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4화 (14/200)

황혼의 살인자. 14. 황태자들.

14. 황태자들.

장철은 긴장을 삼켰다.

전철을 이용해 도착한 강남의 R호텔, 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경찰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신명서의 최재우 팀장이다.

다급히 몸을 돌리고 복장을 확인했다. 유리창에 비친 모습은 완벽하다.

‘조금 어색하지만.’

정장은 아니지만 세미정장이라고 할 복장이다. 고급스런 진바지에 스웨터를 걸쳤다. 그 위로 유명브랜드의 스프링점퍼를 걸쳤다. 요즘 유행하는 출근패션 같다. 구두의 광도 무난하고 마스크와 안경과 가발도 그렇다.

‘색이 조금 과하긴 한데.’

갈색이 많이 들어갔다. 그 부분이 조금 신경에 거슬리긴 하지만 다 무난하다. 누가 봐도 지금 이 모습에서 장철이란 존재를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최재우팀장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 사람, 마주쳐서는 안 된다.

‘엘리베이터.’

형사들이 엘리베이터에 타고 문이 닫힌 순간 최재우는 돌아섰다.

엘리베이터 앞으로 다가가 층수를 확인했다.

형사들만 탄 엘리베이터는 계속 올라간다. 중간의 다른 층에 한 번도 안 멈췄다.

25층, 저곳에 가야한다.

‘경찰이 여길 온 이유가 있어.’

사건과 관련해서 뭔가 포착했기에 온 거다. 정해진 수사과정의 흐름으로 온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윤완규가 죽은 다음 바로 온 이유가 있다.

‘경찰도 진범을 찾고 있겠지.’

그 부분에 대한 단서를 찾아왔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장철 자신이 윤완규를 고문살해 했음을 아는 마당, 무엇 때문인지 알고 움직이는 거다.

윤완규가 자백하려 했던 진범, 영이를 해친 놈을 먼저 찾기 위해서다.

‘경찰에게 뺏기진 않아.’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장철은 중년남자와 젊은 여자 커플을 피해 서며 25층을 눌렀다. 팔짱을 낀 커플은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시시덕거린다. 여자는 남자의 팔을 안고 제 가슴에 비벼댔고 남자는 뺨을 만진다.

발정난 개들의 냄새가 맡아지는 것 같은 속에서 장철은 엘리베이터를 내렸다.

25층, 중식당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형사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중식당의 안쪽 룸 앞이다. 그쪽으로 걸어가자 어떤 상황인지 보인다.

‘윤완규와 같이 있던 놈이 저 안에 있는 거라면……’

장철은 순간적으로 걸음을 멈출 뻔했다.

전기충격에 당한 것 같은 전율이 전신을 강타했다.

그 충격 그대로 룸 안을 향해 달려갈 뻔했다. 하지만 제어했다.

심장의 거친 포효를 다스렸다.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한진수!’

놈이다, 룸 안에 그 놈이 있다.

사진으로 본 그 얼굴이다.

비슷한 다른 놈들과 있다. 최재우 팀장이 호텔지배인과 놈들을 향해 말하고 있다. 잠깐 멈춰 서서 이게 무슨 상황인가 궁금해 하는 얼굴로 기웃거렸다.

중식당을 이용하러 온 손님이 기묘한 소동에 호기심을 보이는 평범함, 건장한 놈들 둘이 바로 험악하게 노려본다. 움찔한 모습으로 물러났다.

테이블로 걸음을 옮겨 가며 장철은 감정을 다잡느라 애썼다.

‘한진수……!’

놈이 태연하게 앉아있다.

최재우 팀장이 서 있는 위치에서 가장 가깝다.

심드렁한 얼굴, 잘 못 본 게 아니라면 놈의 눈엔 짜증이 들어 있었다.

저렇게 된 상황, 모든 것에 대해서다.

저놈은 죄책감이 전혀 없다.

‘최팀장, 당신은 아직 모르고 있군.’

경찰은 아직 한진수에 대해 모른다. 윤완규에게 덮어씌운 놈이 있다는 것만 알지 그게 한진수인 걸 모른다. 안다면 저러고 있진 않을 거다.

‘드디어 네 얼굴을 실물로 봤구나.’

한진수의 얼굴을 각인하며 장철은 창가 테이블에 앉았다. 귀를 기울여보지만 더 이상 룸 쪽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직원에게 주문을 했다.

“그래서, 우리한테 원하는 게 뭡니까?”

처음 룸의 문을 연 놈, 하얀 얼굴에 큰 귀가 두드러진 놈이 묻는다.

“윤완규가 황태자 클럽의 멤버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황태자클럽회원들이군요. 지금 계신 분들이 회원의 전부인가요? 빠진 분이 있나요?”

최재우의 물음이 경찰이 방문한 핵심 용건임을 모두가 알았다. 윤완규 살인사건을 수사 중이니 당연한 일이다. 주변관계를 밝히는 과정인 거다.

“우리가 황태자클럽이라고 누가 그럽니까?”

하얀 얼굴의 놈이 비웃듯이 반응한다. 이어내는 말은 변명은 아니고 정정이다.

“우리 모임 이름은 ‘미래’입니다. 우릴 보고 황태자클럽이니 1%클럽이니 씹어대는 모양인데요, 우린 차세대 기업경영자들의 건전한 모임입니다.”

“미래요?”

되물음을 던진 최재우는 단어의 의미를 읽었다. 들은 대로 차세대 경영자들인 거다. 재계를 이끌어갈, 아니 부모에게 물려받을 금수저들이다.

“윤완규가 우리 모임 멤버였다고 누가 그럽니까?”

다시 건너온 하얀 얼굴 놈의 물음.

‘이 새끼를 어디서 봤더라?’

최재우는 다른 걸 생각했다.

룸 문을 열고 이렇게 마주서서 물음을 던지는 하얀 얼굴의 젊은 새끼, 저 얼굴을 본 적 있다.

당연히 봤을 거다.

여기 모인 놈들은 내노라하는 기업의 자식들이다.

저 얼굴은 낯이 익다.

‘그렇구나, 태한그룹.’

마침내 생각해 냈다. 재계서열 일이위를 다투는 태한그룹의 아들이다.

“성함을 여쭤 봐도 실례가 되진 않겠지요?”

최재우가 이름을 묻자 하얀 얼굴의 젊은 놈은 순순히 대답한다.

“송세진입니다.”

기억이 확실하게 난다. 태한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순혈의 후계자, 하버드에서 수학하고 돌아왔다는 기사가 났었다. 그야말로 로열 황태자다.

“태한그룹의 아드님이군요.”

피식 웃음을 보인 송세진은 룸 안의 다른 놈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아하니 우리는 경찰과의 접촉을 거부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만 이렇게 수고하시는 데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협조하지 않는 것도 도리가 아니고, 모임은 이미 망쳤고.”

망쳤다는 말에 앉아 있는 놈들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걸 최재우는 확실히 봤다.

“형사님들이 오신 이유가 윤완규의 행적 조사죠?”

최재우는 송세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깨를 으쓱한 송세진은 다시 입을 연다.

“확실히 말하겠는데 윤완규는 우리 ‘미래’의 멤버가 아닙니다. 몇 번 같이 어울린 건 사실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그날이겠죠. 윤완규가 이 호텔에 머물렀다 나갔다는 날, 신명시에서 아이를 치어버린 3월 24일이죠?”

최재우의 눈동자에 힘이 들어가는 걸 인지하며 송세진은 목소릴 이어냈다.

“우리 중에 누군가가 그날 윤완규와 함께 있지 않았을까, 그게 알고 싶으신 거잖아요? 그날 알리바이를 알려드리죠,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할 겁니다. 일부러 못되게 구는 놈들 아닙니다. 협조할건 당연히 협조해야죠.”

최재우의 눈이 의외의 빛을 품는데 송세진은 아예 커지게 만들었다.

“아 그리고 윤완규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아는 친구가 있습니다. 우리 모임에 자주 데리고 나왔죠, 그래서 우리도 윤완규를 알게 됐습니다.”

송세진은 최재우에게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은 남자에게 시선을 돌린다.

“한진수, 네가 협조해 드려야겠다.”

최재우가 시선을 돌리자 앉아 있던 젊은 남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느릿하게 시선을 들어 송세진을 응시하는데, 확실한 적의가 들어 있다.

‘이 새끼가 누구……’

최재우의 의문을 아는 것처럼 송세진이 풀어준다.

“온나라그룹 셋째아들, 한진수라는 친굽니다.”

정체를 깨달은 최재우는 눈동자를 반짝였다. 그 반응이 너무 두드려졌다. 자신은 모르지만 곁에 있던 유지건과 송치호가 보기엔 확실히 그랬다.

“진수야, 윤완규에 대해선 네가 알잖아? 너희끼리 따로 어울리기도 했지?”

한진수의 얼굴이 더욱 경직했지만 송세진은 태연하게 말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윤완규 그 친구가 살해당했잖아? 피해자 가족이 그랬다던데? 우리야 아는 게 없지만 너는 다르잖아? 아는 게 있으면 말씀드려? 무섭잖냐, 잘못된 게 있다면 그게 뭔지 밝혀야지.”

차분한 미소로 나간 송세진의 목소리, 듣고 있던 한진수가 일어선다. 그대로 룸을 나간다. 최재우는 바로 앞을 막아섰고, 보디가드들이 대응한다.

“한진수씨.”

최재우가 강한 목소리로 부르자 보디가드 두 놈은 소리치며 밀고 나온다.

“비켜요!”

“용건이 있으면 변호사를 통해요!”

막무가내로 밀고 나가는 한진수를 최재우는 잡지 못했다. 아니 안했다. 유지건과 송치호에게도 눈짓해 멈춰 서게 했다. 그러며 송세진을 봤다.

‘역시.’

송세진의 얼굴은 다소 놀랐다는 것이지만 눈은 웃고 있다.

온나라그룹과 태한그룹의 사이를 생각하면 지금 이곳에서의 일에 대한 답이 나온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평화롭지 않은 경쟁 기업, 자식들도 그런 것이다.

‘됐어.’

최재우는 만족한 숨을 삼켰다.

윤완규와 얽힌 놈이 누군지 알아낸 거다.

이제 호텔을 족쳐서 알아내고 수거한 후에 한진수를 족치는 거다.

“협조 감사드립니다. 말씀하신 3월 24일 당일 행적에 관해선 협조공문을 보내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협조를 부탁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송세진은 최재우에게 미소로 대답했다.

“언제든지요.”

최재우는 유지건과 송치호를 데리고 중식당을 나갔다. 지배인을 범죄자 붙잡듯이 앞세우고서다.

한진수의 보디가드들이 형사들과 실랑이 할 때 장철은 일어섰다. 서둘러 계산대로 가서 계산을 했다. 주문했지만 먹지도 않은 식사, 무슨 일인지 묻는 직원에게 급한 일이 생겨서 그런다는 말로 현금을 내밀었다.

직원은 다소 기묘하게 본다. 음식을 안 먹고 가는 것 말고 현금을 내서다.

‘현금으로 계산하는 사람이 없겠지.’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뒤로 두고 장철은 빠르게 움직였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자 한진수일행이 왔다.

엘리베이터에 함께 탔다.

화를 참고 있는 한진수와 보디가드 두 놈이 내는 숨소리를 모른척하며 앞만 봤다.

엘리베이터는 지하로 빠르게 내려갔다.

보디가드들의 앞뒤 호위 속에 한진수는 걸어 나갔다.

자동유리문 밖에 멈춰 서 보디가드 한 놈이 차를 가져오길 기다린다.

곁을 지난 장철은 태연하게 한 바퀴를 돌았다.

엘리베이터 출구를 중심으로 빠르게 돌아온 장철은 검정색벤츠차량이 멈추는 걸 보고 움직였다.

다른 계산 따위 하지 않았다.

지금이 행동해야 할 때인지 아닌지 주저하지 않았다.

눈앞의 기회를 향해 달려갔다.

뒷자리에 한진수가 타자 문을 닫아준 보디가드가 조수석에 타려는 순간이다.

점프하며 나간 장철은 무릎을 찍었다.

돌아보는 보디가드의 안면에서 쩍 하는 소리가 났다.

쓰러지는 놈의 몸을 밟고 차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놀라 반응하는 놈, 운전대를 잡은 보디가드의 턱에 주먹을 꽂았다.

반대편으로 얼굴이 돌아간 놈은 그대로 쓰러졌다.

그 순간 뒷자리의 한진수가 움직였다. 차문을 열고 튀어나간다.

장철은 귀신처럼 뒷덜미를 잡았다.

“악!”

차문을 채 열지 못하고 뒷머리를 잡힌 한진수.

당황과 패닉이 깃든 놈의 머릴 확 잡아당겼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로 놈이 넘어왔다.

뒷머리를 거칠게 내리누른 장철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팔꿈치를 찍었다.

뒤통수를 가격당한 한진수는 늘어졌다.

놈을 다시 뒷자리에 밀어 던진 장철은 열린 차문을 모두 닫았다.

운전석의 보디가드 놈은 바깥으로 밀어냈다. 운전대를 잡고 차를 출발했다.

호텔을 나갈 때 가드들이 출동했다.

“장난하는 겁니까?”

최재우의 성난 반응에 지배인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했다.

“호텔전체의 보안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하는 중이었습니다. 3월 24일의 영상기록은 복구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밖에는……”

최재우는 황당한 분노를 숨기지 못했다.

3월 24일 윤완규가 호텔에 들고 난 영상은 이미 제출했다.

차량출입만이 확인 가능한 영상이다.

윤완규가 호텔에서 뭘 했는지, 어디서 누굴 만났는지를 파악할 증거는 없다.

‘없앴어.’

윤진건설의 짓인지 온나라그룹의 짓인지, 아무튼 그들이다.

현시점에서 윤진보다는 온나라가 농후하다.

윤완규의 차량이 호텔에 출입한 영상만 남았다.

그때는 영장 발부 전이었다. 정식 영장이 나왔는데 늦었다.

“이렇게 큰 사건이 될 줄은……”

다시 변명하는 지배인의 얼굴을 후려치고 싶은 충동에 최재우는 주먹을 움찔거렸다. 그걸 느꼈는지 지배인이 슬금 물러날 때 유지건이 소리쳤다.

“팀장님! 한진수가 공격당했습니다!”

지배인의 폰도 울어댄다. 호텔의 비상상황을 알리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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