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0화 (10/200)

황혼의 살인자. 10. 친구.

10. 친구.

우측으로 북한강의 흐름이 보인다. 새벽어둠 속에서도 유유하고 장중하다.

양수리를 지난 게 한참 전이니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처음 예봉산에서 동북방향으로 운길산을 넘었고 이젠 문안산을 넘는 거다.

‘아침이 되기 전에 화도방향으로.’

걸음에 더 힘을 주며 장철은 어둠 속의 산을 헤쳐 나갔다.

지나온 길을 되짚으면서다.

역 ‘ㄴ’ 자의 행보를 했다.

양수리방향으로 가다가 꺾은 건 마석역에서 전철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어느 정도 승부를 할 때다.

‘내 발자국은 찾을 수 있겠지.’

경찰의 추적을 비웃을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

장철 자신의 이동속도를 그들은 쫓아 올수 없다.

팔당2리에서 덕소 쪽으로 우회하는 화도의 창현리인근까지 정상적인 도로로 이동한다면, 도보로 5시간 정도가 걸린다.

장철 자신은 도로를 이용하지 않는다.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다.

산을 넘고 야지를 주파해야 하는 처지인 거다.

그렇게 이동하는 거리와 시간은 배는 걸린다. 그렇지만 밤이 가기 전에 벌써 목적지를 앞두고 있다.

‘경찰은 내가 어디로 가려는 건지 몰라.’

처음부터 의도하건 아니지만 양수리방향으로 이동했던 흔적을 쫓게 될 거다. 강물로 입수해 건너간 것처럼 꾸몄으니 흔적은 거기서 끊기는 거다. 다시 뭍으로 나와 옷을 입고 이렇게 화도방향으로 갈 줄은 모를 거다.

‘방수 백팩의 덕을 톡톡히 보는 구나.’

등에 멘 얇은 배낭의 빈 무게를 느끼며 장철은 열심히 산을 올랐다. 목적지인 화도 창현리로 나가는 길의 마지막 장애물, 어느새 정상이 눈앞이다. 한 숨도 쉬지 않고 정상을 밟아 내려갔다. 아침이 다가오는 중이다.

‘5시.’

시간을 확인하던 장철은 폰의 의미를 새삼 되새겼다. 과거를 잘라냈다고 하면서도, 그렇게 살기를 바랐으면서도, 이렇게 대포폰을 준비해 뒀었다.

‘조웅.’

그와의 연락을 위해서, 라는 핑계는 정말 비루한 변명이다. 그렇게 과거를 지우고 싶은 놈이 조웅은 왜 잘라내지 않은 것인가. 그 역시 과거의 한 부분, 자르고 지웠어야 한다. 그렇다면 무슨 미련이 남아 있단 건가?

‘아니, 그건 절대로 아니야.’

강하게 부정하면서 장철은 어둠을 노려봤다.

아침에 밀려가는 어둠이다.

저 어둠처럼 자신은 쫓기고 있다.

과거는 지운다고 지워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때문에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는 불안이 있었다.

그래서다.

딸과 손녀와 아무 일 없이 살기를 바랐지만,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지만, 가슴 밑바닥에 있는 불안을 떨쳐 내지는 못했다. 그런데 닥쳐왔다.

날벼락처럼 생각지도 못한 일로서다.

손녀가 죽고 딸이 죽었다.

움직임을 멈춘 장철은 잠시 숨을 골랐다. 딸과 손녀의 생각, 격정을 밀어내고 다시 움직였다. 계곡에 흐르는 물로 갈증을 달래고 계속 움직였다.

어느새 산 아래, 서울양양고속도로 화도 IC 옆으로 이동해 나갔다.

‘새벽운동 나온 사람인 거야.’

평범한 인근 주민인 것처럼 장철은 움직였다. 창현천 체육공원을 지나면서는 가볍게 뛰었다. 새벽운동을 나온 다른 사람들처럼 걸었다. 좌측의 아파트 단지들을 지나고 도심으로 접어들었다. 마석역은 저 앞에 있다.

‘5시 51분이 첫차.’

걸음을 빨리 옮긴 장철은 역에 들어갔다. 현금으로 표를 사고 화장실로 들어가 소변을 봤다. 손을 씻고 거울을 보는 척하며 복장과 외모를 확인했다. 경등산 복장에 비니모자에 마스크로 가린 얼굴은 완벽하다.

화장실을 나간 장철은 승강장으로 이동했다. 열차가 바로 도착했다.

춘천에서 오는 열차, 서울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그 속에 스며들었다. 천마산을 지나고 평내호평역에 접어 들 때 폰을 꺼내 전화했다.

언제나 그렇듯 신호 세 번 만에 조웅이 받았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냐?

반가워하지도 않고 냉담하지도 않은, 언제나 한결같은 목소리.

“경춘선 열차 안에 있다. 신내역에서 내릴 거다, 데리러 와라.”

-어디라고? 경춘선 안? 네가 신명시를 벗어났다고?

황당한 놀람으로 반응하는 조웅, 장철은 간명하게 말했다.

“딸과 손녀가 죽었다.”

* * *

낡은 승합차에 시동을 걸며 조웅은 고개를 흔들었다.

잠이 덜 깨서가 아니다.

방금 전 장철과 통화한 충격을 밀어내기 위해서다.

이건 그냥 날벼락이다.

장철의 딸과 손녀가 죽었다.

뉴스에서 떠드는 그 사건이다.

‘윤완규……!’

그놈이다. 장철의 손녀를 차로 받아 죽게 한 놈이 그 새끼다.

여태 뉴스를 봤지만 전혀 짐작도 못했다. 장철과 얽힌 일이라곤 손톱만큼도 예상 못했다.

그런데 그런 일인 거다. 장철의 딸은 병원에서 투신해 죽었다.

‘말기 암 환자였다니……!’

전혀 몰랐다. 장철의 딸 장민지가 그런 상태였다는 걸 추호도 눈치 채지 못했다. 장철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는 살가운 사이가 아니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저 살아 있다는 것만 알고 있는 사이가 우리 사이다.

‘육년 전에 하은주를 만난 건…… 하아.’

그날을 떠올리며 조웅은 고개를 운전대에 묻었다.

가사 도우미 일을 찾으러 왔던 그녀는 병색이 완연했다.

조웅 자신을 보고 놀란 그녀는 조심스레 물었다.

장철의 행방을 아느냐고, 그에게 딸이 있음을 알려달라고.

‘그 딸마저……’

부들거리는 숨을 다잡으려 조웅은 애썼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되새겼다.

자신이 알려줄 일이 아니라고 판단, 직접 연락하라고 번호를 줬다.

그렇지만 하은주는 장철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냥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그녀는 딸에게 장철의 연락처를 남겼다. 그들은 그렇게 만났다. 있는 줄 모르던 장철의 딸 장민지, 스물의 그녀는 아이를 낳은 후였다.

장철은 조웅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연락처를 알려준 것에 대해 비난도 칭찬도 하지 않았다.

조웅 자신도 그 일에 대해 변명하지 않았다.

서로 받아들인 거다.

과거로부터 온 인연, 혈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혈연이 장철이 인생을 바꿨다.

그는 남은 생을 그 아이들을 위해 살기로 했다.

제 목숨보다 딸과 손녀를 아꼈다.

그의 전부였다.

‘나 같은 놈 백 명 천 명하고도 안 바꾼다던……’

마지막 통화를 했을 때 장철은 그렇게 말했다. 장철의 입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장철에게 딸과 손녀는 목숨이었다.

아니 새 생명이고 새 세상이었다. 그러한 존재들을 한꺼번에 잃었다.

‘윤완규 개새끼, 이건 너 하나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볼에 주름이 지게 악물었던 힘을 풀어낸 조웅은 검색해본 뉴스를 떠올렸다. 장철이 작정하고 달려든 일이다. 잠실 성내동의 A병원에서 탈출하려던 윤완규를 인터셉트했다. 그놈을 하남의 강변에서 토막 쳐 버렸다.

‘운전자가 따로 있다 이거지?’

장철의 손녀를 죽게 한 장본인, 숨은 범인이 있다고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윤진건설의 아들 윤완규가 두려워 할 정도로 막강한 배경을 가진 인물이란 거다. 그래서 죄를 덮어 썼지만 변심, 끝내 사달이 났단 거다.

“후우.”

깊은 숨을 몰아 내쉰 조웅은 차창 밖의 아침을 향해 말했다.

“다 죽을 거다.”

사이드를 푼 조웅은 악셀을 거칠게 밟으며 도로로 나갔다.

* * *

아침 햇살이 비추기 시작한 강물을 바라보며 최재우는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예상대로.’

강 건너 편은 양수리다. 장철은 여기서 강을 또 건너갔다. 경찰견이 추적한 흔적이 맞다면 그렇다. 그렇지만 강 건너 양수리 쪽에서 그의 자취를 찾지 못할 거다. 이미 경찰병력이 움직이고 있지만 기대할게 없다.

“팀장님.”

피곤한 얼굴로 다가온 유지건은 홍인구형사와의 통화내용을 말한다.

“홍선배가 상황이 궁금하다면서 전화했습니다. 자기만 병원에 누워 있어서 미안하다고요. 뭐 갈비뼈 몇대 나간 걸로 쉬고 있으니 그렇긴 할 겁니다. 아 누구는 뭐빠지게 고생하고 누구는 병원에서 룰루랄라고.”

최재우가 슥 돌아보자 유지건은 목을 움츠렸고, 때마침 송치호가 곁으로 왔다.

“강을 건너간 게 확실할까요? 그렇게 꾸미고 계속 산을 탄 걸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송치호의 의문과 짐작, 최재우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

“장철 이사람 정말로 귀신같습니다.”

다시 입을 연 송지호는 감탄을 이어낸다.

“야밤에 산을 이렇게 타는 사람이라면 산악훈련을 받은 군인이거나 뭐 그런 거래야 정상 아니겠습니까? 도대체 이사람 정체가 뭐길래 이럽니까?”

최재우는 태블릿을 송치호에게 내밀었다. 이건 뭔가 하는 얼굴로 받아든 송치호는 얼굴 들이민 유지건과 함께 내용을 봤다. 장철의 신원정보다.

“원산도 간첩선사건?”

“97년 서영나이트 사건?”

두 형사는 놀람과 경악의 사이에서 반응하면서 깨달았다. 자신들이 추적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어떠한 존재인지를 알았다. 충격과 혼돈에 빠졌다.

“팀장님, 장철 이 사람이 정말로 ‘귀신’ 이라고 부르던 그자라면……”

“여기 어디서 잡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단호한 음성을 뱉은 최재우는 아침햇살을 반사하는 강물을 노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97년 서영나이트사건의 주범으로 추정되는 ‘귀신’, 그 존재는 알려진 게 아무 것도 없다. 그의 소행으로 추정하는 수십 건의 사건이 있지만 어떠한 흔적이나 단서도 남기지 않았어. 그래서 말 그대로 추정인 거지.”

사이를 둔 최재우는 한숨처럼 다시 목소릴 냈다.

“서영나이트에서 유일하게 흔적을 남겼다. 범서천파 보스와 간부들의 목을 가를 때 사용한 나이프, 그걸 현장에 버리고 갔지. 그 칼에서 DNA가 나왔다. 실수한 건지 의도한 건지도 모른다. 그냥 거기 남았지.”

과장이 미제사건들 자료에 착안한 것은 정말 행운이 분명하다. 하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고 유지건과 송치호는 생각했다. 장철이라는 남자가 만든 일이 그런 것이어서다. 윤완규를 잡은 과정, 그를 해친 충격.

어디서 이런 인물이, 이런 사건이 갑툭튀로 생겨난단 말인가.

사고희생자 유족으로만 알던 오십대의 남자가 만든 일이다.

평범하다고 생각하던 인물이 평범하지 않았던 거다. 그런 놀람과 깨달음이 정체를 찾은 거다.

“북쪽 산을 넘어 갔을지도 모르겠네요.”

송치호가 허탈한 충격을 털어내듯 말하자 유지건이 바로 반응한다.

“문안산을요? 그럼 남양주 화도방향으로 갔다고요?

“그럴 가능성도 있는 거지. 장철이란 남자가 어떤 인물인지 이젠 알았잖아.”

“에, 그건 오버인 것 같은데요? 정말로 장철이 ‘귀신’ 이란 존재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이동하는 건 다른 이야기잖습니까? 군경험도 없는 사람이잖요? 산악행군이 얼마나 힘든지 아시죠? 이사람 군대 안 갔잖아요?”

그렇다, 장철은 월북간첩의 자식이었다. 나라는 그를 사람 취급 안했다. 그의 친척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나라의 연좌제는 정말 지독했다.

“아우디차량 수배는 어떻게 됐어?”

최재우가 묻자 송치호와 유지건은 서로를 봤고 송치호가 말했다.

“아시는 것처럼 윤완규네 별장에서 이동한 순서대로 도로영상을 추적, 의정부 장암동 고개를 넘어서 동부간선도로 확장공사 구간에서 끝입니다.”

송치호는 최재우의 눈치를 살피며 이어 말한다.

“cctv가 없는 구간에서 다른 차량에 탑승했거나 동부간선도로를 이탈한 것이거나죠. 차량통행량이 어마무시한 현황이라, 아무튼 노력중입니다.”

강물로 시선을 돌린 최재우는 미간에 깊은 선을 그렸다.

“바닥부터 다시 훑어야겠군.”

유지건이 조심스레 묻는다.

“바닥이면 어디……”

강물을 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노려보던 최재우는 유지건을 돌아봤다.

“넌 어디 같으냐?”

움찔했던 유지건은 송치호를 돌아봤다. 하지만 송치호는 다른 곳을 본다.

“아 그게, 저기……”

“윤완규는 죽었다.”

명료하게 그 결과를 말한 최재우는 송치호와 유지건을 번갈아 응시했다. 나무라거나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일깨우는 듯이 이어 말했다.

“사건의 시작은 윤완규다. 그 새끼가 람보르기니 우르스를 운전했지. 백주대낮에 마약에 취해서 신명시를 가로질렀어. 그리고 아이를 죽게 했다.”

강렬한 눈빛을 흘려낸 최재우는 두 형사에게 성내듯 계속 말했다.

“내가 그 현장에 있었다. 그 작은 아이가 허공에 떠올랐다가 떨어지는 걸 봤어.”

거기까지 말하고 최재우는 입을 닫았다. 그게 더 말이 나오지 않아서라는 걸 두 형사는 알았다. 이제까지 드러낸 적 없던 최재우의 가슴이다.

“이 모든 일이 시작, 그게 우리가 훑어야 할 바닥이다. 람보르기니 우르스에 타고 있던 다른 놈, 윤완규가 불어버리려던 새끼를 찾아야 한다. 장철은 윤완규에게서 그놈이 누군지 알아냈다. 우리도 그걸 알아야 해.”

듣고 있던 송지호가 신음처럼 중얼거림을 냈다.

“1%클럽.”

유지건의 눈동자가 반짝하고 빛을 냈다. 최재우는 깊은 숨으로 결론을 말했다.

“거기부터다.”

몸을 돌리는 최재우를 따라 송지호와 유지건은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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