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5화 (5/200)

황혼의 살인자. 5. 죽은 자의 말.

5. 죽은 자의 말.

‘불행은 겹으로 온다던가……’

영정사진 옆에 앉아 있는 장철을 바라보며 최재우는 한숨을 삼켰다. 어제 만난 사람을 이렇게, 문상을 하러 와 다시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전화를 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생긴 줄도 몰랐겠어.’

장철에게 명함을 주었기에, 직접 찾아갔었기에 이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대면하기 전에는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던 사람이다. 최재우 자신이란 걸 알기에 받았다. 그런데 하루 만에 이런 일이 생겨 버렸다.

“얼마나……”

비통하십니까 란 말을 장철에게 하려던 최재우는 그냥 삼켜버렸다.

슬픔과 고통을 누르고 가라앉은 장철의 눈을 본 순간 그랬다.

55세의 사내, 어린 손녀를 잃고 이젠 딸까지 보내버린 저 가슴을 어찌 헤아릴까.

영정을 향해 선 최재우는 향을 피워 올리고 절을 올렸다.

두 번 절하고 상주인 장철과 맞절을 했다.

역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대로 물러나와 상에 앉았다.

문상객이라곤 없는 휑한 공간, 최재우 자신뿐이다.

도우미 아줌마가 내준 육개장그릇에 수저를 박은 최재우는 장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허공을 보는 시선이 텅 비었다. 아니 딸의 얼굴을 본다.

웃고 있는 얼굴, 미인이라고 할 젊은 모습, 이제 스물다섯의 여자다.

‘살 목적을 잃은 거야.’

장철의 딸 장민지가 선택한 죽음이다. 딸이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는 것을 알고 나서 투신했다. 장철과의 짧은 통화내용을 더듬어 보면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한다. 사건의 자세한 내용보도가 알게 해줬다는 것이다.

‘이런 때는 정말……!’

언론의 순기능이니 역기능이니 하는 걸 떠나서 다 싫다. 한사람을 죽음으로 밀어버린 것이다. 물론 장민지가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고 해도, 그로인해서 자살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어도, 결국 그 결정을 하게 했다.

“씨발.”

숨결에 욕을 뱉은 최재우는 소주를 땄다. 도저히 술 한 잔 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어서다. 장민지의 영정사진 옆에 놓인 작은 사진 속 아이가 웃고 있어서다. 천사 같은 얼굴의 저 아이가 죽는 현장에 있었다.

‘윤완규 이 개새끼.’

최재우는 소주를 단숨에 넘겼다. 식도를 훑고 내려가는 술기운을 느끼며 새삼 분노를 곱씹었다. 그러노라는 데 유지건형사가 왔다. 머뭇거리며 장철 쪽을 보더니 이내 다가온다. 굳이 절하고 오라고 하지 않았다.

“팀장님 소주 드시네요.”

“그래, 너 왔잖아.”

“제가 대리기사도 아니고요.”

“그래서 뭐, 꼬우면 진급하던가.”

“저 말단꼬붕입니다.”

“그러니까.”

최재우는 소주잔을 내밀었고 유지건은 에휴 하며 잔을 채웠다. 최재우가 잔을 비우는 걸 침삼키며 바라보다가 물병을 따서 생수드링킹을 한다.

“윤완규 주변에서 뭐 나왔냐?”

티슈로 입가에 흐른 물을 닦으며 유지건은 보고를 시작했다.

“어제 보고 드린 내용에서 크게 차이 없습니다. 가봐야 할 놈들 리스트는 작성해놨고요, 자주 가는 장소들도 다 확인해놨습니다. 윤완규 새끼 돈으로 노는 놈이라선지 여자 연예인들하고 관계가 아주 화려합니다.”

“그래?”

부럽냐 하는 눈빛을 던진 최재우를 무시하고 유지건은 계속 말했다.

“대개 유명세를 타지 못하고 언저리에서 노는 B급 연예인들인데요. 그래도 뭐 연예인은 연예인이죠, 한두달 주기로 갈아탔습니다. 길게 가야 반년이고요. 여자들도 그런 윤완규의 행태를 알면서도 어울렸더군요.”

“일종의 스폰이다?”

“딱히 그거라고 보기엔 그렇지만, 뭐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같이 노는 거 반 스폰 반, 암튼 윤완규 같은 새끼하고 놀아난 것들이라 다 그렇습니다. 몇 명 만나봤는데 제대로 정신 박힌 것들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구멍 냄새만 맡고 다녔냐?”

“에이, 절 뭘로 보시고? 흠, 친하게 어울린 놈들이 혜성 연예학원 출신들이더라고요. 잘 나가는 스타들을 배출한 곳으로 소문이 나서 연예지망생들이 몰려드는 곳이죠. 윤완규도 거기에 발을 들였더랬습니다. 그렇게 초창기에 어울린 놈들이 있는데, 말 대로 초기에만 어울렸더군요.”

“그런데?”

또 소주를 비우는 최재우를 못마땅하게 본 유지건은 다시 입을 열었다.

“최근에 윤완규가 어울려 다닌 년놈이 누군지 아는 애들이 없었습니다. 그냥 소문으로는 1%클럽 따라지가 됐다고 하는 이야기만 들었답니다.”

“1%클럽?”

“아 왜 있잖습니까? 힘 있고 돈 많은 상위 1%로요?”

최재우는 감이 왔다. 상류층, 그 자식들이다. 그런 모임이란 거다.

“윤완규정도면 1% 아니야?”

“그렇죠, 윤진건설 사주 아들인데 당연히 1%죠. 그런데 그 클럽은 그중에서도 정말 정예라는 겁니다. 윤완규가 따라지로 따라다닐 만큼요.”

“그래?”

“그것들 실체가 뭔지 알아볼 참입니다.”

결론을 말한 유지건은 새삼스레 장례식장을 돌아봤다.

“그런데 문상객이 아무도 없네요.”

“음.”

다시 소주를 채우는 최재우를 말리려다가 유지건은 조심스레 말한다.

“일가친척도 없는 모양입니다.”

처음처럼 소주를 단숨에 넘긴 최재우는 새삼 장철을 돌아봤다.

여전히 같은 모습, 저 사내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유지건의 말대로 친척조차 없는 처지다.

오직 딸과 손녀만이 가족이던 사람, 그 소중함을 잃었다.

“살아온 세월이 복잡하고 고단한 사람인 모양이네요.”

작은 소리로 입을 연 유지건은 제 나름의 짐작을 이야기 한다.

“윌슨병에 걸린 환자가 침대를 벗어나 창문을 기어서 넘었다는 게 놀라운 일이라고 합니다. 정말로 초인적인 의지가 발현되지 않고는 힘들다고요. 어린 딸을 잃은 엄마의 비통함이 그렇게 만든 거라고 하더군요.”

누가? 병원의사가? 간호사가? 라고 되물으려던 최재우는 전화를 받았다.

“어, 뭐 좀 건졌나?”

전화를 받자마자 결과부터 묻자 상대방인 송치호형사는 불퉁스럽게 대답한다.

-그렇게 쉽겠습니까? 사건당일 윤완규새끼 별장 배후도로로 이동한 차량들 전부 추적한 결과, 윤완규가 별장에 도착한 정오 12이후로 주목해야 할 만한 차량리스트를 작성했습니다. 그중에 차적 조회가 안 되는 차량이 다섯 대가 있습니다. 이차들은 발로 훑어야 할 걸로 판단합니다.

“그래, 수고했다.”

-그런데 홍형사는 병원에 박혀 있는 겁니까? 거긴 경비인원들이 있을 텐데요?

와서 좀 도와주지 하는 송형사의 불만, 곁에서 듣던 유형사가 끼어든다.

“A병원 커피전문점 커피 맛이 기가 막히답니다!”

제법 큰소리였기에 최재우는 바로 눈을 부라렸고 유지건은 어깨를 움츠렸다. 그리고 그 소리에 장철이 어깨를 움찔한 것은 정말로 순간이었다.

* * *

떠나가는 버스를 돌아본 장철은 배낭의 무게를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저 앞에 납골당이 보인다.

하은주, 그녀가 있는 곳이다.

이제 그녀 곁에 딸과 손녀의 유골함을 안치할 것이다.

내딛는 걸음이 천근만근 같다.

모르고 살았다.

하은주 그녀가 이곳에 모셔져 있다는 걸 딸과 손녀를 만나고서야 알았다.

매년 기일이면 이곳에 셋이 왔다.

이젠 혼자가 됐다.

납골당 관리소를 찾아 들어간 최재우는 예약한 절차대로 진행했다. 하은주의 옆에 딸 장민지와 손녀 장영을 안치했다. 그리고 차례로 말했다.

“은주야, 미안하다.”

하은주, 최재우 자신이 떠나간 뒤에 홀로 딸을 낳아 키운 여자.

그 마음과 결정이 어떠했는지 모른다.

다만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다가 간 것만은 안다.

그래서 딸과 손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결국 안됐다.

“영아, 할아버지가 정말 미안해.”

손녀 장영의 작은 사진을 보던 장철은 눈을 감았다. 그 눈을 다시 떠 딸 장민지의 사진을, 그것이 새겨진 유골호를 봤다. 그리고 맹세했다.

“복수해 주마.”

장철의 맹세는 납골당 안을 맴돌며 메아리 쳤다. 죽은 자들의 영혼이 호응하는 것인지 납골당 자체가 그러한 것인지, 싸늘한 공기가 들어찼다. 밖은 춘사월의 화창한 해가 짱짱하건만 내부는 냉장고처럼 차갑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하염없이 시선을 던지고 서 있던 장철은 돌아섰다.

아름다운추모원이란 이름의 납골당, 그 앞의 외길로 올 버스를 기다렸다.

마침내 도착한 버스에 올라 춘천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남춘천역이 보이지만 장철은 왔던 대로 시외버스에 올랐다. 신명시시외버스터미널까지 직행이다. 뒷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며 계획을 세웠다.

‘윤완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손녀 장영을 죽게 한 놈, 아니 그렇게 보이는 놈이다. 그놈이 주장했다는 대로 진범이 따로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정말 그렇다면 그놈을 찾는 거다. 이 고통을 백배 천배로 돌려주는 거다.

‘씨를 말려주마……!’

부드득 하는 소리가 입에서 나온 순간 장철은 현실로 돌아왔다. 흥분과 분노를 밀어내고 냉정을 품었다. 돌아가서 할 일의 순서를 그렸다.

‘A병원.’

어제 형사들이 하는 이야기 속에서 알았다.

윤완규는 A병원에 있는 거다.

처음 최재우팀장과 대면했을 당시 병원에 있다는 건 알았지만 구체적인 장소는 몰랐다. 상황을 보도한 뉴스에서도 병원이름은 안 나왔다.

‘예전처럼.’

해내야 한다.

이제 나이가 쉰다섯이니 젊을 때처럼 할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딸 장민지에게 맹세했다.

복수해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건 딸에게 한 약속이 아니다. 장철 자신에게 한 약속이고 맹세다.

‘살을 가르고 뼈를 깎아주마……!’

맹세에 맹세를 거듭한 장철은 딸 장민지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복수해 달라고 하던 얼굴, 딸의 눈에는 믿음이 있었다.

아버지가 해줄 거라는, 아버지니까 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딸은, 장철 자신을 알고 있었다.

‘들었겠지.’

엄마 하은주에게서 들은 거다.

생명을 준 아버지가 뭘 하던 인간인지 들었다.

인간백정, 참혹한 짓으로 피 묻은 돈을 벌던, 그런 자인 걸 알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는 정도만 알았지 구체적인 건 하은주도 몰랐다.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던 네가……’

딸 장민지는 장철 자신을 찾아왔다. 어디서 어떻게 사는 지도 몰랐던 아버지를 찾아온 거다. 엄마 하은주의 죽음이후 혼자라는 두려움에 사무치던 딸,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았고 결국 버려졌다. 그렇게 찾아왔다.

‘조웅, 처음엔 네게 화가 났지.’

유일한 지인 조웅.

그가 장철 자신의 연락처를, 아니 살고 있는 곳을 알려줬다.

아직도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는 그와 하은주가 만난 건 운명일 터다.

청소 일을 알선 받던 하은주가 어느 날 문득 물었고 대답했던 거다.

죽음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조웅에게 물어볼 당시엔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태였을 게 분명하다.

그 죽음의 병이, 유방암이 딸 장민지도 앗아갔다.

딸은 더 고통스러웠다. 윌슨병이라는 흉악한 병까지 앓았으니까.

“미안하다……”

고개 숙인 장철은 버스의 흔들림에 몸을 흔들었다.

* * *

저절로 힘이 들어가는 어금니에서 힘을 풀며 최재우는 다시 확인했다.

‘분명히 이 차야.’

다섯 대의 무적차량, 공교롭게도 사건 당일인 3월 24일 윤완규의 별장 배후도로를 지나간 차량들 속에 대포차량이 다섯 대나 있었다. 그중 네 대는 상관없는 걸로 파악했지만 이 차 한 대가 문제다. 아우디 승용차다.

‘탁송했다……’

대포차 판매업자놈을 찾아 추궁한 결과 구매자는 보지 못했다는 거다. 차량 판매대금을 원하는 장소로 가져오면 현금으로 지불한다는 거래였단 거다. 믿을 수 있게 계좌에 일부를 입금했단 거다. 물론 차명계좌다.

‘차명통장에서 대금 일부를 송금하고, 탁송 받을 장소엔 현금이 든 가방을 남겨뒀다……’

대포차판매업자 측에선 손해 볼게 없는 장사였다. 원하는 장소인 도봉산역 환승주차장에 차를 두고 돈가방을 챙겨 돌아온 거다. 주차장 CCTV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나타나 차를 몰고 나갔다.

‘곧장 신명시로 이동해서 윤완규 별장 쪽으로 달려간 건데……’

이후 행적을 못 잡고 있다. 해당 아우디 승용차는 신명시에서 서울로 이어진 자동차전용도로를 타고 이동, 동부간선도로 확장 공사현장에 차를 버리고 사라졌다. CCTV가 없는 구간에서 차를 갈아타고 도주한 거다.

‘치밀하고 단호해.’

일을 꾸미고 진행한 흐름을 더듬으며 최재우는 간단치 않은 상대임을 직감했다. 윤완규의 말이 진실이라는 확신, 진범은 대단한 인물인 거다.

‘1%클럽.’

어금니에 그 이름을 씹던 최재우는 문득 한 가지를 떠올렸다.

‘아우디.’

그제 저녁 병원에서 홍형사와 벤치에 앉았을 때 본 것, 아우디승용차다. 대포차와 같은 차종이다. 이건 우연이 맞을 테지만 예감이 뒤틀린다.

‘응?’

폰의 몸부림에 현실로 돌아온 최재우는 전화를 받고 눈을 치떴다.

-윤완규가 사라졌습니다!

홍인구형사의 외침 같은 목소리에 반응한 최재우는 바로 움직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