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32화 (32/200)

황혼의 살인자. 32. 시작된 싸움.

32. 시작된 싸움.

“속도 내라.”

최재우의 목소리에 담긴 긴장과 흥분을 느끼기에 유지건은 악셀을 밟았다.

송치호는 폰으로 뉴스를 검색했다.

귀신이 공격한 백운호수의 사건이다.

세경개발 고종환회장의 딸 고초희가 공격당해 한진규처럼 됐다.

“머리에 나이프를 박았다고 합니다. 플라잉 나이프 같은 거라고 하는데……”

아무튼 한진수가 가위날을 머리에 박은 거하고 똑같다는 송치호의 시선, 조수석에서 뒤돌아보는 그의 눈길을 최재우는 보지 않았다. 어둠이 깔린 창밖만 바라봤다. 고속도로변의 풍경이 바람처럼 지나가고 있다.

“제보자가 누군지는 모른답니다.”

이어진 송치호의 목소리엔 짙은 의혹이 배어 있다.

최재우 자신의 심정과 같은 거다.

제보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 세경과 온누리는 경찰에 신고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들이 모여 있는 이유는 하나, 복수다.

‘귀신을 잡아 죽이겠다는 거지?’

어쩐지 반발이 곤두서는 심정에 최재우는 흠칫했다.

‘내가……’

평정과 객관을 잃고 있다. 경찰이 이래선 안 된다. 귀신 장철은 희대의 범죄자다, 살인마라고 해야 맞을 존재인 거다. 아무리 세경개발이나 온누리 같은 대상이 곱지 않아도 해도, 사건 인과가 그러해도 공정해야 한다.

“처음부터 이상하지 않았습니까?”

운전하던 유지건은 룸미러를 통해 시선을 맞추며 의문을 말한다.

“윤완규가 죽었을 때 말입니다? 하남 강변 현장에 각다귀들이 몰려왔잖아요? 그건 뭐 병원에서부터 상황 발생을 인지하고 그랬다고 하지만 사건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는 건 이상했잖습니까? 한진수의 존재요?”

송치호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공감한다.

“그건 확실히 그런 면이 있지. 진짜 운전자가 윤완규가 아니란 거, 물론 그때까지 그게 한진수란 것까지는 몰랐지만 그 부분은 기자들이 알고 있었어. 윤완규가 협박받아 혐의를 뒤집어썼다는 것까지 물어봤잖아?”

“그랬죠. 윤진건설에서 그런 걸 다 까발렸을 리도 없는데요.”

“숨겨야 했던 진실이지. 상대가 온누리였으니까. 물론 윤완규를 빼돌리고 반전상황을 만들려고 했겠지만 그전까지는 발설할 일이 아니었어.”

“그런데도 기자들이 정확하게 핵심을 짚고 있던 건?”

“진실을 아는 누군가가 흘린 거지.”

“이번 제보처럼요.”

두형사의 추론에 최재우는 깊은 숨으로 공감을 삼켰다.

지난밤 의왕시 백운호수변의 타운하우스단지에서 일어난 사건의 내막은 세경과 온누리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거다.

거기서 귀신을 기다렸다는 윤진까지다.

‘여론 때문에라도 합수부가 움직일 텐데……’

그런데 최재우 자신에게는 아무런 연락도 없다.

물론 합수부에는 인원과 자원이 넘쳐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왜 이런지 짐작이 간다.

제보가 아니었다면 아무도 몰랐을 일, 세경과 온누리는 함구하려던 거다.

‘그들의 힘이면 합수부가 주춤거리는 건 당연하지. 그래도 시늉은 해야 할 거야. 현장을 치울 시간은 충분히 준 후에. 결국 허위로 발표하겠지.’

그렇게 흘러갈 상황을 씹던 최재우는 제보자에 대한 생각으로 미간에 선을 그렸다.

‘상세한 내용을 알렸어.’

윤완규의 차에 있던 제 삼의 인물, 그게 고초희라는 새로운 진실이다.

그걸 안 귀신이 고초희를 찾아간 거고, 윤진건설의 현진 써큐리티에서 귀신을 기다렸다. 그런 상황을 만든 게 고초희의 아이디어란 내용이다.

‘지하금융의 왕 세경개발 고종환회장의 외동딸.’

세경개발에 대해서도 이제 정체를 확실하게 알게 됐다.

그런 회사가 있다는 건 얼핏 알고는 있었지만 진정한 힘과 정체는 몰랐다.

온누리그룹같은 곳도 고개를 숙이는 곳이라고 나온 기사 내용은 정말 놀라운 것이다.

‘제 아버지도 모르게 일을 꾸몄단 말이지?’

고초희가 그랬다는 거다.

귀신을 잡기 위해 윤진의 현진써큐리티를 끌어들였다.

그런데 당한 거다.

머리에 칼날을 박고 온누리병원에 실려 갔다.

‘제보 내용대로라면, 고초희가 있던 곳에 현진놈들이 있었던 건데, 귀신과 충돌했다면 사상자가 나왔을 건 당연한 결과고, 합수부가 미적거려도 언론에서 현진을 파헤친다면 진실의 뚜껑이 뜨거운 김을 뿜을 건데…’

완벽하게 덮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세경과 온누리의 당황이 눈에 보인다. 과연 누가 제보한 거란 말인가.

“휴게소에서 커피 좀 사죠.”

유지건이 룸미러로 보며 조심스레 말한다. 송치호의 눈치도 원하고 있다.

“그러자.”

최재우는 선선히 승낙했다. 급하지만 어차피 늦은 걸음이다. 허겁지겁 달려 올라간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다. 급할수록 진중하게 움직여야 한다.

세형사가 탄 차는 휴게소를 향해 우측길로 빠져 들어갔다.

* * *

피스톤처럼 터져 나오는 상대의 주먹에 장철은 놀랐다.

전문적으로 복싱을 익힌 주먹이다.

한두 해가 아니라 오랜 시간 훈련한 자의 몸 쓰기다.

글러브도 없는 권투선수의 주먹은 흉기다.

그런데 발차기도 그렇다.

원투스트레이트에 이어 나온 훅킥을 피해 장철은 물러났다.

상대는 부러진 왼팔을 가죽벨트로 감고 주먹을 뻗어내고 있다.

개의치 않는 거다.

연속해서 공격을 이어내는 움직임은 기민하고 강력하다.

그러나 보인다.

‘다시 원투.’

그리고 백스핀 블로우에 이은 점핑니킥까지, 장철은 상대의 공격 흐름을 가늠했다.

아니 예상했다.

몸이 움직이는 전체적인 흐름이 그렇다는 걸 아는 거다.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몸이 안다.

예전 감각이 돌아왔다.

쾅, 소리를 내며 박살나는 책상 위 모니터 옆으로 피하며 장철은 상대의 발차기가 가진 파워를 느꼈다. 방화철문 정도는 우그러뜨릴 위력이다.

그렇지만 장철 자신이 맞지 않고 피하고 있으니 분노가 커지고 있다.

‘많이 맞았지.’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보육원에서의 일들, 하루하루의 기억들, 혼에 새겨진 날들이었다.

처음엔 죽지 않기 위해 웅크리고만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부터는 그걸 피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몸이 깨우쳤다.

그렇지만 피하지 않았다. 형들의 주먹과 발을 그냥 맞았다.

덜 아픈 곳으로, 덜 위험한 부위로 폭력을 받아냈다.

그게 현명한 짓이란 걸 알아서다.

그런데 그걸 알아챈 형이 있었다. 그 형도 장철 자신처럼 변한 거다.

‘별관치료.’

원장이 그렇게 부른 그 일은 지금도 뭔지 정확히 모른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어떤 때는 매일 같이 그들이 왔다.

미국사람들, 그때는 서양인이면 다 미국인으로만 알았으니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치료했다.

그 치료를 받고 나서부터 변화가 생겼다.

감각이 예민해지고 행동이 기민해졌다.

그 단적인 결과가 형들이 휘두르는 주먹과 발을 피할 수 있던 거다.

그런데 그 형이 그걸 간파했다. 그 형의 주먹은 피할 수 없었다.

“이 새끼!”

흥분한 상대의 몸에 더 들어가는 힘을 느끼며 장철은 물러났다.

그런데 벽이다.

그걸 의도한 상대는 위빙하는 움직임으로 좌우를 차단하며 주먹을 뻗어낸다.

두 팔을 들어 올린 장철은 상대의 펀치를 그대로 맞았다.

커버를 올린 두 팔 사이로, 강력한 충격 속에서 장철은 상대를 봤다. 격노와 살의로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미친 듯이 펀치를 터트리는 상대, 그의 눈에 놀람이 들어차는 게 보인다. 쓰러져야 하는데 그렇지를 않아서다.

위기를 예감한 상대의 눈동자가 응축하는 순간, 몸을 뒤로 물리는 찰나.

장철은 압축된 스프링이 펴지는 것처럼 나갔다.

상대처럼 펀치를 냈다.

스트레이트를 안면에 꽂아 넣고 혹을 옆구리에 박고 니킥을 올려찼다.

벼락같은 연속 공격, 예상하고도 막지 못한 그 공격에 상대는 무너졌다.

마지막 니킥이 올려 친 턱이 으스러진 결과 속에서 바닥을 기었다.

부들거리는 손을 뻗는 곳엔 권총이 있다. 그 모습을 장철은 내려다 봤다.

피가 흘러내리는 입에는 감각이 없다.

얼굴 전체가 그렇고 몸 역시 마찬가지다.

귀신의 공격에 박살이 났다.

믿을 수가 없다.

한순간이었다.

‘어떻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공격은 오동진 자신이 압도하고 있었다. 쓰러뜨려야 했다.

그런데 귀신은 쓰러지지 않았다.

팔 사이로 본 눈동자는 오히려 위험했다.

반격, 귀신은 공격을 받아내면서 그 순간을 기다린 거다.

예상을 확신한 순간 뒤로 물러났지만 피하거나 방어하지 못했다.

귀신의 펀치는 팔 사이로 들어왔다.

정확하게, 빈틈을 쑤시는 번개처럼이다.

‘내 공격을 다 피하고 보고 있었던 거야……!’

오동진은 이 현실과 결과를 절감하며 전율했다.

귀신의 공격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여태 이런 펀치를 맞아 본 기억이 없다.

뼈골을 울린다는 표현을 이제야 알 것 같다.

귀신이 공격하자 자신은 한 번도 못 피했다.

‘날……’

가지고 놀았다는 게 맞을 거다.

귀신이 싸우기 직전에 한 말이 떠오른다.

너희를 다 죽일 거란 말, 그건 헛소리가 아니다. 그렇게 될 것이다.

귀신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 모두 귀신을 모른다.

저 자는 정말 귀신이다.

‘형.’

오동철이 죽었다. 삼총사와 같이 귀신에게 죽었다. 그런 결과인데 오동진 자신은 귀신에게 덤벼들었다. 정말 잡아 죽일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나는……’

권총을 잡은 오동진은 몸을 뒤집었다. 그렇게 귀신을 봤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장철이란 사내를. 그에게 권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권총이 손에서 날아갔다.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는 손이 바닥을 친 감각만은 선연하다.

그 손이, 오른손이 밟혔다. 우직 하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이다.”

귀신의 목소리, 저 말이 무슨 의미인지 오동진은 깨달았다.

싸우기 전에 귀신이 한 말의 결과다.

죽을 때다.

귀신의 발이 눈을 가리고 내려온다.

콰직, 소름끼치는 소리로 바닥에 퍼진 상대의 머리를 잠시 내려다 본 장철은 돌아섰다. 사무실을 나가 쓰러져 있는 현진놈들을 건너뛰며 계단을 내려갔다. 귀를 파고드는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에 밀리듯 달렸다.

건물을 벗어난 장철은 이면도로를 돌아갔다. 저편에 서 있는 조웅의 승합차를 향해 질주했다. 그러며 생각했다. 지금 상황이 생긴 이유다. 그냥 떠났으면 될 일을 숨어서 지켜본 원인이다. 뉴스에 어젯밤 일이 나왔다.

누군가 언론에 알린 거다. 사건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일이다.

‘누가?’

짐작이 안 간다. 타운하우스단지에서의 일을 자세하게 밝혔다.

세경과 온누리에서 그랬을 리가 없다.

이곳으로 달려온 현진의 한 몸 윤진건설은 더욱 아니다.

위화감이 생긴다. 이런 상황을 꾸민 것 같은 느낌이다.

‘누군가가.’

그게 누군지를 곱씹으며 장철은 승합차를 향해 전력 질주했다.

열려 있는 뒷문에 올라타자마자 조웅은 출발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조웅이 알아서 할 것이다.

겁에 질린 여직원의 고개 숙인 숨소리가 들린다.

“미쓰리, 이제 집에는 못 간다.”

숙였던 고개를 든 여직원의 얼굴은 흉하게 부어올라 있다.

“내가 안전한 곳에 데려다 줄 테니까 걱정 하지 마.”

여전히 두려움이 사로잡혀 있는 여직원에게 조웅은 한탄하듯 뒷말을 던진다.

“그러게 뭐 하러 다시 나왔어?”

여직원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옆으로 둔 장철은 조웅의 눈을 룸미러로 봤다.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 말라는 눈빛, 차는 맹렬히 달린다.

* * *

최길준실장으로부터 온 전화를 받은 한대건은 분노를 삼켰다.

한발 늦고 만 것이다.

귀신은 사라지고 윤진건설 오동진이란 놈의 시체만 남았다.

“신고 받은 경찰이 출동한 거야 당연한 거지. 수습을 어떻게 하는냐는 다른 문제고. 합수부야 통제하고 있다지만 변수가 더 생기는 건 안 좋아.”

-예,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은 신중하게 조치하겠습니다.

“그래, 어차피 합수부에서 현장을 수습해야 할 테고.”

그 부분이 문제가 아니라 언론이 문제란 걸 한대건은 알고 있다.

귀신이 오동진이란 놈을 박살내고 간 상계동 현장, 여기도 새 나갈 수 있다.

고초희 일도 제보가 들어가 뉴스를 탄 마당이다.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반드시 찾아. 귀신이란 놈을, 무슨 일이 있어도 꼬리를 잡으란 말이다.”

-알겠습니다.

최길준실장이 이제부터 무슨 일을 할지 가늠하며 한대건은 통화를 끝냈다. 돌아보니 고종환은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다. 그 상태로 묻는다.

“오동진이란 그놈이 어떻게 거기까지 훑어간 것 같은가?”

한대건은 미간을 찌푸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고종환은 다시 중얼거리듯 말한다.

“언론에 제보한 누군가, 그 누군가가 알려줬을 거야.”

어금니를 물었다 푼 한대건은 폰을 다시 들었다. 아들의 모습을 그리며 전화를 걸었다. 미국에서 들어오기로 한 인력들의 상황이 어떠한지.

한대건의 목소리가 작게 울리는 가운데 고종환은 여전히 창밖만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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