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4. 아버지
4. 아버지.
잠들어 있는 아들 윤완규를 내려다보는 윤종대회장의 얼굴이 볼만하다. 고통스럽고 분노에 찬 얼굴이다. 왜 아니랴, 하나뿐인 아들이 저런 상태에 있는 거다. 물론 약 먹고 자살기도 한 게 아니라 잡혀 있는 처지다.
‘아들이 그런 꼬라지인 게 누구 탓이겠냐?’
연민 따위는 들지 않는다. 희생자가 떠올라 분노만 치민다. 하지만 경찰은 냉정하고 공정해야 한다. 감정을 밀어내고 홍인구는 물음을 던졌다.
“아드님이 주장한 내용에 대해 알고 계시지요?”
휘뜩 돌아보는 윤종대회장, 그 눈에 든 더 짙은 분노를 무시하고 홍인구는 다시 물었다.
“사고를 낸 진범이 따로 있다고, 진술하면 경찰이 보호해줄 거냐고 한 이야기 말입니다?”
상대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걸 보며 홍인구 거듭 말 펀치를 날렸다.
“경위야 어떻든 이렇게 구치소 밖으로 나왔고 부자상봉까지 이뤄졌군요. 한잠 푹 자고 일어나면 아무 일 없을 거라니 불행 중 다행입니다.”
“아무리 경찰이라지만 환자를 두고 할 소리요?”
드디어 나온 윤종대회장의 반격, 홍인구는 피식 웃었다.
“환자이기 이전에 범죄자죠. 마약을 복용한 상태에서 다섯 살 난 여자아이를 차동차로 치어 숨지게 한, 그리고 현장을 이탈해 도주한 범죄자요.”
윤종대 회장의 뺨에 주름이 지는 걸 확실히 인지하며 홍인구는 다시 말했다.
“윤진건설의 외아들이 두려워 할 사람이 누군지 궁금합니다만? 제가 하지도 않은 범행을 뒤집어쓰고 구치소에 들어가야 하는, 그런 친구가 누구일까요? 친구가 맞겠죠? 같이 마약을 복용하고 어울리는 친구 아니겠습니까? 그런 친구들에 대해 아십니까? 아들이 평소에 같이 어울리던……”
“모르오.”
차갑게 자르고 나온 윤종대회장의 한마디에 홍인구는 느릿하게 입을 닫았다. 정말로 모르는지 어떤지, 윤종대는 이야기할 마음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 상황 전개가 불안하다. 윤완규가 주장하고 난 직후인 거다.
‘제가 진범이 아니란 말을 하고 자살기도를 한 이유가……’
윤완규는 진범을 밝히길 두려워한다. 진범의 존재 자체가 두려운 거다. 그런 공포 때문에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그건 아니다.
윤종대회장과 교감이 있었다. 그 결과로 지금 이 자리에 만들어진 거다.
‘변호사를 통해서 수면제를 건넸어. 어떻게 해서든 구치소에서 일단 나오려고.’
경찰이 감시중이다. 보호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그 위로 윤종대회장은 개인 경호원들을 배치했다. 구치소 안 보다는 이곳이 안전하단 판단이다.
‘위세척도 잘했고 깨어나면 문제없을 거라고 하지만……’
담당의사의 말은 그렇지만 상황은 달라질 걸로 예상된다.
윤회장이 분명히 병원에 손을 썼다.
아들이 실려 온 병원이 이곳이란 걸 알고 즉각 했을 거다.
즉, 이병원에서 윤완규가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 거란 거다.
‘윤회장, 당신도 어느 정도는 아는 것 같은데.’
시선 돌린 윤종대회장의 옆얼굴을 응시하던 홍인구는 폰의 울림이 몸을 돌렸다.
“어, 뭐 좀 나왔냐?”
사고차량의 당일 행적을 추적하는 일을 맡은 후배, 유지건 형사의 목소리가 낭랑하다.
-사건 당일 그 슈퍼카, 람보르기니 우르스가 R호텔에서 빠져나온 것은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숙박한 기록은 없습니다. 호텔에 cctv협조요청을 해 놓은 상태입니다만, 영장을 대야 확실한 협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알았어. 팀장님께 보고하고 처리하자고. 다른 건?”
-아 정말 빡세게 돌리시네, 윤완규 주변쓰레기들 알아보러 또 갑니다. 간다고요.
“그래, 쉬지 말고 열심히 돌아라, 상으로 바나나우유 사줄게, 알았지?”
-에유, 앞에 있으면 그냥.
“새끼가 선 넘네.”
바로 끊어진 통화, 폰을 내리며 홍인구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돌아본 윤종대회장의 얼굴이 선명하다. 아들을 보는 아버지의 얼굴과 눈이다.
* * *
경기북부외상권역센터, 그렇게 지정된 병원이라고 한다. 이 병원에 딸 민지가 입원한 게 벌써 언제인지 모르겠다. 이젠 더 있을 수 없게 됐다.
‘요양병원에서 임종을 준비하는 게 최선일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한 말이다.
더는 해 줄 것이 없다는 소리, 포기하고 받아들이란 이야기다.
딸의 죽음은 정해진 것이기에 발버둥 쳐야 소용없단 선고다.
“발버둥……”
무심히 흘려낸 독백처럼 그 말을 중얼거린 장철은 병원을 새삼스레 올려다봤다.
신명시에서 자동차전용도로로 이어진 길목에 위치한 대형병원이다.
경기 북부에선 제일 큰 곳, 이곳에 처음 올 때 자동차로 왔었다.
그 차를 팔았다. 엊그제 집도 팔았다.
밀린 병원비며 수술비며 정산하고 남은 돈으로 요양병원을 알아봐야 한다.
딸 장민지의 죽음을 준비하는 거다.
그런 게 발버둥일까?
아니, 그 직전까지 했던 게 발버둥이었던가?
할아버지.
장철은 휙 돌아섰다.
아무도 없다.
환청이다.
‘영아.’
눈가를 부들거리며 장철은 어둠 내린 도로를 봤다.
달리는 차들의 불빛과 정류장을 막 떠나가는 버스의 울음뿐이다.
현실이다.
손녀 영이는 더 이상 자신을 부를 수 없다.
그 작은 육신을 태운 가루는 집에 있다.
“미안하구나.”
장철은 고개를 숙이고 그 말을 되풀이 했다. 지켜주지 못한 손녀 영이와, 역시 돌봐주지 못한 딸 민지를 향해서다. 대신 죽어서 딸을 살릴 수만 있다면, 손녀를 살려낼 수만 있다면, 사무치는 이 마음은 헛될 뿐이다.
“미안해.”
고개를 들며 장철은 다시 미안하다고 말했다.
눈앞에 떠오른 희미한 얼굴을 향해서다.
딸 장민지를 낳은 여자, 하은주에게다.
그건 무슨 운명의 농간이었던 걸까, 상처뿐이던 그 여자와 장철 자신은 사랑에 빠졌었다.
불나방 같던 사랑.
결국은 모조리 불타서 재가 될 것을 알면서도 헤어나지 못했던 애정.
그것을 먼저 끝낸 것은 장철 자신이다.
하은주에게 편지 하나만을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이십년이 지나 딸 민지가 왔다.
‘핏덩이 하나를 안고……’
그날, 하민지란 이름으로 살다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온 딸은 제가 낳은 아기를 안고 있었다. 유전자검사 같은 건 하지 않아도 알았다. 혈육이란 게 보였다. 딸에게도 손녀에게서도 장철의 자신의 얼굴이 들어 있었다.
“미안해.”
다시 중얼거림을 내며 장철은 병원을 향해 걸었다. 늘 먼 곳을 응시하다가 부르면 돌아보면서 희미하게 웃던 여자, 하은주의 얼굴은 그대로다. 잘했다는 것인지 잘못했다는 것인지, 달 속에서 무심히 보기만 한다.
달빛을 받으며 병원 안으로 들어선 장철은 입원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시간은 7시 30분, 면회시간은 이제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그나마 일반병실로 내려와서 저녁시간 면회가 가능하다. 이제 이야기해야 한다.
땡 소리에 시선을 든 장철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7층을 누르고 큰 숨을 들이마셨다.
순식간에 7층에 도착했다. 딸의 병실로 걸어가 멈춰 섰다.
2인실이다. 하지만 입원환자 이름은 딸 장민지 뿐이다.
이제 들어가 딸을 봐야 한다.
어째서 영이가 안 오는지, 전화도 안 받는지 말해야 한다.
어금니를 강하게 물었다 푼 장철은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있는 딸 장민지가 보이고 간병인이 보인다.
눈인사를 한 간병인은 병실 밖으로 나갔다.
딸은 누워서 텔레비전 뉴스에 시선을 박고 있다.
-지난 3월 24일 마약을 투약한 상태에서 교통사고를 일으키고 도주했던 윤진건설 사주의 외아들 윤완규가 오늘 구치소에서 자살기도를 한……
경직한 장철은 텔레비전뉴스로 시선을 돌렸고, 그 순간 딸 장민지가 돌아봤다.
“아빠.”
힘없는 목소리, 그러나 오늘은 슬픔과 고통이 더해 있다.
“민지야.”
장철은 침대로 서둘러 다가갔다. 그렇게 딸 장민지의 눈을 보고 깨달았다.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손녀 영이가 당한 일을 알고 있다는 것을.
“낮에도 뉴스를 봤어.”
그랬다는 거다.
윤완규의 자살기도 외에 사건 전모를 알았음이다.
3월 24일 신명시 신읍지구 마트 앞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를, 그 피해자가 다섯 살 난 어린 여자아이란 것을, 현장에 있던 보호자가 할아버지였단 것을.
“뉴스에서 사건내용을 자세히 보도했어.”
근육이 오그라들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팔로 장민지는 리모컨을 들어 tv를 껐다. 그리곤 창문 밖을 봤다. 어둠 덮인 하늘에 뜬 달을 본다.
“아빠가 잘못한건 없어.”
장철은 숨을 멈췄다.
“그렇지만 분하고 억울해.”
시선을 든 장철은 딸 장민지가 던지는 눈길을 받았다.
“영이가, 다섯 살밖에 안 된 내 딸이…… 너무 억울해.”
딸 장민지의 눈동자에서 솟구치는 화염을 장철은 분명히 봤다.
“복수해 줘.”
* * *
송파구에서 제일 큰 병원답게 A병원 주차장은 광활하다고 할 정도다.
“무쟈게 넓긴 하구만.”
감탄인지 뭔지 모를 중얼거림을 뱉으며 최재우는 차에서 내렸다. 병원로비를 향해 걸어가는데 홍인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온다는 이야기다.
“그래, 알았다.”
4월로 접어들어선지 날이 확 풀렸다. 병원에 핀 벚꽃을 때아니게 완상하노라니 홍인구가 나왔다. 병원 내 커피전문점에 사온 원두거피를 내민다.
“또 커피냐?”
하면서도 최재우는 받아마셨다. 믹스커피로는 느낄 수 없는 진한 커피향이 코와 혀를 만족시킨다. 이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사먹는 건가 보다.
“윤종대회장은 조금 전에 갔습니다.”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최재우는 벤치에 앉았다. 따라 앉은 홍인구는 이어 말한다.
“경호원들을 남겨두고 가는 건 잊지 않았고요. 그래서 말인데요, 윤씨부자의 반응으로 미뤄보면 확실히 진범이 있을 가능성이 큰 것 같습니다.”
“과잉 반응이 아닌 것 같다?”
“예, 윤완규가 죄를 덮어쓰고 숨겨주려고 한 놈이, 뭐 그게 상대의 힘에 눌려서겠지만, 어쨌든 그런 놈이 있다고 보이는 거죠. 윤종대회장도 그걸 알고 대비하는 것 같고요. 자살시도도 그런 일환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일환이다?”
윤완규가 진실을 발설하겠다고 경찰에 요청한 내용이 진범의 귀에 들어갔을 상황, 그로인해서 구치소 안에서 봉변을 당할지도 모를 경우다. 천분지 일의 확률이라고 해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행동인 거다.
“뇌피셜이 아니라는 게 보이잖습니까?”
“그렇긴 하다만……”
뜨거운 커피를 마신 탓에 뜨거워진 숨을 내쉬며 최재우는 그 사람을 생각했다. 피해자 장영의 할아버지 장철, 고개 숙이고 있던 그의 눈빛이다.
‘그 사람……’
어째서 그가 신경 쓰이는지 모르겠는데 자꾸만 거슬린다. 최재우 자신의 눈앞에 있는 확실한 진실, 그런걸 보고도 몰라본 것 같은 느낌이다.
“무슨 생각하세요?”
다른 생각하고 있단 걸 눈치 챈 홍인구가 물었다. 최재우는 얼버무렸다.
“어,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런 그렇고 유형사는?”
“막내야 열심히 달리고 있죠.”
“그래? 자식 기특하네.”
그 순간 아우디 승용차가 한 대 두 사람 앞을 지나갔다.
느리게 속도방지턱을 넘어 가는 승용차는 짙은 썬팅으로 안이 안 보인다.
그런데 꼭 두 사람을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최재우는 눈에 힘을 줬다.
‘저거……’
미간 좁힌 최재우가 노려보는 가운데 아우디 승용차는 주차장을 벗어났다. 시종 느릿한 움직임, 병원을 빠져나가서는 빠른 속도로 사라진다.
* * *
버스에서 내린 장철은 편의점 앞을 지나가다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술 생각이 나서다.
딸 장민지의 얼굴과 목소리가 어른거려 견디기 힘들다.
그렇지만 내쳐 걸어갔다. 술로 해결되는 일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복수.’
딸은 그걸 원한다.
그 말을 하며 던지는 눈빛은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이 나라의 법 따위에 기대하지 않는다고, 아버지가 해줘야 한다고, 할 수 있지 않냐고, 그래서 말한다고, 당연하지 않냐고, 외치고 있었다.
때르르릉.
옛날 전화벨 소리로 해놓은 폰이 울어댄다. 발신번호를 보니 병원이다.
“여보세요.”
-장민지씨 보호자시죠? 아버님이시죠? 아 저기 이게, 저, 따님이…… 창문 밖으로 투신하셨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아마 기어서……
장철은 되돌아 달렸다. 큰길가로 나가 도로를 막으며 택시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