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6화 (16/200)

황혼의 살인자. 16. 귀신의 발자국.

16. 귀신의 발자국.

“씨발 그건 어떻게 할 수도 없었어.”

송치호의 거듭된 변명, 아니 충격이다. 한진수 일행의 뒤를 따라 내려갔는데 늦은 거다. 장철이 분명한 남자가 한진수의 보디가드들을 때려눕히고 벤츠를 타고 도주했다. 차가 출발하는 순간에 송치호가 알렸다.

‘그래,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아. 상대는 그런 자야.’

귀신, 그가 한진수를 결국 잡아갔다.

윤완규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진범, 천사같이 예쁜 아이 장영을 해친 놈이다.

장철은 이제 한진수를 죽일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하지 않기 위해 서둘러 움직인 건데 늦고 말았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안일했어.’

최재우는 후회와 자책을 삼켰다. 운전대 잡은 유지건과 조수석의 송치호가 주고받는 이야기, 뒷자리의 자신이 들으라고 주고받는 말이 공허하다.

저들은 잘못이 없다. 자신이 더 냉엄하게 상황인식을 했어야 한다.

‘귀신이란 걸 알면서도, 설마 하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었던 거야.’

솔직히 귀신을 모른다. 그 존재에 대한 이야기만을 알 뿐이다.

어떻게 보면 허무맹랑하고 꾸며낸 것 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윤완규를 겪었다.

어제 그 일이 있었는데, 새벽까지 추적했는데, 오늘 바로 이렇게 됐다.

‘하루 만에 윤완규에 이어 한진수까지……!’

시큰 거리게 어금니를 물던 최재우는 송치호가 내미는 폰을 봤다.

“팀장님 이것 보십시오, 호텔에서 주차장 영상을 보내왔습니다.”

영상 속에 남자, 베이지색 점퍼를 입은 자가 벤츠를 향해 도약한다. 엄청나다, 벤츠후미에서 점프했는데 조수석 문을 잡은 보디가드에게 꽂힌다.

“하, 보셨죠?”

송치호가 황당한 반응으로 감탄한다.

영상 속의 공격자, 장철이 확실한 자는 니킥으로 보디가드의 안면을 찍었다.

공격대상 앞에서 점프해 위로 올려 찍는 니킥이 아니다.

거의 수평으로 허공을 날아가 때려 박았다.

“차 안에 있던 다른 놈도 해치우고 한진수를 잡았습니다.”

밴츠가 떠난 자리엔 쓰러진 보디가드 두 놈만 남았다. 그리고 그 자리엔 송치호가 당황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윤완규 일도 그렇지만 이사람 이거 정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한숨 쉬는 송치호, 그 얼굴을 무감정하게 바라본 최재우는 귀신이라는 말을, 그 의미를 되새겼다.

“이제 곧 백화점입니다.”

운전하는 유지건의 굳은 목소리, 최재우는 현실에 집중했다.

교통관제센터의 실시간 추적으로 벤츠의 행적을 쫓아왔다.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장철은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백화점 측에 연락해 협조를 요청한 상태다.

“혹시 우리를 따라왔던 걸까요?”

송치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곤혹스러운 얼굴이다.

장철이 날벼락처럼 나타나 한진수를 잡아간 일,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무계해서다.

물론 장철이 윤완규를 통해 진범을 알아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건 충격이다.

‘엄밀히 시간을 따지면 하루만도 아니야.’

다시 황당함이 밀려든다. 도망치며 행적을 지우기에도 바빴을 자가 이렇게 했다. 한진수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기에 어떠한 놈인지 알았을 테지만, 그래서 더 접근하기가 어려운 대상이다. 온나라그룹의 아들이다.

‘행동방경이나 일정을 알아내기 힘들 텐데.’

그런데 했다. 최재우 자신팀이 R호텔로 찾아온 때에 했다.

그래서 송치호는 뒤를 밟힌 게 아닌가 생각하는 거다.

경찰이 추적하는 살인자 장철이 역으로 경찰을 추적해온 결과라고.

최재우 자신의 생각도 비슷하다.

‘가능성이 있어. 그런데 그보다는……’

R호텔을 최우선 가능성의 장소로 여겼을 확률이 더 크다.

윤완규는 마약에 취해 있었다.

그가 사고당일 날 차를 출발한 곳이 R호텔이다.

차에는 한진수가 함께 타고 있었다, 그도 당연히 호텔에 함께 있었다는 거다.

‘한진수가 발을 디뎠던 공간.’

윤완규를 통해 한진수를 특정한 결과다. R호텔에서 단서를 잡으려 한 거다. 장철이 정확하게 무엇에 착안했는지 모르지만 그런 배경일 거다.

‘3월 24일 사고 직전 머물렀던 곳, 윤완규가 죽었으니……’

만에 하나 호텔에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자주 오는 곳이라면.

그 가능성에 우선 거는 거다.

다른 방법은 현재 없고 만들기도 어려운 대상이다.

‘한진수가 어떤 식으로든 반응한다면, 그 확률 중에 하나가 호텔.’

이게 맞을 거다.

그렇다면 역시 귀신이다. 제대로 짚었다. 아니 우연한 행운이 겹쳤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한진수가 오늘 호텔 모임에 왔다.

물론 최재우 자신의 생각한 장철의 판단처럼 반응해서일 수 있다.

“들어갑니다.”

유지건의 목소리에 최재우는 상념을 흩어냈다.

차는 주차장으로 직행했다.

백화점 보안실에서 막 알려온 내용, 누군가 주차장에서 공격당했다는 거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벤츠차량 안이라는 거다. 한진수의 벤츠다.

찢어지는 소리로 주차장 바닥을 긁으며 유지건이 차를 멈췄다.

차문을 거칠게 열고 나간 최재우는 벤츠부터 살폈다.

송치호가 백화점 보안팀과 얘기한다. 그쪽에 신경 쓸 결과가 아니다.

장철은 이미 껍질을 벗었다.

“한진수 폰입니다.”

뒷자리에서 폰을 드는 유지건의 눈은 암울하게 물들었다. 이미 이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폰으로 위치 추적하는 건 무용해졌다. 하지만 아직이다. 장철이 갈아탄 볼보를 추적하는 거다. 고급차는 내장 GPS도 있다.

“백화점에서 바로 주차장 영상을 뽑아냈습니다.”

송치호가 다가와 내미는 단말기에 최재우는 시선을 박았다.

벤츠에서 내린 남자, 장철이 볼보로 다가간다.

차주를 위협해 벤츠로 이동한다.

가볍게 손날로 친 것 같은데 차주는 기절했다. 그렇게 차를 갈아탔다.

“교통관제센터에서 볼보차량 위치추적 중입니다.”

유지건이 폰을 내리며 대응상황을 말한다. 고개를 끄덕인 최재우는 바로 몸을 돌렸다. 그사이 송치호는 백화점 보안팀과 몇마디를 더 나눈다.

한쪽에선 볼보차주가 불안과 불만을 말하고 있다.

최재우는 차에 올랐다.

“볼보 경로를 찾았습니다.”

조수석에 오른 송치호는 폰에 뜬 지도를 보인다. 교통관제센터에서 볼보차량을 특정하자마자 백화점에서부터 추적한 경로다. 대로로만 이동했다.

생각보다도 빨리 찾았다. 이동공간이 강남, 대한민국에서 가장 앞선 곳이다. 사건 발생장소 워낙 확실하고 발생시간이 직전이어서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이렇게 빨리 찾았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관제센터의 역량이다.

“볼보가 들어간 곳이 창신초교 앞의 공영주차장인데요?”

미간 좁히는 송치호와 눈을 맞춘 최재우는 유지건에게 짧게 말했다.

“가자.”

유지건은 주차장 바닥의 비명을 일으키며 차를 출발했다.

* * *

“이게 이대로는 유지가 힘들 걸로 생각됩니다.”

창밖을 노려보며 이왕길은 떨리는 숨결에 힘을 줬다.

정말이다. 이젠 진짜로 큰일이 났다.

귀신이 한진수를 잡아 갔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그래, 한진수가 잡혀갔으니 온나라그룹에서도 가만 안 있을 거고.

전화상대방, 서울경찰청 수사차장이란 거물급직함을 가진 염문열이다. 이왕길 자신이 초임형사시절의 형사반장, 귀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초조와 긴장 가득한 목소리로 이왕길이 묻자 염문열은 한숨을 쉬었다.

-후,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빗장을 지르고 있을 상황이 아니야.

“그럼?”

-공개하자고. 안 그래도 북부지검 문형철이가 대검을 통해서 가스를 뿜고 있어. 경찰이 장철에 대해서 뭔가 가지고 있는데 안 내놓고 있다고.

“그거야……”

-이거저거 따질 때가 아니지. 알고 싶다니까 알려주자고.

될 대로 되라는 말로 들려서 이왕길은 침을 삼켰다.

-어차피 청장을 통해 온나라그룹이 알게 될 거야.

온나라 그룹이 알게 되는 일은 그것만이 아니다.

한진수가 귀신에게 잡혀갔다.

같은 일을 당한 윤완규가 어제 죽었다.

정해진 결과가 있다.

이변은 없다. 귀신에게 잡혀갔기 때문이다.

지금 들은 말은 그런 말이다.

-우리가 더 쥐고 있을 이유도 없어. 그냥 놔버리자고.

깊고 무거운 음성으로 귀를 파고든 수사차장 염문열의 말.

과거의 일이다. 여태 가슴 속에 묻어둔 일이다.

97년 서영나이트사건, 사장실에서 살해된 건 범서천파보스와 간부들만이 아니다.

종로서 형사과장도 있었다.

-그 당시 과장이 범서천파하고 붙어먹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어.

다시 귀를 파고드는 염문열의 목소리에 이왕길은 침을 삼켰다.

-과장의 비리야, 우리하곤 아무 상관없어. 우리가 죄를 지었다면 서영나이트사장실에서 귀신에게 살해당한 게 아니라 임무 중 순직한 걸로 한 거지. 유족들에 대한 배려도 경찰구성원으로서의 의리도 다 지켰어.

그렇게 했다. 그렇게 됐다. 과장은 현장에 몸소 나갔고 조직폭력배의 공격에 사망한 걸로, 그렇게 마무리 지었다. 그 후 귀신의 존재는 사라졌고 세월 속에 기억은 묻혀갔다. 그렇게 봉인했던 걸 이왕길 자신이 꺼냈다.

-이과장,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다만 네 잘못 아니다. 일어날 일이 일어난 거야. 네가 장철 DNA를 미제사건 증거와 연결한건 경찰로서 당연한 일이고 칭찬받을 일이야. 다만 재수 없게 결과가 나왔을 뿐이지.

재수 없게, 귀신이 장철이라는 걸 알아낸.

-우리가 뭘 어쩌고 할게 아니야, 여태도 그렇지만 이젠 그냥 사건이야. 있는 그대로 보고 판단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거다. 할 놈들이 하겠지.

무엇을? 할 놈들은?

이왕길이 다시 침을 삼키는데 염문열은 결론을 말했다.

-검찰에도 알려주고 온나라그룹에도 알려주고, 알고 싶다는 놈은 다 알려주자.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야. 한진수 그놈은 죽었어. 귀신에게 죽었지.

귀신이란 말이 귀에 맴돌이치는 가운데 이왕길은 창밖의 구름을 바라봤다.

* * *

창신동 골목길을 무섭게 노려보지만 정확한 방향을 알 수가 없다.

‘귀신, 아니 장철, 당신은 어디로 간 겁니까?’

심중의 물음을 숨으로 흘려내며 최재우는 주차장 영상을 더듬었다.

분명히 창신동 안으로 향했다. 한진수를 등에 업고서다.

옷이 바뀌었지만 무의미한 부분이다. 장철은 백화점에서도 cctv에 찍힐 것을 알고 했다.

‘어디서든.’

여태 그가 움직인 곳에서 전부 그랬다. 그렇지만 정확한 얼굴이 드러난 적 없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모자를 쓰고 안경을 사용했다. 근접해서 촬영하지 않는 이상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장철이란 얼굴을 안 보였다.

‘그인 것도 확실하지. 그래, 정체 따위 이젠 아무 의미 없으니까.’

복수에 모든 걸 걸었다.

이십오년 간 사라져 있던 존재가 다시 칼을 들었다.

그 일을 하는 거다.

옷을 갈아입는 행동 같은 건 그저 작은 혼선을 주려는 거, 시간을 벌려는 것뿐이다.

그 시간이 지금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진수가 귀신의 손 안에 있는 시간.’

가슴속에서 기이한 감정이 뜨겁게 요동치는데 유지건이 달려온다.

“찾았습니다!”

주민센터로 인근 cctv영상을 확인하러 간 송치호에게서 연락이 왔다. 공영주차장에서부터 이동해간 장철의 모습을 찾은 거다. 저 앞의 골목이다.

“가자.”

최재우는 빠르게 걸음을 냈다. 관할서의 경찰차들이 이미 움직이고 있다. 장철이 이곳 창신동에 있다면 빠져나갈 수 없을 거다. 그런데 그럴까?

뜨거운 숨과 감정을 삼키며 최재우는 골목을 이동했다.

오르막길이다, 정상이라고 할 위치는 암릉이 보인다.

안양암이란 사찰이 있다. 그래선지 입춘기도 삼재풀이, 장등 인등접수와 같은 선전물이 곳곳에 보인다.

“저 골목입니다.”

폰에 뜬 주민센터 영상을 확인하며 유지건이 긴장한 목소리를 냈다. 최재우는 바로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본 유지건은 주춤하다가 인상 쓰며 따랐다.

‘지하.’

정확히 다세대의 반지하다. 일층에 영세봉제공장이 있었는데 문을 닫았다. 계단 앞에 선 최재우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권총을 뽑아 쥐었다.

“팀장님, 지원을 기다리는 게……”

유지건의 긴장을 무시하고 최재우는 계단을 내려갔다. 권총을 움켜쥐고, 한발 한발 내디디며, 심장의 고동을 천둥처럼 인지하며, 문 앞에 섰다.

자물쇠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합판의 문, 비죽이 열려있다. 옆으로 비켜서서 다시 심호흡 한 뒤 발로 문을 밀었다. 스르르 열리는 안을 봤다.

최재우는 눈을 부릅뜨고 얼어붙었다.

한진수가 바닥에 엎어져 있다.

그런데 피투성이다.

이편을 보고 있는 머리, 관자놀이 언저리에 뭔가 박혔다.

‘늦었어.’

권총을 스르르 내린 최재우는 안으로 들어갔다.

한진수의 눈이 바라보고 있다.

재생을 멈춘 것 같은 영사기처럼. 그의 앞에 서서 결과를 봤다.

‘가위.’

한진수의 옆머리에 박혀 있는 건 재단가위다. 또 다른 반쪽은 척추에 꽂혀 있다. 이건 마지막이다. 시작은 목에서부터 아래로, 요추에 이르기까지 무수하게 찍었다. 흘러내린 핏물이 옷을 적시고 바닥을 물들였다.

“팀장님!”

곁으로 다가온 유지건의 반응에 최재우는 흠칫했다.

“방금 손가락이 움직였습니다!”

뜨거운 물을 뒤집어 쓴 것 같은 속에서 최재우는 움직였다. 한진수의 목에 손을 대고 맥을 짚었다. 살아 있다. 코에선 가녀린 숨이 흘러나온다.

“구급차 불러!”

유지건은 튀어나가며 폰을 들었다. 계단을 차올라 밖으로 나가니 관할서 경찰들이 달려오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없다. 귀신의 자취는 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