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24. 함정.
24. 함정.
무선 이어폰을 귀에서 뗀 오동진은 묵직한 숨을 흘려냈다.
형 오동철이 직접 나선 일, 이제 귀신은 해결될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마뜩찮다.
세경개발 고종환회장의 딸 고초희가 알려준 일, 그녀의 작품이다.
‘스스로를 미끼로 함정을 팠다…… 역시 고종환의 피인가.’
새삼 그 의미를 삼키며 오동진은 차창 밖의 어둠을 응시했다.
타운하우스단지와 그 앞의 백운호수가 한 눈에 보인다.
어둠이 내린 호수엔 주변의 불빛이 비쳐 반짝거리고 있다. 타운하우스단지도 그 풍경 안에 있다.
‘이제 곧 시작될 거야.’
형 오동철은 고초희와 귀신을 기다리고 있다.
혼자가 아니다.
형의 군대 동료와 후배들, 삼총사가 함께 있다.
그들 셋이면 형이 움직일 일도 없을 거다.
귀신, 장철은 관을 보기 위해 오는 거다.
이제 그는 죽는다.
‘고초희.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갑툭튀로 튀어나온 존재가 고초희다.
그녀는 깜짝 놀라게 했다.
대담하게 오동진 자신을 찾아 윤진건설 비서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3월 24일, 모든 일의 시작이 된 그날 그 차에 함께 타고 있었단 진실을 토해냈다.
‘고종환회장은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미간을 가득 좁히고 오동진은 내용을 더듬었다.
사건 직후 윤완규는 아버지 윤종대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허겁지겁 별장으로 달려가려던 윤회장은 윤완규가 이미 체포됐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그때는 혼자였다.
‘혼자인줄 알았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윤완규는 제가 운전한 게 아니라고 진실을 말했다.
온나라그룹의 막내아들 한진수가 운전했다고 했다.
그놈은 경찰에 잡히지 않았다. 별장으로 온나라 전략기획실 놈들이 데리러 온 거다.
‘거기까지가 전부인 줄 알았더니……’
서프라이즈한 내막이 또 있었다.
고초희가 윤완규 한진수와 함께 있었던 거다.
그녀도 별장에서 사라졌다.
그렇다면 한진수와 함께 간 거다.
그 흐름에서 고종환회장에게 보고가 안됐을 리가 없다.
그는 알고 있다.
‘오늘 일은 모르는 거고.’
어금니를 물었다 풀며 오동진은 타운하우스단지를 바라봤다. 저 안에 형 오동철과 함께 있는 고초희, 귀신을 기다리는 스물여섯의 아가씨는 대담하다는 말따위로 설명가능하지 않다. 그녀는 이 일을 즐기는 중이다.
‘제 아버지 몰래 이런 일을 꾸며서.’
고종환회장이 절대 용인하지 않을 일이다.
이런 외진 곳에 고초희를 머물게 한 것도 임시방편이다. 분명 해외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고초희는 그럴 생각이 없는 거다.
형과의 대화에서 모든 게 드러난다.
‘마지막 숨통을 제 손으로 따겠다고?’
어처구니없는 그녀의 요구조건.
형 오동철의 폰을 통해 이렇게 차에 앉아 들은 방금 전의 이야기다.
그런데 듣는 순간 어이없다는 감정과 동시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에게 전화를 해왔을 때도 느낀 것, 위험함이다.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고초희가 그런 존재일 거란 걸 오동진은 확신했다.
‘아니, 그런 용어만으론 설명하기 힘들어.’
태어나서 처음 겪어 보는 유형의 인물이다. 충동적이고 감정조절에 미숙한 사이코패스와 그런 점을 조절하는 소시오패스, 합쳐놓은 것 같다.
‘뭐든. 오늘 할 일만 마무리 하면 돼.’
고초희를 이용한, 아니 그녀가 제공해준 기회를 움켜잡았다.
이 손에 힘이 풀려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형 오동철이 나선 이상 끝난 일이다. 오동진 자신이 이렇게 주변차단을 준비 중이다.
‘만에 하나를 대비한 거지만 의미 없어.’
오동진 자신과 현진 써큐리티 직원들이 대기 상대로 있다.
하남에서 귀신 장철이 사라진 걸 알고 있어서다.
정말로 만에 하나 형 오동철과 삼총사의 공격을 피해 장철이 도주한다면, 호수든 산이든 막기 위해서다.
눈에 힘을 주던 오동진은 순간 눈동자를 응축했다.
섬광이 명멸하고 있다.
‘왔구나!’
고초희가 있는 곳, 형 오동철이 기다리는 곳, 단지 중앙의 3층집에서 총구섬광이 터지고 있다. 고초희가 켜 놓은 에탄올화로 불빛, 흐릿한 그 위로 카메라를 터트린듯이 어둠을 때리고 있다. 저 속에 귀신이 있다.
“준비해라.”
만일을 위한 대비를 직원들에게 폰으로 알린 오동진은 권총을 움켜잡았다.
* * *
고초희가 열어 놓고 나간 방문 틈으로 놈이 보인다. 예상대로 3층을 통해 침투했다. 등을 보이고 앉은 고초희에게로 다가간다. 이제 끝낼 때다.
‘귀신, 오늘이 제삿날이다.’
숨을 멈춘 오동철은 방문을 확 열었다.
고초희의 뒤로 다가서는 귀신에게 권총을 발사했다.
소음기를 끼운 LH9이다.
국산 권총의 대표 K5의 상업용모델 DP51의 개량형, 손에 반동을 주면서 불꽃을 뿜어낸다.
‘응?’
오동철은 미간을 뒤틀었다.
백발백중인 자신의 사격이 실패했다. 귀신은 정말 귀신처럼 몸을 던져 피했다.
이해할 수가 없다.
이정도 거리에서, 전혀 인지하지 못했을 텐데 피했다.
이건 절대 상식으로 이해불가다.
‘내가 아니래도!’
그거다, 오동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쐈어도 이런 상황, 이 거리에선 맞아야 한다.
그런데 귀신은 총격이 터지는 순간에 몸을 던졌다.
미리 알 수 없었으니 이 순간의 반응이다.
저런 반응이 가능하단 말인가?
오동철의 놀람은 찰나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귀신이 동료의 공격도 피하고 있다.
방안에서 나온 자가 발사한 총탄은 귀 옆을 스쳤다. 예감의 경고가 없었다면 머리통이 터졌을 거다. 상대는 명사수다. 그리고 그건 뒤쪽도 같다.
구르며 휘돈 장철은 바닥에 박힌 총탄의 울림을 느끼며 튕겨 일어났다.
비보이들의 움직임 같은, 그러나 그보다 훨씬 빠른, 귀신의 바람처럼 솟구쳐 돌았다. 하지만 이탄과 삼탄의 총격을 연속해서 피할 순 없었다.
어깨와 옆구리에 박히는 총탄의 감각을 무시하고 장철은 상대를 향해 나갔다. 자신의 등 뒤, 계단을 통해 올라온 놈은 초탄의 실패에 놀랐지만 이탄과 삼탄을 정확하게 발사했다. 머리와 심장을 피해 그걸 받았다.
네번째 총탄을 발사하려는 놈.
그 눈이 놀람과 분노로 응축하는 순간 장철은 쿠크리를 그었다.
놈이 내민 손, 방아쇠를 당기려는 손목을 잘랐다.
찰나에 일어난 결과, 손목이 떨어져나가는 순간에 장철은 떠올랐다.
뒤로 물러나는 상대의 반응보다 더 빠르고 강력하게 나아가는 장철, 그 몸에서 무릎이 튀어나갔다.
박 터지는 소릴 내는 상대의 머릴 잡고 돌아갔다.
그 순간 방안에서 나온 놈이, 처음 총 쏜 놈이 권총을 연사했다.
안면을 부순 놈을 잡고 장철은 총탄을 막아냈다.
방에서 나온 놈은 더 이상 총을 쏘지 않았다.
놈의 눈알이 험악하게 빛나는 걸 본 그 순간 장철은 소파에서 돌아보는 고초희를 봤다.
웃고 있다. 하얗게 웃고 있다.
장철은 쿠크리를 잡고 있던 놈에 등에 쑤셨다.
칼날은 늑골 사이를 파고들어 폐를 찔렀다.
소리도 못 내고 경직하는 놈을 잡고 이동하는 순간 아래층에서 두 놈이 올라왔다.
놀라는 놈들 눈앞에서 권총을 밟았다.
손목과 같이 떨어진 권총을 차올려 잡은 장철, 그 순간 외침이 귀를 파고든다.
“죽여!”
방 안에서 나온 놈이 외치며 권총을 쏘기 시작했다.
장철 자신에게 잡혀 있는 동료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공격이다.
아래층에서 올라온 두 놈도 권총을 발사한다.
무지막지한 그 총격을 잡은 놈으로 막아냈다.
피가 튀고 살이 튀는 가운데 장철은 뒷걸음질 했다. 구석까지 물러나 소파에 앉은 고초희까지 좌측정면으로 보이는 상황, 드디어 때가 왔다.
안방에서 나온 놈의 탄창이 비었다. 18발을 발사했다. 놈에게 총을 쐈다.
이미 시체가 된 놈의 겨드랑이 사이로 발사한 총탄, 놈이 피해 방으로 몸을 던졌다. 아래층에서 올라온 두 놈에게로 총구를 돌렸다. 탄창이 빌 때까지 연사했다. 두 놈이 계단참으로 몸을 피한 순간 장철은 움직였다.
시체를 밀어 던지고 폭발하듯 튀어나간 장철은 다시 나오는 두 놈에게로 쿠크리를 던졌다.
부메랑처럼 날아간 쿠크리가 한 놈의 미간에 박힌 순간 다른 놈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그 순간 다이빙하듯 몸을 던졌다.
머리 위로 지나간 총탄의 허망함을 상대가 느낄 새 없이 장철은 다리를 잡고 굴렀다.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반응하는 상대의 안면에 뒤꿈치를 박았다.
다리를 잡고 구르며 돌아 솟구친 발, 상대는 예상조차 못했다.
벽에 부딪치며 쓰러지는 상대의 몸 위에서 장철은 돌았다.
회전하는 그 힘으로 다리를 부러뜨리고 몸을 뒤집었다.
방에서 나온 총탄을 막았다.
동료의 총탄을 등으로 맞은 놈, 이마가 깨진 얼굴엔 죽음이 드리웠다.
“으아아!”
방에서 다시 나온 놈은 괴성을 지르며 미친 듯이 총질을 한다.
그걸 피해 계단참으로 굴러간 장철은 벨트에 남은 쿠크리를 뽑았다.
그 순간 총격이 멈췄다. 나직하지만 선명하고 강렬한 힘의 목소리가 이어 들려온다.
“나와라.”
분노위로 냉정한 투기가 드리운 음성, 이어지는 소리는 권총을 바닥으로 던지는 것임을 장철은 알았다. 무슨 의미인지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 * *
“난 지금도 믿기지가 않아.”
아내 유인주의 얼굴에 드리운 감정을 최재우는 읽었다.
장철이란 남자가 귀신이라는, 그가 만든 사건들을 받아들이기 힘든 거다.
그 근저에는 그날 사건의 기억이 있다.
장영이란 이름의 아이가 사고로 죽던 기억.
“그만 자자. 나 일찍 나가야 해.”
최재우는 의자를 밀고 일어서려 했다. 그런데 와인잔을 잡은 아내 유인주는 아직 그럴 생각이 없다.
“흥, 누가 보면 고생하는 경찰남편 더 힘들게 하는 줄 알겠네.”
여기서 잘해야 한단 걸 최재우는 안다.
“누가 그런 소릴 해, 1시 넘었으니까 그만 자자는 거지.”
“그래, 그건 나도 아는데, 하아.”
한숨을 내쉰 유인주는 허공을 보며 중얼거린다.
“그 사람 어떤 마음일까?”
장철, 귀신의 마음이 어떤 것일지는 최재우 자신도 궁금하다.
‘복수.’
그것을 향한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게 전부일거란 생각은 안 든다.
귀신이란 존재를 만든 배경이 있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비극이다.
“형제복지원 사건 같은 비극의 희생자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이젠 알려졌잖아. 강제노동과 폭력, 성폭행과 고문, 심지어 살인과 암매장까지.”
최재우를 보며 다시 입을 연 유인주는 슬픈 눈으로 뒷말을 이어낸다.
“아버지가 월북한 간첩으로 몰려 인생이 망가진 사람이야. 어머니는 자살하고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자신은 부랑아 수용시설로 감금돼 버린……”
유인주는 나지막하게 남은 말을 흘려냈다.
“국가가 만든, 나라가 저지른 악행의 비극.”
최재우는 유인주의 손에서 와인잔을 뺐다.
“자자, 정말 일찍 나가야 해.”
최재우의 손에 이끌려 스르르 일어선 유인주는 슬픈 한숨을 쉬고 돌아섰다.
* * *
거실로 발을 들이고 선 장철은 상대를 마주 봤다.
권총을 버리고 나이프를 잡고 선 자, 근육이 팽팽하게 곤두선 게 보인다.
사격으로 보나 나이프를 잡은 저 모습으로 보나 군 출신이다.
동료들의 죽음에 저런 눈이다.
‘피가 끓어오르지만 자신을 제어하는.’
보통 사내가 아니다. 아주 위험한 맹수와 같은 자다. 살인기술을 훈련받았고 실전에서 경험을 쌓은 자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저년이 더 놀랍다.
‘고초희.’
처음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변한 거라곤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는 거다.
여전히 웃고 있다, 하얗게 이를 보인 웃음은 아니지만 눈을 반짝인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속에서. 절 죽으려고 찾아온 자 앞에서.’
저건 흥분과 기대다.
과연 이 싸움이 어떻게 끝날지, 저년은 관전중이다.
“약속이 달라요.”
고초희의 목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바로 반응이 나왔다.
“닥쳐!”
소리친 오동철은 뒤돌아 고초희를 죽여 버리고 싶었다.
이 상황에서 귀신의 마지막 숨통 따위의 약속은 의미 없다.
애초에 그 약속을 지킬 생각도 없었다.
귀신을 본 순간 머리를 겨눠 방아쇠를 당긴 것도 그래서다.
‘어떻게 이런……!’
빨리 간단하게 끝내려고 했다.
이 자리는 오동철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닌 터, 고초희의 의도에 휘말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삼총사가 죽었다.
‘이 공간 안에서……!’
귀신은 총이 없었다. 자신들은 총을 준비했다.
이건 일방적으로 결말이 정해진 싸움이었다.
아니 애초에 접전이 생기지도 않을 일이었다.
그런데 삼총사가 죽었다.
귀신은 이 좁은 공간에서 귀신처럼 죽음을 연출했다.
“귀신, 우리 둘 중에 하나는 죽는다.”
오동철이 걸음을 내며 움직이는 순간 장철은 튀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