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30화 (30/200)

황혼의 살인자. 30. 귀신의 그림자 2.

30. 귀신의 그림자 2.

“그날 새벽에 내가 마지막으로 본 거여.”

담배를 입에 문 구순의 할머니는 연기를 뿜어내며 과거를 이어낸다.

“철이 에미가 저짝에 보이는 저긔, 솔바위 쪽으로 걸어가드라 이거여.”

얼굴에 가득한 주름에 각인된 기억을 꺼집어내며 할머니는 담배연기를 길게 뿜어낸다. 그 연기와 얼굴을 최재우와 두 형사는 말없이 바라봤다.

“먼일이 나것다 싶었지. 새벽밥 태워먹는 것도 몰르고설랑 쫓아 간겨. 근디 늦고 말었어. 철이 에미는 솔바위에서 솔부엉이처럼 날아 버린겨.”

장철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 그 가족의 비극을 지켜본 원산도의 할머니는 눈이 흐릿해진다. 그것이 슬픔에 드리워진 분노란 것을 최재우는 알았다. 장철가족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것이다.

“개잡것덜이, 간첩질했다는 죄로다가 그 집을 풍비박산 낸 거여.”

할머니의 흐릿한 눈엔 분명한 초점이 생겨나 최재우를 응시했다.

그 눈길의 무엇인지 최재우는 깨달았다.

너희들, 나랏일 하는 것들, 국가라는 괴물이 그렇게 했다는 거다.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차가운 분노다.

“뉴스에서 떠드는 게 난 뭔지 물러. 철이가 누구를 워칳게 죽였는지 누가 알것어? 나가 구십이여, 청양에서 태어나서 원산도로 시집와 이렇게 죽을 날 받아놓고 숨 쉬는 이날까정 보고 깨친 게 있다 이거여. 관리덜이 맴만 처묵으믄 천하 없는 착한사람도 간첩 맨들고 죄인 맨드는 거.”

마지막의 거, 한 음절이 삿대질처럼, 아니 비수처럼 박히는 것 같아 최재우는 움찔했다.

“확실한건 철이네가 간첩질 같은 건 안했다는 거여.”

담배연기를 뿜어내는 할머니의 눈은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

“그 집 사람 아무도 죄 짓지 않았다는 겨. 근디 다 죽어나갔어. 에미는 솔바위에서 몸을 던지고 할미는 화병으로 죽고 어린 아덜은 잡혀가고.”

장철은 형제보육원으로 수용됐다. 이 할머니는 그걸 잡혀갔다고 말한다.

“철이네만이 아니여.”

뒤이어 나오는 작은 소리를 최재우는 분명히 들었다.

“뱃일 허는 사람덜 중에 간첩으로 몰려 패가망신한 이가 한둘이간디?”

담배를 옆으로 던진 할머니는 다시 하던 일을 한다. 바닥에 널린 그물을 손질하며 입을 다물었다. 굽은 등으로 할머니 말한다, 이제 꺼지라고.

최재우는 고개를 숙이고 일어섰다. 유지건과 송치호도 씁쓸한 얼굴로 돌아섰다. 이제 다시 대천항으로 나갈 시간, 바닷바람은 벌써 밀고 있다.

“그냥 확인차원이네요.”

유지건의 힘없는 목소리, 맞는 말이다.

원산도에 들어온 일, 장철가족의 비극을 확인한 일에 불과하다.

신원을 확인한 형제보육원 출신 다섯 명의 대한 것도 별 소득이 없다.

합수부에서 그들을 확인한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여기까지 내려온 게 헛일……”

유지건의 옆구리를 송치호가 바로 찌른다.

윽하며 송치호를 돌아본 유지건은 실수를 깨닫는다.

형제보육원에서 탈출한 다섯 명의 명단을 합수부에 알린 최재우의 결정, 그건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소득이 없다.

합수부에선 가용인원과 자원을 활용해서 다섯 명의 소재를 즉각 파악했다.

그들 전부 장철과의 연관성이 없다는 결론이다.

그러니 충남까지 내려온 노력이 사라진 터, 그걸 눈치 없이 말했다.

“팀장님, 에, 제가 하려던 말은 그게 그러니까……”

유지건이 변명을 하려는 데 최재우는 다른 말을 한다.

“장철의 집을 뒤져보자.”

유지건은 송치호를 즉각 돌아봤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래? 하는 얼굴, 거긴 이미 뒤집어 깐 걸로 알고 있는데 뭘 더 뒤진단 거냐는 반응이다.

송치호는 너 입 닥치고 있어 라고 눈을 부라린다. 그런 둘을 두고 최재우는 차가 있는 곳을 향해 걸었다. 온 때처럼 해저터널을 지나갈 생각으로.

‘이럼 섬에 해저터널을 뚫어 연결하는 세상.’

그런 세상인데 여전히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살인과 폭력은 오히려 더 늘어나고 흉악해지고 있다.

길을 지나가다가도 칼을 휘두르는 세상, 아이들을 해치고 폐지 줍는 노인들을 젊은 놈들이 때려죽이는 시절이다.

어째서 이렇게 진인하고 악독할까.

그 이유가 뭔가 생각해 본적 있다.

사람들이 더 악랄해지고 인간성이 사라져 가는 이유, 답은 눈에 보였다.

‘보이는 게 그런 거니까. 당하는 게 그런 거니까.’

부조리, 불합리, 부정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그런데 그걸 누리고 이용하는 자들은 벌을 받지 않는다.

정의와 공정 같은 건 없다.

상대적 박탈, 차별, 분노는 또 다른 죄악으로 잉태돼 자랐다.

그 악이 포효함이다.

“팀장님.”

송치호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송치호과 유지건이 눈으로 가리키는 곳, 장철가족에 대해 들은 할머니가 있던 포구에서 누군가 온다.

손까지 들어 확실하게 용건이 있음을 알리는 남자, 중년의 뱃사람이다.

다가오는 남자를 응시하는 최재우는 머리위에선 해가 기울어 가고 있었다.

* * *

직업소개소연합회라는 목패가 길게 달린 사무실 앞에서 오동진은 숨을 깊게 들이켰다. 고초희의 친구라는 아가씨의 정보로 찾아온 이곳은 역삼동 중심에 있었다. 흔히 연상되는 직업소개소와 달리 세련된 외형이다.

‘강남의 용역인력 거의 전부를 취급하는 곳.’

다급하게 움직이며 파악한 개략적인 정보다. 홈페이지를 제대로 갖춘 업체다. 귀신의 촉수는 이곳을 통해 고초희의 정보를 훑어간 것이다.

이제 그 역을 잡아챌 때다. 다른 놈들 전에 귀신의 그림자를 잡는 거다.

“죽여 버린다.”

낮은 목소리로 그 말을 흘려낸 오동진은 사무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책상 위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자판을 치던 직원들이 돌아본다.

여직원 둘과 남자 직원 둘이다.

무슨 용무로 온 자인지를 가늠하는 눈이다.

“책임자를 만나러 왔는데.”

담담히 말하며 오동진은 문을 걸었다.

여직원 둘과 남자 직원 둘은 심상찮은 오동진의 눈빛과 행동에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오동진은 책상 위 전화선을 끊었다.

그렇게 만든 물건, 나이프를 본 직원들은 경직한다.

“폰들 내.”

오동진이 요구하는 그 순간 남자 직원 하나가 폰을 귀에 댔다.

거의 동시에 오동진이 움직였다.

책상을 뛰어 넘어가 남자직원을 강타했다.

발로 가슴을 맞은 직원은 벽에 부딪치고 쓰러졌다. 입에 거품을 물고 있다.

“꺄악!”

비명 지르는 여직원에게 번개처럼 이동한 오동진은 주먹을 날렸다.

복부를 맞은 여직원은 허물어졌고 그 옆의 여직원은 파랗게 얼어붙었다.

그 순간 남은 남자직원 하나가 움직였고, 오동진은 나이프를 던졌다.

허벅지에 칼이 박힌 남자직원이 엎어질 때 안쪽 사무실 문이 열렸다.

놀란 얼굴의 중년남자가 번개처럼 문을 다시 닫는다.

오동진은 탱크처럼 달려가 어깨로 문을 받았다.

박살 난 문 안쪽, 남자의 폰을 발로 찼다.

“악!”

손목이 부러진 남자의 손에서 폰이 날아가 산산조각 났다. 오동진은 남자의 복부를 밀어 찼다. 남자가 뒹구는 걸 보며 여직원에게 손짓했다.

얼어붙은 모습으로 부들거리던 여직원은 동료들을 돌아보고 걸음을 냈다.

“볼일만 끝내면 나는 간다.”

여직원이 안쪽 사무실에 들어서자 오동진은 용건을 밝혔다.

“세경개발 고초희에 대한 정보를 원한 새끼, 그게 누군지 어딘지 말해.”

오동진은 쓰러진 중년남자 책임자가 분명한 사내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머릿가죽이 뜯겨져 나갈 것 같은 고통과 공포 속에서 중년남자는 말했다.

“사, 상계직업소개소! 거깁니다!”

* * *

해가 기울어 가는 모습, 하늘이 피를 토해내는 것 같은 석양의 장관을 보며 고종환은 뒤편에 귀를 기울였다. 한대건이 최길준 실장과 통화중이다.

귀신의 꼬리를 잡기 위한 일에 착수한 상황, 경위를 보고하는 거다.

“알았다.”

통화를 끝낸 한대건이 다가오는 기척을 향해 고종환은 돌아섰다.

“귀신의 흔적을 잡은 것 같습니다.”

한대건의 눈동자에 흥분대신 짜증과 화가 든 것을 고종환은 읽었다.

“역삼동의 직업소개소연합회입니다. 거길 통해서 서울시내 모든 직업소개소가, 용역인부들이 눈과 귀가 된 거지요. 근원이 상계직업소개소 라는 곳인데, 이렇게 역으로 훑어 올 것을 예상하고도 한 걸로 판단됩니다.”

“꼬리를 잡힐 걸 알고도 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드러날 걸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대응에 대비했을 겁니다. 상계직업소개소에 대한 조치에 바로 들어갔지만 기대할게 없을 걸로 생각됩니다. 그보다는, 먼저 앞서간 놈이 있습니다.”

한대건의 눈에 든 분노의 원인을 고종환은 들었다.

“윤진의 오동진이란 놈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역삼동 직업소개소연합회를 손대서 상계동으로 달려간 상황입니다. 누군지 아실 겁니다. 따님이 공격당할 때 함께 있던 현진써큐리티의 오동철, 그놈의 동생입니다.”

“윤진 윤종대의 비서로 있던 놈?”

“그놈입니다. 제 형의 복수를 하겠다고 눈이 돌아간 모양입니다.”

“그놈이 먼저 움직였다고? 뭘 알고서?”

“그 부분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상계동으로 직원들을 보냈습니다.”

“미국에서 온다던 놈들인가?”

“그건 아직입니다. 빠르면 내일, 모레나 돼야 입국할 겁니다.”

눈썹을 꿈틀거린 고종환은 한대건의 눈을 직시했다.

“윤종대를 봐야 할까?”

한대건은 묵직한 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이미 상황이 생겼으니 중요한 건 아니지만, 오동진이 움직인 내용에 대해서 물어보긴 해야 할 것 같군요. 아직 안 가고 있으니 부르겠습니다.”

한대건이 폰을 귀에 대는 걸 보던 고종환은 다시 창으로 돌아섰다.

노을은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스러지고 있었다.

천지에 피를 토하듯이.

* * *

창백하게 얼굴이 질린 여직원의 목에 들이댄 칼날을 오동진은 가볍게 문질렀다. 그 섬뜩함에 경직한 여직원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고 한다.

“사장집이 어딘지도 모른다고?”

미쓰리는 남자의 눈동자에 든 광기를 읽었다.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자신을 죽일 거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정말로 대답해 줄게 없는 거다.

“모, 몰라요, 사, 사장님이 혼자 산다는 것 밖에는……!”

칼날을 미쓰리의 통통한 뺨에 대고 문지른 오동진은 잔인한 미소를 흘려냈다.

“사무실에 남은 물건을 가지러 왔다고?”

미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뺨에 닿은 칼날에 다치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다.

이미 말해야 할 것, 아는 건 다 말했다.

사무실은 오늘 부로 폐업했다는 것, 사장은 어디 사는지 모르고 어디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네, 넷북을 놓고 가서……”

미쓰리는 쥐어짜낸 목소리로 말한 물건, 책상 위 낡은 넷북을 시선으로 잡았다. 중고거래로 십만원을 주고 산 것, 뒤늦게 생각이 나서 가지러 왔다가 이 꼴이 됐다. 사장이 퇴직금까지 입금해 줬는데 뭐 하러 왔을까.

“사장이 뭐하던 놈인지 전혀 모른다 이거지?”

잔인한 광기를 눈동자에 돋운 오동진은 분노를 삼켰다. 문형철을 통해 다급하게 신원조회를 해본 결과, 이곳 사장이란 놈은 신분이 가짜다. 사업자등록증의 상의 신원은 지적장애인으로 현재 시설에서 살고 있다.

“내가 여길 왜 왔냐면 말이지……”

미쓰리의 뺨에 문지르던 칼날을 세운 오동진은 그 순간 눈썹을 세웠다.

머리 위, 옥상에서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작은 진동, 그러나 선명하다.

“옥상에 뭐가 있어?”

미쓰리는 기억해 냈다. 사장이 요새 자주 올라가던 곳이다.

“모, 몰라요.”

오동진은 읽었다, 여직원의 눈동자에 순간적으로 스쳐간 것을.

“몰라?”

흉악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오동진은 팔꿈치를 돌려 쳤다.

퍽 소리를 낸 미쓰리는 옆으로 쓰러졌다.

“묶어 놔.”

명령하고 오동진은 옥상으로 향했다. 현진직원 둘은 즉시 미쓰리를 결박했다. 사무실 밖에 대기 중이던 인원은 오동진을 따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 * *

“철이 형 덕분에 살아 있는 겁니다.”

남자의 구릿빛 얼굴엔 헤아리지 못할 것들이 들어 있었다.

낚싯배를 몬다는, 올해 쉰둘이 된 엄규식이란 이름의 남자다.

자신이 형제보육원 출신이며 장철을 안다고 다가왔다.

장철에 대해 조사 중이란 걸 알고서다.

우연이랄지 행운이랄지, 아무튼 이런 남자를 만났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일부러 찾아다니는 수고를 덜은 거다. 최재우는 귀를 기울였다.

“그때 별관에서 불이 시작됐는데,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잠들어 있었죠. 원장이 시키는 일을 하루 종일 하고 나면 다들 골아 떨어지거든요.”

과거를 더듬는 엄규식의 눈에 사무친 원한이 곤두서는 걸 세 형사는 봤다.

“철이 형이 우리를 다 깨워서 데리고 나갔습니다. 안 그랬으면 우리도 큰일을 당했을 겁니다. 그런 철이 형이 살인자라고 뉴스에서 떠드는 건 뭔가 잘못된 겁니다. 그 형님은 애들을 대신해서 매를 맞았던 사람입니다.”

나동 아이들, 열 살 미만의 수용아동들, 그 속에 엄규식 이 남자가 있었던 거다.

“장철, 그 사람에게……”

다시 입을 열려는 엄규식 보자 먼저 목소릴 낸 최재우는 물었다. 이곳까지 내려온 이유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습니까? 보육원내에서 가장 친밀하게 지내던…… 음, 인연을 유지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엄규식의 눈에 드리우는 경계를 보며 최재우는 강조했다.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장철씨를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염려하시는 마음 알겠습니다만, 장철씨는 위험한 상황입니다. 아시면 알려주십시오.”

최재우의 진심이 통한 것일까? 엄규식은 주저하며 이름 하나를 말한다.

“형이 있었는데…… 이름이 아마 조웅인가 그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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