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23화 (23/200)

황혼의 살인자. 23. 공격.

23. 공격.

수유리 유흥가의 불빛은 자정이 넘어갔건만 화려하다.

오히려 더 강렬하게 살아나고 있다.

코로나여파로 죽지 못해 숨을 쉬던 곳들이 포효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보복이라도 하듯이 거리로 나섰다.

다들 즐거운가.

‘전과 같아지긴 했지만. 아니 같아진 건 아니지.’

불안한 일상을 열어놓은 문밖의 풍경을 보며 최재우는 수저를 놀렸다. 뜨끈한 선지해장국, 맛이 일품이다. 술집이 몰려 있는 유흥가답게 해장국집들도 몰려 있다. 그중 아무 집이나 들어온 건데 제대로 찾았다.

“와, 이집 죽이네요. 강북서 친구들은 근무 할 맛 나겠는데요?”

유지건의 감탄에 송치호가 바로 찬물을 끼얹는다.

“이 지역 사건 사고가 얼만 줄 알고나 하는 소리냐?”

“에?”

“여긴 신명시하곤 차원이 다르다고 짜샤.”

“어, 그런가?”

뭐 그렇거나 말거나 하더니 다시 수저질로 집중하는 유지건, 송치호는 최재우의 표정을 살피더니 입을 연다.

“먹고 바로 출발하실 겁니까?”

해장국그릇에 고개를 박을 듯하던 유지건도 바로 머릴 들었다.

다음일정, 충남 서산으로 가는 것이다.

송치호가 물은 건 정말 이대로 가냔 거다.

“이 밤에 어딜 가? 내일 아침 일찍 가자. 밥들 먹어.”

최재우가 말하자 두 형사는 안도하는 빛으로 해장국을 먹었다. 그 모습을 응시하며 최재우도 늦은 저녁을 먹었다. 그러나 생각은 하나뿐이다.

‘삼십오 년 전 여기서 그들은……’

귀신은 희광이를 만났다.

귀신이 생겨난 시작이다. 그리고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그녀를 만났다.

하은주, 장철의 여인은 벌떼클럽에서 일했다.

‘그 후 십년간 장철은 귀신으로 활동했어.’

97년 서영나이트사건으로 자취를 감추기 전까지다.

하은주와 그 시간 동안 계속 같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확실한건 이십오 년 전 자취를 감출 때 하은주와도 헤어진 거다.

딸 장민지가 이십오 년 만에 찾아간 거다.

‘딸이 있다는 것도 몰랐어.’

장철의 앞집 사는 할줌마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렇다.

딸 장민지가 미혼모가 되어 아버지 장철을 찾아온 거다.

엄마 하은주가 죽기 전에 아버지에 대해 알려준 거다.

장민지도 아버지 장철을 바로 찾아가진 않았다.

‘아기를 낳고 나서.’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세상임을 깨닫고, 아버지를 찾아가란 엄마의 유언을 그때서야 들은 거다. 장철은 놀라면서도 딸과 손녀를 맞아 들였다.

‘들은 이야기와 정황을 토대로 한 짐작이지만 맞을 거야.’

중요한 부분은 이 정황, 이야기, 그들의 사연 속에 있다.

‘장철에게 이어지는 연결고리.’

이십오 년이란 세월의 간극이 있다.

97년 귀신이 사라질 때 장철은 하은주에게서도 떠났다.

그런데 나중에 연락하라고 연락처를 남겼을 리가 없다.

하은주와 장철의 관계는 그때에 끊어진 거다.

그런데 이어졌다.

‘하은주가 장철의 소재를 알 수 있는 방법, 원래부터 알던 게 아니라면 누군가 중간에 있는 거야. 연락하도록 도운, 그렇게 해준 누군가가 있어.’

분명하다. 누군가가 있다.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생을 마감한 하은주에게 장철의 연락처를 알려준 인물이다.

그는 귀신의 유일한 동료일 것이다.

‘그런 인물이 있다면, 아니 있는 게 확실해. 그런데 하은주와는 어떻게?’

이 부분이 막히는 부분이다.

장철의 연락처를 알려준 존재와 하은주가 어떻게 만났느냐다.

우연히 만났다? 어디서?

서로 알아 볼 수 있었다?

‘안면이 있는 사이.’

최재우는 수저를 내려놓으며 한사람을 떠올렸다.

‘함께 도망친 조폭.’

삼십오 년 전 419혁명 기념일의 그 밤, 벌떼클럽에서 도망친 자.

그는 장철의 고향친구일 가능성이 높다.

수유리장사파의 조직원이었으니 하은주와는 평시에도 마주쳤을 거다.

그들이 어디선가 만났을 가능성이다.

‘일단 확실한 신원확인부터 해야겠군.’

도망친 조폭, 장철의 고향친구, 그가 누군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급하다. 인물을 특정하면 주변조사는 수월해진다. 전과가 있다면 뻬박이다.

‘형제보육원일 가능성.’

장철은 열세 살에 그곳에 수용됐다.

그렇다, 그건 수용이다. 말이 보육원이지 강제 수용시설인 거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일 가능성이 있다.

그보다 더 어린 시절의 친구일 가능성도 있지만 예감은 그곳이라고 한다.

‘원인모를 화재로 사라진 곳.’

형제보육원에 수용돼 있던 아이들은 그때 반 이상 사망했다.

사망하지 않은 아이들, 열 살 아래 아이들이 있던 나동은 무사했다.

그곳에 있던 아이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그건 나이가 안 맞는 것도 같다.

‘삼십오 년 전 당시 장철의 나이가 스무 살……’

도망친 조폭도 그 정도는 돼야 조직에서 받아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절대기준은 아니다. 열일곱 정도라면 가능했을 수 있다. 그 부분이 아니라면 도망친 아이가 있을 수도 있다. 형제보육원을 탈출한 아이다.

‘어쨌든 알아내는 수밖에.’

물 잔을 들어 올린 최재우는 두형사의 시선이 밖으로 나가고 있는 걸 봤다.

뭘 보나 고개 돌리니 아가씨들이다.

섹시하게 차려입고 업소로 가는 여자들, 유지건과 송치호 같은 총각들에겐 강렬한 페로몬 향기다.

“정신들 안 차리냐?”

물 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은 최재우의 목소리에 두 형사는 흠칫하며 현실로 돌아왔다. 의자를 밀고 일어선 최재우는 계산대로 가 카드를 내밀었다. 그 뒤로 두형사가 머쓱한 얼굴로 다가섰지만 눈길은 여전히 거기다.

* * *

개방형 타운하우스단지답게 사방이 열려 있다.

들고나는 곳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기에 행동하기에 용이하다.

그렇지만 반대로 위험역시 개방된 상태와 같다.

은밀하게 들어가서 마무리 짓고 신속하게 나와야 한다.

‘중앙.’

단지 중앙, 마당에 환히 불이 켜진 집이다.

고초희가 저 곳에 있다. 그 집의 우측 편에 관리실 건물이 있다.

저곳에 고초희의 경호원들이 상주하고 있다고 했다.

정확한 인원은 모르지만 대략 십여 명이라고 들었다.

‘최단 경로.’

중앙의 집으로 접근하는 가장 빠르고 안전한 경로를 장철은 머릿속에 그렸다.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 떨어진 주택들은 한집 건너 불이 켜져 있다.

빈 단지의 휑함을 가리려고 마당의 조명만 일부러 켜 놓은 거다.

노출콘크리트공법으로 지은 이층집들이다.

견고하고 부유한 느낌이다.

데크가 깔린 현관 앞마당엔 바비큐파티를 할 수 있도록 갖춰져 있다.

낮은 목책 담장엔 꽃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누가 봐도 부러운 집이다.

‘이런 집에서……’

딸과 손녀를 떠올린 장철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다시 현실에 집중하며 호흡을 골랐다.

단지 내에 설치된 카메라의 위치를 피해 이동을 시작했다.

조웅의 정보대로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파악한 거다.

단지 청소를 하는 용역업체의 인부들.

그들은 일하면서 단지의 배치와 cctv의 위치를 자연스럽게 파악한 거다.

그 내용이 조웅에게서 장철 자신에게 왔다.

그렇지만 신중해야 한다. 파악 못한 내용들이 있을 수 있다.

‘돌발 변수.’

언제 어느 때 생길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언제나 생긴다고 가정하고 임해야 한다. 그래야만 변화하는 상황에 냉철하게 대응할 수가 있다.

‘화단 뒤.’

주택 뒤 콘크리트 벽에 몸을 붙인 장철은 파랗게 번득이는 빛을 보고 멈췄다.

저건 분명히 짐승의 눈빛이다.

자신처럼 안 움직이고 바라본다.

느릿한 움직임으로 장철은 걸음을 냈다.

그 순간 화단 뒤 짐승도 움직였다.

화단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이를 보인다.

외형이 거친 들개다.

장철은 무릎을 접고 앉아서 두 손을 내보였다.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커다란 백구는 어둠 속에서도 보이는 지저분한 털을 곤두세우고 있다.

장철은 눈으로 말했다.

가라고, 나도 내 갈 길을 가겠다고.

그걸 알아들은 걸까.

들개는 스르르 몸을 돌린다. 화단 속으로 들어가 사라진다.

‘개가 있었다면.’

미간을 옅게 찌푸린 장철은 그 부분을 생각했다. 조웅의 정보에서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기에 대비를 하지 않았지만, 갑자기 개를 배치한다든가 했을 수도 있다. 그런 것이 돌발변수가 되는 거다. 어쨌든 이제 됐다.

‘먹을 걸 구하러 왔구나.’

사라진 들개를 짐작하던 장철은 다시 움직였다. 어둠속을 유영하는 귀신처럼 단지 중앙의 집으로 다가갔다. 단지에서 가장 큰집, 삼층집이다.

목표한 집 주변에 조성된 화단 안으로 장철은 다이빙 하듯 스며들었다. 일체의 소리도 기척도 없다. 5초간 그대로 있다가 포복으로 전진했다.

‘정면과 왼쪽 카메라의 사각.’

파악한 카메라들의 사이로, 사각을 찾아 장철은 기어갔다. 느리지만 꾸준한 거북이처럼, 누구도 알지 못하게 거리를 좁혔다. 그렇게 벽에 붙었다.

호흡을 가다듬은 장철은 배수관을 잡고 견고함을 가늠했다. 체중 68kg에 174의 체격을 가진 자신이 이걸 타고 올라갈 수 있을까, 가능하다.

장철은 오르기 시작했다. 배수관에 붙어 등반가가 됐다.

삽시간에 3층 베란다에 올랐다.

납작 엎드려 동정을 살피길 역시 10여초, 문에 붙었다.

‘응?’

베란다 문에 열려 있다. 잠금장치가 걸려 있지 않다.

조심스레 미니 스르르 열린다.

귀신처럼 안으로 들어가 빠르고 소리 없이 닫았다.

외풍으로 인한 내부 문의 미세한 움직임이 있을 수 있기 때문, 다행이 괜찮다.

방안은 어둠에 잠겨 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외부 조명 빛만이 드리워져 있다. 그 속에서 장철은 생각했다. 배란다문이 안 잠겨 있는 부분이다. 일단 부주의해서, 또는 외부침입에 대한 걱정이 없어서일 수 있다.

‘아무도 모르니까.’

고초희가 이곳에 있다는 건 저들만의 비밀이다.

바로 곁엔 십여 명의 경호원들이 상주하고 있다.

그런 방심이 만든 결과일 거다.

아니 그보다는 청소하는 사람의 부주의일 거다.

경호원들 역시 비슷한 안일함이다.

‘그래도 이건 돌발 변수.’

예상치 않은 상황이 분명하다. 때문에 장철은 긴장을 배가시켰다.

긴장 때문에 몸이 경직되지는 않는 한도 내에서 가지는 경각심이다.

더욱 신중하게 걸음을 냈다.

방문 손잡이를 잡고 아주 느리고 소리 없이 열었다.

적막, 고요.

이층으로 이어지는 좁은 복도에 어둠만이 내려앉아 있다.

그런데 아래층에서 음악소리가 올라온다. 흐린 불빛이 올라오는 것처럼.

갑자기 켜진 조명과 음악에 장철은 흠칫했다.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고 벽에 붙어서 상황을 주시했다.

옅은 음악소리에 맞춰 누군가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젊은 여자의 소리다.

고초희, 그년이 거실로 나온 거다.

긴 숨을 소리 없이 뿜어낸 장철은 다시 움직였다.

발끝을 끌며 이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앞에 섰다.

허리 벨트에 착용한 쿠크리를 잡았다. 소가죽을 돌린 손잡이의 감촉이 피를 데운다.

그런데 뒷골이 왜 서늘한 걸까.

‘뭐지?’

미간에 깊은 골을 그린 채 장철은 이 감각, 예감을 더듬었다.

뭔지 모르게 발걸음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예감을 느꼈던 적이 있다.

‘조웅이 날 팔아먹었을 때.’

계단 앞에 서서 장철은 석상이 됐다. 아래서 올라오는 흐린 조명의 음영 속에서, 귀를 파고드는 여린 음악소리 속에서 고초희의 흥얼거림 속에서.

마침내 장철은 걸음을 냈다.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내려갔다.

이층 거실로 이어지는 마지막 계단을 내려섰다.

흐릿한 조명이 거실을 비추고 있다. 에탄올 화로의 불빛이다.

어둠 속이라 그 빛만으로도 다 보인다.

그렇게 봤다.

거실 중앙의 소파에 그년이 앉아있다.

창밖을 보며 와인잔을 들고 있다.

흥얼거리고 있다.

무슨 감흥에선지 저러고 있는 거다.

거실 좌측 벽 앞엔 그냥 봐도 고가의 것이 분명한 음향기기가 작동하고 있다.

작게 틀어놓은 음악이 뭔지 모르겠지만 심장고동을 재촉하는 것 같다.

뒷모습이 보이는 년, 고초희는 아무것도 모르고 흥얼거린다.

장철은 걸음을 다시 냈다.

그 순간 고초희가 보는 거실 창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걸 봤다.

고초희도 봤다.

그런데 저년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변수!’

장철은 깨달았다.

계단 위에서 느낀 예감, 그 실체가 지금 닥친 다는 것을.

방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그 순간 장철은 몸을 던졌다.

귀 옆으로 화끈한 것이 지나간다.

총구화염, 방안에서 터진 그것은 뒤에서도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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