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33화 (33/200)

황혼의 살인자. 33. 죽은 자들.

33. 죽은 자들.

-합수부의 발표대로라면 백운레이크타운하우스단지에선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누군가 허위제보를 한 겁니다. 그런데 해당 지역 거주민들의 이야기는 다릅니다. 이틀 전인 4월 5일 밤, 타운하우스단지에선 뭔지 모를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사이렌 소리가 울렸고 경호원들이 바삐 움직인……

뉴스보도를 응시하며 최재우는 차가운 눈빛을 흘려냈다.

‘결국 이런 식이군.’

세경개발과 온누리그룹의 힘이 상황을 수습했다. 합수부수사팀이 현장을 조사했지만 범죄정황을 찾지 못한 거다. 물론 타운하우스단지의 소유주체로 밝혀진 세경개발의 입회하에다. 배경 내용도 소상히 알려졌다.

‘원래 중경이란 회사가 개발부터 시공까지 한 걸 세경이 먹었다……’

기업사냥꾼, 아니 포식자라고 불리는 게 세경이라고 한다. 가치가 있는 회사는 집어삼키고 값을 올려 팔아치우는 곳이 세경, 다 아는 진실이라 한다. 코로나불경기의 여파로 흔들린 중경은 세경의 돈을 썼고 먹혔다.

-세경측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위라고 밝혔습니다. 고종환회장의 딸은 모처에 안전하게 잘 있다고 합니다. 백운레이크타운하우스단지엔 한발자국도 들인 적이 없다는 겁니다. 제보와는 전혀 다른 내용입니다. 하지만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온누리병원 측도 전면 부인하고 있습니다.

병원에 몰려간 취재진들 영상을 보던 최재우는 아내 유인주의 말을 떠올렸다.

‘상계지구대에 있는 동기한테서 알아낸 건데, 어젯밤에 일이 있었대.’

최재우 자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아내는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며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친구가 뜻밖의 진실을 알게 해줬다.

비상이 걸려서 출동을 했는데 다중폭력 상황이었다는 거다. 게다가 끝난 상황이었다.

‘피살자가 나온, 그게 다름 아닌 윤진건설의 오동진.’

상계역 인근 5층 건물의 4층 직업소개소 사무실 안에 죽어 있던 자는 오동진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현장엔 심각한 부상 상태의 현진 써큐리티 직원들 스무 명이 있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존재는 바로 귀신이다.

‘그곳이 귀신이 발을 디딘 곳이란 걸 알아내고 간 건데……’

미간을 깊게 찌푸린 최재우는 전후내막을 더듬으며 뜨거워진 숨을 흘려냈다.

그러며 주변을 돌아봤다.

강남서에 설치된 합수부, 한가하다.

아니 백운호수며 상계동이며 나갔으니 한가하진 않다. 하지만 시늉뿐이다.

‘의지가 없으니까.’

대가리로부터 그게 흘러내려오는 데 합수부에 참여한 형사들이 의욕을 낼 리가 없다. 어떻게 흘러가는 판인지 대강들 아는 터, 시키는 것만 하면 되는 거다. 최재우 자신처럼 행동하는 이는 없다. 멍청한 짓이다.

‘약게 굴어야 해.’

그렇게 해야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고 최재우는 판단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 다고 돌출행동을 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

그걸 깨닫고 어젯밤 집으로 들어갔다.

합수부로 복귀한다고 해도 보고는 아침인 거다.

“팀장님.”

송치호의 조심스러운 부름에 최재우는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그를 봤다. 강남서의 형사과장 박인수경정, 합수부의 중간역할의 그가 다가온다.

“아침들 했나?”

유지건과 송치호는 바로 의자를 밀고 일어섰고 최재우도 그랬다.

“편하게들 앉아. 여기가 군대도 아니고, 나도 별은 아니잖아?”

가벼운 농담으로 의자를 당겨 앉은 박인수경정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보고서를 봤는데, 장철의 연고자 중에 조웅이란 인물이 있다? 그가 장철과 연락하는 자일 가능성, 협조자일 확률이 현재로선 가장 높다는 거지?”

최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실도 아니고 이렇게 책상 앞에서 의자를 모아놓고 마주보며 이야기 하는 게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보고인 거다.

“장철이 어린 시절을 보낸 형제보육원 기록으로부터 추출했습니다. 원산도에서 장철가족에 대한 기억을 가진 거주민들의 이야기를 청취했고, 형제보육원에 수용돼 있던 인물을 만나 장철과 조웅에 대해 알았습니다.”

박인수경정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현장에서 발로 뛰는 게 수확이 있군.”

최재우와 눈을 맞춘 박인수는 담담한 목소리를 이어냈다.

“형제보육원 출신들에 대한 조사를 여기서도 하고 있었지. 최팀장이 알린 형제보육원 이탈자 5인 외에, 확실하게 소재를 파악한 당시의 열 살 미만 나동 수용아동들, 지금은 다들 중년이 됐지만 대부분 확인했어.”

박인수의 담담한 눈동자에 시린 빛이 떠올랐다.

“공통된 이야기는 장철이 자신들을 구했다는 거야. 그가 귀신이라는 희대의 살인자라는 건 믿지 못하겠다는 거지. 무슨 음모가 분명하다는 거야.”

늘 그래왔듯이, 란 작은 중얼거림이 박인수경정의 입에서 나왔다.

그 의미를 최재우는 씹었다.

진실은 감춰지고 힘없는 사람들만 당하는 진실.

시간이 흘러서야 밝혀지는 참 얼굴, 이 일도 그런 거라고 여기는 거다.

“최팀장의 보고서와 공통된 내용이지.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조웅이란 인물을 특정해 낸 게 중요한 거지. 독단행동 하더니 하나 건졌어?”

피식 미소를 보인 박인수는 뒷말을 바로 냈다.

“조웅에 대해서 털어봤는데, 폭력전과 한건이 있더군. 1987년이야.”

87년, 그 숫자를 들은 순간 최재우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수유리장사파라는 폭력조직의 일원이었던 걸로 기록돼 있어.”

역시다.

조웅은 장철의 보육원친구다.

87년 그해에 벌떼클럽에서 만났다.

둘은 같이 도망쳤다.

아니 셋이다.

희광이라고 불렀다는 자와 함께다.

“그 이후론 기록이 전혀 없어.”

미간을 찡그린 박인수경정은 바로 또 목소리를 냈다.

“어젯밤에 상계동에서 상황이 발생했지. 상계역인근 5층 건물에서 폭력살인사건이 발생했어. 피살자는 윤진건설 윤종대회장의 비서 오동진, 사건이 발생한 장소는 상계직업소개소야. 오동진이 거기를 왜 갔을까? 현진애들 스물이나 데리고 말이야? 그래, 바로 거기 귀신이 있었던 거지.”

긴장하는 유지건과 송치호의 숨소리 속에서 박인수는 계속 말했다.

“오동진은 머리가 박살났어. 제 형 오동철의 복수를 하려다가 귀신에게 당한 거지. 오동철이 죽었냐고? 그래, 백운레이크타운하우스단지 안에서 나온 피살자가 넷이야. 그 중에 현진써큐리티 사장 오동철이 있지.”

무거운 숨을 흘려내는 최재우에게 박인수는 다시 진실을 풀어냈다.

“공식적으론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야. 세경개발과 온누리그룹에서 틀어막고 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알았을까, 최재우는 의구심을 품었다.

언론제보에도 그런 자세한 내용은 없었다, 고초희가 현진을 끌어들였다는 내용뿐이었다.

그러나 정황을 보면 짐작은 가능하다. 그렇지만 사망자 확인은 못했다.

“윤진건설과 현진에 대해서는 밀착감시하고 있지. 윤진 윤종대회장은은 소재가 확인되고 있지만 현진 오동철은 그렇질 않아. 어디 있는지를 몰라. 고초희가 실려 간 온누리병원엔 당시 시체 네 구가 함께 실려 왔다는 걸 확인했지. 딱 거기까지야. 그러니 아직은 정황추론에 불과하고.”

그런데 진실이라는 증명이 되고 있다.

오동철의 동생 오동진이 귀신을 잡으려다 죽은 거다.

그가 혼자서 귀신과 싸울 이유가 뭐가 있을까. 형의 복수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건 어떻게 귀신의 소재를 찾아갔느냐다.

“오동진이 상계동으로……”

“그거지.”

최재우의 말을 자른 박인수는 신중한 눈빛으로 다른 두 형사를 본 후 말했다.

“온누리그룹 전략기획실 인원들이 상계동 현장에 왔어. 신고를 받고 지구대에서 출동한 직후였지. 그들은 역삼동 직업소개소 연합회 사무실을 거쳐서 온 거야, 오동진은 그보다 한 발 먼저 움직인 거고. 알고 왔지.”

박인수의 설명, 이야기를 듣고 최재우와 유지건과 송치호는 깨달았다.

애초에 고초희의 소재가 드러나게 된 이유다.

그 역을 오동진은 밟은 거다.

그런데 그걸 그리 빠르게 알 수가 없다.

누군가 알려주기 전에는.

“온누리측에서 협조를 요청했어. 그래, 말이 알려준 거지 그건 요청이지. 오동진에게 정보를 제공한 인물이 있다는 거야. 오동진이 상계동으로 이동하지 전의 행적을 파악 해 달란 거지. 어디서 누굴 만난 건지.”

황당과 놀람 속에 복잡한 숨을 쉬는 최재우는 들었다.

“강남역 별다방에서 누군가를 만났지. 묘령의 젊은 여자야. 매장 cctv에 잡혔지. 그런데 오동진과 만나고 난 직후의 종적을 찾을 수가 없어. 매장을 나가서 이면도로로 접어들고 나선 찾을 수가 없다 이거지.”

“용모파악은 되지 않았습니까?”

“그게, 매장에 들어오고 나갈 때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렸어. 오동진과 앉아 있던 테이블은 여자의 좌측후면만을 잡던 위치였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복잡한 심경 속에서 최재우는 본줄기로 돌아갔다.

“상계직업소개소를 오동진이 공격했다면 그곳에 귀신과 관련된 장소라는 건데, 그 업체 사장이 누굽니까? 귀신관련 인물이 거기 있던 겁니까?”

박인수 경정은 찌푸린 미간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대표자가 명지훈이라는 잔데, 가짜야. 그 이름의 실제 인물은 중증장애인으로 복지시설에 있지. 사진을 확보했는데, 조웅의 스무 살 시절 얼굴과 흡사해. 요즘 기술이 좋아서 옛날 얼굴과의 일치성을 바로 파악했지.”

최재우는 순간적으로 어깨를 경직했다.

‘찾았구나.’

조웅이란 인물, 귀신 장철의 친구를 확인했다. 역시 그런 거였다.

‘87년 벌떼클럽에서부터……!’

최재우의 뜨거운 숨을 비집듯 유지건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합수부는 계속 이러는 겁니까? 백운호수 현장도 그렇고 상계동 현장도 그냥 덮는 겁니까?”

송치훈이 당황한 얼굴을 했지만 유지건은 뒷말을 뱉어냈다.

“경찰이 재벌그룹 뒤나 봐주고 있는 거 같아서 기분이 더럽습니다.”

확 터트린 유지건을 최재우도 당황해서 봤다. 즉각 시선을 박인수에게 돌렸다. 경색된 눈동자가 선명히 보인다. 그런데 피식 미소를 피워낸다.

“젊은 피가 역시 다르군.”

박인수는 최재우에게 시선을 돌리고 엉뚱한 걸 묻는다.

“신명시 형사과장, 이왕길 경정이지?”

“예? 아 예.”

“그 양반 대단한 양반이지. 말단 순경으로 시작해서 거기까지 이른 사람은 손에 꼽을 걸? 뭐, 그 자리가 한계이기도 하지만 말이야. 아무튼 존경할만한 선배야. 이제 남은 건 순탄하게 지내다가 정년퇴직하는 거지.”

무슨 의미인지 몰라 하는 최재우와 두 형사에게 박인수는 여전한 미소로 말한다.

“경찰노릇하면서 이리치고 저리치고, 나이 들면 누구나 갖는 꿈이지. 나도 마찬가지야. 연금생활자로 낚시나 다니고 싶어. 그러니 그때까지는 조심해야지. 다들 그래, 윗대가리들도 마찬가지야. 우리보다 더하지.”

허탈한 미소로 말을 멈췄던 박인수는 다시 목소릴 이어냈다.

“경찰 수장인 청장도 다를 거 없어. 눈치 봐야 하는 데가 한두 곳이 아니지.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옷 벗는 거고, 그러니까 다들 엎드리는 거야. 눈먼 총알은 피하고 싶은 거지. 그래서 경찰이 늘 욕먹는 거고.”

유지건에게 시선을 돌린 박인수는 진중한 눈으로 말했다.

“그래도 아들딸에게 아빠가 경찰이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뛰는 거야. 이리 채고 저리 채고 눈치를 봐야하지만, 할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일해야 경찰이 되는 거지.”

흔들리는 유지건과 송치호의 눈을 응시한 박인수는 최재우와 다시 눈을 맞췄다.

“최팀장, 자네 팀이 처음부터 귀신사건을 담당했지? 끝까지 해봐.”

끝까지, 그 말에 든 의미를 읽은 최재우는 뜨거운 걸 삼켰다.

합수부는 허수아비 노릇만 하진 않겠다는 거다.

검경수뇌부와 정치권에서 들어오는 온갖 압력 속에서도 해야 할 일은 한다는 거다.

그 일을 하라는 것이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최재우는 물음을 냈다.

“상계동에서 귀신이 도주한 경로파악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박인수는 의자를 밀고 일어서며 대답햇다.

“그 일부터 해.”

* * *

차를 세 번이나 바꿨다. 마지막에 갈아탄 차는 택배차였다.

용인 시까지 와서 택배물류창고로 진입, 트럭 안쪽에 숨어 이동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신명시다.

이 결과가 심경을 복잡하게 하지만 현실로 받아냈다.

‘잘도 이런 곳을 준비해뒀군.’

신도시, 신용지구 안이다.

중심상가를 바라보는 위치의 3층 상가건물이다.

1층과 2층 모두 임대중이란 현수막을 붙여놨는데, 아무래도 눈속임이다.

3층은 주인세대의 주거 공간이다. 아파트처럼 꾸며진 주택이다.

새삼스런 마음으로 집 안팎을 들러본 장철은 뉴스를 틀었다.

거실 벽에 걸린 tv에선 장철 자신과 관련된 뉴스가 쏟아지고 있었다.

-세경개발은 모든 내용을 전면 부인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윤완규 한진수와 함께 차를 탄 적이 없다는 겁니다. 안면도 없던 사이라고 합니다. 누군가 허위제보를 해서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주장, 법적대응을 불사……

‘누구지?’

가슴에 가시처럼 박힌 의문을 더듬던 장철은 여자의 울음을 들었다. 미쓰리라는 아가씨, 죽다 살아난 충격과 도주한 이 현실을 조웅이 달래고 있다.

“여기서 며칠만 지내, 더 안전한 곳으로 보내 줄 테니까.”

“흑, 사장니임……”

방에서 들려오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밀어낸 장철은 다시 뉴스에 집중했다. 하지만 상계동에 대해선 나오지 않고 있다. 역시 그들이 움직였다.

‘세경, 온누리.’

죽여야 할 이름을 이사이에 문 장철은 귀신의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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