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35화 (35/200)

황혼의 살인자. 35. 멈추지 않는다.

35. 멈추지 않는다.

-자, 여기가 뭐하는 곳이냐 하면요?

사파리모자를 쓴 유튜버는 호수를 등지고 있다. 줌으로 당겨 잡는 화면엔 호수 건너 타운하우스단지가 보인다. 세경개발의 그곳, 사건현장이다.

‘고종환, 한대건……!’

두 인물을 떠올린 윤종대는 이가는 숨을 흘려내며 폰 화면을 응시했다.

-요즘 빅 이슈가 된 존재, 귀신의 살인무대라 이겁니다. 저기 저 타운하우스 단지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다. 귀신이 누군지는 다 아시죠?

유튜버의 눈동자가 시린 빛을 낸다.

-예, 윤진건설 회장 아들 윤완규를 토막치고 온누리그룹 회장 아들 한진수를 개 발라 버린 인물입니다. 대가리에 가위날을 꽂아버렸다고 하죠?

아들 윤진수의 이름이 나오자 윤종대는 주먹을 쥐고 어깨를 떨었다.

-귀신이 여기 와서 왜 사람들을 죽인 걸까요?

윤종대는 다시 고갤 들고 폰을 노려봤다.

-예, 맞습니다. 세경개발 회장의 딸 고초희를 죽이려고 온 겁니다. 왜냐고요? 당연히 복수죠, 귀신의 손녀를 받아버린 람보르기니 우르스에 함께 타고 있던 마지막 인물이니까요. 언론에 제보된 내용이 그겁니다.

윤종대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당할 년이 당한 거야.”

정말이다. 아들 윤완규가 당했는데 당연히 당해야 한다.

엄밀히 아들은 죄를 짓지도 않았다. 한진수와 고초희가 죽어야 하는 일인 거다.

아들의 죄라면 그것들을 태운 거다.

그렇지만 저것들은 다르다.

잘 죽었다.

‘미국엘 가든 어딜 가든 가망 없어.’

한진수와 고초희의 상태는 죽음 보다 더 한 것이다.

다시 의식을 찾거나 정상으로 돌아올 수 없다.

산 시체 상태로 연명 아닌 연명을 하는 거다.

그렇게 만들어버린 귀신을 생각하면 털이 곤두서지만 죽여야 한다.

‘죽인다, 반드시 죽이고 말 거다……!’

고개 숙인 윤종대는 움켜쥔 주먹을 부들거렸다.

아들 윤완규를 생각하면 숨 쉬는 것도 힘들다.

철딱서니 없는 게 늘 마음에 걸렸지만 엄마 없이 자라게 한 윤종대 자신의 탓이라 여겼다.

그래서 언제나 가슴이 아팠다.

-그것들이 왜 함께 마약을 처먹고 차를 탄 걸까요?

귀를 파고든 유튜버의 목소리에 반응한 윤종대는 고갤 들었다.

-윤완규, 한진수, 고초희, 이 셋의 공통점은 돈이 넘쳐나는 재벌기업의 자식들이란 것 외에 에미가 없다는 게 같습니다. 예, 셋 다 엄마가 죽어버렸죠. 각각의 사연이야 검색질 조금만 하면 다 나옵니다. 아무튼 그런 공통점이 서로 뭉치도록 한 게 아닐까요? 아, 물론 확인은 못합니다.

게걸스럽게 웃음을 터트린 유튜버를 보며 윤종대를 분노를 삼켰다.

-자자, 사족은 걷어내고 본론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저 타운하우스단지에서 총격전이 벌어진 걸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밤중에 그런 불빛을 봤다는 인근 주민들의 목격담이 있다 이겁니다. 그런데 경찰은 아니랍니다.

합수부가 덮은 진실은 유튜버는 계속 말하고 있다.

-언론에 제보된 내용에 의하면 저곳에서 세경개발 고초희가 현진써큐리티직원들을 대기시켜놓고 귀신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잡아 죽이려고 함정을 판 거죠. 예, 귀신이 찾아올 줄 알고 말이죠, 캬, 이거 완전 영화네요.

감탄을 과장되게 보인 유튜버는 바로 심각한 얼굴을 한다.

-그런데 죽은 겁니다. 귀신에게 도리어 당한 거죠. 엄청난 일입니다. 총까지 사용한 게 확실하다면 영화 이상의 현실이 저곳에서 벌어졌던 겁니다. 후덜덜하네요, 귀신이 어떤 인물이길래 그런 일이 가능한지 말이죠.

폰을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 속에서 윤종대는 계속 봤다.

-귀신, 장철이라는 신분이 드러난 그는 교통사고 피해자의 가족입니다. 람보르기니 우르스에 받혀 사망한 장영 어린이의 할아버지죠, 올해 쉰다섯으로 중년도 넘어가는 사람입니다. 이젠 만나이로 통합한다고 하니까 그러면 쉰셋이죠. 배우나 체육인중에 그 나이에도 팔팔한 사람들 있죠?

윤종대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인물들을 떠올렸다.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이는 얼굴과 젊은 몸을 유지하는, 확실히 그런 이들이 있긴 하다.

-귀신은 그런 정도가 아니라 이겁니다.

유튜버에게 시선을 고정한 윤종대는 신음처럼 중얼거림을 흘려냈다.

“그래, 그 놈은 정말로 그런 정도가 아니지……!”

흥이 더해가는 목소리로 유튜버는 계속 이야기 한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귀신은 암흑가의 전설 같은 인물입니다. 경찰이 두루뭉술하게 밝힌 범죄전력이 엄청난 거다 이겁니다. 귀신은 1987년부터 98년까지 무려 스물일곱 건의 살인사건에 관여한 존재입니다. 예, 관여란 말은 그가 했다는 거죠. 증거가 없었고 누군지를 몰랐던 거죠.

유튜버는 웃음기를 싹 걷어낸 얼굴로 뒷말을 이어냈다.

-그런 사람을 건드린 겁니다. 죄를 지어도 가진 돈으로 틀어먹고 권력으로 무마하던 것들이 뒈진 겁니다. 당연히 죽어야 할 것들, 죄지은 것들이 당했습니다. 법으로는 처벌하지 못하는 것들, 그런 일이 있었는지 우리 같은 사람들을 알지도 못하게 만드는 것들, 제대로 처발린 겁니다.

유튜버는 다시 웃음을 흘려낸다.

-속이 시원합니다.

윤종대는 폰을 집어 던졌다. 벽에 부딪친 폰은 산산조각 났다. 떨어진 그 파편들을 노려보며 이를 갈던 윤종대는 서랍 안에서 다른 폰을 꺼냈다.

“나야.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전화를 받은 상대방, 안산에서 마트를 경영하는 함진웅은 차분하게 대답한다.

-제대로 일할 놈들을 구하는 중입니다. 돈만 보고 달려드는 놈들이 아니라 진짜로 일 할 놈들이죠. 그런 놈들이 있습니다. 제 나라에서 도망쳐온 놈들, 제대로 죽일 줄 아는 놈들, 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환경이죠.

환경, 목표인 귀신을 죽일 수 있는 여건조성이다.

그건 윤종대 자신이 만들어야 한다.

세경과 온누리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회를 만드는 거다.

그 일이 더 어려울 터다. 하지만 이제 다른 방법이 없다.

‘현진이 부서진 이상.’

이를 물던 윤종대는 불현듯 그 생각을 했다.

‘오동진이 만났다는 여자.’

어제 상계동에서 귀신에게 죽기 전 오동진은 강남역에서 여자를 만났다.

문형철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확신했다.

그 여자가 언론에 백운호수 상황을 제보한 장본인, 오동진에게 갈 길을 알려준 길잡이다.

‘종적을 잡지 못하고 있는……’

합수부는, 세경과 온누리는 그런 상태다. 그러니 그 여자가 누군지 어떤 배경을 가진 존재인지 궁금하다. 뭐가 됐든 그 여자는 오동진에게 귀신을 향해 갈 길을 알려줬다. 그런 일이 윤종대 자신에게 있을 수도 있다.

-환경만 조성되면 오늘 밤에라도 액션은 가능합니다.

다시 들려온 함진웅의 목소리에 윤종대는 현안으로 돌아왔다.

“그래? 그러면 일단 회사로 오지. 내가 우선 좀 봐야겠어. 내 눈앞에서 대기상태에 있는 걸 봐야겠다고. 물론 기회가 되면 바로 움직이는 거고.”

-알겠습니다. 출발할 때 전화 드리죠.

통화를 끝낸 윤종대는 의자에 몸을 묻고 뜨거운 숨을 흘려냈다.

* * *

-백운호수는 때 아니게 몰려든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습니다.

현장영상을 보여주는 기자의 얼굴에도 옅은 황당함이 드러나 있었다.

-대부분 개인방송자들인 걸로 파악된 상황입니다. 사건 현장으로 알려진 타운하우스단지를 무단으로 진입하다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는데요, 그만큼 진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다는 방증입니다만 합수부는 사건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언론에 제보된 내용은 구체적……

tv를 응시하던 고종환은 한대건에게 물었다.

“현진써큐리티에 기자들이 달라붙었을 텐데, 수습이 제대로 되겠나?”

그렇다, 오동철에 이어 오동진까지 죽은 마당이다. 윤진건설은 몰라도 현진써큐리티는 갈무리가 어렵다. 아무리 틀어막아도 어디선가 샐 거다.

“윤종대가 생각이 있다면 수습에 최선을 다할 겁니다만, 현진 대표 오동철과 동생 오동진까지 부재한 상황을 계속 끌고 갈수는 없을 겁니다. 때가 되면 그럴듯한 결과를 만들어서 공개해야겠죠. 도움을 줄 겁니다.”

그럴듯한 결과, 오지여행을 즐긴 그들이 어디선가 사고사를 당했다든가하는 내용이다.

그건 그런데 그 전에는 이란 시선을 고종환은 던진다.

당장 언론이 개떼처럼 달려들고 있는데 어떻게 통제할 거냔 거다.

“사건은 사건으로 덮는다고 하잖습니까?”

한대건의 대답 아닌 대답에 고종환은 미간을 모았다.

“이목을 돌릴만한 걸로 하나 터트리면 될 겁니다.”

무슨 소린지 알아들은 고종환은 눈동자를 서늘히 빛냈다.

“준비해 둔 게 있군.”

“있습니다.”

자신 있게 대답한 한대건은 차가운 미소를 입가에 품었다.

“이왕이면 정치권 이슈가 좋을 겁니다. 그중에서도 누구나 반응하는 성폭력문제가 더 좋겠지요. 맞춤한 걸로 하나 던질 생각입니다. 강도가 있는 걸로요.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우리 문제는 바로 밀릴 겁니다.”

“그 정도인가? 음, 역시 한회장이군. 평시에도 어려운 때를 위해 준비하는 사람, 내가 한회장을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지. 쉬는 법이 없어.”

한대건은 옅은 미소로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예, 쉬지 않았습니다. 아니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올라온 겁니다.”

한대건의 얼굴에 맴돌던 옅은 미소는 이내 사라졌다.

“이젠 정말 쉬려고 하던 참인데, 아들을 죽인 놈을 잡기 전까진 못 쉬겠습니다.”

바라보던 고종환이 한마디 붙인다.

“못 멈추는 거지.”

한대건이 시선을 맞추는 그때 최길준의 보고가 폰으로 왔다.

-도착했습니다.

“알았다.”

고종환을 보며 한대건은 일어섰다.

“미국에서 타격팀이 왔습니다. 가서 보시죠.”

고종환은 옅은 불만을 중얼거린다.

“늙은이가 가야 하나, 오라고 하면 되지.”

그러면서도 한대건을 따라 나간다. 이래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서다.

* * *

“같은 처지였다는 걸 알고 고용한 거겠죠?”

유지건의 물음에 최재우도 송치호도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불법가택침입을 벌인 이 장소, 이영숙이 살던 원룸엔 혼자 사는 삶이 보이다.

가족이 없는 고아, 이영숙은 장철과 조웅과 같은 신세였다. 힘들게 살았다.

“이영숙이 원래부터 관련자였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송치호의 확신어린 짐작에 최재우는 공감의 고개를 끄덕였다.

이 원룸엔 혼자 사는 외로운 여자의 삶만이 보인다.

억척같이 사는 고단함이다. 사치부리는 물건은 하나도 없다.

통장엔 살뜰히 모은 돈이 들어있다.

‘마지막으로 입금된 돈이……’

거액이 들어왔다.

상계직업소개소를 폐업하며 퇴직금으로 준 것 같다.

그런 업장에서 이정도의 돈을 주는 건 평범하지 않다.

조웅은 확실히 이영숙을 챙겼다. 유지건의 말처럼 같은 고아출신이라서 그런 것을 거다.

“계곡물 속에서 동전 찾기네요.”

유지건은 투덜거림에 핀잔을 던지려던 송치호도 한숨을 내쉬었다.

상계직업소개소 건물을 다녀온 결과 때문이다.

역시 건질게 없는 상황, 아니 들쑤시고 들어갈 수가 없다.

합수부가 관련 없는 사건으로 해 놔서다.

‘귀신사건이 아닌 단순 폭력조직의 난투극.’

경찰에 신고한 사람들이 있기에 완전히 덮진 못하고 그렇게 꾸몄다.

신고자들을 만나긴 했지만 그들한테서 얻을 건 없었다.

애초에 내용을 모르는 터, 상계직업소개소가 불법적인 일에 연루돼 폐업한 결과로 여긴다.

‘이영숙이 통장에 있는 돈을 인출하거나 하면……’

바람을 그리던 최재우는 이내 쓴 입맛을 다셨다. 이영숙의 폰까지 꺼버린 귀신일행이 그런 빈틈을 보일 리가 없다.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어디서 단서를 찾아야 하나……’

좁힌 미간을 꿈틀거리던 최재우는 이름 하나를 잡았다.

‘명지훈.’

조웅이 도용한 신분의 원래 주인, 건물 판돈을 대가로 받은 사람.

이제 남은 건 그다.

만일 그가 조웅과 관련이 있던 자라면 기대해 볼만 하다.

물론 신원을 확인하며 관련이 없는 걸로 파악됐지만 진실은 모른다.

“명지훈에게 가자.”

최재우가 결론을 내고 나가자 두 형사는 투덜거리며 또 뒤를 따랐다.

* * *

가방에 든 물건들을 장철은 바닥에 늘어놓았다.

변장도구와 칼 두 자루다.

조웅이 보관하던 물건 중에 이제 남은 건 이것들뿐이다.

칼을 뽑아서 날 상태를 다시 확인했다. 면도날 같은 퍼런 기운은 피를 달라 한다.

“나갈 거냐?”

조웅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며 묻는다. 장철은 고개만 한번 끄덕였다.

“누군데?”

칼을 집어넣으며 장철은 대답했다.

“윤종대.”

이번엔 조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한 대로여서다. 세경이나 온누리보다는 상대적으로 쉬운 목표다.

현진써큐리티가 박살난 결과에 패닉 상태일 거다.

설마 자신까지 노리랴 하는 방심을 쑤시고 들어가는 거다.

“시작했으니까.”

귀신은 멈추지 않지 란 말을 삼킨 조웅은 물었다.

“뭘 준비하면 되냐?”

장철은 변장도구들을 확인하며 답했다.

“서울까지 데려다 주기만 해.”

장철과 조웅이 있는 방으론 저녁놀이 창문을 통해 들이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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