 시작된 싸움이 약 70편에 걸쳐 막을 내렸습니다. 여러 모로 탈도 많고 말도 많고 문제점도 많았던 소설입니다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기뻐해야 할 거 같네요. 주인공과 최종보스의 격돌이 끝났으니 말입니다.
어제는 후기가 한 방에 날아가버렸기에 오늘은 메모장에 적은 후 올립니다. 40kb에 가까운 분량을 나누지도 않고 통으로 올리다니. 제가 생각해도 좀 아깝고 멍청한 짓입니다만, 지금까지 즐겁게 봐주신 독자분들을 위한 거니 감안해야겠죠. 여러 모로 말만 주절거리는 편도 있었기에 그런 분들을 위해 올리는 초과분량입니다. 즐겁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아침에 올릴 생각이었지만 아침에 할 일이 워낙 많아 퇴근 업로드를 하게 됐습니다. 저녁 먹고 가장 먼저 하는 짓이 소설 업로드라니. 저도 어지간히 이 짓을 사랑하나 봅니다.
초기구상과는 다르고 매우 만족스러운 형태도 아닙니다만, 적어도 싸움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만큼은 만족해야겠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는데 현재 상황은 반 이상을 훨씬 넘어왔으니 말입니다.
사실상 다음 챕터가 마지막이니 슬슬 후속편 구상과 쉴 준비를…….
……응?
…………외전?
………………로리캐릭 내라고?
……
…………
………………데, 데샤아아아아!
웃기지 마는 데샤아아아아아!
이제 토일에 소설 적는 건 싫은 데샤아아아!
최신겜을 하면서 편하게 놀고 싶은 데샤아아아!
회사 출근은 빨라지고 퇴근은 늦어진 데슥!
텍본러는 정기적으로 출몰하는데 법적 대응은 쓸모도 없는 데슥!
조아라가 또 언제 제2의 텍본러 개과천선 이벤트를 할지도 모르는 데슥!
그러니 와타시를 자유롭게 내버려두라는 데샤아아아아앗!
코멘트 대답을 하고 얼른 자러 가는 뎃샤아아아아앗!
로리콤MK님, 데……90점을 주신(안 줬습니다)로리콤MK님마저 로리 캐릭터에 기대를 하지 않는 데슥…….
오, 오로로로롱! 오로로로롱! (대성통곡하는 소리) 오로로로로롱!
이렇게 된 이상……나머지 챕터로 승부를 건다!
sckgjjjDrthcjfjdj님, 유린이 달라질 턱이 없죠. 목숨 아까워서 협잡질까지 하는 놈입니다. 얘는 반성과 참회라는 말은 몰라도 복수와 통수라는 말은 안 가르쳐줘도 배워나가는 놈입니다.
qndyd02님,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에피소드가 말씀하신 사이다의 절정입니다. 남은 챕터가 있으니 즐겁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장난 같다고 보실 수도 있겠지만 위에 적은 건 대부분 사실입니다.
불펌러는 자기집 물건 가져가듯 텍본을 마구 쓸어가고 있는데 조아라는 법적대응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만한 결과는 거두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런 주제에 '텍본러 개과천선 이벤트'라는 병신 크리티컬 짓이나 쳐벌여가며 불펌러는 용서하지만 작가는 개돼지처럼 대하는 태도를 고수해 왔습니다.
네이버 블로그와 이 후기에도 몇 번이고 적었습니다만, 외부 환경이 쓰레기 같으면 아무리 재능이 넘쳐나도 안 되는 게 세상살이입니다.
하물며 작가의 창작의욕과 저작권을 지켜줘야 하는 조아라는 자기 할 일은 안 하며 작가를 유희왕 카드 버리듯 이용해왔습니다.
첫 연재이기도 하고 초보 작가가 가장 글 쓰기에 적합한 환경 중 하나라 조아라를 선택한 거지, 아주 사랑스러워서 좆물을 도퓻도퓻 뿌려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해서 여기에 글을 적는 건 아니라는 걸 다시금 적어둡니다.
길고 긴 싸움이 끝났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다음 주에 계속되겠죠.
추운 겨울, 건강 돌보시며 편안히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여기까지 봐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금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