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2. 교통사고
2. 교통사고.
“팀장님, 찾았습니다.”
홍인구형사가 가지고 온 마약봉투를 보며 최재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급습한 이곳 트라팔가는 신도시로 조성된 신용지구의 핵심이다. 의정부와 강북에서도 젊은이들이 몰릴만큼 시설 좋고 물 좋은 클럽이다.
“사장하고 지배인새끼 모셔라.”
홍인구형사가 씩 웃으며 돌아서는 걸 보며 최재우는 사장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곳에서 일어난 물뽕강간사건을 모른 체 하던 놈, 하등 관련이 없다고 오리발 내밀던 새끼, 이제 서로 데려가서 비틀어 짤 순서다.
‘결국 마약인데……’
이곳 트라팔가에 마약을 공급하는 조직까지 잡아야 한다. 예전엔 일부 특정한 계층에서만 사용하던 마약이 이젠 주택가까지 파고든 상황이다. 유흥업소종사자나 연예인만이 아니라 학생 주부 회사원이 수요자다.
‘마약수사대에 협조요청을 해야겠어.’
밤이면 화려하게 사람들을 유혹하던 클럽, 그 모습을 눈에 담은 최재우는 돌아섰다. 외부로 나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봄기운이 물씬 난다.
‘벚꽃이 벌써 지고 있구나.’
도로 반대편 상가 앞에 선 벚나무들이 꽃잎을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연분홍빛이 아름답고 황홀하다. 보고 있자니 애상의 감정이 차오른다. 너무 아름답고 예뻐서 차라리 슬픈 듯한, 이 감정의 바닥엔 그 기억이 있다.
‘그 아이……’
열흘전의 일이다. 아이가 눈앞에서 죽는 것을 봤다.
작고 여린 생명, 웃는 모습이 천사 같던 아이다.
저 벚꽃처럼 피어나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아이는 피지 못하고 스러졌다.
그렇게 만든 놈은 마약을 처먹은 놈이다.
“개새끼.”
이 가는 숨을 뱉어낸 최재우는 고갤 흔들었다. 가슴에 들어찬 감정을 털어냈다. 도로에 세워둔 차에 올라타 텀블러를 열었다. 아내 유인주가 타준 홍삼차다. 쓴맛이 이젠 적응이 됐다. 아내의 잔소리가 맴돈다.
‘나이 들수록 몸에 더 신경 써야 한다고.’
그러면서 투덜거리는 소리는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는 것이었다. 밤새워 하긴 뭘 해라는 둥,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늙은 남자에게 시집왔다는 둥, 더 나이 먹으면 삼식이가 될 텐데 어쩌나 하는 푸념, 갈수록 는다.
“에이 내가 치사해서!”
텀블러의 홍삼차를 창문 밖에 부으려던 최재우는 참았다. 현실은 현실이지 홍삼차가 죄는 없잖아, 그래도 아내가 준비한 건데, 다시 마셨다.
“아 쓰다.”
차를 출발한 최재우는 신용지구의 빌딩들과 아파트숲을 벗어나 신정지구로 향했다. 신명시에서 제일먼저 조성된 택지, 그곳의 신명경찰서로 들어갔다. 3번국도로 의정부와 연결된 위치의 신명서는 늘 분주하다.
“팀장님, 과장님이 찾으십니다.”
들어가자마자 닥친 호출에 최재우는 미간을 옅게 찌푸렸다. 출동했던 결과를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과장실로 걸어갔다. 노크하며 표정을 폈다.
“들어와.”
과장실 안의 단출한 모습을 눈에 넣으며 최재우는 과장에게 다가갔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과장이 간이테이블을 가리켜 의자를 빼고 앉았다. 책상에서 나온 과장은 서류파일을 테이블에 펼치고 손가락을 두드린다.
“3월 24일 기억하지?”
생뚱맞은 질문에 최재우는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이내 뭔지 알았다.
“신읍지구 농협마트 앞 교통사고 말씀이십니까?”
“음, 그래. 그 사건.”
고갤 끄덕이며 과장은 파일을 들여다본다. 그러다 파일을 돌려 내민다.
“윤완규, 그 새끼가 다른 소릴 하고 있어.”
윤완규가 누군지 최재우는 안다.
교통사고를 낸 범인이다.
그것까지만 안다. 교통사고는 최재우의 강력계 소관이 아니다.
그런데 왜 이 얘길 하는지 모르겠다.
최재우 자신을 불러서 이 파일을 보여주는 이유가 있다.
“이놈이 말하기를 운전자는 자신이 아니란 거야.”
“예? 그게 무슨 이야깁니까?”
흐릿하게 한숨을 쉰 과장은 다시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야, 윤완규 제 놈 말고 다른 새끼가 운전을 했다는 거지. 물론 약을 처먹은 상태였고.”
“그럼……?”
“속도위반 신호위반 마약복용 피해자 사망, 사고 광경이 교차로 카메라와 주변 카메라에 다 찍혔어. 바보가 아닌 이상 인생 쫑났다는 걸 모를 수가 없지. 그런데 제가 한일이 아닌데 덮어쓰는 게 억울하다는 거야.”
“덮어쓴다고요?”
“사고 차량, 그게 수억대의 슈퍼카라는 거지? 음, 아무튼 그걸 운전한 놈이 따로 있고 그놈이 덮어쓰라고 했다는 거야. 거부할 수가 없는 놈이란 거지. 잘못하면 죽는 다고 엄살을 부리는데, 보호해줄 거냐는 거지.”
“죽어요? 보호해달라고 한다고요?”
미간을 가득 좁히는 최재우에게 과장은 부연해 이야기 했다.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진 놈이라는 거야. 경찰에서 확실하게 자신을 보호해 준다고 약속하면 신원을 밝힌다는 거지. 정말로 겁에 질려 있어.”
“아니 그게……”
“최팀장 네가 맡아서 수사해야겠다.”
“예에?”
“단순교통사고가 아니야. 마약이 끼어있어. 요새 긴장감 느끼지? 맞아, 신명시에 본격적으로 마약이 들어오고 있어. 뒤에 뭐가 더 있을지 몰라.”
그러니 강력반에서 하라는 거다. 진짜 범인이 누군지 밝혀 잡고, 마약루트를 파악해 까뒤집으란 거다.
“그 사건 나던 날 현장에서 봤잖아?”
“예? 아 예, 봤죠.”
“사고차량 안에 다른 누가 있는 거 못 봤어?”
“안 보였습니다.”
이미 교통계에 진술한 내용이다. 슈퍼카는 짙은 썬팅이 돼 있어 내부가 전혀 안보였다. 사고를 내고 잠시 멈춰 섰다가 바람처럼 도망쳤다.
“윤완규가 도주했던 별장에서 다른 증거를 찾진 못한 겁니까? 차에서 함께 내린 사람이 찍힌 영상이라든가, 아, 차량내부 블랙박스는요?”
과장은 심드렁한 얼굴로 상체를 물리더니 짧게 말했다.
“대충 파일에 들어 있고, 그런 걸 이제부터 알아보란 말이다. 확실하게.”
최재우는 찌푸려지는 표정을 태연하게 지키려 애썼다.
* * *
별장은 크진 않다. 하지만 짜임새가 있는 편이다. 건평이 못돼도 오륙십평은 되겠다. 적벽돌로 지어진 외관은 단단하고 멋스럽다. 개가 짖는다.
“그래그래, 아저씨 나쁜 사람 아니다.”
혈통 있는 진돗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보이는 백구다.
“흥분하지 말라니까.”
최재우는 웃는 얼굴로 개를 달랬다. 하지만 소용없다. 낮선 사람이 접근하자 맹렬히 짖고 있다. 별장을 지키는 놈, 안에서 뛰어나올 기세다.
“누구십니까?”
드디어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육십대로 추측되는 남자다. 작업복차림에 손에는 망치를 들었다. 그게 위협용이 아니라 일하던 모습인 걸 알겠다. 그렇다는 건 별장관리인 이란 소리, 사건파일에 이름이 있는 자다.
‘별장관리인 황인철.’
사건 파일 내용을 더듬은 최재우는 웃는 얼굴로 신분을 밝혔다.
“신명서에서 나왔습니다.”
경찰신분증을 철제 울타리 안을 향해 보인 최재우는 용건도 말했다.
“윤완규씨 일로 몇가지 알아볼게 있어서요, 협조 부탁드립니다.”
관리인 황인철의 마른 얼굴에 못마땅한 주름이 생긴다.
“벌써 다 말했는데 뭘 더 알아본다고 그러는 겁니까?”
시달릴 만큼 시달렸다는 소리, 최재우는 더 환하게 웃는 얼굴을 했다.
“예, 저희도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하지요. 근데 뭐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고요. 힘없는 말단이 어쩌겠습니까, 위에서 가라면 까는 거지요.”
일정부분 진심을 담은 말에 최재우는 내심 찔렸지만 사정하듯 달라붙었다.
“그냥 확인차원입니다. 확인요.”
“허, 거참 나.”
못마땅하지만 거절할 수도 없는 일, 관리인 황인철은 철문을 연다.
“넌 조용히 해!”
백구에게 버럭 소리 지른 황인철은 길을 내주듯 돌아선다.
“들어가서 커피라도 한잔 하시죠.”
“아예, 감사합니다.”
별장 안으로 들어가며 최재우는 개부터 살폈다. 물러나 있지만 여전히 으릉거리는 놈, 충성이 대단하다. 이런 별장과 개를 가진 삶이 부럽다.
‘로또라도 맞지 않는 이상 이번 생에는……’
씁쓸한 감정을 삼킨 최재우는 별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처럼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내실있는 구조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벽난로가 있다. 그 앞쪽에 응접테이블과 소파, 오른쪽엔 주방과 바가 있다.
‘호, 술집해도 되겠군.’
바 뒤로 보이는 각종 양주와 술병 진열장에 최재우는 옅은 감탄을 삼켰다. 그러고 있는데 관리인 황인철이 정말로 커피를 타왔다. 믹스커피다.
“드십시오.”
“아예, 감사합니다.”
매일 먹는 믹스커피, 최재우는 입술만 축이고 본론을 바로 꺼냈다.
“별장소유주가 윤완규의 부친 윤종대회장님으로 돼 있더군요.”
“뭐 그렇죠.”
“음, 그날 말입니다. 윤완규가 사고를 내고 온 날, 3월 24일에요, 여기 안계셨지요? 윤회장님이나 윤완규가 오는 날은 준비만 하고 사신다고요?”
“그렇습니다. 쉬시는데 제가 있으면 방해가 되니까요.”
“댁은 신남면이시라고요?”
“맞습니다. 읍사무소 옆입니다.”
신남면 중심가는 이곳 별장으로 오는 길에 위치해 있다. 신명시 중심인 신왕지구나 신도시로 조성된 신용지구 신회지구 신읍지구와는 거리가 있지만 나름 규모 있는 외곽 중심가다. 외식산업고등학교가 있어서다.
“그날 댁으로 돌아가신 이후에는 별장에 다시 안 오셨겠군요?”
“안 왔죠, 호출을 받았으면 모를까 올 일이 없지요.”
최재우는 고개를 주억거린 후 다시 물음을 냈다.
“윤완규가 별장에 자주 옵니까? 다른 일행을 데리고 온 적이 있습니까?”
미간을 옅게 찌푸린 황인철은 잠시 주저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여자를 몇 번 데려온 적은 있습니다. 누구였는지 일일이 기억하진 못하고요, 데려올 때마다 사람이 바뀌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잊었습니다.”
“그래요? 그중에 아는 얼굴은 없었습니까?”
“모르죠, 대개 오시기 전에 저는 가니까요.”
“그렇군요, 그런데 여자를 데리고 왔다는 건 아시고 있잖습니까?”
그건 봤다는 소리잖아? 란 공격에 황인철은 움찔했다.
“에 그건 뭐, 따로 호출을 받았을 적에 보긴 했습니다. 바비큐할 고기를 준비 안 해 왔다고 하실 때요. 그런 요구는 사전에 하시고 제가 준비해 놓는데, 아마 예정에 없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뭐 그런 경우죠.”
“연예인들 아니었습니까? 같이 왔다던 여자들 중에 tv에서 본 얼굴은 없었습니까? 윤완규가 연예인들과 친분이 있는 걸로 아는데요? 가수 데뷔를 준비 중이었다고 하던데, 그런 쪽 관계자나 지인들 아니겠습니까?”
“그거야 뭐…… 그런 쪽은 잘 모릅니다. tv도 잘 안 봐서요.”
예리한 눈으로 황인철을 응시하던 최재우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뭘 건져내기가 쉽지 않겠어.’
사건의 키가 숨겨진 핵심공간은 바로 이곳이다.
별장, 이곳으로 윤완규는 도망쳐 왔다.
여기서 체포됐다.
천사 같은 아이를 죽음으로 내동댕이친 슈퍼카를 별장 앞에 세워두고 술을 마셨다.
놈은 혼자가 아니었단 거다.
‘별장 내외부에 cctv가 없으니……’
별장으로 이어지는 외길엔 cctv가 없다. 별장 주변도 안에도 설치를 안했다. 황인철이란 관리인이 상주하듯 관리하는 게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그래도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장비가 없다는 건 의아한 일이다.
‘설치해 놓고 제거한 정황은 없으니.’
그 부분은 의심에서 제외한 최재우는 미간을 꿈틀거리며 생각했다.
‘누가 같이 탄 걸까? 윤완규가 두려워 할 존재란 건데, 그 누군가가 여기에 같이 와서 혼자만 사라진…… 윤완규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런 건데……’
윤진건설 사주의 외아들, 윤진건설은 신도시 건설에도 참여한 업체로 잘나가는 건설사다. 그런 태생을 광고하듯이 살고 있는 놈이 윤완규다.
놈이 어울리는 것들이야 뻔하다.
그런데 그중에 윤완규가 두려워할 존재다.
‘여기 같이 있다가 사라진 누군가…… 윤완규에게 덮어쓰게 한……’
모호한 존재를 더듬던 최재우는 일어섰다.
“좀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황인철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승낙했다. 이미 별장 안에 들여놓은 마당이어서다. 그 시선을 받으며 최재우는 별장 안팎을 살폈다. 이층과 지하실까지 샅샅이 살폈다. 그렇게 뒷문에 이르렀다. 울창한 숲이 보인다.
‘이 숲을 지나고 야산을 건너면……’
도로가 나온다. 별장에 있던 누군가가 아무도 모르게 벗어나려 했다면 이 루트를 선택했을 것이다. 연락받은 차가 도로에서 태워 가는 거다.
‘그날 이동한 차량들을 다 뒤져봐야 하는 건가.’
뒷골이 무거워지는 걸 느끼며 최재우는 돌아섰다. 그 순간 폰이 울어댔다.
-팀장님!
홍인구형사다, 구치소에 윤완규를 보러갔다.
-윤완규가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최재우는 숨을 경직했다. 그렇게 이 순간 밀려드는 예감의 파도에 젖어 들었다. 위험하고 힘겨운 사건이 될 거라는 예감, 아니 확신이다.
“이새끼……!”
그날, 아이가 공중으로 떠오르던 광경이 떠오른다.
왜 이 순간 그 기억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최재우는 이가는 숨을 내쉬며 다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