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7화 (7/200)

황혼의 살인자. 7. 그 남자.

7. 그 남자.

전화를 안 받는다.

계속해서 전화하고 있지만 신호만 갈뿐이다.

서에 연락해서 찾아가보도록 조치했지만 예감은 확신으로 굳어지고 있다.

장철.

그 남자는 집에 없다.

폰은 집에 있지만 그 젊은 할아버지는 없는 거다.

‘아니기를……!’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최재우는 그날을 떠올렸다. 교통사고로 희생된 아이, 장영을 처음 본 마트에서의 일이다. 깜찍하게 귀여운 그 아이를 부럽게 본 얼마 후 사건이 있었다. 깍두기 놈들하고 시비가 생긴 거다.

‘그런 일이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장철, 그 남자는 그날 멱살 잡은 깍두기를 제압했다.

폭력에 당하려는 순간 상대의 멱을 쳤다.

그게 너무 빠르고 의외의 상황이어서 제대로 못 봤다.

그런데 결과가 확실했다. 깍두기 놈을 주저앉게 만든 것이다.

‘보통사람은 그렇게 못해.’

그런 결과를 만들었던 사람을, 그런 일을 잊고 있었다. 장영, 그 천사 같은 아이의 비통한 사고와, 그 엄마 장민지의 자살, 그 가족의 불행이 눈을 가리고 있었다. 이런 일로 이어질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

‘장철.’

젊은 할아버지의 이름을 속으로 되뇌던 최재우는 폰의 울림이 반응했다.

“어떻게 됐어?”

-집에 아무도 없습니다. 앞집의 이야기로는 집에서 나가는 기척이 없었답니다. 현재 신왕역 공용주차장 cctv하고 빌라인근 영상 확보중입니다.

“알았다.”

무거운 숨으로 통화를 끝낸 최재우는 예상이 현실로 이뤄지는 것에 다시 한숨을 쉬었다. 서에 연락해서 확인한 장철의 집은 역시다. 그는 집을 나갔다.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가 차를 훔친 자다.

‘우리가 말해준 거야.’

윤완규가 있는 곳, A병원에 대해서 장철에게 알려준 것이다. 자살 기도로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말했고 장례식장에선 병원이름도 언급했다. 그게 유형사의 단순한 실수였다고 해도, 장철에겐 내비가 된 거다.

‘정말로 그일까?’

아직은 확실한 것이 아니다.

윤완규가 두려워하던 진범 쪽의 소행일 가능성이 더 크다.

사건의 전후흐름이 그렇고 그게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구형 SM5가 신명시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안 순간 장철을 떠올렸다.

‘뭔지 모르게 위태롭던 느낌이……’

장철, 그 남자를 만나고 나서부터, 아니 대면하면서부터 가진 기묘한 느낌이었다. 감춰진 칼날을 더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모호하지만 분명한 예감 같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집의 슬픔과 고통에 흘려버렸다.

“팀장님, 고덕동 재건축아파트단지에서 종적을 찾았다고 합니다!”

흥분한 얼굴로 다가온 유지건은 빠르게 다음 내용을 말했다.

“공사장 펜스 옆에 세워둔 공사관계자의 테라칸 차량을 훔쳐 타고 이동했습니다, 현재 이동경로를 추적중입니다. 한강변을 따라 이동 중인 걸로……”

“가자.”

유지건의 말을 더 들을 것 없단 듯이 최재우는 움직였다. 우선은 테라칸이 이동한 경로를 따라 추적한다는 거다. 정확한 위치는 계속 받으면서.

최재우와 유지건과 송치호를 태운 SUV는 한강둔치 사건 현장을 빠져나갔다.

* * *

서울 양양고속도로 미사IC 아래 외길에서 멈췄던 장철은 다시 차를 달렸다.

기억 속에 있던 미사리가 아니다. 아파트 숲의 신도시로 변했다.

강변 쪽도 예전 같은 상황이 아니다. 차를 내쳐 몰아 신장에 다다랐다.

덕풍교 아래 강변길로 들어선 장철은 강을 향해 계속 차를 몰았다.

도시의 불빛을 뒤로 두고 어둠을 향해 나아갔다.

강 앞에 이르러 더 이상 차가 움직일 수 없는 위치에서 멈췄다.

차문을 열고 온 쪽을 돌아봤다.

테마파크와 대형백화점과 쇼핑몰의 화려한 빛은 유혹처럼 환하다.

그러나 이곳 강변까지는 오지 않는다.

장철 자신이 발을 딛고 선 이곳엔 못 온다.

이제부터 이곳은 빛을 배척하는 어둠의 공간, 지옥이 될 것이다.

장철은 뒷문을 열었다.

결박된 채 처박혀 있던 윤완규가 울부짖는다.

입을 막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울음,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 소리를 귀에 걸고 장철은 놈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확 당겼다.

내지 못하는 비명을 내며 윤완규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놈의 얼굴을 보며 장철은 손을 털었다. 장갑 낀 손에서 머리카락이 한웅큼 떨어진다.

“뭐가 있나 보자.”

트렁크 바닥을 들어 올린 장철은 공구상자를 찾았다. 공사관계자 차량다운 갖춤이다. 트렁크 바닥에 수납공간을 만들어 뒀다. 이런 걸 제작해 설치해주는 업체들이 있다는 걸 안다. 여러 가지 공구들이 화려하다.

“이것부터 하자.”

공사용 커터 칼을 잡은 장철은 드르륵 하고 칼날을 밀어낸 후 조였다. 문구용 커터 칼과 비교할 수 없게 크고 위험해 보이는 칼날은 무섭다.

“읍! 읍!”

발버둥치는 윤완규, 결박된 두발을 밀어내는 놈에게 장철은 다가갔다. 커터 칼을 그대로 휘둘렀다. 윤완규는 경직했다. 그런데 다리가 풀렸다.

“도망갈 수 있으면 가봐라.”

나직하게 말하며 장철은 윤완규의 몸통 결박도 끊었다. 그렇게 일어서 돌아섰다. 열어놓았던 차문도 다 닫았다. 그 순간 윤완규는 일어나 달렸다. 아직 입에 물린 재갈과 테입은 제거할생각도 못하고 미친듯 달린다.

차가운 눈으로 윤완규를 보던 장철은 운전석에 올랐다.

차를 돌려 악셀을 있는 대로 밟았다.

맹수 같은 소리를 내는 테라칸으로 윤완규를 쫓았다.

채 오십미터도 못 간 윤완규, 놈이 공포로 돌아보는 순간 받아버렸다.

휙 떠올랐다가 떨어진 윤완규를 보며 장철은 차를 멈췄다.

라이트를 끄고 시동까지 껐다.

강변의 어둠 속에 다른 변화가 있는지 주변을 살폈다.

차문을 열고 나간 장철은 윤완규에게 다가갔다.

버르적거리는 놈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왔다.

차 뒤쪽에 놈을 던져 놓고 뒷문을 다시 열었다.

“이번엔 이게 좋겠다.”

손도끼, 자루가 짧은 그것을 잡고 장철은 윤완규 앞에 앉았다. 팔다리가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어진 놈, 척추를 무릎으로 맞은 충격도 밀어내고 살기 위해 도망치던 모습은 이제 없다. 그 얼굴에 손도끼날을 댔다.

“장영이다.”

막힌 입 사이로 피를 울컥대는 윤완규, 놈의 눈을 응시하고 장철은 다시 말했다.

“네가 차로 받아버린 아이, 내 손녀의 이름이 장영이다.”

고통으로 인한 혼미함과 의식의 혼재 속에서 윤완규는 깨달았다.

눈앞의 이 남자가 누군지다.

그날 람보르기니 우루스로 받아버린 아이 가족이다.

손녀라고 했으니 할아버지다.

아이에게 달려오던 걸 본 것도 같다.

“그 아이는 내 목숨이었다.”

장철은 도끼날을 윤완규의 얼굴에 대고 그었다. 테잎과 재갈을 도끼날로 끊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도끼날은 칼처럼 되지 않는다. 살이 찢어진다.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었지.”

무감정한 목소리를 흘려내며 장철은 도끼를 계속 문질렀다. 윤완규의 뺨은 피범벅으로 변해갔다. 테잎과 재갈과 볼살이 같이 찢어져 나갔다.

윤완규가 고통으로 부들거리는 걸 보며 장철은 테잎을 확 잡아 뜯었다. 동시에 옆으로 몸을 피했다. 윤완규는 피를 토하며 기침을 터트렸다.

입으로 폭죽 터트리듯 피와 기침을 터트린 윤완규는 애원했다.

“제발……”

살려달라는 윤완규, 몸도 못 가누는 그의 턱을 장철은 움켜잡았다.

“네가 아니라고 했다면서?”

윤완규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분명히 보며 장철은 다시 물었다.

“누구냐?”

공포와 고통 속에서 윤완규는 깨달았다. 살지도 모를 길을 붙잡았다.

“마, 말하면……”

“살려준다.”

즉각적으로 나온 명료한 대답.

“데, 데이비드 한……”

장철은 미간을 확 찌푸리듯 좁혔고 윤완규는 다시 말했다.

“온나라그룹 아들…… 한진수…… 그 새끼가 운전했습니다.”

장철은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숨도 쉬지 않았다. 그래서 윤완규의 불안과 공포가 더 커질 때 반응했다. 후 하고 긴 숨을 토해냈다.

“그래.”

장철은 일어섰다. 윤완규는 간절한 눈길을 올렸다.

“사, 살려주시는 거지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윤완규를 내려다보던 장철은 대답했다.

“아니.”

윤완규의 눈이 절망으로 물드는 걸 확인하며 장철은 도끼를 내리찍었다.

* * *

참혹하다. 끔찍하다.

테라칸이 멈춰서 가리고 있는 현장은 도살장과 다를 바 없다.

윤완규는 죽었다.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손도끼에 찍혔다.

‘무슨 짓을……!’

충격으로 부들거리며 최재우는 윤완규의 주검을 봤다. 팔다리가 생선토막처럼 잘려나갔다. 복부가 열려 해부실의 개구리처럼 최후를 맞았다.

“팀장님, 강을 건너간 것 같습니다!”

역시 흥분과 충격에 물든 유지건의 목소리에 반응하며 최재우는 강변으로 이동했다.

오른편으로 팔당대교가 보인다.

강 건너는 팔당리, 예봉산과 철문봉의 산그림자가 어둠 속에 드리웠다.

장철은 저곳으로 갔다.

“필요한 조치는 취했습니다만……”

곁으로 다가온 송치호의 얼굴을 최재우는 돌아봤다. 장철이 도주한 경로를 파악하고 체포하기 위한 조치들, 하고 있다는 거다. 그렇지만 놀랍고 충격적인 마음을 다스리기 어려운 거다. 예상치 못한 일이어서다.

“장철 이사람 대체 뭐하던 사람일까요?”

최재우 역시 그게 의문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일을 벌이는 건지, 벌일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범인은 분명 장철이다.

집에서 사라진 그는 신왕역에서 차를 훔쳐 타고 A병원으로 이동, 윤완규를 잡았다.

‘여기서 짐승을 해체하듯이 죽여 버렸어……!’

윤완규를 고통스럽게 죽여 버린 이 결과는 절대 보통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다. 과정 전체가 그렇다. 윤완규를 빼돌리려던 놈들, 윤종대 회장이 보낸 네 놈을 박살냈다. 죽은 놈은 없지만 네 놈 모두 위중한 상태다.

‘깍두기 놈의 멱을 친 것처럼. 아니 그건 아주 간단한 한수였을 뿐인 거지.’

일련의 모든 과정이 그가 보통사람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차를 훔쳐 이동한 것, 폭력에 능한 네놈을 제압한 것, 윤완규를 죽이고 도주한 결과까지, 장철은 마음먹고 계획한대로 해냈다. 그래서 믿기가 어렵다.

‘지금이라도 짠하고 집에 나타나면……’

이 결과와 상관없이, 어디 다른 볼일이 있어 집근처에 있다가 돌아온 거라면 장철은 아닌 거다. 그러한 것이 정상적이다. 그러하길 바란다.

‘그럴 일은 없겠지……!’

최재우는 절망이 든 한숨을 흘려냈다.

그인 거다, 장철 그 사람인 거다. 그라는 확증은 없지만 그가 맞다.

그는 이제 복수를 선택한 것이다.

손녀의 죽음 뒤로 이어진 딸의 죽음까지 짊어졌다.

그에겐 복수뿐인 거다.

“신왕역 공용주차장 영상이 왔습니다.”

송치호가 폰을 내민다.

미간 좁힌 유지건처럼 최재우는 폰 영상을 들여다봤다.

후드를 쓴 보통체구의 남자, 얼굴은 안 보이지만 장철이 분명하다.

차에 붙자마자 차문을 열고 들어간다. 바로 시동을 걸고 출발한다.

“전문갑니다.”

침 삼키는 목소리로 유지건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전문가.

그 단어에 든 의미를 송치호는 공감했고 최재우는 부정하지 못했다.

누가 봐도 장철은 그런 자로 여겨진다.

윤완규를 해치운 이결과가 모든 걸 말해준다.

“장철에 대해 알아낼 수 있는 걸 다 알아내.”

이 악문 목소리로 지시를 내린 최재우는 뒤편의 소란스러움에 돌아섰다.

“각다귀들 떴네요.”

유지건이 각다귀라고 칭하는 이들, 기자들이 귀신처럼 달려왔다. A병원에 진치고 있던 기자들이 있었을 것은 너무 당연한 일, 사건을 인지하자마자 레이더를 총동원해 움직인 거다. 사건을 덮는 일은 이제 글렀다.

“기자들 접근 못하게 해!”

유지건이 경찰관들에게 소리쳤고 송치호는 기자들에게 가며 외쳤다.

“사건 현장입니다! 오염시키지 말고 물러나세요!”

최재우는 기자들을 헤치며 차로 돌아갔다. 질문이 칼날처럼 쑤셔온다.

“범인은 특정하셨습니까!”

“윤완규가 경찰에 보호요청을 했다던데요!”

“3월 24일 교통사고의 운전자가 따로 있다던데 사실입니까!”

다 알고 있는 기자들에게 새삼 감탄하며 최재우 차문을 닫고 출발했다. 강변을 따라 달리며 장철을 생각했다. 강을 헤엄쳐 도주한 그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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