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22화 (22/200)

황혼의 살인자. 22. 포착.

22. 포착.

“귀신 이전에 귀신같은 존재가 있었소.”

전도성은 깊고 복잡한 무게가 든 숨을 연신 흘려냈다. 제가 이어내는 이야기를 되짚어 보려는 것 같은, 살아온 세월을 더듬는 것 같은 숨이다.

“뒷거리에 인생을 건 자들에겐 ‘희광이’ 라고 불렸소. 그자에게 걸리면 희광이 칼에 목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 하고 같다고, 누가 그런 말을 처음 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알려진 자였소. 그자를 그때 봤소. 벌떼클럽에 손님으로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지. 그런데 보스가 갑자기 소집……”

거기까지 말한 전도성은 미간을 찌푸리듯 좁혔다. 형사들을 응시한다. 하지만 긴 한숨을 내쉬고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고 목소리를 이어냈다.

“새삼스럽게 부인하지 않겠소. 알려질 대로 알려진 거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거니까. 그래요, 이젠 상관도 없는 과거일 뿐이지. 흘러간 과거.”

정말로 과거와 완벽하게 단절하고 살고 있는지 누가 알까. 지금 중요한 건 그 과거가 현재로 확 덮쳐온 거다. 그걸 곱씹으며 전도성은 말했다.

“당시 난 벌떼클럽 부지배인이었고 벌떼클럽은 수유리장사파의 사업장이었소.”

그 말로 모든 전후관계를 정리 한 전도성은 묵직한 숨을 이어냈다.

“그날, 419혁명 기념일이었소. 대학생들의 데모로 전경들이 투입돼 거리가 아수라장이었지. 희광이 그자가 손님으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큰형님이 들이닥친 거요. 다짜고짜 희광이를 공격했지. 그라는 걸 알고.”

최재우와 두 형사는 전후사정의 이야기를 들었다.

희광이라는 존재를 수유리장사파에서 긴급하게 인지하고 그랬다는 거다.

그건 희광이가 덫에 걸린 거였다.

수유리장사파 보스를 제거해 달라는 청부가 함정이었다.

“성북동 율재파에서 희광이에게 청부를 주고 수유리장사파에게 알린 거요. 처음엔 그런 자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희광이라는 존재는 어느새 조직들 간에 위협을 느끼게 할 정도가 된 거요. 일면 당연한 일이지.”

당연한 일이란 말의 의미를 최재우는 알았다. 세력팽창을 끊임없이 도모하는 것이 조직들이다. 그러지 않는다고 해도 충돌은 피해갈수 없다.

우연한 충돌이라고 해도 조직 간엔 전쟁이 되는 거다. 그런 일에 희광이라는 존재가 부상했다. 조직들의 암살자로 틈새시장을 파고 든 거다.

‘사형집행인.’

희광이의 본래 뜻은 하회 별신굿 탈놀이에 나오는 백정의 탈이다. 그런데 소설 장길산에서 사형집행자 망나니를 그렇게 이르는 대목이 있다.

‘회자수(?子手).’

의미를 음미하는 최재우의 귀에 전도성의 목소리가 다시 들어왔다.

“그날 희광이 그자를 죽이지 못했소. 큰형님과 간부들은 자신들을 노리고 온 그 자를 죽이려고 전력을 다했지만 실패했소. 거의 그렇게 될 뻔 했는데, 웨이터 중의 한 놈이 뛰어들어서 희광이를 도와 싸우고 도망쳤소.”

최재우는 미간을 확 좁히고 눈동자에 힘을 줬다.

‘웨이터?’

전도성의 얼굴엔 점점 더 복잡하고 무거운 그늘이 드리우고 있었다.

“그 놈,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놈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소. 보통 체격에 아주 과묵한 놈…… 그놈이 싸움에 끼어든 건 희광이에게 잡힌……”

친구 같았다고 한다. 희광이가 방패로 잡은 조폭과 아는 사이였다는 거다. 그 놈의 생사를 무시하고 공격하라는 보스의 명령이 떨어지자 웨이터가 끼어들었는데, 그렇게 흉악하게 싸우는 놈은 난생 처음 봤다고 한다.

“그때 기억이 생생한데…… 허, 무슨 맹수 한 마리를 풀어놓은 것 같았소.”

허탈하고 허망한 실소를 흘려내는 전도성, 그 눈이 다시 응축했다.

“예감 같은 걸 가지고 있었는데……”

중얼거리듯 다시 목소리를 낸 전도성은 벽에 걸린 그림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어느 바닷가풍경을 그린 유화, 그 안의 귀신을 노려보는 것 같다.

“그때 같이 도망간 그 웨이터 놈이 귀신일 거라고 생각했었소. 귀신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본 놈은 다 죽었지만, 희광이가 아무리 변장에 능해도 그날 봤을 때 아닌 걸 알았소. 그놈은 이미 늙었었어.”

늙었다는 말이 주는 함의를 형사들은 곱씹었다. 지금의 장철 나이쯤 됐던 걸까, 그건 맞는데 장철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 하는 곤혹이다.

전도성은 계속 이야기했다.

“그날 희광이는 제대로 당했소, 한동안 병원신세를 저야 했을 거요. 다시는 암살자 노릇을 못할 정도라고 판단하지만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니까 진상은 모르는 거고. 그래도 나는 귀신이 희광이를 이었다고……”

그렇다는 거다.

그날 함께 도망친 세 사람 중에서 귀신이 탄생한 거다.

전도성의 말처럼 소거하고 가능성을 따지면 그 웨이터가 분명하다.

희광이는 다쳤고 나이 들었으며 잡혔던 조폭 놈 보다는 그가 맞는 것이다.

“일 년 후에 귀신이 큰형님을 죽였소.”

씹던 것을 뱉어내는 것 같은 전도성의 말, 최재우는 기록을 떠올렸다. 귀신이 저지른 것으로 추정하는 스물일곱건의 살인, 그 중의 하나다.

“성북동 율재파 보스 신율재도 죽었지.”

눈동자에 곤두섰던 기운을 스르르 풀어내며 전도성은 말을 이었다.

“큰형님은 집에서, 신율재는 사우나에서 죽었지. 아무도 몰랐소. 어떻게 침입하고 접근했는지.”

힘 풀린 시선을 든 전도성은 최재우를 응시하고 뒷말을 냈다.

“그때부터 귀신이라는 별명이 붙은 거요.”

유지건이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 가운데 최재우는 입을 열었다.

“함께 도주한 조직원에 대해 조사하지 않았습니까? 그 웨이터가 귀신이라고 생각했다면서요? 웨이터는요? 신상정보를 파악하지 않았습니까?”

이젠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듯,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로 전도성은 대답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삼십오년 전이오. 웨이터 채용하는 데 이력서 받고 하지는 않지. 함께 달아난 놈도 고향이 충청도라는 정도만 알뿐이었고.”

충청도라는 소리에 최재우는 눈썹 끝을 움직였다.

‘그렇군. 고향, 접점이야.’

전도성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귀신의 정체에 대해선 여러 가지 말도 많고 설도 많았소. 내가 생각한 것도 그 중의 하나일 뿐이었지. 그랬는데, 삼십오 년이 흘러갔는데……”

찌푸리듯 좁힌 미간으로 테이블을 보며 전도성은 말했다.

“귀신이란 이름이 뉴스에 나오고, 그러자 마자 당신들이 찾아왔소.”

전도성은 최재우의 눈으로 시선을 맞추고 되물음을 던졌다.

“가희는 귀신과 어떤 사이요?”

최재우는 깨달았다. 전도성의 저 눈이 말해 준다. 삼십오 년 전 벌떼클럽의 부지배인 이었던 이 사람은 하은주를 특별하게 여기고 있었던 거다.

‘사진을 보자마자 단 번에 알아본 건 그래서야. 삼십오 년이 지났지만.’

느릿하게 숨을 삼킨 최재우는 대답을 냈다.

“귀신의 여인입니다.”

흠칫하는 반응을 보인 전도성은 다시 테이블로 시선을 내리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이제 알겠다고, 뉴스에서 나온 사건내용들로 짐작한 게 맞다고.

“장철이란 남자가 역시 귀신이군.”

느릿하게 시선을 내리며 전도성은 허탈한 숨을 내쉰다.

아니 떨리는 숨이다.

삼십오 년 만에 귀신의 정체를 알게 됐다.

이제 전후가 명확해짐이다.

형사들의 방문과 귀신의 사건, 과거의 일, 확실하게 아귀가 맞는다.

‘복수.’

장철이란 남자의 손녀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딸은 그 충격으로 병원에서 투신자살했다.

장철은 그 복수를 하고 있다.

윤완규를 죽였고 한진수를 산시체로 만들었다. 그래서 경찰들이 왔다.

하은주를 물어본 이유다.

“귀신과 하은주의 접점을 파악하려고 왔다면……”

중얼거림처럼 다시 입을 연 전도성은 이를 악무는 숨소리로 뒷말을 이어냈다.

“제대로 온 것 같소. 나도 오늘에야 제대로 알게 됐군. 그래, 그렇게 된 거야. 삼십오 년 전 그날, 419 혁명기념일 밤, 벌떼클럽엔 가희도 있었소.”

전도성은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계속 말한다.

“그날이오. 그 이전엔 그들이 만난 적이 없소, 가희는 한동안 안 나오다가 그날 나왔소. 가희가 안 나오던 동안에 그 웨이터놈이 들어왔지.”

그놈이 귀신이야, 라는 중얼거림이 전도성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마주 앉은 최재우는 강렬한 예감을 확신으로 삼키면서도 의구심을 가졌다.

‘그날. 맞아, 그날이지.’

그런데 그날 하루에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 수 있을까?

게다가 장철은 희광이라는 인물과 고향친구와 함께 도망쳤는데?

그럼 그 이후에?

처음 본 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아니면 어디선가 우연히?

‘뭐든.’

의구심 위로 확신의 기둥을 세운 최재우는 일어섰다.

더 이상은 나올게 없다.

장철의 친구로 여겨지는 조직원에 대한 정보를 얻는 다면 좋겠지만 없다.

그 부분은 애초의 방향대로 충남이다. 그 곳에 가야 한다.

“늦은 시간에 감사했습니다.”

최재우는 두형사와 인사하고 돌아섰다. 그러며 보니 전도성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한 반응으로 멍한 눈이다. 과거의 기억 속에 아직 있다. 그것이 하은주에 관한 것이든 귀신에 관한 것이든 저 사람의 것이다.

‘삼십오 년간 품어온, 죽을 때까지 안고 가는.’

무거움 속에 가야할 곳을 찾는 발걸음의 가벼움으로 최재우는 밖으로 나갔다.

* * *

“어떻게 생각해?”

오동진은 형 오동철의 눈을 무겁게 응시했다. 정말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인 거다.

“의왕의 백운호수란 말이지……”

장소를 중얼거린 오동철은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원목책상에서 돌아서 창밖의 야경을 보는 눈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내쉬는 숨도 마찬가지다.

“세경개발에서 차지한 타운하우스단지야. 개발부터 시공까지 한 게 중경이란 작은 회사인데, 자금부족으로 세경의 돈을 쓴 게 독배를 마신 거지. 거기 고초희가 있다는 건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네.”

등 뒤에서 들려온 동생 오동진의 곤혹스러움을 오동철은 공감했다. 고초희에게서 직접 연락이 온 거다. 당신들 귀신 장철을 쫓고 있지 않냐고.

‘그날 그 차에 같이 타고 있었단 말이지……!’

전혀 예상 밖의 이야기다. 아무도 모르는 내용이다.

지금 뉴스에서 보도되고 있는 것도 진짜 운전자 한진수가 귀신이란 희대의 청부살인자에게 보복 당했다는 내용뿐이다.

다들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런데 이건 뭔가.

“윤완규가 한진수의 이름을 말했고, 한진수가 고초희 제 이름을 말했다는 거잖아? 귀신에게? 그렇지? 고초희가 너한테 전화로 말한 게 그거지?”

몸을 돌리며 오동진에게 물음을 던진 오동철, 그게 물음이 아니라 확인임을 오동진은 안다. 내용이 놀랍고 전후를 이해하기 어려운 진실이다.

“고초희가 무슨 생각으로 전화했는지는 모르겠어.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건 맞는 말이란 거지. 귀신이 고초희를 인지했다면 죽이려고 접근할 거고, 윤완규 한진수의 경우에서 보듯 바로일 거란 거. 그는 귀신이니까.”

오동진의 생각에 오동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틀림없이 그렇겠지. 방법이 무엇이건 간에 귀신이라면 그렇게 할 거야. 그런데 문제는 고초희야. 아무도 모르는 진실을 제 위치와 함께 알린 의도. 제 아버지의 힘이면 귀신의 공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텐데?”

“걱정이 아니라 그 반대지. 세경 고회장의 능력이면 귀신이 당할 거야.”

“그런데 우리에게 알렸다? 귀신이 접근할거니까 와서 맘대로 해 보라고?”

“그거지.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그럴 거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거니까. 그런데 제 아비에게 알리는 대신 우리에게 알린 건……”

“그런 건?”

오동진은 형 오동철을 말없이 응시하다 입을 열었다.

“놀아보고 싶은 모양이야.”

오동철은 미간을 확 찌푸렸고 오동진은 이어 말했다.

“고초희의 목소리에서 느꼈어. 차분하고 담담했지. 윤완규와 한진수가 그렇게 됐는데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어. 오히려 반대였지.”

오동진은 형 오동철의 눈을 향해 남은 말을 던졌다.

“그 목소리엔 숨어 있는 희열과 흥분 같은 게 있었어.”

움찔, 눈 밑을 꿈틀거린 오동철은 뜨거워진 숨을 길게 뿜어냈다.

‘이건……’

고초희의 의도가 뭔지 명확하게 모르겠지만, 고초희란 존재도 그렇지만, 이것은 기회가 분명하다. 귀신을 잡을 기회, 고초희가 만들어 주고 있다.

“하자.”

오동철은 결론을 내렸다. 오동진은 일어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시간은 자정을 넘어갔다.

과천봉담간 도시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호수 길로 접어들었다.

호수 건너편 백운호수 음식마을의 불빛이 수면에 반짝거린다.

지도를 토대로 파악한대로 백현마을회관을 지나 우측길로 들었다.

‘이길 이름이 우일로.’

인적이 없는 도로 저편에 목표가 보인다.

백운레이크 타운하우스단지다.

저곳에 고초희가 있다.

이젠 차를 숨기고 은밀히 접근해야 할 때다.

라이트를 끄고 주행하던 장철은 노변의 숲속에 차를 들이 밀었다. 사당동까지 조웅의 승합차를 타고 이동, 주택가의 낡은 차를 훔쳐 타고 왔다. 전철이나 버스에서의 노출도 그렇지만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였다.

‘한번.’

여기서 일을 마치고 갈아입을 옷만 준비했다.

팔당에서처럼 산을 타고 이동하면 된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곳으로, 예상하지 못하는 시간에 가는 거다.

그러나 그 보다 중요한건 확실하게 일을 마무리 하는 거다.

‘고초희.’

그년이 저기 있다.

분양이 이루어지지 않아 불 꺼진 타운하우스 단지 안이다.

조웅의 기반으로 인한 정보력은 역시 대단하다.

저 안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와 단지 청소용역자들에게서 나온 정보를 캐치한 거다.

세경개발 회장의 딸이 있다는 이야기.

그걸 알아내자마자 장철 자신에게 알렸다.

그래서 여기 이렇게 왔다.

이제 복수의 마무리를 지을 때다.

‘모가지를 따 주마.’

장철은 어둠 속의 귀신이 되어 타운하우스를 향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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