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8화 (8/200)

황혼의 살인자. 8. 죽음의 의미.

8. 죽음의 의미.

시체보관실 같은 곳에 들어오게 될 줄은 몰랐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다.

주변의 누군가가 죽는 일, 그것도 혈육이 죽는 일이다.

그런데 생겼다.

그 누구도 아닌 아들이 죽었다.

‘어째서……!’

부들거리는 손으로 윤종대는 아들 윤완규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차갑게 죽음에 먹힌 감각이 손을 통해 들어온다.

그렇다, 아들은 죽은 것이다.

살해당했다. 윤진건설 윤종대회장의 아들이 다른 자의 손에 죽은 거다.

“완규야……”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윤종대는 시트를 마저 걷었다. 정밀 감식을 위해 아직 봉합해 놓지 않은 아들의 처참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개구리처럼 열린 배와 가슴, 끊어져 나간 팔다리가 무슨 마네킨인 것만 같다.

“이!”

슬픔에 이어진 격노를 참지 못하고 윤종대는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 소리와 충격을 인지한 검안관계자들이 바로 들어왔다. 유족에 대한 배려에다 윤진건설의 돈이 만든 자리, 그렇지만 더는 곤란하다는 얼굴을 한다.

“회장님, 이러시면 정말로 곤란합니다.”

“일단은 나가시죠. 어서요.”

수사관계자들이나 감식팀이 오기 전에 자리를 피하자는 종용, 윤종대는 더 화를 내려했지만 비서 오동진의 적극적인 만류와 제지로 움직였다.

“냉정하셔야 합니다.”

단호하고 비정한 힘이 느껴지는 오동진의 목소리에 윤종대는 현실로 돌아왔다. 비서라는 직함으로 곁에 있는 이 사내는 정말 강인한 사내다. 친형 오동철이 경영하는 현진써큐리티는 늘 골칫덩이를 해결해준 곳이다.

“잡을 겁니다. 반드시 그렇게 합니다.”

오동진의 강한 눈동자와 음성에 고개 끄덕인 윤종대는 시체실을 나갔다.

복도의 차가운 냉기를 들이마시며 외부로까지 나갔다.

경찰병원의 장례식장 외관이 눈에 들어온다.

이젠 아들의 장례식을 치러야 할 처지다.

“빌어먹을 슈퍼카를 사 주는 게 아니었어.”

넋두리처럼 흘려낸 윤종대회장의 말, 그 의미를 오동진은 알았다.

윤완규가 한 달을 졸라대서 사준 것이 그거다.

람보르기니 우르스, 그 차를 타고 신나서 놀러 돌아다니던 윤완규는 사고를 쳤다.

그 결과가 죽음이다.

“제가 하지도 않은 일로 죽어 버렸어……”

이어 나온 윤종대회장의 비탄, 맞는 말이다.

윤완규는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3월 24일 신명시에서 아이를 치어 죽인 자는 따로 있다.

데이비드 한, 온나라그룹의 외아들 한진수다. 그놈이 윤완규에게 덮어씌웠다.

“그게 억울해서, 이대로 당할 수는 없겠다고 판단해서……!”

윤종대회장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였다. 우는 게 아니다. 치밀어 오르는 격노와 비통한 감정을 가눌 수가 없어서다. 현실을 직시해서다.

“오비서.”

흔들리던 어깨를 고정한 윤종대는 오동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내가, 우리 윤진건설이, 온나라그룹과 싸운다면 이길 수 있을까?”

가망 없는 일이다. 온나라그룹은 대한민국 십대재벌 중의 한곳이다. 계열사의 수와 규모를 비교해도 황새와 참새의 차이다. 절대 이길 수 없다.

‘거인.’

그래서다.

그렇기 때문에 윤완규는 한진수의 요구를, 아니 명령을 거부하지 못한 거다.

애초에 그런 놈과는 어울리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황태자클럽에 기웃거렸다.

한진수의 비위를 맞추고 그 무리에 끼었다.

“못 이깁니다.”

머뭇거리지 않고 오동진은 대답했다. 너무나 단호하며 추호의 주저함도 없는 대답. 윤종대회장의 눈이 암울하게 변하는 걸 보면서 뒷말을 냈다.

“온나라 그룹의 힘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말해놓고 세삼 그들의 힘을 절감해 오동진은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 병원 마당에 깔린 보도블럭, 갈라진 틈과 그사이에 자란 풀을 보며 말했다.

“정관계와 재계 언론계, 시민사회단체에까지 미치는 그들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지금의 윤진건설로서는 계란으로 바위치깁니다.”

그런데 하려고 했다.

온나라그룹의 외아들 한진수가 덮어씌운 진실을 폭로하려 했다.

윤완규가 생각 없이 저질렀다.

그게 너무 위험해 일을 꾸며 병원으로 옮겼더니 이렇게 됐다.

생각지도 못한 자가 끼어들었다.

‘사고로 죽은 여자아이의 할아버지라니. 이게 무슨 코미디도 아니고.’

새삼 황당한 마음이 들어 오동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무슨 의미로 받아들인 건지 윤종대회장은 서늘한 눈빛을 낸다. 다시 물음도 낸다.

“현진써큐리티는 날 선택한 걸 후회하나?”

선택, 그 의미와 시작의 기억을 오동진은 더듬었다.

정확히 십년 전이다.

형님 오동철과 함께 좌충우돌 하던 시절, 철거용역 일을 맡으면서 달라졌다. 무엇이 똥이고 된장인지, 어떻게 해야 돈이 되는지 깨달았다.

‘당신은 만나고서.’

눈앞의 인물 윤종대회장과 손을 잡으면서부터다.

그때부터 조직폭력배의 껍질을 벗고 진짜 사업가로서 변모했다.

미친 듯이 일했다. 언제나 윤진건설과 함께였다.

그렇게 그리는 그림은 크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회장님은 후회하십니까?”

오동진이 던진 되물음을 윤종대는 말없이 곱씹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아니. 한 번도 그런 적 없지.”

“마찬가집니다.”

사이를 두고 오동진은 뒷말을 던졌다.

“형님과 저는 회장님과 함께 일하기로 결정한 이후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다시 말없는 시선만 던지던 윤종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군, 이해해 주게.”

이해합니다,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압니다, 당신 아들이 죽었으니까요. 라는 말은 눈빛으로만 건네고 오동진은 현실을 차분히 말했다.

“장철이라는 남잡니다.”

살인자의 이름을 들은 윤종대는 서늘히 반응했고 오동진은 목소릴 이어냈다.

“사고로 죽은 여자아이의 할아버집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황당한 충격을 새삼 삭이는 윤종대와 마찬가지로 오동진도 숨을 들이켰다. 결과가 이러니까 받아들이는 것이지 정말로 믿기 힘든 일인 거다.

“쉰다섯, 만으로 쉰셋입니다.”

“김변호사를 통해 대강은 들어 알고 있어, 딸하고 셋이서 살았다던데?”

그 딸이 병에 걸려 병원에 있던 상태였고 자살을 했다.

그래서다, 장철이란 남자가 폭주한 이유다.

그는 딸과 손녀를 한꺼번에 잃은 남자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엄청난 일을 저질렀습니다. 형님이 보낸 직원들 넷을 박살내버린 실력잡니다. 이자에 대해 우선 알아보겠습니다.”

간명하게 상황을 정리한 오동진에게 윤종대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그놈을 잡아. 경찰이 잡기 전에 먼저 잡아.”

아버지의 분노, 새끼를 잃고 울부짖는 맹수의 포효다. 오동진은 대답했다.

“그렇게 할 겁니다.”

* * *

젖은 옷을 벗은 장철은 소형 백팩 안의 물건을 꺼냈다. 납작한 형태의 백팩, 집에서 나설 때부터 윈드점퍼 안쪽에 착용했었다. 비닐로 꽁꽁 싼 경량패딩과 스타킹처럼 얇은 내복 등, 옷가지와 경등산화를 확인했다.

‘완벽해.’

강을 헤엄쳐 건너는 동안 물이 스며들었지만 백팩 자체가 방수가 되는 물건이라 이상 없다. 신발 속에 넣어뒀던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자정이 넘어갔다. 여기서 밤을 보낼 순 없다. 곧 경찰이 닥칠 거다.

‘지나온 곳이 팔당 2리.’

강에서 나와 지나쳐온 마을이 그렇다. 중앙선 팔당역을 품은 마을이다. 예전엔 그저 시골마을이었을 텐데, 지금은 돈 많은 사람들의 별장과 전원주택과 각종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선 곳이다. cctv는 그만큼 많다.

‘피한다고 피했지만.’

찌푸린 미간으로 산 아래 마을 쪽을 내려다본 장철은 다시 산을 올려다봤다.

‘임도가 예봉산 정상까지 이어져 있어.’

폰 지도로 위치를 확인한 장철은 서둘러 땅을 팠다. 벗어놓은 옷과 신발을 묻고 얇은 비니모자와 마스크를 새로 썼다. 백팩도 다시 등에 멨다.

‘그럴듯해 보여야 할 텐데.’

4월이지만 아직 추운 밤 산의 날씨, 그러한데도 등산을 하는 모양새다. 말아서 백팩에 넣을 때 한줌이던 경량패딩과 바람막이는 한기를 잘 막아준다. 일제 내복보다 기능이 낫다는 국산 경량내복은 정말 제대로다.

‘임도 덕분에 발자국 걱정은 덜었군.’

새삼 발을 응시한 장철은 가벼움에 감탄했다. 유명연예인이 tv에서 선전하던 브랜드의 것이다. 기존에 알던 등산화와는 다른, 그냥 운동화 같다.

이걸 사 놓은 이유는 영이의 어린이집 봄맞이 체육대회를 위해서였다.

코로나시국의 금제가 풀려가던 터, 영이는 체육대회를 기다렸다. 가을엔 소풍도 갈수 있을 거라면서 좋아했다. 그렇지만 다 물거품이 됐다.

‘가 보자.’

감탄을 밀어내고 장철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머물렀던 자리의 흔적이 완벽한지 다시 살피고 가는 걸 잊지 않았다. 산 정상까지 이어진 임도는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다. 달빛을 받아 하얀 길은 신비한 느낌이다.

‘밤중에 이런 길은 동화 속 길 같구나, 영이가 봤으면 좋아했을 텐데.’

임도를 올라가던 장철은 움직임을 멈췄다.

손녀의 얼굴을 떠올리자 숨이 가빠온다.

웃으며 품에 안기던 작은 영혼, 그 아이를 이젠 볼 수가 없다.

딸 민지는 그 아이 곁으로 갔다.

복수해달라고 부탁하고 떠났다.

“영아, 민지야.”

손녀와 딸의 이름을 나직하게 부른 장철은 밤하늘을, 달을 향해 말했다.

“보고 있어라. 우리가 받은 대로, 백배 천배로 돌려줄 거다.”

멈췄던 걸음을 다시 내며 장철은 윤완규의 자백을 곱씹었다.

‘한진수.’

진짜 운전자의 이름을 놈은 말했다.

데이비드 한이란 다른 이름을 가진 놈이다.

놈이 누군지 안다.

온나라그룹의 외아들이다. 아마 미국국적자일 거다.

윤완규처럼 이십대 중후반,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알 수 있다.

‘필요한 정보들은 온라인상에 다 나와 있어.’

물론 더 정밀한 정보들은 수고를 들여 알아내야 한다.

어쨌든 그놈이다.

온나라그룹은 십대재벌 중 한곳이다.

후계자가 되기 위해 국적정리가 필요하단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놈이 영이를 해친 진범이다.

‘기다려라.’

예봉산 정상을 향해 장철은 힘차게 걸었다. 도중에 만나게 될지도 모를 등산객이나 산과 관련된 기관의 사람들을 주의하면서 밤산을 올라갔다.

* * *

“귀신이 곡할 노릇이구만.”

최재우는 탄식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장철의 흔적이 묘연해서다.

팔당대교 아래쪽으로 한강을 헤엄쳐 건넌 게 분명한데, 넘어와선 종적이 없다. 팔당주유소 옆 굴다리 cctv에 포착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중앙선 철로도 건너갔어.’

확신을 품으며 최재우는 폰 지도를 들여다봤다.

이 지역을 벗어나자면 가장 좋은 건 차를 이용하는 거다.

신왕역 공용주차장에서처럼 하는 거다.

그런데 차량도난 신고 같은 건 없다. 관할지역 경찰들이 돌고 있다.

‘중앙선 전철을 타고 도주하는 것이 그다음. 그렇지만 전철은 끊겼고.’

그 방법은 행적을 고스란히 노출시킨다는 단점이 있다.

‘이 방법은 애초에 고려대상이 아닐 거야.’

장철이란 사내가 이젠 보통남자가 아니란 걸 아는 터다. 전문가라는 말이 나온 존재, 만들어낸 결과가 그렇다. 그런 자가 택할 방법이 아니다.

‘그럼 남은 방법은?’

지도에 보이는 산을 최재우는 유심히 응시했다. 그리곤 고개를 저었다.

‘설마.’

산을 타고 이동하는 방법이다.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무식한 방법을 택할 리가 없다.

4월이 됐다고 하지만 밤의 산은 겨울과 같다.

그는 젖어 있다. 지도를 보면 산은 계속 이어진다.

‘산에서 밤을 보내고 운길산역 쪽, 양수리 방향으로 빠지려는 건가?’

좁힌 미간을 꿈틀거리며 생각을 거듭하던 최재우는 전화를 받았다. 뒤따라온 송치호와 유지건이다. 팔당 1리부터 팔당 2리까지 훑은 경과보고다.

-흔적이 없습니다. 다른 방향으로 간 건 아닐까요?

-마찬가집니다. 관할지역 경찰들이 가가호호 탐문중입니다만.

“주유소 옆 굴다리에 찍힌 건 귀신이냐? 물에 젖은 몰골로 이동한 걸 너희도 봤잖아? 분명히 마을 쪽으로 들어갔다. 산일 가능성이 크다.”

-산이요?

-어, 산까지 뒤지는 겁니까?

“잔소리들 말고 지역경찰들에게 협조요청이나 잘해. 난 상황조치보고 할 테니까.”

불퉁거리는 두 형사와의 삼자통화를 끝낸 최재우는 신명서의 과장에게 전화했다.

“과장님, 수색팀을 구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지역 관할서에 요청해 주십시오. 군부대의 협조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건 무리겠죠?”

과장은 예상치 못한 말을 한다.

-장철의 신원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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