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1화 (11/200)

황혼의 살인자. 11. 숨을 고르며.

11. 숨을 고르며.

“이게 엄밀히 법적인 증거능력이 아직 없다 이거야.”

과장의 담담한 목소리엔 옅은 긴장과 우려가 배어 있었다.

장철의 DNA를 확보한 일,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것이 아니기에 그렇다.

다급한 확신과 추정의 사이에서 한 일이다.

최재우 자신의 연락을 받고서다.

‘장철로 의심된다고, 그의 집을 확인해야 한다고.’

그 전화 한통이 과장의 이 결과를 이끌어 냈다. 장철의 집을 확인하는 차원을 넘어 그의 물건을 가져와 DNA를 추출, 귀신이란 존재와 결부시켰다.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한 게 아니다, 장철은 현행범이 아니다.

“장철이 윤완규를 납치해 살해했다는 명확한, 실제적인 증거는 아직 없으니까.”

이어 나온 과장의 말이 지금 현실이다.

장철의 모습을 어디서도 확인한 적 없다.

그가 집을 빠져나간 것도, 신왕역 공용주차장에서 차를 훔칠 때도, 윤완규를 납치하는 과정에서도, 그의 모습은 드러난 적 없다.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해. 장철을 잡아서 증명해야 한다 이거지.”

결론을 말한 과장은 테이블 위에서 식어가는 커피잔을 들었다. 퇴근도 못하고 서에서 밤을 보낸 터라 수염자국이 두드러진 얼굴, 찌푸렸다.

“아, 다 식었네.”

옅은 짜증을 낸 과장, 이왕길은 커피잔을 다시 내려놨다. 그러며 최재우를 응시한다. 현장에서 개고생하다 들어온 눈동자, 그 무게를 읽는다.

“장철이 어린 시절을 보낸 보육원 말인데……”

방향이 바뀌는 갑작스런 이야기에 최재우는 시선을 들었다. 피곤과 현실의 압박에 눌린 눈꺼풀을 밀어올리고 과장을 봤다. 뜻밖의 이야기다.

“정상적인 보육원이 아니었던 것 같다.”

정상, 그 말이 가진 의미를 최재우는 순간적으로 곱씹었다. 자신이 정상적인 직업을 가졌더라면 이 아침에 이러고 있진 않을 텐데 하는 생각. 정확히 아침이라고 하긴 뭐한 오전 9시 반, 짭새의 하루인 거다.

“정상적이지 않다는 건 무슨 의밉니까?”

“그게, 형제복지원 알지?”

안다, 참혹하게 유린당한 사람들의 이야기, 세월이 흘러서도 아직 다 밝혀내고 단죄하지 못한 세상의 상처다. 전두환군부정권이 만든 극악이다.

“형제보육원이란 이름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혹시……”

“맞아, 그거야. 부랑아 수용시설.”

“예에?”

“당시에 전국에 그런 시설들이 있었다는 게 요즘 밝혀지고 있다. 부산의 형제 복지원은 대표적인 케이스고, 크고 작은 시설들이 다수 존재한 거지. 유사한 시설과 사건으로 대표적인 게 선감학원이라고 또 있고.”

“선감학원이요?”

생소한 이름에 반응하는 최재우에게 과장 이왕길은 입술을 핥으며 다시 입을 연다.

“안산 선감도에 있던 시설인데, 일제강점기부터 있던 거란다. 쪽발이들이 만든 그런 시설이 팔십년대 후반까지 운영됐다는 거야. 부랑아들을 강제로 납치하듯 데려다가 온간 인권유린의 범죄를 저지른…… 아 됐고.”

짜증나니 더 말하기 싫단 얼굴을 한 과장은 본줄기로 회귀했다.

“아무튼 장철이 있던 서산의 형제보육원도 그런 시설이었던 걸로 드러났다. 충남지역의 부랑아들을 수용했던 거지. 거기 수용했던 아이들이 크면 서산개척단으로 보냈다는 거야. 서산개척단이 뭔지, 그것도 모르지?”

멍청한 눈빛을 흘려내는 최재우를 보며 한숨 쉰 과장 이왕길은 다시 말했다.

“부수적인 건 네가 알아보고, 장철이 형제보육원에 있을 당시 생긴 화재사건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어. 한마디로 장철이란 인간은 아주 위험해.”

위험하단 말론 부족하단걸 이왕길은 깨달았다. 장철의 정체가 정말로 귀신이라면 그렇다. 그 생각이 가슴에서부터 치밀어 올라 숨이 뜨겁다.

“그가 윤완규로부터 진범의 정체를 알아냈다고 본다면 정말 큰일이야.”

완전히 식은 커피잔으로 시선을 내린 최재우는 순간적으로 입술을 움찔했다. 자신도 모르게 튀어 나오려던 말, 그걸 이에 물고 한숨 쉬었다.

‘그런 개만도 못한 놈들은 죽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날 그 광경이 다시 떠오른다.

장철의 손녀 장영, 그 어여쁜 아이가 날아오르던 순간이다.

구겨서 내던진 인형처럼 도로에 처박힌 아이, 그 앞에서 피를 토하던 장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생생해지고 심장을 조인다.

“차라리 장철이 죽여 버렸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돼.”

귀를 파고든 과장의 목소리에 최재우는 흠칫하며 시선을 들었다.

“경찰이지만 나도 사람이다 이거야. 사람으로서 당연히 느끼는 감정까지 어쩔 순 없지. 쓰레기 같은 새끼들, 돈 있고 힘 있어서 저희는 무슨 짓을 저질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들, 총으로 쏴죽이고 싶다 이거다.”

말끝에 과장은 후 하고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다시 말한다.

“하지만 그래가지곤 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질 않겠지. 너도나도 법과 질서를 무시하고 제 힘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세상은 전쟁터가 될 거야.”

그렇기에 나는 경찰을 한다는, 우리의 존재 이유가 그거라는 눈.

“장철은 잠들어 있었습니다.”

다물고 있던 입을 연 최재우는 나직하고 담담히 이야기했다.

“97년 이후로 사라진 존재가 귀신입니다. 장철이 정말로 그 인물이라면, 세상으로부터 등 돌려 살아가던 그를 다시 끌어낸 건 겁니다. 솔직히 그의 분노를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정말 귀신같습니다.”

과장 이왕길은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래, 귀신은…… 정말 귀신이야.”

이왕길은 과거를 더듬었다.

신출내기 형사시절 그곳에 있었다. 97년 서영나이트 현장.

그 참혹했던 광경을 잊지 못한다.

범서천파 보스와 간부들을 살해하고 사라진 귀신, 그는 절대 잡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가슴에 묻어둔 과거를 삼키는 이왕길에게 최재우의 목소리가 건너갔다

“신왕역 공용주차장 cctv 영상을 다시 봤습니다, 장철로 확신되는 인물은 윈드점퍼의 등이 불룩했습니다. 밤시간이라 어둡고 화질이 선명치 않아 처음엔 몰랐습니다만, 백팩 같은 걸 점퍼 안에 착용하고 있던 겁니다.”

“배낭을?”

“그 안에 갈아입을 옷과 신발을 넣은 겁니다. 팔당대교 앞을 헤엄쳐 건너간 후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땅에 묻은 걸 경찰견들이 발견했습니다.”

“역시…… 그러면 처음부터 강변을 범행 장소로 정해뒀다는 거지?”

“A병원의 위치로부터 주변 지도를 검색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강둔치와 가깝고, 이동로도 정확하게는 아니어도 예상해 둔 거겠지요. 그런 준비로 집을 나선 거고요. 목표를 발견하고는 정확하게 결행했고요.”

과장 이왕길이 다시 입을 열려는데 노크가 파고들었다. 문이 비죽 연 건 유지건이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홍선배하고 추돌사고가 난 사고차 운전자 준비됐습니다.”

뻔한 거지만 해야 할 일, 최재우는 일어섰고 이왕길은 한마디 던진다.

“이제 시작이야, 힘 빼지 말고 잘 완주하자.”

* * *

지은 지 얼마나 된 건지 모르겠지만 건물은 깨끗하다.

상계전철역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으니 나름 요지다.

이 5층 건물의 건물주가 되기까지 조웅은 악착같이 일했다.

그 세월, 지나간 시간들을 장철은 더듬었다.

‘미친 시간들.’

눈을 감았던 장철은 다시 눈을 떴다.

아침 바람이 지나가는 옥상에 홀로 서 있는 지금, 자신을 흘겨보듯이 4호선 전철이 교각 위를 달린다.

많은 사람들을 품은 전철,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철로에 흩어진다.

‘은주.’

하은주의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언제나 그렇듯 엷은 미소로 바라보던 그녀의 눈, 깊고 무거운 슬픔과 비탄이 들어 있던, 그걸 보는 게 힘들었다.

‘널 떠난 건……’

그녀를 정말 사랑했지만 그 괴로움과 자학을 견디기 힘들었다. 언젠가는 터지고 말 것 같은,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것 같은 하루하루였다.

그걸 끝낸 것은 마지막 작업으로 인해서다. 그녀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97년.’

한국을 떠나던 그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하은주를 두고 가야 하는 현실, 그래야 한다는 결정을 뒤집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 불행해질 뿐이란 것을 알기에 밀항선을 탔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꺼내지만 않으면 견딜 수 있는 아픔으로 가슴에 모든 걸 묻은 세월이었다.

그런데 그녀를 다시 만났다.

하은주가 낳은 딸 민지를 만났다.

한 번도 생각해 본적 없는 존재가 찾아온 거다.

충격과 혼란 속에서 깨달았다.

핏줄이라는 것이 뭔지를 딸의 얼굴을 보고 알았다.

딸의 품에 안겨 있던 갓난아기가 손녀라는 것을, 천사처럼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며 그 존재 의미와 장철 자신의 할 일을 깨달았다.

“미안하다.”

허공을 향해 던지는 한마디, 가슴에서 나오는 말이 그 말 밖에 없음을 탓해보지만 그 말 뿐이다. 딸과 손녀를 위해 살려고 했던 남은 삶, 이제 복수를 위해 살 거다. 딸이 남긴 마지막 말을 이루기 위해 숨 쉴 거다.

‘한진수.’

윤완규가 말한 그놈의 이름을 이에 물고 장철은 돌아섰다.

옥탑방 안으로 들어가 노트북을 켰다.

한진수와 온나라그룹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다. 그러는 사이 조웅이 올라왔다. 말없이 도시락을 내려놓고 돌아선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내역에서 태워 이곳 상계동으로 오는 동안에도 한마디도 안 나눴다. 조웅 자신과 장철은 본래도 필요한 말 외엔 별로 하는 사이가 아니지만, 이미 일어난 일과 벌어질 일을 알기에 그랬다.

‘그때처럼 받아들이는 거지.’

육년 전, 하은주에게 장철의 연락처를 줬을 때처럼이다.

하은주는 장철에게 연락하지 않았지만, 결국 딸과 손녀를 만나게 된 일이었다.

그때 주저하지 않았다.

하은주가 낳은 장철의 딸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핏줄.’

조웅 자신과 장철에게 없는, 갈망한적 없지만 피 속에 흐르는, 가질 수 없다고 여기던 그것이 찾아 온 거다. 그래서 장철에게 미리 연락하지도 않고 하은주에게 연락처를 줬다. 그건 그래야 한다고 그때 생각했다.

‘위태롭고 불같던 사랑.’

장철과 하은주의 사랑은 그랬다.

둘이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는 지 지켜봐서 안다.

그렇게 생긴 딸, 핏줄이다.

장철은 알지 못하고 살아온 자식이다.

당연히 장철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장철이라고 해도.

‘받아 들였지.’

장철은 그랬다.

하은주가 암투병으로 숨진 후에 찾아온 딸 장민지와 손녀 장영을 품었다.

그 결정이 조웅 자신의 마음과 같았는지는 알 수 없다.

장철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속은 그만의 것, 결정도 그의 것이었다.

‘하은주에 대한 사랑을 그 아이들에게 쏟았는데……!’

옥상문을 닫고 계단을 내려가던 조웅은 순간적으로 휘청했다.

용암처럼 치밀어 오른 분노에 발을 헛디뎌서다.

한 번도 본적 없던 장철의 딸과 손녀, 이번에야 봤다.

뉴스에 보도된 희생자들의 사진, 웃고 있었다.

‘천사처럼 귀여운 아이를……!’

장철의 손녀 장영의 활짝 웃는 얼굴이 천사였다. 조웅 자신은 뉴스에 나온 사진으로만 본 얼굴, 매일 체온을 느끼던 장철의 가슴은 찢어졌다.

“개새끼들, 너희는 악마를 깨운 거다.”

저주 같은 중얼거림을 흘려내 조웅은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늘은 현장구인이 없는 날이라 새벽에 한가했다. 그래도 직업소개소 간판을 보고, 구인광고를 보고 오는 이들은 제법 있다.

“사장님, 커피 타드릴까요?”

곱상하게 웃는 미쓰리의 미소에 조웅은 심드렁하게 고갤 저었다.

“됐고. 뉴스나 좀 틀어 봐.”

“네.”

미쓰리가 리모컨으로 켠 TV에 조웅은 시선을 박았다. 뉴스 전문채널, 조웅의 취향을 아는 터라 미쓰리는 채널을 맞춘다. 사건 보도가 나온다.

-윤진건설은 충격에 빠져 있습니다. 사주의 아들이 살해당한 일이 주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우려하는 상황입니다. 현재 경찰은 범인을 추적수사 중에 있습니다만, 사건의 이면에 있는 다른 사건의 윤곽을……

조웅은 이어지는 뉴스보도를 차분히 봤다.

‘핵심이 따로 있다는 건 알아냈구나.’

장철의 손녀 장영이 당한 일, 교통사고를 낸 진범이 따로 있다는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그 진실을 윤완규가 밝히려 했다는 거다. 그런데 살해당한 결과, 사건의 중대성에 대해 말한다. 이 흐름은 진실은폐인 거다.

-윤완규와 함께 있던 수감자들이 내용을 들었다고 합니다.

잠이든 윤완규가 식은땀을 흘리면서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진범이 따로 있다고 했다는 거다. 현실이 압박이 공포와 뒤섞여 나온 잠꼬대다.

-윤완규는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구치소 내에서도 누군가에게 위해를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는 이야깁니다. 그 두려움의 원인이 진실을 은폐하고자 하는 진범으로 인한 것이라면, 윤완규가 살해된 이 사건은……

“헛짚었어.”

작지만 분명한 조웅의 중얼거림, 미쓰리가 힐긋 돌아본다.

‘윤완규를 죽인 건 귀신이다. 그래, 귀신이 다른 놈들도 다 죽일 거다.’

귀신, 그 이름을 마음속으로 삼키며 조웅은 과거를 더듬었다.

피부에 소름이 돋는다.

조웅 자신이 살아 있는 이유도 귀신으로 인해서다.

죽을 자리에서 귀신이 살렸다.

그날 이후, 귀신의 그림자가 되어 살아왔다.

‘너희가 불러낸 거다. 그랬으니까 겪어야지.’

옥탑탕에 있는 귀신, 장철을 생각하며 조웅은 뜨거운 침을 삼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