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20화 (20/200)

황혼의 살인자. 20. 과거 1.

20. 과거 1.

온누리병원은 요새처럼 변했다. 개포동과 일원동과 수서를 품은 광수산 자락에 자리 잡은 국내 일등 병원,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다 그렇게 생각하는 병원이다. 이 안에 누워 있는 한진수는 산 게 아니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놓은 놈 멱을 따러 또 올 것 같으냐?’

병원 본관을 바라보며 최재우는 냉소를 흘렸다. 문득 그러고 있는 자신을 인지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할 경찰이 이래선 안 된다. 그런데 한진수가 당한 게 인과응보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팀장님.”

언제나 그렇듯이 뒤에서 불쑥 다가온 유지건, 최재우는 한마디 해주려는 시선을 던졌다. 바로 알아챈 유지건은 비굴한 미소를 흘리며 변명한다.

“제가 고양이처럼 걷는 법을 터득해서요. 흐.”

저녁놀이 유지건의 얼굴에 드리운 걸 문득 깨달은 최재우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점심도 거르고 빵으로 해결하며 이 짓하고 있는 거다. 이제 서른이 된 유지건 같은 젊은 피에겐 더 힘들고 어려운 직업이다.

“아무래도 여긴 괜히 온 것 같습니다. 한진수의 상태가 그렇기도 하지만 여간 적대적인 분위기가 아닙니다. 하 이건 뭐, 우리 경찰이 잘못해서 한진수가 저 꼴이 된 것 같은 기세네요. 경호도 엄청 삼엄하고요.”

불만과 넋두리 섞인 유지건의 말을 들으며 최재우는 병원을 응시했다.

유지건의 말처럼 여긴 괜히 온 게 확실하다. 그래도 걸음 한 이유는 온누리그룹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서다. 사적보복에 나서진 말란 경고다.

‘웃기는 수작이지.’

온누리그룹에겐 정말 그런 수작에 불과하다. 경찰청창이 직접 경고해도 듣지 않을 텐데 참새들이 지저귐이다. 저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전략기획실이란 이름으로 운용되는 조직, 그들의 위험함을 알고 있다.

“온누리 전략기획실 놈들을 엿보다 보면 귀신에게 닿는 게 아닐까요?”

조심스레 나온 유지건의 의견, 최재우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그 부분을 전혀 생각 안한 게 아니다.

귀신의 꼬리를 잡는 게 용꼬리를 잡는 것보다 어려운 현실, 온누리의 움직임 덕분을 볼지도 모른다.

“송형사는?”

최재우가 보는 온누리병원 전경을 응시하던 유지건은 움찔하며 대답한다.

“아직 정릉이랍니다.”

“소득은 있고?”

“그게 뭐, 오래전 일이기도 하고 해서 아직은 별거 없는 모양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최재우는 자신이 시킨 일을 더듬었다.

귀신의 과거를 캐내는 작업이다.

그 일환으로 장철의 여인 하은주에 대한 정보를 파고 있다.

그녀는 장철이 귀신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만났다. 뭔가 나올 수 있다.

“그런데 팀장님, 우리 이대로 합수부 따라지 하는 겁니까?”

불만으로 나온 유지건의 입을 힐긋 본 최재우는 어깨를 미미하게 으쓱했다.

“말단 짭새가 까라면 까는 거지 별수 있냐?”

“아 그래도 이건 좀 그렇잖습니까? 생판 낯선 강남서에다가 합수부랍시고 딱 정해 놓고 뭡니까 이게? 가뜩이나 사이도 안 좋은 검찰까지 한데 모아서 학예회 하잔 겁니까? 파견 나온 검사들이랑 수사관들 보셨죠?”

그것들 눈깔을 이란 말이 이어져 나올 참인데 최재우는 잘랐다.

“그 꼬라지 보기 싫어서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는 거다.”

유지건은 입맛을 다시더니 고갯짓을 했다.

“그렇죠, 자를 테면 잘라라 하면서요.”

합수부에서 자르겠지 설마 경찰짓까지 자르겠냐란 꿍심으로다.

“여긴 철수해도 되겠다.”

“그럴까요? 그럼 이제 어디 가서 뜨끈한 국물 한 사발……”

“서산 까지 얼마나 걸리겠냐?”

“예? 서산요? 충남 서산요?”

거기 말고 다른데 서산이 있으면 말해보렴의 눈빛을 최재우는 부드럽게 던졌다. 그러나 받는 유지건의 입장에선 전혀 그렇지 않은 눈길이다.

“에 뭐 서해안고속도로 타고 가면 두 시간 정도 걸리려나요?”

“가자.”

“엣?”

정말로 거길 간다고? 왜? 하지만 최재우는 대답 없이 차로 향한다. 유지건은 입을 댓발이나 내밀고 따라간다. 차에 오르자 취재우는 말한다.

“장철이 열일곱 살까지 있던 곳이 형제보육원이다. 화재로 전소된 곳이지. 사고 자체가 의문투성이인데 제대로 된 조사 없이 종결됐다. 그 사건 이후 장철은 서울로 상경했지. 행적이 사라진 87년부터 귀신이 된 거고.”

난 그렇게 확신한다는 최재우의 눈은 강한 빛을 냈다.

그 눈빛이 어떤 것인지 잘 알기에 유지건은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진짜 경찰의 눈이다.

그렇다는 걸 깨닫고 나자 자신의 눈도 비슷하게 변했다는 걸 알았다.

“서산에서 장철의 고향 원산도, 대천항까지도 멀지 않죠.”

최재우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는 걸로 대답했고 유지건은 차를 출발했다.

“그런데 형제보육원의 정확한 정체가 뭡니까?”

퇴근길 정체가 시작된 강남길을 가다서다 반복하며 유지건은 물었다.

“글쎄……”

미간을 가득 좁힌, 아니 찌푸린 최재우는 그동안 알아낸 것들을 떠올렸다.

과장에게 이야기를 들은 후에 알아낸, 아니 특별히 그런 건 없다.

아내 유인주가 검색했다. 포털에 검색하자 관련내용들이 줄줄이 나왔다.

“부랑아 수용시설이었다더라.”

“부랑아 수용시설요?”

“부산 형제복지원알지? 그런 거란다. 충남지역의 부랑아들을 강제로 수용한 시설인 거지. 그런데 이제 밝혀지는 거지만 당시 그런 짓들이 범죄에 가깝게 행사됐지. 부랑아들이 아닌 멀쩡하게 부모가 있는 아이들도 거리에서 납치하듯이 데려갔어. 그 짓을 한 게 공무원들과 경찰이고.”

“예, 저도 시사프로그램에서 봐서 압니다. 경찰들이 실적 때문에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하 이건 뭐, 지금 같으면 난리가 날 일인데 당시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짓들을 했으니, 그게 다 군사정권의 만행 아닙니까.”

“그래, 그런 거다, 인권이란 인식자체가 없던 시절의 불행이지. 형제보육원은 나이가 찬 수용아이들을 서산개척단으로 보낸 걸로 돼 있다.”

“서산개척단이요? 그건 또 뭡니까?”

“516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가 ‘사회명랑화사업’ 이란 이름으로 벌인 국가범죄지. 청년들과 여자들에게 부랑아와 윤락녀들이란 터무니없는 굴레를 씌워 잡아 갔다. 그들을 서산의 간척사업에 동원했지.”

“예에? 정말요?”

“강제결혼도 시켰어. 사람들을 모아 놓고 무슨 동물농장처럼, 유기견들처럼 사육한 거지. 13년간 전국에서 25만여명이 140여개의 작업장에서……”

더 말하기 힘들어 하는 최재우, 유지건은 황당한 얼굴이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요? 진짜로요?”

못 믿겠다는 유지건의 반응을 최재우는 이해했다.

아내 유인주가 알려줄 때 자신도 이랬다.

아무리, 대한민국에서 그런 일이 있었으려고, 하는 반응은 영화를 보고 깨졌다.

피해자들은 생존해 있다. 그들이 진실이다.

“혹시 뇌피셜 같은 거 아닙니까? 누가 그런 소리 하는데요?”

최재우는 성질이 돋아나려는 눈길로 유지건에게 말했다.

“네 육촌 누나.”

유지건은 바로 목을 움츠렸다.

“아네, 그러면 명확한 진실이겠네요.”

아내 유인주와 유지건은 육촌남매사이다.

유지건은 아내 유인주를 무서워한다.

두 살 차이인데도 어릴 때부터 맞고 자라서 그렇다.

집에 왔을 땐 스스럼없이 매형이라고 부르지만 일할 때는 꼭 팀장님이라고 한다.

“그런데 형제보육원에서 왠만큼 자란 아이들을 서산개척단에 보냈다고요?”

“아니, 장철이 있을 당시엔 아니지. 그건 그 전의 일이야. 중요한 부분은 형제보육원이 그런 불법적인 일을 하던 곳이라는 거고, 그건 다시 말해 정상적인 보육시설이 아니란 소리고, 그곳에서 사년을 있었던 장철이 귀신이 됐다는 부분이야. 그가 일일곱살 때 그곳에 불이 났다는 거.”

유지건은 묵직한 예감으로 입을 다물었고, 최재우는 결론을 뱉었다.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야 해.”

최재우의 결의가 차안에 뿌려지던 그 순간 전화가 왔다.

“어 송형사.”

송치호의 전화를 받은 최재우는 눈썹을 확 세우며 소리쳤다.

“정릉으로 가자!”

유지건은 바로 차를 돌렸다.

* * *

“어제 오늘 왜 이러나 모르겠네 정말.”

몸집이 좋은 할머니는 잘 차려 입었다. 손가락에 번쩍이는 금반지를 두 개나 끼고 있다. 두툼한 목에도 금목걸이, 소매 속으로 보이는 금팔찌도 찬란하다. 정릉일대가 아파트촌으로 재개발 되면서 재미를 본 모습이다.

“내가 이 동네서 부동산하면서 이렇게 늙었지만 어제 오늘 같은 날은 처음 겪는 구랴. 어제는 경찰처럼 보이지만 경찰이 아닌 게 확실한 사람들이 찾아와서 감나무집에 대해 묻더니만 오늘은 정말 경찰이 왔네.”

최재우는 어금니에 저절로 들어가는 힘을 밀어냈다.

역시 윤진과 온누리에선 즉각 대응하고 있다.

그들도 귀신의 꼬리를 잡기 위해 과거를 파고 있는 거다.

하은주, 그녀가 단서다.

이로서 뭐가 더듬어질지 모르겠다.

“사장님, 중요한 일입니다. 아시는 대로 자세히 좀 말씀해 주십시오.”

송치호는 정중하고 간곡하게 청했다. 오십년이나 부동산을 했으면 아무리 적은 나이여도 칠순이 넘었을 텐데 아직도 현역인 터라 은근히 묻는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이러는 거유?”

이쪽을 떠보는 부동산 여사장의 얼굴에 든 노회함이 짙은 화장의 속에서 번득인다.

그게 구린 냄새처럼 느껴져 최재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사람은, 이 할머니는 무슨 욕심이 남아서 아직도 이렇게 나와 있을까.

“살인사건입니다.”

명료하게 답을 던진 최재우는 묵직한 시선을 던졌다. 그 눈빛에 든 심각성과 경찰로서의 기세를 읽은 부동산 여사장은 작게 헛기침 하고 말한다.

“뭐 어제 그 사람들한테도 말했지만 자세하게 아는 건 별루 없어요. 감나무집이 워낙 사연이 기구하달까, 그래서 동네사람들이 다 아는 거지.”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려는 듯 부동산 늙은 여사장은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 집 마당엔 감이 주렁주렁 열리는 감나무가 있었는데, 그래서 감나무집이라고 불렀어요. 그 집 남자가 암에 걸려서 죽고 여자가 재혼을 했는데, 다 큰 아들이 있는 홀아비였지. 그 집에 들어와서 살았어요. 그게 그 집이 잘못되기 시작한 원인이지. 여자가 혼자 살았으면, 에이, 쯧.”

혀를 찬 부동산 여사장은 더 자세한 사정을 말한다.

“아무래도 생판 남이었던 사람들이 아버지가 되고 오라비가 되니까 그 집 딸 은주가 적응을 못했어요. 위태위태해 보이더니 결국 집을 나갔지.”

여사장은 미간을 선명하게 찡그렸다.

“그 의붓아버지하고 오래비가 찾아내서 데려왔는데, 아무래도 임신을 한 것 같더라 이거지. 길음역 산부인과에서 밤에 몰래 수술했다는 이야기가 쫙 퍼졌지. 배가 부를 대로 불러서 그런 수술은 낳는 거하고 같은데……”

이야기 하며 형사들 눈치를 슬그머니 본 여사장은 다시 목소릴 낸다.

“그런데 은주는 다시 집을 나갔어요, 그 집에선 살수가 없었던 거지. 그때 도망가는 걸 도와준 게 바로 옆집 살던 기훈인데, 그 애가 은주를 어릴 때부터 좋아했거든. 그런데 그 아이들이 도망가서 잘 산 게 아니라……”

이어지는 이야기에 최재우는 작은 충격을 삼켰다.

하은주와 이기훈이란 아이들, 아니 당시 나이가 하은주가 17세 이고 이기훈이 16세였으니 청소년이다.

그들의 도주는 이기훈이 자살한 비극으로 끝을 맺고 말았다.

“나중에 기훈이 친구들이 전한 이야기로는……”

하은주는 유흥업소 여급으로 일했다. 그녀는 마약을 했다.

한번은 모텔에서 히로뽕주사를 과다하게 주사해서 죽을 뻔한 일이 있었다.

단골로 오던 당구장 사장과 그랬다.

이기훈이 그녀를 찾아 가까스로 살려냈다.

“욕조에 알몸으로 넣고 얼음을 있는 대로 부어서 살렸다고 하더라고요.”

도망간 그들의 삶은 그렇게 위태로운 것이었다.

그 마지막은 어느 해 여름 동해안 해수욕장으로 놀러가서였다.

이기훈이 물에 들어가 안 나왔다.

비극적인 자살, 그 주검 앞에서 하은주는 울고 또 울었다고 한다.

“뭐 그런 저런 일이 있고나서 감나무집 여자도 죽었어요. 시름시름 앓았는데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모습이 보기에도 곧 죽겠구나 싶었죠. 여자가 죽고 나서도 의붓아버지하고 의붓오래비는 한동안 그 집에 계속 살았는데, 결국은 집을 팔고 이사했지. 보다시피 재개발로 변했잖우.”

하은주네 혈육은 죽고 피도 안 섞인 남이 과실을 따 먹었다.

심사가 복잡해지고 숨이 편치 않은 이야기다.

그런데 그 이후가 알고자 하는 부분이다.

하은주가 어디서 무얼하다가 귀신 장철을 만났는지, 그게 핵심이다.

“그 후에는요? 하은주씨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살았는지 아십니까?”

다그치듯 물음을 내는 송치호를 마뜩찮게 응시한 여사장은 퉁명스레 말한다.

“그거야 나도 모르죠. 내가 그 집식구들이 처음 이사 올 때부터 이사 갈 때까지 중개를 하기 했지만…… 아 참, 그러고 보니까 은주 엄마가 죽고 난 후에 그 의붓아비가 은주를 찾아갔다가 호되게 당했다고 했는데……”

아슴한 기억을 더듬듯 눈을 가늘게 뜬 여사장은 이름 하나를 짚었다.

“수유리 벌떼클럽인가, 뭐 그런 이름 술집인데 은주가 거기 있었다고 한 것 같아요.”

최재우는 바로 일어섰다. 부동산을 나가며 이미 앞서간 자들을 생각했다. 여사장이 지금 말한 것까지 말 안 해줬다고 해도 그들은 이미 앞이다.

‘장철, 당신만큼 기구한 삶의 여자를 만났군.’

장철의 얼굴에 덧씌워진 귀신의 형상을 더듬으며 최재우는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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