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27화 (27/200)

황혼의 살인자. 27. 추적.

27. 추적.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서해안 고속도로엔 역시 정체구간이 생겼다.

서울을 벗어나 시흥 군포 등의 인접지역을 지나는 구간이다.

이 도시들에 있는 사업장으로 들고나는 차량들로 만원이다. 그러나 곧 길이 뚫렸다.

차는 막힘없이 달렸다.

화성과 서평택을 지나 행담도 휴게소마저 지나자 당진에 들었다.

내쳐 달려 서산 IC를 빠져나왔다. 목적지인 서산시청까지는 금방이었다.

그러나 정말 문제는 당시의 자료가 부실하다는 것이다.

“이것뿐이네요.”

수기로 작성해 비닐을 덮은 오래된 신상카드를 시청직원이 가져왔다.

받아든 최재우는 답답한 숨부터 먼저 넘겼다.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벌써부터 막힌다.

형제보육원 관련 자료는 부실하기 그지없다.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최재우와 두형사의 눈치를 살피며 공무원은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시청사를 신축하기 전에 물난리를 한번 겪었거든요. 그때 지하 자료실에 물이 차서요. 그때가 아마…… 아무튼 오래된 기록들을 전부 전산화하기 전이었죠. 소실된 자료들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남은 것만 이렇게……”

신상파일에 번져 있는 물자국을 응시하며 최재우는 된숨을 거듭 삼켰다.

1989년에 서산시로 승격된 이곳은 본래 서산군 서산 읍이었다.

당시에 자료관리가 철저하게 이뤄지진 않았을 것이다. 이나마도 다행이다.

“그런데 보육시설 관리 감독은 주무관청이 따로 있지 않습니까?”

송치호가 물음을 던지자 공무원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그렇습니다만, 80년대 당시엔 그런 구분이 명확하지가 않았던 걸로 압니다. 거의 소재지 관청에서,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한 거죠.”

할 수 있는 데까지만, 그 말이 주는 함의를 씹으며 최재우는 신상키드들을 넘겼다.

십여장 중에 장철의 카드는 역시 없다.

그런데 보육원 관리일지가 있다.

역시 소실돼서 삼분지 일쯤 남은 상태, 기록이 눈을 잡는다.

‘수용이탈아동.’

단어가 주는 의미를 최재우는 바로 간파했다. 형제보육원에 수용됐다가 이탈한, 도망친 아이들인 거다. 수용된 날부터 도망친 날까지 적혀 있다. 이중에 장철의 수용기간과 겹치는 아이가 있다면 가능성이 있다.

‘벌떼클럽에서 함께 도망친 조폭.’

유지건과 송치호가 공무원과 몇 마디 수작하는 동안, 공무원이 수고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는 동안 최재우는 기록을 살폈다. 장철이 보육원에 있던 80년부터 84년까지 보육원을 도망친 아이는 다섯 명이다.

“장철의 기록은 없는 것 같은데요?”

미간 좁힌 유지건이 나름의 의문을 말한다.

“장철이 형제보육원출신이고 얼마나 있다가 서울로 갔는지, 그런 정보는 어떻게 나온 거죠? 어디서요? 이렇게 기록이 거의 다 소실됐는데요?”

송치호가 유지건의 뒤통수를 탁 친다.

“머리통은 장식이냐?”

“아씨, 뭡니까?”

“보안사잖아, 자식아.”

“아, 그렇구나.”

최재우는 보안사란 말로 의미를 더듬었다.

장철에 대한 상세하다고 할 정보 출처는 그곳이다.

그들은 간첩의 자식인 장철을 감시하고 기록했다. 그러나 나중엔 달랐다.

87년 이후엔 장철의 감시를 더는 하지 않았다.

‘알고 있었으니까.’

장철의 아버지가 간첩이 아니라는 것, 가족들이 다 사망한 장철이 혼자서 뭘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 그래도 감시해 왔지만 시대가 변한 거다.

87년은 민주화운동으로 변혁이 이뤄진 해다. 그해에 장철은 사라졌다.

“다섯 명이다.”

최재우의 입에서 나온 생뚱맞은 말에 유지건과 송치호는 미간을 좁혔다.

“장철이 형제보육원에 수용돼 있던 80년부터 화재사건 후 서울로 간 84년까지, 보육원이 수용 돼 있다가 도망친 아이들이 다섯 명이다. 남아 있는 기록이 부실하니까 정확하겐 알 수 없다. 이들 중에 우리가 찾는 인물은 없을 가능성이 크겠지. 그래도 이 인물들을 찾아서 확인해야지.”

명단을 적어 넣은 수첩을 닫으며 최재우는 일어섰다.

유지건은 바로 의자를 밀고 일어나 밖으로 달려 나갔다. 차를 빼기 위해서다.

그 모습을 보고 히죽거린 송치호는 최재우를 돌아본다.

염려를 담은 물음을 낸다.

“계속 이래도 되는 겁니까?”

합수부에 속해 있는데 독단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 거다.

아무리 자를 테면 잘라라 이지만 송치호가 걱정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합수부의 상황이 그렇다. 이름만 합수부이지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그들의 영향을 받고 있어.’

온누리그룹, 그 거인의 힘이 미치고 있는 거다.

온누리는 귀신을 직접처단하고 싶어 한다. 법에 의존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들에게 법은 이용가능한 수단에 불과하다.

합수부는 그들에게 조사정보를 주는 흥신소다.

“아침부터 먹고 시작하자.”

대답 아닌 대답을 낸 최재우는 유지건이 빼온 차를 향해 갔다.

* * *

마취제로 인해 깊이 잠든 장철을 응시하던 조웅은 일어섰다. 옥상 계단을 내려가 사무실 의자에 몸을 파묻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귀신이란 존재가 또 새삼스럽다. 어깨와 옆구리에서 총탄을 빼며 의사는 말했다.

‘근육이 보통사람하곤 다릅니다.’

총탄이 깊게 헤집고 들어가질 못했단 거다. 9mm 권총탄이 무지막지하게 관통상을 만들고 하지 않는 다는 건 알지만, 장철의 경우에 완전 다른 거다. 갑옷을 두른 것처럼 근육이 방어한 거다. 감탄만 나오는 결과다.

‘쉰이 넘은 나이에……’

조웅은 문득 자신의 배를 내려다 봤다.

둥그스름하게 나오기 시작한 나잇살이 숨 쉴 때마다 불룩거린다.

볼 때마다 관리해야지 하면서도 안 된다.

이런 자신이 비해 장철은 군살 하나 없다. 벗은 몸을 보니 다비드다.

‘필요한 근육들만 극도로 발달한.’

장철의 체격이 174에 70kg이 안 넘는 다는 걸 알고 있다.

이십대 젊을 시절의 체격이다.

그게 지금도 그대로 라는 건 의심의 여지없다.

날렵한 고양이과 맹수의 것과 같은 근육들로 몸을 이뤘다. 새삼 감탄스럽다.

‘마취도 필요 없다고 했지만……’

조웅 자신이 우겨서 마취제를 썼다. 장철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서다. 복수는 이제 일단락 됐지만 끝난 게 아니다. 쉬어야 다음 일을 할 수 있다.

“사장님.”

미쓰리의 부름에 조웅은 의자를 돌렸다. 노처녀 여직원은 조심스레 묻는다.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었는데요……”

왜 저런 얼굴인지 알겠다. 조웅 자신이 없는 동안 부동산의 전화를 받고 상황을 인지한 거다. 건물을 내놓았기 때문, 직원입장에선 불안하다.

“음, 그거, 맞아 팔려고 내놨어. 미쓰리한테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아뇨. 그런 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런데 이제……”

다시 조심스러운 미쓰리의 눈을 응시하며 조웅은 시원하게 말했다.

“그만할 거야.”

현재 하는 일, 직업소개소는 이제 문 닫는다는 대답, 미쓰리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퇴직금 두둑하게 챙겨줄 테니까 미쓰리도 이제 일 그만하고 시집가.”

시선을 내린 미쓰리는 공연히 장부를 뒤적이며 중얼거린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작아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조웅은 관련된 생각에 몰입했다.

이제 모든 걸 청산하고 숨는 일이다.

어려울 것은 없다. 예전부터 해온 일의 일환이고 준비는 늘 돼 있었다.

문제는 장철과는 어떻게 하느냐다.

‘내가 뒤를 받쳐줘야 해.’

그래야 하는 거다.

장철이 그러라 한다고 여기서 빠이빠이 하고 돌아설 일이 아니다.

귀신의 상대는 엄청난 자들이다.

윤진건설은 차치하고 온누리그룹은 거인이다.

거기에 세경개발까지다. 그 늙은이를 잘 안다.

‘피도 눈물도 없는 흡혈귀.’

세경 고종환회장의 악명을 절감해야 할 때가 온 거다.

그런 일인데 장철 혼자만 두고 숨을 순 없다.

이제 빚을 갚아야 한다.

그게 남은 삶이다.

‘네가 아니었으면 진즉 끝장났을 인생.’

세 번이다. 장철은 자신을 세 번이나 구해줬다.

마지막 세 번째, 그건 조웅 자신이 장철을 팔아먹은 일이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난후다.

여자의 살냄새에 취해, 인생을 바꿔보겠다는 착각으로, 귀신을 팔아넘겼다.

‘92년 봄.’

조웅은 눈을 감고 진저리를 쳤다. 자신이 만든 그 일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미친 바보나 할 짓을 했어.’

귀신의 정보를 넘기는 대가로 받기로 한 돈 가방을 두는 장소.

그곳으로 그녀의 카페를 정한 건 뭔가 씌어서라고 밖에 못하겠다.

물론 디테일하게 계획했다.

그녀가 가방을 바꿔치고 조웅 자신이 가져가는 마무리다.

그 일을 잘했다. 그녀와 같이 차를 타고 남해로 떠났다.

호텔방에서 샴페인을 터트리고 그녀를 안았다.

뜨겁게 살을 태우는데 놈들이 닥쳐왔다.

자신이 준 정보로 귀신을 공격했던 뉴율재파, 그들에게 그녀가 죽었다.

‘그날 그 자리에서 죽었어야 했는데……!’

모가지가 회칼에 갈라지려는 순간에 귀신이 왔다. 친구 장철이, 뉴율재파의 기습공격을 부숴버리고 남해까지, 조웅 자신을 구하기 위해 온 거다.

“하아.”

속을 긁어내는 숨을 토한 조웅은 감정을 추슬렀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을 차분히 점검했다. 그리고 그런 조웅을 미쓰리가 계속 힐긋거렸다.

* * *

“아가씨가 폰에 남긴 영상입니다.”

김부장이 내미는 태블릿을 고종환은 받아 들었다.

10인치 액정 화면에 딸 고초희가 있다.

아버지인 자신을 향해 웃음을 보이지 않던 딸이다.

-아빠, 이 영상을 보고 있다면 나는 아마 죽었을 거야.

움찔, 눈밑을 경련하는 고종한을 김부장은 말없이 지켜봤다.

-내가 일을 좀 꾸몄어. 어떤 일인지는 다 알게 될 거야.

고종환은 어금니를 강하게 악물었다. 그렇게 흔들리는 감정과 몸을 지탱하고 딸을 응시했다. 이야기를 들었다. 딸이 하고자 한 이야기는 이거다.

-귀신이 날 찾아온다면 우리도 찾아갈 수 있어. 그가 찾아온 대로 하면.

그게 뭔지 딸은 말한다.

고초희 자신이 백운타운하우스단지에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로부터 퍼져나갔단 거다.

일부러 자신의 정체를 노출시켰단 거다.

도우미 앞에서, 청소용역인부들이 들으라고.

고종환회장은 김부장을 홱 돌아봤다. 김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하고 있습니다.”

이미 착수한 거다. 타운하우스단지에서 일하던 모든 인원, 출입한 인간 전부를 털고 역으로 추적중이란 거다. 정보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 간 건지를 밝혀낸다면 귀신을 찾을 거다. 귀신처럼 신속하게 해내야 한다.

“잡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나라를 뒤집어엎는 한이 있더라도 잡아.”

담담하게 가라앉은 고종환의 목소리엔 측량할 길 없는 분노가 들어 있었다. 그러함을 알기에 김부장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리고 말했다.

“한회장님이 와 계십니다.”

고종환은 반응하지 않았다.

의자를 놓은 그 자리, 고초희가 누워 있는 병실을 바라보는 유리벽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김부장은 물러났다. 그 자리에 다른 자가 섰다.

쥐색양복차림의 한대건회장, 용건을 말한다.

“귀신이라는 놈을 잡자면 제대로 결과를 낼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합니다.”

여전히 병실을 보는 모습으로 고종환은 반응했다.

“한회장에게 복안이 있는 모양이군.”

고종환처럼 병실 안 고초희를 바라보며 한대건은 다시 입을 열었다.

“특화된 전문인력들이 있습니다. 곧 입국할 겁니다.”

“나라 밖에서 불렀다는 소리군.”

“미국입니다.”

“용병나부랭이들인가? 그런 자들이면 움직일 기반을 만들어야 할 텐데?”

“온누리그룹엔 전략기획실이 있습니다.”

“그렇지. 밥값을 제대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족한 그 부분을 회장님에 메워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밥 한 공기를 내라?”

“귀신의 단서를 잡고 이미 추적 중이신 걸로 압니다.”

“어째 고운소리로 들리지 않는 걸?”

“그럴리가요. 회장님의 도움을 바라는 것뿐입니다. 결과를 내기 위해 모든 역량을 동원하자는 거지요. 회장님과 저, 원하는 건 하나가 아닙니까?”

고종환은 스르르 고개들 돌려 한대건을 응시했다.

한대건은 결론을 뱉었다.

“귀신, 그놈을 잡는데 모든 걸 걸겠습니다.”

느릿하게 돌아본 시선을 다시 느릿하게 병실로 돌린 고종환은 말했다.

“그래야지. 당연히 그래야지.”

그렇게 침묵이 찾아왔다. 고종환도 한대건도 병실 안 고초희만 바라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